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관, 남을 범죄케 한 죄-하나님의 원수


선지자선교회 1983년 7월 18일 월새

 

본문 : 민31: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싸움에 나갈 준비를 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서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하여 각 지파에서  일천 인씩을 싸움에 보낼지니라 하매 매지파에서 일천 인씩 이스라엘 천만인  중에서 일만 이천 인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 모세가 매지파에 일천 인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싸움에 보내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의 부녀들과 그 아이들을  사로잡고 그 가축과 양 떼와 재물을 다 탈취하고 그 거처하는 성읍들과 촌락을  다 불사르고 탈취한 것, 노략한 것, 사람과 짐승을 다 취하니라 그들이 사로잡은  자와 노략한 것과 탈취한 것을 가지고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에  이르러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로 나아오니라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재물을 해하면  해한 원수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해하는 것 보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도덕을 해친 그 해가 더 큰 해입니다. 왜 그 영향이 크기 때문에.

또 도덕의 해보다 윤리의 해, 윤리의 해를 끼친 것이 더 우리에게 큰 원수가  되겠습니다. 그보다도 우리의 믿음의 손해를 보인 것,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믿음을 손해 보인 이것은 우리에게 더 큰 해를 끼친 일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범죄케 한, 미디안에 있는 장로라면 그 대표인 몇 분 안  됩니다. 미디안에 있는 장로들이 모압이 이런 말을 이스라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이스라엘을 멸해야 되지 이걸 멸하지 전에는 안 된다.' 그렇게  의논한 거기에 미디안의 장로 몇 분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이 의논한 결과에 '발람이라는 그-이방 선지인데-발람을 청해  가지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우리를 축복하도록 그렇게 하자' 그런 술책을  의논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발람을 청해서 어짜든지 발람에게 오도록 '아주 후대를 해 줄  터이니까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우리를 축복하라. 네가 하나님에게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니까 그렇게 해 다오.' 하는 것을 해서  청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처음에는 가지를 안했습니다. 두 번째는 더 많은 귀객들을  귀인들을 보내 가지고서 청했을 때에 그때에 발람이 따라갔습니다. 발람이 가  가지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그 제단을 세 번이나 쌓았는데도 죄가 없는  이스라엘을 아무리 왕들의 그 명령이요 또 발람이 그 제단까지 가서 제단권을  혼자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입장에서라도 죄 없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습니다.

 저주를 한 그 저주가 저에게로 돌아갈 수 있으면 하나님이 내비둡니다. 저주한  것이 제게로 돌아가면 내비두지마는 그 저주한 것이 이스라엘에게, 저주하면  저주한 것이 이스라엘에게 오게 되기 때문에 왜? 그는 하나님의 선지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저주하면  해가 되는 그런 저주가 됩니다.

 그 저주를 하나님이 하지 못하게 하신고로 그 저주하지 안하면 자기 생명이  끊쳐지는 그런 아주 다급하고 위험한 그 현실에서도 저주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  다 축복하고 저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가 없을 때에는 우리를 어떻게 해하려고 무슨 방편을 가지고  해하려고 할지라도 그 해가 우리에게 해가 되는 그 해는 하나님이 방비해서 해가  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끌려 들어가는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해 같지마는  실상은 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을 하신 것입니다. 또 모든  기독자들에게 박해가 되는 그 온갖 박해가 있는데 그 박해가 기독자들에게 해가  될 박해는 죄 없는 자에게 절대 오지를 못합니다. 다만 박해를 아무리 하려고  해도 죄가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해가 될 그런 어떤 운동이라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 사하십니다.

 어떤 형편에서 그 해를 하지 안할 수 없는 그런 형편일지라도 또 해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해라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도리어 저희에게 해가 돼지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해가 되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익이 될 그런 해는, 해 같으나 실상은 유익되는  그런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당하게 하십니다. 셋 청년이나 다니엘이나  그분들이 해를 받은 그것은 해 같았지마는 결과적으로는 유익이 됐습니다.

