시험

 

1980. 10. 25. 토새

 

 본문 : 마태복음 26장 41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우리는 자기 앞에 닥쳐올 시험을 보는 자기가 되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깨어 있는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난 자가 진리와 영감의 보이는 것과  듣는 것과 또 자기가 행동 할 행동 이것이 있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육신으로도 그 사람이 (졸면 되는가 와서) 믿음이 떨어지면 모든 면이 죽습니다. 그 사람이 자는지 안  자는지 다 알아 적이 올 때에 조그만한 소리를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그 사람이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뭣이 원수가 오는가 깨어 있으면 조그만한 바짝 소리만  나도 무슨 소린가 알아 듣는 그 표시가 나는데 무슨 소리를 해도 알아 듣지  못합니다. 제법 소리를 해도 원수가 와 가지고 제 목을 끊어 가지고 가도 모를  만침 어제도 내가 어떤 군인을 만나 가지고 그 일선의 소식을 좀 이야기를 좀  들었는데 원수가 와 가지고 소리를 내도 소리를 못 들으면 그게 자는 증거요.

바짝만해도 소리를 들으면 그것은 총으로나 될까 그 칼로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요. 또 무엇이 보이지 안 하면 그 사람이 자는 증거입니다.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은 그것은 자는 증거요. 또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그것은 그 사람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안 보이고 안 들린다 하는 증거입니다. 그 사람이 움직이지를  안하면 분명히 들리고 보여지면 행동이 개시가 될터인데 아무 행동이 없습니다.

아무 행동이 없으면 그것은 분명히 안 보이 보이지도 아니하고 들리지도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그 사람은 생명은 있는 자지마는 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고민스러운 그런 행동이  있는 것은 분명히 그 제자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을 주님은 보셨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생기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예수님은 보고 들으신 것은 그것을 깨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같이  있었지마는 제자들과 주님과 같은 그런 양의 그 어려움은 아니지마는 질적으로는  같은 그 동질과 동성의 그런 어려움이 저희들에게도 있는데 저희들은 깨어 있지  안하고 자고 있기 때문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고 보고 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간절한 소원고 통곡이 없이 평안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여게 자고 있다는 것을 깨어 있으라 하는 것을 고기덩어리 이놈만 깨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 할 때에 아무리 육신의 눈을 뜨고 잠이 오지  안하고 까랑 까랑 있어도 기도를 못합니다. 기도할 제목이 없어서 어떻게  기도해야 될란지 기도를 못합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될란지 빌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 할 제목이 없고 듣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 할 제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사이도 제가 밤으로 기도할 때에는 이 무리들에게 기도 할 바를 보여  주시고 들려 주히고 알려 달라고 기도 할 바를 알려서 어떻게 기도 할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해 달라고 이는 영감이 아니면 성신의 감동이 아니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진리의 가르쳐 주심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그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 사람이 자기 중심에 그 모든 육체의  소욕으로 세상으로 살고 있는데 악령으로 살고 있고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있고  종전 세상살이 하던거와 같은 땅의 것만 생각하는 그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그 삶이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속에 파묻혀서  나오지도 못하고 활동하지를 못합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그 사람이  자기가 되어 가지고 살아야 성령의 음성도 들을 수가 있고 진리가 보여 주는  것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새 사람으로 사는지 헌 사람으로 사는지 그 증거는 보이고  들리고 행동하는 그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악령과 악성이 주는 그것을 듣고  그것을 보고 그 행동하는 자는 그것은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새사람으로서는 자는 것입니다. 자는 자는 생명있는 거와 죽은 거와 다른 것은  행동은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같고 다만 생기 있는 것만  다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은 되어서 영생하는 생명이 그 속에 있기는  있지마는 그가 보는 것도 들리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안 믿는 사람같이 보이는  것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만 보여지고 들리는 것도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만  들려지고 이러니까 그 심신의 모든 움직임이 땅의 것을 인해서 움직이지 주님과  하늘나라의 것을 인하여 움직임이 없으면 그게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는지 깨어 있는지 한 그것은 그의 보이고 들리는 그것으로서 판명이  됩니다. 네가 너를 시험하여 믿음에 있는지 없은지 확정을 해. 확실히 나는  믿음이 있다 없다 네가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으니까 시험해 보고 너는 믿음에  있다 없다 믿음으로 산다 안 산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 인하여 산다 안 산다  하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판정이 되는 것이니까 네가 판정을 하며  살으라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는지 자는지 우리는 산 자는 산 자인데 자는 것은 안 믿는  사람같이 사는 그것이 자는 연고요 또 이는 예수님과 같이 우리에게는 참  어려움의 그 시험이 보여져서 다른 사람은 웃고 즐거워하고 이렇게 모든 면을  낙관하고 땅의 것만 소망해서 사는데 깨어있는 자는 그는 근심하지 안 할 수  없고, 고민하지 안 할 수가 없고, 그는 어렵게 여기지 아니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기까지 고민한 그것이 언제든지 있습니다. 죽기까지 고민한 그  고민이 있은지 후 그 고민을 인해서 간절한 소원과 심한 통곡이 기도가 있게  되고 기도가 있은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에는 그 고민 대신에 이제는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민과 평강 이것이 마치 오른 다리와 왼쪽 다리처럼 고민으로 한자국  디디고 난 다음에 평강으로 한자국 디디고 또 고민으로 한자국 디디고 평강으로  한자국 디뎌서 고민으로 하나님에게 구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받음으로 인한  그 평강으로서 모든 시험을 기쁘고 즐거움으로 원하는 마음으로 승리를 가지는  것이 이것이 믿는 사람의 걸음입니다.

