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선지자선교회 1986년 4월 27일 주일오후

 

본문 : 요한복음 5장 7절∼18절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오전에 다섯 가지 순서로 우리가 계시해 주시는 이 도리에서 오전에 공부했습니다. 이 구원 도리를 주신 이 도리에서 첫째, 둘째, 다섯째까지의 도리를 우리가 여게서 배웠으니 이대로 행하면 됩니다. 이대로 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거짓 선지자가 어떤 사람이 거짓 선지자인고 하니 다른 사람은 구원하면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거짓 선지자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는 어떤 일을 했는가?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병자도 고치고, 여러 가지 기적도 행하고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을 주님 앞에 설 때에 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주님 나를 모른다고 합니까?' 이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거게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여게 23절에 보면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하는 것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3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 행하는 것도 자기 구원에는 상관없고, 또 귀신 쫓아내는 것도 자기 구원에는 상관없고, 많은 병자 고치는 것도 자기 구원에는 상관없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도 자기 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많은 선지자노릇 했다 그 말은 전도도 많이 하고 설교도 많이 하고 부흥회도 많이 인도했다는 그런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게 따지기를 내가 이렇게 모든 일을 했는데 어떻게 주님이 나를 구원하지 아니하시고 모른다고 하십니까 이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때에 내가 밝히 말하기를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본구원은 선택에서부터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런 힘쓰지 안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구원, 건설 구원, 곧 우리 심신이 성화되어서 구원받는 이 건설구원, 행위 구원, 심신구원, 하늘나라의 영광 구원, 기본구원은 생명 얻는 것이요 천국을 얻는 것이지만 하늘나라에 영광이 있고 없는 것은 건설 구원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아무리 설교 잘해도 소용없고, 귀신 쫓아내도 소용없고, 많은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해도 소용없고, 또 여러 가지 능력을 행해도 소용없다, 다만 자기의 건설구원은, 성화구원은 꼭 자기가 이 말씀대로 실지로 자기가 행해야, 본인이 행해야 구원이 되지 행하는 것 외에는 구원이 안 된다 하는 것을 여게 밝히 말씀했습니다. 뭐 알고 다른 사람에게 암만 가르쳐도 소용없고, 백 목사는 많은 사람을 가르치지만 암만 가르쳐 봤자 가르치는 그거 가지고 자기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행한 그것만이 내 구원이 되는 것이지 내가 행하는 것 외에는 구원이 되지 안한다 이랬습니다.

고 말씀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주님이 말씀하신 고 말씀대로 행해야 될 터인데 말씀대로 행하지 안하고 제 생각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아니고 불법이라 말이오. 그거는 인간법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법이 정법인데 인간법은 다 불법이라 그 말이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가라 하면서 물리쳤습니다.

우리가 오전에 다섯 가지 구원 순서를 이 계시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를 자기가 외우는 것도 좋고 기억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외우고 기억하고 하는 것은 첫째는 이대로 행해서 자기 구원을 이루는 데에 유익이 되는 것이고, 다음에는 이와같이 자기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서 다른 사람 구원을 이루는 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행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 구원은 이루게 하지만 자기 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성화구원은 꼭 본인이 행해야 되지 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꼭 행해야 자기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섯 가지 순서 중에 제일 첫째가 우리는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내 현실은 송구영신하는 현실이라. 송구라 말은 보낼 (送)자, 옛 구(舊)자, 맞을 영(迎)자, 새로 신(新)자, 나라에서 그믐날 새고, 과거 그믐날까지는 작년에 속한 것이고 영시부터는 이제 1월 1일 신년에 속한 그 설 때는 걸 가리켜서 송구영신 절기일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옛것은 다 보내 버리고 새것을 맞이한다 하는 그 말을 송구영신 그 설을 말합니다. 세수하는 것.

우리는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자기가 이 시간, 이 시간은 내게 송구영신워 이 절기다. 다시 말하면 이 다섯 가지를 배웠는데 이 시간에 이 삼십 팔 년된 병자의 이 형식을 통해 가지고 내게 구원 도리를 가리켜 주셨으니 나는 이 구원 도리를 가지고 언제든지 나는 이 시간에도 나는 새로워질 수 있고 깨끗해질 수 있고 온전해질 수 있고 고침을 받을'수 있다 하는, 언제든지 고 현실은 자기는 소망 있는 그 현실이요, 고칠 수 있는 현실이요, 깨끗해질 수 있는 현실이요, 더러운 것을 벗을 수 있는 현실이라 하는 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잘못됨을 가지고 끙끙 앓고 있는 그것도 좋은 것 같지만 좋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같이 그렇게 후회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팔고 난 다음에 가롯 유다가 얼마나 후회가 됐던지 그만 그 배가 갈라져 죽었습니다. 못 견뎌서 자살해 버렸습니다. 이래도 그 후회가 의가 되지를 못하고 그는 멸망했습니다. 그럴 때에 만일 주님에게 이 모든 잘못을 담당하시고 잘못됐습니다. 주여 이 시간부터 나는 새로 고쳐서 새사람 되겠습니다. 하고 소망 가졌으면 그 가롯 유다는 결단코 죽이지 못합니다.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송구영신의 절기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여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넘어졌을지라도 너는 '송구영신이라, 나는 이 시간에 다시 일어나겠다' 하고 다시 일어나라. 그라면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면 칠칠은 사십구, 사백구십 번 아닙니까? 사백구십 번 아니라 사천구백 번도 좋습니다. 사만 구천 번도 좋습니다. 어쩌든지 자기가 넘어졌을 때에 즉시 '나는 이거 잘못했다 나는 일어서겠다' 하고 일어서는 그게 문제입니다. 일어서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신 것이지 담당치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담당했는데 내가 다시 죄를 범했을 때에는 그 죄는 예수님이 담당한 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서, 나는 이 시간까지 이거 이런 죄를 지었지만 나는 다시 새롭게 고쳐서 새 걸음 걷겠다 하고 일어서는 그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나는 새로와질 수 있는 현실이요, 깨끗해질 수 있는 현살이요, 고칠 수 있는 현실이요, 주홍같은 죄인이라도 의인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요 소망을 가지고 굳게 서는 요것을 첫째로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송구영신의 이 절기.

또, 둘째로는 그렇게 그 성전 안에는 외부에서 볼 때는 사람들이 거게는 다 거룩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지만 뭐 흉측한 각종의 병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교회 다니면 모두 다 예수 믿으니까 다 성도들이요 그는 참 깨끗한 의인들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이 있지만 교회 안에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흉측한 살인 강도 같은 도적들이 많고 아주 잔인 무도한 악한 자들이 많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예수님이 찾아가실 때 그중에 제일, 병자 중에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제일 중한 자였습니다. 그러면 제일 중한 자에게 예수님은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그것이 둘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교회라는 것은 의인도 있지만 참 굉장한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가 찾아서 자기가 죄인 된 것을, 죄인 죄병 말이오. 이 팔이 이거 손가락 하나 없어졌으면 이거는 손가락 병신이지만 사람병이라 하는 것은 첫째 영 병이요, 둘째로는 마음병이요, 셋째로는 고기덩어리병 이 세 가지 병이 다 사람병인 것입니다. 그 병자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제일 중한 자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주님이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요 진리를 우리가 똑똑히 깨닫고 주님이 이렇게 이 형식 계시를 이렇게 다 예 정하셔 가지고 요대로 만들어서 요런 형식으로 다 요 형식으로 요렇게 다 구비해서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환자 중에도, 병신 중에도 제일 못쓸 병신에게 주님의 사랑은 먼저 간다 하는 그것을 여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전에 약간 우리 형편을 말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는 제일 약자가 왕입니다.

