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1980. 12. 1. 월새

 

본문 : 야고보서 1장 2절 - 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네 가지를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모든 것이 구비하고 온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런 사람이 이것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줄을 알면 모든  것이 해결이 다 됩니다. 이해가 다 되고 해결이 다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되시기까지 하시지 아니하면 우리를 구출할 수가 없었고 또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는 데까지 하지 아니하면 우리를 대속할 수 없는 이런  큰 힘을 드리고 참 투자를 하고 희생을 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뭐 우리를  이 세상에서 권세를 차지하게 한다든지 또 부자가 되게 한다든지 뭐 평안하게  어떻게 하는 그런 것을 하려고 하면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닷새 동안에  다 지어 놓은 것인데 닷새 동안에 다 지은 것이요 당신의 것인데 당신이  마음대로 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기에 그런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땅위에 살려두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셔 가지고  땅위에 살도록 하시는 것은 그런 것 때문에 우리를 땅위에 살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 면에도 온전하고 저 면에도  온전하고, 이 면에도 실력 있고 저 면에도 실력 있고, 무엇이든지 다 알고 마귀가  주는 것은 마귀가 주는 그것은 만나면 알지만 만나기 전에는 알 필요 없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에 대해서 바로 행할 수 있는 이런 온전하고 구비한  실력을 갖춘 온전한 사람, 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인데  우리는 생각이 다릅니다.

그렇지 안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이 이것 때문에 두시는데  우리는 엉뚱이 같이 예수 믿는 것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든지, 또 아주 권력가가  되든지, 이렇게 땅에 있는 이것을 바라고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다르니까 모든 것 다 복잡해지고 근심 걱정의 사람들이 싸이고 활기있는  생활을 못하게 됩니다. 요걸 꼭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좀 쓸모있다 싶은 그런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좀  슬기롭게 생겼다 하는 그것은 전부 망령되게 마귀라는 놈이 그 욕심을 통해서  자존심을 통해서 생각을 확 뒤비트리놔 버리고 이것이 예수 믿으면서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은 소망 가지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과 꼭  같은 그런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지 예수님은 그것이 아닌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그 실력을 갖춘 이런 사람을 만들려고 애를 쓰지 이것은 땅의 것을  어쩌든지 피해서 부강해지려고 애를 쓰지 이러니까 생각이 정 반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런 것을 주실 때도 있고, 빼앗을 때도  있고, 많게 할 때도 있고, 적게 할 때도 있고 마구 형형 색색으로 이렇게 자꾸  뒤바꿔서 이래 하시는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자기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 사람 만드는 데에 그것을 비용으로  쓰는 것인데, 만드는 데 이것을 이용해 가지고 이런 사람을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정하시고, 그 분이 목적 정하시니까 누가 그걸 어기겠소?  목적을 정하시고, 이 일을 추진하고 계시는데,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고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이 많아질려고 애를  쓰고, 또 그것을 한번 잡았으면 놓지 아니하고 어쩌든지 그걸 간직하려고 애를  쓰니, 하나님이 그걸 사용하려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고스란히 딱 재어서 간직하려고 애를 쓰지,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해서 거게서도  무엇을 만들고 또 부강하게 해 가지고 거서도 무엇을 만들고 이럴라는데 이것은  일방적 지식 가지고 어쩌든지 부강하려고만 하지 가난해지는 것은 하기  싫어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부강한 것도 필요하니까 부강할 때도 경험을 가져야 되고  거게 대한 그 실력도 갖추어야 되지만 부강하는 부강에서 배울 것도 있고, 경험할  것도 있고, 실험할 것도 있고, 연습할 것도 있고, 거게서 얻을 수입도 있지만 또  가난에서 얻을 수입이 없으면 이건 일방적이라.

못쓰는 일방적인 말은 한쪽 모퉁이 뿐이라 그말이오. 사람이 양쪽이지 한쪽은  마비가 되어서 등신이 되고 한쪽은 성한 사람 고걸 반신불수라 하는데 그걸 뭐라  합니까? 요새는 내가 좀 목욕탕 안 가는데 부산탕에 가면은 그런 사람이 갈때  모두 잘 만나요.

이 보면 그 사람이 오른쪽 그렇던가 왼쪽이 그런던가? 이래 가지고 반신불수  손도 못쓰고 발도 못쓰고 이래 가지고 겨우 이래하는데 그것도 아무 낫을까 해서  그 사람 재미가 있는 모양이야요. 그럴 때에 그 사람 만날 때마다 저 사람이  반쪽은 성하고 반쪽은 병신이다. 일방적이다. 나도 저와 같이 천국 가면 이  반신불수 일방적인 사람이 아닐긴가? 왜? 일방적이 많아요. 무엇이 세상 것이 잘되면 좋아하고 안 되면 뻔히 알면서도  좀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평안은 좋아하고 환란은 싫어하는 그게  뭐이냐? 다 기형적이라. 그게 반신불수들 그런 사람들 만들 그런 장본이라  말이야.

