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5 13:03
소망을 하늘에 두면 눈이 밝아 진다
본문 : 마 6:19-34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구원 얻는 도리인데, 구원 얻는 이치, 구원 얻는 이치인데 먼저 사람에게 배우고, 또 그 다음에 이 문서 성경에게 배우고, 또 그 다음에 성령의 감동에게 배우고, 또 자기가 실지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데에서 배워서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지금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고, 또 이 성경 말씀에서 배우는 것이고, 또 성신의 감화 감동에서 배우는 것이니 세 층어리로 이 시간에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완전히 자기에게 구원이 되게 아는 것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자기를 자유하게 하는 능력적으로 아는 것은 경험과 체험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몇 가지만 간단하게 증거하고 끝마치겠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땅에 쌓아두지 말라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고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둡나니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간추려서 한 말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면 그 심령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면 그 심령이 환하게 밝아져서 미래, 현재, 과거, 자기, 다른 사람, 모든 사물 그런 것을 바로 보고 정평정가하고 올바른 소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소망을 땅에 두면, 그 소망을 세상에 두면 그 심령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어두워지면 제가 아무리 지혜 있다고 해도, 인간은 이 세상은 짧고 내세가 긴데 땅에 소망 둔 자는 그 심령이 어두워서 모든 심령의 견해가 짤막한 이 세상만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견해하기 때문에 영원한 긴 내세는 다 진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심령이 밝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면 그 심령이 밝으니까 세상살이를 바로 하게 되기 때문에 하늘나라도 성공이요 세상도 성공이요 다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심령이 밝고자 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신앙 양심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 양심은 힘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지식이, 자기 인간 요소로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힘이 제일 세고 그 다음에 힘은 양심이 셉니다.
뭐라고 쌓아도 그 사람은 그 지식대로 모든 움직임 생사를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 지식에게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양심이 강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왜 힘을 못 쓰고 죽느냐? 살인자가 왜 잡히느냐? 살인할 때와 같은 용감 같으면 절대 안 잡힙니다. 그 양심에게 벌써 붙들려서 그는 꼼짝 못하고 제가 잡힐 곳으로 걸어 들어가서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밝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환하게 밝아서 속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생애를 하게 된다 그것을 여기에 첫째 말씀해 및습니다.
둘째로는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이를 중히 여기든지 저를 경히 여기든지, 저를 중히 여기든지 이를 경히 여기든지 하나는 중히 여기고 하나는 경히 여기기 때문에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중하게 여겨 섬기는 그것이 섬기는 것이지 첫째 중하게 여기고 그 다음에 찌끄러기 그 다음으로 섬기는 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판단을 했습니다. 보다 중하게 여기고 보다 섬기는 그자를 섬기는 것이지 보다 중하게 여기는 그것 다음으로 천하게 여겨 가지고 섬기는 그것은 그 섬기는 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면 제일로 섬기는 것이라야 섬기는 것이지 제이로 섬기는 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여기에 똑똑히 밝혔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들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그것을 마지막에 결론을 지워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종 섬기는 것은 비유요, 보다 어느 것이냐 그 하나만 섬기는 것이지, 제일로 중하게 최종으로 귀중히 섬기는 그것이 섬기는 것이지 그 다음으로 섬기는 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성경에 딱 판정을 내려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냐 물질이냐, 물질보다 하나님이냐 하나님보다 물질이냐? '나는 하나님도 섬기고 물질도 귀중히 여긴다.
둘 다 귀중히 여겨서 나는 섬긴다.' 하지마는 둘 중에 어느 것인가 하나를 귀중히 여기는 그것이 하나지 둘이 되지는 않는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제일 권위 있고 제일 높게 크게 여겨서, 크게 여겨서 그를 바라보고 그를 두려워하면서 그를 좋아하도록 그를 위해서 그의 법도대로 섬기는 그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 아닙니까? 섬기는 것은 시뻐보는 것은 섬기지 않습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섬기지 않습니다. 섬김에는 반드시 크기 때문에 섬깁니다. 또 두려워하기 때문에 섬깁니다. 그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그에게 따라 움직여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 현실의 생활에서 자기야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영원한 결정을 짓고 지나가든지, 이 물질, 물질은 이 우주에 있는 나라도 물질이요, 인간의 육체도 물질이요, 마음도 물질이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지식도 물질이요, 모든 행락도 물질이요, 가정도 물질이요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물질입니다. 자기 기분 위주로 사는 그자도 물질을 섬기는 자입니다.