고민으로 오른발을 떼 놨으면 평강으로 왼발을 떼놔 그 난제를 통과하고 고민과  평강으로 통과를 이것을 하는 것이 기독자인데 자기에게는 주님은 걱정하시고  성령 주의 영 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은 근심 하셔서 우리에게 근심을 주는데  주님의 그 음성인 말씀은 우리에게 근심 하셔서 우리에게 근심을 주는데 주님의  그 음성인 말씀은 우리에게 근심을 주는데 이 근심을 하지 않는 것은 중생시킨  성령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이오 중생시킨 그 진리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입니다.

피동의 고민이 없으니까 피동으로 말미암은 평강이 없습니다. 이 고민과 평강이  없으니까 그 시험을 당했을 때에 그때에 생전 당해 보지 못한 고민을 처음으로  만났고 당해 보지 못한 고민을 만나니까 그 고민에서 죽고 그 고민에서 종이되고  그 고민에서 실패를 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으면 반드시 자기가 고민하지 안할 수 없는 그런 시험을 보게  됩니다. 시험은 두 가지인데 우리가 죽는 것과 살아는 것 그 두 가지인데 죽는  것 사는 것 그 두 가지 시험인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네게 대해서 너는 어느 정도  커져라. 어느 정도 커져라. 너는 다윗같이 커져라. 아브라함같이 커져라.

엘리야같이 커져라. 다니엘같이 커져라. 요셉같이 커져라. 너는 커져라 하는  당신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커짐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을 주님은 보셨기  때문에 고민이 있은 것입니다.

주님은 그 크심이 모든 율법으로 만족케 해야 되는 이 지극히 큰 것을 주님께서  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지공에서 만족을 하고 걸릴 것이 없어야  되겠고 지성에서 만족하고 걸릴 것이 없어야 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주님은 그  양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주님이 뭐 죽음이 두려워서 고민한 것 아니요 죽음 그것은 그 경우에 도달하지  안해도 공산주의 자들도 죽음이라는 그거는 이미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는 그 단계는 그렇게 높은 단계가 아닙니다. 죽는  거는 뭐 문제가 없지만 죽는데 그 죽음이 과연 주의 요구에 욕구에 만족이  될런지 안 될런지 이제 그것이 문제가 되 가지고 주님이 고민하신 것입니다.

