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주의 재림에 둔 결과는 거룩과 경건

 

1987. 6. 24. 밤 <수>

 

본문:마태복음 24장 35절∼44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우리는 지식적으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무슨 딴 해석이 있어서 오늘 밤에 이 말씀 봉독한 것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해서 알고 있을지라도 믿음이 없는 것을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밤에도 이 말씀 증거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또 경영을 하든지, 급하든지 또 한가하든지, 무슨 재미있는 일로 복잡하든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급급한 많은 일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두 가지는 우리가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나 개인의 죽음이 어느 시간인지 모르고 있으나 반드시 죽는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연히 아무 실력 없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헛되이 위로 받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젊으니 내가 오늘이야 죽겠나? 내가 건강하니 오늘이야 죽겠나? 내가 이렇게 살아 있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내게 가득 차 있으니 내가 오늘이야 죽겠나?’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다 자기 속는 일입니다.

왜? 실로이 우리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을 닥칠는지 실상은 우리가 모릅니다. 또 오늘 죽을지 모르니 오늘 죽는다 하고 모든 일을 했다고 하면 그 날은 가치 있는 일 했지 손해볼 것 없습니다.

그러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하는 자기 죽음을 모르고, 또 ‘지금인지 한 시간 후인지 언젠지 모른다’ 자기 죽는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이 죽음에 대한 이 중요한 일, 그러면 죽으면 뭐 복잡한 것도 다 끝나버렸고 좋은 것도 끝났고 나쁜 것도 끝났고 재미있는 것도 끝났고, 다 끝나는 시간, 자기딴에는 어떤 계획을 해 놓고 ‘지금 내가 얼마만 지나면 어떤 그 영광을, 명예를, 권세를, 부강을, 어떤 재미있는 그런 것을 내가 가지게 될 것이라.’ 이렇게 해도 그것이 누려보지 못하고 오늘 그것이 끝나서 다 헛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에 “인자의 임함도 노아의 때와 같다” 이것은 이 우주의 종말 시간을 말합니다. 그 때에 모두 노아 선지자가 많이 말했지마는 다 귀넘어 들었지 ‘오늘 지금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물심판으로 다 멸할지 모른다’ 하는 요 관심을 모두 가지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에 요 관심을 가진 그것을 어떤 것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 이 홍수 심판이 임할는지 모른다’ 하는 그 걱정을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잘 보일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지자가 말해도 이 말씀을 시시하게 여기고 뭐 귀넘어 듣고 거게 대해서 관심 없이 있는 그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바로 큰 죄악입니다.

