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2 15:10
순생없이는 순교없다
1987. 11. 3. 새벽 (화)
본문:고린도전서 9장 23절∼27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복음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 얻는 이것이 복음인데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함이라” 그러면 주님이 이렇게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세 가지 운동 이 운동을 하는데 자기가 노력하는 것이 이 운동이 되지 안하고 다른 것이 될까 두려워해서 모든 것을 이 복음 위해서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밤에 ○목사님이 사랑을 말씀했는데 모든 것이 사랑에서 발원돼 가지고 그것을 결과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것이 정상의 질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생활은 복음 생활이요 또 우리가 하는 모든 운동은 복음 운동입니다. 그러나 복음 운동이 되지 안하고 복음 운동에 도리어 대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 에베소 교회가 모든 면이 그렇게 다 구비하고 아름답지마는 하나님께서는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는고로 어데서 떨어진 것을 네가 생각하라” 그러면 중심이 하나님이 구속의 큰 사랑인데 거게서부터 발원돼 가지고 되는데 거게서 발원되지 안하고 눈을 돌려서 다른 것을 봤습니다. 처음에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시켜서 중생시킨 후에 우리를 예수님 믿도록 부를 때에 그때에 우리가 중생된 자로서 처음에 부름을 입어 가지고서 신앙 생활을 할 그때에 우리를 중생시킨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능력이 역사해서 거게 피동된 그것을 우리가 경험했는데, 거게 피동된 그 경험을 했는데 거게 피동되는 그것이 뭐인고 하니 생명이 사는 것이요, 새사람이 사는 것이요, 영생이 사는 것인데 거게 피동되는 이것을 중점으로 다뤄서 애를 힘을 써 가지고서 거게서 피동되는 그 일이 점점 견고해져 가지고 거게서 모든 행동이 나타나야 되는데 그만 이 줄은 끊어버리고 이런 거 저런 거 다른 모든, 생명이 역사하는 일에만 중점 두고 생명에 그 근거를 두지 안했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는 그리 되면 촛대 옮기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게,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 이 모든 것이라는 데 대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이라 말은 뭐 한 가지 두 가지 열 가지가 아니고 자기의 생애에 하나도 빠지지 안하고 전부를 다 총칭해서 모든 것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자기가 이 복음 운동을 하기는 하지마는 복음 운동 하는 데에 자기는 몇 가지만 하고 난 다음에 다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서 해야 되는데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서 버릴 거 버리고, 취할 거 취하고, 갖출 거 갖춰서 이렇게 한다고 하지마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갖출 것을 갖춰 가지고서 복음 운동, 복음 생활, 제가 복음 생활 해야 복음 운동 할 수 있는 건데 복음 생활 복음 운동을 한다 할찌라도 그것으로 되는 거 아니고 복음에 참여해야 됩니다. 복음에 동참해야 됩니다.
복음에 동참하는 것은 뭐이 복음에 동참하는 것인고 하니 성령과 물과 피 여게 동행해야 되는 것이지 여게 동행되지 안하고 그저 말로만 가지고 이렇게 하고 몇 가지만 형체만 이래 하면 되는 것 아닙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하나 의롭다고 해 가지고서 그것으로서 전체가 다 의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모든 것’이라는 것은 하나도 빠짐 없이 전 생활, 전 움직임, 전 정신, 전 사상, 전 감각, 전 지각, 전 욕망 전부가 다 합해야 이 복음 생활은 되는 것이지 그저 몇 가지만 이래 간추려 해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복음 운동이 문제가 아니고 참여해야 된다, 참여해야 된다는 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와의 이 동행하는 동행 역사가 돼야 되지 그 동행 역사가 안 되면은 암만 힘써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아무나따나 되는 게 아니고 참 못났든지 잘났든지 자기대로는 자기에게 있는 걸 다 기울여야만 되는 것이 복음 생활입니다.
