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지식, 행동

 

1980. 5. 12. 월새

 

본문: 고린도전서 4장 1절 - 5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여게 판단이라는 말은 판정한다는 말입니다. 판정 판단해 가지고 이 렇게 시비를  해 가지고 이것은 이렇다 결정지우는 판단하는 것을 말하는 데 아무도 이 판정을  인간으로서는 할 만한 실력이 없어서 인간의 판정 은 그것이 천하 인간이 다  이거는옳다 판정했다 할지라도 마지막 하나 님의 판정이 있기 때문에 그 판정에  가면 얼마든지 정죄받을 수도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요. 사람이 판정한 것이 옳은  것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마는 또 미달된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게요.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미달인 것을 깨닫고 미달인 줄 알아 또  심사하고 또 심사해서 이래서 판정하시는 그날에 가 가지고 후 회할 것이 없도록  그저 심사 숙고해 가지고 심사하고 심사하는 그것이 우리가 준비하는 방편이지  표준이지 많은 사람이 너는 의인이라 한다고 안심을 하고 또 제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이 참 이야 됐다 한 그 일이라 고 이기야 됐으니까 하나님 앞에도 의로  통과될 것이다 하고서 판정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라 성도나 모든  이방인들이 옳다고 판정한다 해도 그 판정은 내가 아주 매우 작은 걸로 여긴다  그 사람들이 판정하는 것을 보면 자기네들 보기에는 옳다 싶어서 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의 옳 다고 인정되는 그 사람들의 보는 지식이나 지혜의 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아주 허무하고 허무한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 판단을 판정을 받을 그  판정하실 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이 판정하실 터이니까 그분 앞에  가면은 그분은 예를 들면은 판정할 때에 만 가지 면을 보고서 판정을 하신다고  하면 인간은 찍해야 두서가지 두 서너 가지면 밖에는 보지 못 하고 판정하니  인간의 판정이 하나님의 판정에 도달치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어데까지  이르렀든지 또 살피고 살펴서 있는 힘 다해서 살펴 고치 는 충성 이거 외에는  우리가 할 더 힘이 없기 때문에 이거 외에는 가질 것이 없다는 그런 것을 여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뭐 이것은 판단이라면 이것은 옳다 그르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하지 말라는 말 아닙니다. 옳다 그르다 물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접할 때에도  그거는 우리 보기에 틀렸으니까 그거는 틀렸다 옳다 해 가지고 옳은 것은 옳다고  인정하 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인정해서 가까이도 하고 멀리도 하고 떠  나기도 하고 그렇게 해야 되지마는 그걸 하지 마라는 말이 아니고 판정 이거는  됐다 이래 판단해서 이거는완성품이라 완성의 행위라 이 면은 온전한 것이라  이렇게 하고 거게 대해서 손 떼는 그런 일 하지 말아라 계속 죽는 날까지 그  면에 대해서도 살피보고 살피보면 참 다른 것 보다도 설교도 하고 나서 설교할  때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요것은 다 이 제 구비하게 설교했다 해도 또 설교하고  나서 엎드려 기도하면 이걸 내가 증거할 터인데 내가 이것 준비 모지래서 준비가  부족해 가지고 이 걸 증거하지 못했다 또 그때 보다도 일년이 지난 뒤에 보면 또  증거한 것이 너무도 성글고 너무 미달이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 은혜를  가로막는 것 밖에는 본인에게 느끼지지 않는 것이 이것이 성도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는 다 된 줄 알고 칼빈주의라는 사람들은 칼 빈주의  그게 다인 줄 알고 거게 넘어가면 정죄를 합니다. 이번에 대구 에서도 말  들으니까 그는 칼빈주의가 아니라 칼빈주의가 아니지 칼빈이 말하지 안한 것을  많이 말했으니까 칼빈이 그때에 깨닫지 못한 것을 많 이말했으니까 그 칼빈 말한  데서 끝을 맺지 않지 그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 말입니다. 칼빈보다 더  가서는 안된다 또 칼빈의 안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 또 칼빈과 대립되면 안된다  그 사람들은 칼빈을 하 나님 자리에 서서 벌써 우상이 됐기 때문에 칼빈의  교리에 효력을 받지 못합니다. 칼빈의 성경이 아닙니다. 그래 성경은 더 가지도  말고 덜 가지도 말라 이러나 성경 안에 영감이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도  문서계시가 있고 은밀계시인 영감이 있기 때문에 문서계시는 하나의 길집이에  지나지 못하고 울타리에 지나지 못하고 문서계시 안에 하나님의 은밀계시인  영감계시가 영감으로 가르쳐 준 계시가 있으니 영감계시에 도달해서  영감계시대로 해야 된다 하는 것이 오늘의 깨달은 사람들의 말인데 그렇게  판정합니다.