제일 병신이 모든 인기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일 강한 자는 종이 됩니다. 제일 구비하고 훌륭한 사람은, 그 사람은 거게서는 다 무시를 받고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주 이 큰 아들이 잘나고 구비하고 똑똑합니다. 이 병신 이게 다 죽어갈라고 꼴막꼴막거리는데 거게 전부 그 온 가족의 사랑은 집중되고 그 만일 큰 아들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 병신 그걸 만일 뭐 그만 울고 억지를 지기는데 억지 지긴다고 만일 한차리 때렸다가는 막 아버지 어머니가 달라들고 막 동생들도 달라들고 야단일 겁니다. '네가 지금 건강하다고 네가 동생을 그렇게 하느냐?' 뭐 굉장할 것이오. 그게 제일 세력이 셉니다. 그라고 제일 잘난 아들은 뭐이, 제일 잘난 아들은 너 물 떠 오너라, 또 일거리 있으면 너 밥 좀 해라, 너 설겆이 해라, 야 저 시장 좀 봐 가지고 오너라. 또 너 동생이 지금 똥을 싸 놨으니까 이거 좀 가서 빨아 가지고 오너라. 이제 건강한 놈은 그래 시킨다 말이오. 그게 사랑의 나라입니다. 사랑의 세계요. 그렇기에, 사랑의 세계와 사항이 없는 무정한 그 세계와가 다릅니다.

그러기에, 요렇게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주님이 제일 먼저 찾아오신 것은 그것은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요, 사랑의 심정이요, 하나님의 이 교회는 사랑의 세계라 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도 사랑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신 여기에서 우리 깨달을 것이 무엇인가? 자기의 단점이나 부족점이나 자기의 희망 없는 그런 모든 아주 그 못쓸 점 그런 것 때문에 낙망하지 말고 더 하나님은 너를 불쌍히 여기시니까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타나고 달라붙어라 하는 그것을 여게서 가르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에는 절망은 없는 것입니다.

또, 셋째는 뭐입니까? 셋째는, 셋째는 뭐입니까? 한번 말해 보이소. 셋째는 몇 가지를 부인하라 했습니까? 네 가지를 부인하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는 우리들은, 구속받은 우리들은 이 모든 자기 형편과 사정에서 주님의 도우심의 구원을 받아야 될 터인데 구원받는 데는 셋째로는 뭣을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되느냐 하면 네 가지 부인하고 버리라 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첫째 버릴 것은 나는 제일 이렇게 중한 자니 나는 희망 없다 하는 그런 걸 버려라 말이오. 버려야 됩니다. 그거 버려야 되고, 또 둘째로는 뭘 버려야 됩니까? 뭘 버려야 됩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다. 도와 주시는, 주님 앞에서는 주님이면 다 되는데, 뭐 도와 줄 사람이 없다. 또 뭐입니까? 다른 사람이 내가 갈라 하는데 먼저 들어가서 방해한다. 또 하나는 뭐입니까? 과거, 종전 모든 그런 모든 방편 다 이 세상에서 이제까지 수천 년 쓰고 온, 수천 년 동안 써 나온 그런 방편 다 포기해라. 그러면 그 과거 종전 방편적으로 따져 보면 아무 희망 없는 사람이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그런 것도 다 상관치 말아라. 제일 중한 자인 것도 상관치 말아라. 다른 사람이 돕지 않는 것도 상관치 말아라.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것도 상관치 말아라. 그러면, 그런 것은 다 어째야 됩니까? 그런 것은 다 주님에게 맡겨 버립니다.

과거의 방편적으로 봐서는 뭐 아무 쓸모 없는 자라 할지라도 뭐 그것도 또 주님에게 다 맡겨 놓고 또 자기 제일 자기가 제일 병신이고 희망 없는 자라 하는 그것도 주님에게 다 맡겨 놓고 돕는 사람 없는 것도 맡겨 놓고 방해하는 것도 맡겨 놓고, 나는 그거 모릅니다. 그거 다 주님이 다, 너는 생각지 말아라 했습니다.

생각지 말고, 그런 거는 너는 생각지 말아라. 그것이 셋째로 우리에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또 네째로는 뭐입니까? 낫고자 하는 것. 네째로는 낫고자 하는 것입니다.

낫고자만 하면 됩니다. 낫고자 하는 것. 오전에는 그거 많이 해석을 했지만 오후에는 해석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낫고자 하는 것.

그러면, 우리 병중에는 세 가지 병이 있는데 하나는 영의 병이니까 영병은 무슨 병이냐 하면 영이 심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그것이 영의 연약성의 병입니다.

둘째로는 그 마음이 병들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어 주신 마음대로 고대로 정상적으로 있지 안하고 그 마음이 변질 됐다 말이오. 마음이 변질돼서 병이 돼 버렸어. 이거 팔도 변질되면 병 아닙니까? 이 팔은 이래 오그러지는데 이 팔은 퍼들트리면 그만 오글트리지를 못합니다. 이거 병신 아니겠소? 정상이 그만 이상이 돼서 변질이 돼 버리면 그거 병이라 그거요. 그러면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지어 주신 그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마음인데 이 마음에 못쓸 병이 많이 들었다 말이오. 그 병에 대해서 많이 말했지요.

또 몸에도, 몸에도 이목구비 수족이 병든 병이 있고, 쪼 거게 신경이 병든 병이 있고 뭐 우리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모르지만 그 속에 병든 그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몸에도. 그 몸이, 몸이 병이 들면 그 사람이 미치괭이노릇도 하고, 또 광기도 내고, 이 마음에서만 아니고 몸에 이 모든 신경이나 모든 기관들이 바로 되지 안하면 그래 돼집니다.