이 세상 인간의 물질이라는, 영은 죽었고 사람의 이 심신만 움직이는데 그 심신은 다 물질입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그 지식을 위주로 사는 그자도 물질을 섬기는 자입니다. 돈을 섬기는 자도 물질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 현실을 당했을 때에 이 현실은 하나님 섬기는 자로 영원을 결정하고 이 현실에는 지나가느냐 물질을 섬기는 자로 결정하고 지나가느냐? 알든지 모르든지 이것은 결정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책임질 것이고 물질을 섬기면 물질이 그 사람을 책임질 것입니다. 물질 책임은 언제까지 그 책임이 가능한가? 여러분들이 다 잘 압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맙니다. 책임질 권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의지해도 냉면(冷面)만 당하고 분함만 당했지 그것이 책임져 주지도 못하고 질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떠날 때에 그것은 다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이걸 가리켜서 도적맞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지나갔으면 그 면에는, 우리 현실을 당할 때에 우리 현실에서 이 면에 대한 영원한 결정이 되어지고 이 면에 대한 결정이 되어지고, 우리에게는 수많은 다각의 면이 있는 데, 수백 수천의 면이 있는데 그 수백 수천 수만의 자도 그 면, '이 면은 하나님에게 부탁했다. 이 면은 나는 하나님에게 부탁했다.' 그전에 내가 노름하는 데에 좀 옆에서 구경해 봤는데 보니까, 노름하는 사람들 보니까, 뭐 뭐이라, 뭐? 그때 부탁이라던가? 부탁이라 하는데 딱 노름을 네 사람이 딱 짜고 하면 '나는 이 사람에게 돈을 건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에게 돈을 걸면 그 사람이 이기면 그 사람이긴 그 사람도 그걸 돈을 그만치 차지해 옵니다. 지면 그 사람 그만 헛일해 버려.
이것 모양으로 이제 우리가 이 현실을 지나가는데 가기가, 이면 이것은 이 현실에서는 누구에게 네가 소망을 걸겠느냐? 누구를 섬기느냐? '나는 이 면에는 이제까지 하나님을 내가 섬겼지마는 아무래도 이 면에는 돈이 필요하다 나는 돈에다 걸련다. 돈을 섬기겠다. 이 면에는 돈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현재에 당장 이것을 책임지고 있는 권력자가 있으니까 이 사람에게 걸어야 되겠다. 나는 이 건에 대해 가지고는 이 사람을 나는 섬기고 이 사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수많은 각도의 현실이라는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 현실마다 하나님 섬기는 것 하나님 다음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것 저것 모든 걸 섬기는 것, 크게 나누면 하나님 섬기는 것과 물질 섬기는 것이 둘로써 현실은 다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생각 하나 가진 것도 빠짐이 없이 낱낱이 그것을 다 행동록에 기록해 가지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현실을 주면서 '이 현실은 어떻게 하노? 자유로 해라. 네가 병신이라도 좋고, 못나도 좋고, 무식해도 줄고, 가난해도 좋고, 네 몸뚱이가 고름 투성이라도 좋다. 이 현실에는 누구를 모시고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뭘 의지하겠느냐?' 이것으로써 결정되어지는 이대로 무궁세계에 '이 각도에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섬기고 내게 부탁하고 속했으면 내가 책임지겠다. 또 네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바라보고 섬김으로써 그에게 부탁하면 그것이 책임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철거해 버립니다. 의지한 게 헛일이오.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물질을 의지했지마는, 홍포 입은 부자가 물질 의지했지마는 물 한 방울 그놈도 와 가지고 도와 줄 권리가 없습니다. 물 한 방울의 도움도 받지 못했어.