여게 대해서 하나님이,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기뻐하시는 것은 그 사람이 이 말씀 듣고 놀래 ‘아, 언제인지 모른다.’ 하는 요 걱정하는 마음이 있는 것만치 그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원인이 되고, 여게 대해서 등한히 여기는, 아주 뭐 그 말이야 업신여겨서 거게 대해서는 아무 염려나 관심이나 그런 것이 없는 그 마음 그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며 하나님이 제일 진노하시고 분히 여겨서 그에게 대해서 노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 죽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네 영혼을 오늘 밤에 부를지도 너는 모른다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개인의 종말인 이 죽음이라는 이것을 언젠지 모른다, 이 시간도 아니라고 하지 못한다, 이 날도 아니라고 하지 못한다, 언젠지 모른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요 말씀에 대해서 ‘언젠지 모르니 죽으면 다 끝난다’ 좋은 것을 대할 때에 ‘오늘 죽으면 이것이 끝난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고 모든 곤란스럽고 어려운 것을 대할 때에 ‘오늘 죽으면 끝난다’ 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는 그 생각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뭐 뭣을 가지고 당신을 대접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선포한 말씀을 신청하면, 신실히 들어서 거게 대해서 두려워할 걸 두려워하고, 염려할 것을 염려하고, 또 놀랠 것을 놀래고, 안심할 것을 안심하고, 좋아할 것을 좋아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에 대해서 이 사실을 사실로 믿어서 믿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 되고, 또 믿지 안하고 아주 예사롭게 이 말씀을 업신여기는 등한히 여기는 요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을 인해서 ‘오늘 죽을지 모른다’ 해서 자기의 그 행동이 주님이 말씀하신 ‘오늘이 네 종말 시간인지 모른다’는 요 말씀을 자기가 믿기 때문에 자기 행동이 이 말씀으로 인한 영향 있는, 이 말씀으로 인하여 거기에 충격되는 이 행동 있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왜? 그분을 대접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또 같이 버리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사실을 깨닫고 우주의 이 종말 시간, 또 자기 개인의 종말 시간, 하나님이 “언젠지 모른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재림도 아무도 모르고 개인의 세상 뜰 마지막 그 시간도 아무도 모른다.” 하는 요 말씀에 대해서 업신여기는 것, 이 말씀을 하나님이 하셨지마는 자기 마음에나 생각에나 행동에 뭐 그까짓 말 있거나 말거나 그 조그마치도 하나도 그로 인한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는 요것이 큰 멸망입니다. 요거 멸망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고 그 반대로 자기는 하루 종일 생활하는 가운데에 ‘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마지막 시간은 언제인지 모른다고 하셨다, 또 주님 재림으로 우주의 종말도 어느 날인지 어느 시간인지 모른다고 하셨다.’ 하는 이 두 말씀을 권위 있게 신실히 들어서 이 두 가지 종말로 인하여 자기가 어느 정도 마음에 관심을 가진 것 가진 것만치 그것이 우주보다 큰 축복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여게 대해서 마음이 눌려서, 여게 대해서 마음이 눌려서 자기 행동에 그 영향이 끼쳐지는 그것이 있었다면 대성공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대성공입니다. 주님을 크게 기쁘시게 했고 만족스럽게 했고 거게 대해서 자기에게는 상당한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그라고 하루 종일 살고 난 다음에 저녁에 계산할 때에 ‘아, 나는 하루 종일 우주의 종말인 주님의 재림, 내가 모르는 주님의 재림, 언젠지 주님의 재림, 내가 나의 마지막 시간.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내 마음이 오늘ㅡ비유컨대ㅡ내 마음이 오늘 콩내끼만치 마음이 눌리고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하면 그 콩내끼만한 그것이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있는 보배라는 요것을 믿는 사람이 다 성령의 사람입니다.

‘아, 오늘은 내가 하루 종일 사는 데에 콩알만한 요것은 가치있는 생활 했고 온 세계를 어떻게 뒤엎을 대규모의 계획을 했다 할지라도 다 이것은 헛되고 헛되고 헛된 일 했다.’ 헛된 일인 것으로 평가하고, 자기가 하루 종일 사는 가운데에 내 마음이 여게 대해서 눌릴 뿐만 아니라 내가 이로 인해서 내 행동 하는 데에 제재를 받았다. 내 이 두 가지 나의 종말 문제인, 이것으로서 세상은 다 끝나버리고, 뭐 준비도 끝나고, 고생도 끝나고, 영광도 존귀도 다 끝나는 이 참 중대한 문제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오늘 종일 이 문제로 인해서 내 언행심사의 행동이 아무런 상관없이 살았다. 나는 오늘 죽은 생활 했다.

이로 인해서 내 오늘 언행심사가 많은 제재를 받았다. 이것 때문에 내가 할 일 못 한 게 있고 또 안 할 일 한 일이 있고, 내 개인 종말, 우주 종말 이게 언젠지 모른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언젠지 모르는 이 큰 일, 죽으면 세상은 끝나버리고 주님 재림하시면 우주는 끝나버립니다.

이 큰 사실 이 사실에 대해서 우리의 승패는 여게 대해서 마음이 눌리는 것만치, 여게 대해서 언행심사의 행동이 제재되는 것만치, 이것으로 인해서 모든 소원과 소욕이 제재되는 것만치,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이것이 주님을 대우하는 일이요 우리에게는 후회 없을 일이요, 이것을 무시하고 하루 종일 온 천하가 환영하고 좋아하고 존대하는 그 심지와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오늘 종일 수고한 것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하는 요 결론을 가지는 것이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요것이 성령의 사람들의 지혜와 총명이요 이것을 가지지 못하고 여게 대해서는 아무 상관없고 또 그저 재림에는 상관없이, 제 종말 시간에는 상관없이 이렇게 경영한 생활이면, 이것을 통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멸망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육덩이 사람이요, 마귀의 사람이요, 옛사람이요 마귀의 자식으로 지금 저는 살았습니다. 자기 아닌 원수로 살았습니다.