 그러면 유익되는 것이, 해 같은 것이 유익되는 것이 세상에서 유익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안한 것이 더 많습니다. 세상에서 해된 것 같은 것이  나중에 보니까 해가 되지 안 하고 유익이 된 그런 것은 사람들이 알지마는 해된  것과 같은 그것이 무궁토록 영원토록 유익이 된 그것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런 때에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죄 없는 자에게는 해가 오지  안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해가 와서 죽임을 당했는 가? 고문과 고형을  당했는가?' 이렇게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우나 고문과 고형을 당하고 세상을  떠나지 안했으면 고문 고형 당한 그것이 반드시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됐을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뭐 육의 유익이 됐든지, 영의 유익이 됐든지, 죄를 회개하는 데  유익이 됐든지, 잡것을 제거하는 데 유익이 됐든지, 겸손케 하는 데 유익이  됐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데 유익이 됐든지 어쨌든지 유익이 됐습니다.

해된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사람들이 알지마는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떠한 해도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 손양원 목사님같은 그런 이는 그런 박해를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마지막에 인민군들 총에 맞아서 죽었는가?' 하는 그런  것은 어린 신앙들은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증거를 다 마친 후에라야 생명을 거둬가는 그런 순교가  있지 증거를 다 마치기 전, 다시 말하면 증거 생활이라 말한 것은 기독자가 죽는  날까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잘하든지 못하든지 증거 생활입니다.

 증거 생활을 자기가 잘 믿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이래 잘 믿으니까 하나님  앞에서 이런 은총을 받는다' 하는 증거 생활이든지, '저렇게 잘못 믿고 저렇게  맷정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저 꼴이 됐다' 하고서 망하는 것으로 증거를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은 망치는 하나님으로, 죄짓는 자를 망치는 하나님으로 그  증거를 하든지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를 하든지, 좋은 증거 하든지 나쁜 증거를 하든지 어쨌든지 증거는  증거입니다.

 '증거를 마친 후에 생명을 그 원수가 빼앗았다' 그것은 살 대로 다 살고 숨  끊어질 그 시간이 되니까 이미 그 시간에는 아무도 손 대지 안하면 그대로 끝이  났으니까 그대로 평안한 자리에 앉아서 죽든지 누워 죽든지 죽을 것이요, 또  병으로 죽든지 죽을 것이요, 죽을 것인데 그때에 그 이미 죽을 생명, 생명을  애껴봤자 죽기는 죽는 것인데 이미 다 살고 난 그 생명을 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주를 위해 생명 바치는 그것이 순교입니다. 그러기에 순교는 폐물 중에  제일 고귀한 폐물을 이용해서 가치 있게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평소에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생명이 남아  있는 데에 생명을 바쳐서 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그러면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에 그 사람의 이룰 구원을 이루지 못하니까 손해가니까 이미 이룰 구원 다  이루었고 생명이 끝나는 그 생명을 주를 위해서, '네가 이렇게 이렇게 우리의  요구대로 하지 안하면 너는 죽인다.' 이러니까 '죽어도 나는 주님이 죽음으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도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주를 사랑한다. 나는  너희들이 내 생명을 끊는다 할지라도 내가 주님에게 대한 숭배나 또 사랑이나  이는 변할 수 없다. 환난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날이나 그 무엇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느냐? 끊을 수 없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생명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그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순교인 것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그 박해가 오든지 박해가 오는 것은, 뭐  어떤 공산주의의 고문이 오든지, 민주주의의 고문이 오든지, 사회의 고통이  오든지, 가정적 고통이 오든지, 어떤 그 경제적이나 무엇이나 무슨 고통이  온다고 해도 우리는 거게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죄가 있으면, 내게 대적하는 그 모든 대적이 내가 죄가 있으면 그 대적이  내게 해가 뇌어지고 내게 죄가 없으면 대적하는 그것이 도리어 결과적으로는  유익이 되도록 그렇게 보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책임을 지고 보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질병도, 이사야 53장에 보면 '주님이 다 질고를 담당하셨다'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죄 값으로서 오는 질병은  없습니다. 죄값으로 오는 질병은 없습니다. 요것도 단단히 알고 요동치를 안해야  됩니다.

