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지,복종 바꿀 필요-기도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8일 화전집회 

 

본문 :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각처에서 공부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지만 참석을  못한 그런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공부를 안 하는 날 이라고 해서 아마  다만 몇 시간이라도 참석을 하려는 그 소원에서 원근을 무릅쓰고 온다고 뭐 잠도  못 자고 준비도 못 하고 그래 가지고 각처에서 학생들이 온 줄 압니다. 오월  집회는 우리가 학생들을 주로 하지 아니하고 일반 장년반들 그저 농번기 그것을  좀 생각해서 참석하기 쉬운 그런 시기를 정한 것이 오월 집회입니다.

 그런데도 그 학생들이 이 오월 집회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참석을 하려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달려왔는데. 그렇게 힘써서 달려오면 참 자기 교회에서  모두 그 선생님들이 알뜰히 사랑해 주고 돌봐 주고 이렇게 하던 그런 실례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움을 무릅쓰고 참석하러 가니까 아마 거기  가서도 선생님들과 모든 믿는 부형님들의 그 환영과 후대가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오기 쉬울 것입니다.

 이랬는데, 내가 방안에서 들으니까 학생들은 모조리 저 산비알에 가서 그리  가도록 그리 안내를 해서 다 은혜를 받도록 그래 하라 그렇게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주최측에서는 다른 아무 좋은 방책이 없습니다. 장소가 협착하지  또 가까운데 있는 천막에도 다 들어서 그렇게 예배는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 태양 빛보다는 좀 나무 밑에 그늘이 좋지 않느냐 그렇게 해서 그래 한  것이고, 또 그렇게 하면서 앉을 자리 뭐 신문지 한 장도 그렇게 대접을 못 하고  그러니까 아마 학생들로서 섭섭함을 가진 그런 학생들이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희망이 넓고 크고 포부가 다 생생하게 원대하게 살아 있는  희망찬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국가를 위해서도 우리가 국민의 의무로서 입대를  하면 그 뭐 자리고 뭐 진흙이고 물속이고 비탈이고 공중이고 할 것 없이  떨어지면 죽을 지경이라도 그 명령 하나에 복종해서 전체의 일심으로 국방도  하고 모든 안보도 하고 이래서 행복을 경영하는 그런 길을 여러분들이 다 걸을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이 하늘나라의 이 건설은 여러분들이 다 이 주님을 위해서 참 기쁘게  평안하게 즐겁게 세상 것으로 행복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주님을 위해서 고생할  것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그 부요와 존귀를 다 내어  놓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기 위해서 낮아지고 천해지시고 죽기까지  하셔서 이 구원을 주신 구원이니까 우리가 이 구원을 간직 하는 데에도 우리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그런 것을 다해서 이 주신 구원을 간직해야 하겠고. 또  이렇게 큰 구원을 주신 주님을 위하는 것이라면 의례히 소유나 몸이나 생명은  아낌없이 바쳐서 주님을 사랑하고 섬겨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여야 할 줄  압니다.

 이러니까, 그런 깊은 깨달음과 그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하는 그  마음에서 뭐 나무 그늘 밑만 아니라 어떤 그 넓은 바다 속에 파선한 그중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높이고 주를 딿겠다 하는 그런 각오들을 다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것을 배우기도 했고 또 그런 마음들이 우뚝 우뚝 여러분들 속에  지나간 적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기 와서 어려움 당하는 것도 십자가의 군병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만족히 연단을 받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 그러고 장년반들도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온 그 학생들에게 대해서 참 모두 다 감사한 마음과 감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만날 때에 따뜻하게 대접하고 만나 줘서  그들에게 왔던 그 욕망이 넘치도록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고 아주  믿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양식을 먹여 주는 그런 일이 되도록 힘을 쓰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새벽에 봉독하고 증거하다가 중단했었습니다.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저 하는 말씀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말씀을 다 책에다가 기록을 하려고 하면 온 세상에도 다  둘 곳이 없을 만치 많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말씀을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이 우주 가운데에 지구 땅덩어리라고  하면 우주의 그 별 중에 극히 작은 별 중에 하나입니다. 그 가운데 있는 것도  여러 면으로 연구해서 그 지식을 가질라고 하면 심히 복잡하고 또 세밀하고  범위가 넓고 이런데, 하늘에 있는 그 영계 것과 이우주 물질계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앞으로 통일이 됩니다. 