요게 대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눌리고, 여게 대해서 자기 언행심사의 움직임이 이러니 이 언행심사 하고 이러니 이 언행심사는 하지를 못하고, 자기 언행심사의 행동이 여기에 영향을 받아 가지고 여기에 피동적으로서 행동된 그것만이 가치 있는 행동이요 그것만이 성령의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여게 말씀하시기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집 짓고 이라다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 시간까지 이라다가 다 홍수에 멸망받았다. 예수님의 재림도 이와 같다. 개인의 죽음도 이와 같다. 사람들이 이렇게 다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다 멸망받았다.

이 말씀을 어느 정도 참되게 듣는지? 어느 정도 자기에게 믿어지는지? 어느 정도 이 말씀으로 인해서 자기의 마음이 말씀하신 이 말씀에게 제재를 받는지? 뭐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지 안하고 이 말씀에 자기 마음이 어느 정도 제재를 받으며 자기 언행심사의 행동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는지 영향 받는 그것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전지의 성령의 사람이요 그것이 없는 것은 순전히 악령의 사람입니다. 이거는 뭐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당신이 기뻐하시는 것은 뭐이냐? 당신은 아무 걸로써도 대우할 게 없습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다 만들었는데 그분에게 돈을 대접하겠소 어떤 예물을 대접하겠소? 그저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도 가감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다 인정하는 요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이보다 더 한 것은 참되다 인정함으로 그의 모든 행동이 인정하는 여기에 제재를 받아 가지고 이 말씀으로 인한 행동이 되고 이 말씀을 상관없는 행동을 할 수 없는 요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살았는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하루 종일 먹는 것 마시는 것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 사고 파는 것 집짓는 것 이 일을 하는 데에 요렇게 주님이 말씀하신 이것 때문에 이 말씀에게 눌려서, 이 말씀에 눌려서 그 모든 일을 하되 이것은 주님이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내가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까지 마지막 끝날 숨 떨어질 때까지 내 의무와 책임을 하다가 떠나라 했기 때문에 이거는 주님이 나에게 지으라고 한 집이요, 먹으라고 하는 먹음이요, 또 결혼하라는 결혼이요,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내가 순종한다.

순종하고, 당신이 이러기 때문에 내가, ‘시키시니 내가 시키는 일로 하지 시키는 일이 아닌, 내 종말 시간도 잊어버리고 우주의 종말 시간도 잊어버리고 여기에 도취해 살 이것은 없다. 나는 오늘 주님이 이분이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이 나에게 명령하시니 당신의 명령 순종으로 믿음으로 내가 이거 하는 것이지 나는 이거 하기 싫다. 오늘 떠날지 모르지마는 주님이 하라 하기 때문에 한다.’ 요렇게 자기의 모든 생활을 ‘주님이 말씀하신 요 믿음이 아니면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하지 않겠다.’ 하기 싫지마는, 사람 보기에는 꼭 같이 이 세상에 사는 것 같지마는 한 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신 이 개인, 우주 종말 시간이 언젠지 모르는 이런, 모르는데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거게 도취돼 가지고 이거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이렇게 살다가 멸망받았다.

요걸 생각하면서 자기는 이것들 땅의 이 모든 일들을 인해서 주님의 재림이나 자기의 마지막 종말 시간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거게 눌리어, 거게 마음이 눌려 가지고 있어 그분이 시키시기 때문에 ‘오늘 떠날지 모르니 나는 오늘 이것을 순종하고 집을 짓다 가야 되겠다. 오늘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피곤하지만 집을 지어야 되겠다. 오늘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이 결혼하라 하는 것이 오늘 떠날지 모르니 이 결혼해야 되겠다.’ 이렇게 믿음으로 그 사는 것, 요것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이 우리에게 있으면 요것을 우리의 성공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것이 우리의 성공인 것을 알아야 되지 우리가 우리의 성공이 땅에 있는 것으로 우리의 성공 아닙니다. 우리의 성공은 믿음입니다, 믿음. 우리의 성공은 믿음이오.

