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문

 

1984. 8. 26. 주일오후 

 

본문: 호세아 2장 14절∼20절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 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우리는 짧은 이 세상은 세상이지마는 우리가 접촉하는 것은 심히 믿은 것을  접촉합니다. 참 그 종류와 수를 또 그 중복과 변동을 우리는 측량 못 할 만치  복잡한 것들을 상대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참이라는 지식을 몰랐습니다. 하도 세상에는 시시비비의  지식들이 많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고  동양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서양에서는 저렇게 말하니 어느 말이 옳은지 어느  길이 옳은지 그것을 참 찾기에 심히 곤란했고, 또 갈 바를 알지 못해서 우리는  방황하고 항상 용기를 다해서 돌진하지 못하고 그저 머뭇머뭇하면서 세상을  지내왔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인해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정확 무오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밝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 없는 지식도 많이  있는데 그런 지식은 우리에게 가르치지 안했지마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지식은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지식은 다 옳고 바르고 참된 지식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공연히  정평 정가를 못하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몰라서 공연히 분주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옳다고 생각하고 전심 전력 기울여 달음질하던 그 길도 그 사람이 마지막에  죽을 때에는 다 헛일했다, 나는 일생을 속았다. 헛일했나 그런데 또 그 다음  사람들은 속을 때까지 죽는 날까지 그 길을 또 그저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이 있으니까 이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좀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비판해서 자기가 안 된 것은 그 큰 넓은 종이를 내놓고 모든 걸  비판해서 이것은, 시발이 어데며 종착이 어데며 그 가치가 어떠하며 그것이 어데  속했으며 그 결말이 어떠한가. 그것에 대해서 결과적인 보응이 어떠한가 이런  것을 종이를 놓고 우리는 자꾸 이렇게 비판하고 평가하면서 확정을 지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거는 확정을 지워서 작대기를 긋고 이거는 다시 이거는 되풀이 않겠다 이거는  하지 않겠다, 또 이것은 아직까지 모르겠으니까 미결로 두고서 내가 연구해 봐야  되겠다, 또 이것은 죽어도 해야 될 일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관련됐던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을 나 비판해 보고 평가해 보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 닥칠지는 모르지마는 과거 현재의 것을 다 우리가 똑똑히  정평 정가해서 간추렸다고 하면 우리의 생활은 아주 간편하고 단순합니다. 그렇게  복잡한 생활 아닙니다. 공연히 가치 없는 것을 가치 있다고 마귀란 놈이 그렇게  미혹시키니까 그 미혹에 빠져 가지고서 일생 동안 우리는 속아도 속는 줄 모르게  사는 참 불쌍하고 가련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실상 불쌍하고 가련한 자들이요  우리가 미친 자들입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몰라서 그러니까 그건 그렇다 할  수가 있다 하지마는 우리는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옳고 바르게 참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 말씀을 대조해 가지고서 폐단 될  거는 다 제거해 버리고 작대기 긋고 '이건 나 할 일 아니다. 이건 내가 할 일이다.

이건 죽어도 할 일이다 이건 죽어도 안 할 일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한다면 우리의 할 일은 간편하고 단순한 줄 압니다.

 또, 그 길은 가기가 어려우나 가고 난 다음에는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이랬습니다. 갈 때는 다 어려움이 있으니까 잠깐 동안 근심하지 안 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그대로 통화하고 난 다음에는 한없는 기쁨이다. 기쁨을  가지게 됐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 따져보면 아무 것도 아니어서 침을 뱉아서 내 버리고 논을 여기다 붙여서  집어내 던질 수 있는 그 더러운 것, 가치 없는 것 무가치한 것, 거게 목숨을 매어  달고 고게다가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거 이게 미친 자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우리 참 미친 행위 많이 합니다 참 미친 짓 많이 해요.

