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람으로 자라가라

 

1989. 1. 4. 수야.

 

본문: 고후 4:17-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우리가 짧은 시간에, 짧은 시간에 받는 모든 어려움의 경한 것이, 아주 작은  어려움 적은 어려움, 또 퍼뜩 지나가는 그런 작고 적은 어려움,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데는, 안 맏는 사람들에게 없는 그런 환난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 없는 환난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은, 안  믿는 사람은 하루 밥을 두 끼 먹는데 우리는 한 끼 더 먹는 세 끼를 먹어서  그들이 당하지 아니하는 어려움을 우리가 당하는가?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보다  잘 먹고 살라고 함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인가? 또 잘 입고 살라고 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인가?  다 같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 다 밥 먹고, 옷 입고,또 집에서 제대로는  모두 자녀 교육도 시키고 이렇게 뭐 생활 하는데, 그 생활 하는 것이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생활이 아무런 어려움을 더 당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한 시간 일하는데 우리가 두 시간을 일을 해서  그런가? 또 그 사람들보다 품삯이 비싼 어렵고 된 일을 해서 그런가? 그런 것도  아닙니다. 꼭 같은 회사에서 꼭 같은 그 일을 해도 믿는 사람의 생활에는  어려움이 있고 불신자의 생활에는 믿는 사람들이 당하는 그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게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이라' 그 말은 다 모두 가정을 가지고, 또  가족들을 다 그래도 먹여 살리고, 자녀 교육하고 이렇게 뭐 별스러운 생활 하는  게 아니고 다 같은 생활 하는데, 믿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옵니다. 또 믿는 사람  가운데도 같은 생활 하면서 어려움이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고, 어려움 있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 말은 우리가 그저 긴 시간이 아닌  짤막짤막한 그 토막의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그 조그만한 환난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또 잘 믿는 사람이나 그저 말 신자,  이름만 신자라 해 놓고 참 아주 그래 믿는 사람들이나 다 먹고 살기는 같고, 또  각각 제대로는 다 자기 의무와 책임의 모두 구비한 일들을 하고 사는데, 왜  이펑게 어려움을 닥치며, 또 어려움 닥치는 그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만든다' 이랬습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만든다.' 그러면 기독교는 자꾸  어려운 그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만든다 하니까 '기독교는 어려움의 도라',  '기독교는 고생하는 도라.' 그러면 고생이 가치 있습니까? 만일 기독교가 고생하는  도라 이러면 그것은 기독교는 고행의 도이기 때문에 그거는 기독교는 아닙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의 도는 아닙니다.

 이런데 꼭 같이 살면서 어려움 당하는데, 꼭 같이 살면서 어려움 당하는데  어려움 당하는 그것 가지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만든다.' 이거 참 뭣인지?  그러면 믿는 사람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 무슨 이 세상에 어떤 수입이 달라  그런가, 생활이 달라 그런가? 뭐 수입도 같고 생활도 같고 사는 것도 같고, 그런데  왜 환난은 받으며, 또 환난 받는 그게 무엇이기에 그 환난 그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그것이 여게서 말씀하시는 중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같은 직장에서 꼭 같은 일을,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일을 합니다. 일을 하는데 하나는 그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하나는  어려움을 당하고, 또 어려움 당하는 사람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고,  어려움 당하지 않는 사람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것을 만들지 못하고,  이러니까 이거 뭐인지 여러분들이 그걸 잘 알아 보십시오.

 그것을 다른 데는 또 말하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직장 한 고 일터에서 같이  일하는데,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같고, 일하는 그 일의 종류도 같고, 또 같이  하루 일을 분담한 그 양도 꼭 같고, 이런데 하나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데리고 가시고, 하나는 버려 두고 가신다' 이랬습니다. '꼭 같은 자리에서 꼭 같은  일을 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라고 데리고 가시고, 하나는 버려  던져 버려서 멸망하도록 던져 버린다' 이랬습니다.