백 목사의 교리도 성경 같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선 보기에는 하나도 틀림없이  성경대로고 제일 옳은 것이니까 인정을 하고 따라가지마는 따라가면서도  이만하면 이제 안심이라 할 것이 아니고 항상 기도하면서 행여나 이것도 혹  틀림이 없는가 자기는 더 양심을 써서 또 그 교리도 깨닫는 교리도 더 연구하고  또 생활도 이 말씀대로 됐나 안됐나 더 연구하고 해서 힘쓰는 것이 계속해야  됩니다.

그러면 칼빈의 깨달은 것도 이 깨달음은 오늘까지는 옳다 그러나 이 깨달음으로  다가 아니다 다가 아니기 때문에 또 거기서 새로운 깨달 음이 나오면 성경을  상고해 가지고 이거는 성경대로 된 거기 때문에 이 거는 우리가 믿을 수 있다 또  그것도 다가 아닙니다. 또 연구해서 또 성경대로 깨닫게 하는 것을 또 연구해서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가르쳐 놓은 것도 뒤에 후배들이 연구하고  연구해서 자꾸 계속 연구해서 그 시대 그 시대를 감당하도록 연구에 연구를 가해  가지고 서 더 그 시대에 하나님이 나타내 주시는 새로운 계시를 자꾸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성경을 새로운 성경을 기록한다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깨달음을 자꾸  깨달아 나가야 된다 이기요. 사도들은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에 사도들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급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밑에 바로 사도 밑에 직접 배운 사람들이 속하도라 합니다. 사도를 바로  계대받은 그 속사도 그 사람들을 교부라 그 교회에 신앙적으로 아버지되는  사람들이다 속사도 교부라 하지마는 속사도 교부들이 깨달은 것과 그 후 몇백년  후에 깨달은 사람들의 깨달음이 훨씬 더 구비하고 앞섰습니다. 그런고로 주후  100년만에 깨달은 것 이백년만에 깨달은 것 삼백년 만에 깨달은 것 오백년 만에  깨달은 것 천년만에 깨달은 것 천 오백년 만에 깨달은 것 천 칠백년 천 팔백년  지금은 천 구백 여년이니까 천 구백년 그 여러 해도 천 구백년 해방 전에 깨달은  것 과 해방 후에 깨달은 것이 또 다릅니다. 안 틀려도 그게 틀렸다는 기 아니고  틀리지 않아도 거기서 더 깨달아진다 그 말이요. 더 깨달아져 야 돼. 아무리  묵은 둥치가 있다 할지라도 그 묵은 둥치에다가 또 새움이 나야 되지 새움이  나면 자라지 않습니까? 나무도 자꾸 그 묵은 둥치가 잘못되지 안하고 그 둥치를  뿌럭지를 삼아 둥치를 삼아 거서 자꾸 자라 가야 된다 말이요. 자 깨달아 가야  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깨 달음이 점점 자라가야 됩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자라고 있는 것은 깨 달음이 점점 온전해져 가 또 더 구비해져 가 틀린  깨달음이 아니라도 틀린 깨달음에 또 미비된 점이 더 구비해지고 옳은  깨달음에도 더욱더 거기서 구비하게 달아지고 더 깊이 깨달아지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깨 달음이 자라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행위도 이만하면 됐다고 하는 사람은 벌써 그 사람은 늙은이의  신앙으로서 죽은 신앙 한가지요 그러면 옳은 행실이면 옳은 행실에 거게서  자기로서는 과거보다 더 힘쓰고 더 정확하게 하고 더 진실 되게 하고 더 참되게  하고 자꾸 이렇게 해서 자라가는 것이 있어야 되고 새로와져 가는 것이 있어야  된다 말이요 새로와져 가는 것이 있어야 되 칼빈의 깨달은 것도 그분이 깨달은  것 그것이 아주 몇가지 그 강령은 참오늘까지 깨달은 데에서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의 깨달은 데는 틀림 이 없는 바른 깨달음이라 했지마는 그분이 그 시대에  나타나지 안한 죄 악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기요. 안  가르쳐 주면 모르는기라.