미친 짓 많이 하고 썩은 일 많이 합니다. 그것이 사 십만 돼도 후회될 일을  삼십에서는 하고 있지 삼십만 돼도 후회할 일을 이 십에서는 하고 있지.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비판해서 우리에게 당면될 모든 일을  다 다른 일을 못해도 앉아서 그런 것을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해서 그것으로 확실히 간추립시다. 우리 생활을 간추립시다. 널펑하게 놓고  할 건지 안할 것인지, 취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 귀하게 여길 것인지 천하게 여길  것인지 이것도 알지도 모르고 아무 거석 없이 정신 없이 뭐이든지 닥치면 다  취할라 하고 또 조금 어려움만 있으면 뭣이든지 다 물리칠라 하고서. 이러니까  우리가 이 사람노릇을 못 하고 또 우리가 좋은 날을 보지를 못합니다.

 제가 어제도 여기 꽃마을에 가보니까 거게 내원정사라는 그 절이 있는데 그  절에서 터를 우리 예배당 만치 도무지 그 땅은 아무도 사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고 집도 못 짓고 하니까 무용지물로 그래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땅을 어찌 돼  그런지 예배당 만치 사 가지고서 내원정사에 유치원을 건설한다고서 고래  해놓고서 대대적으로 큰 건축을 합디다. 그 사람들은 부처가 돈을 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말하기를 그 모든 것 다 주님이 다 주시지 주님이 주시지 안한  거는 털끝만한 것도 없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받은 거 가지고서 자기네들은 하나님께 받았다는 그런 감사는 돌리지  안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는 그 모든 불교에 대한 그런 것을 가르치고  또 그런 것을 기를라고서 이렇게 돈을 많이 들여서 하는데 그런 것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왜 돈을 많이 줄까? 그것은 성경에 기록했기 때문에 이해가  됩니다. 왜? 시편 73편에 보면 하나도 어려움이 없어도 죽는 날까지 재물은  더하고 건강은 더하고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죽는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  무궁의 세계에 가 가지고 그들은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자들은 왜 이리 곤고하게 사는가? 왜 모두 이렇게 천하게  곤고하게 이렇게 거지로 사는가? 그 사는 것을 어떨 때는 위로를 받습니다.

위로를 받는 건 또 성경대로 위로를 받습니다. 과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마구 죄든지 뭣이든지 먹고 마시는 이런 마구잽이로 그와 같이 사니까  생활이 좀 풍부했다가 지금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 하지 양심대로 살라고 하지  또 교리와 신조에 어긋나지 않게 살라고 하지 이러니까 이 어두운 세상에서  깨끗이 밝게 옳게 바르게 살라고 하니까 그 생활이 잘 될 리가 있나? 그러기  때문에 다 곤고하게 지낸다 또 그런 위로를 받습니다. 그것도 성경대로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경대로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성경이지마는 또 성경에 보면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명령을 지키면 천하의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나겠다' 하는 그것도  성경입니다. '뛰어 나게 하겠다, 네 도처마다 다 축복을 받아서 모든 생산에도  축복 받고 네 자손에게도 축복 받고 모든 소산에도 축복 받고 성읍에도 네  기구에도 네 식품에도 네 음식에도 전부 다 복을 받는다. 그러기에 천하 만민이  너를 보고 두려워하겠다 또 네가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겠다. 꾸어 주고  꾸는 그런 가난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축복해  주시겠다.' 이게 성경입니다.

 성경인데, 왜 이렇게 우리가 성경이 우리 신자의 형편과 이렇게 모순된가? 왜  이게 일치되지 안하고 모순된가? 이것이 믿는 사람으로서 번민이 안 된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성경대로 안 되면 이렇게 번민이 이렇게 모순되게 이래 돼 있는가?  그러면 그 모순이라 하는 것을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은 그저 그렇다는  말만 기록했지 그것이 참으로 고대로 성취될 그런 권위성 그 진실성은 없는 성경  말씀이라 이렇게 하고 지나가든지 이렇게 하고 지나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대로 이 말씀을 옳다 참되다 인정하면 왜 이 성도들의 형편과 사정이 이렇게  다른가? 이 모순된 것을 연구해 가지고, 어떤 원인으로 인해서 이 모순이 이렇게  있다 하는 그것을 연구 해 가지고서 확실히 소망하고 그대로 인정을 하고 가는  이 신앙도 이 과학적으 그 신앙을 가져야 될 터인데 우리는 그냥 참 그저  맹목적으로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진실이 없이 의심도 믿는 것도  아니고 반신반의로 이렇게 나가는 이 거짓부리 행실을 우리가 완전히 뜯어  고쳐야 되겠습니다.