 암만 봐도 출근 퇴근 시간 다 갈고, 일도 꼭 같은 종류의 일을 하고, 또 하루  자기가 책임진 그 일의 성과의 양도 꼭 갈고, 그러니까 월급도 꼭 같고, 이런데  하나는 하나님이 데리고 가시고 하나는 하나님께서 버려두고 구원하지 않고  버려둬 버립니다. 그거 뭣 때문이겠습니까? 그거 뭐인지 누가 압니까?  그것이 뭐이냐? 잠깐, 다 같은 사람으로 다 같은 일하면서 다른 사람은 받지  않는 그 어려움을 당하는 그 사람이, 꼭 같이 출근 퇴근 시간 같애, 월급 같애,  일을 분담한 것도 같애, 또 일을 해 놓은 그 날 결과도 다 성과 해 놓은 것토  같애, 이런데 하나는 환난이 없고 하나는 환난이 있다. 그거 뭐 때문에 환난이  있는지? 환난이 있는데 이 환난이 그러면 하나는 환난이 있고 하나는 환난이  없다면 환난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소? 아무도 안 좋아하지요. 이런데 하나는  환난이 있고 하나는 환난이 없다. 그러면 다 환난 없는 걸 좋아하지 환난 있는 걸  좋아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꼭 같은 일에서 꼭 같은 월급 꼭 같은 일의 성과를 다 내고 가는데 하나는  환난이 있고, 하나는 환난이 없다고 하면 환난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환난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아무도 안 드네요. 그렇지요. 환난 있는 게 왜 다 같은, 근무 시간이  같애, 한자리에서 일을 해, 월급도 같애, 또 그날 일을 해 놓은 그, 그 뭐라  합니까? 일을 해 놓은 그거 뭐라 합니까? 일을 해 놓은 그걸 뭐 뭐라 하요  성과라 하요 뭐라 하요? 실적? 녜, 그러면 일한 그 성과를 실적이라 그만 그래  합시다. 실적도 꼭 같고 그런데 환난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하면 환난 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다 환난 없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야 환난 없는 게 낫지. 그런데는 환난 없기를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아, 이거 안 드네. 나는 환난 없는 게 좋겠네요. 월급도 같애,  시간도 같애, 장소도 같애, 일거리도 같애, 그날 하루 일해 가지고 '얼마 너는  해라' 약속, 그러면 실적 그것도 같애 다 같은 데야 환난 없는 게 좋지 뭐 때문에  환난 있는 게 좋겠습니까? 이거 다 환난 없는 게 좋지요. 이런데 이 환난이 없는  사람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지를 못하고, 환난 있는 그 사람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는 것이 된다고 여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  같이 일을 하면서 환난 없는 사람과 환난 있는 사람 두 종류 있는데, 환난 있는  사람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게 되고, 환난 없는 사람은 그 일뿐이지  지극히 큰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지 못하고 한다고 하면 '환난 있고 되도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고 나는 영원한 영광을 마련 못 해도 우선  환난 없는 게 좋겠다.' 그러면 환난 없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마련 못 해도  환난 없다고 하는 사람이 누구며, 어려운 환난을 당해도 영원한 영광의 지극히 큰  것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소원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마 다 들  거야. 그러면, 다 같이 밥 먹고 살고 다 같이 일합니다. 꼭 같은 일해. 일 하는떼  하나는 환난이 없고 하나는 환난이 있습니다. 이러면 이게 무슨 환난일까? 그게  무슨 환난이기에 사람들이,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그 환난을 당할라고 애를 쓰고,  환난 없기를 원하지 않고 환난 있기를 원합니다. 산다싱은 말하기를,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만일 환난이 없으면 나는 하나님에게 기도해 가지고 환난 있는 곳으로  보내 달라' 나는 그렇게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왜? 이 환난 이게 들어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것을 마련하게 되기 때문에 마련되는 것이 좋으니까, 환난이  좋은 게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것을 마련하게, 마련하는 그 환난이기 때문에  환난을 사람들이 다 자원해서 취하지 억지로 당하는 그런 환난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 환난은 무슨 환난인가? 이 환난은, 요거 좀 알기 어려운 말이오. 듣고  뭐 외우기야 쉽지마는 깨닫기가 어려운 설교라.