 죄값으로 오는 질병은 없는데, 죄의 값으로 오는 질병은 없는데 하나님의  징계의 질병은 옵니다. 자기가 죄를 범했을 때에 그 죄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죄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질병을 주는 일 있습니다.

 그거는 하나님이 죄의 값은 사망이요 벌인데 죄의 값으로 벌로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여서 그를 거게서 돌이켜 회개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랑으로 교훈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징계라 합니다, 징계.

 그러기에 택한 자들에게는 징계는 있어도 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질병이 왔으면 반드시 '이 질병도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익을 주기 위해서 이  질병이 왔다.' 어떤 박해라도 오면 '이 박해는 나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왔다.' 만일 내가 범죄해서 박해가 왔다 할지라도 그 박해는 우리에게 해를 주지  못합니다.

 왜? 범죄함으로 박해 온 그 박해로 인해서 자기가 무서운 죄를 돌이켜 죄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크게 해가 되지 안 하고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무조건 '이  어려움은 나에게 유익을 위해서 왔다.' 그러면 유익을 위해서 왔으면 어떤  유익을 위해서 왔느냐 하는 것을 자세히 우리가 성경적으로 분석을 해야  되겠습니다. 유익으로 오는 것은 혹은 내가 죄짓는 습성 그것을 지금 끊으시려고  하나님이 그 일을 줬든지, 또는 내가 죄지은 그것을 지금 하나님 앞에 고해서  사유함을 받을 때인데 그만 그때가 지나가고 나서 그뒤에 죄를 짓지 안하니까,  죄를 짓지 안하니까 뭐 죄짓지 안하니 과거에 지은 죄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지금 아직 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알지 못하고 있는 그  죄를 주님에게 고해서 사함을 받게 하시든지, 그렇지 안하면 또 죄를 끊고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든지, 그렇지 안하면 죄가 없는데 그런  형벌이 왔으면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상급이 크다'  했습니다. 아무 애매하게 죄가 없는데 박해를 당했으면 그것이 이제 하늘의 상이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택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유익을 이루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믿고 나가돼 거게 대해서 그 실상을 알지 못하면 꺼꾸로 우리가  활동하기 때문에 유익이 왔지마는 그 유익을 취하지 못하고 그 유익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죄 없는 거게는 아무 일도 닥치지 않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이  뭐 상급으로 주는 것이든지 치료로 주는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무조건 제일호가  뭣이냐? 일호가,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든지 무슨 그 해가 오든지 하면 '내게  무슨 죄가 있나?' 그 죄를 찾는 것이 제일 우리의 할 일의 일호입니다.

 그것을 찾고 그것이 없으면 그다음에는 '이 일이 무엇 때문에 내게 와 가지고서  있느냐? 어떤 면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와서 있느냐?' 연단시키기 위해서 있는 그  일에는 그전에 배우기를, 연단시키기 위해서 있는 일에는 어쩐다 했습니까?  어째야 되지요? 누가 그거 기억하고 있습니까? 연단을 시키기 위해서 오는 데는  어떻게 하지요? 요 누가 말하는데 똑똑히 말해 봐. 버리는 것. 옳지. 연단시키러  오는 데는 그만 끊어버리면 돼.

 연단시키러 오는 데는 그때에 알게 되니까 자기의 주관이나 자기 생각이나  욕심이나 뭐 교제나 뭣이든지 끊어버리라고, '이거는 네가 그것을 끊어버리라.

네가 이것 의지 가지고서 네가하고 있고, 네 의지 가지고 하고 있고, 네 결심  가지고 하고 있고, 네 인적 요소 가지고 하고 있지 신적 요소나 영원 완전  불변의 요소 가지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거 이 요소를 끊어버리라.' 하는  것이라. 연단으로 왔으면 끊어 버리면 됩니다.