이러니까, 이제 우리에게 병든 것은 세 가지 병이 있는바 세 가지 병 중에 제일 큰 병이 무슨 병입니까? 제일 큰 병이 무슨 병이오? 제일 큰 병이 무슨 병입니까? 네? 마음병, 아니오. 영병입니다. 영병 하면 영이 죄를 짓는가? 죄 안 짓습니다. 영병은 무슨 병입니까? 영이 자기의 심신을 잘 다독거려서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잘 지배하지 못해서 마음 이놈이 뿔룩 이 마음대로 이래 하고 저 마음대로 저래 하는 그것이 제일 병인데 영이 자기의 마음을 잘 달래고 다스려서 이 마음이 영의 마음이라면 그저 뭐 죽는 데까지라도 복종 복종 나오고, 몸도 복종하고 이렇게 자기 심신을 잘 통치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영이 된다면 그게 제일 중합니다. 뭐 그만 영병만 완전히 나아서 그 영이 뭐 심신을 잘 통 치한다고 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 다음 병으로 큰 병은 마음병이 큰 병입니다. 그 다음 병은 이제 몸 고기덩어리의 병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낫고자 하는 것이 제일, 낫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것이 그것이 몇째입니까? 네째, 네째, 낫고자 하는 것.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삼십 팔 년된 병자가 그 수십 년 거게 병막에 누웠었지만 아침마다 늘 꿈꾸는 것은 그만 세월이 지나가 버리니까 낫고자 하는 거는 생각지 못하고, 처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대개 내가 예수 믿어 가지고 옳은 사람이 한번 돼 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하지만 교회 나와 놓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만 무슨 병이나 낫고 사업이나 잘되고 또 부자나 되고 이런 것만 생각하지 자기가 인간병을 고쳐서 참 한번 사람이 돼 봐야 되겠다 하는 그런 욕망 가지는 사람은 별로 많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네째로 중요한 것은 네가 사람병 고치기를 소원하고, 사람 병을 고치기를 네가 원해서 사람병 고치는 데다가 네가 전심 전력을 기울이라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네째로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는 뭐, 이제까지는 욕심은 전부 땅에 있었습니다. 살림살이 뭐 뭐 별별 더러운 욕심도 많애. 아무것이가 그런데 나도 좋은 옷을 그런 걸 한번 좀 해 입었으면 좋겠다, 이놈이 들어서 하루 종일 차지합니다. 옷. 또 어떤 사람은 머리를 요래 볼까 요래 볼까 요래 볼까 이놈이 또 그래 가지고 또 며칠 고민을 줍니다. 그러니까 항상 욕심이 땅에 있는 것만 욕심내지 내가 인간병을 고쳐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 만물에게 봉사할수 있는 사람, 만물의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을 사람, 주님의 보좌 우편에 앉을 수 있는 사람 요 사람 돼야 되겠다 하는 요 욕망을 가지는 요 사람만치 못 합니다.

제가 OO교회 집회를 갔는데 가니까 거게 대자로 글을 써 놨습니다. 써 놨는데 말하기를 '이 글씨를 누가 썼느냐?' 내가 묻기 전에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글씨는 주기철 목사님이 썼다 이라면서 거게 하나 그렇게 써 놨습디다. 써 놨는데 거기 뭐라고 쓰였는고 하니 '나는 천하를 차지하는 것보다 주를 위해 죽겠노라' 하는 그 말을 거게다가 써 놨습디다. 주를 위해서 죽겠다는 그거 참 대단한 좋은 포부입니다. 그거와 나는 낫고자 한다,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이 되어보겠다 하는 이것이 그 소망과 비교하면 중량이 어느 게 큽니까? 전자가 큽니까 후자가 큽니까? 어느 게 큽니까? 온전한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소망이 거기다 비해서 얼마나 큽니다. 네?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자기가 사람병을 고쳐서 흠없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요 욕망을 가지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만 가지다 보면, 가지다가 보면, 의례히 비판적으로 가지지요. 가지지만 실지로 생활하다 보면 오늘은 이 사건이 있으니까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나, 저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나 자꾸 사건 처리하는 그런 것만 자꾸 우리에게 생각이 나지지 그만 사람병 고치겠다는 그 생각은 잊어버리기 쉽다 그 말이오. 또 이라면 요번에 대구 집회가 있으니까 집회 갈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또 그런 것, 자꾸 이런 당면한 이런 모든 사건에 그 마음이 거의 전폭을 차지하고 있고, 나는 사람병을 고쳐서 사람돼 보겠다 하는 이 마음이 우리의 전심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많다 그 말이오.

네째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사람병 고치기를 원하는 여기에 전정신과 마음이 집중되고, 우리의 전욕심은 여게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자, 사람병 고쳐서 하나님같이 온전한 사람되기를 원하는 이 소원을 자기 일생의 남은 때에는 자기 전 욕심과 전 심신을 기울여서 주력하기를 원하고 이렇게 하고 싶은 사람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네. 또 이제 이렇게 하기로 작정하는 사람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네. 한번 해 봅시다. 하면 됩니다. 하면 돼요. 안 되면 또 새로 하지요, 뭐.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실패해도 또 일어서라 했으니까 되지 않습니까?

다섯째는 뭐입니까? 예? 다섯째는? 예, 이 낫고자 하는 이 사람이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 제일 행복을 가졌습니다. 제일 기쁨도 가졌고 소망도 가졌고 인기도 가졌고 모든 사람에게 주목도 당했고 좋기도 제일 좋았고 기쁘기도 제일 기뻤고 그만 그 성전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현재에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섯째로 기억할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뭐 명예에 대한 욕망도 있고, 지위에 대한 욕망도 있고, 학력에 대한 욕망도 있고, 또 이런 모든 대교회를 일으키려 하는 그런 데 욕망도 있고 오만 욕망이 다 있지요. 물질에 대한 욕망도 있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겠다는 그런 욕망도 있고 다 좋지만 모든 욕망보다도 나는 이제 사람병 고쳐서 다시 병이 하나도 없는 것, 영과 마음과 몸에 병이 하나도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나는 치료받겠다. 이 사람이 제일 행복 누리는 사람이요, 희망 있는 사람이요, 성공하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에게 존대 받는 사람이요, 주목을 끄는 사람이요, 인기를 바로 혼자 집중하는 사람이요, 제일 기쁘고 즐거운 평강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다섯째로는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오전에 우리가 공부한 것입니다.

이제 여섯째로는, 여섯째로는, 그러면 사람병을 고치는 데에 예수님께서 사람병을 고쳐 주시는 그 고치는 방편이 어떠한가 그것을 이제 여섯째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병 고치는데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고 하니 먼저 낫고자 하는 욕망을 가져라 하는 그것을 먼저 말씀해 놓고 이제 실제로 그 병을 치료하시는 데 있어서는 첫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첫째 일어서라 했습니다. 일어서라 했어. 첫째 일어서라 했어. 일어서라.

그러면, 일어서기를 과거에도 일어설라고 하지를 안해서 못 일어섰습니까, 일어서고 싶지 안해서 일어서지 못했습니까, 일어서고 싶기도 했을 것이고, 일어섰으면 좋겠다고도 싶었고, 못 일어서서 안타깝기도 했고, 또 일어설라고 뻐득거리기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 그 앞에 섰습니다. 삼십 팔 년된 병자 앞에 주님이 섰습니다. 그 삼십 팔 년된 그 병자를 고쳐 주실라고 주님이 찾아오셔서 섰습니다.

역사에 인간들이 인간병 고쳐 보겠다고, 석가모니도 인간병 고쳐 볼라고 일생을 노력한 사람이요, 뭐 공자니 맹자니 노자니 하는 사람들도 다 그런 사람들이요, 소크라테스니 그런 사람들도 뭐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인데, 과거에는 모든 사람이 고쳐 볼라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온전한 사람으로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셨고 예수님이 우리를 온전한 사람 만드실라고 찾아오셨기 때문에 지금은 됩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옛날은 안 됐는데 그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예수님이 그 앞에 찾아와 섰기 때문에 됐지 예수님이 안 섰었으면 다른 사람이 가 가지고 삼십 팔 년된 병자에게 일어서라, 자리를 들어라, 걸어가라 한다고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말씀하신 이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된다 그 말이오.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 가지 대속을 이뤄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셔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우리는 뭐입니까? 죄인들입니까 의인입니까? 자신이 없는 모양이네요. 자,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의인입니다.