이렇게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해 가지고 사람 만들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지든지 말든지 그것만 놓고 그것만 거머쥐고 안 놀라고 애를 쓰고 그것만  많게 하려고 애를 쓰니까 하나님과 우리 생각이 다르고 목적이 달라 놓으니까  항상 우리를 돕는 하나님과 우리는 싸우는 그 사람이 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싸우는 하나님이 되어 있어.

이러면 뭐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어디서 이렇게 착각을 해 가지고 이런 혼란이  일어나느냐 하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피로 구속하셔 가지고 세상에 두시는 목적이  뭐인지, 그러면 내가 세상에 있는 목적이 뭐인지, 이 목적이 분명치 못하고  하나님이 내게 대한 목적과 내 목적이 다르다 그말이오.

부모는 어쩌든지 이것을 돈을 들려서 이것도 가르치고 저것도 가르쳐 가지고  돈을 드려 가지고 이 세상적 온갖 그 실력을 구비하려고 부모는 애를 쓰는데, 또  이 아이는 어쩌든지 평안하려고 또 애를 씁니다. 그러면 부모하고 그 생각이  대립이 아닙니까? 목적이 대립이지요.

그러니까 부모는 구비하게 하려고 하니까 이것을 헛된 시간도 보내지 않도록  시간에도 아주 절약을 하도록 또 모든 움직임에도 정력에도 요것을 딱 조절해  가지고 하나도 허비하지 아니하고 다 기울이도 될까 말까 하니까 이것을  조절하도록 하는데, 이 아이는 어쩌든지 이걸 이 기운을 허비하는 노는 것  좋아하고, 자는 것 좋아하고, 그런 것 하는데 정력 기울이기 싫어하고 이러니까  부모하고 정반대라 말이오.

그러면 부모는 만날 그 아이를 나무랠 것이요. 안 들으면 매를 때릴 것이요,  꾸중할 것이요, 그 아이는 부모와 항상 대립되어서 부모는 저하기 싫은 것만  시키니까 부모하고 대립되어서 부모는 그 아이를 향해서 근심하고 그 아이는  부모가 자기에게는 큰 두통거리고 이러니까 마지막에는 어찌되겠소? 마지막에는  그 보무도 애를 쓰다 쓰다 안 되니까 '아이구 저놈은 안 되겠다.' '저거는 할 수  없다.' '집어 던져 버려야 되겠다.' 포기를 할 것이요.

또 그 아이는 어찌 되겠습니까? 한번 말해 봐요. 저 ○○○선생 어찌 되겠소?  아이는 어찌되지? 아이는 아무짝도 못쓸 그 무능자 나중에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 뭐 하겠소? 그거는 남의 종의 종질이나 하지 뭐 그까짓 게 뭘 하겠소.

꼭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무궁한 세계에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면에 실력이 구비해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만드실려고 이것을 목적으로  삼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쩌든지 평안하게 아무 일 없이 잘살고 평안하게  잘살려고만 이렇게 목적을 삼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이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자 이 세상에서 그 사람 부자 아들로 언제든지  돈만 잘 쓰고 평안하게만 사는 그 사람을 누가 대통령으로 선거를 할 것이며,  누가 국회의원으로 선거를 할 것이며, 누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맺기겠으며, 그  사람을 누가 자기 회사에 책임자로 그 사람을 드리 세우겠습니까? 이 사람은 참 고생도 한없이 했고, 배도 많이 골아 봤고, 또 실패도 많이 해봤고,  또 많이 벌기도 해봤고, 부자도 되 봤고, 가난하게도 되봤고, 압제도 받아 봤고,  남을 압제 해보기도 하고, 남을 존대해 보기도 해봤고, 오만 경험을 다 해서 인간  경험을 다 해서 벌써 무슨 일이든지 거게 대해서 경험을 다해 가지고 모든 일을  파악하고 참 간장국에 간장국에 쪼른 사람 같이 모든 면에 마구 졸려서 오만  경험을 오만 연단 오만 시련 다 받았다 말이오.

그러면 이 사람은 모든 데 대한 능한 사람이니까 그 사람 사장 만들어 놓으면 그  틀림없지요. 그 사람을 대통령 내놓으면 틀림없지. 일반적인 그런 인물이 어디  쓰일 때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적하신 그 목적과 우리의  목적이 하나이니까 이 한 목적을 가지면 쉽고 속히 성공할 것인데, 우리가 이같은  목적을 가지지 안하고 목적이 다르다 보니까 항상 하나님과 우리는 대립이요.