 또 시험으로 왔으면 어떻게 돼?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맞았어, 대답해  봐. 시험으로 온 것은 잡아야 됩니다. 시험으로 온 것은 굳게 잡아야 돼. 뭘  잡아야 돼? 시험으로 올 때는 그때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독자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또 네 생명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세상보다도 나를 더 귀하게  여기느냐? 하는 이런 시험이니까 그때는 잡아야 된다 말이오. '주를 더  사랑합니다. 더 믿습니다. 더 의지합니다. 주님을 더 바라봅니다.' 이렇게  주님과 주님의 법도를 잡으면 그만 시험에는 합격입니다.

 '오, 이제야 네가 나를 독자를 사랑함보다도 더 사랑하는 줄을 내가 알았다.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것을 알았다.' 왜? 하나님이 뭐 몰라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아셨지마는 자기에게 인식을 줘 가지고 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 자기에게 인식을 줘 가지고 더 확신을 가지게 해서 그를 더  신앙으로 장성하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해가 오지를 못한다. 죄가  있을 때 해가 오는 것도 그 해는 해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유익되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범죄한 데에 해가 왔는데 뭐 유익된 걸로 와?' 범죄했는  데에 해가 왔을 때에 그 죄를 어서 그 해로 인해서 회개를 하게 되니까 유익이  됩니다. 벗어나게 되니까 유익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해하는 것은 어떤 것이 해하는 것이냐? 물질보다도 도덕의 해,  도덕의 해보다도 자기와의 관련된 윤리, 혈통이나 그 관계된 가족이나 그런  친족에 대한 게 윤리입니다. 윤리에 대한 해 가까운 사람에게 대해서 바로 옳게  하는 그 일을 해친 것이 그것이 윤리의 해입니다. 또 도덕의 해는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덕망 있게 신덕 있게 참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덕을 행하는 데 그  덕을 행하지 하도록 그 덕을 손해보이는 것이 도덕적 손해요 그 다음 그위에가  윤리적 손해요 그 다음에는 믿음의 손해라.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손해보이는 그것이 믿음의 손해라.

 그런고로 우리는 기독자는 고만 그저 무엇이든지 용서하고, 무엇이든지 대항만  안 하고, 무엇이든지 지고 양보하고 뺏기고 그러면 좋은 줄로 알면 안 됩니다.

기독자는 절대 뺏기지 않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기독자는 절대 뺏기지 안해.

기독자는 절대 양보가 없어. 양보가 있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고치면 고치는  것이지 옳은 걸 어떻게 양보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고 또 그저 얼마든지 당해도 무저항으로 그렇게 있는 것 아니다. 다만 거게  대해서 무엇을 가치로 보느냐 무엇을 중하게 보느냐 그 견해가 다릅니다.

 견해가 달라서 다른 사람 보기에는 중하지 안한 그걸 중한 것으로 보고서  그것을 표준해 가지고 일을 세상 사람들은 하는데 기독자는 그걸 표준으로 삼는  그까짓 거야 되거나 말거나 내비두고서 가치 딴데 있다 말이오. 표준잡은 것이  딴데 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걸 저거가 모르는 것을 표준으로 삼고, 모르는 것을 가치로  삼고, 모르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서 그것만 손해 안 가면 되지 그것만 해 보지  안하면 되지 이러니까 그들은 볼 때 '저 믿는 사람 등신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 등신이 아니라 참 똑똑해서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원수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은 그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돈만 손해갔으면 제게 원수라, 이렇게 말하고 무슨  그 사람에게 도덕 행위 하는 그런 걸 삐뚤어지게 만드는 것, 계를 해 가지고  끌고 다니면서 살살 그 사람을 바람을 들여 가지고서 요리집에 가서 한번  놀리기도 하고 또 한번 오랫 동안 그러면 춤 구경도 한번 시키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에게 그만 도덕심을 그만 흐리게 만들어 버리지 그 가정에 윤리를 손해를  보이지 이거는 손해인 줄 모르고 이거는 더 재미있다고, 무슨 출세한 것같이  말이지, 중이 고기맛을 보면 벽에 빈대를 남기지 않는다고 이거 정절 부인들  깨끗한 부인들이 방탕에 한번 맛을 봐 놓으면 그만 정신을 못 차린다 그말이오.