 이 정신을 고쳐야 우리가 천함을 면할 수가 있고 이 정신을 고쳐야 우리가  성경에 '뭣이든지 네가 원한적으로 구하면 원한적으로 구하면 다 들어 주시겠나'  이렇게 말씀했는데 이 말씀이 거짓말이라고 인정을 하든지 그러면 이 말씀이  참말이라면 참말로 알고 이대로 해서 주님이 그 원한을 갚아주시는 갚아주심을  받든지, 그러면 제사 원한을 같이 주실 만침 주님에게 구하지 못했으면 구하는  일을 그것을 고쳐서 그 진리에 맞도록 구함을 가지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제가  구하는 것이 성경에 구하지 말라는 못 쓸 것을 구하는 것이니까 구하는 모든  기도의 제목을 다시 바꾸든지 뭐 해야 될 건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흐리멍텅하게 이래 가지고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 이것 참 이거는 정상이 아니고  마귀 그 놈이 우리를 속게 안 들어 가지고 이렇게 그저 머뭇거리면서 자꾸  지나가게 만듭니다. 우리에게는 도무지 진실이 없습니다  이래서,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이랬는데 이 오전과 오후에 본 이 성구에  대해서도 이 사실을 비유로 비유로 알 건가? 이 사실을 실상으로 알 건가?  실상으로 믿든지 비유한 그 비유로 믿든지 그거는 자유로 하십시오. 나는  실상으로 믿습니다. 털끝만치도 틀림이 없는 실상으로 믿습니다. 나는, 왜? 내가  깨달았고 내가 또 체험했고 실상이라 하는 것 그 이상 우리에게 정확한 발표가  없다고 나는 보기 때문에 정확한 것이요 인간의 관계는 모형이요 그는  원형이라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거는 자유대로 하십시오.

 오전에도 그 설교를 하면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말을 다 하면 나도  나도 믿음이 없는 모양인가 모든 사람들이 나 거게서 인정을 안하고 하나의  비유로 그와같이 말한 것이 실상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 나는  실상으로 말할라 하니까 말하는 사람도 주저주저 하지. 또 듣는 사람도 그렇지  이러니까 이 진리를 실상으로 단정을 짓든지 비유로 단정을 짓든지 여러분들이  각각 단정을 지우십시오. 나는 실상으로 단정을 벌써 지웠습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게 대해서는 자유로 맡기고, 이 본문에 기록한 대로 제가 간단하게  증거를 하겠습니다.

 집에 가서 호세아 2장을-호세아 2장도 성경입니다. 이 외경 아닙니다.

정경입니다. 성경입니다.

 이 본문에는 우리가 안면에 이 안면에 음행이 가득한 자와 안면에 벌써 음행이  나타나 있는 자와 그의 유방 사이에 음행이 있는 유방 사이라 말은-유방이라는  것은 새끼를 기르는 것이 유방 아닙니까? 젖통 아닙니까?-유방 사이에, 그러면  자기가 육신의 자녀를 기르든지 믿음의 자녀를 기르든지 자녀를 기르는 그  기름에도 음행이 섞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뭐 어떻게 하느냐? 광야가 되게  한다 이랬습니다. 그는 자기의 소유는 하나도 없이 완전히 발가쟁이와 같이 그  나던 날과 같이 발가벗긴다 그렇게 말 해 놨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안면과  유방 사이에 음행이 있기 때문에 발가벗겨서 거지를 만든다 이게 성경입니다.