둘째로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성도야, 네가 수많은 현실 그것은 영원무궁의 세계를 지금 결정짓는 그것인데,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지는 것인데, 영원을 결정하는 것인데 너는 이 현실에, 영원이 결정되는 이 현실에 네가 누구를 섬기려느냐? 둘 다 섬기지는 못한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재물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지 둘 다 섬기지 못하나니 어느 걸 섬기겠느냐?' 이것이 결정되어지는 것이니까, 알든지 모르든지 결정되어지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야, 내가 이 현실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으로, 그분을 위해서, 그분 중심으로, 그분에게 따라서 이 현실은 내가 움직이겠다 그러면 이 현실은 분명히 내가 하나님을 섬겼다. 내가 그에게 속했다. 그를 따라서 움직였다.' '아, 이 시간에는 하나님 세상 이렇게 갈 지(之)자 걸음으로 이래 쌓았지마는 가만히 비판해 보니까 이 시간에 나를 지배한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니다. 내 마음이 나를 주관했다. 내 몸뚱이가 내 주관했다. 내 생명이 나를 주관했다. 어느 인간이 주관했다. 사건이, 물질이 그런 것이 주관했다. 그러면 이것은 물질 섬긴 자라.' 이렇게 영원을 결정짓고 나가는 현실에서 하나님이냐 물질이냐 둘 중에 어느 하나로 결정되어 나가는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이 전투를 해야 됩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과 내게 있는 부패성은 이 속는 일, 물질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성령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거기에 나는 자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끼어서 자유 있습니다.
'내가 물질 섬기는 이것은 내가 버린다. 물질을 섬기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것으로 결정 짓는다.' 이 현실에서 어디로 네가 속하느냐 할 때에 이 물질계의 것을 착 배반하고 하나님을 착 섬길 때에 하나님은 만족하십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과 밀접하게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뭐 평소에 하나님 암만 불러 쌓고 뭐라고 쌓아도, 좋아하는 듯이 그래 쌓아도 네가 어느 쪽이냐 할 때에 배신하고 착 가 버리면 그 본남편은 분개하기가 짝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둘째로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셋째로, 그러면 물질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물질을 자기 배경을 삼호, 그 물질을 자기와 힘을 삼고, 자기의 근본을 삼고, 자기의 원동력을, 자기의 근원을 삼고 그 물질을 의지해 가지고 그들은 무엇을 건설하느냐? 그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가,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해야 영광스럽고 존귀해질까?'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좋게 많게 편리하게 잘하려고 그것을 마련합니다.
그걸 구합니다. 그걸 가리켜서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어.
물질을 자기 주로 삼은 것은 그것들을 구합니다.
그 사람의 생애에 하나님을 구한 것이 50%가 되고 물질을 섬긴 것이 50%가 되면 그 사람이 지금 건설하는 건설은 뭘 건설하느냐? 50%는 하늘나라를 건설하게 될 것이고 50%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건설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으로써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그건 다 이방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마련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아 가지고, 자기의 생명과 능력과 지혜와 배경을 삼아 가지고 무엇을 건설해야 되느냐?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세상 사람이 세상 것을 마련해서 집도 좀 더 좋은 집, 또 옥상에 널쩍한 비행장을 닦아놓고 헬리콥터 비행기를 하나 갖다놓고 황 거 리면 타고 저 강대국으로 날아가려고. 다 그것 다 자기 안보입니다.
자기대로는 세상을 왜 이렇게 구하느냐? 이 세상을 자꾸 마련, 구한다 말은 마련한다 말인데 세상을 마련하느냐? 마련하는 것은 자기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하나는 자기를 해하는 모든 것들을 방비하는 안보에 필요해서, 안보로 껍데기를 삼고 그 안에서 자기로 행복되게 성장하려 하는 그것으로써 이 세상 것을 건설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 자기 섬기는 대상을 삼은 자들은 무엇을 구해야 되느냐? 무엇을 건설해야 되느냐? 하늘나라를 건설하라. 하늘나라는 하나님에게 통치받는 것이 하늘나라인데 하늘나라를 건설하라.