 그게 해인 줄 모르는데 우리는 물질보다 도덕, 도덕보다 윤리, 윤리보다도 이  신앙 '이 사람을 접촉하니까 내가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을 손해보인다.

손해보인다.' 그것도 그러면 우리에게 해하기 위해서 왔느냐? 해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 시험입니다.

 이러니까 그 옆에 와 가지고 우리를 범죄케 하려고 이렇게 할 때에 범죄케  하려고 할 때에 우리가 '요것이 범죄케 하려고 하니까 내가 지난번에는 범죄케  할 때 졌다. 지난번에는 내가 그 유혹에 빠졌다 그 위협에 빠졌고 그 협박에  내가 떨어졌다. 이제는 죽어도 안 된다 협박에 안 떨어진다.'  그러면 우리가 범죄하지 안하려고 하는 그 일에는, 또 우리가 죄를 그것을  회개하려고 하는 데에는 회개하려고 하면 어떻게 한다고 성경이 말해 놨지요?  누가 아는 사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회개하려고 하는 데는, 여기 ○○○집사?  죄를 회개하려고 할 때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지? 자,  저 ○○○조사님 한번 대답해 봐. ○○○? 하나님 품에.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말한 것이고 거게서 양을 찾아서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우리 안으로  갈 때? 어쨌습니까? 어깨에 메고, 또 가슴에 품고.

 이러니까 우리가 회개할 때는 전능자의 품에 안겼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회개할라 하는 데 뭐, 회개할라 하면 나라에서 어떻고, 직장에서  어떻고, 사회에서 어떻고, 뭐 무슨 협박 무슨 위협 무슨 인간이, 내가 그  죄짓다가 죄 안 지으려고 하니까 막 칼로 가지고 죽이려 하고 '너 하고 같이  죽자' 하고 뭐 자살한다 하고 별별 말이 있습니다. 별별 일들이 있어. '각하가  만일 지금 각하가 여기 자리에서 하야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다 죽으니까  각하하고 우리가 같이 죽읍시다.' 하고서 마구 협박을 한다 말이오. 그럴 때에는  그 정권을 잡았던 위대한 사람들도 뚝뚝 떨어진다 그말이오.

 그는 안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믿는 사람은 상관 없어 그러라 할 때에  온, 그 옆에서 권총을 딱 들고 있으면서 '이러면 우리 둘이 같이 죽읍시다' 해도  '내가 하나님의 뜻에 틀렸다 싶어서 이것을 회개할라 하는 데는 네까짓 게 권총  가져도 권총 구멍이 막히고 나를 못 친다. 주여, 도우시옵소서! 안 한다! 나는  하야 한다!' 할 수 있어야 된다 그말이오.

 믿는 사람이 회개하는 데에 아무리 방해하는 것이라도 겁낼 것 없습니다. '네가  그러면 내가 이리이리 해 가지고 네 직장을 떨어뜨린다. 네 신세를 족치게  된다.' 이렇게 이 처녀들이 처녀성을 뺏겨 가지고 그때에는 협박을 당한다  말이오. 협박을 염려하지 말라 말이오. 하나님이 그것 책임져. 내가 회개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책임지기 때문에 그까짓 거 상속에 깊이 파묻어서 꼼짝  못하게 해 버려. 회개에 대해서는 하나님 품에 안습니다.

 또 우리가 죄를 끊으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대신해서 방패가 돼  가지고서 대신 싸워 주십니다. 그런고로 참 이 회개는 보배입니다. 회개는  보배요 회개는 능력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우리의 그 원수가 뭣이 원수인고 하니 모든 것보다도 우리의  신앙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큰 원수입니다. 그러면 그 원수를 왜 하나님이  오게 하는가? 신앙을 빼앗으려고 하는 그 원수에 대해서도 본인이 하나님  말씀대로 믿어서 신앙을 가지게 되면 신앙을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고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고 상급을 받습니다.