 그러면 이 환난의 이 결과가 이렇게 좋은 결과가 맺는데, 이 환난은 무슨  환난이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맺는가? 그 결과를 그러면 맺으면, 자, 그뭐  뜻은 다 할라 하면 많고 지극히 크고, 지극히 큰 것을 만드는데, 지극히 큰 것을  만드는데 지극히 큰 먼 땅덩어리를 만드는가? 지극히 큰 집을 만드는가? 지극히  큰 무슨 성을 만드는가? 여기 만드는 거 뭐입니까? '지극히 크고 영원한', 또  이거는 일시만 있을 게 아니라 영원한,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만든다  이랬습니다.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그러면 영광이라는 것은,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가 잘나고, 또 아주 권세가 많고,  재물이 많고, 학식이 많고 그러면 자기 자체에 모든 것이 구비하고 흘륭하고  이러면 그 사람이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광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하나도 안 드네요. 아주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모든 게 구비하고 굉장하게 위대합니다. 권세도, 실력도,  재물도, 지혜도, 총명도, 학식도 모든 것이 다 말할 수 없이 뛰어난 그런 아주  부강을 가졌습니다. 가졌으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고 칭찬하겠습니까, 시기하고  미워하겠습니까?, 자, 시기하고 미워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럴 때는 시기하고 미워할 사람둘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시기하고  미워할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시기하고 미워할 사람들? 아주 그 사람  모든 면이 구비하고, 흘륭하고, 권세도 많고, 돈도 많고, 똑똑하고, 세력도 많고,  아주 잘났고, 위대하고, 모든 면이 굉장 합니다. 그 사람 보고 시기하고 미워할  사람 한번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나는 손 듭니다. 나는 시기하고 미워하겠습니다. 정직하게 나는 시기하고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하고 아주 아무것도 없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옆에  하나 있으뗬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동정하지, 그 잘난 그 사람 나는  동정하지 않겠습니다. 좋아하지 않겠습니다. 시기하고 미워해서 '저 자식 저거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저거 안 뒈지나? 없었으면 좋겠다.' 이러는데,  만일 그 사람이 그렇게 모든 면이 훌륭하고, 구비하고, 위대하고, 크게 모든 것이  많이 있는 그 부강한 그것을 가지고 저만 혼자 쓰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서 해택을 입혀서, 그러면 혜택을 입혔으면 입힌  그것은 뭘로 나타나겠습니까? 욕으로 나타납니까, 감사로 나타납니까? 녜?  입혔으면 욕으로 나타납니까, 감사로 나타납니까? 감사. 그러면 그것을 그 사람이  전부 다른 이를 유익되게 다른 이가 원하고 좋아하는 대로 다른 이 좋게 이렇게  했으면 많이 가지고 했으면 많이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고 좋아하고 환영할  것이고 존경할 것이고, 적게 했으면 적게 환영하고 존경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가 많이 가진 것이 영광입니까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입혀서 다른 사람에게 덕을 보였을 때에 덕본 사람들이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영광은 어데 있습니까? 많이 가진 데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거 가지고 덕을 보인 거기에 영광이 있습니까? 덕을 보인 데  거게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잠시 어려움을 당하는, 잠시 '잠깐 받는 환난과 경한 것이' 잠깐  받는 조금 받는 이 환난이, 얼마 되지도 않는, 가벼울 경(經)자, 경하다 가볍다  말이오. 환난의 조그만한 환난이라 말이오. 조그만한 환난 받은 그것이 지극히 큰  영광을 만들어 낸다. 이러기 때문에 이 환난이 없는 것보다 환난이 좋습니다.

지극히 큰 영광을 만들어 내. 작은 환난이 큰 영광을 만들어 내는데, 이 영광은 천  년만 가고 만 년만 가는 게 아니라 영원히 간다 했습니다. 영원한 영광.

