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힘

 

1981. 11. 29. 주전

 

본문 : 로마서 3장 9절-18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지식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하면 기독교는 반지식의 도라 그렇게  오해하고 비방하는 죄를 짓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지식을  반대하는 도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지만은 지식에 있어서도 그 지식의  위치가 위에 아래 또 그 가치가 좀 더하고 덜하고 또 그 권위가 크고 더 크고 더  크고 더 작고 더 작고 이렇게 모든 것이 그 실상이 있는 것인데 그 실상을  떠나서 삐뚤어진 비판 삐뚤어진 가치 삐뚤어진 위치를 삐뚤어진 위치로 사람들이  아는 거기에서 패망이 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식에 대해서도 이 지식은 무슨 지식보다는 가치가 덜한 것이다. 그  지식 밑에 있는 것이다. 그 지식보다는 권위가 위에 있다. 이렇게 위치라든지  가치라든지 권위라든지 또 효력이라든지 거기에 대해서 정확히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만드신 그대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옳바른 관계를 가져  지식으로 망하지 않고 지식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도인  것입니다.

세상은 원자시대가 되어서 원자라면 그 가치를 오히려 사람보다 위에 다가  놓을만큼 그만큼 우상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식도 필요하지만은 실은 가치가  우리 인생에게 대해서 효력이나 권위나 위치에 있어서는 저 말단 중에 말단이기  때문에 그것은 몰라도 좋습니다. 몰라도 인생살이에 별 손해는 없습니다.

알아봤자 나그네 세상인 영원을 향하여 가는 인간에게 별 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식에 대한 평가를 비판을 그 위치를 그 효과를 바로 가진 다는 것은  얼마나 중대한지 측량 못합니다. 이는 천하의 책을 다 모아 봤자 그 어지러지고  삐뚤어져서 제각각 제일이라 하는 것 거짓말 반 거짓말 뿐이지 옳은 책은 신구약  성경 육십육 권 도리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식에 대한 혼미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이 지식이나 어떤 유력한 인물이 말한 그 지식이나 비중을  같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것을 위에다가 둬서 그거 위지하면  복되고 유익되고 덕보고 필요하지만은 하나님의 지식은 자기의 그만큼 효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 일반 지식주의자들의 비참입니다. 지식의 한  토막을 말하겠습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악령이 있습니다. 악령은 모든 사람의 왕이 되어  있습니다. 악령 위에 죄가 있습니다. 죄는 망하고 죽이는 독을 가진 것입니다.

죄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법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아무 것도 뚫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악령 밑에 타락한 사람들과  모든 만물들이 있습니다. 왜 만물이 왜 타락한 인류가 악령 아래 있게 됐느냐  악령으로 더불어 힘을 겨루어서 악령에게 졌기 때문에 악령은 왕이 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그에게 소속자가 됐습니다.

만물의 영장의 위치를 가진 인류가 악령에게 패전되어 악령의 종 그의 백성  그에게 속한 자가 되어졌기 때문에 땅에 있는 모든 만물도 동시에 저주받고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증거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패전을 사람이  했는가? 사람은,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으로서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그로 인하여만 존재하고 움직일 수 있는 위치를 가진 것인데 엉뚱하게  마귀에게 순종하는 일을 함으로 하나님에게 관련된 것이 이로 끊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마귀는 인류시조를 저희에게 순종케 했고 인간은 하나님에게 순종의 이  생명성을 그것으로 인해서 미혹받아 버리고 그것에게 속한 자 되어 인류에게는  영원한 사망이 생겼고 또 만물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대단히 힘이 셉니다. 그러나 마귀는 마귀 위에 있는 것이  죄입니다. 마귀는 죄만 없으면 그거는 결박을 당합니다. 꼼작을 못합니다. 죄  없으면 마귀는 죽습니다. 마귀는 꼼작을 못합니다. 죄 없는 거기에는 마귀는  호리의 힘도 없고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에덴동산 해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마귀는 이렇게 저렇게 제가 말은 했지만은 해와가 그와 대화하는 것이 그것이  벌써 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귀가 대화하지 않고 사탄아 물러가라 했으면 그는  우주 밖에 쫓겨나가야 합니다. 우주 안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대화의 상대로 삼는 그것이 벌써 죄의 시발이기 때문에 그때에  거기에서 부터 제 보금 자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죄없는 세계는 마귀는 꼼작 못합니다. 죄없는 사람에게는 마귀는 그  명령에 복종할 것 뿐이지 꼼작을 못합니다. 죄없는 사업에도 죄없는 가정에도  죄없는 사건에도 마귀의 침범은 하지 못합니다. 마귀를 환영하게 하는 유혹은  있을지라도 침범은 못합니다. 유혹이 있을 때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면  마귀는 그 앞에 다시 패전해서 종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귀가  에수님의 완전한 종이 됐습니다. 영원한 종이 됐습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쳐서  그런 것 아니고 죄없는 예수님으로 하나님으로 함께 움직이는 역사를 마귀에게  하게 했기 때문에 마귀는 거기에서 죽고 종이 되서 영원한 주의 부리는 신이  됐습니다.

