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하고 신령한 젖

 

1986. 2. 11. 화새벽

 

본문: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보았으면 그리하라

 

1절에 「그러므로」 한 말씀은 그 위에 1장 24절까지에 기록된 그 말씀을 두고서 한 말씀입니다. 24절에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중생된 사람들이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꽂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죽은 영이 살아났고, 죽은 인격이 살아났고, 죽은 심신의 기능이 영생으로 살아나는, 지금 속량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단념할 것은 뭣을 단념해야 되느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이 진리와 영감으로 살지 않는 그 모든 세상살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아주 보기에, 오뉴월에 그 풀이 자랄 때에 아주 이들이들하게 연하게 무성하게 힘있게 아름답게 자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걸 볼 때에 이 풀과같이ㅡ비유로 말한 건데ㅡ 풀과같이 그렇게 무성하게, 아주 힘있게, 또 속성으로 그렇게 자라가고 있는 그런 것을 보고 우리가 거게 미혹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에 그것에 대해서 좀 길게 보면 됩니다. 길게 길게 보면 그것이 참 풀과같이 잠시 있다가 말라져 버립니다. 또 그 영광도 굉장히 찬란하지마는 그 영광도 잠깐 후면 다 마르고 떨어지고 시들고 아주 볼 모양 없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이 새사람으로 사는 이 새사람은 세세토록 영영토록 끝이 없는 우리 자체들이요, 죽으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고, 또 무궁세계에 가서 영원히 살 것이고, 우리가 거듭난 사람으로 살아 보면 이 사람은 죽지 않는 것을 자신이 알게 됩니다.

어떻게 진리가 죽습니까? 어떻게 옳은 것이 죽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의 공로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것인지, 이것을 처음에는 예사롭게 모르지마는 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우리는 전멸입니다.

그러기에 이 대속의 공로는 믿음이 자라갈수록 일 초도 일 보도 이 대속의 공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이 복음으로 살지 않는 그 모든 것은 다 풀과같이 무성해도 그까짓 게 잠깐 시들어지고 「그 영광도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는 이 눈으로, 육안으로, 육안으로 보고 사는 이 육체의 사람이 되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봐야 됩니다. 마음의 눈으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깊이 깊이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사는 것보다도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마음으로 산다 말은 우리가 모든 것을 성경 말씀을 법전으로 성경 말씀만이 옳다 참되다 하는 것을 깨닫고 성경 말씀 가지고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해 보는 것이 그것이 마음의 눈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좋지마는 거게서만 머물지 말고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이 약속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도 없습니다. 요 말씀 요대로 입니다. 영원히 요대로 입니다. 이 사실을 자기가 알 뿐만 아니라 알고 자기 주관을 가지고서 비판하고 평가하고 사는 것이 마음의 눈으로 사는 것이고, 알고, 아는 요 사실을 인정하고 확실히 믿고 요대로 따라서, 요 말씀이 이렇다 할 때에 내 모든 이성이 ‘아멘. 그러합니다.’ 요렇게 긍정해서 긍정으로, 또 그대로 실행으로 따라가는 그것이 믿음이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걸음은 다 사람들이 보고서 미련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걸어가 본 사람은 모두가 다 기적이요 축복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아는 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고 실행 생활을 해 보니까 아무리 둔탁한 사람이라도 이것이야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이거는 도저히 무슨 피조물로 아무것도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되어지기 때문에 자기가 ‘이는 하나님의 순전히 은혜다’ 나중에 그렇게 살면 자기의 크고 작은 모든 일동 일정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육안으로 보고서 ‘아, 보기 좋다.’ 그래도 그걸 마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비판해 보면 아무리 꽃 같은 고운 미인이라도 마음의 눈으로 보면은 그만 쭈글쭈글한 할머니요 그만 송장입니다.수많은 무덤들이 묻혀 있느데, 그거 다 무덤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생각해 보면은,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은 잠깐이면 볼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도 믿음으로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참 허무해서, 아주 꽃과같이 아름답고 풀과같이 무성한 그거와 송장이 같이 뭉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계약인 이 믿음을 가지고 보면 마직막에는 인생이 불쌍하다 하는 그 말이 나올 것입니다. 인생이 불쌍하다. 이런 버러지보다 불쌍하다.