그러나 칼빈은 벌써 지금 사오백년 전에 사람인데 사오백 전 세상과 지금 세상이  달라 그때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의 지혜가 달라 그러기에 그때 사람들의 범죄와  지금 범죄가 다르다 이기요. 이러기에 그 시대의 범죄를 방어하고 그 범죄에게  인간을 구출하는 그 방편만 가지고는 지금 세대는 방어가 안되 또 지금은 그거만  가지고는 구출이 안되 그러기 때문에 자꾸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오면 지식이 더하여진다는 그 지식에 대하여 특별히  말씀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지식도 마귀의 지식도 최고도로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의 깨달음도 최고도로 가속도로 깨달아질 것입니다. 왜 세상이  가속도로 지금 자꾸 죄악이 발달되고 마귀가 이제 남은 때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있는 수단 방법을 다 할터이니까 하나님  편에서도 있는 지능을 다해서 진리에 나타난 영감을 다해야 이길 수 있다  이기요.

그러므로 지난번에 졸업한 졸업한 그 학생들에 대해서는 이제까지는 배운 거게서  떠나지 말고 배운 그것을 꼭 새김질해서 자기 지식을 삼도록 해라 해서 그것을  자기 지식으로 삼은 사람도 있고 그것도 하나의 참고로 이용을 하고 그저 다른  지식과 썩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썩은 사람 은 그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왜  그것이 기초 지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하는데 위험해 그러나 가르친  그 지식을 자기의 기초로 강령으로 이렇게 삼았으면 그 뒤에 자기가 성경을  연구해도 그 기초에 원 줄기에 강령이 자기 강령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따로 새로 연구를 해도 탈선된 율은 없다 이기요. 이래서 이제는 자유로  얼마든지 성경을 연구해라 연구하나 이제까지 배운 그 배움에 이탈된 그런 것을  서로 발견해서 연구할 때에는 신중히 해서 배운 것에 이탈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성경으로 상고하고 많은 시람으로 상고해서 백 목사 가르친 것도 완전이 아니기  때문에 거게도 틀린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틀려도 그것을 틀리면 아니다  다라고 그렇게 하지 말고 틀린 것이 있으면 성경으로 또 상고해 보고 상고해  보고 또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서 나타낸 주석들도 상고해 보고 신중히 해서  그것을 네가 발표를 하고 그렇게 경솔히 했다가서 참말로 이단될까 네가  조심해라 대개는 맞지 틀린 것이 별로이 없을 것이고 또 그렇게 연구하면서  이제까지 말하지 안한 말 이제까지 가르치지 안한 것은 얼마든지 시대에 있을 수  있다 이런 가르치지 안 한 그것은 새로 그것을 연구해서 발표할 때에는 그것을  자기가 인기 끌거나 위해서 벌로이 경솔히 하지 말고 그것을 나타낼 때에는 백년  이백년 가도 정죄받지 안하고 주님 앞에 가서 정죄받지 아니할 것이 라고  성경에서 증거되는 모든 증거가 있거들라거들랑 그래 가지고 겨우 두려운  마음으로 발표를 해라 도 그라고 다른 사람들의 모든 깨달음의 주석들을 참고를  해 봐 가지고서 아직까지 백 목사님이 그것은 그 시대 에는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타내지 아니한 것인데 그 다음 세대에 필요해 서 나타내는 것이라면 어짜든지  연구를 해서 나타내도록 해라 그러기에 없는 것을 나타낼 때에도 조심하고  그보다 더 조심할 것은 이제 배운데 와 배운 것과 다른 것 배운 것과 다른 것  배운 것에 다른 것 다른 것이 라면 배운 것이 삐뚤어졌는지 내가 다른 것을  발견한 것이 삐뚤어졌는지 모르니 그거는 더욱 더 신중을 가하고 연구에 연구를  깊이 가해 가지고 서 이것은 아니라고 하라 선배들의 틀린 것을 바로 고치는  것이 그 충성된 후배요 선배들이 거기까지 끌고 나왔으면 끌고 나온 거기에 대를  이어서 그 다음을 계승해서 자라게 하는 것이 참된 후배라 칼빈에 대해서 그  칼빈 제자라 칼빈이 말한 거는 뭐든지 다 맞았다 틀린 기 없 다 칼빈 이상은  없다 거기까지는 맞고 그 이상은 안 맞았다 하는 그 사 람들은 칼빈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칼빈을 완전히 박살을 시키는 사람들 이요 그 사람들은 칼빈의 참  제자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배우는 데에 심각하게 범위를 가지고서 좀 범위넓게 배워서  그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것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저 아니라고 만  말했으면 옳은 자리 있는 사람은 다했습니다. 