죄는 어떤 그 세력을 가지고 있느냐? 죄는 어떤 그 무기를 가지고 있느냐? 죄는  망치고 죽이는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망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이든지 행위든지 사업이든지 망치는 것은  마귀입니다. 마귀의 무기는 망치는 것과 죽이는 것입니다. 만일 망하지 안하려면  죄를 제거하면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죽지 아니하려면 죄만 완전히 없앤다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망치고 죽이는 그 무기는 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도  망치고 죽이지를 못합니다. 망치고 죽이지를 않습니다. 죄를 통해서 망치고  죽입니다. 죄없는 자를 하나님이 망치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완전자기 때문에 범죄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죄없는 것을 망치고  죽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망하는 것을 피하려면 죄를 정리해야 됩니다. 죽는 것을 피하려면 죄를  정리해야 됩니다. 기독자를 죽는 것은 죄로 인하여 죽는 것 있고 또 죄를 벗고  죽는 것있습니다. 기독자의 심신의 기능은 죄로 인하여 죽고 그 심신의 형체는  죄없이 예수님의 공로로 대속량을 받아서 죄없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부활합니다.

그러면 죄가 어떻게 해서 이런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쏘아서 죽이느냐 그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무에 이 율법을 의지해 가지고 이 죄가  세도를 부립니다. 죄가 있을 때에 이 죄가 망치고 죽이는 것을 안죽고 안망할 수  있는 세력이 있느냐 죄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율법을 능가할  수 있으면 됩니다. 율법뿐 아니라 율법 배후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자이면 죄가 있고 망하지 안할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시는 고난을 받으심으로 해결을 지운 것이 그것이 죄에  배후에 하나님의 법이 있고 하나님 범 위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죄가 없으면 그는 무능한 존재가 됩니다. 마귀는 죄가 없으면  그는 절단나 버립니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이 없으면 절단나 버립니다. 그 죄를  구성한 법이 깨져버렸으면 그 죄는 없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법이 있다 할지라도  법을 세운 그 배후에 법위 뿌럭지인 권능이 없으면 그 법은 죽습니다. 아무리  좋은 법을 냈다 할지라도 그 법으로 다스릴 법 배후에 권능이 없어져 버리면 법  그거는 다 패전이 되버리고 맙니다. 법이 패혀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 위에 죄가 있고 죄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고 하나님 법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죄로 죽은 것은 죄에  저축된 것은 하나님의 율법 해결이 돼야 되고 하나님과의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에 보면 사망아 55절 보면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요" 율법의 권능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범죄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모두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된  인간들이다. 여기에서 해결을 받을 수 없는데 15장 끝에 보면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는 율법인데" 여기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는 형벌로 불의는 형벌로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은 형벌로 친히 형벌받아 해결지우셨고, 의는 친히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의를 건설했소, 하나님과 화친은 친히 죽기까지 화친하셔서 하나님과  화친의 부자의 이 관계를 예수님이 맺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김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너희들이 힘써 주의 일을 하라" 무슨 일을 하라 주의 일을 하라 주님이 하나님  법을 어긴 죄의 문제를 피조물 피조물이 창조주는 버리고 피조물 저거대로 저거  주장대로 한 이 불의에 값을 하나님을 대립하고 떠난 이 하나님과 원수된 이  값을 예수님이 형벌로 다 담당하셨고 대신 하나님의 법을 우리 대신 죽기까지  하나님과 사람인 양성일위가 죽기까지 순종해서 의를 건설하셨고 죽기까지  화친을 인하여 신인양성일위가 죽기까지 하셔서 화친의 결성을 이룬 이 대속의  공로를 주셔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으니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주님의 일이 무엇인데 주님의 일은 이렇게 하나님과 연결을 지웠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해결을 지웠고 이 죄로 해결을 죄와 해결을 지웠고 마귀와 해결을  지워서 다 해결을 다 지웠습니다. 다 지우고 우리에게 모든 패전을 인류시조가  패전한 패전을 다시 복구해서 승리로 바꾸어놨고 하나님과의 이 관계를  맺어놨으니 주의 일 이렇게 하나님이 모든 멸망을 해결 지웠고 하나님으로 인한  생명 세계로 들어가라 하는 이것이 주의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영은 사망에서 당신의 대속으로 뱃겨서  중생시켰지만은 우리의 이 심신은 율법으로만 해결을 시켰고 지웠고 이 심신의  주인공인 영을 살렸기 때문에 성령과 산 영이 합해가지고 심신을 법적으로는  해결을 받았기 때문에 마귀가 왕노릇을 못합니다. 또 법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수시 하지 못합니다. 다 됐기 때문에, 이러니까 법적으로 해결 받은 것을 하나님과의 친목 된 것을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을 받게 해논 것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여기에서 벗어난 자로 살면 됩니다.