 그러면 어떻게 받는 환난인가? 어떻게 받는 환난인가? 다 같이 내나 같은  직장에서, 같은 직장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꼭 동등 월급을 받고, 같은 일을  하고, 일한 실적도 꼭 같이 매일 나타내고 이런 일을 하는데, 꼭 같은 작업복 입고  일을 하는데,하나는 환난 없이 하고 하나는 환난 있게 하는데, 환난 없게 하는  사람은 그저 그날 하루 일급이나 벌고, 환난 있게 산 사람은 환난 있게 한, 환난을  받으며 산 그게 뭐 이기에 그 환난이 들어서 영원한 영광을 마련합니다. 영원한  영광을 마련해. 영원한 영광을 마련해. 그 영광이라 하는 것은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을 좋게 유익되게 했기 때문비, 다른 것들이 감사하고 기뻐서 못 견뎌서  찬성하고 환영하고 존경하고 이렇게 높이고 섬기고 위하는 그게 영광인데, 그런  영광을 마련해요. 돈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그 환난을 가지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해요. 여러분들, 요 영원한 영광이라 이런 것을 자꾸 생각하고 생각해서  새김질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 보고, 아주 부자로 살다가 죽었는데, 둘이, 꼭 같은 부자  둘이 죽었는데, 한 사람은 '하, 그 사람 아까운 사람 죽었네' 모든 사람이 아깝다고  참 원통하다고 눈물 흘리는데, 한 사람은 '아이고, 그놈 잘 뒈졌다.' 그러면 눈물을  흘리고 모두 아까이 여기고 그렇게 하는 그 사람이 영광이 있습니까, '아이고 그놈  돼지 같은 놈 잘 뒈졌다' 이라는 그게 영광 있는 것입니까? 어떤 게 영광 있는  것입니까? 그 칭찬 받과 눈물 흘려 주는 그게 영광이 있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이거 다 같은 직장에서 꼭 같이, 다 같이 같은 일을 하고 사는데, 하나는  환난 있고 하나는 환난 없고, 환난 있는 사람은,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게 되고,  환난 없는 사람은 영원한 영광을 마련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날 월급이나 벌고  말고, 같이. 일하는데 하나는 영광을 마련하게 되고, 하나는 영광이 하나도 없게  되고, 영광 마련한 사람은 환난이 있코 영광 마련 안 한 사람은 환난이 없다  이랬는데,  그러면 그 환난이 무슨 환난이기에 이미 같이 밥 먹고 살고, 같이 일하고 살면서  환난 그것만 받으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게 되니 그 환난이  뭐인지? 뭐이기에 그 환난이 그렇게 보배로운지? 그 환난이 뭐이겠습니까? 저  우리 OOO 집사님이 뭐 갸웃거리는 거 보니까 뭘 조금 눈이 떨어졌는가  모르겠는데, 그 영원한 영광을 마련한 그 환난이 무슨 환난입니까? 한번 말해  보이소. 주님을 위해 참고 견디는 거라? 그것은 그저 오십 점 주면 좀 많이 줄  거고, 사십오점. 자, 우리 OOO 장로님? 대답해 보십시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그거는 사십 점. 이거 참 어렵다. 이래 놓으니까 못 마련하는  모양이라. 자, OOO 장로님? 피와 성령과 진리와 영생으로 사는 거라? 이거는 뭐  빵점을 줄 수는 없고 이거는 그래도 백 점 줄 수밖에는 없는데. 백 점 주기는  줘야 되겠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그거 그렇습니다. 꼭 같은 직장에서, 꼭 같은 시간에, 꼭 같은 장소에서, 꼭 같은  일 해서, 꼭 같이 밥 먹고 삽니다. 이런데 한 사람은 환난 없이 그 일 하고, 한  사람은 환난 있게 그 일 합니다. 그럴진대야 다 아무라도 환난 없이 일하려 하지,  환난 취하려 하는 사람 어데 있습니까? 아까 손 들라 하니까 하나도 안 들데요.

환난 없이 일하지. 그런데 환난 없게 일하면 그저 썩어진 것 그거 월급 받아  가지고 집에 가서 잘 먹고 살찌고 뛴뛴한데, 환난받는, 이미 먹고 살면서 월급  받으면서 환난 있게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은 환난 그거 가지고 영원한 영광의  지극히 큰 첫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들은 다 환난 없는  생활 하지 않고 환난 있는 생활 할라고 애를 씁니다.

 이런데 그거 물으니까 주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거, 또 주님을 사모하고 위해서  모두 중심으로 사는 거 이랬는데, 그 답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영생으로 사는  것이라 하는 대답을 했는데 그 대답이 맞기는 맞습니다. 맞기는 맞는데, 그러면  피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살고 영생으로 사는 것이 뭣이기 때문에 이미  밥먹는 일 월급 받는 일, 똑 같이 월급 받는 일, 꼭 같이 작업을 해서 실적을  올리는 일, 꼭 같은 일을 하면서 요 네 가지 때문에 환난 받는 거, 이미 꼭 같이  일을 하면서 요 네 가지가 하나도, 한 사람은 네 가지 없이 일하고 한 사람은 네  가지 있게 일하니까, 네 가지 요것이 있게 일하는 사람은 환난을 어려움을  당하는데 그 어려움이 그것이 지극히 큰 영광을 마련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뭐이기에? 그것이 일을 하는 데에 진리로 일하는 것입니다.

일하면서, 이미 그 일 하면서, 일을 하면서, 일할 때는 뭐이 일하는고 하니 마음이  일을 하고, 생각이 일을 하고, 뜻이 일을 하고, 정성이 일을 하고, 일하면저 눈도  함께 눈을 놀리면서 일하고, 귀로 들으면서 일하고, 혀로 말하면서 일하고, 수족을  놀리면서 일하고, 성질을, 성질을 가지고 일하는대, 이미 그 일을 하면서 진리로  할라고 하니까 어려움을 당합니다. 귀로 가지고 진리를 범하지 않으려고.