이러니까 자기가 힘도, 힘도 세상에서는 이 힘이 필요하고 하늘나라에는 이 힘이 필요하면 힘도 하늘나라의 힘을 세상에서 마련하고, 지식도 하늘나라의 지식을 마련하고, 영광도 지위도 하늘나라 것을 마련하고, 기쁨도 하늘나라 것을 마련하고, 전부 하늘나라 것을, 웃음도 하늘의 웃음, 근심도 하늘의 근심, 울음까지도 하늘의 울음, 모두 다 하늘의 것을 마련하고, 또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결과 맺은 그것이 그 의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은 예수님밖에는 한 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대속으로 심판은 면한 그것이 하늘나라 영광을 주는 그 댓가는 될지라도 심판을 면하는 그런 댓가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해서 세 가지 대속을 해 가지고 입혀 주셨기 때문에 이제 안보는 예수님의 대속의 안보를 네가 노력해라. 주님이 우리에게 사죄를 입혀 주셨으니 이 사죄를 네가 뺏기지 않도록 노력해라. 또 이 사죄를 힘입어 가지고 사죄 안에서 영원한 것을 마련해라. 이 칭의를 네가 벗어놓지 않도록 뺏기지 않도록 이 청의의 예복을 뺏기지 않도록 네가 노력하라. 또 의를 가지고의 안에서 무궁한 것을 네가 마련해라.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을 아무 것에도 뺏기지 말고 이 화친을 네가 뺏기지 않도록 네가 노력을 하고 이 화친을 이용해 가지고 네가 무궁한 것을 네가 마련해라. 그것을 가리켜서 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너는 안보해서 대속 안에 있어야 되지 대속 밖에 나간 것은 다 죽는다. 그것이 너희의 구할 것이니라. 그러면 이방인들이 구하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합니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그것을 구하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그 다음에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해 준다.
더해 준다 말은 많게 해 준다 말 아닙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필요 있는가? 떠날 건데, 두고 떠날 것인데 무슨 필요 있는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이용물로 필요합니다.
이러니까 이용물로 필요하기 때문에 이용물을 더해 준다 그말은 이 이용물이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더 유효하도록, 더 유효하도록,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더 필요 있도록, 더 좋은 결과를 맺도록 그것을 조절해 주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심령을 네가 잘 가꾸어서 심령에 밝은 사람이 되고 싶으냐? 네 소망을 하늘에 둬라. 네가 무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데 네가 어느 것을 네 배경으로 삼을 것이냐? 어느 것을 네 자본으로 삼을 것이냐? 어느 것을 네 힘으로 삼고 네 근원으로 삼을 것이냐? 어느 것을 네 머리로 삼을 것이냐? 이는 하나님으로 자기의 섬기는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섬기는 것은 내가 그를 제일 크게 여기기 때문에 모든 것보다 그를 섬기고, 그를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맡기고, 그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으로 네 섬기는 대상을 결정하느냐 이 땅위에 있는 물질로 너 섬기는 대상으로 결정을 하느냐? 네가 뭐이냐? 세상 지위, 권세냐, 돈이냐, 무엇이냐? 기업이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든 것 창조하신 분인 것을 인정하고 그분이냐? 네 현실에서 무엇으로 네 머리와 네 섬기는 대상으로 네가 의지할 것으로 맡길 것으로 그로 인해 살, 네 머리와 네 모든 행복의 근원자로 무엇을 정하겠느냐? 현실에서 한번 결정되면 그 현실은 지나가 버리니까 그 각도라는 그 면은 영원 결정됐다. 다시 변동 못 한다.
이래 가지고 하늘나라 가면, 네가 하나님으로 정한 것은 하나님이 딱 기다리고 있다가 '네가 약속할 때에 나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나를 섬겼기 때문에, 내게 맡겼기 때문에 내가 책임지겠다.' '아이구, 얼떨떨해 가지고 이 면을 닥쳤는데 어떻게 할까?' '네가 세상에서 그 면을 나에게 맡기지 않았느냐? 내가 책임지지.' '이 큰 얼떨떨한 일이 생겼는데 이 면을 어떻게 할까?' '그것은 네가 그 면에 대해서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나를 배척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너를 책임졌으니까 나는 상관없다.' 그것들이 있어야지? 있어야지?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뭘, 사는 것이 뭐 사는 것이요, 사는 것이? 죽는데! 심판 앞에 서는데! 이것도 모르고 소경처럼 땅의 것만 소망하니까 심령이 어두워 놓으니까 제딴에는, 멸망 가운데 들어가면서도 제가 잘났다고 우쭐거립니다.