벗어난 자로 실지로 살면 되는데 벗어난 자가 벗어난 자인줄 알아도 벗어난 자가  다시 그 가운데 얽매여 들어가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습니다. 벗어난 자가 그  가운데에 얽매게 하려고 패잔병인 악령이 우리를 미혹을 줍니다.

아무리 유혹을 줘도 그 유혹 받아서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마치 아군이  공삱의에게 포위 당했으면 안심하고 있지말고 거기에서 어떻게 하든지 거기있어  봤자 죽는 것이니까 생명 다해서 거기에서 탈출하려고 애를 쓰는 것과 탈출해도  안심 안되니 아군의 든든한 진 속으로 파고 들어갈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이렇게  이 사망의 이 구렁텅이 속에 벗어날 수 있는 권세도 줬고 법적 해결도 줬고  하나님과 해결도 줬고 이런 방편도 줬고 이런 권세도 줬고 이런 응원도 줬으니  나만 힘써서 거기에서 벗어나려 하면 됩니다. 벗어나려 할 때에 그 부요에 매인  것은 부요를 내놔야 벗어나게 될 것이고 생명에 매인 자는 생명을 내놔야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동안 종되는 자를 놓아주기  위해서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매여 있는 그것을 버리고 버리고 우리가 거기에서 탈출되서  탈출되서 예수님이 다 해결지워 구원해 논 자로 옮기만서면 그 다음에 우리는  그의 승리자요 왕입니다. 그들을 호통칠 수 있습니다. 내가 내여놓고 내가  물질이나 지위나 육체의 생명이나 무엇이든지 그것에게 사로 잡히지 않기 위해서  내어놓고 이 대속의 공로를 잡고 따라 나섰으면 그것은 대속의 공로에 속했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건 다시 돌아와야 됩니다.