영계 것과 물질계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이 되어서 통일 정치로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수립되고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로 끝이 없는 영영한 나라이십니다. 그나라는 모든  것을 능가한 빛의 나라요 의의 나라요 참의 나라요 거룩의 나라요 완전의 나라요  불변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 영계에 있는 모든 천군 천사의 그 영물들의 그  통치도 우리가 맡아서 통치하게 될 것이고 또 이 세상에 있는.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도 다 우리가 맡아서 통치하게 될 것이요 또 모든 사람들이나 그  악령이나 모든 각 종류대로의 존재들도 다 우리가 맡아서 통치할 것이라고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앞으로 천사들도 세상에 있는 모든 것도  다 너희들이 통치할 터인데 이 일부분으로 되어 있는 핵이 되고 그 조그만한  종자와 같이 되어 있는 이 땅 위에 있는 교회에 대한 이 통치를 너희들이 바로  못 하느냐' 하는 것을 고린도전서 6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홀로 계시면서 당신이  목적을 세우신 일이 있으니 그 목적이 곧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형상이 되어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서 하나님의 모든 넓고 깊고 크고 작고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런 존재로 당신이 창조하시기  위해서 그 창조를 정한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를 피조물로써 만들어지고 성장 되도록  이렇게 하셔 가지고, 일은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모든  이런 것들을 다 통치하는 일과, 또 그 모든 것들에게 자존 하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온갖 그 은혜. 모든 존재 그것들에게 각각 필요한 대로 모든  은혜를 나누어 주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도록 그렇게 해서,  영원히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 밑에 만물 위의 그 위치를 가지고 감당하기를  하나님은 머리시요 교회는 그의 몸으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뜻을 교회를  통해서 다 이루시기로 그렇게 작정을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큰 포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교회라는 것은 그 교회 위치가 어디가 교회 위치인고 하니 하나님  아래 만물 위 그 위치에서 하나님의 대리의 직책을 가지고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을 통치하며 또 피조물들에게 영영히 봉사하며 영영히 시은을,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의 기관이 돼 가지고 위로는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아래로는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의 대상이 되는 이런 자로 만드실려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큰 목적을 가지시고 이렇게 인간이 지식할 수 없는 지극히 크고  영화롭고 능하고 구비한 이 사랑의 온전함을 이루는 이런 실력가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걸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로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고 그 목적하신  바가 영원히 완전 달성을 하는 영원히 끝이 없는 그 예정을 하나님이 이 목적을  위해서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신 그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개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또 나타난 것이나  나타나지 않는 것이나 어떤 것이든지 이 우주에서 움직이는 것 영계에서  움직이는 것 움직임이라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움직여지는  것이지 돌발적으로 움직여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그 움직여짐에 이용을  당하는 모든 존재, 뭐 모든 무생물, 생물, 식물, 동물, 사람, 그 외에 있는 모든  자연에 속한 모든 것들, 그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짓지 안하신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다 창조하신 것인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 하면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쓰실려고 창조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어떤 순서든지 나타났을  때에는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인 곧 교회를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순서가 또 여기에 하나 나왔다.' 그렇게 우리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어떤 그  순서가 나타날지라도 그 순서는 전부 하나님의 목적인 곧 하나님의 교회 건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예정의 순서가 나타나는 것이고 그 예정의 순서  아닌 것은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은밀한 것이나 나타나는 것이나 영계나  물질계나 다 그러합니다.