성경이 이래 말씀해 놓으니까 우리가 그 두 가지를 회개하기 전에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발가벗겨서 거지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만일 안  그라면 하나님도 죄 지을라고요, 거짓말 할라고요?  그러면 음행은 어떤 걸 음행이라고 했는가? 고 다음에 보면은 음행은 그것을  음행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또 입고 사는 것  전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지  안하고 제가 사랑하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주었다 그것을 가리켜서  음행이라 요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세상, 또 제가 사랑하는 세상에 있는 것 하나님에게 사랑을  기울이는 것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기울이고. 하나님께 사랑을 기울이는  것보다도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여 거게다가 사랑을 기울이고 그것의  덕택으로 내가 산다 하는 그런 것을 다 가리켜서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는 것이라  그렇게 성경에 밝혀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 음행은 우리 신앙적 음행이요, 종교적 음행이요, 인격적 음행이요,  이 피조물로 된 피조물의 음행은 이 뭐 육의 육신의 음행하는 그런 음행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믿음으로 거게 맡기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것보다  세상 것 세상에 있는 것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복종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음행이라고 똑똑히 밝혀 놨습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에 등불 든 처녀는 맞이했고 등불을  들지 못한 처녀는 맞이를 못했습니다.

 그 등불이 뭐입니까? 등불이 하나님에게 모든 사람들은 맡기지 못하는데 자기는  맡기는 그것이 등불입니다. 다른 사람은 맡겼다가도 '아, 하나님이 잘해 주겠다'  하고서 만약 '맡깁니다' 하고도 좀 위험한 일이 있으면은 '아이구 하나님께 맡겨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이건 내가 좀 서둘러봐야 되겠다' 맡겼던 것을 도로 찾는  그것이 등불이 꺼지는 것이요 하나님께 전적 맡기는 그것이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맡길 수 없을 때에 맡기는 그것이 등불을 켜는 것이요 그를 바라보지  못할 때 그를 바라봐야 바라볼 수 없다, 바라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이제는 바라  볼 것이 없다, 이제는 묶여서 사자 구덩이에 집어서 훅 던지니까 던져 들어가는데  뭐 지금 바라 볼 거 뭐 있느냐 그 때에 바라보는 그것이 등불이라, 바라보는 게  등불이라. 의지할 수 없을 때 모든 사람은 의지 못하는데 그는 의지하니까 그게  등불이라 모든 사람은 복종하지 못하는데 그는 하나님께 복종하니 그게 등불이라.

이것 가지고서 주님을 맞이합니다.

 이러니까, '네 안면에 음행이 가득 찼다' 너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믿고 그것이 너를 살리고 너를 행복되게 하고  그것이 너를 배고프게도 할 수 있고 네 모든 생사 화복 존비 귀천 그 모든 승패  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건 거게 있다 해서 그것을 손잡고 거게 맞추어 가지고서  네가 살라고 애를 쓰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나님에게 모든 걸 맡겨  놓고 그분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 분에게 복종하는 이 일을 안 하기 때문에  너도 발가벗겨서 아주 천한 자를 만들고 네게서 난 육의 자손이나 영의 자손에  대해서 아주 천하게 만들겠다, 내가 긍휼히 여기지 안하겠다.

 또, 네가 이 세상이 나를 살린다 이랬지마는 너를 살린다 너를 존귀케 했다, 너를  복되게 했다, 너를 배부르게 했다 하는 고 직장이면 직장 고 놈을 바싹 내가  없애겠다, 고 회사라면 회사 고걸 바싹 깨겠다 그런 인물이면 그 인물을 죽여서  내가 바싹 없애겠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것입니다. '네가 이것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는 그 간부를 내가 완전히 멸해서 네 눈에 다시 보이지 않게 하겠다.

