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도 방편도 바꾸라

 

1986. 8. 31. 주일오후

 

 본문:누가복음 5장 1절∼11절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든지, 또 비유든지, 또 어떤 논리든지, 교훈이든지,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치고 있는 구원 도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도리라 말은 구원 얻을 사람들이 구원을 이루는 걸어가는 길이라 그말입니다. 걸어가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안하면 이 책은 참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책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슨 수사학적으로 봐도 그러하고, 문학적으로 봐도 그러하고, 뭐 역사적으로 봐도 참 아주 초리한 말씀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를 유한한 자를 무한한 자로, 죽은 자를 영생하는 자로,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 아래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영광의 구원을 얻게 하는 이치를 말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제 구원의 이치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이 안에 한없는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구원의 이치를 가르친 것이라는 요 사실을 잊어버리고 보면은 성경은 아주 무식하고 참 가장 서민적인 그런 아주 일반적인 그런 책이라 그렇게 멸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오랫 동안 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이 사람들을 데리시고 늘 산에서나, 성전에서나, 들에서나, 이렇게 늘 가르쳤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가르쳤었는데 그만 이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려 두고 다 저거 갈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가서, 게네사렛 호수라는 큰 호수에 가 가지고 지금 그들은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버려두고 그만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따라다녀 봐야 별 재미도 없고 이렇다 해서 갔는데, 예수님이 예수님을 버려 두고 고기 잡으러 간 그 제자들을 찾아갔었습니다. 찾아가시니까 그 제자들이 지금 고기를 잡고 난 다음에 그물을 지금 걷어 가지고 씻느라고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 하나를 대라고 하니까 배를 예수님 말에 따라서 예수님이 탈 수 있도록 거게 대니까 예수님이 그 배에 올랐습니다. 올라 가지고 조금 띄우라 하니까 시몬이가 배 주인인데 배를 조금 육지에서 띄워서 그래 멈추어 놓고 거게서 지금 모든 무리들은 언덕에 섰고 거게서 큰 소리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또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전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이 밤이 도록 해도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것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네가 그물을 저 깊은 데로 던져서 고기를 잡으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라니까 시몬이가 자기는 바다에 경험이 벌써 수십 년 있는 사람이요, 또 풍조도 알고 시기도 알고 또 시간도 알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밤새껏 고기 잡아봐도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안하고 이러니까 지금은 고기가 여기는 없는 때라 그것을 알고, 또 고기는 밤으로 잡지 낮으로는 잡히지를 안합니다. 그러니까 낮으로는 고기들이 모두 물밑에 깊은 데 들어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 깊은 데 그물을 던져 잡으라 하니까 시몬이가 말하기를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해도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또 지금은 뭐 낮이지, 밤도 아니고 낮이지, 또 고기가 지금은 뭐 밤새도록 잡아 보니까 고기가 잡힐 때가 아니고 지금 고기 몰린 곳이 다른 데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던져 봤자 헛일은 헛일이지마는 우리 고기 잡는 상식으로서는 고기가 잡힐까 해서 던지는 거는 아닙니다, 그저 선생이 말하니까 그래 던져보는 것이지 우리가 뭐 깊은 데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잡히리라 그런 무슨 소망을 가지고 던지는 거는 아닙니다.’ 요래 똑똑히 구별을 지워서 말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막상 던져 가지고 보니까 고기가 어떻게 많이 잡혔는지 그물을 들어올리기 어려울 만침 많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 옆에 있는 동업자들을 소리해 가지고 고기를 잡아 끌어올리니까 두 배에 가득 채워졌다 했습니다.

그렇게 배를 채우니까 모든 사람은 다 놀라고 ‘고기가 이렇츰 잡힐수가 어디 있나? 우리가 이제까지 어부노릇 했지마는 이렇게 고기 잡힌 일은 없었다.’ 그라면서 모두 저희들이 놀라고 이라는데, 놀라고 기뻐하고 이라는데, 베드로는 그때에 예수님의 발 아래에 와서 엎드려 가지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시옵소서.’ 그라면서 그 앞에 떨고 있습니다. 그라니까 주님이 그 베드로에게 위로하는 말씀으로 ‘시몬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 취하는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그 베드로에게 말씀을 하시니까, 다른 제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그 무슨 소리야? 고기 잡으러 와 가지고 고기 잡았으면 다행이지 뭐 사람 취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어?’ 이랬지만 베드로는 그 깨닫는 것이 좀 특수해서 그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난 다음에 베드로는 즉시 배고 그물이고 고기고 다 버려 버리고 이제 예수님을 그시로부터 따랐습니다. 사람 취하겠다는 그 말씀에서 따랐습니다.

여기에서 이 모든 말씀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기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이치는, 구원의 이치라는 것은 이 사람에게도 그 이치는 다 맞고 저 사람에게도 그 이치는 해당되고 이 이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이 되는 이치입니다.

그래 신구약 성경 말씀에 있는 모든 말씀은 구원 이루는 이치인데 그 이치를 어떤 신학자들은 그 이치를 해석할 때에 어떻게 해석하는고 하니 ‘이 말씀은 어느 해 어느 지역에서 그때에 당한 일이라’ 이래 가지고 그 말씀을 ‘이 말씀은 어떤 때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일에 해당된 말씀이라, 또 이런 어느 지역에 해당된 말씀이라.’ 이래서,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의 구원 도리의 이치는 이 사람에게도 쓰이고 저 사람에게도 쓰이고 모든 사람에게 이 구원의 이치는 다 그 이치대로 하면 구원되고 그 이치를 어기면 망하고 그라는 것인데 그 이치를 어느 시대에다가 다 국한을 하고 사람에게다 국한을 하고 이라기 때문에 그 이치는 한 번만 써먹지 두 번 써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요한계시록에 이 기록한 모든 이치를 이 성경 학자들 가운데에 ‘요거는 몇 년 몇 해 어데서 거게 해당된 말씀이다, 거게 대한 걸 예언한 말씀이다.’ 이래 가지고,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신구약 모든 말씀을 한 시대에, 한 지역에, 한 사건에게 이렇게 다 붙여서 국한을 시켜서 거게만 해당된 것이지 그 외에 다른 거는 해당된 것이 아니라 이래 가지고, ‘이 말씀은 아무 때 아무 지방에서 아무 사건에 일어날 그 사건을 예언한 말씀이라’ 이라니까 거게다가 딱 붙여 가지고 ‘요 말씀은 요게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 그라고 `다른 데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그 이치에 맞은 것을 어떤 것이든지 하나 찾아내 가지고는 ‘여기에 요것을 가리킨 말씀이라, 요게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 요렇게 말을 하니까 이치로 쓰지 안하고 이 말씀을 어느 개인이나 시대나 지역이나 사건이나 거게다가 붙여서 그것을 하나 미리 예언하고 있는 것이라,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 이렇게 해석을 해서 모두 다 구원 도리를 말살을 시켜서 그만 다른 사람들이 써먹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하나 비유가 될런지 몰라도 쉽게, 만일 학교에서 ‘계란을 세 개씩 세 개씩 포개서 세 줄이면 삼삼은 구 아홉 개다’ 수학을 배웠습니다. 배웠으면 이제 그다음에 큰 배가 지금 세 개씩 세 개씩 세 무더기가 있는데 ‘그라면 이 배가 몇 척이나 되느냐?’ 이러니까, ‘나는 그거는 안 배웠습니다. 계란에 대한 거는 내가 계산하는 걸 배웠지마는 배에 대해서 계산하는 걸 배우지 안했다.’ 그라면 그 사람은 그 계산하는 계산의 수학 이치를 배우는 것이 아니고 다만 계란만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수학 이치는 공부를 못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수학 이치 배운 사람은 뭐 그 이치는 다 이치를 가르친 것이니까 계란이면 계란이 셋셋이면 삼삼은 구 될 것이고, 배도 세 개 셋 줄이면 아홉 척이 될 것이고, 나라도 세 나라씩 세 나라씩 합해서 세 무더기 있으면 아홉 나라 될 것이고 그 이치니까 어데든지 다 해당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성경은 구원 얻는 이치를 가르쳐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이치는 어데든지 그 이치에 들어맞는 것은 다 거게 대해서 요 성경이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바로 가르치고 있는 것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게서는 세 가지를 여게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세 가지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방편, 생활하는 방편을 개선해라, 생활하는 방편을 점점 고치고 고쳐서 참 온전함에 나아가도록 해라, 생활 방편을 개선을 해라. 또 소망도 수많은 소망이 있지마는 소망에서 소망으로 소망에서 소망으로 소망을 차차 개선해서 온전한 소망에 도달하도록 해라.