둘째로 네 소속을 어디다가 정하며, 네 숭배의 대상은 무엇으로 하며, 너를 책임은 누구에게 지우며, 누구를 힘입어서 영원을 살기로 작정을 하느냐? 현실 현실에서 이것이 결정되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로 땅에 소망으로 심령이 어두운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섬기고 소속하고 그걸 힘입어서 살려고 자기를 거기에 맡기고 했으니까 그걸 힘입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마련하고, 또 마련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 가지고 자기를 잘 보호하도록 책임지도록 그것으로 피난처를 삼아 안보를 삼는데 이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으로 네 근원을 삼은 너는, 이 하나님으로 네 자본을, 네 원동력을, 네 머리를, 네 생명을, 네 전부를 삼은 너는 할 일이 뭐이냐? 너 할 일은 뭐이냐? 너 할 일은 그 나라를 구해라, 그 나라. 세상 나라를 자본으로 삼아 하늘나라를 마련해라. 이 썩을 것으로 썩지 않을 것을 마련해라.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마련해라. 욕 된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을 마련해라 이 모든 물질의 것으로 신령한 것을 마련해라. 이것이 하늘나라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 사람이 기뻐서 막 좋아서 떠들거려 쌓아도 땅의 기쁨 하늘의 기쁨 분명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배짱을 내고 떠들어 쌓아도 '너는 땅의 힘, 너는 하늘의 힘' 땅의 힘은 반드시 그놈에게 배척 당해서 가슴 치고 눈물 흘리고 슬퍼하고 분개할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의지하고 바라본 그는 후회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방인들은 그것 마련하고 그것으로 안보를 하지, 그러나 하나님으로 네 섬김의 대상을 삼아 그에게 네가 속하기로 작정했고 그를 힘입어서 그의 은택으로 그의 도우심으로 그를 네 머리 같이 삼아 가지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려고 한 너는 이렇게 하나님으로 네 전부를 삼아 가지고 할 일이 뭐이냐? 썩을 일 하지 말아라. 그것 가지고 그 나라를 구해라.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네가 마련해라. 뭣이든지 이것 가지고 하늘나라의 것을 마련해라. 그 의를 구하라.
예수님의 이 3대 대속으로 네 안보를 삼아라. 이 피난처를 삼아라. 피난처는 주님의 대속으로 너의 피난처 너의 안보를 삼고 네가 마련하는 모든 성공 건설은 하늘나라의 것을 건설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했느냐 하면 믿는 사람들이 모처럼 하나님이 땅 위에 모든 것보다 크시고 그분에게 주권돼 있는 것을 깨닫고 그분으로 자기의 숭배의 대상으로 근원으로 이렇게 삼아 하나님 제일주의로 이렇게 유일신을 믿는 신앙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 마귀란 놈이 와서 꼬우기를 뭐라고 꼬우느냐? '하나님이 네 하나님 됐기 때문에 문제없다. 이래 가지고 사업해라. 이래 가지고 출세해라. 이래 가지고 집을 사라. 이래 가지고 돈벌이해라' 내나 하나님 힘입어 가지고 세상과 세상 것을 마련하라고 하는, 마귀가 이렇게 꼬울 때에 예수를 잘 믿는 사람 있는데, 잘 믿는 사람 보면 이렇게 잘 믿는 것 보면 가만히 보면 저거 땅에 있는 가정, 또 제 사업, 사회 출세, 자기 하는 일, 전부 땅의 것 마련하는 일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친다. 제사장들도 뇌물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 취한 것은 성령으로 시작했지마는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육체로 마쳐집니다.