항상 우리는 하나님을 숨어서 돌아다니고 하나님 모르게 피하고 이러니까 하나님  만나면 부끄럽고 두렵고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은 듣기 싫고 자꾸 이래 피해서  엉뚱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저 뒤에 졸면 안돼. 우리 저 사모님 졸지 말아요. 지금 짐이 얼마나 무거운데  자기 밑에 그 어린것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고 하나님 은혜를 받아야 되지.

은혜, 하나님 축복 은혜 없으면 그 까짓거 다 헛일입니다. 안 놓은게 낫아요.

자녀는 안 놓은게 낫고, 돈은 없는 게 낫고, 하나님의 축복 없으면 참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그 모든 것이 복이 되지지. 이러니까 무거운 짐을 졌는데  어디 지금 졸고 그래 가지고 무슨 축복 받는 길을 알기라 그말이오. 그 안 돼요.

졸지마.) 우리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오 자존자시요 전능자시요 대주재시요 이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의 부요를 다 내놨다고 성경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지기까지, 우리를 위해서 낮아지시기까지, 우리를 위해서 죽기까지,  또 우리를 위해서 영원히 사람되심으로 부활하시기까지 우리 구원을 위해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과 진리가 우리 구원을 책임을 지신 보증자로  서시고 이런 이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우리가 아니지만 우리가 뭐 있고 난  다음에 이런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런 것 하나 만들어 보겠다 하면 당신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에게 대한 목적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이렇게 큰 소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과 꼭 같은 자, 이 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를 향하여 노력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하실려고 내게 대해서 목적과  욕망을 가지고 계시니 참 나는 행복스럽다. 이렇게 큰 내게는 희망이 있다.

지극히 큰 소망이 내게는 있다.

이러기 때문에 나도 이것을 목적으로 삼아서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이것을  이루시려고 애를 쓰는 동시에 나도 내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이 되게 사시는 이  도움을 받아 가지고 나도 이런 사림이 되도록 힘을 써 가지고 이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구비한 사람으로서 이루어 가지고 가야되겠다.

요 둘이의 목적이 하나만 되면 이게 속히 달성되고 이러니까 이것도 당할 때  요것도 날 온전케 하기 위해, 요모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저모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요모를 구비하기 위해서, 저모를 구비하기 위해서 이래 하시는 것이니까  그 한번 경험해 보면 자기가 분명히 안다 그말이오.

한 어려움을 당해보면 그 어려움을 통해 가지고 자기가 분명히 만들어진 걸  자기가 압니다. '아 참 기쁘다 요면에서 내가 경험이 생겼다.' '요면에서 체험이  생긴다.' '요일을 당하기 전에 내가 몰랐는데 이 일 당하고 나니까 내가 알았다.'  이렇게 기쁘고 즐거워 둘이 함께 힘써 가지고 이 일을 이룰터인데 우리가 이  목적을 이것을 입술로만 말하고 실상 이 목적을 자기의 재세의 목적, 세상에 살고  있는 목적으로 삼지 못하는 가운데서 모든 것이 다 헝클어지고 혼란 되어지고  모든 것이 모순되어지고 번민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잡지 안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 아니요.

오늘 예수교는 전부 참 유물주의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 믿으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그게 잘되면 '아 복 받았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본인도  알고 다른 사람도 그래 알고 그 사람이 차차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하나님이 가난하라 하면 가난한 데서 섬기고, 부하면  부한 데서 섬기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이 믿음의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을  복받았다고 하지 않아요.

가장 복받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죽이려는 주목이 많은, 원수가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면 하나도 가루지 안하고 그 원수가 많이 생겨질 목숨이 위험한  그런 말을, 그런 위험 처지에서 위험의 대상에서 사는 사람은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고통스럽다.' 이렇게 본다 그말이요.

저 먼저 그들이 이 일을 이루지 못했어. 나를 암살하려고서 두 번이나 계획했다가  헛일을 했는데, 그때 이 나는 그게 실은 일찍이 일추고 좋은 것이지만  여러분들에게 불쌍해. 여러분들에게 내가 있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서 옳게  예수 믿는 도리를 알고, 옳게 믿지 딴데 가면 잘 배우지 못해요. 실은 이런데 그러면 거게 와 가지고 이래 모두다 지키고 이래 있으면서 보기를 어떤 사람은  그래 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하면서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공간의  섭리로 자꾸 주관한다고 하시면서 그 뭐 그럴 것이 없는데 이러면 이게 성경에  위반이고 목사님 믿음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내가 파수한 사람 중에  누구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알고 있다  그말이오.