그래 내 어떤 사람한테 들었는데 그 동리 뒤에 공비가 와 가지고 있어서 그걸 참  여러날 공을 드려서 마지막에 잡으니까 아주 처녀인데 어떻게 그 인물이 잘났고  예뿐지 그래서 거게 있는 사람들이 다 그것을 살려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쩌든지 살려 주려고 구출하려고 하도 예뻐서 이랬는데 그래 난중에 자기가  이리도 저리도 피하지 못하고 포로가 딱하게 되니까 자기가 바위 앞에 가 가지고  혀를 물고 앞에 턱을 바위에다가 사정이 없이 때리니까 혀가 당강 끊어져서 그  떨어지고 피가 그렇게 마구 흐르는 것을 그래 가지고 생포를 해서 잡아 가지고  갔다고 고 자기가 가 가지고 고의가 아닌 그런 잘못된 말을 할까 해서 그 말하지 안  하려고 그렇게 했어. 그런 사람은 죽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죽는 것 보다도  자기가 자기의 사상에 위반된 그런 과오를 범할까 하는 그게 더 두려워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기까지 고민한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 고민한 것  아니요. 하나님의 지공에 세포 하나도 원함이라야 되지 불응이 되면 지공법에  강제가 되고 원함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대속이 안 됩니다. 또 지성법에도  그렇게 고민할 때에 전부가 다 주님에게만 아버지 하나님에게만 기울어져야 되지  거게 기울어지지 안하고 다른데로 가지면 그 지성에 미달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인해서 내가 마시지 않고는 지내가지 않겠습니까. 나보다도  지성과 지공에 만족을 이룰만한 그런 분이 있으면 그런 분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만족을 이룰만한 그런 실력이 없습니다. 신경과 세포가  아프다고 소리지를 때도 있겠고 이파 할 때도 있겠으니까 그러면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헛일이 된다 이거요. 아파하면 내 저 지난번에 개 싸움하는 걸 이부러 내가 그 싸우는 걸 내가 한번 보기  위해서 개 싸움에는 보자 그 투쟁하는 그걸 뭐 그걸 내 개 싸움을 안 봐 그런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어떻게 심판하는 걸 보자 하고서 갔었는데 아 보니까 힘은  세고 뭐 끝까지 싸우면 그놈이 이길런지 몰라요. 아주 그런데 아 깽 한 번  그러니까 그만 끄내버리요. 승부가 결정됐다고 고 자기가 깽 할 때 아파서  그때는 깽 거렸지만 버득지나 가니까 또 싸울 용기가 있다 이거요. 아 저 깽  거니까 졌구나! 우리에게도 이제 승리 전투할 때에 그때에 어느 순간이라도 무엇이라도 그에게  굴하면 안 된다 굴하면 헛일이다 하는 그것을 제가 거기서 하나 배우고  왔습니다. 마지막까지 뒤에 따라다니니까 쫒기가는 그거는 뭐 그래지는 그것은  말할 것도 없고 또 헛되이 소리하니까 그만 졌버렸어. 벌말 하니까 졌버렸어.