 이십 세기의 과학이 발달되어 새로운 발명들이 다 나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순서대로의 나오는 발명들이요 그것도 하나님의 목적인 교회 건설을  위해서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것을 단단히 깨닫고 하나님의 목적. 이 목적을 위한 모든  하나님의 예정 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예정대로 창조된 것, 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예정대로 창조된 것을,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이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섭리해서 하나님의 교회 건설에 유익이 되고 교회 건설이 되어지도록  이미 이렇게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이 사실을 우리가 또 믿어야합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당신이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타락의  순서를 주셨고, 또 타락에서 하나님의 전적 책임지시는 이 하나님은, 하나님이  전적 책임지시고, 교회는 전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것이  되어져 하나님은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 되고 모든 그밖에 있는  피조물들은 이 일을 위해서 이용도 되고 이 일을 위해서 영원히 통치를 받고  영원히 은혜를 입어서 만족하고 만족하여 모든 존재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그런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하나님의  목적이 뭐인가? 그것이 곧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선택된 것은 우리가 있을  때에 선택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 안에서 우리를  비로소 예정하셨고 목적 안에서 예정하신 그대로 때를 따라 우리를 창조하셔  가지고 섭리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 예정이 되고 목적 안에 창조가 된 그것이  우리는 곧 선택을 입은 자의 계속되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어떤 순서를 보든지 자기가 무슨  순서, 개인 순서, 또 단체 순서, 시대 순서, 국가 순서 무슨 크고 작은 어떤  순서든지 순서가 나타날 때에 '이것은 우리의 이 구원 곧 하나님의 교회 건설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의 그 예정이 하나 순서에 따라서 나타나고  있다.'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어떤 그 순서든지 우리는 조브랍게  생각하고, 우는 순서도 있고 웃는 순서도 있고 낙망케 하는 순서도 있고 교만케  하는 순서도 있고 별별 순서들이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조브랍게 그 유치하게 또  그 편벽되게 그렇게 생각을 좁게 가지면 안 됩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그것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현실 모르는 현실. 알고 모르는 모든 세상에 일어나는 순서들,  역사들 그 모든 것은 내가 아나 모르나 하나님의 광대하신 이 목적 달성을 위한  섭리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경거망동을 안 해야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이 광대하신 아주 넓고 큰 이  전체인 이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어리고 조브라운 생각으로  '이런 것은 필요가 없는데. 있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렇게 단순히  속단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무조건 우리는 이 모든 것은 내기에  직접 필요가 없으면 간간접으로 어떤 이에게 필요해 가지고서 어떤 죄악을  일으키고 어떤 건설을 일으키고 어떤 파괴를 일으키고 어떤 뽑는 일을 일으키고  어떻게 심으는 일을 일으키고, 둘이 합하고 셋이 합하고 또 나누고 이렇게 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구원 곧 교회 건설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  전지전능하신 사랑이 이 모든 것들을 직접 경영하시고 섭리하시되 당신이  예정하신 대로 순서를 바꾸지 안하고 섭리하시고 당신이 창조해 놓으신 그것들을  가지고 재창조도 하고 합했다가 나누었다가 이렇게 모든 것을 조화해서 일으키고  계신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꼭 믿어야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지 안하면 마귀는  그 믿지 않는 그 틈을 타 가지고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시험하는 그것도, 그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순서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인데,  그런 것들은 모순이면서 일치되는 거와 같이 그들은 이 교회 복음 건설 운동을  해하는 것같이 좁게 보면 그렇지만 모든 것이 합력 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은 모든 소리나 움직임이나 또 모든 악한 것이나 선한 것이나  모든 것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해치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될 때에 그것들을 하나님 대리로 통치하고 관리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흡족히 베풀어서 그들로 하여금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갖추게  하는 하나님의 구비한 광대한 역사지. 그것이 조브랍게 생각해서 '저것은  기독교를 대적하니까 기독교의 대적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전체를  깨닫지 못한 그 편벽된 지식이라는 그 지식 감옥 속에 그 사람이 갇혀 있기  때문에 그는 그만침 고통을 당하게 되고 그만침 어두워지고 그만침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옥을 벗어나서 이제 말씀한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 그 실상을 바로 알고, 알고 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니 감사히 받을  것이며 또 받은 것은 나에게 필연적으로 유익을 끼치고 하나님의 구원에 유익을  끼치는 것이니까 그것이 우리가 아는 데까지는 이것이 어떻게 유익을 끼치는가  하는 그 유익을 끼치는 그 방향으로 나도 상관을 가지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고,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이해할 만한 그 지식이 없어 협착함으로 말미암아 알지  못할 때에는 나는 알지 못하나 분명히 이것이 교회 건설을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니 나는 알지 못하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여기에 대해서 내가 조그만치도 거리끼지 안하고 이것을 바로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해서 하나님의 뜻에 하나도 거슬리지 안하고,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유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감과 진리대로 움직이는  것을 고대하는 이 모든 