또 그 다음에 말하기를, 운동장에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여럿이 달음질하지마는 이기는 사람은 하나뿐이라. 우리는 잘못하면 이등도 이겼고 삼등도 이긴 것 아닌가? 이등은 졌다 말이요 삼등은 졌다 말이요 일등만 이겼다 말이오. 이등은 하나에게 졌다 말이요 삼등은 둘에게 졌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기는 자는 상받는 자는 하나뿐인 줄 알지 못하느냐” 다 이겨야 된다 말이요, 여게. 요 말 속에는 다 이겨야 된다는 거라. 열 가운데에 하나만 이겨 되는 게 아니라 아홉만 이겨 되는 게 아니라 열을 다 이겨야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안하면 진 자라 그말이오. 이것도 신앙에 정상적인 표준을 말합니다.
아무리 네가 복음을 위해서 힘을 써도 복음에 참여해야 된다. 복음이 뭐인데? 복음은 피 운동이요 영감 운동이요 진리 운동이라. 피 성령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여게 참여해서 이 운동이 돼야 되지 이 운동이 되지 안하고는 네가 이거 했다 해야 암만 해 봤자, 버리고 힘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여게 참여해야 된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말과 같이 여게 참여해야 된다 말은 이 한 가지로 같이 움직이는 움직임이 돼야 된다. 그게 돼야 되지 뭐 이런 거 저런 거 네가 힘쓰는 게 문제가 아니고 힘써 가지고 거기 참여하는 자가 돼야 된다.
또 네가 달음질하는 데는 이기는 자는 하나밖에 없다. 그 모양으로 네가 이것도 저것도 다 이겨야 되지 거게서 뭐 하나만 이겼다고 되는 것 아니다. 하나에게 진 사람도 진 사람이요 둘에게 진 사람도 진 사람이요 진 사람은 종인 것이지 그것이 무슨 그 이긴 자는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저 사람은 열에게 다 졌구만. 나는 둘에게 졌는데.’ 야 이놈아, 둘에 진 놈이나 열에 진 놈이나 진 놈은 진 놈이다. 진 놈 이긴 놈 그것만 판단할 일이지 뭐 둘에게 졌다 셋에게 졌다 그거 어데 있나? 졌으면 종이고 이겼으면 상전되는 것이지.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네가 하나만 이기는 것을 표준하고 목표로 하라. 둘만 이기는 것 표준하라 그게 아니고 다 이기는 것을 표준한 것이요, 다 이기는 것.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하는 것은 그러면 둘만 이기라 말이요 하나만 이기라 말이요 다 이기라 말이요? 이거 뭐이요? 이거 뭐입니까? 뭐이요? 다 이기라 말이요, 하나만 이기라 말이요, 열만 이기라 말이요, 다 이기라 말이요? 다 이기라 말이라, 다. 다 이겨야 상받지 상 안 받으면 벌이지 딴거 뭐 있어? 상전 안 되면 종이고 종 아니면 상전되는 것인데.
어짜든지 다인데 이거 예수 믿는 건 요렇게 좀 참 까다롭다면 까다롭고 세밀하다면 세밀하고 그뭐 어쨌든지 전체가 되면 되는 건데 수월하게 예수 믿을라 하는 그것이 신앙의 적인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게 속화시키는 것이오. 적이오.
찬송가를 통일 찬송 말고 이 찬송 내놓으니까 비쭉비쭉거리지마는 주님의 심판대 가보면 알아. 그것이 속화의 큰 방지 중에는 성경 잘못 번역하는 그 다음으로는 그것이 속화 방지에 힘이 있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것에 절제하나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것에 절제한다. 무엇이든지 이길라고 하면은 그것을 위해서 전부를 절제하지 안 하면 안 됩니다. 절제라 말은 조절한다 말인데 언제 여자가 수영에, 세계 참피언 됐나요? 아시아 참피언, 참피언이 뭐 나는 모르는데, 참피언이 아마 일등인갑더구만.