과거에도 예수교가 주후 400년부터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주후 400년부터 타락하기 시작해서 교회가 타락하니까  교회는 안됐다 수도원을 만들어서 우리가 믿는 사람 끼리 수도원에 가 가지고  살자 해 가지고서 주후 500년 부터 수도원이 차차 시작이 됐습니다. 교회는  천주교가 그 교권을 가지고서 저거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고 이렇게 주장을  하니까 거기서는 옳은 주장을 하면은 자꾸 핍박을 하고 몰아대고 쫓아내고  매장을 시키고 이라니까 교회 안에서 옳은 주장을 하면서 믿지를 못해서  수도원을 만들어 놓고 믿는 사람들끼리 수도원에 가서 믿겠다고 교회가 타락하면  기도원에 가 가지고서 사람들이 거서 기도하고 성경 보고 은혜받는 것처럼 그  래서 주후 700년 경에는 아주 수도원이 많이 흥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수도원에 가 모이고 교회 가서 믿는 사람들은 그 천주 교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서 교회를 자꾸 사도만 팔아먹습니다. 사도 사도 이렇게  사도만 팔어 먹고 이것이 사도 교회라 이것이 베드로 교회라 이래 가지고서  베드로 우상도 사도 뭐 요한 우상도 전부 우상을 갖다가 걸어 가지고서 이  이렇게 하는 천주교 이것이 타락해 나가는데 주후 700여년에는 수도원으로 이래  나가지고서 난중에 그때부터는 사람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바른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든지 죽였습니다. 죽여서 그 사람들이 교리를 가르친 것을  나태내지 못했소. 그 교리 가르친 것을 겨우 어떤 사람이 필기해 가지고 문서  조가리에 남구고 필기 해 가지고 이런데 저런데 숨어 있고 이래 이 감추어 있고  하는 그걸 나 타내지 못하고 그걸 주장을 하고 설교를 하고 또 천주교에서 또  죽여서 죽인다고 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을 모아 가지 고  간추려서 이것을 전부 주 모아 가지고서 역어서 이것을 체계있게 편 집한 사람이  칼빈입니다. 칼빈이 다 깨달은 것 아니요 칼빈이 편집했습니다. 그전에 바로  깨달아서 죽여도 그 교리를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 교리가 선 그 바른 교리를  주권을 말해 칼빈이 주권을 말해 칼빈이 주권을 말한 것 아닙니다. 그 안에 벌써  주권을 다 말하고 죽었습니다. 주 권을 말하고 그 선지자들은 다 죽임을  받았습니다. 칼빈은 편집자입니다. 칼빈은 편집자요 그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  바른 교리의 이 깨달음을 하나님이 주권이나 궁국적 은혜나 그 구원이나 제한적  이 구원이나 하는 그런 것을 다 말하고 그 주장을 한 사람들이 죽임을  받았습니다. 수없이 죽었소. 죽음으로서 그 교리를 증거하고 죽은 그 교리들을  주어 합해 가지고서 모아 가지고 편집한 사람이 칼빈입니다. 칼빈 자기 혼자  깨달은 게 아니요 칼빈은 편집자입니다. 루터는 그것을 주장한 그 주장 의  사람이고 그라고 칼빈이 그것을 말한 그뒤에도 새로운 교리를 많이 말했지마는  그 교리들은 다 매장을 당하고 이라기 때문에 칼빈 때에 그 때에 교회와 같은  교회가 새로와지는 기 없습니다. 새로와짐이 없고 좀 거서 새로 깨달아서 새로운  교회는 그 교회를 핍박해서 그 교회가 용납지를 못하고 또 쫓겨 나가서 이래서  미국에 신학교만 말해도 유니온 신 학교가 신학교로서는 제일 큽니다. 지금 그  신학교가 제일 크요. 유니온 신학교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웨스트민스트 신학교니  하는 그런 것은 웃습니다. 저 부스러기 재산도 그 몇만분지 일도 안되고 또 책도  그렇 고 교훈도 그렇고 학생도 그렇고 그 아주 허무합니다. 그러나 거게서 바로  말하는 사람들이 쫓겨 났습니다. 거기서 교수들 중에서 바른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거는 이단이라고 좇아냈어 좇아내니까 이 사람들끼리 신학교를 만든  것이 그것이 푸리스톤 신학교입니다. 푸리스톤 신학교를 만들었는데 유니온  신학교 보다는 푸리스톤 신학교가 정통입니다. 푸리스톤 신학교를 만들어 가지고  거서 그라니까 거기도 또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서 바로 깨달은 그 사람들의  숫자는 적고 그 사람들은 죽고 또 바른 깨달은 사람은 적고 잘못 깨달은 것들이  말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양심도 안 쓰고 이라니까 그 못할 방법을 수단  방법을 가루지 안하니까 그 학교는 큽니다. 큰데 그것이 또 속화되서 발로  나갈라고 하니까 거 기서 또 쫓아냈습니다. 저거에게 순종 안한다고 상위에  불복종한다고 학교 그 이념에 불복종한다고 또 쫓아냈소. 쫓아내서 쫓겨나온 그  사람이 메천 박사라 하는 그 사람이 쫓겨 나왔습니다. 그 사람이 나와 가지고 또  신학교 세운 것이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입니다. 그 우리 서 영호 목사님이 가서  공부하는 곳이 웨스트 민스트 신학교입니다.