그러면 의인이라는 말을 해야 됩니까 의인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만 할 자격 없어서 하지 못 해야 됩니까? 의인이라는 말은 못 합니다. 의인이라는 말하면 욕을 얻어먹습니다. '. 야, 이놈아 의인은 무슨 의인, 네까짓 놈이 무슨 의인 네까짓 놈이 무슨 의인? 막 이래 가지고 공박당해 큰일납니다. 이러니까 의인은 의인지만 한 번도 의인이라는 소리도 한 마디도 못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된 것을, 의인된 것을 입으로 나타내지도 못하고 우리가 의인된 것을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뭘로 나타내야 됩니까? 의인 생활로 나타내야 됩니다. 의인 생활로 나타내야 돼요. 의인 생활은 어떤 게 의인 생활인가? 의인 생활은 하나님의 노를 끼치지 않는 것,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이 의인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의인 생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생활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생활을 하는 이 두 가지 가지고 의인이라는 것을 우리 생활 가지고 나타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의인입니다. 홈과 점이 없는 의인입니다.

다윗이 시편을 기록할 때에 '나는 홈과 점이 없는 사람입니다. 완전한 자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홈이 있는가 찾아보십시오. 내게 뭐 잘못된 게 있습니까? 한번 심사해 보십시오?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써 의인된, 자기의 의인된 이 구원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입니다. 의인이지만 입으로는 의인이라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갑자기 의인이라 하면 욕 얻어먹지 그게 인정되지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의인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또 지금도 의인이라 하다가 내나 의인이라고 하면서 죄인 생활 하고 있기 때문에 의인이라 이 소리를 못 하지만 우리가 의인으로서 마음대로 할 일이 있으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의인인데 의인으로서 마음대로 할 일이 있으니 마음대로 할 일 두 가지 있는데 뭐입니까? 그것이 의인 생활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의인 생활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의인 생활은 마음놓고 암만 해도 괜찮아요. 의인 생활은 암만 해도 괜찮지 의인 생활한다고 뉘가 뭐라 할 사람 없고 뭐라 해 봤자 상관없습니다.

의인 . 생활은 담대히 할 수 있다 말이오.

의인 생활은 뭐인가? 의인 생활은 두 가지가 의인 생활인데 하나는 주님의 노를 끼치지 않는 것이 의인 생활이오. 주님을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이 의인 생활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의인 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인됐는데 하나님의 의가 이 두 가지 가지고 됐습니다.

하나님의 노를 다 없앤 것이 하나님의 의의 반쪽이요, 하나님을 만족하게 기쁘시게 한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의의 반쪽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노를 다 풀어 없앤 것과 하나님을 완전히 기쁘시게 한 이 두 가지가 이재 하나님의 의가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의인된 것이 이 두 가지로 된 의인인데 우리 의인 생활은 이것은 이 두 가지가 의인 생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 생활을 하는 그 의인 생활의 법칙이 뭐인고 하니 법칙은 신구약 성경이 의인 생활의 법칙입니다. 의인 생활의 법칙인데, 그러면 신구약 성경은 의인 생활의 법칙이면 그 법칙은 뭐인가? 그 법칙에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할 때에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할 때에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의인 생활입니다.

그러면 의인 생활을 우리가 얼마든지 해서 나중에 내가 의인이라고 말하지 안해도 다른 사람이 '그는 의인이라.' 자기가 죽기 전에 다른 사람이 의인이라고 말하면 참 그는 영광스러운 일이요, 살아 있을 때는 의인이라고 하지 안해도 죽고 난 다음에 의인이라고 그와 같은 의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그것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이 삼십 팔 년된 병자가 주님 앞에 섰기 때문에 주님이 낫게 하시는 이 치료 방법 셋을 말씀했는데 셋을 말씀한 대로 행하니까 됐습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섰기 때문에 되는 것이지 주님이 안 섰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세 가지로 인간병 완전 치료되는 것을 세 가지 방편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세 가지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은 내 앞에 서서 계시는 주님이 세 가지 방편으로 말씀하실 때에 고대로 그 삼십 팔 년된 병자가 해라고만 하면 되도록 하시는 그 능력을 책임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책임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어설라 하니까 일어서져 버립니다. 자기를 들라 하니까 들어졌습니다. 걸어갈라 하니까 걸어가졌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지금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의인 만드신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이 치료법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치료법으로 말씀하신 이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말씀이 꿈에 보입니까, 귀에 들립니까, 공중에서 소리가 나옵니까 우리를 완전한 사람으로 인간병 고치는 이 치료 방법의 말씀을 해 주시는데 말씀 가지고 고치지 딴거 가지고 고치지 않습니다. 말씀을 해 주시는데 이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꿈에 있습니까, 환상에 있습니까 음성을 듣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신구약 성경. 네. 신구약 성경 말씀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의를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행위와 우리 사람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신구약 성경에 주셨는데 이 말씀은 몇 가지 종류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종류로 말씀해 주셨습니까? 두 가지. 네. 하나는 하지 말라는 것 하나는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하라는 것 하면 온전한 사람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일어서라 하는, 일어서라 하는 그 일어서는 것이 어떤 게 일어서는 건고 하니 병신으로 앉았던 것이 주님 말씀을 따라서 이제 병 고치는 방편으로 일어섭니다. 일어서니까 병 고쳐지는 것 아닙니까? 삼십 팔 년된 이 병자가 일어서면 병이 고쳐지는 것 아니요? 일어서니까 자, 자꾸 일어섭니다. 일어섭니다.

일어섭니다. 일어섭니다. 병이 고쳐집니다. 고쳐집니다. 일어섭니다. 일어섭니다. 다 일어섰습니다. 그라면 병 다 고쳤습니까 안 고첬습니까? 다 고쳤다 그 말이오.

이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해 주신 이 말씀대로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고 하라는 것을 해서, 시작해 가지고 한 마디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하라는 것 하고, 하루 동안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하라는 것을 하고, 하루 동안 하고 또 하루 동안 또 하고 하고 이틀하고 그래 자꾸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고 자꾸 이렇게 이 생활을 계속하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면 그 사람은 이 병신 생활입니까 의인 생활입니까? 의인 생활입니다. 그게 낫는 것이오. 자꾸 이래 하다가 보니까 나중에 일어섭니다.

그러면, 일어설 때에, 일어설 때에 그만 일어서 해 뻣 일어 섰습니까, 일어설 때에 이제 뻐들뻐들뻐들하며 차차차차 이래 또 인제 조금 일어서고 조금 일어서고 쭈욱 일어나 쭈욱 일어섰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예? 일어서기를 대번에 이래 있다가 이래 일어섰겠습니까, 이래이래 천천히 천천히 이래 자꾸 일어서서 일어섰겠습니까, 어떻게 일어섰겠습니까? 천천히 일어섰겠소 번개같이 '일어서서 걸어가라.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일어서라 하니까 푹 이랬겠습니까 이제 이리 이래이래, 해 일어섰겠습니까, 어떻게 일어섰겠소? 설설 일어섰올까요 번개같이 빠뜩 일어섰을까요? 설설 일어섰다 그거요. 우리에게 형식 계시라.