버러지는 났다가서 죽어 버리면 그것이 흙으로 화하고 말지마는 인간은 생긴 이후에는 영원히 죽지 안하고 성경에 말한 대로 영원한, 구더기도 죽지 않는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고통당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영원 불멸이라는 것이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인생이기 때문에 인생으로 지음 받은 것이 제일 불쌍하다 하는 그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그 결론이 나오고 난 다음에 거기에,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원망이 나옵니다. ‘인생이 불쌍하다’ 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조금 머리가 발달되고 명철한 철학자들이요, 그 철학자들이 발표는 그래 못 하지마는 철학자들의 공통이 다 하나님께 대해서 원망입니다. ‘뭣 때문에 나를 인생으로 지었느냐?’ 얼마든지 악독을 가지고서 항거를 하고 싶은 그런 독이 나오게 됩니다. 너무 인생이 비참하기 때문에, 살았다가 죽었으면 그만이지마는 죽음으로써 끝나지 안하고, 끝나지 안하고 살아 있다. 끝나지 안하고 끝에 그것이 있다 하는 그것을 어림짐작해서 보는 것이 철학자들입니다.

이래서, 종교 창설자들도 위로적으로 ‘사람이 났다가 죽으면 그 뒤에, 사람의, 이 두 동가리로 나눠 가지고서 상부는 오래 가고, 하체는 한 십 년이면 썩어져 버리고, 또 의인의, 그 중에 머리가 제일 오래 가는데, 의인의 머리는 오래 가고 보통 서민의 머리는 몇 해 안 간다.’ 그들은 짐작하기를 그렇게 짐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면으로는 내가 어짜든지 고거라도 소망을 가지고 의인이 돼서, 의인의 머리가 돼서 내 머리에서 좋은 것을 공작하고 의인의 머리가 돼 개고서 그래도 몇백 년, 몇천 년, 그걸 가려켜서 ‘인재명이요 호재피라’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제 그와 모두 얼버무려 가지고서 유력한 그런 공자라든지 석가모니라든지 뭐 톨스토이나 이런 인물들은 죽은 지 오래 됐지마는 그래도 지금 유명한 이름이 있고 그의 모든 저서들이 남아 있고 이래 있으니까 나도 이렇게 의인이 되고 유력한 사람이 돼 가지고, 성인이 돼 가지고서 저서도 남기고 이름을 남겨서 그 이름이 있는 동안에는 사는 게 아닌가, 살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래서 그런, 얼버무려 가지고서 그런 소망을 가지고 조심 있게 한번 살아보자 하는 이런 사람도 있고, 또 그보다도 더 명철한 사람은 ‘인생이 불쌍하다. 만물 중에 인생이 제일 불쌍하다. 뭐 때문에 나를 인생으로 이렇게 지은 자가 있는가?’ 지은 자에 대해서 원망 불평을 하는 그런 것이 그것이 좀 복음을 모르는, 꿰뚫어 보는 원시자의 모든 견해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게서,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 안 믿는 사람들도 지식이 세상 지식이지마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 지식을 가지고서 이것을 이성으로 비판해 보는 그것이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건데 그마음의 눈으로 보면 땅에 있는 것이 허무하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믿음으로 가질 때에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하는 이 말씀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중생된 사람이요 모든 육체의 생활은 이러니, 25절에 「그러므로」 「그러므로」 이러니, 우리는 영생하는 사람으로 중생됐고 모든 이 세상살이의 번쩍거리는 그것은 그 수명과 그 가치와 무성한 그 생기와 찬란한 그 모든 광채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러므로」 이렇기 때문에 중생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을 그다음에 지금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말을 버리고」 말을 버린다는 말은 이 말만 버리고 그 속에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말 아닙니다. 이 말이라 하는 것은 속에 있는 대로 나옵니다.

속에 있는 대로 나오기 때문에 이 말을 버리면 속에 있는 것이 버려집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공연히 앉아서는 다른 사람이 기니 짧으니 논인 장단이나 하고 다른 사람을 훼방하고 하는 그런 버릇 그런 습관이 꽉 들어 있는 것, 우리에게 악령 악성 악습이 있는데 우리를 제일 넘어지게 하는, 쉬지 않고 역사하는 것은 악습입니다. 우리에게 악한 버릇 있는 그것이 제일 이것이 우리를 계속해서 유혹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훼방하는 말을 버리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런 걸 고칠라고 할 때에 마음에 그런 것이 없을라고서 이렇게 고칠라고 애를 쓰고, 이러는데, 마음에 그런 더러운 것이 있는 것을 없이 할라고 고칠라고 애를 써도 이것은 고쳐졌는지 안 고쳐졌는지 모릅니다. 고쳐졌는지 안 고쳐졌는지 모르요.