또 어떤 사람은 참 이거 목사님 입장이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보기에 가련하다  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또 있어. 내가 그때 하고 난 다음에 딱 요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 말하면 내가 다 알고 모르는 게 아니라 내가 이래 말할  때에 자기에게도 영감이 가면 알기라. 내 마음이 그랬었는데 목사님이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더라 그렇게 해석이 되는 사람도 있을기라 말이오.

또 어떤 사람은 이거 참 목사님이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하면 '우리 이 구원이라  하는 것이 절단이 나니까 이 큰일난다.' 이래 가지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그거 없이 육적으로 목사님이 이렇게 살아 계시야 될터인데 떠나면  이거 또 육신적으로 이거 아버지가 떠나면 또 우리 친척이 떠나면 나와 나를  지금 내 형편이 지금 이분이 계시야 내 형편이 좀 나올긴데 또 이래서 이런  사람들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다 있어. 그것도 공부라. 그것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그말이라.

또 하나님께서 그때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해야 여러분들이 우리 가  할 일은 해야 되지. 그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붙이면 암만 천 명이 지키도  소용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렇게 해서 또 이것을 지켜서 그들이 그렇게 하는  그 반면에 여러분들이 수고하고 노력할 것은 노력해야 된다 그말이오.

바울을 사도행전 23장 이후에 이 아래 보십시요. 바울을 죽이려고 길가에 복병해  가지고 있고 그럴 때에 이제 그분들이 탐지해 가지고 아무데 복병하고 있으니까  이분은 지금 그리로 가면 안된다 해 가지고 그 각하에게 총독에게도 말하고  대장에게도 말하고 또 이분이 지금 이래 가는데는 도중에서 지금 암살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까 지금 천부장 천 명, 그 군대 거느리는 천부장을 동원해  가지고 파수해 가지고 천부장을 같이 협조하고 그래했다 그말이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

바울이 자기가 뭐 죽기가 두려워서 그렇겠소. 그분이 말하기를 "어서 떠나서 주님  앞에 가는 것을 원한다." 그말이오. "그러나 너희들 때문에 땅위에 있다" 그랬소.

요 저희들의 할 일이라.

어제도 그 설교하는 것 여게 간첩이 와 앉았다 그말이오. 벌써 앉아서 그럴 줄  알고 내가 또 설교를 한다 이거요. 그때에 광주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여게서도  마구 장터가 뒤비졌습니다. 시각이 여러분 눈이 뭐 없어 그렇지 뭐 봤다면 그런  사람이 막 여기 저기 지금 막 이래 가지고 희희락락 해 가지고 일어나고  다녔었다 말이오.

이러다가 그게 진압이 되니까 마치 삶은 채소 모양 폭 쭈그러져 가지고 그래  가지고 있고. 그때 여 별별 사람들이 내 사건 날 때에 별별 사람들이 와서  있었어. 뭐 구두닦기도 와서 있고, 이런 장사도 오고, 저런 것도 오고 이래 가지고  마구 이렇게 파수 했었지만 하나님이 지키시니까 그런 것 해도 소용없었다  그말이오.

어제 설교한 그런 것도 지금 뭐 들춰 올라갔어. 그래 6.25 때에 내가 설교한 것이  다 들치 올라가고 다 올라가니까 그런 것으로 해서 '그 내려가면 그 거창서는  일차 문제로 그 백영기 백영기라는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데 그자를 잡아 가지고  처리해라.' 이랬는데 그때 밑에 자가 틀렸어. 나는 희(僖)자인데 기자라 그래서  백영기를 짜다라 그 사람들이 교회와서 묻더래요.

하나님이 요렇게 하셔서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되지만 여러분들의 할 일은 해야  된다 말이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을런지 또 몰라. 지금은 다 그들이 손들고 다  물러갔습니다. 또 어찌 될란지 몰라요. 이것이 다 우리를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두시는 목적이 뭐이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 목적이라. 이 목적을 우리  목적으로 삼아야 될터인데 이 목적을 삼지 아니하고서 항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째야 좀 따뜻한 가정을 만들까, 어쩌면 시집을 잘 갈까, 어쩌면 장가를 잘 갈까,  어쩌면 누구를 좀 기쁘게 할까, 남편은 아내를 기쁘게,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이거는 또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목적은 아니라 그말이오. 그것은 다 땅의  것들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나누게 하면 나누야 될 것이고, 합하게 하면 합해야 할  것이고, 가난하게 하면 가난해야 될 것이고, 가난하게 한다고 예수 믿는게  거석하겠소. 가난하면 가난한 여게서 우리 가족들의 구원이 이룰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가난을 주는 것이니까 가난할때 이때 예수 잘 믿자. 가난할 때 이때  예수 잘 믿자. 가난할 때 계명 잘 지키자. 가난할 이때에 요동치 말자.