그런데 그 여자가 일등을 하고 난 다음에는 ‘나는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이 수영을 하라 그 권할 마음은 없다.’ 딱 참피언 따고 난 다음에는 그만 사표 내놓고 그만 나왔어. 그 여자 잘난 여자야.
그랬는데 그 여자가 간증하는데 보니까 자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어떻게 지도했느냐? 자는 거, 먹는 거, 눕는 거, 또 쉬는 거, 음식 조절을 다, 음식 조절 다 하고 또 구경 가는 거, 뭐 누구하고 사귀는 거, 이거는 물샐틈 없이 전 움직임에 저 혼자 있는 거, 여럿이 있는 거, 접촉하는 거 이거 전체를 다 간섭해 가지고서 그렇게 훈련시켰다.
그런 것도 그렇게 안 하면 안 됩니다. 어데든지 한 군데 김이 빠지면 헛일입니다.
폭탄이 아무리 힘있지마는서도 구멍 하나 거석하면 폭탄 그만 쉬이 바람만 빠져버리지 무슨 폭발이 됩니까? 어데든지 한 군데도 쉬면 안 되는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 절제한다” 그 사람도 수영에 일등하기 위해서 자기 전생활을 거게 맞추어 가지고서 막 했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결혼도 안 하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뭐 노는 것도, 쉬는 것도 한 시간도 일 분도 제맘대로 하지 못하고 꼭 지도하는 사람의 지도에 따라서 요래 해 가지고 그래 했다고. 그 지도하는 사람 그 사람의 그 지도로써 그게 됐어.
이래 가지고 됐다고 이걸 도무지 아무도, 나는 했지마는서도 아무도 하라 소리는 할 마음이 없다고서. 한번 착수했기 때문에 이랬지마는서도 너무 괴롭고 무가치한 일을 거석하기 때문에, 그말 안 해도. 그거 내버렸으니까 무가치한 일로 이렇게 하기가 거석해서, 그 사람 신자든가 모르겠어. 뉘가 봤어요? 믿는 사람 표 없어? 그와같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이기는 일반으로 말해. 일반으로 무엇이든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모든 것을 자기 이기고자 하는 그 목적 그것을 위해서 전부를 다 조절한다 말은 목적을 위해서 목적에 손해가는 거는 전부 다 제거해 버리고 목적에 도움되는 거는 가지고, 목적에 도움이 되는 것도 너무 많아서 안 될 것은 또 적게 하고 적어 안 될 것은 또 많이 하고 이래 가지고 전체에 하나도 빠짐 없이 전체를 이 자기 전투 위해서 다 갖추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그말이오.
절제라 말은 그만 쉽게 말하면 그게 떼고 보태는 것이오. 필요 없는 거는 떼고 또 모자라는 것은 보태고, 많은 거는 떼고 없는 거는 갖추고, 전부를 다 이와같이 하는 거와 같이 신앙 생활은 이래야 된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썩을 면류관, 그 수영에 참피언되는 거, 뭐 권투에 참피언되는 거, 또 달음질에 참피언되는 거 그런 거 그것은 다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
송기정이가 지금도 유명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 그런 것도 유명해.
유명한데 이다음에 참 유명한 거 많을 거라, 인제. 이 경주, 우리가 달리는 이 경주에 참피언 해 놓은 사람은 어떻게 될 건가? 그걸 좀 생각하는 사람이 원시하는 사람이지 그거는 모르고 이 세상에서 뭐 누가 부자다, 장관이다, 목사다, 박사다, 개혁가다, 뭐이다, 유명하다, 무슨 뭐라 하더나? 뭐 노벨상 받았다. 그것도 있지만 그거는 유익이 작아. 짤막해.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썩을 승리를, 없어질 승리를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없어지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없어지지 안하는 거, 쇠해지지 안하는 거, 약해지지 안하는 거, 점점 더 좋아지는 거. “이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우리가 아무리 힘을 쓴다고 해도 힘만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신앙 생활은 전부 달음질 생활이라.