주님이 노아 때에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집 짓고 하는 거기에 마음이 다 기울여져서 이 홍수 심판이라는 건 선지자가 외쳤지마는 여게 대해서는 관심 하나도 없이 거게 도취하다가 멸망 받았다 하는, 주님의 경고하신 요 말씀을 자기가 읽고 듣고 요게 대해서 업신여기지 안하고 관심이 있어서 자기는 땅위에 아무 것도, 오늘로 끝날지 모르니 땅위에 이 중대한, 마지막 시간이라는 이 중대한 문제를 등한히 하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이거 등한히 하고 거게 마음 기울여져서 거게 빠질 그런 것이 없고, 이 문제가 중대한 문제인데 이 중대하게 여기는 마음, 중대한 문제기 때문에 오늘 떠날지 모르니 주님 심부름 시키는 것 급속히 해야 되지, 내일이 있으면 오늘 못 하면 내일 할 수 있지마는 오늘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은 주님이 시키시는 일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순종하는 일은 뒤로 미룰 수가 없으니 급속히 해야 된다는 그 믿음 가지고 자기가 하룻 동안 이것 저것 하는 요 생활 한 것,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이 세상 생활에 분망해 가지고 홍수 심판 모른 거와같이 주님의 재림과 자기의 마지막 죽음이라 하는 것을 다 관심없이 모르고 하다가 멸망받는다” 하는 요 말씀에 감동받고 충격받아 가지고 자기는 하루도 요것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잊어버릴 수가 없고, 잊어버리지 못하다 보니 자기 할 일은 주님이 시키시는 일이나 할까 주님 시키시는 일이 아니면 할 일이 없습니다. 자기는 주님이 시키시는 일이 아니면 할 일이 없어.

주님이 시키시는 일은 이 시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것은 뒤로 미룰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인해서, 이 말씀 잊어버리고 땅위에 어떤 그 큰 일이고 재미있는 데에 내 마음이 거기에 끌려서 주님의 이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신 이 말씀에 대해서 자기가 아무 관심없이 되어지는, 여게 대해서 상관없이 되어지는, 거게만 마음이 끌려 가지고 주님의 재림도 자기의 종말도, 주님이 또 “모든 사람이 의식주 이 모든 세상 일에 다 마음이 끌려 가지고 그만 이 구원에 대해서는 등한하다가 다 멸망받았다” 하는 요 말씀하신 요게 대해서 자기 마음에 요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요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요 마음이 자기에게 없어지도록 요 마음을 보수할라고 하는 이 보수, 요 마음을 어떤 것에게 뺏기지 안할라고 하는 요 투쟁, 또 자기의 모든 하는 일이 이렇게 급한 일이 있으니까 급한 일이, 이렇게 지금 중대한 일이 있으니까 아무것도 눈에 안 보여요. 눈에 안 보이는데, 이 중대한 일이 있으니 중대한 주인 이분에게 지금 내가 가야 될 터인데 이분이 시키는 일 하나도 등한히 하고 가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이분이 시키는 일을 내가 하고 가야 되겠다 하는 요 경성에서, 요 두려움에서, 요 책임감에서 요게서, 자기는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내가 주님이 나에게 시키시는 일, 내가 오늘 지켜야 할 믿음을 지켰나? 오늘 지켜야 할 믿음을 지켰나? 모든 사람들이 땅위에 있는 것에 분망해 가지고 홍수 심판 모른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 이거 내가 땅위에 뭣으로 인해서 주님의 재림이나 내 종말 시간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고 하는 이런 자는 자와 같은 이런 자 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오늘 여게 대해서 믿음을, 주님의 말씀을 인정치 못한 그 토막이 없었나? 믿지 안한 토막이 없었나? 또 내가 움직이는 거는 당신을 따라서 피동으로 움직였나? 내 사욕으로 움직였나?’ 요것을 따져 가지고 하루 종일 사는 생활이 믿음 생활이 됐나 안 됐나? 요것이 자기에게 가치 있는 생활인 것을 깨닫고 요것으로 성공과 실패의 요 가치를 두고 요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신자의 생활입니다.

