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함과 성령의 충만

 

1979. 10. 27. 토새

 

본문 : 엡 5:19-27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기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술 취하는 요 술은 세상주의에  취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주의 한 말로 세상주의인데 세상지식 세상사상 세상을 표준으로 하는 사상,  세상을 표준으로 하는 주의, 세상주의 세상사상 세상욕망 세상에 속한 세속의  것들 이런 것에 감염받는 것을 가르쳐서 술 취한다 요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것에게 감염받는 것. 뭐 어떤 좋은 사상이라도 거기에 감염받는 것 이것이  술 취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 서장에 가 가지고 서장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비밀국으로서  아주 미개국인데 그 나라에 들어가면은 죽이기 전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혹 그  나라 사람이 장사하러 나오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를 보면은 상인들이 제일 발단합니다. 어디든지 상인이 들어간지  오랜 후에 국교가 들어가지 상인보다 먼저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상인이 제일  그 세계에 먼저 발을 디뎌놓고 먼저 날뜁니다. 그것이 다 본능적인 생욕에서  욕심이라는 것은 굉장합니다.

 거기에 가니까 복음을 들어가지 못했고 입문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일 년에 내내 있다가 혹 거기서 사람이 나오면 아주 후대해서  예물을 주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사람에게 자기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시작했느냐 그 프란시스의 설교하는 것을 듣고 거기에 감동을 받아서 이렇게  전도하고 있다고 대답하는데 그것도 그 책을 볼 때에 그 사람은 이렇게 탈선  되는구나 생각이 되어집니다.

 프란시스의 감동은 좋습니다. 좋지마는 그것으로서 하나님의 감동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참 하나님의 감동 그 사람의 아름다운 그 생활이 그 사람의  모형이기 때문에 그 원형 그 사람의 그 생애 인격 자체 그 설정한 공로 이를  잡고서 그것에게 이제 부딪쳐 가지고서 거기에 연결이 돼가지고 그 피동으로 그  감동으로 거기에 충격받고 자극받고 감동받아 가지고 이제 거기에 와서 일을  했으면 좋을 터인데 그 감동이 제 감동보다 크니까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 )이  나오지 못하고 자기 혼자 하다가 답답한 일이 있을 것이오. 자기로서의 갈 수  있는 길만 가지 자기가 갈 수 없는 그 사람을 초월한 길을 걷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도 하나의 은밀히 말하면 술 취하는 것입니다. 은밀히 말하면  술 취하는 것이요. 여러분들이 이것은 일반 교회에서 인정을 안하는 것입니다.

이것 말하면 그 사람 불건전한 신비주의니 또 극단파니 해서 이래 가지고서  인정을 안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것은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은 "술 취하지  말라" 이래놓고 그 다음에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이 아닌 것은  다 술 취한 것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 모든 미치광이 말도 그것이 다  자연 계시속에 들었습니다. 그것이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뜻이인 이것을 하나  소개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미치광이 말도 소개하고 있는 것이요 성자의 말도  소개하고 있는 것이요 중의 행동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이제 성령의 충만한 충만과 이 술 취한 것과 요 둘로 되어있는  세상인 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성령의 충만이 아니면 술 취함, 술 취한 것이 아니면 성령의 충만 요  둘이 딱 들어붙어 가지고 있습니다. 요 둘이. 성령의 충만이 아니면 술 취한 것.

술 취한 것 아니면 성령의 충만 요 둘로만 되어있는 거기를 지금 갈라트려서  말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방탕하다 그 말은 이제 그 궤도에서  탈선됐다 그 말입니다. 탈선됐다 그 접선이 바로 되지를 못했다 거기에 붙여져야  될 유일의 연결이 되어야 될 그 연결이 연결되지 못했다. 또 연결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금 딴 데를 향해서 헤매이고 허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탕자와  같이 그렇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니까 기독자의 영생하는 성화, 영생하는 성화는 완전한 그 본질과 본성,  불변의 본질과 본성 이렇게 온전한 것이 이루어 지는데 아무나따나 우리 생각  여기에 저기에 다 쓰고 남은 찌꺼러기 가지고서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마음먹는 대로 마음 먹고 느끼는 대로 느끼고 이렇게 조심없이 아무나따나 해  가지고 이것이 들어 맞겠습니까? 과학이라는 그것도 아주 머리를 싸 매고 해보면  #보다 #아 되지 싶어서 해보면 또 다르고 또 #에 도지 싶어서 해보면 또  다릅니다.