우리 신앙 생활을 달음질 생활이라고 하는 것을 바울은 몇 번이나 말했어. 그러기 때문에 바울의 신앙이 사도들 중에 제일 깨끗한 신앙을 가졌고 위대한 신앙을 가졌어.
달음질 생활이라. 달음질 생활에는 대적이, 싸우는 상대방이 없는 시간이 있습니까? 또 전투가 쉬는 시간이 있습니까? 끝날 때까지는 찰나도 쉬는 시간은 없어. 그거 또 힘을 다 기울여야지.
이 경주로 달음질로 이래 말한 이것은 어떻게 우리가 신앙 생활 해야 되는 그 형태를 말하는 것인데 오늘은 이것에 적이라. 이거 정반대라. 부지런히 가자 하면 쉬고 가고, 한 번 쉬고 가자 하는 사람보다 두 번 쉬고 가자 하는 놈이 낫고, 뭐 두 번 쉬고 가는 것보다 세 번 쉬고 가자는 놈이 낫고, 또 구경을 하나 보고 하는 것보다도 둘 구경하고 가자 하는 놈이 낫고, 열 구경하고 가자 하는 놈이 낫고 이놈이 낫다고 하니! 안 망하고 어짤 건가! 이게 다가 아니야. 주님이 오셔! 주님의 심판 앞에 서야 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이러니까 암만 열심히 해도 소용 없어. 열심만 가지고도 안 돼. 열심은 달음질하듯이 해야 되고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거는 뭐이냐 하면 향방이 있어야 돼. 목적이 있어야 돼.
우리의 목적은 뭐입니까? 주님과 나와 하나되는 것이라. 주님과 나와 하나되는 거. 우리는 죽을 사람이요, 또 부활할 사람이요, 하나님 심판 앞에 설 사람이요, 영원 무궁의 갚음을 받을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과 하나되는 거, 그거보다 더 큰 일이 없어. 주님과 하나되면 전지 전능자라.
진리가 주님과 나와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또 영감이 주님과 나와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주님의 피공로가 주님과 나와 하나되는 데에 방해되는 걸 다 제거한 것이고 하나되는 것을 전부 당신이 대신 다 해놓고 그와같이 믿음으로써 하나되도록 이렇게 해 놨다 말이오. 이거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얼마나 힘쓰고 뭐 얼마나 구비하게 이래 했는데요.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싸우기를, 싸울 때에 아무 상대방도 발견하지 못하고 공중에 대고서 총을 쏘고 공중 대고 활 쏘는 거와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모르고 상대방은 없는데 헛된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싸움인가? 네 대적은 뭐이냐? 네 전투의 상대는 뭐이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그게 싸움의 대상이라. 뭐인데? 내 마음과 몸, 육 말이오. 영은 하나님의 것이 됐지마는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을 악령 악성 이놈이 만날 써.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그놈이 다 쓰고서 이거 제가 점령하지 못해.
내가 점령하지 못해. 중생된 내가 점령한 것은 진리가 점령한 것이요, 영감이 점령한 것이요, 예수님의 피공로가 점령한 거라. 왜? 내가 살아나기를 이 셋으로 살아났거든. 내 힘은 세 가지 힘뿐이거든. 내가 움직이는 건 세 가지로 움직이거든. 이러니까 이 세 가지가 점령하는 거, 이 지금 싸움이 뭐이냐? 내 마음과 몸을 내가 뺏들어서 내게 복종시키는 거, 내게 복종이라니? 중생된 나에게 복종시키는 거, 중생된 나에게 복종시키는 게 뭐인데? 성령이 내 영으로 더불어 함께 하기 때문에 내 영에게 복종시키는 것이 성령에게 복종시키는 것이요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것이라. 이것이 전투라. 전투의 대상이라.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우리 신앙 생활은 하나 가지고 안 됩니다. 전체가 물샐틈 없이 전체가 다 돼 가지고서 신앙 생활 되는 것이지 하나 둘 가지고 신앙 생활 되는 건 아니라.