진리대로 귀를 사용할라고, 누가 귀로 진리에 위반되는 거짓말을 같이 하면서  같이 죄 짓자고 속삭거릴 때에 귀로 가지고 듣는데 이 귀가 진리대로 들올라  하니까 옆에 다른 사람은 다 듣는테, 이 사람은 들을 수가 없어. '아, 나는 그 말을  못 듣겠다.' 이러니까 어떨 때는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와 가지고 '나하고 둘이  한번만 같이, 여기도장 한번만 찍어라. 같이 하자. 이라면 이번에 큰 수입이 있을  터이니까 같이 둘이 갈라 먹으면 좋지 않느냐?' '야, 네가 지금 내가 이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네가 증명을 하면 다른 사람이 다 인정할 터이니까 네가 이거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마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도장 하나 찍어 달라.' 하루  종일 일하는데 옆에 와서 뽀쟁뽀쟁 자꾸 합니다. 그랄 때에 그날 그 귀를 진리로,  진리를 지키면서 그날 일하려 하니까 환난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 학생들?  환난이 있어 없어? 있겠어? 요새 여기 뭐 사경회 하지. 사경회라 말은 성경을  살피고 조사하는 그런 회라 그말이오. 성경을 공부하는 성경 공부하는 회라  그말이오. 사경회라 말은. 이미 일하면서 이 귀로 죄짓지 않으려고 하니까 여간  어려움이 아니야, 일은 같이 하는데.

 또 눈으로 일은 하면서 이 눈 가지고 오만 죄 다 짓습니다. 황보 기라는 그  장로님이 자기 부인이 말하는데, 젊을 때 눈을 뚜드려서 눈이 자주 퉁발같이 부어  오른다고. 그래 내가 있다가 '사모님 왜 장로님이 눈을 그래 때립니까?' 안 그러면  될 건데 어데 갔다 오면 어데 공연히 안 볼 걸 봤다 하면서 와 가지고 눈을 툭툭  뚜드려 가지고 눈이 퉁발같이 되도록 한다고. 그래 인제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뭣  때문에? 그날 걸을 가면서 어떤 젊은 부인이 지나가니까 공연히, 지나가든지  말든지 주님이나 생각할 터 인데, 그래 가지고 아 이래 쳐다보고 아름다우니까  제법 시간을 기울여서 그거 한 뭐 얼마 일 분인가 이 분인가 십 분인가 눈으로  봤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눈을 뚜드려 통발같이 된다고. 눈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눈으로, 죄짓지 않는 눈으로, 의로운 눈으로 이래 산다는 것이 그게 힘들어.

다 같은 일은 하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은 모르는 고통을 당하는  거라. 모르는 고퉁 당하는 거 그래서 공연히 '이거는 보는 것을 주님 기뻐하지  않는다. 안 볼 것이다.' 안 볼 건데 자꾸 안 보려 하는 것만 자꾸 보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걸 안 보려 하면 뭐 힘이 얼마나 드는지? 얼마 동안은 이렇게 애를  쓰면 안 볼 거 인제 안 보게 되는데, 안 봤는데도 가다가 갑자기 딱 보게 된다  그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이놈을 단속하려 하니 참 이거 뭐 여간 환난이 아니라,  이거. 또 아, 이거 뭐 내밀내밀거리는 이거 척인데, 그 사람이 얘기하면 그  얘기하는 데 따라서 이런 얘기도 주고 받고 얘기 재미가 있다 말이오. 이러는데  떡 살고 보니까 쓸데 없는 애기 했거든. 또 쓸데 없는 얘기 보다도 다른 사람을  넘어지는 얘기를 했다 말이오. 쓸데 없이 남의 논인장단, 남이 기니 짜르니 남  훼방도 했고, 처음에는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을 남을 헐고 뜯는 거는 나쁘지만  다른 사람 칭찬하는 거야 좋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다가 시작해 가지고  나중에 다른 사람 허는 데까지 그만 들어가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 혀 이놈 하나  단속하려 하니까 어떻게 힘이 드는지? 여간 환난이 아니야.

 일은 손으로는 뭐 일하니까 손 이거는 죄 못 지어. 발도 말이지요. 일 하니까  손이 일하려 하니 손이 일하니까 손이 이거 뭐 죄짓겠습 니까? 손으로 일하면세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괴상치도 않아. 이래 놓으니까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라 말이오. 이 마음에 똥도 들어오고, 뭐 이것도 들어오고, 뭐  똥보다 더 더러운 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또 이 마음 이것이 순 아주  창기보다도 이 마음이 여게도 갔다가 저기 갔다가 오만 짓 다 합니다. 마음으로  음행 다하고, 마음으로 도적질 다하고, 마음으로 교만한 짓 다하고, 마음으로 쪼  다 부리고, 마음으로 제 자랑 다 하고, 마음으로 허영 허욕 다 범하고 꽉 찼다  말이오.