 또 신앙을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에 잡탱이를 다 회개하고 깨끗하게 불로 연단한  정금처럼 깨끗한, 전적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 믿음으로 개조가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우리의 원수는 우리를 범죄케 하는 것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본인이 범죄를 하는 것과 범죄케 하는 것은 다릅니다. 본인이  범죄를 하는 것과 범죄케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담은 범죄를 했고 하와는 범죄케 했습니다. 또 하와는 범죄를 냈고 배암은  범죄케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암은 대대손손이 멸망받고 유황불 구렁텅이  들어가는 벌을 받았습니다. 다 같이 선악과 먹은 죄를 지었지마는 하와는 범죄한  외에 범죄케 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여인들에게는 해산 고통이 있다 이랬는데  요새는 또 어떻게 뭐 다 설마를 뛰어넘는, 요새는 어떻게 죄악이 관영해졌든지  '뭐 해산 안 하면 되지' 이제는 모두 다 피임을 해 가지고서 해산을 안 합니다.

그걸 안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요새는 여자는 먼저 범죄함으로 남자 없는  그런 경수가 있는 건데 그것도 또 이제 인간들의 조화로 면하게 해 버렸습니다.

또 해산도 안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해산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랬어. 그 죄악이 있으니까  그 죄악의 벌도 되고 그만치 했기 때문에 그만치 고통을 당해야 해산하는  고통에서 사람이 되어지고 해산해 가지고서 그걸 키운다고서 속을 썩히고 이러는  것으로써 구원이 된다 그말이오.

 아이들 키우는데 여자는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하고 아버지는 고생을 적게하고  이러니까 어머니 사랑이 크다 이러는데 어머니 사랑이 큰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죄를 먼저 많이 지었기 때문에 죄지은 그 값으로써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 멍에를  세워 준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해 놓지를 안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배암이 받는 벌이 다르고, 하와가 받는 벌이 다르고 또 아담이  받는 벌이 다릅니다. 그런데 하와가 받는 벌 다 제 하고 요새는 지금 인제  그것도, 성경에는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그것이 정식으로 그래야 그 범죄한  값을 돋쳐낸다 했는데 자, 여자가 월경을 가져야 먼저 범죄한 그 죄값을 하게  되는 것이고,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그 죄값을 하게 되는 것이고 또 남자를  사모해야 죄값을 이제 하게 되는 건데,  그것 사모라 하는 것이 상대방은 가만히 있는데 저 혼자 상배방을 사모하게  된다는 그것이 적지 않은 고통입니다. 이런데 이것도 지금 요새 인간들이 들어서  다 없애버렸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지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지 안하도록 별별 이 모든 논리 모든 사상 모든 주장을 가지고서 뭐  남자는, 여자는 남자 없이 동립할 수 없느냐? 또 남자를 제어할 수 없느냐?  남자를 지배할 수가 없느냐? 남자를 뭐 사모할 게 뭐 있느냐?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도록 그렇게 만들지.

 이래 가지고서 남자들은 앉아서 돈이나 꽁꽁 벌어 가지고 오고, 시장에 가면  남자 물건 하나도 없어. 여자 물건뿐이지. 여자들은 앉아 가지고서 딱 앉아서  보당을 누르며 '요래야 요 남자를 끌까, 꾀울까? 요래야 마음을 어떨까?' 요것만  앉아 연구하는데 남자 이것들은 짐승 모양으로 뿍뿍 일만하고 이러니까 이제  이게 뭣이냐? 이것도 이 타락이라 그말이오. 원 근본은 그렇지 않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하나님이 정해 놓은 법칙을 어겨서 이래 가면 좋은 줄 알아도  무궁세계에 그 벌이 지금 남아 있고 무궁세계에 손해갈 그 손해가 남아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성경대로 되야지, 그러기에 말세에 하나님의 저주를  가리켜서 여자의 세계가 된다 이랬어, 여자의 세계가 된다. 여자들이 지금 뭐  동등이라 이래 가지고서 하는 그것이 좋은 줄 알아도 성경대로 틀린 것은 그것이  전부 죄기 때문에 다 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뭣인가? 우리의 원수는 범죄케 하는 것이 우리 원수라.