이러니까 바울 같은 그런 분이 빌릭스 각하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 조심  조심해서 아주 옆에서 우리가 볼 때에 잘못 보면 떨면서 두려워 해서 사지를 못  쓰는 것같이 그렇게 말을 한것이 그가 두려움에 채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말 한마디라도 잘못해서 순전히 주와 및 진리를 인해서 당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상대방의 감정을 일으켜서 상대방의 감정을 일으켜서 그에게 흥분을 시켜서 그를  감정나게 그 노를 일으켜서 된 것이라면 순전히 주를 위해서 된것이 아니고  잡것이 끼어 있기 때문에 고것 당하지 안하려고 그렇게 떨면서 조그만치도  그들에게 거리낌이 없이 죽는 듯이 그러니까 아무 분한 거나 그런 것 하나도  없이 그렇게 한 참 깨끗한 승리 잡것이 썩이지 않게 하려는 얼마나 주님의  요구하심이 크며 그것을 밝히 보고 한 것인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외정 말년에 신사참배 때문에 신사참배하지 안 하고 지내 나온 사람들 제가 마산  집회 때에 거게 여 성도들이 많이 와서 승리한 사람들이 그때 거의 다 왔었는데  그때 그분들이 말하기를 간증하기를 '야 이놈들아 찢어 먹든지 볶아 먹든지 삶아  먹든지 너거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하고서 투쟁을 했다는 그 소리를 들을 때에  참 마음에 원통한 것은 내나 해도 헛일 했습니다. 옛사람이 하는 것이고  공산주의가 하는 것이지 성도가 해서 이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기선 목사님이 전투 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전투해야 되겠습니까 하는  그 요령을 물을 때에 '너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요것이  변동이 없어야 승리하지 고기 변동 있으면 승리 못한다.' '너희들은 죽이는 원수  그 공산주의에게 대한 미움이 없고 그를 진정 사랑해서 그를 구출 하려는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 이 두 사랑이라야 그것을 이기지 그 전에는 이기지 못한다'  하는 고것으로 가르쳐 주더라고 (김정득) 목사님이 나하고 달밤에 풀밭에 누워서 둘이 앉아서 내가 그때 그  얘기를 내가 듣는데 그분의 이야기에서 들은 것 두 가지만 내가 간직한 것은  이기선 목사님을 그들이 납치할 때에 어떻게 납치했다는 것, 또 전투에 승리하는  요령을 가르칠 때에 이 사랑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그 요령을 가르친 것, 고 두  가지를 제가 그날 밤에 밤 늦게까지 얘기하면서 거게서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참 죽는 시험 사는 시험인데 요셉이 같은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 가지고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들이  다 부모같이 부형같이 이렇게 모실 수 있는 거기까지 요셉이가 커져야 될터인데  그 커짐을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시는데 요셉이가 그 커짐에 도달치 못하면  그것은 커짐의 실패자입니다. 그 커짐에 도달하는 데에는 오만 이런 순서 저런  순서가 다 거쳐갔는데 그 순서에 하나만 실수해도 이걸 못 알아 듣는데 전혀  알아 듣지를 못할 건데 조는 것 그 주석보지 말아요. 주석을 보면 여러분들이 어두워집니다. 주석을  보면 여러분들이 저 세상으로 끌리 나갑니다. 엑스포 74니 빌그리그레함이니  하는 그분들이 한국 교회를 하나님으로 끌고 간게 아니고 세상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분들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이 각 교파에 열심이 다  식어졌습니다. 그 광신이라는 다 종전 우리 나라의 신앙을 다 광신으로 정죄할  만침 그렇게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 신자적인 신앙이요 미국적인 신앙이요  아니요. 미국의 신앙은 그거는 타락했습니다. 그 주석이 일반적인 그런 교회를  만들어 냈지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주님이 보실 때에는 안 믿고  저거 인간들이 볼 때 믿는 사람 만들어 내지 주님 보실 때에 믿는 사람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의 우는 자도 없습니다. 오늘의 그 고민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아무 소원이 없습니다. 소원은 땅의 소원 뿐이요. 세계 복음화 하는  사람도 세상 명예, 영광, 허영, 허욕에 가득차서 이것 움직이고 있습니다. 돈을  몇 억이나 운동을 일으켜 가지고 사람을 오백 명이나 모아놓고 한국 교회에  주일학교 학생이 설교해도 그만치 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서 오백 명 모아놓고  하나님께 인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믿는 사람 막 세상으로 끄 내려서 타락을  시켜 버렸어. 이걸 알아야지.