다시는 네가 만나보지 못하게 하겠다, 그런 것이 네게는 없도록 하겠다.' 말씀을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준 모든 패물 가지고서 장식을 해서 너를  아름답게 꾸미고 내가 네게 준 모든 것 가지고서 인물이 윤택하게 되고 이래  되니까 아름답게 윤택하게 된 것은 내가 너희에게 줘 가지고 윤택하게 됐는데,  윤택 그거 가지고 내가 너희에게 준 모든 자본 그거 가지고 나한테 감사하고  나를 사귀어서 어짜면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됐고 하나님 앞에 좀 잘 보일꼬 해서  하나님에게 잘 보일라고 하나님에게 잘 보일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줘 놓으면  그것 가지고서 어떻게 하면 세상에 지금 나를 나타내서 내가 좀 세상에서  높아질까, 세상에서 알아줄까 세상에서 위대해 질까. 세상에서 존귀해질까 요렇게  하기 때문에 네가 세상에게 잘 보여서 위대하다고 그렇게 여길라고 하는 그  자에게고 세상에게 네가 아주 처한 천물이 되도록 네가 잘 보일라고 하는 그  세상에게 아주 천물이 되도록 내가 만들겠다.'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상 교회 아닙니까? 오늘 믿는 사람들이 다 이거 아닙니까?  계약대로 됐습니다. 유태인들이 저와 같이 되는 것은 저와 같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너희들이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모든 종류 종류의 예배를  다 내가 제해서 없이 하겠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겠다.'  이러니까, 이북에서 하나님에게 예배드리지 못하니 무슨 예배를 드립니까?  남한에는 자유입니다. 얼마든지 기도하고, 얼마든지 찬송하고 얼마든지 성경보고,  얼마든지 전도하고, 얼마든지 성경 연구하고 자유 할 수 있지마는 이 자유하는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일 주일에 주일날 오전 한 번 오는 그 인간이! 그  인간이!! 주일날 오전 한 번 오는 그 인간이 예배드리면서 벌써 한 시간이  지나가면 지루하다, 지루하면 뒈져라!! 지루하거든 지옥을 가거라!! 이게 무슨  행위입니까? 이렇게 공산주의자들이 저렇게 하는데도 우리에게는 자유를 주는데  예배 보다가 설교 한 시간이 지나면 기니 짧으니, 뭐 비위에 맞으니 안 맞으니,  웅변적이 아니니 열변적이 아니니 정서가 없느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면 네가  어떻게 입으로 불어서라도 가리서라도 먹고 살아라. 먹기 싫어서 안 먹으면 너는  뒈진다, 하나님의 말씀이오. 왜 이렇게 우리가 모두 회개를 안 합니까 안 하기를.

안 해 봤자 별 수 없어.

 뭐 이렇게 해 가지고서 백 목사 거석하니까 거석해 쌓고 쫓아내도 문제없고  나는 여러분들보고 살지 안해. 주님보고 살이요. 내가 이 말을 안 해서 당신이  나를 노여워하시고 매를 때리지 이 말해서 매 때리는 거 아니야.

 내가 어제도 큰 죄를 하나 회개했어. 꽃마을에 기도실이 있는데 뭐 군대들이 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아, 거게 우리 연습하는데 그 집이 제일 잘 보이고 이러니까  그 위에다가 뭘 불을 하나 이래 켜 놓고 뭐 하는데 그거 좀 허락해 주이소.' '그  뭐 불 켜 놓으면 펌프로 물 쏘아 가지고 집 버릴 거 아닌가?' '아, 그 물 안 쏘아  댑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이래, 그래서 나는 '그래 하라. 뭐 그거야 뭐 우리가  다 반공에다 협조하고 있으니까 하라.' 이랬는데 어제 가니까 그 수위하는  할머니가 그만 내가 지은 죄 값에 내 대가리가 깨져야 되는데 그 할머니 그만  이마를 깨어서 네 바늘이나 기웠어.