이것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자기가 범죄한 그 죄와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한 것과  영 종류가 다릅니다. 자기가 범죄한 것은 하나님에게 노를 쌓기 때문에 돌이키면  되어지고 남을 범죄케 한 것은 하나님의 원수편에 섭니다.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는 것.

 내가 얼마 전에도 말 들었는데, 여자는 남자하고 결혼을 하지 안하려고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남자가 강제로 가 가지고서 이와 같이 정조를 순결을 빼앗게  됐다. 그러면 그것은 범죄케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벌이 큽니다. 나는  그 말하기를 '그것보다 좀 더 한번 생각해 봐라. 그게 범죄케 한 것인지 둘이  합의적인 같이 범죄한 것인지? 만일 그게 한 이차가 됐으면, 두 번이 됐다고  하면은 말할 것도 없이 그거 결혼을 시켜야 된다. 안 시키면 저희들이, 왜 서로  피차에 범죄케 해 놓고서 그걸 지금 변동할 수가 있느냐? 물론 안 맞으면  이혼하는 일도 있지마는 그것은 원리적으로는 결혼을 해야 된다.' 하는 것을  강조를 했었습니다.

 그러기에 여게 범죄케 한 것 보니까 범죄한 데 대해서 하나님이 복수를 아떻게  했느냐? 미디안에 있는 제사장 몇 사람이 이스라엘을 음행죄를 범하도록, 음행에  빠지도록, 음행죄를 범하도록 그렇게 유도를 한 그 일에 미디안에 있는 제사장  몇 사람이 참석했는데 미디안에 있는 남자들을 출전시켜 가지고 미디안에 있는  남자들을 전부 몰살을 시켰다 그말이오. 또 그러고 미디안에 있는 왕들도 다  죽여버렸습니다. 또 미디안에 있는 부녀들과 아이들은 다 생포를 해 버렸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성을 불로 살라버렸다 그말이오.

 그러면 여게서 우리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왜 뭣 때문에 모압과 미디안에 있는  그 사람들이 다 이스라엘의 원수가 됐느냐? 이스라엘의 원수된 것은 이스라엘을  범죄케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원수입니다. 이스라엘 원수면 원수지 왜 여호와의  원수가 됐느냐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남을 범죄케 하는 것이 이렇츰 무섭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거게서 전멸을 시켜 버렸어.

 다음에 또 계속을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현장에서 무슨 뭐 광고할 것 없습니까?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시간 나는 사람은  나는 대로 와서 저 창문도 인제 소제를 하고 차차 차차 소제를 해야 되겠습니다.

저 사층에서는 어제 학생들 오니까 천장도 뜯어놨지, 또 세멘 간 물을 다 그래  가지고 있지, 의자에는 미금이 푸신푸신하지 이래 놓으니까 영 학생들이 아주  왔다가 기분을 많이 잡쳤다고서 이래 말하는데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걸  독촉을 해서 끝내도록 그래 하십시오.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도끼다시가 영  느려. 이러니까 어짜든지 가는 것도 빨리 갈아 가지고서 소제해서 사층을 좀  안정을 하도록 그래 합시다.

 십 분 기도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좀 새벽기도 나오는 분들이 좀 권해 가지고 새벽기도 나오도록 해요 나왔다가  시간 되면 자기 각각 시간이 다르니까 앞에 가도 됩니다. 앞에 가도 되는데 그  핑계 대고 자꾸 안 나오지 말고. 나왔다가서, 나왔다 가도 은혜가 되고, 자기를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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