집도 지을라면 그 집에 대해 구비한 것은 다 재료가 다 갖춰 들어야 되지 뭐 기둥 하나만 떡 세워 놓으면 집이 됩니까, 어데? 기초 하나만 해 놓으면 집이 됩니까? 철근 하나만 갖다 놓으면 집이 됩니까? 모든 것이 다, 모든 것에 절제한다 말은 모든 것이 다 구비해서 모든 면에 다 힘을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 해 보면은 뭐 하나라도 ‘오늘 나는 말에 흠 없이 살겠다’ 만일 이걸 한다고 하면은 아침부터, 말에 흠 없이 살라 하면은 욕심에도, 경영에도, 계획에도, 인간 접촉도, 사물 접촉도, 자기가 성경 보는 것도 뭐 모든 면에 어찌 됐든간에 물샐틈 없이 흠이 없이 그게 다 구비해져야만 하나를 달성하는 것이지 구비해지지 안하면 달성하지 못해.
그러기 때문에 우리 생활은 우리의 언행심사에 움직여지고 접하는 그 전면에 다 힘써 가지고 그 전면이 다 돼야 비로소 우리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완성이 되고 승리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뭐 실컷 놀다가 하고 싶다고 툭툭 부지런히 하면 되는 거 아니라.
어떤 그때 그래 어떤 목사가, 지금 살아 있습니다. 그분이 그때 그 설교할 때 이상한 설교한다 나는 그렇게 봤는데, 대구에 있는 목사요. 대구에 있는 목사님인데 그분이 뭐 지금 미국 갔다더나? 서정은 목사님이 하는데 그래 설교하는 데 그래. 어짜든지 뭐, 그 비유를 하면서 ‘이렇게 애를 먹였지마는 마지막에 자기 몸을 바쳐 버리니까 그게 다 승리야.’ 순교만 하면 그만 된답니다.
순교라 하는 건 그런 거 아니야. 순교는 순생 없는 순교는 절대 안 됩니다. 순생 없는 순교는 안 돼요. 순교라 하는 것은 자기의 전 생애에 모든 것을 다 주님에게 바치고 마지막에 결론 결말로 그 생명이 바쳐지는 것이지 그렇게 되는 것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기독교는 모험의 종교가 아니라. 이건 또 요행의 종교가 아니라. 이거는 뭐 모두가 다 진실해서 철두철미해 가지고서 그 물샐틈 없이 이렇게 세밀하게 전체가 돼 가지고 모든 것에 절제해야 돼. 모든 걸 힘써야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주일학교 반사들은 공과 다 외우시기 바랍니다. 또 지하철 공사 위해서 기도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거 이거 여러분들이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기의 미래를 ‘내 힘으로서는 감당 못 하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붙들고 감당케 해 주옵소서.
주님이 승리케 해 주옵소서.’ 고문과 고형에도 내가 감당 못 할 거 주님이 감당하게 해 달라는 것이오. 독침과 독약을 먹이고, 독약을 먹이면 사람이 변해지지 안해요, 독약을 먹이면? 독침 주는 것도 그 한가지라. 독약을 먹일 때는 누가 제 힘으로 이기겠어? 못 이기는데 ‘이럴 때 주님이 다 이걸 승리케 해 주옵소서.’ 내가 못 하는 거 지금 주님에게 부탁하는 것인데 그때 주님이 신실히 부탁을 들어 주실 터인데 오늘에 하루 삼십 분 기도 하라고 이렇게 매일, 새벽마다 광고 꼭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핑계 못 해. 이다음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대해 피가 깨끗해. 여러분들에게 대해서는 내가 증거는 다 할 거는 했어. 하루 삼십 분 기도 하라 했으니까 한 사람은 다 승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