 그때사 내가 깨달았어. '아, 내가 성경에 찾아보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집을  다른 데 쓰지 못하게 했는데 내가 이걸 생각지 안하고 여호수아 모양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보지 안하고 이렇게 했으니 이거 큰일났구나. 그래 내가 그  집사님에게 가서 가족들에게 가서 이거는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집인데  이거는 기도하는 하나님의 성전인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멸한다  이랬데 내가 이거 성전을 더럽혔으니까 내가 그렇게 하라 해서 성전을  더럽혔으니까 내 대가리가 깨져야 되는데 집사님이 이거 대속을 했습니다.' 내가  사과를 하고 그 치료는 그 사람들이 치료 값을 냈는데 '치료 값을 갖다 줘라. 그  사람들이 치료할 게 아니라 우리가 죄 지어 가지고 우리 죄지은 값에 우리가  벌받는데 공연히 그들에게 말할 게 없다. 갖다 줘라.' 그래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할 수 없으니까 다시 취소를 하겠습니다. 취소를 하고 앞으로는  그것을 주지 않겠습니다. 안 주면 군대 일이니까 세력에 의해 가지고서 만일 네게  가해가 오면 어찌 되느냐? 가해가 되면은 그것은 죽음으로 파수해도 파수해야  되는 것이니까 뭐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된다 하고  허락은 안 해줍니다. 허락은 안 해줍니다. 그래 단정을 하고 이랬더니마는 다행히  가니까 '아, 미안하다' 하면서 그래 고쳐서 깃대를 빼 가지고 내려가고 이래  고쳤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가 전부가 죄를 지어 가지고 자꾸 벌을  받는 거라. 그것 집사님 이마 깨진 거 내 이마가 깨져야 돼. 백목사 이마가 바싹  깨져야 돼. 왜? 깨질 만한 그런 죄를 지었는데 그 기도 해 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집을 전쟁 연습하는데에 써 가지고 될 건가? 그 기도는 다른 면으로  반공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크고 작고 당하는 모든 일, 우리가 가난해지는 모든 일, 크고 작은  가난해지는 모든 일 이것은 우리가 간부를 섬겨서 간부에게 영광을 돌리는 요것  때문에 가난해진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확정을 짓고, 또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게 보이는 것, 세상 사람에게 천하게 보이는 것, 우리가 주님의  법을 어겨서 세상에게 존귀하게 보일라고서 주님의 법을 어겨 가면서 세상에게  존귀해 볼라고 세상에서 좀 조금이라도 위대하고 이렇게 보일라고 하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 우리가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는 것은 세상에게 주님 버리고 존귀히 보일라고 하는 그 댓가로 수치 당한다  하는 요것도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확정을 지어야 되고, 우리가 신앙의 자유가 없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안하고 그것 가지고  하나님께 받기는 하나님께 받아 가지고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을 위해서  그것이 좋다고 영광을 거게 돌리고 감사를 거게 돌리고 그것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것이 나 좋기 때문에 그거 없으면 안 된다, 그거 틀리면 안 된다.

하나라도 틀려도 관계없다.' 은혜를 거게서 감사하고 그것에게 영광을 돌리고 이와  같이 함을 인해서 예배의 자유를 다 뺏들어 버린다 예배의 자유를 다 뺏들어  버린다, 성경에 명문했어. 예배의 자유를 뺏든다.

 우리가 앞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의 예배의 자유를 뺏들라고 애를 쓰는데  우리가 나의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모든 것 다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인데 주님이 사람 통해 주실 때도 있고 나라 통해 주실 때도 있고 사회 통해서  주실 때도 있고, 물건 짐승 통해서 주실 때도 있지마는 주신 이는 주님이시요  그런 것은 다 내게 주시는 도구요 기구이기 때문에 시은의 도구요 기구지 그것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이라 하여 주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돌리고 그  모든 도구에게는 하나님에게 쓰여져서 내게 오는 은혜에 대해서 수종을 들고  그와 같이 봉사를 했으니 감사합니다. 거게 대해서 감사를 돌려서 감사해야 될 그  주체적인 대상과 거게 대해서 겸해서 또 감사할 것과 이런 것을 바로 알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  놓고 그 분만 의지하고 그 분만 바라보고 그 분에게 순종하는 이 일만 우리가  하면 우리 예배 자유를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아무도 막지 못해. 공산주의도  막지 못하고 공산주의도 못 막는다. 절대 못 막습니다.

 6·25때도 공산주의자들이 그렇츰 휩쓸어서 저 호남 지방으로서는 예배당 다  그들이 다 점령했습니다. 그렇지마는 어떤 지방에서는 그들이 후퇴 해 갈 때까지  하루 세 번씩 대 집회를 계속한 교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은 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자유를 꺾지를  못했습니다. 또 그들을 박해했습니까?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게 살았지.

그들만 저거 맘으로 저거 입으로 자꾸 죽인다 죽인다 했지 그 말을 실효 없는  말로 듣기 때문에 그래 할수록 우스워서 '하나님 하시는 솜씨 보자' 하고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지 거게 대해서 협박이나 위협이나 그런 것을 하나도 당하지를  안했던 것입니다.