우리가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디까지 커지라고 이 커지는 것은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내가 걸어가야 커지는데 요셉이가 가다가 중단해  중단했으면 헛일입니다. 형제들에게 팔려도 요셉이 신앙이 요동치 안 했고,  감옥에 가도 요동치를 안 했고, 술 맡은 관원이 내 몰라라 했어도 요동치 안한  그 순서 그 순서가 통과 된 끝에 하나님이 크게 한 큼이 생겨서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됐고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고 난 다음에도 그가 죽고 나서도  오랬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후대 하도록 된 것은 그분이 요셉이가  죽을 때까지 믿음으로 믿음으로 계속 걸어갔기 때문에 그런 크심이 커짐이  이루워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앞에 있는 시험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돕지 안하면 그  능력을 힘입지 안 하면 요셉의 승리의 걸음을 걸을 수가 없습니다. 초자연의  능력으로 권능 "성령이 너에게 임하면 권능을 얻고" 이 권능은 두 가지  권능입니다. 파괴 권능 건설의 권능, 죽는 권능 사는 권능입니다. 커지는  권능이요. 요셉이는 그는 커지는 권능을 그는 입어서 커질 대로 커졌습니다.

이것이 그가 깨어 있어 이 어려움을 봄으로 그가 고민되는 그 고민, 주님의  욕구를 보고 방해자 셋을 보고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잇는 셋을 보고 이  양사이에 끼었으니가 필연적으로 그는 부르짖음 밖에는 나올 수 없는 이  부르짖음을 이 원수 셋이 그 속에 뀌뚫고 둘어가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분이 실수  없이 걸었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승리를 했소.

주님이 우리를 커지게 하는 이것도 주님이 요구하시는 그 요구가 어데 양이  얼마나 되는지 그 양을 채운다는 그것이 우리에게 그 어려운 시험이요 또 우리가  죽는 것도 그냥 죽으면 되는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우리가 있던 살림이  당장에 거지가 되어지는 이 요구가 있는지, 내가 한없는 존영한 그런 영광스럽고  부강한 그런 길이 갑자가 망하는 길로 딱 바꿔질런지 그때에도 바뀌질 때에도  부자가 가난해져도, 산 자가 죽게 되어도, 존영한 자가 천대가 되어져도, 칭찬  받는 자가 저주를 받는 중에 되어져도 그게 죽는 일인데 그 죽는 일, 그 일이  자기에게 있는 것과 그 죽는 일 그일만이 아니라 그때에 죽는 일 그 일 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때에  네 원수가 집안 식구리라" 자기의 사랑하는 가까운 자 예수님에게 베드로처럼  이렇게 미혹주는 세상들이 온갖 미혹과 협박으로 별별 방편을 쓰는 악령과  자기가 평상 싸우는 자기 속에 이 옛사람 이것이 뭉쳐 가지고 있는 이것은  주님의 도우심에 지극히 큰 능력의 도움이 아니고는 이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 능력이 오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도 간절한 소원과 심한  통곡으로 아버지에게 부르짖었으나 아직까지 미결이다"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받았으니라"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가질 태도와 정신을 바로  가졌을 때에 들었지 기도만 한다고 듣지를 안 했다고 똑똑히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체시라도 이런데 우리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보고 알아서  자기가 간절한 소원과 심한 통곡의 기도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치 안하고 그분이 어떻게 크신 분인지 모르고 망령되게 범성죄를 범해서  자기가 어떤 자인지 모르고 망령을 부리고 버릇없이 이렇게 되면 안 된다  그거요.

우리가 아주 그 육신의 부모처럼 그렇게 육신의 부모도 엄격해서 부모에게  부로모 인정치 아니하는 그런 대우하지 안하는 부모 앞에서 합당치 안하는 그런  버릇 없는 일이 있으면 당장 야단이 나는 그런 부모를 모신 사람이 좋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을 때에 잘못 믿었소. 깨닫기를 잘못 깨달았었어. 사랑만 깨닫고  참는 것만 깨달았지 두려움을 깨닫지를 못했어요. 내가 클 때에는 아버지 앞에  털끝만치라도 삐뚤어진 게 있으면 당장에 매가 오고 야단이 나고 언제든지 그  부모 앞에서는 그저 조심있게 떨며 이래 살았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사랑  사랑 그만 무저항 저항하지 대항하지 안하는 것이 이런 줄 알아서 아무 뼈없이  살아서 아내에게 대해서도 뼈없이 살았고 자녀에게 대해서도 그저 사랑 사랑  이래 가지고 그만 굽어 큰 것이 많이 굽어 놓으니까 크고 난 다음에는 이걸  고칠래야 고치지를 못해. 제가 오랫동안 예수를 그래 믿었어.