형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루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 이틀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 말씀대로 지키는 거는 두 가지 하는 것이 말씀대로 지키는 것인데 하지 말라는 거는 안 하고 하라는 것 하는 것, 그것이오. '거짓말 하지 마라,' 이거는 거짓말 안 하는 것, 또 네가 언제든지 바른 말 옳은 말만해라 하는 것, 또 네가 입을 다물고 입을 조심해라 하는 것, 네가 이 하나님이 하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은 하지 말아라 하는 그와같이 하는 것,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고대로 하나씩 둘씩 또박또박 지켜 순종하는 것이, 이것이 막바로 사람병이 고쳐지는 방편입니다. 고쳐지는 방편, 고라면 일어서는 거는 알겠지요? 일어서라.

또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자리는 그거 무슨 자리입니까? 자리는 이제까지 삼십 팔 년이나 병신노릇하던 병신 보금자리 치던 그 자리입니다. 또 만날 그 자리에 드러 눕고 앉히고, 만날 자리에 짐이 됐던 것이고 자리에 얹혀 살았고, 항상 자리에서 그 무거운 짐이 돼서 자리 혜택을 입고 살아 왔던 그 자리입니다.

'이제는 그 자리를 네가 들어라. 보금자리 치던 자리를 들어라. 네가 그 위에 깔고 앉아 그 위에 얹혔던 자리를 바가 들어라, 이제는' 하는 이것은 완전히 우리 생활이 전환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과거 생활을 완전히 전환해라.

과거에 우리가 병신노릇,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마귀 악령, 악성, 악습대로 인간병 든 인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그렇게 인간 놀음하고 살던 그런 모든 것을 완전히 네가 철거해서 들어라. 네가 병신노릇하던 그 직장을, 이제는 병신노릇하던 그 직장을 완전히 네가 집어 들어라. 이제는 네가 그 병신노릇하던 그 직장을 네가 들어라. 그 자리를 들어서 그 자리를 없애고 그 자리를 들어라 하는 병신노릇하던 그 입장과 처지의 그 생애를 네가 완전히 전환해서, 네가 병신노릇하고, 남의 짐이 되고, 남의 짐이 되고, 병신이 되고, 남의 혜택을 입고, 남의 도움을 입고, 남을 의뢰하고 했던 그런 것을 네가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그거 되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서 네가 완전히 그 생활 모든 것을 백 팔십 도로 전환해서 네가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의뢰해서 하던 걸 내가 다른 사람의 의뢰가 되고 다른 사람의 네가 짐이 됐던 것이 다른 사람을 네가 남의 짐을 짊어지고, 또 네가 병신노릇했던 그저, 30년을 그 직장에서 직장 생활했는데 30년 직장 생활을 항상 병신노릇만 말이지요. 항상 비인간적인, 비인간적인 변질된, 불신자와 똑 같은 그런 생활로 30년 동안 직장 생활했는데 이제는 거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것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는 고 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내가 이 직장에서 병신 생활하지 안하고 참사람노릇을 내가 이 직장에서 참사람노릇을 내가 이제는 하겠다, 참사람 노릇하겠다, 또 다른 사람을 뭐 의지하고 혜택보고 할 게 아니라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 줬으면 도와 주지 다른 사람의 덕택을 보거나 남에 짐을 지우거나 남에게 부담을 주거나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 이제는 남의 것을 내가 부담을 하고, 남에게 집을 지우는 게 아니라 남에게 혜택을 보이고, 남을 돕고, 남을 구원하고, 남을 이끌고, 남을 도와 주고 고쳐 주고 이제 이제는 이 직장에서 병신으로 보금자리 치던 이 자리를 내가 들어서, 이제는 내가 병신으로 보금자리를 치는 게 아니라 참 사람으로, 과거에 병신으로 보금자리 치던 이 자리를 내가 버뜩 들어 가지고 이 자리를 없앨란다.

그러면, 그 사람이 처음에 그 직장에서 뭐 상관도, 부하도, 전부 동직자들도 다 거기 병신노릇하고 사는데 이 한 사람이 이제는 일어섭니다. 말씀대로 하라는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일어서 가지고 이제는 내가 요 직장에서, 직장에서 이거 내가 참사람 노릇을 해 가지고 이 모든 병신노릇하는 이 자리를 없애 버리고 이 사람들 완전히 180도로 혁명을 일으키겠다, 또 나는 과거에 이런 인간들을, 인간을 의지하고 인간을 의지하던 것 이제는 다 그거 포기해 버리고 인간은 나를 의지할지라도 나는 인간을 의지하지 않겠다, 내가 인간의 짐이 됐었지만 인간이 내 짐이 됐으면 됐지 나는 인간의 짐이 되지 안하겠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던 것 다 치워 버리고 내가 이제 도와 줬으면 도와 줬지 도움받지 않겠다 이래 가지고 아주 자기가, 알기 쉽게 그래 놓은 것은 이 자리가, 삼십 팔 년된 병자가 이 자리에 만날 누웠고 치대고 위에 들어 얹히고 짐되고 이렇게 했던 것인데 이걸 버뜩 들었다 말이오. 들었다 말입니다.

이래서, 이제까지는 이 세상에 짐이 되고 세상에 누가 되고 세상에 방해가 되고 해를 끼치고 해독을 끼치고 모든 정상의 사람이 아닌 병신 사람의 모든, 모든 색채나 이 보금자리나 이런 것을 보냈지만 이제는 내가 내 환경을 한번 개혁하겠다. 내 환경을 개혁하겠고 내 사회를 개혁하겠고 내 인인 관계인 이 관계된 것을 전부 완전히 바꿔서 한번 전환시켜 보겠다 하는 전환을 하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욕망을 가지지 안하면 가다가서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이 일어서는 것 알지요? 일어서는 것. 그 다음에는 자리를 드는 것. 자리를 드는 것은 이제까지의 살던 그 생활 방편을 완전히 전환시키라 그 말입니다.

전환시키는데 어떻게 전환을 하느냐? 이제까지는 네가 모든 것에 짐이 되었고 모든 것에 때와같이 모든 것을 더럽혔고, 모든 것에 누를 끼쳤고 혜택을 입었고 그의 도움이 안 됐고 이랬는데 그거 다 포기하고 네가 그들의 소망과 도움이 될지언정 너는 하나님 외에 딴것은 바라지말고 완전히 그 생활 상태와 모든 것을 완전히 전환해라.

너는 사람의 혜택을 볼라 하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돌아서서 사람에게 혜택을 보이지 혜택을 보지 않겠다, 사람에게 누를 끼쳤지만 이제 네가 다른 사람의 누를 내가 짊어져 졌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손해 보이고 내가 누 끼치지 않겠다, 완전히 이렇게 자기 생활 방편을 완전히 전환해 버려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자리를 들어라. 과거에는 그 자리 위에 누웠고, 보금자리 쳤고, 얹혀 있었고, 아주 만날, 자리는 자리가 저를 들고 있었어. 자리가 저를 들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리를 네가 들어라 그 말이오. 과거에 네가 어떤 것에게 들려서 그이의 혜택으로 도움으로 이래 바라던 것이 이제는 네가 정반대로 그걸 도와 주는 사람으로 완전히 전환해 버려라 그 말입니다.