친척과 재물과 생명을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무어뇨. 내 주께 있으리로다 하는  찬송처럼 이제 그거는 법적으로 법적으로 이 하나님의 법에 속해서 하나님의  법대로의 것이 되어서 법대로의 생명이 됐고 법대로의 소유가 됐고 법대로의  지위가 됐고 법대로의 권세가 됐고 법도대로의 법도 하나님의 법도대로의  법대로의 것이 됐고 하나님과 화친의 것이 되어 졌고 죄없는 것이 되었고 마귀를  이긴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영원한 자기 것이 된 것이며 그를 방해했던  악령과 죄와 세상은 영원히 자기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나 사망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하늘이나 땅의 것이 다 너에게  속하게 된다" 하는 말씀을 고린도전서 3장 23절 이하에 말씀해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무서운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망에서 주님이  우리를 구출해 놓으셨습니다. 첫째로 이것을 깨닫고 그러면 다음으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해야 되느냐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구출해 주셨는데  우리가 구출은 받았지만은 현재 내가 어데 빠져 있느냐 이것을 알아서 그 빠진  데에서 하나님이 법적으로 구출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구출했고 그  권세적으로 구출했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 우리에게 왕권을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없고 죄도 왕권을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없고 사망도 왕권을 가지고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이게 됐기 때문에 우리만 벗어나려고 하면 됩니다. 우리가 다시  얽매이기 전에는 그들이 울를 해하지 못합니다. 얽매이면 둘째 사망의 해로  그들에게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데에 얽매가지고 있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알고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벗어나려고만 하면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마귀가 우리에게 왕권을 빼앗겼습니다. 그가 최종까지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미혹을 하나 안들으면 그만입니다.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죄도 우리에게 왕권을 빼앗겼습니다. 우리가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거부하면 냉면을 당하고 달아나야 됩니다. 거부하고 거부하면 이기고 거부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명령할 때에 죄는 죽고 마귀는 종으로 이용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마귀와 죄와 사망이 왕권적으로 우리에게 권세는 다  빼앗겼지만은 이것이 우리를 미혹시키는 존재로서는 아직까지 우리와 동거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구속으로 완전히 됐지마는 육은 하나님 편에서  법편에서 죄와 마귀와 사망의 이 왕권 편에서는 구출되어 자유하지마는 우리가  실상은 그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의 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귀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망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구원 받은 자가 거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 거기에서 설설 걸어 나오면 됩니다. 걸어나오면 됩니다.

걸어나올 기회는 한번 밖에 없는데 단번에 준 도입니다. 걸어나올 기회는 한번  밖에 없는데 한번 나오는 그 기회 걸어나오면 그만입니다. 다시는 죄와 마귀와  사망과는 완전히 관계가 끊어졌고 그는 우리에게 속해서 우리의 종이 되었고  우리의 부리는 것이 됐고 우리에게 속한 것이 되어 집니다.

그러나 한번만 되는 요 기회에 거기에서 걸어 나오지 아니하고 그 자리가 좋다고  머물러 있으면 나올 수 있고 머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유인데 머물고 있으면  영원한 사망으로 그의 것이 되버립니다. 주님의 사죄는 헛일입니다. 주님의  칭의도 헛일입니다. 주님의 화친도 헛일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둘째 사망의 해라  했고 둘째 사망의 해는 예수님이 두번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되는 것인데 한번  밖에는 못 안박습니다. 그 외에는 다시 대속이 없습니다.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주로 두번째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라 그말은 주님이 두번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를 베풀면 거기에서 효력있지마는 일차 대속에는 효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데서 나와 야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지금 오전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해 어데서 나와야 되느냐 대충 간추려서 여기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 간추린 그물에 벼루줄과 같이 이 강령을 우리가 어데 빠져 있는가  하는 빠져 있는 그 빠져 있는 함정에 이 이름을 함정의 종류를 함정의 이 강령을  우리가 알면 그 새끼 함정을 그 속에 들었습니다. 새끼 함정은 그 속에 들었기  때문에 겉은 한 함정이지마는 그 안에 들어가면은 여러 함정이 있으니까 이  종별적인 이 함정 강령적인 함정 우리가 빠져 있는 이 함정을 강령적으로  종별적으로 우리가 알고 거기에서 헤어날려고 하면 거기에 있는 분자적인 함정도  우리가 알아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함정을 여기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함정에서 빠져 있는 줄 알고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한번 밖에 없습니다. 이걸 아는 것이 원자를  아는 박박사의 억억만분의 가치보다 더 큽니다. 이게 큽니다. 인간 영원한  문제지마는 그까짓거야 몰라도 나 하나도 모릅니다. 이래도 주님 오시든지 내가  떠나든지 하면은 영원히 그것은 내것입니다. 영원히 호령쳐야 됩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지마는 그를 만드신 하나님과 나와 연결 됐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혜를  내신 하나님인데 내가 그에게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증명해야 될 것이요.

내것이 될 것이요. 왜? 나는 하나님의 지체같이 되어서 그분이 아니 내가 아요.