또 그러다가 이제 어찌 어찌해 가지고 막 부자가 되버렸소. 부자가 되면 부자된  여게서 또 예수 잘믿게 하려고 거게서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니까 부자가  되어 있을 때에 교만하지 말고, 이럴 때에 부자가 됐으니까 어쩌든지 맘껏 잘  먹고 잘 입고 하지말자. 여게서 부자가 되도 부자 아닌 것같이,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는 것같이, 고통이 와도 고통이 없는 것같이, 고통이 없어도 고통이 있는 것같이 이래서 모든 형편 거게 종이 되지 아니하고 그게 울라하면 울고 웃으라면 웃고  그런 줄 알고 울라해도 나는 울지 않고 웃으라고 해도 웃지 아니하고 거게서  피동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 이런 사람으로 살아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워 이렇게 목적 달성이 되도록 이 목적을 바로 잡아야 될터인데 우리 생각이  영 미달입니다. 너무 너무 엉뚱하요.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되게  하실려고 세상에 두셨고 우리도 이거 성공하려고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땅위에  뭐 아들 딸 잘 놓고 또 권세 그게 아니야. 아들 딸 하나님이 주는 대로지 뭐  잘놓고 싶다고 잘놓습니까? 다만 자기가 온전한 사람 되려는 요 목적만 가지고  하면 그 다음 것은 그 따라서 적당하게 하나님이 해주시요.

어제 저 ○○교회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 믿겠다고 작정해서  우상을 ○조사님이 다 부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 믿기로 작정했는데, 그만  교회 나오기도 전에 주일날 아침에 그만 그 사람이 죽어 버렸어. 그 같이 부수고  불사른 사람이 죽어 버렸다고 이래 놓으니까 온 동네에서 '저 섬기던 신을 전부  불사르고 이래 버렸기 때문에 사람 죽었다.' '저거는 교회 책임이다.' 이래  가지고 야단이 나 놓으니까 이 ○조사님이 호덕거리 가지고 급해서 이제 전화를  하고 이렇게 했다 이거요.

전화를 해서 내가 이제 '조사님 그 사람을 조사님이 죽였소 하나님이 죽였소?'  '조사님이 사람 죽일 권리 있소?' '마귀가 사람 죽일 권리가 있소 없소?'  '없습니다.' '조사님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죽였소?' '하나님이 죽이셨지요.'  '그러면 죽인 자가 책임 있지 자기가 뭣 때문에 호독거리요 호독거리기를'  하나님이 죽이셨으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당신이 하시지 거게 대한  자기는 책임이 하나도 없소. 자기는 예수 믿도록 만드는 것이 자기 책임이고 그  사람들이 지금 안하려는 것 강제로 했소? 그 없애자고 말하지 않습디까  허락받았지. 그리 없애도록 해서 했으면 자기 할 일 다 했어. 자기는 꼭 할일 다  했어.

이러니까 죽든지 살든지 그거는 하나님에게 책임이라 상관하지마. 혹 그래 가지고  살아날란지 또 모르고 안 살아나거든 주의할 것은 자기 할 것만 해야돼. 그  사람들에게 진단을 오늘 낼라거든 그거 보내고 그리 안하면 가 가지고 의사를  데려다가 진찰해 가지고 진단서 끊고 사망 신고 하고 매장 허가 내 가지고 저  공동묘지에 꽁꽁 파묻어요. 그리하면 자기 할 일 다했어.

그래 가지고 사람 죽었다고 두드려 패면 맞고, 갖추고 가두면 갇혀지고, 죽이면  죽고 그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어. 와? 자기 할 일만 안하고  혼돈시켜 그래더니만 이제 마지막에는 '예 알겠습니다.' 못 깨달으면 죽어.

하나님의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다 하시고 하시니까 그분을 의심해서 못 믿을 게  뭐 있는가요? 그분 하시는 데로 그분하실 것은 그분하시고 우리 할 일은 우리 할  일이지 하면 되지. 우리 직분만 하면 돼. 그것도 또 온전한 사람 만드는 거라.

○조사님은 그면에 대해서 아무 대게 좀 등에 콩이 텄기 때문에 보냈을 것이라.