여러분들,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알뜰히 믿어 가지고, 이 전능자인데. 전능자를 자기 구주로 모셔 가지고 이분의 덕을 힘입어서 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않을 완전 영원성, 불변성의, 영생성의 하늘의 것을 마련하지 않고 입어 가지고 내나 썩을 것 세상 것 마련하는 이것으로 제가 해 가지고 뭣이 잘 되면 '감사합니다.' 썩을 것이 잘되면 감사하다고 하지마는 썩을 것이 희생되어지고 영원한 것이 잘되면 저주받은 것같이 여겨지니 심령이 어두운 사람이고 그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어.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땅엣 것을 생각지 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그분이 땅 위에 살 때에 순전히 하늘의 소망만 가지고 살아서 모든 만물 위에서 만물을 구속하는 구속주가 되셨다.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 너의 소망이다. 땅에 있는 모든 지체들을 죽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우리의 안보는 주님의 피입니다. 공산주의가 나를 치려 그럴 때도 공산주의가 지금 무기를 가지고 치려고 하니까 이때는 뭘로 안보를 할까? 그때도 주의 피입니다. 주의 피 안에는 멸망이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주의 피 안에는, 애굽을 전멸하는 멸망이지마는, 왕도 멸하는 그런 멸망이지마는 피 속에 있는 자는 건드리지를 못했습니다.
공산주의가 와도 '주여, 주님께서 나를 사죄해 주셨으니 이 사죄를 내가 벗지 않게 해주옵소서. 나는 죄 없는 자입니다.' 사죄를 벗으면 죄가 있어. 죄를 범하면 죄가 있어.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요동치 않고, 주의 대속 안에 있고 나가지만 않으면 공산주의가 때렸으면 때린 것이 그에게 복이 되고, 공산주의가 칼로 쳤으면 친 게 복이 되고, 공산주의가 죽였으면 죽인 것이 지극히 큰 성공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피 안에 있는 자는 절대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업이 무너지게 될 때도 그 사업을 어디다가 피난시킬 건가? 사업을 피난시키는 것은 역연 주님의 피공로입니다.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의 화친으로 그 넘어가는 사업을 안보했으면 넘어가는 사업이 반드시 자기에게는 영원한 유익으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세상에서 없어지든지 있어지든지 손해가지는 않습니다.
이 세 가지를 여기에서 가르치셨고 또 참고로 삼아서 말씀한 것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 가지고 어떻게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마련이 되겠느냐? 어떻게 이것이 마련이 되겠느냐? 현재 사업이 무너지는데 거짓말을 해야 이 사업을 붙들어질 터인데 정직하게 하면 사업이 당장 떠내려가 버리는데 거짓말 안 하면, 거짓말을 해야 사업을 붙들 수 있는 이때에 거짓말하지 않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받은 이 방편을 쓰면 날아가는 사업이 더 잘 날아가지 그게 붙들어질 기가 있겠느냐? (○○○, 설교할 때 말씀을 못 들으면 깨닫지 못하면 참 잠 오니까 한없는 고생이오. 그것 지옥 고생이라. 시간이 어떻게 긴지? 그래 예배보고 나면 눈이 쏙 들어가 버립니다., 사람들 보니.) 이 사업을 거짓말해야 붙들 사업을 죄 안 지으려 하니까 거짓말하지 말라 하는데, 의롭게 하라 하는데, 하나님과 화친한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동하고 정하라 하는데 '이러면 사업이, 무너지는 사업이 더 무너지지 어떻게 건져질 수가 있겠느냐?' '네가 이 사업을 거짓말 해야 붙들 수 있는 그 형편에 거짓말 아니면 무너진다 하는 그 지식이 누구 지식이냐? 너희 인간 지식 아니냐? 그런 걸 얼마나 봤느냐?' '역사에 전부 다 통계를 보니까 그렇습디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사업이 붙들리고 그렇게 해야 사업이 되는 그 방편밖에는 모릅니다. 그 방편밖에는 모르요. 그 방편 밖에는 모르지마는 방편은 너희가 모른 수백 수천 방편이 있다. 너희가 아는 방편은 일방적인 방편이라. 그 방편 외에는 없는 줄 알지만 그 방편 외 이 수없는 방편이 있다.