과거에 생활 상태와 방편과 욕망, 다시 말하면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과거에는 사람 만나면 그 사람 만나 가지고 이래 얘기 할때에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접촉해 가지고 내가 좀 유익이 될까 하는 그것을 생각을 하고 유익되도록 할라 하면 저 사람은 또 제 유익되도록 할라하니까 안 되니까, 나는 내 유익되도록 할라 하고 저 사람은 제 유익되도록 할라 하고 이라면 안 되니까 유익이 되지만 지능적인 사람은 그 사람에게 유익을 보여 주는 척 이렇게 하면서 써억 둘러 가지고 그 범위를 넓게 해 가지고, 유익을 보여 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제게 유익이 되도록 흥쳐댄다 말이오.

이래서, 모든 사람을 접촉해서는 모든 사람으로 인해서 자기가 유익을 볼라고 이렇게 생각했던 것을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들어라. 이제는 네가 누구를 접촉하든지 말하면 이 사람은 내가 아 시간 만 났으니까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유익을 줄 수 있을까, 내가 많이 돕지 못해도 다문 얼마라도 내가 돕지 내가 도움을 받지는 안하겠다, 다문 얼마라도 이 사람에게 혜택을 입히지 내가 혜택을 입지는 않겠다, 이 사람에게 내가 뭣이라도 줘서 꾸어 주고 그 사람에게 참 빚을 지우지 내가 그 사람에게 내차 부채지지는 않겠다 요렇게 요 사상을 완전히 전환해 버리라 그 말이오. 사상을 전환하라.

그러면 이것도 하나님 말씀이라. 그렇게 할라 하면 되지만 안 할라 하면 안 돼요. 일어서라 할 때에 일어설라 하니까 일어서졌고 자리를 들라 할 때바 들라 하니까 들어져졌고, 자리 드는 것도 제힘 아니고 주님의 능력이고, 일어서는 것은 제힘 아니고 주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의로써 대속함을 받은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교화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지극히 큰 하나님의 노 셋을 푼 의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 가지 의를 갖춘,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의인된 우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해서 공심판도 다 무난히 다 통과시켰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우리에게 다 줬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대로 살면 된다 그 말이오. 살면 되는데 우리가 일어서면 일어서지고 자리 들면 자리 들어진다 그 말이오 네가 가정에서 뭐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데 내가 자녀이니까 뭐 아버지 어머니 혜택을 봐야 되지 뭐, 또 형제들 혜택을 봐야 되지, 그러니까, 아들 중에도, 아들 중에도 제일 못난 아들은 그런 게 못난 아들입니다. 나이가 삼십 세가 돼도, 사십 세가 돼도 아버지 어머니의 혜택이나 볼라 하고, 또 저거 형 혜택 볼라 하고, 저거 동생 혜택 볼라 하고 저거 이웃에게 만날 이거는 덕만 볼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뭐 덕만 볼라 하고 남의 도와 주는 것만 바라는 그거 쓰지 못할 아무짝도 못 쓰는 것데, 이제는 거게서 네가 자리를 들고 일어서라.

이제는, 내가 부모가 있으니까 내가 혜택 보지만 아니다. 내가 예수 믿는 도리를 이렇게 배우지 안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 가정에 내가 어린 일학년이라도 나는 온 가정을 내가 돕는 사람이 되지 온 가정에 내가 도움받는 사람되지 않겠다, 나는 온 가정이 나로 말미암아 유익을 보지 가정 내가 유익 보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 자기 속에 이런 심주를 가지고 그와같이 하면 된다 그 말이오. 자리를 들라 하니까 들어졌다 그 말이오. 요걸 단단히 잡아요. 자리를 들라 하니까 들어졌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학교에 학생이라도 과거에는 과거 빳다제로 말이요, 영리주의로 그 사람이 나 하나 주면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 주고 그 사람이 둘 도우면 나도 둘 돕고 그 사람이 내게 손해 보이면 나도 복수하고 자꾸 이래 살았는데 이제 그 선을 완전히 넘어서, 그 선을 넘어서 완전히 이거를 발아래 밟고 완전히 넘어서 자리를 들어라. 이제는 너는 나에게 암만 손해 보여도 나는 너에게 유익을 끼치겠다, 너는 나를 원수를 품어도 나는 너를 한번 사랑하겠다, 너는 나에게 항상 여수적으로, 영리적으로 하고 있지만 나는 끝없는 나는 봉사로 네게 해 보겠다. 이런 무저항으로 해도 무한의 하나님이 내 배경이요 내 뿌리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이게 이제 한없는 영광이요 복 있는 생활이요, 덕 있는 생활이요, 권위 있는 생활인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 아주 간단하게 했지만 자리는, 그 사람은 순전히 자리 속에 싸여 살았소. 예? 자리 속에 아듬져 살았소. 자리 속에 들어 누워서 살았소. 자리 속에 얹혀 살았소.

그러나 이 자리를 버뜩 들었습니다. 이제 버뜩 들었다. 그거 뭐이냐? 네가 이제까지 세상에서 보금자리 치고 만날 그 혜택이나 보고 그 짐이나 되고 그에게 무거움이 되고 부담이 되고 자꾸 이리 됐던 네가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네가 부담하고, 네가 부담해라. 내가 부담할 힘이 있어야지? 하나님이 네 배후에 계시니까 부담해라. 이러니까 주님의 도우심의 힘을 얻어 가지고 모든 것에 내가 부담되었던 것을 내가 버뜩 들어서 그것이 내 부담이 됐습니다. 그것이 내 부담이 되고 나는 그에게 부담된 것이 하나도 없고 그것이 내 부담이 된 이 사람으로 전환해 살아봐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할라 하면 된다 말이오. 이 힘이 우리 힘으로 되는 것 아니고 순전히 주님의 돕는 힘으로 은혜로 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할라고 원하고 애를 쓰면 되는데 안 쓰면 안 돼요. 일어서는 것도 이제 사람 생활한다 말이오.

병신 생활하는 것 아니고. 사람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 무슨, 앉으면, 앉으면 수근수근하면서 다른 사람 논인 장단이나 하고 훼방이나 하고 이라는데 이제, 성경에, 훼방하지 말아라, 남을 삣고 깎지 말아라, 남을 복을 빌고 유익을 줘라 이라니까 하지 말라는 훼방 말 안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남을 위해서 기도하고 복을 빌어라 이라니까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다 보니까 그게 사람노릇이라 말이오. 그게 사람노릇이라.

그걸 보고 다른 사람이 있다가 '아야 저거 요새 그 아이 그저 우습다. 그게 무슨 말만하면, 그만 남의 말만하면 좋아서 막 그 신짝을 끌어 붙이고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고 막 삣고 깎고 요렇게 하던 것이 우리에게 그 얘기를 하니까 옆에 있으면서 같이 협조하지 안하고 그저 어째 그거 근심하는 듯이 하고 그래 가지고 도무지 그렇게 말하지 않네, 그게 사람이 변했다.' 이라니까 처음에는 있다가 '그게 우리하고 사이가 벌어져서 지금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그거 벌어져 그런게 아니라 참 진정코 그 사람이 회개해서 고쳐서 그런 사람이 됐습니다. 됐습니다.