요 생활은 할수록 마음은 뜨거워지고 긴장되어지고 기뻐지고 담대해지고 깨끗해지고 온전해지고 그는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이 자기를 아듬고 계시는 그의 품속에 깊이 안기워지는 것을 자기가 깊이 깊이 깨달아서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공인데 이것은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 생각지 안하고 우리가 우리 성공을 주님이 재림 안 했어도 그와같이 그 믿음으로 살았으면 그것은 영생입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데 하루 종일 믿음 생활은 하지를 안하고 자기 것 아닌 ‘오늘 나는 돈을 수입 못 했네, 나는 오늘 한 자리 올라가지를 못했네, 뭣을 어떻게 내가 뭣을 인정받지 못했네, 점령하지 못했네, 승리하지 못했네.’ 이런 것 가지고 근심 걱정하는 것은 다 육체의 사람이요, 육체의 사람이요 옛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성공과 목표를 우리 것으로 삼지 안하고 멸망하는 마귀의 것을 우리 것으로 삼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도 헛되고 수입도 헛되고 거게 대한 우리에게 오는 영향의 그 모든 화복도 다 헛되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 이러니까 이 말씀은 위의 말씀 해석인데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든지 내가 숨이 떨어지든지, 내가 숨이 끝나든지 육체의 생명이 끝나든지 주님의 재림이 임하든지 하면은 이 모든 땅에 있는 내 소유는 다 이것은 끝난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지만 이거 끝난다.’ 이렇게 예수님 밖에서, 소유를 가지나 그 소유 속에는 내가 진리를 가짐으로 껍데기 그 소유가 생겨졌고 내가 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 순종의 껍데기로 그 결과가 생겨졌고 요렇게 된 요것이 아니면 다 이것은 언제 도적맞을지 모른다.

자기의 가진 것 온갖 가진 것을 ‘이것은 오늘 도적맞을지 내일 도적맞을지 모른다. 이것은 오늘 구름타고 주님이 오셔도 내 생명이 끝나도 이거는 도적맞지 않는다.’ 도적맞을 것과 도적맞지 않을 것, 믿음으로 된 것은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이 가진 그 총총리의 직위는 땅의 것이지마는 그는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있습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믿음으로 된 것은 하나님이 가 할 때 내가 가 하고 나 할 때 나 하고, 하나님이 동할 때 내가 동하고 정할 때 정한 하나님으로 인하여 된 것은 절대로 멸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외형의 형태가 바꾸어지는 것뿐이지 그 속에 하나님이 나한테 명한 것이 진리요 내가 그대로 순종한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진리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진리에 복종도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거 다 영생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모든 소유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요대로 소유의 존재관을 보존관을 가지는 요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요것으로 인해서 그 행동이, 소유에 대한 소유관이 이렇게 돼서 이 소유관으로 인해서 자기 모든 취사선택이 요 소유관으로 인하여 맺어지는 그 취사선택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그것이 다 영생하는 그 소유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걸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뭐 당신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내가 이 큰 나라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 나라를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하는 거 당신은 비웃습니다. ‘그게 네거냐? 내것이지.' 무슨 필요가 있소?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안하시고 은밀히 계시면서 말씀하신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인정하느냐? 그 말씀에 대해서 네 언행심사의 행동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제재를 받느냐? 요것이 당신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성공은 오늘 내가 가진 어떤 것이라도 이거 주님이 오시면 다 없어질 것이니 없어지지 아니하도록 당신이 소유 규범, 보존 법규, 요 법규대로 모든 것을 보존하고 소유하고 취사하는 요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요것이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만홀히 여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요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뭐이냐?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땅위에 살지마는 소망이 전부 다 땅에 있습니다. 모든 소망이 땅에 있습니다. ‘내 직위가, 내 사업이, 내 성공이, 내 수입이, 내 영광이, 내 존귀가, 내 권위가’ 전부 땅에 있는 소망을 다 가지고 사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하는 것, 바라보라는 걸 소망이오. “바라보고 사모하라” “간절히 사모하라” 그러면 그 사람은 주님이 구름타고 재림하실 그때에, 그때에 가치 있을 것 그때에 없어질 것, 그때에 천할 것 그때에 가치 있을 것, 그때에 영광 있을 것 그때에 수치될 것, 제 개인으로 죽을 때에 후회될 것 죽으니 참 다행이다 될 것, 요 죽음에서 살고 주님의 재림에서 자기의 소망이 모든 가치는 거게다 두고, 소망을 두라 말은 가치 두라 말이오. 거게 가치를 거게 두고 생각하는 거는 항상 사모는 거게 두고, 거게다가 가치 두고 소망 둔 그것을 사모하기 때문에 오늘에 이 모든 움직임의 행동이 그로 인해서 피동되는 행동이 되어지는 요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요거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지 안하고 ‘뭐 재림이야 어찌 됐든지’ ‘네가 지금 분투 노력하고 서로 시비하는 것이 재림에 어떨 거다 생각해 봤나? 네가 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막 서로 투쟁하고 경쟁하고 생명을 아끼지 안하고 지금 야단으로 투쟁하는 그것이, 그것이 재림 때 어찌 될 걸 생각해 봤나?’ 예수의 피의 구속받은 자로서 이거 생각지 안하고 하면 말씀하신 주님을 업신여기는 자이니 저가 그 생각에 상당한 보응으로 영원한 손해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네 소망도 거게다 둬라. 그때 네가 수치가 수치지 그때 영광이 영광이지, 그때에 없어질 수치 그때에 없어질 영광, 그때 없어질 수치라면은 그까짓 거 아무 네 생각에 둘 것 없다. 그 날에 없어질 영광이면 네가 아무 거게 대해서 가치로 둘 것이 없다.