그러면, 개선이라 말은 고칠 개자, 좋을 선자, 고쳐 가지고 좋은 것을 택한 것을 가리켜서 개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여게서 세 가지 삼 단계의 생활 방편과 삼 단계의 소망 방편이 여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예수님 따라다니다가 그만 따라다녀도 별 재미도 없고 이러니까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일을 그만 두고 제가 한번 가서 고기나 잡아 가지고 배부르게 먹고 고기나 잡아 가지고 돈이나 쓰고 싶은 대로 좀 쓰고 그래 봐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바다에 나갔습니다.

나가 가지고 과거에 고기 잡던 솜씨가, 예수님 따라다니며 얼마 동안 잡지도 못하고 하니까 경제도 곤란당하고 이런데 이제는 그만 예수님을 던져 버리고 호수에 고기 잡으러 왔으니까 이제는 솜씨대로 한번 잡아보자 하고서 배와 그물을 가지고 지금 마음대로 한번 솜씨를 내 부려 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옛날 예수님 믿지 아니할 때의 고기 잡는 그 방편과 솜씨를 가지고 고기를 한번 잡으려고 밤새껏 애를 썼습니다. 밤새껏 애를 썼으나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하나도 얻은 것이 없으되” 한 것 보면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거요. 이러니까 고기 잡을 시기는 다 지나갔고 못 잡으니까 이제 그물이나 걷어 가지고 또 인제 씻자 하고 그물 걷어 가지고 씻어 가지고 지금 배에다 싣고 갈라고 그물 씻는 판이라 그거요.

우리의 생활 방편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어 봤자 별 뭐 희특한 재미도 없고 이러니까, 그만 예수 믿는 게 무슨 재미가 없고 이라니까 그만 예수 믿는 것 버려 두고서 이 세상 과거 생활하던 그 법칙 가지고 그 사업, 또 그 직장, 또 그런 모든 노력을 해 가지고 살아볼라고 가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저 금정산에서 그때 우리가 거기 갈 때에 뭐 거게는 참 금정산에 그때 모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박태선 바람도 불었고, 또 나운몽 바람도 불었고, 또 문성명이 바람도 불었고, 또 그때 하나님의 성회라는 바람도 불었고 뭐 그때 별별 바람이 불어서 굉장했습니다.

금정산에 그때 우리가 집회할 때에 우리는 밑에 거기서 집회하고 그 위에 골짜기에서는 뭐 굉장하게 그저 뚜드리고, 이 뭐 책상에 이런 몽둥이를 가지고 막 책을 때려 대면서 노래를 부르고 찬송을 부르고 이래 하는데 그 사람들 노래 부르면 우리도 마음이 우쭐우쭐하고 뭐 따라가고 싶어요.

오면 그만 한 스무남은 줄 빙 둘러앉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나의 기쁨’ 하는,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이래 막 이라면 나중에 그만 ‘나의 기쁨 나의’ 막 이래 가지고 하면은 들썩들썩 한 것이 어떻게 마음에 그런지.

그렇게 그때 그라는데, 나도 말했어. 찬송을 할라면 저래 찬송을 해야 하나님이 들어시지 뭐 느려빠져 가지고 다 죽어가는 소리로 그래 하는 찬송은 안 된다고 찬송 그거 배우자. 나 지금도 그런 찬송 좀 배우기를 원해요. 흐리멍덩하게 그래, 내가 오전에도 여기 찬양대 보고 찬양 하나 가르쳤어. 가르쳤는데 뭐 가르쳤느냐 하면은 찬송하는 거 보면은 그 찬양대원들이 찬송을 부르는데 입을 들썩들썩, 이래 소리 어찌 내는고 몰라. 입도 안 벌리니까 소리는 어찌 나는지 몰라. 이런데 어떤 학생들보면 찬송할 때에 입을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입술까지 다 힘을 내 가지고 이래 한다 말이오.

그래 내가, 지휘자가 이거 잘못 하나 해서 지휘자의 입을 가만히 보니까 지휘자는 입을 벌릴 대로 다 벌린다 말이오. 벌리는데 대원들은 안 벌려. 그래서 ‘너희들이 입을 벌려가며 해라’ 그래 가지고 하나 내가 말 들었어. 저 ○○○집사님 따님이 찬송을 잘 해요. 아주 입을 벌리며 찬송하는 것 보면 옆에 사람도 기운이 나고 참 성심 성의를 기울이는 것이 간절한 것이 표가 난다 말이오. 그런 말을 내가 좀 찬송을 한번 지휘를 했습니다.

요다음에는 피아노 타는 사람들 전부 모아 놓고 내가 좀 가르칠 모양이라. 피아노 사람이 탈 줄 몰라요. 몰라서 전부 모아 놓으면 좀 내가 가르쳐 줄라 하니까 모으라 하니까 그것도 안 모아, 어짜든지 좀. 모아 놔요. 모으면 내가 가르쳐 줄께.

좋은 거 가르쳐 줄 거라. 여러분들이 암만 가 봤자 피아노 선생한테 평생 배워도 몰라요. 내가 가르친 거 그 사람들한테 배우는 것 아니라. 와 봐요.