이러나 한번 뜩 경험하니까 그 면에 대해서 또 새로운 지식과 지혜와 힘을  얻었다 말이오. 나는 그런 걸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벌써 지나왔기 때문에  말하니까 아무 생각할 것도 없어요. 하나님의 하시는 것 그걸 밝혀서 그래 줄 수  있다 이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요것을 잡읍시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 만드는  데에 이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셨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이렇게 많이  지어 놨는데 필요 없는 걸 지어 놓으십니까? 필요 없는 마귀를 지어 놨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사건 저런 사건 모든 사건이 있는데 그것이 믿는 사람에게 필요없는  사건이겠습니까? 다 필요 있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세상에 있는 그런 사건은 내게 다 언제 닥칠란지 모르니까 닥치리라  생각하고 모든 것이 다 닥쳐도 거게서 우리는 사람만 연단된 사람, 사람만 모든  면에 경험 하는 사람 체험하는 사람, 모든 데 경험에서 지식을 얻고, 체험에서  경험을 얻고 또 거게서 이런 일 저런 일 우리의 공작을 하는 건설을 하고 이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자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은 복된 가정 부자 권세 잘먹고 잘입는 것, 호와로운 것,  소원 성취 땅위에 있는 것으로 소원 성취 이루는 것 그런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땅위에 사는 소망이요 목적으로 아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알기 때문에  안 든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는 땅위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든지 저렇게 하시든지 당신을  따라 움직이면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는 이것이  목적이요 세상에 있는 이런 것은 온전한 사람이 되는 데에 이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능력의 지혜의 하나님이 이것을  일으켜 주시는 것인 것을 아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것 다 알고 있다 말이오.

여러분들은 알지만 이 밖에 나가면 교인들이 이걸 아는 줄 압니까 목사도 이걸  구별 못합니다. 배우고 나면 알고 나면 쉽지만 구별을 못한다 말이오. 우리  서부교인들은 핑계 못해. 알기는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게 살지는 안한다 말이오.

이렇게 온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어찌해야 됩니까? 평안한 데만 있어야 됩니까  고통스러운 데만 있어야 됩니까? 부자로만 있어야 됩니까 가난으로만 있어야  됩니까? 어찌해야 됩니까? 뭐 어떤 데만 있으면 됩니까? 자 부자의 자리에서만 살아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요? 그러면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데만 살아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요? 그 뭐 그것도 아니라.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골고루 어디든지 이것 저것 전부 골고루 썩여서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경험하고 체험해야 된다는 걸 이렇게 아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손  들어 봐요? 저 양손 들었나? 남의 손이가? 그래 나도 듭니다. 그렇지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가지 시험을 우리에게 준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게서 여러가지 일을 닥치는데 여러가지 이런 것 저런 것 골고루  다 닥치는데 고 닥칠 때에 그때에 우리가 고 닥치는 그때에 어떻게 하면 우리  목적이 달성되며 하나님 목적이 달성 되겠습니까? 닥칠 그때에 우리가 이런  형편에는 이렇게 살고, 저런 형편에는 저렇게 살고 팔방미인으로 날라다니는 새  모양으로 정처 없이 기회주의로 그래 살아야 되겠소,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이 어떤  형편이 다 당하든지 요동치 않는 사람으로 어디서든지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그래 살아야 하나님과 우리 목적이  달성이 되겠소? 형편에 따라서 진리를 내놓을 때는 내놔야 되고, 버릴 때는 버리야 되고, 예수님을  배반할 때는 배반해야 되고, 이것에게 종될 때는 이것에게 종되고 저것에게 들어  붙을 때는 저것에게 들어 붙고 이렇게 창기 모양으로 이렇게 살아야 되겠소?  이런 형편이든지 어떤 형편이 오든지 하나님으로 더불어 작정한 작정, 하나님에게  받은 이 법칙 하나님을 모신 이 모심 이것이 요동치 아니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형편대로 되는 여게 붙고 저게 붙고 이렇게 창기 같이 살아야  되겠습니까? 창기성의 인간으로 살아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요? 네 하나님과 약속  맺은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대로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진실로  선으로 사랑으로 참된 하나님의 지식으로 지혜로 하나님과 동거 동행에 이  사람으로 이렇게 살아야 우리 구원이 이루워지지 않겠습니까? 이래 살아야  이루워지지. 여 우리가 잘 압니다.

자기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가 보니까 돈을 잘벌고 부자가 되니까 하혜 하면서  이 남편의 아주 좋아하고 이러디만 돈벌이가 안 되니 슬거머니 멸시를 합니다.

가난해지니까 엉뚱한 눈을 뜨고서 돈 많은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가지고  그래 기울어집니다. 또 돈벌이가 되니까 슬거머니 돌아옵니다. 또 아주 큰 고통을  당해서 이제는 저 사람 죽는다 망한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니까 그만 뜩 배반을  합니다.