그 날에 후회할 것이 아닌 것은 암만 있어 봤자 후회할 필요가 없다. 그 날에 후회될 것 오늘에 네가 정리하고 그 날에 가치 있고 영광스러울 것 그거 오늘에 마련할 일이지, 네가 모든 가치를 그 날에다 두고 그 날에 두고 그걸 생각하면서 오늘에 네가 지금 여기서 준비할 일이지 거게는 상관 없는 이 생활 하지 말아라.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래 두 가지 더 있는 것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입니다. 거룩한 행실이라 말은 하나에서 살아라 그 말입니다. 거룩한 행실이라 말은 하나에서 살라 말입니다.

하나에서 살아라.

이렇게 저렇고 너도 양심이 있고 성경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게 옳으나 저게 옳으나?’ 네가 너는 천인 만인이 이라는 사람도 있고 저라는 사람도 있고, 보수파 정통도 이것도 정통에서 인정하고 이것도 정통에서 인정한다. 이러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아니오. 옳은 거는 하나뿐이지 둘은 절대 없다. 곧은 거는 하나뿐이지, 점과 점 사이에 직선은 하나뿐이다. 점과 점 사이에 제일 가까운 것은 한 군데뿐이지 두 군데 있는 것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거는 과학을 말한 건데. 이와 마찬가지로 옳은 것은 하나뿐이지 둘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이 사람은 이라고 저 사람은 저라고 이래도 될 것 같고 저래도 될 것 같은데?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생각해 보니까 ‘요거보다는 요게 옳다. 요거보다는 요게 옳다.’ 네가 네게 지능이 있는 데까지는 다해서 ‘이거야 튼튼하고 틀림 없다’ 하는, 네가 구별하고 구별하고 찾고 찾고 노력하고 노력해서 ‘요거다. 요것만이 참되다!’ 하는 요 하나를 찾는 요 거룩을 네가 버리지 말아라 말씀한 것입니다. 요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자기가 ‘하나’ 뭐 이것도 저것도 중간에 좋지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는데 꼭 이거라. 네 양심상 네 신앙 양심상 ‘요것이 하나라. 요게 옳다.’ 하는 그 거룩, 하나에 도달하는 요 생활을 네가 해라.

거룩한 행실, 네가 하나에 도달하는 이 행위 해라. ‘하나 찾을 것 뭐 있나?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이 학자는 이라고 저 학자는 저라는데 그거 꼭 이래 거석할 게 뭐이냐?’ 네 신앙 양심이 있기 때문에 네가 죽자껏 네가, 잘못 찾으면 멸망받기 때문에 네가 찾고 찾고 신앙 양심 다해서, 네 신앙 지식 다하고 양심 다 해서 ‘나는 이 이상은 더 찾지 못하겠다. 나로서는 요게 옳다.’ 하는 그 하나인 그것을 찾아 가지고 가는 요 행위를 네가 놓지 말아라. 이것을 가리켜서 거룩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흐리게 하는 자는 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는 하나만 가져라. 단일 교리를 가져라. 단일 신조를 가져라.