‘아무래도 이거 안 됐다. 이거 좀 거석해야 되겠다.’ 하고 간 것처럼 요새는 보면은 그 금정산에 그런 사람 하나도 없어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는데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을 냈다가 없어졌느나 하면은 그만 갈 길이 막혔어. 그렇게 말한 그까지만 알고 그다음에 자꾸 갈 길이 없으니까 길이 없으니 다 그만 흩어지고 말았다 그거요.

그 사람들이 찬송하는 것 모든 것이나 예수 믿는 이치를 가르친 거니까 이치를 배웠더라면은 굉장히 커졌을 건데 이치는 모르고 자꾸 이래 뚜드리고 울리고 하는 그것만 알기 때문에 헛일했습니다. 알겠어요? 이러니까, 여러분들도 예수 믿는데 열심을 내 가지고 암만 열심을 해도 예수 믿는 이치를 모르면 헛일입니다. 이치를 알면 그 사람은 낙심 안 해요. 이치를 알면 그 사람 힘이 줄어지지 안해요. 이치를 알면 벌로 덤비지를 안해요.

이런데, 이 베드로는 그만 가 가지고 고기 잡으러 갔다가 밤새껏 헛일을 했습니다.

헛일을 했는데 여게서 우리에게 무슨 구원얻는 이치를 가르치고 있느냐 하면은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 떠나서, 예수님 떠나서 옛날 자기 수단 방법대로 아무리 해 봤자 세상 성공은 뭇 한다 그걸 여기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옛날 그 수단 방법 얼마나 썼습니까? 예수님 배반하고 또 욕심을 얼마나 냈겠소? 예수님 오래 따라다니다 보니까 아무 돈도 없고 이러니까 뭐 배도 쫄쫄 골았고 돈 쓸 것도 없고 이라니까 어짜든지 이제는 ‘아이구 징그러운 예수, 징그러운 예수 떼 내 버리고 이제 와 가지고 이제는 호수에서 실컷 고기 잡아 가지고 한 번 잘 먹고 한번 잘 쓰고 한번 해 봐야 되겠다.’ 하고서 마구 그날 밤에 신명 있고 기분 좋게 지금 고기 잡겠다고 야단을 쳤지마는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다 했어.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해놨어, 거기 보니까. “얻은 것이 없지마는” 여기 하나라 말은 안 했구먼요. 하나라 말은 안했지마는, “얻은 것이 없지마는” 하니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여게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거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당장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 순서를 밟아야 됩니다.

우리는 도둑질하는 거와 같은 그런 방편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방편으로 하는 것이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자되는 것도 방편이 따로 있고, 또 출세하는 것도 방편이 따로 있고, 공부해 가지고 성공하는 것도 방편이 따로 있어요. 따로 있는데 예수 믿는 여기에서 성공하는 것은 당장 되는 것 아닙니다. 당장 되는 것 아니고 이치에 딱 들어맞아야 되고, 그 순서에 딱 들어맞아야 되고, 또 거게 대해서 받을 만한 실력이 있어야 되고, 방편도 딱 들어맞아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이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당장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될란가, 뭐이 될란가 하고 예수 믿었다가 와서 해 봐야 그게 잘 안 되니까 그만 낙심하고 뒤로 돌아간다 그거요.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 버리고 옛날 수단 방법, 안 믿는 사람의 수단 방법 그런 방편 가지고는 암만 해 봤자 하나도 성공은 못 한다. 밤이 도록, 밤새껏, 그 밤새껏인데 그 밤은 뭐입니까? 밤은 그만 다 지나가고 이제 낮이 안 됐습니까? 이러니까 밤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가리켜서 어두운 밤 생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 떠나서 예수님 배반하고 제 수단 방법 가지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일생 동안 노력해 봤자 비참하게만 돼지지 하나도 성공은 못 하고 수입은 못 한다 그것을 여기서 똑똑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소망은 뭐인가? 소망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라야 하지 예수님이 안 주는 것도 제 욕심대로 제가 취하고 싶으면 취하고 싶다. 그러면 소망을 예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을 소망하지 안하고 제 욕심대로의 소망을 가졌다 그말이오. 제 욕심대로의 소망 가진 거 밤새껏 해도 헛일했다. 일생 동안 해도 헛일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배반하고 제 수단, 방법, 실력, 세상 방편 가지고는 암만 해 봤자 죽는 날까지 해도 헛일이다. 또 소망도 예수님이 허락해 주신 그 소망이라야 되지 제 욕심대로의 소망은 다 헛일이다 그것을 일호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알아 듣겠습니까? 요것만 딱 판정을 해도 사람들이 어지러운 생활이 많이 제거됩니다.

예수님 떠나서 자기 수단 방법 안 믿는 사람의 방법 그런 방법 가지고 밤이 도록, 밤이 도록, 죽는 날까지 어두운 세상 생활 다 해 봤자 헛일이다. 또 자기가 소망하는 것도 예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이라야 소망하지 자기 욕심대로의 소망 그걸 가지고, 그 소망을 가지고 성공해 볼라 하는 것은 헛일한다.

우리 ○집사님 좀 아나, 인제? ○집사 여기 앉아 가지고 이래 쌓는다. 이래 쌓는 거. 제 욕심대로의 소망, 요 꼭 시몬과 같이 도망쳐 가지고 하다가 나중에 어데 들어갔지? 교도소에 갔다 왔어, 교도소. 인제 교도소에 갔다 온 게 자랑이라 말이오. 고치고 나면 교도소에 갔다 온 게 자랑이라. 고치고 나면 교도소에 갔다 온 게 자랑인데 고치기 전에는 교도소에 갔다 온 게 자랑이 아니야.

부끄러워해요. 교도소에 갔다 온 것이 참말로 회개를 하고 나면은 자랑을 해요.

‘내가 옛날 그렇게 살아 가지고 그렇게 실패했다’ 자랑이 됩니다.

또, 이제 둘째로는 뭐이냐? 이 방편 틀렸어요.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방편도 고쳐야 됩니다. 또 이 소망도 고쳐야 됩니다. 이 방편도 이 소망도 고쳐야 되는데 어떻게 고치는가? 고기 잡는 그 방편은, 고기 잡는 방편은 세상 사람들이 잡는 방편, 과거에 제가 잡던 방편 그런 방편 다 집어던져 버리고 그저 제 비위에 맞든지 안 맞든지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의 방편을 춰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의 방편.

예수님께서 ‘저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이라니까 베드로는 저거 지식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비쭉거려서 ‘아이구, 선생님 무식한 소리 한다.