 이러니까 꼭 같은 일을 하는데, 환난 없이 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거 그것만  수입해 가지고 살다가 끝내지마는 이제 이 네 가지 환난, 하나 말했어. 진리대로  할려 하는 거. 요 진리대로 하는 요거 하나만 해도 요런데, 이래 가지고 이  진리대로의 이목구비 수족으로, 언행심사로, 지정의로, 희로애락으로, 이 모든 것이  진리대로 할라 하니까 얼마나 어려운지? 또 성신의 감동대로 하려 하니까 더  어려워. 성신의 감동이 끊쳐지지 않도록 계속 성신의 감동이 계속 되도록 하려  하니까 이거는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일하는 건 그건 뭐 아무것도 아니고 일하는  거 언제 일 했는지도 모르고 어려움 거게 지금 고통이라 말이오.

 여게다가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셨으니까 죽기까지 죄 없이 했는데, 이거 범해 수  없으니까 죄 없이 하려고, 삐뚤어진 게 없이 하려고, 인인관계에 삐뚤어지지 않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삐뚤어지지 않게, 자기와 자기 관세에 삐뚤어지지 않게,  일에 삐뚤어지지 않게, 물건과의 관계에 삐뚤어지지 않게, 모든 거 삐뚤어지지  않게 이렇게 하려 하니까 주인을 보고 눈 가림만 할 수가 없어. 이것 맞추다  보니까, 이것 맞추다 보니까 뭐 주인 눈가림이 아니라 이것 맞추다 보니까 그  일은 다 잘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렇게 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 요 환난을 받으며 사는 사람은  조금 있으면 주인이 자꾸 책임을 무겁게 지우고, 자꾸 모범의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나중에 가서는 회사를 다 맡기려 해. 뭐뭐 회사 많으려고 욕심낸 게  아니라. 이거 환난, 진리로, 영감으로 죄 없이, 의롭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 이 생활을 여러분들이 해석을 하면 다 알 거라 그말이오.

여러번 배워 놔서. 이렇게 사는 이것이, '잠시 받는 환난이라' 그 말은, 잠시 받는  환난이라 말은, 잠시라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졌는데, 우리는 영원 무궁한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백 년을 산다 할지라도 그까짓 거는 하룻밤  나그네요 잠깐입니다. 또 그러고 그날 오전에 출근해 가지고 퇴근할 때까지는 그  잠깐이라. 찍해야 여덟 시간, 열 시간 한다 해 봤자 잠깐 아닙니까? 이 잠깐 그  동안에 우리가 견디기 어렵지마는 잠깐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환난의 얼마 안  되는 경한 것이, 이렇게 하는 이것이, 우리가 뭐 태짐 지는 거 모양으로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이거 귀로 듣는 것도 이거 힘드는 것도 아니고 이런데 힘드는 것도  아니고 이런데도, 하려면 할 수 있는 것인데 이거 계속해서 하기가 어렵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리 되면 뭘 만드느냐?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만든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이 자, 영광 만든다 했으니까 이렇게 진리로 사는 것이 뭐  한다 말이오? 진리로 사는 것이 저 좋게만 한다 말이오 남 좋게 한다 말이오?  뭐이요? 진리로 사는 것이 남만 좋고 저는 안 좋으면 그 사람이 좋아 가지고,  마음에 본인은 안 좋고 그 사람 좋고, 나는 안 먹고 그 사람 먹이면 그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가 있는가? 나도 먹고 그 사람도 먹어야 되지. 저도 좋고 남도  좋다 말이오. 저도 좋고 남도 좋기 때문에 그 사람이 칭찬해. 제게도 유익되고  남에게도 유익되고, 이러니까 저 잘되고 모든 사람에게 감사받고 칭찬하고 모든  사람이 다 존경하고 이렇게 우러러보고 할 수 있는 그 행위가 되어지지, 그  행위가 되어지지 그 마음, 그 뜻, 그 성질, 그 입술, 그 눈초리, 그 귀, 그 행동, 그  인간, 이리 되니까 자체는 영광이 있겠소 없겠소? 자체는 존귀합니까 안  존귀합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돈 많은 거는 욕을 해도 그 사람에게 사랑 많은  거 욕하지 않습니다. 또 권세 큰 거는 욕을 해도 그 사람에게 진실이나 거룩이나  성결이 큰 것은 다른 사람이 다 존경하고 욕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자체가  영광스럽게 되지. 모든 사람에게 전체를 복되게 유익되게 했기 때문에  영광스러익지지, 이러니까 이것이 영원한 영광이라.