 이런고로 여게서 우리가 어떻게 거지가 되나, 어떻게 세상에게 천물이 되나.

어떻게 예배의 자유를 다 뺏기게 되나 하는 것은 본문에 똑똑히 있습니다. 이대로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게 말씀하시기를 15절에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리니'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준다.

 아골 골짜기는 어떤 곳인고 하니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령할 때에 아간 이라는  사람이, 여리고에 있는 모든 물품을 하나도 취하지 말아라, 취하는 자는 다 하나님  앞에 벌을 받으리라 이렇게 선포를 해 놨는데 아간 족속들이 가 가지고서 모르게  불의의 것을 취했습니다. 여리고성에 불의의 것을 취해 가지고 왔음으로  하나님께서 내세워 가지고 아골 골짜기라 하는 그곳으로 이끌고 가 가지고  거게다가 그 모든 물건들도 갖다 놔서 다 태워 버리고 그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로 쳐 가지고서 돌조산을 만들어 가지고서 죽인 곳이 아골  골짜기입니다. 그럴 때에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다 전멸할라고 진노하셨는데 아골  골짜기에서 아간의 족속들을 다 돌로 쳐서 완전히 죽여서 멸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확 풀려서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분을 삼아주겠다.' 너희들이 나에게 거슬린 자 너거 단체  가운데 나에게 거슬린 자가 있으면 그 거슬린 자를 다 제거해 버려라. 네 가정에  내게 거슬린 것이 있으면 거슬린 것을 다 죽여 버려라. 네 속에 내게 거슬리는  네가 있으면 내게 거슬리는 자를 죽여 버려라. 죽여 버리되 돌로 돌조산을 모아  가지고 죽이는 것처럼 이렇게 나에게 거슬리는 자를 너희들이 미워서 내가  미워하듯이 미워해서, 비느하스가 하나님이 이방 여인으로 더불어 음행하는 그  음행을 보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그 미움을 비느하스 선지가 보고서 분해서  하나님이 분격한 하나님이 분격한 거와 같은 그 분격을 가지고 음행하는 그  남녀를 창으로 꿰 찔러 가지고서 어깨에 메고 이렇게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네  진노의 극심이 내 진노를 다 풀었다, 네가 내 진노의 극심같이 네가 그 죄악에  대해서 진노가 극심하니 내가 이제 다 풀었다.' 하나님이 모든 진노 다 풀고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이것 밖에는 우리에게 소망의 문이 없습니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주님이 더러워 하시는 것을 더러워하고 주님이 멸하시려고 하는 것을 멸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진노를 다 푸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지는 것을 일을 안 해 가난해지는 것 같다, 직장이  없어 가난해지는 것 같다,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지 맙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세상에게 천하게 보이는 것이 내가 지금 낯을 안 씻어 천한  것 같다, 양복을 안 입어 천한 것 같다, 내가 나 잘난 체 이렇게 하지 안 해 천한  것 같다, 내가 출세하도록 운동을 안 해 천한 것 같다.' 그따위 행세 암만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암만 해야 소용없어. 하나님이 천하게 만드시는데 누가 거기서  존귀하게 할 것입니까?  이것도 우리는 당신만이 자랑하고 당신만이 높이고 당신을 높이다 보니까 당신  높이는 그 바람에 제가 높아지고 당신에게 영광 돌리는 일을 하다 보니까 당신이  영광 받는 그 영광으로 인해서 나는 공연히 영광스러워지고 당신의 살아 계시는  이 권위를 만방에게 알리니까 만방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알리는 그 알림으로  인해서 만방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과 동시에 저도 만민이 저를 보고  두려워하리라. 이것이 우리의 성도의 가는 길입니다.