그분이 능력가이시니 내가 능력가시요. 이것이 기독교의 세상이 모르는 비밀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 함정 속에 빠져 있는 것을 깨닫고 여기에서 벗어나오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한번만 벗어 나옵니다. 우리가 벗어나오는 기회는 현실이라는  것인데 현실 현재 현실이라는 것인데 현실은 우리에게 한번 뿐 아닙니다. 요  현실에는 요 함정 속에 구속받은 것이 구속받은 것이 함정 속에 들어 있는데  함정 속에 들어 있는 구속받은 것이 요 현실에서는 요것이 고게서 탈출될  기회입니다. 고게서 탈출되 가지고 생명이신 하나님 만으로 이 구속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요것이 한번 뿐입니다. 요 기회는 요 요소가 여기에서 탈출되어 생명  안으로 뛰어 들어갈 요 기회고 고 기회 못하며 헛일입니다. 고 기회 못하면 고만  영원한 사망인 것인데 고 요소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옮겼으면 영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 심신의 이 죄와 사망과 하나님의 정죄 속에  들어 있는 악령 속에 들어 있는 악령과 죄와 사망 속에 들어 있는 이것이 내게  남아 있는 요소 이것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이 뭐이냐?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이 뭐이냐 그때에 살려주는 것은 성령과 중생된 영과 우리의 심신의  주격체입니다. 이것이 살려 주면 영원히 사는데 이것이 어리석게 그 기회를  놓치고 살리지 못하면 영원한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남은 심신의 기능 요소들은 탄식하고 자기가 영생이냐 영원  멸망이냐 하는 이 좌우가 결정되는 한번만 되는 그 현실을 닥칠 때에 그 현실을  닥칠 때에 그때에 믿음으로 살면 거기에서 자유를 벗어나는데 벗어나고 들어가면  돼 누가 때리지도 땡기지도 못해요. 그저 거기에서 술술 나와 가지고 생명  속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악령과 죄와 사망은 별별 꾀움을 줍니다. 별별  꾀웁니다. 너 죽인다 다스린다 돈준다 권세 준다 이러면 준다 별별 꾀움을 가진  것이 이것이 가득찬 것들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음행의 포도주라 말했습니다.

그 모든 말 그 모든 운동 모든 사상 역사를 뭐라하든지 듣지 안하고 거기에서 그  현실에서 슬금 슬금 나옵니다. 구속받은 자로 구속받은 자가 구속을 버리라고  하는데 구속을 버리지 안하고 구속 받은 자로 그 현실을 통과합니다. 구속받은  자로 그에게 종 되지 안하고 그에게 미혹받지 안하고 구속을 벗지 안하고  구속받은 자로 그 현실을 통과해서 구속 속으로 들어갑니다. 슬슬 들어가면  마귀는 간장이 녹습니다. 마귀는 간장이 녹습니다. 죄도 간장이 녹습니다.

사망도 간장이 녹습니다. 망치느냐 호독거립니다. 막 떱니다. 떨 때에 우리는  찬송을 부리면서 웃으면서 기뻐하면서 이 함정 속에서 슬슬 나와 가지고 생명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놈이 붙들라 하면은 그저 붙들릴 듯 하면 슬금 슬금 하면  그놈이 간이 녹습니다. 우리가 보며 그 마귀라는 놈을 죄란 놈을 간을 녹우면서  슬금 슬금 하면 녹우면서 슬금 슬금 이런 것 저런 것 살짝 살짝 건너 기회를  놓치게 되면 쏵 뛰어 들어갑니다. 이러면 고 현실에 고대했던 그 심신의 기능  요소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고렇게 잔꾀로 머뭇 머뭇 것다가 기회가 퍼득 지나가 버렸으면 생명의  문은 닫혀버렸습니다. 다시 들어가지 못합니다. 원통하게도 영원한 사망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늘나라 갔을 때에 우리의 심신의 기능 요소가 지옥에서  부르짖으면 그 부르짖음을 우리가 듣습니다. 탄식하는 것 만물만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익은 열매 된 우리들 까지도 탄식을 한다고 했어. 그거는 중생된  영이 탄식합니다. 성화된 기능 요소들이 탄식합니다. 그거 죽는다고 저의 지체를  영원히 빼앗긴다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귀중한 시기인지 모릅니다.