그 신학교에서도 벌써 이 신학교는 학적이고 신앙이 없다 해 가지고서 거기서 또  마찰이 돼 가지고서 또 나온 사람들이 또 신학교를 시작했읍니다. 자꾸 이렇게  새로운 것은 묵은 것은 쫓겨 나는 것이 필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아무리 타락한 시대라도 하나님 하시는 역사는 은밀가운데에  정통이 쭉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있는데 세상이 그 바른 길로 나가는  것을 언제든지 욕은 후대입니다. 환영하지 안하는 것은 그거는 후대 중에 후대요  또 욕하는 것은 그거는 후대입니다. 후한 대접이요 욕만하는 것은 그거는 참  후한 대접입니다. 하나님이 그래도 그것을 막기 때문에 그런 것이요 성경에  기독교 역사를 본다면은 다 죽 였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보면은 선지자들을 다  죽였지 선지자들이 수 명대로 산 사람들이 없어 거의가 다 죽임을 받았고 이제  수명대로 사는 그런 선지자들을 보면은 그 보편적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래  성경에 보 면 선지자를 다 죽인 자손들이 후손에 가 가지고는 예를 들어서 저거  할아버지 나 그런 사람들이 죽였으면 손자 대 때에 가면 손자 때 가면 비 로서  깨달아진다 말이요. 우리 선조 할아버지들은 이런 그분들을 죽있 다고서  이분들을 죽있는데 우리가 그때 있었으면 우리는 죽이지 아니할 것이라 자기  선조 때 죽인 선지자들의 교리는 그 후 세대가 깨닫고 제 원통히 여기지마는  자기 시대에 있는 선지자들은 또 자기가 죽여 이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 소리를 따라서 가는 것도  위험하고 또 이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핍박받은 그 외로운 것이니까 외로운  것이니까 외로운 그것만 보고 옳다 하고 따라가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많이  간다고 따라가서도 안되고 또 외롭게 간다고 이기 진리 인갑다 해서 따라가도  안됐고 많이 가고 외롭게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 고 자기대로는 힘 있는 대로  성경적이냐 성경적 아니냐 그것을 상고를 해서 성경으로 판단해 가지고서 바로  나갈라고 애를 쓰고 죽는 날까지 자꾸 바로 나갈라고 애를 쓰고 또 성경대로  그만 됐다고 안심하지 말고 성경대로 했으면 성경은 천하에 두도 둘 곳이 없을  만한 많은 내용을 간 추려 성경만 기록했기 때문에 성경은 윤곽이라 그 성경  한절 가운데에 뭐이 들었는지 그걸 또 성신이 가르쳐 주는 대로 또 알아야  되겠다 이기 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저 지난 아침에 무슨 말 했지요 세  가지가 뱅뱅 돌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하나는 뭐이지요 예 네 하나는 소원입  니다. 하나는 소원 하나님 앞에서 그 바로 행할라고 바로 알라고 소원 하며 바로  행할라고 소원을 해 바로 살라고 바로 구원 얻을라고 이룰라 고 바른 구원을  이룰라고 바른 행위를 할라고 소원을 하면 그 다음에는 그 소원에서 뭐이  나온다고 했소 네 바로 아는 지식이 나옵니다. 바로 아는 지식이 나오요 또 바로  안 지식에서는 뭐이 나옵니까 행함이 나옵 니다.