자꾸 뭐 가르치기만 가르치고, 되지도 안하는 걸 자꾸 가르치기만 가르쳐 쌓는데 이번에 한번 코빵을 줘야 되겠다.’ 싶어서 베드로가 그 속으로는 지금 꼰 했을 거라. ‘녜, 내가 이 그물 던지는 거는 내 의사로 던지는 거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고기가 잡힐 것같아 던지는 것 아닙니다, 선생이 말하기 때문에 선생 말을 의지해서 그래 던지는 것이지 내가 던지는 거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고기가 만일 안 잡히면 ‘선생님 보십시오. 이 고기 하나도 안 잡혔습니다. 그 씻어 놓은 그물만 공연히 더럽히지 뭐 그래 가지고 됩니까? 그냥 아무나따나, 성전에서 성경 말씀이나 가르치든지 하지 뭐 성경 말씀 우리가 모르니까 해당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지만 성경 말씀이나 가르치지 뭐 고기 잡는 것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기 잡는 것 뭐 가르친다고 뭐 그런 소리 하고 있느냐?’고서. 이래 한번 코빵을 한번 줄 모양인데 그래 가지고 척 던졌디마는 아, 고기가 에워 싼 게 그물이 찢어질 만치 막 가뜩 잡혔다 말이오. 그라니까 베드로가 거기서 놀랬습니다.

그래,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 일을 성공하는 방편도 요 방편을 써야 됩니다. 이제는 예수님 배척하고 도망쳤던 그 베드로와, 그만 예수님을 배 안에다가 떡 모시고, 예수님을 배에다가 떡 모시고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 떡 한번 해 봤어. 예수님을 자기 배에다가 떡 모시고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 떡 한번 그물 한번 던져봤다 말이오. 시시하지마는 던져봤다 말이오.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 해 봤어. 하니까 고기가 이렇게 잡혔어.

요게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버리고 가서는 헛일이다. 예수님을 자기 회사에 모시고, 자기 사업에 모시고, 조그만한 점포라도 점포에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가 하는 기업체에다 주님을 모시고 주님 시키시는 대로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서 딱 가르치고 있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그것을 가르치고 있고, 또, 소망은 또 무슨 소망을 가르치는가? 소망도 개량해야 한다. 주님이 줄라고 하시는 것이라야 하지, 주님이 가져라 하는 것이라야 가지지 주님이 가지라 소리 안 한 것을 제 욕심대로 가질라 하는 거는 암만 해 봤자 헛일이라.

시몬이가 제 욕심대로 처음에는 고기 잡을라고 제 욕심대로의 소망을 가졌는데 이제는 그 소망을 주님이 ‘고기 잡아라’ 이라니 그 소망을 가지라 했지마는 주님이 주시고 허락한 소망이지마는 베드로는 믿었소 안 믿었소? 안 믿었어. 안 믿었지마는 주님이 주시는 소망 그 소망은 가지니까 그 소망이 달성되고야 말았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달성이 됐어.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지위든지 권세이든지 물질이든지 출세든지 뭣이든지 사업이든지 ‘주님이 주시는 것만 내가 가지겠다, 주님이 허락해 주셔야 되지 주님이 허락해 주지 안한 것은 아예 천부당 만부당으로 그거 안 된다, 주님이 허락해 주신 거라야 되지 내 욕심으로 하면 안 된다, 내 욕심대로 하는 그거는 다 자살하는 행위지 소용 없다. 주님이 내게 주시는 그것만 내가 소망하겠다.’ 세상 성공도 주님이 주시는 그것을 소망해야 성공을 한다 하는 요것을 여게서 가르칩니다.

그라면, 방편 몇 개선했습니까? 방편 몇 가지 개선했소? 예?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방편 몇 개선했어요? 저 뒤에도 손가락 한번 가리켜 봐요. 그 둘이라. 방편 둘 개선했지. 또 소망은 개선했어요, 소망? 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저기는 모두 모르구먼. 전부 권사님들 다 몰라. ○○○권찰님, 소망 몇 개선했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손가락으로. ○○○씨? 뭐 점잖해서 그라면 개선한 사람 손가락 들라 하니, 손 들라 하니 그 손가락으로 가리키라 하니까 이래 가지고 있어? 그 교만해서 물리침 받아야 돼요. 그라면 안 돼요. 아이들 모양으로 이래야지. 이래야지.

‘생활 방편 이제 둘 개선했구나. 처음에 하던 그거 개선하고 이제 두번째 주님 시키시는 대로 세상 성공하는 방편을 개선했구나. 두 가지 개선했다.’ 그러면 자기 속에 아멘이 되어지면 ‘몇 가지 개선했습니까?' 하면 이라면 개선하는 데서 통감을 가진 사람이요, 좀 배가 아픈 사람이요, 그 개선하는 것이 마음에 딱 맞아서 ‘이제 살길을 얻었다’ 싶어서 다행스러운 감을 느끼는 사람이요? 요라는 사람이 다행스러운 감을 느끼는 사람이요, 막 이라는 사람이 다행스러운 감을 느끼는 사람이요, 어떤 사람이 다행스러운 감을 느끼는 사람이요? 이라는 사람. 이라는 사람은 헛일이야. 성령이 안 가. 벌써 제가 마음으로도 원치 안하는데 어찌 갈 거라? 세상 것을 성공하는 방편을 개선해야 되는데 처음의 것 틀렸고, 두번 째 것 또 주님이 개선해 시켜 줬고 이라니까 이제 ‘개선된 게 몇이야? 둘이라.’ 이라면 마구 이래 뻐뜩 들어 가지고 좋아서 ‘주여!’ 이래 가지고 이라면 `아멘!' 이래야 돼요. 그리 안 하면 실감이 안 가요, 실감. 실감이 안 가 헛일이야.

여기도 인제 아멘도 좀 해야 되겠어요. 아멘 안 하면 이다음에 껍데기 돼요, 참.

나는 그 혁명가를 내가 잊어버렸는데 그것만 알고 있어. 아따 그뭐, ‘일어났도다, 일어났도다, 혁명 운동은 일어났도다.’ 이라면서 `말라빠진 교리만 붙들고 있고 생명된 신앙을 저버렸도다’ 하면서 그때 바로 해방 직후에 그때 노래 부른 그런 노래가 있었어.

이랬는데 그래, 우리가 이 말씀을 가르칠 때에 맞으면 그래야 돼요. ‘처음에 이렇게 주님 떠나서, 심심하고 이라니까 주님 떠나서 저거 하던 수단 방법 가지고 밤새도록 잡아도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거는 뭘 가리키는 것이냐?’ ‘믿는 사람이 주님 떠나서 인간 방편으로 과거 안 믿을 때 예수 만나기 전에 모든 뭐 사업하든 그 방편 가지고 암만 해 봤자 헛일이다.’ 이라면 속에 불이 붙어서 ‘주여, 아멘, 옳습니다. 옳습니다.’ 이게 속에 있어야 돼.