 이렇게 그 올바른 $를 찾아가는데 심히 시간이 걸리고 심히 어렵고 복잡하고  사이비해서 그럴 것 같은데 가 보니까 아니라 그 말입니다. 이런데 하물며  이것은 무한하고 이것은 변하는 것이지마는 변하지 않는 것 이 무한한 것을 찾아  이루는데 이것이 과학자 이 과학을 연구하는 것만치도 연구하지도 아니하고  지나가는 마음으로 찌끼 마음으로 이렇게 아무나따나 해도 들어맞아 가겠습니까?  그것은 다 참 도박 신앙들입니다. 노름하는 신앙이라 말입니다. 그것은 미신적  신앙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우리 교인 가운데 어떤 사람, 그런 사람이 있대요. 그  '부'를 써 가지고 하나 가지고 와서 붙이면 당장 부자가 된다 아, 이럴 것 뭣  있는가 요 '부'만 하나 써다가 집에 어디다가 딱 갔다 붙이면은 당장 부자  된다고 이러니까 그 '부'는 써 가지고 와서 붙여 놓습니다. 그자와 같은  행동입니다. 그것이 됩니까? 억만장을 써서 붙여보지요 되는가 나중에 거기에  파묻혀 죽어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예수 믿는 이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만이 바로 소개해서  탈선되지 못하도록 울타리 역사를 하고 이 말씀으로 자기가 알 수 있는 데까지  자기를 정비하고 정돈하고 우리 생활을 정비하고 정돈하고 정리하면 비로서  영감을 영접할 수 있는 이런 준비가 서서히 되어지고 이 준비가 되면 영감이  우리에 옳고 바르게 참되게 우리에게 감동시켜 줄 때에 자기가 아무리  종류적으로 옳은 것 택해도 영감이 오기 전에는 느낄만치 못 느낍니다. 느낄만치  못 느낍니다.

 그 느끼는 도수가 있어. 그 행동을 할려면 어느 도수까지에 올라가야 행동이  개시될 수 있는데 우리가 느낀다 하더라도 그 도수가 올라가지 못하면 행동은  못하고 만다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암만 종류적으로 바로 택해도 우리가 그 종류대로 해야 된다는 그  느낌을 그 성경이 주는 것인데 그 느낌을 자기가 옳다고 인정함을 하는 그  도수가 있으니 어느 정도 자기가 인정하는냐 그것입니다. 그것도 영감이 아니면  안되는데 하물며 종류를 더듬어 수많은 사이비한 데서 찾아낸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이러니까 이 기독교는 진실이라는 그것이 없으면 그것은 제 혼자  평생 속이고 남 속이지 그 근방에 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 믿는 것을 (더우기 목회하는 것)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서 수단을  부리고 뭐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그것 하나면 보면은 다 어떻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껍데기에 붙을 도가 아닙니다. 그는 껍데기에 있는 구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말라 하는 그것은 그 밑에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이 아닌 것은 다 술 취한 것이라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가지고서 말해놓은 그 옳고 바른 말이라도 그것은 자기에게는 그것이  성령의 충만이 아닙니다. 자기에게는 그것이 술취한 것이 된다 그 말입니다.

거기서만 머물면 술 취한 것이 된다 말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성령의 충만함에  도달해서 이제 그것은 버려지고 성령의 충만에 도달해서 거기에 접선이 돼  가지고 있어야 그것이 이제 술 취함을 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령의 충만을 받아 가지고 말한 말이라도 자기가 거기에 직접 접선이  돼 가지고서 그로 인해서 %이야 된다는 것은 한계를 지었습니다. 이 말씀에  더하는 자 덜하는 자 다 심판받는다 했습니다. 더하거나 덜하지를 못한다고 딱  결말을 지었습니다. 그러기에 영감 기록은 정확한데 그것은 끝은 맺어  놓았습니다.

 이러기에 아무리 영감에 충만한 사람이 말을 할지라도 성령은 아니다 말입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 그만 거기서 이탈이 됐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딱 들어붙어야 될 터인데 거기서 조금 삐뚤어져서 그만  머리털만치 금이 갔다 그것이 연결이 안되어 있다 연결되어 잇지 아니했다  연결이 안 되었으니까 방탕 생활이다 저 혼자 속이는 행동이다 말입니다.

 접 붙이는 사람에게 말을 들었는데 접을 붙이는데 위와 아래 접을 붙여 놓으면  그것이 보면은 보얗게 눈이 생겨서 올라 옵니다. 새움이 생겨서 올라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물로 겨우 연결이 되어서 그 새움이 되어집니다. 그럴 때에  보다가 지푸라기에 조금 닿았던가 어떻게 했으면 꼭 그렇게 끼여가지고 있는데  겨우 겨우 그것이 노력해 가지고서 밑에 나무 위에 나무가 그 접선이 되어서  물이 올라가게 되었는데 조금 건드리면 꼭같이 끼여 붙어있기는 있지마는 벌써  눈에 아무리 봐도 틈이 난 것이 안 보인답니다. 안 보여도 그만 위에 움이  성장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다가 말라버리고 썩어버립니다.