이러다가 얼마 전부터 이 몇해 전부터 한 십 년이 되는지 얼마가 되는지 전부터  이제 깨닫고 사랑에는 두려움과 사랑이 있어야 둘이 겸해야 사랑이지 두려움  없어도 사랑 아니고 사랑 없어도 두려움이 아니라. 이래서 늙어 갈 수록 이거 좀  딱딱하고 박하고 이런 것 같지마는 고기 바로 옳게 됐다는 것으로 알고  믿습니다.

그를 경외함으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기도했지마는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공경  경자 두려울 외자 이렇게 경외함으로 두려워하고 공경함으로 고기 됐을 때에 그  간구의 기도를 들었다 이거요.


선지자선교회 이렇게 방해하는 어려움도 있지마는 이미 우리를 영원전부터 당신의 목적 안에서  섰는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각각 분담을 해 가지고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천 만만도 넘은 그 천군 천사들의 도움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야곱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기를 '보라 저 군대들이 무슨  군대냐?' '저 군대들이 너희들이 걸어가는데 네가 걸어가는데 동하지 않느냐?'  그야 그분이 자기 때문에 보이지 안 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보이지 안했었어.

보면 오늘도 신자들이 그 6.25 때는 기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분명히 천군  천사가 와 가지고 시켜서 원수들이 저희들이 보지 못한 것, 눈이 어두워 그들의  눈이 가리워서 보지 못한 것, 귀가 어두워서 들리지 못한 것, 생각을 꺼꾸로  해봤자 삐뚤어지게 오산을 해 가지고 계산이 틀려서 헛일 한 것 참 6.25 지나고  난 다음에는 교역자회가 모이니까 기적이 많습니다. 초자연의 능력의 기적이  많았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려고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는  수종들더라 예수께만 들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꼭 같습니다. 천군 천사의  우리의 옹호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하나님의 자녀인 자기는 우주와 영계를  상속받을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후계자입니다. 이를 발견할 때에 울고 웃고  이러니까 고민이 생겨지고 난 다음에는 이분이 계시고 이런 관계를 가진  자기이기 때문에 간절한 소원을 낙망이 없고 소망중에 간절한 소원의 기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럴 때에 기도의 응답을 받는 자는 다 승리를 했다 이거요.