 매미가 굼뱅이로 있을 때에는 땅 속에서 살았지마는 매미되고 난 다음에는 땅  속에 들어가면 대번 죽습니다. 땅속에 들어가면 당장 개미가 와 가지고서 그만  뜯어먹어 버립니다. 부화 전과 부화 후가 다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중생되어 믿기 시작하기 전은 안 믿는  사람과 꼭 같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 법칙대로 살아야 우리가 삽니다. 그러나  중생해서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면 벌써 이거는 부화됐습니다. 이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이 피조물의 종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 됐고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사자로서 마귀를 깨트리는 마귀의 왕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아주 본질과  본성과 직분과 권능과 소속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너희에게는 아골  골짜기 소망의 문이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 취한 것을 똘똘 모아라  하나님 명령을 어겨서 취한 걸 똘똘 모아라. 하나님 명령 어겨서 사업한 거.

하나님 명령 어겨서 취직한 거, 하나님 명령 어겨서 뭐한 거 똘똘 모아라.

뭐할라고? 태우기 위해서. 모으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자를 죽이라. 우리는  중생된 새사람은 죽일 수가 없지마는 우리 옛사람은 성경이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옛사람은 죽이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 하나님을 향한 새사람으로 살아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우리를 범죄케 한 옛사람, 우리를 범죄케 한 옛사람,  이스라엘을 더럽힌 아간 족속, 이 아간 족속, 나를 더럽힌 내 속에 들어 있는  옛사람. 내 가정을 더럽게 한 모든 옛사람의 이 단체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취한  것들 이거 똘똘 뭉쳐서 아골 골짜기에 불사르고 죽여라. 그러면, 거게서부터  소망의 문이 열린다. 거게서부터 하나님께서는 말씀됐습니다. '거게서부터 땅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언약을 세우겠다. 모든 생물 심지어 바이러스균까지도 다  언약을 세우겠다.'  요새는 내가 이 말씀보고 바이러스균에게 모두 사람이 벌벌 떨고 있는데 우리  하나님이 이 아골 골짜기의 회개를 통과하면, 바이러스균 그거하고도 하나님이  계약을 세웠을거라. 너 이 아골 골짜기에서 다 회개하고 통과한 사람에게는  바이러스균 너는 위해서 혹 필요한 일이나 해주지 해치지는 말아라. 모든 곤충과  짐승과 모든 금수로 더불어 내가 계약을 세웠다.

 또 그뿐 아니라 네가 있는 동안에 전쟁을 없이 하겠다, 전쟁을 없이 해서 그저  얼마든지 기도하고 얼마든지 성경보고 얼마든지 찬송하고 얼마든지 반성하고  얼마든지 회개하고 얼마든지 믿음의 연습을 해서 잘 믿어 구원의 준비를  잘하도록 해 주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네게 장가들어 너와 나는 너는 피조물이고 나는 창조주라.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아니고 너는 피조물이고 나는 창조주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둘이 결합이 돼 가지고서 영원히 동거동락하고 동행하고 너에게 모든 것은 다  책임지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네게 다 주고 하는 이런 결합을 하겠다. 그 때에  나는 내 전력을 하늘에다 기울이고 하늘은 나와 하늘은 전력을 땅에다 기울이고  나와 하늘과 땅은 전력을 모든 생산에다가 기울이고 나와 하늘과 땅과 모든 생산  전부는 네게 기울여서 전부 네게 기울여서 네게 응하리라!!  이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거 하나님의 말씀이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 길 외에 천한 길 천함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천함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를 다니엘이 하나 이렇게 한  사람이 살 때 그 한 사람을 통해서 바사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거와  같이 엘리야 한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국방하고 이스라엘을 세상이 무시하지  못하게 한 것처럼, 만일 우리 서부 교회 교인들이 다 이런 사람이 된다고 하면은  하나님은 이만하면 붙들고 세계라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세계라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요걸 믿는 게 믿음이요 믿고 요렇게 행하면 나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볼  터인데 이렇게 믿고 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하는 말씀을 믿습니다.

 따라 합시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우리는 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거 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 아골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전부는 내 것 되고 네게  모든 것은 당신이 다 책임져 주십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데까지 궁지에 빠져도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천해도 얼마든지 솟아 날 수  있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건지리라. 몇 천만 길 빠져도 내가 건지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거 계약 아닙니까? 그래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이삼 년 안에 환하게 표가 납니다.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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