자기가 안 행하고 안 행하고는 견딜 수 없게 알아졌으면 그게 바로 안가고 아는  것만으로서 끝나버리고 그 행하고 싶은 그 충성이나 노력이 없으면 그런 앎은  앎이 자기에게 복음으로 알아진 것이 아니고 그 지식 으로 교만케 하는 것으로  알아졌습니다. 지식이 복음과 다릅니다. 복 음은 그 지식이 자기를 복되게 하는  그 지식이 된 것이 복음이고 그 지 식이 자기를 복되게 하지 못하고 그 지식이  오히려 다사람이나 비판 하는 심판으로 쓰기 때문에 그 지식은 다른 사람을  비판해서 제가 교만 해지는 교만케 되는 지식이 있고 자기가 복음이 되는 지식이  있습니다. 복음이 되는 지식이 있었다면은 복음이 되는 지식인지 자기를 교만케  하는 지식인지 그것은 결과를 보면 알아 나무를 볼 기 아니라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수 있어 그 결과를 봐야 되지 결과는 자기가 행함이 안 나 오고는  견댈 수 없어 자기 힘 있는 데까지는 행하는 그 행함이 나오는 그 지식은  자기에게 복음으로 되어 있는 지식입니다. 참 안 것입니다. 또 자기가 행함은  자기가 행했는데 자기가 행했는데 행하고 나니까 이제 는 됐다 되다 후유하고  이제는 행했으니까 됐다 이만침 했으니까 됐 다 그러면 그 행함은 바로 된  것입니까 안된 것입니까 그거 바로 안된 것이요. 바로 행했다면 자기는 그  행함으로 인해서 자기에게는 그 더행하고 싶은 행하고 나니까 거게서 원하는  그것이 나옵니다. 행하고 나니까 더 알고 싶고 더 해야 되겠고 또 더 고쳐야  되겠고 이러니까 그 행함에서 소원이 나오지 안한 행함이라면 그 행함이 죽은  행함입니다. 소원이 안 나오는 행함이라면 죽은 행함이요 행함이 안 나오는  지식이라면 그것은 죽은 지식 지식이 안 나오는 참 아는 지식이 나오지 않는  소원이 아니라면 그 소원이 또 죽은 소원입니다. 산 소원과 죽은 소원이 있고 산  지식과 죽은 지식이 있고 산 행함과 죽은 행함이 있으니 산 행함은 뭘 보고  압니까 네 산 행함은 소원을 봐서 알 수 있소 산 행함을 했다면 그 사람이  행하고 난 다음에 이제는 됐다 하는 기 아니라 그 피곤치 아니하는 산 행함을  했으면 자꾸 마음이 그것으로 만족이 되지 아니하고 산 행함하고 나니까  부족감은 더 나오고 이제 새로해야 될 그 소원은 더 나온다 이기요.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은 못나도 좋습니다. 무식해도 좋습니다. 진실한 자라야  되지 진실로만 걸어가는 것이지 진실 없는 그자는 천재를 가져도 소용없어  천재를 가져도 소용 없습니다. 세상 지식을 다 가져도 소용 없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진실이 아니면 안됩니다.