됐으면 '야, 그거 아이 그거 좀 달라졌더라.' '그게 예수 믿는다고 지금 하고 있지 않아' 예수 믿는다고 그라니까 제까짓 게 며칠 가는고 보자.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한 달 가도 그래 두 달 가도 그래, 석 달 가니까 더 그래, 넉 달 가니까 더 그래, 자꾸 참사람노릇을 한다 말이오. 참사람노릇을 해.

그러니까, 이제 일어서는 것이 어떤 사람은, 여게는 이랬지만 어떤 사람은 일어서는 것이 몇 달만에 일어서는 사람도 있고 일 년만에 일어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산다씽은 한 서너 달 동안에 일어서 버렸어요. 왜? 자기가 그 예수 믿는 도를, 불교인인데, 예수 믿는 도를 듣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 예수 믿기로 작정해 가지고 그만 한 서너 달 동안에 완전히 자기는 이 세상을 위해서 제물로 바쳐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완전히 전환됐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용모가 다 성화가 되고 변화가 돼서 그 사람이 저 미국을 한번 순회했는데 미국에 가니까 미국 사람들이 모두 보고 말하기를 '예수님 이, 예수님이 재림하셨다.' 얼굴을 보고'예수님이 재림하셨다.' 그 광채 나는 얼굴보고 '예수님이 재림하셨다' 이래 가지고 막 미국 사회에서 야단이 났어요. 그랬는데, 그분이 '나는 예수님 재림이 아니고 나는 인도에 있는 산디씽이라 하는 사람이라' 이라니까 '인도에 성자가 왔다.' 이래 가지고 얼마나 사람이 모였던지 그때 나라에서 새로운 열차를 내고 이래도 그 사람들을 수용을 다 못 했더랍니다. 그렇게 그런 사람은 대번 일어섰어. 대번 일어섰지만 우리는 일어서는 것이 몇 달이 되고 몇 해가 돼도 죽기 전에 완전히 일어서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만 된다면 이 이상이 없는 영광의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어서는 것. 일어서는 것은 내가 하루 하루에 자꾸 일어서는 일.

일어섰다가 또 주저앉으면. 또 새로 일어서고 새로 일어서고 이래 가지고 일어서는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씩 둘씩 내가 실행해 나가는 것이 일어서는 것이고, 자리를 드는 것은 과거 생활 모든 방향을 완전히 전환해서, 동으로 가던 게 서로 가는 것처럼 이게 완전히 전환해서 방편을 완전히 바꾸는 것. 내가 나를 위해서 모든 사람을 있게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있는 사람이 되어지고, 모든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다른 사람을 돕되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거게 바치기로 그렇게 하는 그런 것이 다 이렇게 자기를 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대개는 보면 자기가 마음에 소원하는 것은 자리 들고 걸어가는 그 생활을 원하지만 잘 안 돼서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그만한 데에서 조그만한 데서 자기가 자기 가정에서 자기 들고 걸어가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교회에서 자리 들고 걸어가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교계에서 자리 들고 걸어가다가 나중에 가서는 자기가 자는 것이나 먹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전부가 다 주님의 소원하시는 형제를 위해서 하는 언행심사뿐이지 자기를 위해서 언행심사하는 일은 한 마디도 없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뭐 어려운 게 아니고 되어진다 그거요.

다 그렇지는 안하지만 여기 권사님들이나 권찰님들도 그 사는 생활을 분석한다고 보면 하루 스물 네 시간 가운데에 아마 거의 스무 시간 동안 가량은 전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 제물되어서 이렇게 남에게 위함을 받을라 하는 인간이 전부 남을 위하는 그 사람으로 살지 않나 싶습니다. 대개 반수 이상 사는 사람은 많을 것이고, 삼분지 이 이상 사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 이제 자리 들고 걸어가는 것이 이것이 뭐이냐? 제 힘이 아니고 주님의 돕는 힘이기 때문에 이것을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이제 걸어가라. 걸어가라 하는 것은, 걸어가는 것은 일어서 가지고, 일어서는 그 생활, 일어선 그 생활, 일어선 그 생활은 그대로 행하는 그 생활 자리 드는 것은, 이것은 옛날 것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로운 그 생의 방편으로 살아가는 것. 이제는 과거에 내가 짐 되었던 그것을 내가 내 짐으로 짊어지고 가지 내가 다른 이에게 짐이 되지 안하고 내가 그에게 짐 되었던 걸 그걸 이제는 내 짐으로 내가 지고 가는 것이 그것이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오. 고라면 이해가 됩니까? 고거 쉽지 않습니까? 예? 내가 그에게 짐되었던 것을 이제 내가 짐으로 짊어지고 가는 것이 그것이 자리 드는 것이라 말이오. 방향 전환이라 그 말이오.

그래서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옛날 그런 생활을 자리를 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병신 앉았던 자리가 없어지지 안했습니까? 없어진 거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그렇게 살던 그 생활을 이제 내가 전환해 가지고 내가 책임지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데 다시 옛날 생활을 꿈꾸지 마라. 옛날 생활을 네가 바라지 말고 옛날 생활을 사모하고 생각지 말아라. 그거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까 그 자리 없지 않습니까? 이래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까 그 자리는 자리가 없지 안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에 병신 생활하던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하든지 사모하든지 그런 것을 원하든지 해서는 안 된다 그거요. 하나님 말씀 어겨서 잘 먹고 잘 입고 평안하게 잘 살고 재미있게 살던 그 병신 생활을 다시 사모하고 원해서는 안 된다 말이오. 그 자리를 들었기 때문에 자리가 없다 말이오. 완전히 이거는 없어져 버려서 과거에 병신 생활을 생각지 말고 다시 돌아보지 말아라 하는 그런 것으로서 이 자리를 들고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러면, 자리 든 생활과 일어선 생활을 계속하면 걸어가는 것입니다. 계속하면 그것이 걸어가는 거라.

계속하면 걸어가는데, 그러면 계속하는 그 목적이 어디 있느냐? 걸어가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걸어가는 게 '아이구 이거, 이거 지금 다리가 나았으니까 다리가 나았으니까 영도다리에도 한번 가보고 나았으니까 또 송도도 한번 가보고 가 보자' 그게 아니라. 나았으니까 그 환자는 주님의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데 가지 안해. 이제 나은 다리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가는 것이 저의 소망이요, 목표요, 저의 가는 향방이라. 나아 가지고 자꾸 성전에 가. 성전에 가서 뭐 할라고? 성전에 가서 주님 만났어. 성전에 가 주님 만났어. 우리가 이와 같이 지금 일어서는 방편과 자리 든 방편 요 방편, 신앙, 요게 신앙생활인데 요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목표가 어디 있느냐? 이 계속하는 목표가 어디 있느냐? 계속하는 목표가 주님 계시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게 목표라.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것이, 욕망을 가지고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걸어갈 때에 그 사람에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평강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아서 걸어가니까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좋았겠습니까? 그러면 기쁘고 즐겁고 좋고 또 소망이 넘칩니다. 그 병신이 얼마나 소망이 넘쳤겠소? 그 병신에게 기쁨이 있었겠소 없었겠소? 기쁨이 있었겠지요. 또 그 병신에게 소망이 있었겠소 없었겠소? 소망이었었지. 기뻤지, 소망이 있었지, 또 그에게는 참 한없는 담대함이 생겨졌지, 그러면 담대함도 생겨졌고 기쁨도 생겨졌고 소망도 생겨졌으니까 인간의 행복이, 기쁨이 인간의 행복이요, 소망이 인간의 행복이요, 담력이 인간의 행복인데 인간의 행복을 세 가지로 말하라 하면 이 세 가지를 말하면 인간의 행복입니다. 어데서든지 담대하고 평안하면 행복이오. 기쁘면 행복이오. 어데서든지 절망이 없고 소망이 있으면 행복이오.