그러나 내가 말을 살펴봅니다. 말을 살펴보면은 그것이 속에 있다는 것이 콱콱 나옵니다. 마치 꾸중물 도가지를 가라앉혀 놓으면 그것도 말간 참 먹는 음료수같이 그렇게 깨끗하지마는 주 흔들어 놓으면 속의 것이 막 떠오르면은 굉장한 오물인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내가 말을 살펴 보면, 내 속에는 깨끗했다 싶은데 그 말에 푹푹 그게 나옵니다. 그러기에, 「말을 버리고」 하는 말은 말만 하지 말라 말이 아니고 이 속에 이런 것들을 다 버리라 이랬습니다. 이 속에 이런 것들을 버리라.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갓난 아이들은 젖을 사모하는 것, 갓난 아이는 다른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젖만 사모합니다. 갓난 아이는 뭐 어머니가 좋다 그런 것도 모릅니다. 그거 오줌을 싸서 축축하면 이게 웁니다. 너무 뜨거우면 웁니다. 그거는 본능적으로 더우니까 배고프니까 하는 것이지 아이가, 그 갓난 아이가 항상 원하는 것은 젖밖에 없습니다. 젖, 젖만 사모합니다. 갓난 아이는 젖 외에는 모르고, 젖 외에는 모르고, 젖 외에는 좋은 것도 모르고 소원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젖만 사모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순전한 젖은 뭐인가? 순전한 젖은 거짓이 하나도 없고 깨끗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젖,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도 거짓부리가 없고 깨끗하다. 하나님의 지식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은 영감을 말한 것이요, 영감.

진리와 영감을 네가 사모해라. 진리와 영감만 네가 자꾸 원하고, 사모하고, 또 그것이 너에게 제일 필요하고 좋다는 것을 자꾸 연구해서 이라면은, 순전한 젖과 신령한 젖 이 외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거 외에는 나중에, 사람들이 몰라 그렇지 이 세상에 온갖 지혜와 지식이 있어서 사람들은 모두 지식 만능같이, 말세가 돼갈수록 지식의 이 가치성을 높여 가지고서 뭐 어떤 걸 팔아서라도 지식을 가질라고 애를 씁니다. 지식을 가졌는데 명철한 사람이 인간 지식의 통계를 쭉 맞추면, 그 사람이 뭘로 망했느냐? 그 사람이 뭘로 덕을 이루었으며, 뭘로 다른 사람을 가해해서 다른 사람을 해쳤으며, 뭘로 자기가 희생해야 될 희생을 안 했으며, 자기가 제물이 되어져서, 죄의 값을 받으면 그게 없어지는 것인데, 이제 자기의 모든 나쁜 그것을 다소라도 굴지를 메워서 나쁜 것의 댓가를 내서 그 나쁜 것이 조그만치라도 좀 헐어지고 줄어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 해할 그것을 조그만치라도 덜 하고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자기의 생애가 완전자 심판 앞에 드러날 때에 다소라도 벌받을 것은 줄어지고, 또 남에게 해해서 복수받을 것은 줄어지고 하는 그것이 뭘로 되느냐? 아무것도 없는 저능자, 아주 무식한 자, 등신자, 다른 사람에게 일생 동안 꼬여도 꼬인 줄을 모르고, 착취를 당해도 착취 당한 줄 모르고 그런 자가 오히려 나았다.

인간의 그 모든 이 안다는 지식, 이 지식과 또 지혜와 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이것이 이 세상의 처세의 능력이요, 기술이요, 이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해 가지고서 이걸 자꾸 기릅니다. 이것을 기르는데 그 기르는 그것이 얼핏 보면은 이 세상에서 그것이 자기가 사는 데에 아주 필요한 실력이라고 인정이 돼지지마는 모든 인류의 주인이 되는 공평을 가지신 하나님을 몰라도 그런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지금 모든 걸 판단한다, 이렇게 안 믿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볼 때에 그것은 다 자기에게 해가 되지 복된 게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통계하는 말이 있습니다. 못난 부모는 자식의 거름이 되고 잘난 부모는 끝은 없다 이랍니다. 영웅의 끝은 없다. 물론 성현 군자의 끝은, 의인의 끝은ㅡ안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겁니다ㅡ있지마는 영웅의 끝은 없다 이랍니다. 영웅의 끝은 없다. 또 ‘권불십년이라’ 권세는 십 년을 가지 않는다.