또, 소망도 하나님이 주시는 게 아니고 제 욕심대로 ‘나는 고기 잡아 봐야 되겠다, 취직해 봐야 되겠다, 출세해 봐야 되겠다, 공부를 해 봐야 되겠다, 뭐 해야 되겠다. 제 욕심대로의 소망은 다 헛일이다.’ 이라면 그말을 들을 때 그만 ‘아멘!’ 마구 다른 사람 뭐라 하든지 말든지, 저 미친 사람이라 하거나 말든지 ‘아멘!’ 이래야 자기 속에 성령이 쏵 들어가서 `됐다! 너는 내것이다!' 이래하는 것인데, 그말 하면 ‘말은 묘하게 한다. 그 이치는 맞기는 맞는 말을 하기는 한다.’ 그자는 제 복음이 아니라. 제 복음이 아니라.

또 그라다가 이제는, 그다음에 두번째는 예수님이 저거 배 안에 찾아 왔으니까 모시고 뭐 예수님이, 언제든지 예수님은 찾아 오십니다. 우리가 몰라 그렇지 예수님은, 주를 배반하고 죄 가운데 빠져도 주님은 와 가지고 문을 두드리시면서 문 열라고 그렇게 우리에게 간청하고, 우리를 살릴라고 애쓰시는 이가 주님이십니다.

주님 자기 배 안에 모시고, 이제는, 내가 그라다가 주님 떠나서 사업하다 헛일 했으니까 이제는 회사에서 우리 회사에 주님을 사장으로 모시고, 우리 조그만한 구멍 가게 점포라도 우리 점포에서 주님을 또 이제 주인으로 모시고, 뭐 우리 뭐 사업장이라 해 봤자 인부 한 둘 데리고 일하지마는 우리 이 현장에 주님을 감독으로 모시고, 마구 자꾸 모신다 말이오. 주님 모시고, 주님 모시고, 이제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한번 해 보자.

대낮에 고기 잡으라고 깊은 데 그물 던져 잡으라 하는 것이 이 인간 역사와 통계와 상식에는 얼토당토 안한 말이지마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이제는 해 보겠다 요렇게 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요렇게 할 때에 그 사람들이 고기 잡았으니까 ‘옳다, 나도 그래야 되겠다’ 요게 여러분들에게 각오가 서 있어야 돼.

요 따라오면서 요 각오만 딱 가지고 있으면은 모든 거 다 성공하는데. 구멍가게도 성공할 거고, 상점도 성공할 거고, 점포도 성공할 것이고, 또 식당도 성공할 것이고, 배도 성공할 것이고, 회사도 성공할 것이고, 모든 사무실도 성공할 것이고, 자기 취직도 성공할 것이고, 대통령도 성공할 것이라. 뭐 누구든지,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인간은 예수 믿는 사람이 요렇게 해야 성공하지 그렇게 안 하면 성공 못 합니다.

내가 지금 마음에 아까운 사람 하나 있어. ‘그 사람이 참 인재는, 좋은 인재는 인재인데 딱하다. 신앙의 지도자를 바로 만나지 못했다.’ 요런 소리 좀 하나만 해 줘도 ‘내가 이제 한번, 뭐 한번 해 보겠다, 내가 동장 한번 해 보겠다, 내가 시장 한번 해 보겠다, 내가 대통령 한번 해 보겠다.’ 해 보고 싶거들랑 주님 떠나서 세상 수단 방법대로 세상 사람들이 출세하고 운동하고 하는 대로 그 방편대로 쓰지 말고 이제 고쳐서 주님 모시고 주님 시키시는 대로의 그 방편을 써라 이라면 될 터인데 그 방편 안 쓰거든. 또 그 방편 쓰고, 또, 소망은 어짭니까? 소망은, 내가 방편만 바꾸고 소망은 바꾸지 안해도 또 헛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저만 골빠지지 헛일이라요. 소망도 ‘주님이 대통령을 줘야 대통령이 되고, 주님이 장관을 줘야 장관이 되고, 사장을 줘야 사장이 되니까 주님이 주시는 것이면 하고 안 주시는 것 나는 안 하겠습니다. 그저 내가 이 방편은 주님 시키시는 대로 이래 방편을 쓰고 있지마는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면 화가 되는 줄 알기 때문에 안 할 터이니까 주님이 내게 필요 없으면 주시지 마시고 주님이 내게 필요하시면 주시고 하십시오.’ 소망도 주님에게 주권을 딱 맡기면, 벌써 소망을 주님에게 주권을 딱 맡기면 이게 뒤에 가서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벌판이로 일 안 할 거라 말이오.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야, 우리 나라에 지금 뭐 이런 일 한번 해 보자, 무슨 한번 큰 사업을 한번 해 보자, 저 기름 구덩이를 하나 한번 거게 투자를 해 보자.’ 이래 쌓아도 옆에 사람이 하니까 ‘그래 보자' 이 소리 안 할 거고, ‘보자. 안 됐다. 이것도 주님이 주셔야 되지 안 주시면 안 된다.’ 눈 감고 대통령이라 하는 게 엎드려 앉아 가지고 눈 감고 ‘주님이여 요번에 이 석유 뭐ㅡ석유 개발이라 하나?ㅡ이 석유 개발 이것은 할라면은 우리 재산이 뭉텅 들어가야 하는데 석유 개발 이거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주님이 주실랍니까 안 주실랍니까, 안 주실 것이거든 애초부터 하지 말라 하십시오. 줄 것 같으면 하라 하십시오.’ 이 무릎 꿇고 그분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할라고 무릎 꿇고 이라면은 그분이 절대 무자비한 분이 아닙니다. 긍휼과 자비하신 그분이십니다.

만일 대통령이 그라면 주님이 딱 보고 ‘야 요번 석유 개발에는 헛일이야. 좀 참아.’ 시키는 대로 졸졸하면 ‘너 아무 데 가 가지고 거기 가서 지금 덤바꾸 한번 구불러 봐.’ ‘예, 시키는 대로 한번 구불러 보지요. 거기 뭐 있습니까? 한번 시키는 대로 한번 구불러 보지요.’ 떡 구불러 보니까 석유가 풍 솟아올라 버립니다. 이게 하나님이라. 알겠소? 그리 안 하고 어떻게 한 해에 백 배나 수입을 받겠소? 이러니까, 소망도 주님이 고기 잡으라 했으니까 주님이 주신 소망 아닙니까? 고기 잡으라 주님이 주신 소망 아니요? 주님이 주신 소망만 소망하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의 방편만 취하고 하니까 배가 그만 거뜩 자무라지도록 그리 그만 잡아 버렸습니다. 그라니까 이거 그만 베드로는 기절했어. 기절하고 요한도, 야고보도, 가까운 사람도, 먼 데 사람도, 소문 들은 사람도 전부 다 놀랩니다. 다 놀래.

이래야 복음이 전해져요, 복음이 전해지기를.

여기 부산은 와 봐야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어. 우리 또, 도시에서는 달라요.