 그래서 그 뒤에는 이것은 아예 보지 아니해야 되겠고 위에 움이 올라오는 것을  봐야 되겠는데 움이 올라 왔다가도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건드리지  아니해야 되지 조금 건드리면 그대로 꼭 끼여가지고 있기는 있는데 거기에  머리카락 틈만치 난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 틈보다 적은데 딱 붙어있기는  있지마는 눈에 보이지 않은 그 연결이 끊어졌다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접이  안되어 버립니다.

 그 말을 듣고 거기서 그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아, 요것이 요렇게 그것이 사람  눈 모양 꼭 그런데 연결이 요래가지고 있으니 요렇게 다 요러니 하나님과의  연결이 요렇다 조금만 이것이 이탈되면 이것이 헛일이구나 그것이 나오지  아니하겠고 그 진액이 나오지 않겠구나 그것을 접붙이는 데에서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방탕이라" 그 말씀은 이제 주님과의 그 접선이 이탈이 됐다. 그러니까 남은  %는 생활은 저 혼자 %는 생활이다 저 혼자 %는 생활이니 그것은 전부다 죽는  것이요 전부다 망하는 것이요 전부다 없어지는 것이요 다 더러워지는 것뿐이다  그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면은 뭣인가? 그것이 아닌 것은 이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그것만 옳고 바른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요것을  연구해 오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충만을 받은 그것은 무엇을 보아서 충만을 받을 것을  알 것인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은 볼 수 있게 거듭나지 않는다 했는데  거듭나는 그것도 안보이는데 충만이 어찌 보이겠습니까? 거듭나는 것도 안  보이는 데 그 사람이 죽었던 것이 살아나는 것도 안보이는 데 살아난 자가  충만을 받는 것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거듭난 것은 보이지 않게 났는데 그것을 바람으로 비유해서 바람이 왔는지  갔는지 모르는데 모르지마는 그 %는 모든 나무나 이런 것을 봐서 아, 바람  부는구나 압니다. 누가 바람 보입니까? 나뭇잎이 흔들리니 바람 부는구나 동에서  부는지 서에서 부는지 어떻게 압니까? 나무가 이리 기울리니 아, 지금 부는  바람은 북풍이구나 이리 부는구나 아, 남풍이구나 이거 아는 거와같이 그 중생된  것은 그의 나중에 신앙 행위에서 알지 다른 데서는 모른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을 알겠습니까? 여기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이 성구를 보고 어찌하든지  들어오면서도 노래부르고 나가면서도 노래부르고 들어가는 노래부르고 밭에 가도  노래부르고 논에서도 노래부르고 현실에서도 노래부르고 노래부르면은 되는 줄  압니까? 아니오. 그것이 방탕한 것입니다. 요것이 무슨 뜻으로 말해 놓았는지  모르지마는 연구해서 좀 찾아보십시오.

 그러므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의 술  취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단단히 기억합시다.

 이래서 계시록에는 음행의 포도주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자주빛 고운 붉은빛  옷을 입을 아주 창기, 어떤 남자라도 만나면 쏵 쏠려들어갈 수 있는 이 창기, 이  창기 손에 들고 잡고 금잔 있는데 그 창기는 무엇을 가르쳐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세상의 20 세기의 아름다운 문화 아이쿠야, 좋다 그것 편리하다 문화가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하나님의 선물이 되겠고  이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고 속화되는 그것은 음녀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어떤 자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고 어떤 자에게는 음녀가  되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음녀 손에 들고 있는 그 금잔 속에 들어있는  가증스럽고 더러운 음행의 포도주 이런 것을 알면 그래도 세상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지는 않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을 합시다. 다 미국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다 술  취한 사람입니다. 술 안 취하면 그 짓 안합니다. 거기에 가야 하나님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기를 원하는데 왜 거기에 갑니까? (책임진 그런 신앙가가  되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것아 다 술 취해서 그런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 세상주의 인본주의 세상욕망 눈에 보이는  것 사람에게서 난 것 은밀히 말하면은 아무리 하나님의 것을 사람이 좋아도  그것은 모형이요 아무리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설교해도 그것은 성경 말씀의  모형입니다.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한 다리 건너 왔습니다. 그로 인해서 성경에  나아가고 또 그로 인해서 영감에 나아가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  외에는 다 술취한 것입니다.

 요렇게 획선을 그어서 성령의 충만이 아니면 술취함이요 술취함이 아니라면  성령의 충만함이라 요것 둘밖에 없다. 요 경계선으로 두고서 요것 구별해야  됩니다. 그렇지마는 들어가면 안됩니다. 두 쪽발로 걸어가라 요것도 두 쪽이요.

쪽발로 걸어가지 않는 것은 거룩지 않습니다.

 성령의 충만이 아니면 술취함, 술취함이 아니면은 성령의 충만함 요 둘뿐이다  요렇게 갈라 놓아야 됩니다. 요것은 성령의 충만이 아니지마는 그래도 요것은  술취함은 아니다 요것은 술취함은 아니지마는 성령의 충만은 아니다 그런 것은  끼여있을 수가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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