이러니까 우리는 깨어 있는 증거가 이 기도가 있어야 되겠고 기도를 바로  했느냐? 증거는 권능이 와야 합니다. 잘 죽을 수 있는 기쁨으로 줄거움으로  감사함으로 고민 고통이 아니고 (*사람이름*)라 하는 그분도 불란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 황제가 죽이려고 이래 가지고 아무리 매를 때리도 그 기쁨의 안면이  변해지지 안하니까 나중에는 불로 환침으로 쑤시도 기쁨의 안면이 변해지지  안하니까 가죽을 벳겨도 변해지지 안하니까 심지로 몸을 등에 놓고 기름을  칠하고 그래도 기쁨이 변해지지 안하니까 네가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그 평강을 네가 해할 수 있겠느냐 이는 죽음이 끊을 수 없다는 그것을  말할 때에 할 수 없어 마지막에는 칼로 목을 베어서 그 얼굴의 기쁨이 없어졌지  숨이 떠날 때 없어졌지 그전에는 어떤 고문과 고행도 그의 기쁨의 안면을  조그마치도 변화 시키지를 못한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지 인간의  각오나 결심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 그 처녀가 죽는 죽음 그런 것은 인간의 악독 가지고 됩니다. 되지마는  이는 참 독이 빠진 사랑과 소망과 사랑과 소망의 힘 하나님과 하늘나라 소망 그  죄인들이 구원 받을 소망 이 소망을 보고 사랑으로 제공하는 이 죽음이기 때문에  이 죽음은 능력이 아니면 이 일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부자되는 것도 사는 것도 커지는 것도 그 능력이 아니면  안 되고 죽는 것도 그 능력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인데 죽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이 방편이 있고 또 삶으로 생명으로 옮기지는 삶으로 삶의  이것이 죽음을 통과해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는 죽을 자료를 만드는 삶도  살아난 이것이 죽음을 통해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도 이것이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가 아니면 안 됩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꼬 이종교인들이 자기 종교를 믿는 거와 꼭 같은 그런  인간만으로서 인간 주관으로 인간 사욕에서 인간 결심에서 중심에서 되지  초자연의 능력인 객관 세력이 우리를 붙들 수 있는 이런 연결을 우리가 가지지  안한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어제도 저 산에 가 가지고 보니까 오후 되니까 일등 그 고급 자가용이 제가  그 잠깐 보고 헤아리는데 아홉대가 절로 들어갑디다. 또 조그만한 그 뭐  마이크라 했나 뭐라 했노 그거 버스보다 작은 것 그 차로 몇 차로 실어  나릅디다.그들도 지금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단계에 놓였다는  그도 그들도 언연중 그 영물이기 때문에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느끼지는  모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에 불교나 이종교들도 바짝 힘을 씁니다. 저거들은 모르기  때문에 저희들도 모르나 살 길을 모르지마는 어쨌건 지금 때는 가까왔다 하기  때문에 아마 어제가 우리 기독자들이 오일 예배로 금요일 예배를 보니까 지금  그로 인해서 아 믿는 저 사람들은 저렇게 오일날 힘쓰는데 우리는 이것 금요일  날 힘 쓰는데 우리는 나는 부처에게가 힘을 써야 되겠다. 저 사람들이 주일날 힘  쓰는데 우리도 주일날 힘 써야 되겠다.

그분들이 주일을 지킵니다. 저거 법대로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봐야 그분들이  찬송을 합니다. 이종교들도 알지 못하지마는 어쨌건 자기는 이거 다 영물들이기  때문에 심령의 갈급과 그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있겠다 하는 불신자들도 지금  벌써 끝이라 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다 이종교가들이요 철학가들이요 참 정치  철학도 정치가들도 정치 철학하는 사람들은 지금 미국서도 정치 철학을 거게  도달한 사람들은 정치가로 나서들 안 합니다. 대통령으로 나서들 안 해요.

그분들은 지금 떨고 있습니다.

이런 단계에 있는데 우리들은 기독자들은 오히려 지금 마구 괭장한 낙관입니다.

저거 꾀대로 아 여게 있으면 위험하니까 미국에 가 가지고 시민권 딱 얻어 놓고  영주권 얻어 놓고 얼른 그러고 난 다음에 나와 가지고 한국에서 지금 어떻게  일하겠다 참 어리석소. 하나님이 그를 야 네가 지혜 있다고 생각하런지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네가 여게 있을 수 없다 그런 믿음 없는 네가 내 일을  뭐한다고 하느냐 네가 내가 보내지 안 했는데 네가 가 가지고 날뛰는 자 네가  하는 말은 전부이 내 말을 도적질하는 말이다.

예레미야 23장에 보면 꿈 이야기를 했고 그 예언을 해놨습니다. 주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자 주님이 줘서 전하지 안 하고 주님은 주지 안 했는데 제가 이 말을  도적질해 가지고 팔아 먹습니다. 이러니까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이 말씀은 그때 그들에게만이 아니고 이런 절정기의 그 하나님의  욕구에 이 어려움은 기도 외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초자연의 객관 능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승리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두려움 끝에 담대가 오고 슬픔 끝에 기쁨이 오고고민 끝에  참 낙관이 와야 되지 이게 십자가의 도지 죽음도 보기 전에 미리 죽음 주는 것도  마귀가 미혹 주는 그 평강을 주는 것은 마귀가 유혹 주는 평강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반드시 죽음 넘어 그 삶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도 닥치지 안 하고  사는 게 있는 그것은 마귀가 주는 유혹이요 그런 법이 없습니다. 그런 도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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