여게 찾아오는 사람마다 그 사람들이 묻기를 제일 처음에 묻기를 그것묻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연구했습니까?. 그거 물어요. 성경을 어떻게 연구했습니까? 그  신학을 몇이나 했으면 책을 얼마나 봤습니까?. 저는 성경책 외에는 별로이 본  일이 없습니다. 사다 놓기는 사다 놓았지마는 칼빈 주석은 한 페이지도 안  봤습니다. 사다 놓기만 사다 놓고 칼빈 주석은 한 페이지도 내가 안 봤습니다.

박 윤석 목사님의 주석은 몇 페이지 봤어. 그래 나는 책을 보고 배운 사람  아닙니다. 성경책을 보고 배운 사람 아닙니다. 고려신학교에 가도 배운 것  별로이 없어 거게 가 가지고서 마음에 확신을 가졌어 가진 것은 나만 이렇게 안  줄 알았더니마는 큰소리 못했디마는 모두다 이렇게 알고 있구나 나 아는 것을  틀렸다 하는데 모든 사람이 아는 건 이렇게 알고 있는데 두 가지를 대조해  보니까 내가 깨달은 것이 앞섰구나 거기서 자신만 가진 것이 많았지 그 나는  부흥회도 참석을 별로히 안했습니다. 그저 성경 보고 산골이 앉아서 성경 보고  아침에 새벽기도 인도하면 9시 나 될 때까지 언제든지 거기서 기도하면서 자기가  설교한 거 그거 다시 회개하고 또 새롭게 깨달아지고 그저 그대로 아는 대로  그대로 실행할라 고 애썼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깨달아진 것이지 뭐 성경을  깨닫겠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았어 성경 보는 일은 좀 열심히 많이 봤어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고 해서 지금 성경 다 잊어버렸어 그때는 성경 절수는 다 잊어  버리되 외우지 못해도 거의 다 성경을 외웠었는데 지금은 이제 성경을 그 만 다  잊어 버렸어 성경 절수는 더욱더 다 잊어버렸고 이제 말하면 그거는 성경에 있는  말이다 없는 말이다 그거는 짐작을 해. 이러니까 성경도 하나님이 보게 하실  때에 보지 성경을 보게 할 때가 지나가면 못봅니다. 언제든지 성경을 봐지는 것  아닙니다. 기회가 있어 지금은 성경을 볼 때가 아니라 성경을 간추려 깨달은  대로 다른 사람에게 증거해야 될 때이니까 그 증거함으로서 자꾸 깨달아져.

하나님께서 성경을 읽게 하는 것보다도 자꾸 깨닫게 해 주시는 이것으로서 자꾸  새로와져. 지난주보다 이번주에 깨달은 기 또 다르고 금년보다 또 다음에는 또  깨달음이 다르리라고 생각해 이제 집회도 모든 사람이 그때 말하고 그때 어떤 때  말하지만 그때에 있는 것을 제가 가만히 또 한번 읽어 보고 살피 보면 깨달은  것이 좀 더 불구비하고 구비치를 못했고 빠진 게 많고 이래 됐습니다. 이러니까  깨달음으로 우리가 날마다 새로와져야 됩니다. 세 가지 말한 요것을 뱅뱅  돌아가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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