네가 봐라 자, 너희가 보면 사람은 먹으려면 농사 지어야 되지? 꼭 농사 지어야 먹는 그 방편만 너는 알지? 새는 농사 안 지어도 먹는 방편이 있다 너는 길쌈을 해야 베를 짜 가지고 의복을 입는 줄 알지? 의복 입는 것은 그것 아니고 백합화는 솔로몬보다도 아름다운 것 입었는데 땅속에 살면 땅에서 올라와 가지고 아름다운 채색을 입혀 주는 그런 방편도 있다.
그런 몇 가지를 예를 든 것은 뭐이냐? 인간이 살고 수입하고 자기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하는 방편이 너희 인생들이 알고 있는 그 방편만 아니다. 그 방편 후에 수많은 방편이 있다. 수많은 방편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 지식으로 이렇게 그 나라와 그의 구하면 이것은 망한다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그 방편 외에 얼마든지 수없는 방편이 있기 때문에 그 나라와 그 의만 구하면 잘 되니까 너희 일방적 지식 가지고 '이거는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지 말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다 더해 주시마고 했으니까 이 약속을 믿고 이 방편을 취해라. 요셉이 하나님이 인도하는 그 걸음을 따라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 것은 그 나라 그의 때문에 자꾸 매맞고 쫓겨나고 망치고 뚜드려 맞고 감옥에 갇히고 그 나라와 그의 때문에 망하는 것 일로 뿐이었는데 그 결말을 봐라. 그것이 요셉의 성공한 그 순서가 아니냐? 너희 조부라운 일방 지식을 가지고 '여기에서는 의를 지키면 안 되겠던데, 여기서는 죄 안 지으면 안 되겠던데, 여기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안 되겠는데, 여기에서는 주일 지키면 안 되겠는데, 여기에는 거짓말 안 하면 안 되겠는데, 여기에는 새벽기도 나가면 안 되겠는데, 여기에는 새벽기도 나가고 주일 지키면 공부에 합격 안 하고 낙제하겠는데' 그게 너희 생각이지 하나님은 그 외에 하시는 방편이 얼마든지 있다.
수없는 방편, 너희가 모르는 방편이 많이 있는데 너희 생각에 방편 몇 가지 아는 그것만 가지고 '이 방편뿐이니 이것은 틀림없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지 마라. 너희들이 모르는 방편이 수없는 방편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겠다 이제 방편에 하나님 편에 수 없는 방편이 있기 때문에 제가 아는 조부라운 지식에 그 방편에 틀렸다고, 틀렸다고 생각지 마라. 안 된다고 안 된다고 생각지 말고 염려하지 마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라. 홍해 바다를 건너가라는데 건너가는 건 죽는 것 외에 다른 역사 통계가 어디 있느냐? 들어가면 빠져 죽는 것이지.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건너가라는 것은 당신이 하는 방편이 딴 방편이 있기 때문에 가니까 육지같이 건너가지 않았습니까? 이러니까 너희들의 조부라운 생각에 아는 기존 지식의 방편 그것뿐 아닌데 그것뿐으로 알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 나가면서 염려 하고 낙망하고 두려워 떨지 말아라. 너희가 모르는 수없는 방편이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네 보기에 이것은 폭망이 다 해도 안심하고 시키시는 대로 따라가라 그 말입니다.
또 거기에 하나 참고로 주시는 것은, 그런데 네가 예수 믿기 전에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이기 때문에 자기의 숭배의 대상도 배경도 삼은 것이 물질이요 또 그들이 구하는 것도 물질이라. 물질을 힘입어 물질 따라 살다가 물질과 함께 망하는 것이 불택자요 이 방인들이라. 그러나 너는 이방인이 예수 믿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이것은 변화가 됐다. 구더기가 파리가 됐으니까 구더기 살던 데로 들어가면 너는 죽는다. 물벌레가 잠자리가 됐기 때문에 잠자리가 됐으면 공중에 날아가야 제가 먹을 것도 있고 살지 잠자리가 물 속에 들어가 버리면 당장 죽는다.