어떤 함정 속에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을 지금 간단하게 말합니다. 이 함정 속에  우리가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그말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여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으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자기로 움직이고 어떤 높은 사람으로 큰 사람으로 권세 있는  사람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무슨 사람이나 물건이나 일이나 그런 것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것이 우리가 들어 있는 빠져 있는 사망의 구렁텅이 입니다. 마귀  구렁텅이요 사망의 구렁텅이요 죄의 구렁텅이 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여야 될 터인데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아니하고  오늘은 돈으로 인하여 움직이고 오늘은 상관으로 인하여 움직였고 오늘은 전주로  인하여서 움직였고 오늘은 사업으로 인하여서 움직였고 오늘은 취미로 인하여서  움직였고 오늘은 애정으로 인하여서 움직였고 오늘은 감정으로 인하여서  움직였고 오늘은 분으로 인하여 움직였고 오늘은 복수로 인하여서 움직였고 이제  내가 이 현실에 움직이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이  움직임으로 여기에서 벗어났는지 이 현실에 어떤 피조물 어떤 사건 어떤  운동으로 인하여 움직였는지 요것을 분별해야 됩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였으면 현실에서 탈출됐습니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천하를 손에 검어지고 주물거리고 취했다 할지라도 그 현실에서 무엇으로  인하여서 움직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살면 영생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외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치 안한 것이 죄니라"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행치 아니한 것이 죄라" 말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안한 거는  죄라 그말입니다. 요것이 우리 함정입니다. 이 함정이 큽니다. 이 함정 속에는  수많은 함정들이 들었는데 대체로 말하면 불의의 함정입니다. 불의의 함정이라는  것은 피조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 다 불의의 함정입니다. 그안에 있으면  죽습니다. 그안에서 하루를 살았으면 하루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하루의 나에게  작용된 심신의 기능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하루의 나에게 작용된 심신의 기능은  작용된 심신의 기능은 그때 그때에서 영원히 죽었습니다.

이러니까 이다음에 부활했지만은 부활할 때에 그 심신의 기능은 하나도 없어  형체만 부활해 가지고 뚱뚱하이 같이 있어서 얼굴도 보이지마는 기능은 하나도  없어. 보니까 아랫도리는 미꿈 미꿈하고 몸이 굵직 굵직하고 모두다 잘 생겼는데  아 얼음판에 갖다 놓으니까 그 스케트를 연습한 그 기능을 가진 자는 조그만한  어린아이가 막 밑에 뭘 쇠를 달고 양사방 도아다니고 이러는데 이 너까짓  조까짓거를 못당해 했지마는 가놓니 서지도 못합니다. 서지도 못해. 예?  마음에는 뻔하지마는 안돼. 그 기능입니다.

그와같이 이제 부활할 때에는 아무 것도 없어. 기능은 아무 것도 없이 형체만  부활해 요면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조면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요 요게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조게 하나님으로 인하여 요 사건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요 분  할 때에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요 사건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요 분 할 때에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랑할 때에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아무리 사랑이 뜨거워도  하나님으로 인한 것 아니면 움직이지 안하고 아무리 분해도 세상 사람같으면  그만 분해서 자기를 죽일만한 분이 와도 그때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고 현실을  통과하지 분 그놈에게 피동되지 안합니다. 이것이 생명으로 옮겨져 가는  것입니다.

불의에 함정 하나도 없으면 깨닫는 자도 없고 깨닫는 자는 세상에서 책이라는  것은 전부 제각각 인간들이 깨달은 것을 뭉쳐논 것이 책인데 깨달은 것을 뭉쳐논  책이 이 집책 무더기 몇개도 될런지 모르는데 깨달은게 하나도 없다 했어 깨닫는  것 뭐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네가 이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네가 이 시간에  어떻게 살아야 되고 네 성질은 네 사람은 어떻게 하며 행위는 어떻게 하며 네  소망은 뭘 가져야 되며 네가 움직임은 어떻게 움직여야 되느냐 이제 이것이  하나님 한분이 조물주기 때문에 그분을 중심해서 그분을 중심해서 그분을 중심해  그분의 법칙대로 그분의 목적대고 지음받은 것이 요대로 깨달아야 될 터인데 요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어 안 맞아.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깨달게 해 주시는 대로 그대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대로 아는 것 그대로 깨닫는 것 요것이 아닌 것은 다  사망했어. 이것은 무식해도 알 수 있습니다. 마음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해서 당신에게만 소망을 두고 당신이 인도하기를 기다리고 인도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요대로 하겠습니다. 요거는 무식해도 좋습니다. 병신이라도  좋습니다. 문둥이라도 좋소 벙어리라도 좋소 요것만 다하는게 조건입니다.