지금 내 그 살아 있는데 그 사람 이름을 말할라니까 추접해서 국회의원이요  장관도 지낸 사람이라. 지사도 지낸 사람이라. 훌룡한 사람이라. 이랬는데 그때  그만 몰리가 가지고 감옥에 갖혀 가지고 이제는 그 사람의 신세가 가련하게 된다  하니까 그 아내가 면접하러 한번도 안 간다. 돌아다니며 바람만 피우고 이래도  난중에 어찌해 가지고 나오니까 나오니까 또 그 마누라한테 들어 붙어서, 썩은 인간 그까짓 게 지사가 됐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장관이 되니 나라가  망하지 다 그따위 인간들이 그까짓거 암만 얼굴이 예쁘고 암만 나와서 간사하게  당장 나와 가지고 할게 아니라. 그 뭐 감옥 속에서 이혼 딱 해버리고 말지.

감옥에 갖히니까 갖히지 않았는데 감옥에 갖힌 것보다 더 고통을 느끼고,  가난해보니까 더 들어 붙고 향하고, 고통이 되여 되니까 더 들어 붙고, 어려움  당하니 더 두려움 받고 오히려 좋고 그렇 때는 그렇게 뭐 거석하지 아니하고  이런 아내에게는 믿을만한 아내지요.

이 아내는 어려움 있으면 마구 그 남편에게 대해서 그 남편을 쳐서 그 몸같이  여겨서 이렇게 하고 평한하고 좋으니까 그때는 그만 슬거머니 괜찮고, 이 아내가  일등이니까 고통스러워도 그 남편하고 생가를 같이 하려고 애를 쓰고, 또  평안하고 좋아도 그 남편하고 생사를 같이 하려 하고 이게 일등 부인입니까  고통스러울 때 평안할때 다른 그 부인이 일등 부인 입니까? 어떤 게 일등  부인이요? 자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고통스러울 때도 평안할 때 물러 주춤하고  하는 그 일호, 고통스러울 때나 평안할 때나 변함없이 딱 들어 붙는 그 아내 이호,  일호가 일등입니까 이호가 일등입니까? 자 일호 일등인 사람 손 들어 보소? 이호  일등인 사람 손 들어 보소? 욕심은 있다. 네 이호 일등이지요. 나도 이호를  원하겠습니다.

네 여러분들이 여게서는 지금 여자지만서도 하나님 앞에는 꼭같은 남자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여러분들도 장자요. 이 세상에는 구원 이루기 위해서  어느정도 이래 가지고 있지. 거게는 가 가지고 남자 여자가 없어. 다 천사와 같애.

이런 부부의 인연은 있지요. 인연은 영원히 있어. 잘살면 영원히 인연이 있어.

그런 인연은 영원히 맺어져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우리가 이 다 알고 있다 이거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편과 같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아내와 같다 했습니다. 그거는 부부 동침이니 그런 게 아니고 남편은  아내의 모든 걸 다 책임지지 않습니까? 아내의 모든 것을 남편의 모든 것이  아내의 것이 되지 않습니까? 아내의 잘못한 그것이 남편의 수치가 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면으로 책임 면으로 밀접한 면으로 가정 면으로 특별히  유별한 그 밀접 면으로 이런 면으로 해서 하나님과 우리는 마치 이 부부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그 영원무궁세계의 어떤 것으로 대우 할 것을  이 세상에서 마련하는 것이라 좀 어려움 당하니까 하나님 내몰라라 하고서 창기  같은 그런 인간있고, 어려움 당하니까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을 더 평안해도  하나님 좋아도 하나님 나빠도 하나님 언제든지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하는 요 사람이 되어지는 이것을 우리가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무궁세계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지금 맺는  것이라.

이러니까 자 평안한 데만 살고 가기를 원합니까 고통스러운 데도 살고 가기를  원합니까? 고통스러운 데도 고통스러운 데는 결합이 될란지 안 될란지 평안한  데만 살면 모르지요. 그러니까 남편이 돌벌이만 잘할 때는 모릅니다. 남편이  부요하게 지날 때는 그 어떤 아내인지 모릅니다. 돈벌이가 되고 고통이 되어지고  이래 되어져 봐야 안다 이거요.

이러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평안한 가운데서만 관계 맺은 그 관계만  가지고 가는 게 좋겠소? 고통스러운데도 내가 생명이 끊겨지는 거게서도 내가  주님과 관계 맺는 그 관계도 한번 맺고 가고 싶어서 자 죽음에서 하나님을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 관계도 맺고 가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맺고 가고 싶은 사람만 손 들어 봐요? 갖고 싶은 사람만 우리가  눈을 감고 생각해봐.