이것이 모두 다 통계로 맞취 가지고서 하는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사람들이 자꾸 자기를 지금 요한계시 18장에 보면은 말세에 인간들이 멸망을 받는데 멸망받는 그 죄악을 똘똘 뭉쳐서 한 말로 말하기를 그래 말했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대로 갚아 주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말세에 멸망받는 그 죄악을 간추려서 짜고 짜고 해 가지고서 제일 속에 알맹이 남아 있는 알맹이를 말하면은 자기 중심이요 자기 위주라 그말이오. 그것이 원죄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말 버리라 하는 말은 말만 버리라 말이 아니고 그 속에 알맹이 버리라 말입니다. 말 버리다 보면은 알맹이가 버려져요.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이 말은 골로새서 3장 1절에 ‘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 말은, 네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흔적이 너희에게 있으면, 네가 아는 대로의 ‘나도 중생됐다. 나도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다. 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다.’ 고것을 네가 자인했으면 이와같이 해라 그말입니다. 중생돼도 자인 안 된 사람이 있지만 자인 안 된 사람에게는 말해 봐야 안 들을 터이니까 자인되면은, 네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런 것을 버리고 갓난 아이와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랬는데, 지금 이 번역에는 이랬는데 구역에는 도의 젖을 사모하라 이 도란 말을 해 놨습니다. 안 해도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 했으니까 그것은 의례히 하나님의 이 도의 젖이지 딴거는 아니지마는, 그전에 번역한 데는 고렇게 해 놨기 때문에 어린 사람들도 알기가 좀 쉽도록 뜻을 번역해서 그래 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계속할 터인데,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우리 속에 이 모든 더러운 것을 버리지 안하면 아무리 주님을 사모할라 해도 사모가 안 됩니다. 지난 주일에 경건을 연습하라 하지 안 했습니까? 경건을 연습하라. 하나님을 향망하는, 하나님을 향하는 지식을 네가 자꾸 배우고 읽고 해서 그 지식이 넓게 깊게 자꾸 세밀하게 더 건전하게 이렇게 하고, 또 네 자신이 하나님의 이 진리의 말씀을 네가 자꾸 인식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둘째로는 이 지식이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이 지식이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어데 배라고? 이 지식이 어데 배라고? 우리 마음에 꽉 배어서 베쪼가리 물들듯이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꽉 배게 해라. 그다음에는 네 몸에 배게 해라. 경건을 연습하라. 이거는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연습하라.

이랬는데, 오늘 아침에도 그 말씀과 꼭 같은 말씀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대한 지식, 하나님을 내가 바라보는 지식을 내 마음에 내 몸에 가득 배도록 하는 데에는 속에 뭐이 담겼으면 안 됩니다. 이거 비워야 됩니다. 이거 비워야 되지 비우지 안하면은 이거 들어오지를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이런 것을 다 툴툴 비워 내 버려야 하나님의 도가 사모해지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지고, 그라고 나면은 자기가 받은 증거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연습하는 이것을 오늘도 연습하는 연습합시다. 자꾸 그래요. 입으로 익히면, 입으면 익히면 마음에 익혀집니다. 마음으로 익히면 자기 행동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래서 자꾸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은 여게도 같이 계신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은 죄와 불의를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못 보기 때문에 죄인 우리를 구원하는 데는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대신 형을 받으셔서라도 했는데 이렇게 죄 있는 것을 묵과 할 수 없다.’ 이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꾸 생각해서,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되풀이하고 자꾸 생각해서 그저, 무엇을 하면서 ‘그라면 우리는 일도 못 하고 등신되면 어짤라고?’ 그럴수록 이 내 이성이 깨끗하고, 내 정신이 깨끗하고, 마음이 깨끗하고, 총명이 깨끗하고, 내게 있는 정기가 깨끗하기 때문에 그래 보면 그럴수록 내 정신이 까랑까랑하기 때문에 정신 없이 뭐 일 년 내내 생각하는 것을 한번에 생각하면 다 알 수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한목 생각해서 다 알게 되니까 망할 길을 안 가고, 살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짜든지 자꾸 사모하는 요 일을 합시다. 내일 아침에 계속 할 터인데, 요 말씀을 듣고 모든 악독이 뭐인가, 궤휼이 뭐인가, 외식이 뭐인가, 시기가 뭐인가, 비방이 뭐인가 그것을 좀 생각하고, 그것을 우리가 자꾸 버리기 힘쓰고, 버리는 것도 자꾸 하나님 말씀을 자꾸 사모하면 이게 버려집니다. 이것만 버릴라 하면 어째 됩니까? 이것만 버리고 하나님의 도를 사모하지 안하면은 집을 깨끗하게 쓸고 난 다음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제 ‘아, 됐다.’ 하고서 귀신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와 가지고서 들어오니까 후환이 더 불안하다 했습니다. 이런 것 죄만 회개하는 것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내가 깨달아 생각하면서 죄를 회개해야 되지 죄만 회개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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