 그래서 요러면 꼭 같이 사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뒀다. 겉어머리는  꼭 같이 살지마는 속에 네 가지 이 환난 당하는 이것이 없는 사람은 껍데기만  살았기 때문에 그까짓 거 뭐 속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버려 두지마는 같은  자리에서 살았지만 요거는 속에 버릴 수 없는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버릴 수 없는 게 이루어진 것이 몇 가지 있습니까? 저  OOO사장? 인제 손가락으로 이래 너이를 가르치는데 됐어. 그만하면 합격이라.

 그래 버릴 수 없는 네 가지. 그 사람이 언행심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진리가 이루어졌어. 진리가 담겨졌고 진리가 이루어져서 진리가 그 속에 있고,  영감이 그 속에 있고, 죄 없는 무죄가 있고, 의가 있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이  있고,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이 있고 하니까 그 거는 전부 영생하는 것인데, 그걸  썩도록 내버려둘 수가 있어야지? 내버려둘 수가 없어. 내 버려두면 날아  올라가요. 그거는 버려지지를 않아. 버려지지를 않아.

 이러니까 다 같이 살았지마는 하나는 버려두고 하나는 데려갑니다. 우리가 다  같은 생활에서 이 환난, 이 참 어려움 당하는, 이 어려움 당하는, 어렵기야  어렵지마는 그 결과에다가 비해서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 말이오. 결과에다  비해서 이거 어려운 어려움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 너무 큰 결과를 맺기  때문에.

 이래서 우리가 자기 생활에서 잠시 환난의 경한 것이라는 이 환난 없는 생활,  어려움 없는 생활, 이 생활이 좋은 줄 알아도 좋은 거 아닙니다. 요새는 보니까  남한에 긴장을 풀어야 되지 긴장 안됐다. 모두 긴장이라 하면 모두 죽을 줄  아는데 기독자는 긴장을 가져야 됩니다. 기독자는 긴장을 가져야 됩니다. 깨어  있는 것이 긴장 가지는 것이오. 왜? 이 넷을 버리지 않고,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네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다.' 이 말은 네 귀가 이 네 가지로 살려고  노력해서 변화되지 않고 예수 안 믿는 귀때기와 꼭 같은 귀때기 가진 거는 아직  할례 안 받은 귀때기를 가졌다. '네 눈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 '네 몸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어쩌든지 우리는 꼭 같은 생활하나  그 속에 쉬지 않는 노력과 쉬지 않는 그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요 네 가지로  사논 요 생애를 계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몇닢푼치 안 되는 사탕을  몇 개 놔 놓고 장사를 하고 앉았는데 '여보 뭐합니까?' 하나는 '아이구 뭐  앉아봐야 돈벌이도 몇푼 되지도 않는데 뭐,' '이러면 하루 수입 얼마나 됩니까?' '  뭐 얼마 됩니다.' 또 그 사람이 '자기는?' '오늘은 수입을 제법 했는데.' '뭐 했어?'  '믿음 수입했지.' '믿음 수입이 뭐인데?' 진리 순종, 영감 순종, 사죄. 칭의. 화친  순종, 영생 순종이 믿음 아닙니까?' 이 사람은 믿음 장사하고 앉았다. 저 사람은  돈 장사 하고 앉았다.

 우리가, 이래서 이 썩을 것 속에 썩지 아니할,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더  속사람은 새로와지도다' 썩는 이 생활 껍데기 속에 영원히 썩지 않는 새것이  이루어지는 이 양면을 보고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안팎에 눈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쨌든지 자기 현실 생활에서 껍데기 돈만 보고 살지 맙시다. 속사람의 수입을  보면서 삽시다. 속사람이 하루 지나면 그만치 자라고 그 만치 깨끗해지고 그만치  구비해지고 하도록 이제 속사람으로 살고 겉사람으로만 살지 맙시다.

겉사람으로는 살아 봤자, 암만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어 봤자 그거는 썩는  것입니다. 속사람은 썩지 않고 늙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광고 잠깐 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종전과 같이 공과를 외우고 실천할 것. 하루 삼십 분 기도화는  것 잃지 말 것. 또 새벽기도에 계속하고, 또 부장 선생님들은 마음 속에 품어 놓고  기르도록 할 것,  지금 우리 교회서는 중간반,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모아 놓고 사경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내일 오전 열시로부터, 또 밤 일곱시로부터 두  시간밖비 안 남았습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부형님들도 이 자리서 하니까 참석을  하고, 또 학생들 다른 것 못 해도 참석을 시키도록 하십시오.