우리는 나그네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지내갈 세상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세상 부부간도 그래요 처음에는 몰라서 얼픅 거석하면 고만 부요할 때는 좀 가만  있다가 돈벌이 못할 때는 좀 바가지를 끌고 이랬다 말이오. 그 한번 그러고  지나가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후회가 된다 말이오. '아이구 그것 참 내가 그럴  때에 위로해주고서 내가 그럴 때 가서 이래서 바가지를 끌근 게 얼마나 내가  후회가 되노.' 또 고쳐진다 말이오. 또 바가지 끌근 것은 나는 가서 가난한게  겁이나서 그것 때문에 바가지 끌근 것이 아리라 벌로 덜렁 덜렁 벌로 덜펑덜펑해  가지고 그렇게 실수 했기 때문에 뒤에는 다시 실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바가지를 딱딱 끌것지 또 다른 게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목적이 지금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함으로 하는 것이면 그  목적에서 방편이 이런 방편 저런 방편 다 있어야 된다 말이오. 이 세상에서도  이런 것 저런 것 다 이런 경험하는 이것이 참 견고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친구쳐 놓고는 제일 좋은 친구가 어떤 친구냐? 사업적 친구보다도  전우 천구가 제일 밀접합니다. 전쟁에서 둘이 같이 죽을 때에 생명을 같이 놓고  있을 때에 그때 그 내가 부상해 가지고 그때 나를 업고 간 사람, 그가 내 부상  그때 생명을 생사를 같이 한 그 전우, 그 전우는 부부의 친교보다도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주님과 나와의 죽음을 같이하고, 평안을 같이하고, 욕을 같이  얻어 먹고, 외로움을 같이 당하고, 미움을 같이 당하고, 같이 대립되고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주님으로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너희들을 미워하는 자는 나를 미워함이요  나를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미워함이니라" "너희들을 미워하기 전에  나를 먼저 미워했다 너희들이 세상에 붙었으면 저의 것이라 사랑 할 것이나  저희들이 세상에 나와서 세상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미워하는 것이다"  그 말씀이 뭐이요? 세상에 미움 받을 때는 주님하고 나하고 같이 미움 받고 고난  받을 때는 같이 받으니까 그분과 대주제 하나님과 나와의 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 세상이니까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내가 어릴때 들으니까 논이 좋은 논이 그들의 좋은 논이 큰 논이 있어. 좋은  논이 있어. 그 지나가면서 아버지가 가르쳐 말하기를 '애 저 어느 논이 좋으냐?'  '저 논다래기가 크고 제일 좋고 크지.' '예 그 논 참 크고 좋습니다.' '저거  논다래기 이름이 뭐입니까?' '그 논다래기가 흰죽뱀이아 희죽뱀, 흰죽다랭이라.'  '흰죽 다랭이 흰죽 논이라.' 그 흰죽 논이라. 흰죽 논이라. 처음에 들을 때는 이해가 안 되었어. 조그만할  때니까,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그 사람이 자기가 배고파 지나갈 때에 참 그때에  죽을 지경인데 거게서 그 죽을 한 그릇 그것을 자기에게 참 다정하게 대접해서  그 가난한 사람이 죽을 한 그릇에다가 죽을 한 그릇 먹은 그때 그 줄여서 참  생명이 위험할 지경에 생명을 구출하고 구출받아 가지고 갔어.

그 사람이 그 은혜 잊어버리지 못해 그러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부자가 됐어.

부자가 된 다음에 찾아 와 가지고 그 흰죽 대접한 사람을 기억했다가 그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이 그때도 곤란하게 지내. 그래서 그들의 제일 좋은 논다랭이를  달라하는 대로 제일 돈을 많이 주고서 그것을 사줘서 그 논 이름이 흰죽뱀이라.

흰죽뱀, 그때 흰죽 한 그릇 가지고 그 부자를 사귔다 말이오. 그 부자되고 난  다음에 그분이 그 뒤에 만일 가보십시요 얼마나 이리 식사 대접하겠소. 우리가 똑  요와 같소.

지금 모든 사람이 하나님 배반하고 배척하는데 지금 하나님 대접하면 그때에  가서 이 하나님 사귀는 것이지. 무궁세계가 가지고 하나님 대접하려고 암만해도  그때는 안됩니다. 지금이 만유주 대주재요 더불어 우리가 고생도 같이 할 수 있고,  고생의 진미를 가질 수도 있고, 또 애로의 진미를 가질 수도 있고, 고독의 진미를  가질 수도 있고, 참 호와로움의 친밀을 가질 수도 있는 이런 좋은 기회라.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참 묘한 세상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인생관이나 만물관을 확 디비 가지고 성경대로 살아야 되요. 항상 성경은  글만 있지. 이 세상 사람들의 만물관 같이 꼭 그렇게 가지고 살기 때문에  헛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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