그러나 시골에서는 조금 잘 되면 압니다. ‘아무것이가 예수 믿었구만. 예수 믿고 봐라.’ 모든 사람이, 시골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 받은 걸 보고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이 놀랠 만침 그런 일이 안 일어나면 전도 안 됩니다. 교회 안 돼요.

‘그 병이 나았다지? 그 못쓸 인간이, 쓰지 못할 인종지말자 사람이 그 사람이 굉장하게 됐어. 그 사람 거지가 부자가 됐어. 한 들에 농사를 짓는데 요 논도 흉년 요 논도 흉년 요 논만은 풍년이네.’ 이렇게 막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야 그만 교회가 쭈욱 일어납니다. 이래 놓으니까 시골 교회가 그런 게 없으니까 안 일어나요, 도무지. 저는 그때 개명에서 믿을 때에는 봉산교회에 사백 명이 모여서 예배 봤어. 그런데 요새 뭐 스물인가 서른인가 그래밖에 안 돼. 자꾸 주 모아 들어요.

이제 방편 둘을 배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것을 성공할라고, 취할라고 하는 그 방편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처음의 방편과 처음의 소망은 죽도록 골만 빠졌지 실패. 두번째 소망과 두번째 방편은 자타가 놀랠 만침 거뜩한 성공을 한 거, 요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요것을 볼끈 잡아요.

이라면 부자가 될 터인데, 부자가 되면은 십일조도, 나는 장 그것만 보고 있어.

십일조가 많이 나와야 이거 뭐 집도 사고 뭐 또 좀 이게 연보가 이래 될 터인데 항상 봐야 그 꼴이라.

이래서 ‘우리 교회 교인들이 도둑놈이 다 돼 가지고 있나, 그리 안 하면 이거 무슨 뭐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아 가지고 이렇나?’ 뭐 이유가 있어. 자꾸 이래 하면은 벌컥벌컥 자꾸 불어 올라갈 것인데. 십일조가 요번 주일에는 예를 들어서 백 원이면 다음 주일에는 천 원, 다음 주일에는 만 원, 그다음 주일에는 십만 원, 백만 원, 천만 원 자꾸 이렇게 기어올라갈 터인데 하나님이 성경 말씀은 이렇게 자꾸 올라간다 하는데 도두지 실상이 안 올라가니까 이거 아마 이제까지 자기 욕심대로의 소망 가지고 안 믿는 사람과 같은 그런 방편 가지고 성공해 볼라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그래 싶습니다.

일호 방편, 저 ○집사, 일호 방편, 일호 방편, ‘내야 뭐 인제 뭐 이래 성공해 봤자 뭐 하겠노?’ 아니야. 거기서도 굉장한 성공과 영광이 있어. 일호 방편. 일호 방편을 쓰고 있으면 일호 방편 쓴 걸 알아야 된다 말이오. ‘나는 일호 방편 쓰니까 틀렸다’ 일호 방편 쓴 자가 일호 방편 썼다가 실패한다는 걸 알고 회개를 해야지. 이호 방편만 오면 다 세상에는 성공입니다. 성공 안 한 사람 하나도 없어요. 이호 방편 오면은.

방편을, 그 사람이 옳은 방편을 써도 이 소망을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안 하고 저 망할 소망을 자꾸 가집니다. 방편을 옳게 써도 소망을 제 욕심대로의 소망 가지면 하나님이 주실 수가 없어요. 왜? 그거 주면 그 사람 망하고 죽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안한 소망은 우리가 가지면 망하는 것 아닙니까? 전지자가 우리에게 ‘가지면 안 된다’ 하는 이런 소망을 우리가 가지면 어짤 것입니까, 어짜기를?

또 세번째는, 이제는 그 방편을 처음에는 바다의 고기를 훌치는, 바다의 고기를 훌치는 그런 방편을 썼는데 이제 베드로가 가만히 이거 주님 시키시는 대로 떡 그 방편을 취하니까, 주님 시키시는 방편을 턱 취하고 보니까 예상도 못 할 만치 평생에 경험 못 한 고기가 뭉텅 들어왔다 말이오. 뭉텅 들어오니까, ‘이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방편이라야 되지 다른 방편은 소용이 없다. 주님 주시는 방편은 이거는 뭐 천부당 만부당해도 다 성공이다.’ 요걸 베드로가 딱 알았다 말이오.

알고 난 다음에는 베드로가 그만 자기가 과거에 주님이 주시는 방편 부인했고, 주님 부인했고, 또 주님이 주시는 소망도 부인했고 이렇게 했던 것 그것이 너무 마음에 원통스러워서, 왜? 둘째로 주님이 주시는 소망과 주시는 방편 가지고 하니까 깜짝 놀랠 만치 성공된 것을 보고서 제 욕심대로의 소망, 제 주장대로의 방편 그거 한 것이 원통하고 후회가 돼서 그만 그 앞에 꿇어 엎드려 가지고 죽은 듯이 됐어. 벌벌 떨며 말이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멀리 떠나시옵소서, 주님과 같이 있을 수 없는 자입니다.’ 이런 거룩하신 분에게, 이렇게 존귀한 분에게, 가만히 보니까 그분이 하나님이거든. 하나님인데 그분하고 같이 있겠다가는 죽겠다 그말이오. 그분의 두려움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크심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전능자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주권자이심을 알았습니다.

‘이 고기 한 마리도 없는데 뭐’ 하지만, 한 마리도 없는다고 조롱을 했는데 주님이 떡 명령을 하니까 막 고기가 어떻게 왔든지 고기가 빡빡해서 그물만 하나 아니라 그 밑에도, 그물 밑에도 고기가 막 빡빡했을 거라. 아마 그물 밑에도 아마 거게 그 그물 밑에도 그때, ‘게네사렛 호숫가의, 갈릴리 바다의 고기가 전부 그리 싹 모이라.’ 주님이 이라니까 막 모여서 그 밑에는 전부 고기 산이 됐을 거라, 빡빡하게. 이걸 알았다 말이오.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주님의 권위가 어떤 것이며, 주님이 어떤 크신 분이시며, 주님이 주권자이시며, 주님이 창조주이시며, 주님이 모든 크고 작은 것을 다 주권 개별 통치 섭리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이런 분을 어떻게 내가 그 가까이 할 수가 있겠느냐? 아이구 무서워 못 살겠습니다. 떠나십시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했다 그말이오.

이라니까, 이제 주님이 거게서 소망을 줍니다. 소망을 줘요. “이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제는 주님이 한층 더 올려서 소망을 주십니다. 과거에는 고기 잡는 소망을 줬지마는 이제는 사람 성공의 소망을 준다. 사람 성공의 소망을 줬소.