아무리 세상 것을 다 박식을 다 가지고 있고 모든 것 소유하고 있고 어떤 위치에  있었든지 요 네 가지로 다 하는 것 자기를 다 하는 것 하나님에게 자기를 다하는  것 요것이 아니면 그것은 다 낙제입니다. 헛 일이요. 그 현실에 자기 현실 닥칠  때에 하나님이 문서계시로 윤곽적으로 이렇다 해서 대충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충 아 여기에 있어서는 안됐다 하나님 말씀으로 아 요리 서야  되겠다. 아이 좀 잘못 섯다 요리 서야 되겠다. 아이 좀 잘못 섯다 요래 요래  자꾸 하나님 말씀대로 맞췄습니다. 다 된 것 아니라 맞췄는데 이제는 정말 자기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고 양심인데  양심으로 하나님 바라면서 어떻게 하려 할 때에 성령이 와 가지고 요래 서라 좀  틀렸다. 갖다가 됐다 하는 요게 깨달음이라 이렇게 어렵습니다. 건설구원이 쉬운  것 아니요.

이렇게 나는 깨닫지 못한 자로 현실을 살기 쉽다. 요것을 가지고 내가 깨달은  데에는 네가 산 제사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하여  새로운 걸 가져야 하나님의 온전하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네가 안다  요렇게 말해 놨다 말이오. 그 하나님이 속지 안해요. 어떤 잘난 자라도 그의  잘난 자에게 유혹 당하지 않습니다. 그걸 주님이 만드신 것이요. 어떻게 열변을  토해서 콩을 팥이라고 말만 잘하면 승리합니다.

이러기에 꽁꼬리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요.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  이렇지만은 하나님은 그말에 설복을 당하지 않습니다.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이분이 계시기 때문에 잘나나 못나나 진실된 자가 좋습니다.

이래서 모든 걸 드려 '주여 당신이 나에게 바로 지도 하시옵소서' 하는 고자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찾는 자에게 탈선되는 윤곽적으로 탈선된 데에서 바로  들어서고 바로 들어서 가지고 하나님에게 모든 걸 다 기울려'나는 우매  무지합니다 당신이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는 고것을 구하는 자에게 인도하기를  구해도 내 비유에 맞으면 할 것이고 안 맞으면 안됩니다 하는 자에게 필요  없어.'주여 내 모든 것 다해서 인도만 주시면 내가 고대로 하겠으니 인도해  주시옵소서' 할 때에 그분이 그이에게 인도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면 요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고 인간들이 다 망합니다.

요 깨달음만이 우리에게 살리는 깨달음이니 인간의 단독의 힘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니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어떻게 우리가 갖추어 당신에게 어떻게 해  가지고 태도를 정신을 어떻게 마음을 가지고 살 때에 그분이 가르쳐 주겠다 하는  것을 약속한 대로 절대자가 계시는데 이것은 떠나서 어떤 사람이 말하면 고 사람  말이니 맞겠지 여럿이 말하니까 맞겠지 돈 있는 자가 말하니까 맞겠지 권리 있는  자가 말하니 맞겠지 내 마음에 쏠리니까 맞겠지 참 어리석습니다.

이렇게 이것을 맞다고 안심하고 따라가는 자도 어리석은 자 또 이것은 생각지  안하고 더 타락해 가지고 자기에게 만물보다 거짓된 것 자기 가진 마음이지만은  저 사람에게 말하면 저 사람도 싫다고 저 사람을 정죄할 것인데, 저만 좋아하는  그 사욕의 마음 이것을 가지고 이놈을 달성시켜 보겠다고 죽자 살자 노력을 하고  이것이 이대로 달성했으면 성공됐다고 잔치를 하고 야단을 지기니 사망의 깊은  속에 파묻혀 있으니 이거 언제 사망에서 벗어나와 가지고 생명으로 가겠습니까? 자기의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욕심을 그대로 달성을 하기 위해서 날뛰는 그자  비참 중에 비참자요 자기의 마음이나 인간의 그 인도는 바를 수 없고 이것은 다  삐뚤어지기 마련인 것이니까 이 참된 길을 찾아서 내가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것을  생각하는 자가 지혜있는 자 지혜는 있지만 성공은 못합니다.