이 세 가지 행복인데, 이 세 가지 행복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이 세 가지 행복이 뭘로 말미암아 세 가지 행복이 자기에게 넘쳤습니까? 네. 세 가지 행복이 자기에게 넘친 것은, 이 O장로님이 좀 맛을 봤는가 대답을 잘하네. 세 가지 행복이 넘친 것은 기적과 축복입니다. 기적과 축복으로 넘쳤어. 보니까 하 이거 참 이상하다. 일어서면 일어서고 한번 뛰기도 해봐도 되고 다리도 한번 쭉 뻗어 보니까 힘이 나고, 또 한번 뻐뜩 들려면 들어 보고, 한번 이래 보니까 돼지고, 자기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와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온 것이 기쁨입니다. 또 자기에게 이제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서 기적과 축복이 자기에게 와 도와 주니까 못 할 게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일에 염려와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지고 담력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분으로 말미암아 이래 됐기 때문에 이제 소망이 넘쳐. 요렇게 하면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자기에게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의 이 은혜 역사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인해서 기쁘게 즐겁고 행복되고 소망이 넘칩니다. 그래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 가지고 주님 만났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가지고 주님 만났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부탁했는고 하니 네가 나았으니, 이제 네가 참사람이 됐으니, 나았으니 참사람 됐으면 뭐 다 될 것 아닙니까? 참사람 되었으니, 나았으니, 병이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더 큰 증세가 발할까 두렵다. '네가, 네가 지금 나은 것 만치 돼 가지고 있으면 낫고있고, 더 잘되면 더 온전해지고, 나을 때만치 믿음이 없고 다시 믿음이 타락하면 병이 다시 도진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고 이제, 예수 믿고 사람병 고치는 것, 영병, 마음병, 고기 덩어리병 이 사람병 고치는데 이 병 고치는 것이 다시는 변동 없는 것이 좋습니까? 변동이 있는 것이 좋습니까? 다시 변동 없어서 그 다음에 낫고 난 다음에는 죄를 짓든지 말든지 항상 나아 있는 것은 고대로 나아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까? 이제 나았는데 조금 죄 지으니까 조금 병들고, 또 조금 더 죄 지으니까 또 조금 더 병 들고 자꾸 그와같이 자기 병들고 자기 믿음이 떨어지는 데 따라서 이 치료 받은 것이 변동이 돼야 좋습니까 죄야 짓든지 말든지 다시는 변동 없는 게 좋습니까? 자, 변동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변동 없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변동 없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병 나은 사람들은 그럴 건데. 병 나은 사람들은 '아이구 변동 없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조롱하기를 '나았으면 뭐 나았어야지 나았다 하는 게 금방 또 병 도졌고' '나았다' '낫기는 뭐 나아? 보니까 또 내나 병들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낫아 주시는 이 병은 병이 낫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변동 없는 치료입니까 죄를 지을 때는 다시 더 큰 증세로 도지는 치료법입니까 어떤 겁니까? 도지는 치료법입니까? 도지는 치료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네. 잘 알았습니다. 그라면 나는 사람이 다시 병든 것은 그거는 무슨 영문입니까? 나은 사람이 병든 것은 무슨 연고입니까? 죄 지은 연고입니까? 병을 잘못 고쳐서 그렇습니까? 죄 지은 연고, 죄 지은 연고. 또, 그라면 또 회개하면 또 낫지. 회개하면 또 나아요.

이래서, 그러면 오전에 다섯 가지에, 오후에 이제 여섯째로 일어서라. 또 일곱째로 자리 들어라. 또 여덟째로 뭐입니까? 걸어가라. 또 아 흡째로. 아홉째로 성전을 향하여 주님을 향하여 찾아가라. 주님을 향하여 찾아가라.

하나 더 참고 삼을 것은, 열째로 하나 더 참고 삼을 것은 이 걸음을 걸어가면 바리새 교인들이 막 핍박을 되게 합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일라 하다가 잡아 죽였습니다. 네? 이렇게 서부 교인들이 걸어간 다고 하면 일반 신앙 사람들이 욕을 합니다. 저거 법대로 안 믿는다고. 저거 법대로 안 믿는다고 욕을 해요. 이걸, 이거 알아야 돼요, 이거 알아야 돼요, 이 핍박이 있어요. 이 핍박에서 견뎌야 되지 '저 사람들이 모두 다 그거 예수 잘못 믿는다.' 이렇게 할 때에 '아이구 그러면 잘못 믿는갑다' 이래 버리면 헛일이라.

그러면, 바리새 교인과 제사장, 서기관들이 핍박을 합니다. 핍박을 해요, 핍박하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잡아 죽여 버렸어, 네? 핍박을 할 뿐 아니라 그 교파는 그거는 이단이다, 목사는 잘못 가르친다, 그거 죽여 버려야 된다, 지금은 안 죽이지만 때가 오면 다 죽여 버립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참소가 자기가 끌고 간 그 법궤 싣고 간 그 수레에 타서 죽은 것이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가 제물된 첫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말씀 증거한 그것 때문에 순교당하는 것이 그게 순교자들의 순교라 그 말이오. 그 말을 했기 때문에 순교당하는 것, 이게 행복된 길이야, 행복된 길.

그러므로, 오늘 오후에 몇 가지 배웠습니까? 오후에 다섯 가지. 오전에 다섯 가지, 합해서 열 가지. 네, 요거 단단히 기억합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신앙생활을 걸어가면 기적과 축복으로 저도 좋고 참 신기한 이제 참사람의 걸음을 걸어가게 되는데 참사람의 걸음을 걸어가면 그만 친구가 없어집니다. 처음에는 와 가지고 인간적으로 이라면 재미가 있었지만 참사람의 걸음을 걸어가니까 그만 싱겁다 하고 싱겁고, 또 죄를 안 지으니까 재미가 없고, 죄 짓는 재미있는 사람은 그만 이렇게 참사람이 되어지면 그런 친구 다 떨어지고 마는 것이오. 또 이렇게 믿는다고 교계에서 핍박을 합니다. 옆에 사람들이 조롱을 합니다. 나중에 가서는 '그 교파 없애 버려라. 그 설교자 없애 버려라.' 이와 같이 해 가지고 오는 그것이 당연한 이치요 필연성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보지를 말고 의례히 올 줄 알고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는 각오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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