네가, 네가 모든 인류 가운데 대 수제자가 돼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차지할 수 있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치될 때에 통일된 그 통치의 나라에서 네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네가 다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실력가가 네가 될 것이다.” 하는 이 소망을 성경에 주님이 늘 말했거든요. 늘 주님이 그런 말씀 많이 해 놨다 말이오.

많이 해 놨는데, 주님 말씀을 전부 헛말로 듣고 이랬는데 주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하니까 주님 말씀하신 대로 될 걸 곰곰히 생각하니까 이거 뭐 참 말할 수 없는 기가 찬 큰 소망인데, 이 소망을 이룰라면, 이 소망을 가질라면 그만한 실력가가 돼야 되는데, 그만한 실력가가.

하나님 다음의 실력가, 전지자가 아니면서 전지자가 되고, 전능자가 되고, 완전자가 되고, 영원한 자가 되고 이렇게 이런 실력가가 될 수 있는, “하늘에 있는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거룩하게 될 수 있다” 하는 이런 소망을 줬는데 이 소망은 버려 두고서 엉뚱스럽게 가 가지고 가서 밤새껏 헛일하고 주님 주시는 ‘고기 잡아라’ 소망인데 고기 잡아라 하는 그거 다 통통 헛말인 줄 알았는데 소망하고 또 시키는 것도 바보 시키는 것 같은데 해 보니까 다 됐거든.

이러니까 딱 회개했어. ‘주님이 주시는 소망만이 참소망이고, 또 주님이 주시는 방편만이 참방편이다. 이런데 나 같은 죄인은 주님과 같이 주님 모시고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참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니까 주님이 그렇게 해서 소망을 줬습니다. “시몬아, 네가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 그말은 사람을 성공을 네 성공으로, 사람 수입을 네 수입으로, 사람의 모든, 사람 성공 네 성공, 사람 수입 네 수입, 사람 개조 네 개조, 사람을 만드는 사람 제작 네 제작, 너는 사람 만들고 사람 고치는 사업이 네 사업이 되리라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라니까, 베드로가 ‘이걸 할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것을 할라면 사람 수입을 할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는 이제 물질을 초월한 인간 수입을 네 수입으로, 인간 성공을 네 성공으로 했기 때문에 밑에 저저분한 것 땅에 속한 가지고 가지 못할 것 이런 것은, 이런 것은 네 소망이 아니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같은 온전한 사람 만드는 것이 네 소망이니까 이제 방편을 바꿔라.’ ‘방편을 어찌 바꿉니까?’ 거게 말은 기록하지 안해도 주님께서 벌써 한 말씀이 있고 이라니까 여게 말한 게 표가 난다 말이오. 이러니까 베드로가 얼른 그물도 모든 고기도 배도 다 던져버렸어. 다 던져버려. 다 던져버리고 예수님 따랐어.

‘네가 사람 성공할라면 땅에 있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네가 포기해야 된다. 돈에 대한 소망도 포기 해야 되고, 땅에 있는 소망도 포기해야 되고, 네 뭐 권세나 지위나 그런 소망도 다 포기해야 되고 단지 네 소망은 주님이 주시는 대로의 참사람 되어지는 것과 이제 사람 성공하는 것 사람 수입하는 것 이것만 하겠다.’ 이라니까 이것이 뭐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그 방편은 이제는 과거에는 네가 다른 데 있는 걸 꺼먹꺼먹 끌어닥쳐서 자꾸 네가 거머닥치는 것이 방편이었지마는 이제 네가 사람 취하는 방편은 어째요? 끌어닥치는 것이 사람 취하는 방편입니까, 사람 취하는 방편은 뭐지? 사람 성공하는 방편, 자꾸, 죄인을 의인 만들고, 죽은 자를 살리고, 저 마귀의 새끼를 자꾸 구원해서 인도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망을 생명으로 옮기고 자꾸 이렇게, 사람 만들고 사람 수입하고 사람 성공하는 방편은, 그 방편은 어떻게 하지? 이제까지의 방편은 쓰기를 자꾸 꺼멍꺼멍 바다의 걸 자꾸 거머 가지고 자기 배 안에 꼭꼭 채웠는데 이제 이 방편은 어떻게 쓰지? 저 ○집사? 저 치과 ○집사 대답해 봐. 이번에 방편은 무슨 방편 쓰지? 맞으면 내가 참말로 칭찬해 줄께. 자, 한번 해 봐. 그래, 요거 알아야 돼요.

이제 사람 수입하는 데는 버리는 방편입니다. 알겠습니까? “땅에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받는 것도 좋고 취하는 것도 좋지마는 주는 것이 더 좋다. 알겠습니까? 이것은 인제 물질을 초월한, 이거는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한한 것을 받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히 주는 것이 우리의 직업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에게 받아 가지고 만인간에게 주는 것이 우리의 방편입니다.

자, 그라면 목사님들 여기 많이 왔는데 어짤 거야? 저 ○○○교회 목사 어짤 거야? 이라면 저 부자들 자꾸, 부자 하나가 오면은 아이구 부자가 하나 오면 ‘이 좋은 자리 앉으십시오’ 자꾸 부자를 끌어들여 가지고 할 것인가, 거지를 끌어들여 가지고 자꾸 돈을 줘서 부자를 만들 건가? 뭐할 거야? 어째? 구걸 행위 할 거라? 인제 우리 사람 취하면 달라요. 이제는 교회 말이요, 이거 참 세상 기가 찰 일입니다. ‘나는 부자라’ 이래 오면 `아이구 오십니까? 금가락지를 끼고 오십니까?’ 이렇게 막 환영을 하고 대접을 할 것인데 그 교회는 무슨 놈의 교회가 그런 교회인지 부자는 가야 자꾸 부자 욕만하지, 부자들은 회개하라고 자꾸 그런 소리나 하지 아무 대우 안 한다고.

부자가 오면 뭣을 대접을 하고 환영을 합니까? 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거지 불러다가 부자 만들고, 무능한 자 불러다가 유능한 자 만들고, 천한 자 불러다가 귀한 사람 만들고 자꾸 이렇게 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가져오는 부자는 오면은 교만할 터이니까 그거 필요가 없어. 알겠습니까? 왜? 이것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고 피조물들에게는 얻지 않는 그것이 벌써 물질 그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세계에서 사는 방편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사는 방편은 이거 받는 방편이 주는 방편입니다. 요거 아직까지 이해가 안 될란지 몰라. 안 되거나 되거나 거게서 그래 말했어.