 성경도 배우지마는 또 너무 지금 이 학생들 그만 서울대학에나 뭐 이런데, 서울  가면 그만 다 버려 버리요. 목사도 버려지는 판인데. 내가 말하기를 '서울  교회들은 다 속화됐다' 이러니까 듣기가 싫어서 이러지만 다 속화됐소. 이런데  철없는 그것들이 공부한다고 서울 가 가지고 옳게 된 거 서울서, 저울대학 보낸  서울대학 한 학생들 다 왔겠지. 서울대학 보낸 부모네들 또 학생 저는 모를런지  몰라도 부모네들은 그걸 보십시오. 아무리 외식을 해도 다 나옵니다. 외식을 해도  다 나와요. 이러니까 옛날 여게서 있을 때와 서울 가고 난 다음에 그게 같은가 안  같은가? 그 속에 이 네 가지로 썩지 아니할 것이 이루어진 거, 이 네 가지로 썩지  아니할 것이 이루어진 거, 지극히 큰 영광의 귀한 것, 이것 만들어지는 것, 이 네  가지가 그 속에 만들어지는지, 자라지는지, 있어지는지 이것을 보면 '속았다' 이럴  건데, 이거는 눈에 안 보이고 이거는 안 보이고, 뺏지만 서울대학 뺏지 달았으니까  '뺏지가 보인다. 우리 아들이 서울대학 다닌다.' 사각모자나 쓰면,  또 이래 가지고 뭣을 못 듣던 소리나 거기서 별소리 들은 것 모양으로 청문회서  듣고 무슨, '그러고 난 다음에 밝히이소. 답하시오.' 우리 교역자들도 이 교역자회  하니까 '거기 대해저 대답하이소.' 그게 청문회서 들은 거 그걸로 대답 다 하지만  거서 들은 문자라. 그래서 '네가 말 햇때똥 많이 싸는구나.' 그걸 말똥 싼다 해,  말똥. 말 똥 싸는 것. 그게 제 분수와 제게 적합지 않은 엉뚱한 말 한 마디 듣고  떡떡 쓰는 그게, 그걸 가리켜서 '말 설사 한다, 말 똥 싼다' 그래 말합니다.

 그런 세상인데 거기 가 가지고 뭐 어쩔려고? 우리 교회서 서울 간다 해 가지고  거기 가서 입학한 사람 몇이나 돼? OOO 선생? 서울에 가 가지고? 올해? 다  떨어졌어? 우리 여기 O장로님 말이오. 그 아들 서울대학 보내려고, 공부  잘하니까, 서울대학 보내려 쌓는데, 이놈은 서울 가면 내가 믿음 떨어지니까 안  가려고 이러니까 안 가려 하는 걸 아버지 욕심에는 꼭 보내야 되겠다. '우리 아들  서울대학 다닙니다.' 이래야 뭐 되겠다 싶은, 이러니까 보내려 한다 말이오. 이거  안 가려 하고 이러니까, 하도 그래 쌓아니까 하나님이 눈을 병신을 만들어 가지고  뭐 글을 봐야 공부하지.

 이랬는데 그래 옆에서 읽어 줘서 공부했는데, 부산대학에 떡 아주 일등 성적으로  들어가니까 그만 서울대학 보냈으면 되는 건데 저거 안타까와서. 아마 눈 아마 곧  다 나을 거라. 인제 이 부산대학에 떡 들어 갔으니까 여기서 이래 가지고  공부하게 되면 그만 눈 나아. 아버지 어머니가 들어서 믿음이 괜찮으면, 그거 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믿음 위주로 살려 하니까 그런 꼴 많이 당해. 그런 사람  얼마나 많은지.

 그 누구도 서울대학 보내려고 이래 쌓는데 이 서울대학 이래, 그래 뭐 어데  동아대학인가 어데 걸렸다고 막 좋아서 이러면서 그래. OOO 집사 여기 왔어요?  어데 있어? 그 서울대학 보내려고, 그 죽이려고 애를 써 쌓아니까 그 놈이 안  죽을려고 애를 써 가지고 이래 부산에서 안 죽고 살았어. 거기 가면 거게 가면  진리를 못 배웁니다. 여게 있으며 진리 배우고, 하나님이 축복하면 뭐 다윗은 대학  안 해도 그거 다 왕도 됐고, 요셉도 대학 안 해도 역사에 제일 위대한 총리대신이  됐는데, 하나님이 하면 뭐 못할 거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어쩌든지 갭데기 수입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 안 하시오.

 새벽기도 다 나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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