둘을 가지는 자는 도랑에다 다리를 벌려 건너 뛰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언덕 무너지면 저쪽으로 건너고 저 언덕 무너지면 이쪽으로 건넌다는 그 처세술에 능한 것 같지마는 하늘나라에는 합당치 않습니다.

거룩한 행실 가지고 네가 준비해라. 네가 하나,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 ‘요거다’ 하는 그 하나에 도달하기 전에는 너는 안심하지 말고 그걸 찾아서 ‘하나다’ 하는 그렇게 찾고 난 다음에는 ‘이만하면 됐다’ 할 게 아니라 하나를 찾고 난 다음에는 ‘주여, 나는 이 이상 더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이 이상 찾지 못하는데 주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니 나는 이 이상 찾지 못해서 이랬지마는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가 될란지 과연 옳을란지 문제다 하면서 떨면서, 주의 재림을 떨면서 긍휼을 기다리는 그것이 바울의 신앙 생활입니다.

“거룩한 행실” “경건함으로” 경건은 내 생활이 하다 보니까 가다 보니 돈으로 동기가 되고 돈으로 중심이 되고 위주 되고 사람 중심 사람 위주가 되고, 정말로 내가 ‘아니다, 사람, 이거 내 행위는 사람을 인함도 아니다. 사람을 위함도 아니다.

따지고 따지고 보니까 주를 위함이다. 따지고 따지고 보니까 나는 주를 위한다 했는데 실상은 보니까 사람을 위함이고 나를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 네가 무엇을 중심하고 무엇을 위주로 하느냐? 중심 위주 그것을 따지고 따져서 이 경건, 경건은 주님 중심 주님 위주가 경건입니다. 주님 중심 주님 위주로 내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이 경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네가 준비해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오늘밤에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사실을 믿는 것만치, 믿는 것만치 마음은 변화될 것이고 마음이 믿는 것만치 행동에는 이 영향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하나님 말씀을 들으나 믿지 않는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은 상관이 없습니다. 믿는다고 해도 행동에 나타나지 않는, 믿으면 안 행할 수 없어!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는 것을 믿으니까 힘이 모자라 타 죽지 힘 두고는 불에 탈 리가 없어. 그런고로 이 행동이 제 힘껏은 이루어지는 그 믿음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믿음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언젠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밤에 이 말씀으로 우리가 가치로 삼을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염려할 것이 무엇이며 우리 마음은 어데 붙들리고 어데 눌려야 될 건가? 우리 행동은 어디에 충격받고 어디에 피동돼서 행동이 돼야 될 것인가? 그 결과 결과로써, 결과 결과로서 우리의 전 소망은 마지막 시간, 주님의 재림 거기에 내 전 소망이 거기 집중되는 이것이 그 모든 것을 믿는다는 그 표시입니다, 믿는다는 표시. 또 그 모든 소망이 거게 집중되는 그것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은 내 행동이 거룩과 경건 요것으로서 요 결과로써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결과 없는 것을 하지 맙시다.

녜, 공과는 7공과. 주일날에 대해서 여러 번 설교했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설교 안 합니다. 거게 대해서 여러분들이 테이프도 듣고 해 가지고 준비를 하도록 하십시오.

또, 무보수 반사 선생님들께서는 그 학생이 하나도 출석 안 하는 그런 반사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거는 무보수 반사들이 다 졸업시켜 가지고 육 년 동안 길러 가 가지고 그만 다 낙심해서 죽인 것이니까 각별히 반사 선생님들께서는 자기 반에 졸업한 학생은 다른 지금 주일학생을 인도 못 해도 그 학생을 방문해 가지고 찾도록 하십시오. 육 년 동안 길러 가지고 다 죽여버리고 또 새로 밑에 기르면 뭐합니까? 그러니까 졸업한 자기 반에서, 자기 반에서 졸업한 학생을 다 찾아서 구원하는 거기다가 더 주력을 하고 이제 안 믿는 주일학생 데려오는 데보다 거게다가 주력을 하십시오. 지금 낳아 놓은 아이들 자녀 기르는 데 힘을 써야지 낳지도 안한 것 낳을라고 애쓸 게 아니라 낳아 놓은 것이나 좀 잘 길러야 될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반사 선생님들은 금년에 졸업한 무보수 반사 졸업 학생들을 구원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시고 둘째로 지금 아동들에게 전도하는 데로 힘을 기울이도록 그렇게 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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