너는 이제 중생돼서 성도가 됐기 때문에 성도에 대한 생활 법칙은 하나님이 따로 찐다. 보라, 새의 사는 법칙도 있고, 나무의 사는 법칙도 있고, 백합화 사는 법칙도 따로 있는데, 백합화가 새의 사는 법칙을 제가하려고 공중에 날아다니며 툴툴 털어 봐라. 하루면 빠짝 말라버린다. 백합화 사는 방편을 새가 취하려고 땅속에 반만 파다 묻어 놓으면 그것은 얼마 안 가서 죽어버리고 만다.
하나님이 주신 그 만물에게 생의 방편이 있는데 네 성도의 방편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함으로써 무궁도 성공하고 이 세상도 모두가 다 자기에게 가장 유익된 세상으로 더 하여지는 이것이 너희들의 방편이기 때문에 이 방편으로 살아야 되지 이 방편 어기면 안 된다 그것을 여기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첫째 가르치는 것, 심령이 밝고 싶으냐? 소망을 하늘에 둬라, 네 현실에서 영원이 결정 지워지는데 어느 것으로 네 근원을 삼을 것이냐? 네가 어디 속할 것이냐? 어느 것으로 너를 맡아 달라고 누구에게 맡길 것이냐? 누구를 의지하고 바라볼 것이냐? 누구에게 피동이 될 것이냐? 이것 결정해라.
하나님이냐 물질이냐? 그러고 난 다음에 너의 건설은 뭐냐? 네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건설이냐 그 나라와 그 의를 네가 건설하느냐? 하늘나라를 마련하고 네 소용 받는 것은 하늘나라, 모든 방어는 하나님의 의, 이것으로 네가 하느냐? 요 세 가지를 우리가 확정지워야 됩니다.
여기에서 확정지워야지, 여기에서 확정짓고 확실히 깨닫고, 확정을 짓고, 마음에 원하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디서든지 현실에서 이것을 기억하면 깨어 있는 것이오. 현실에서 이것 기억 못 하고 눈에 보이는 것 접하는 것 거기에 접해서만 움직였으면 저는 자는 사람 됐습니다.
이제 참고로, 너희는 일방적인 방편만 알지마는 그 방편 외에 성공하는 방편이 얼마든지 있다. 죽음에서 사는 방편이 얼마든지 있다. 죽는 방편도 얼마든지 있다. 너희는 몇 가지 방편 아는 것 그것 만 알아 가지고 거기에 안 맞으면 '죽는다.' 거기 사는 방편 안 맞으면 '죽는다.' 하지마는 그 사는 방편에 안 맞아도 그밖에 사는 방편이 수없이 있다. 이 방편만 죽는 방편을 피하면 안 죽는다 싶지마는 죽는 방편이 그 방편을 네가 피했다 할지라도 그 외에 수없이 있다, 수없는 네 방편을 네 조부라운 생각에 그 몇 가지 방편 거기에 맞으면 쐈다 안 맞으면 안 됐다, 그 방편 피하면 문제없다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이고, 또 하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피조물마다 각각 생의 법칙을 줬으니 하나님이 주신 그 법칙대로 살아야지 그 법칙대로 어기면 저는 망한다. 너는 성도다.
이방인의 법칙이 아니고 너는 성도이기 때문에 성도의 법칙을 주셨으니 성도의 법칙은 이제 말한 대로 이 세 가지를 마련하는 것이 성도의 생의 법칙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시간 깨닫고 결심해야 돼요. 여기에서 변화가 돼야 됩니다. 여기에서 변화가 되지 않고 들어서 지나가고 그러면 이제 길가 밭과 같이 그 사람은 성신의 감화가 그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내지 못한 보고서 내고, 다 이 자리에서 어쨌든지 기도하고 가야 됩니다.
기도해 자기가 변화가 돼서 이 말씀으로 '주여, 옳습니다! 이대로 살겠습니다! 이대로 나는 삽니다! 지금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자기를 따져서 작정을 하고 떠나야 되지 그냥 들어서 지나보내 버리면 이 말씀이 자기에게 성화는 주지 못하고 지식이기 때문에 결국은 교만만 되어지고 다른 사람 생활하는 것 비판이나 하고 심판주 돼서 벌만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