생각하면 할 길은 있기는 있다 예수의 구속을 받은 자는 할길은 있기는 있다  있는데는 몸으로 산제사로 드리라 주여 주의 구속을 받았으니 사는 길이나 죽는  기나 비참한 일이나 어떤 일이든지 내가 견디지 못해서 그 자리 견딜라 하면  내가 녹아서 죽을지라도 고 견디라면 견디겠습니다. 몸으로 산 제물로 바쳐드려  제물에 얹어논 것 제물은 자유가 없어 자유없는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을 주에  내놓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세대에서 성령으로 변화가 되어 마음을 깨끗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 이것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에게는 다 준다. 그러면 이 사람이 복이 있고 이대로 행할 때에  그것이 뭐이냐 이대로 행할 때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이대로 행하는  것은 전능이라 이대로 행하는 것은 요대로 행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해하는  해한 그것이 해하는 것으로 돕는 일이요. 피조물이 죽였으면 죽인 것으로 돕는  일이요.

여러분들 우리를 돕는 일은 돈을 주는 것이면 돕는 일인 줄 압니까? 우리를 돕는  일은 돈을 주는 것도 돕는 일이 될 때 있고 돈을 뺏드는 것이 돕는 일이 될 때  있고 우리를 살리는 것이 돕는 일이 있고 우리를 죽이는 것이 돕는 일일 때도  있습니다.

죽을 고 시간이 됐는데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고 사람을 죽이지 안하는 주와  진리 때문에 생명 내놓을 수가 있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죽을 때가 가까와  왔는데 가만히 놔두면 손양원 목사님이 뭐 자리에 누웠다가 기도하다가 죽든지  뭐 그래 버렸겠지 인민군이 6.25를 떼가지고 6.25를 하나님이 내놔 가지고 너  예수 믿으면 죽인다 하는데 어에 안믿는다. 소리해라. 예수 믿는다 하고 고게서  죽으니까 내가 죽을 고 시간에 죽으니까 주를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형제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죽었으니까 그 죽음이 손양원 목사님을 마지막으로 일생동안  살으신 성령 만침이나 이제 그 죽음이라는 마귀가 도움을 줬습니다. 죽음으로  도움을 줬어.

이러니까 죽는 법도 수없는 종류가 있고 돕는 법도 수없는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편식을 가지고 몇가지만 알기 때문에 요 방편 요것만이 돕는 것이다 생각하니까  돈을 주면 돕는 줄 알지요. 돈을 뺏들면 돕는 것 아닌 줄 알지요. 살리면 돕는  걸로 알지요 거서 죽이면 돕는 것이 아닌 줄 알아요. 이기다 일방적 지식입니다.

일방적 지식 어쨌든지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요렇게 바로 깨닫고 행하는 것은 전능이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요렇게 깨닫고 행하면 모든 소망하는 것이 성공되는 것이라.

그러니까 소망하는 게 성공되는데 성공될 때 그때 가담되고 이용됐던 모든  만물도 다 살아납니다. 이러니까 만물이 하나님의 뭇 아들들이 진리 영감대로  사는 이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세상이 모르는 비밀을 절대적인 실상 세계요. 영원 불변의 완전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오후에 치우친 것을 말씀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 요 둘 밖에 못했으니까  요것 좀 하고 치우는 것 요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오전에 온 사람들 오후에 다  오십시오. 와서 요 지식을 배워야 됩니다. 죽어도 죽는 줄을 모릅니다. 망해도  망하는 줄 모르고 하나님이 큰 영광과 축복을 줘도 영광과 축복인줄 모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마귀가 우리 왕이 아닙니다. 사망이 우리 왕이 아닙니다. 죄가 우리 왕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놈을 벗어나려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놈을 물리칠려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기셨는데 우리에게 십자가가  있습니다. 각각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해 이길 십자가가 있어  주님이 이기심 같이 우리도 그래 이기면 됩니다. 이기는 방편은 꼭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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