베드로가 그물과 배와 고기를 다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어. 이래서 예수님이 누가복음 14장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있는 걸 다 버리기 전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제자된다는 말은 예수님 같은 사람 된다 말이요, 예수님의 제자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많은 제자를 둔 거와 같이 자기도 많은 제자를 두게 된다 하는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벌써 교회서 교역자가 오백 명 이상 되는 교인을 거느리고 있다 하면은 그 교역자는 반드시 땅에 있는 인간에게 뭣을 얻어 가지고 할라 하는 그것을 초월해서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고 인간에게는 뭐이든지 주기만 주지 얻지는 안할라 하는 그 사람이 되기 전에는 오백 명 교인 못 데립니다. 오백 명 교인 못 가지요. 오백 명 교인을 벌써 거느린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인간에게는 다 주기만 하지 얻지 안하고 하나님에게만 받아 가지고 인간에게는 주는 사람이 될라 하는 그 단계를 넘어가야 그래도 한 오백 명 교인을 거느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권찰들도 자기가 이렇게 권찰 일 하면서 여게 입각해 가지고 “사람을 취하리라” 네가 사람 취하는, 소망을 바꿔서 땅위에 물질이나 이런 거 저런 거 소망하던 자가 이제 인간에 대한 소망을, 인간 수입에 대한 소망을 네가 가졌다고 하면은 배와 그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버려 두고 사람 하나만 수입할라고 하고 하나님에게 그 모든 것들은 다 주실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서 다 줄 줄 알고, 그뭐 인간에게 얻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얻어서 다 할 각오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받아 하고 인간에게는 주기만 주고, 인간에게 얻어 가지고 뭐 할라 하는 그런 것이 없어져야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래야 권찰도 권위 있습니다.

권찰도 그리 하면은 구역이 자꾸자꾸 늘어 나가지마는 구역장이 말이요, 구역장이 이 사람 수입일랑은 생각지 안하고, 사람 수입을 바라보면은 물질 수입은 포기했다 그말이오. 알겠소? 물질 수입을 다 포기하고 사람 수입만 제 수입으로 이렇게 삼으면 자꾸 이 구역이 늘어가고 자꾸 이래 되는데 그라다가 그만 조금 잘못해서 물질 수입하고 사람 수입하고 겸할라고 이래 둘 하다 보면은 마귀란 놈이 자꾸 ‘물질 수입이 필요하다, 이 물질 수입이 없으면 안 된다.’ 하니까 ‘이것도 해야 되겠다' 물질 수입에 손을 댔으면은 사람 수입은 도망쳐 버리고 맙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을, 요 비밀을, 이러기 때문에 어떤 목사들에게 말하기를 ‘너 자꾸 얻을라고만 돌아다니고 너는 개척교회 한다고 자꾸 연보 받으러만 돌아다니니까 너는 구걸 목사이니까 마지막에 너는 목사 노릇 못 한다.’ 못 하고 예배당은 팔아 먹고 가 버렸어요, 남해에서.

그래서, 우리 총공회는 그때 미국에서 동양에, 동양에 이 개교회가 있다고 소문을 듣고 독립 교회 연합회에서, 연합회에서 이 동남아에 파송을 했어요. ‘동남아에 어데 독립 교회가 있다 하는데 가 봐라.’ 왔는데, 와 가지고 일본에 와 들으니까 한국에 있다 말 들었다. 한국에 와 물으니까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저 부산에 있다 이래서 부산까지 내려왔어요. 그 사람이 부산에 내려왔어요. 부산에, 미국 사람인데 왔어.

그래 가지고 이제 한번 이야기 하면서 그 사람 말하기를 ‘뭘 도와 드리랍니까?’ 그라는데 `나는 도와 줄 것은 당신이 우리들을 예수님의 제자 만드는 데에 필요한 그런 무슨 실력이나 방편이나 있거든 주고 돈은 필요가 없습니다.ㅡ돈 말하기에,ㅡ돈은 필요가 없습니다. 돈은 우리도 많이 있습니다. 돈은 필요가 없고 그것을 주십시오.’ 이라니까 이래 가지고 있다가 ‘예.’ 그분이 여기서 가 가지고 그 뒤에 편지가 몇 번이나 온 걸 아예 내가 손을 끊어 버렸어.

그 사람들하고 자꾸 이래 접하면 도로 물들겠어. 그 사람은 독립 교회로 지내지만 우리 모양으로 지내지를 안해요.

‘다른 진영에서도 딴데 보조 오는 것을 받지 말아라.’ 여게서도 보조 오는 걸 받을라 하면, 보조 오는 걸 받을라 하면 벌써 양성원에 집 번들번들하게 얼마든지 지을 수 있습니다. 안 받습니다. 우리는 사람 취하기로 딱 지금 나선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취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가 받고 사람은 받지마는 사람 외에 딴거는 필요 없어. 우리는 물질 그건 다 지나갔기 때문에. 그거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인간에게 얻을라고 하지 안해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는 연보궤, 연보 주머니 안 하고 저 연보궤를 만들어 놨어. 그라고 또 돈 많은 사람, 연보 많이 한 사람들에게 요만치도 칭찬 안 합니다. 제 복 제 받는 건데 이러니까, 사람 수입을 자기 소망으로 삼으면은 그 방편이 다르다. 땅위에 있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수입하는 방편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해서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해서 잡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수입을 자기 수입으로 삼는 데에는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걸 끌어들이는 것 아니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자꾸 이거 달라 해 가지고 하나님 한 분의 것을 있는 거 싹 다 달라 해서 받아 가지고 인간에게는 자꾸 주는 사람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있는 그 모든 땅의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고 모든 사람에게는 주는 것으로 사람을 취할 수가 있다. 주는 방편으로 사람을 취할 수가 있다.

주는 것으로 사람을 취하면은 자꾸 주고 사람 취하지마는 줄 게 뭐 있어야지? 자꾸 주면 뭐 줄 게 있습니까? 자꾸 주는 것으로 사람을 취한다 말이오. 주는 것으로 사람 취하니까 주는 것으로 사람 취할라 하면 받을 데가 있어야지? 밑천이 떨어져 어짤 거라? 밑천이 떨어져 어짤 것이요? 밑천이 떨어져 어짤 거라? 저 ○○○선생? 있는 거 자꾸 주면 밑천이 떨어져 없지 않아? 어짤 거라? 그래, 수도꼭지가 저 저수지에 딱 연결 수도가 돼 가지고 있으니까 자꾸 빼 나오면 저 위에 수도에 물이 있는 한 나오지 안 나옵니까? 나오지, 자꾸 나오지.

그렇지 안해요? 이러니까 주면 또 오고, 많이 주면 많이 나오고, 있는 대로 얼마든지 주면 얼마든지 나오고 이것이 인간이 이해 못 하는,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초세상, 초인간, 물질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인간 수입의 그 단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방편 셋, 소망 셋, 이래서 차차 차차 점점 좋은 데로서 개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공연히 말하는 거 아니오. 땅에 있는 소망을 주님이 허락한 범위 내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이 시키시는 방편을 해 보면 하늘의 소망으로 바꿔집니다. 인간 소망으로 바꿔져요.

일차에서 실패하고 머물고 있는 형제들이여 이차 방편으로 옮겨 보십시오. 이차 방편에서 놀라고 깨닫는 일 있어서 삼차 방편으로 얼른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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