만물 구원과 멸망이 우리 그리스도인 개인 개인에게 속한  것이니까 내가 잘못 깨닫고 한 행동에서, 나를 바라보는 만물을 멸망 시키는  만물에게 부끄럽고 그들에게 영원히 미안을 끼치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도록  모든 존재의 모든 순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간구해  놓고 그것을 지내 보내야 되지, 그것을 속단으로 이것은 망해야 되겠다 이거는  없어져야 되겠다 이거는 좋다 이거는 나쁘다 이거는 우리의 원수다 해다 그렇게  그런 조브라운 견해를 가지고 착오하고 오산해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 받을  그런 일을 우리가 하지 안해야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야고보서 5장에 보면, 우리가 닥치는 그 현실이라는 그 현실은  우리 조브라운 지식에 이해될 만한 그런 현실이라면 우리 안에 있고 우리 밑에  있는 것이지 우리를 더 성장 시킬 만한 역량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이 도달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그런 것은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것이요 우리를 키우는 것이요 우리의 손길이 닿지 일는 것을 우리를  길러서 거기까지 성장시키고 확대시키고 광대한 자로서 실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닥칠지라도 이해 못해도 거기에 대해서 네가 이거는  이랬으면 좋겠다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원망하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원망하는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 다 그러므로 원망하지 말고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바로 알라고 애를 써서 감사할 것이고 모르는 것은 분명히  모르나 우리 구원을 위해서 사랑하시는 주님이 창조하셨고 예정하신 그 순서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함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이해하게 해  달라는 그 간청을 해 놓고 청원을 해 놓고 지나갈 일이지 거기에 대해서  속단적인 그런 경거 망동은 우리가 하지 안해야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단일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존재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단일 목적 이것은 하나님 한 분으로써 만족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를 선물로 받아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잘 해서 그들을  행복되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에게 받아 중보자요 또  대리자로 이렇게 역할해서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 교회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직책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해야 되고 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예정을 기억해야 되고,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 창조를 기억해야  되고. 또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 창조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존도 하시고  관리도 하시고 이렇게 저렇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활용하고 계시는 것이  우리가 아는 이 세상이요 우리가 모르는 속에 들어 있는 세상이요, 우주의 이  모든 우리가 모르는 모든 자연들이요, 모든 역사들이요, 모든 섭리들이요,  영계에 일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섭리  순서 중에 예정하신 대로 하나님이 타락을 주셨고 타락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하늘나라 갈 사람들로 하여금 한 가지 교훈을 주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안하고  딴것을 바라보는 것이 어떠한 것이며 하나님을 의지 안하고 딴 걸 의지하는 것이  어떠한 것이며.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딴것에게 복종하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 한 마디 고 거슬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그것의 그 결과가  얼마나 크다 하는 그것을 전 인류 대대손손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죽음이요, 제일 원하는 것이 죽지 안하는 것이 원하는  것인데, 전 인류가 제일 소원해도 그 일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이  살기를 원하지만  '안 된다.' 하신 그대로 됩니다. 또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죽기를 면하고 죽지를 안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먹으면 죽는다 한 그대로 되고 그것을 아무도 변개하지를 못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권위 있으며 얼마나 신실하며 그대로의  얼마나 권위 있게 이루어 나아가며 또 하나님을 바라던 것이 그 소망을 옮길  때에 그 결과가 어떠하며 의지를 옮길 때에 그 결과가 어떠하며 복종의 그  능동을 옮길 때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이 종자적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 타락입니다. 인간 타락으로써 일차적으로 인간에게 이 사망이라는 것이  왔고 본 지위에서 떨어지게 된 것이 이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타락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모든 교훈적으로나 그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는 것이 얼마나 복되며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다 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줘서,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꽉꽉 들어 눌루고 있고 거기에서 살고 싶은 소원이 꽉꽉 들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고 그대로 이루어 간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 일차 아담에게 이루어진 이 타락인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일차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것이며 그 말씀을 떠난 것은  어떻게 비참하며 그 말씀을 딿는 것은 어떻게 행복되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 첫째 아담으로 보여 줬고 둘째 아담으로 우리에게 보여 줬습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을 딿지 안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그 피조물을 따랐던 그것을  보여 준 것이 첫째 아담이요, 둘째 아담은 그 피조물의 어떤 것을 다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한 번 머리만 한 번 까닥거리면 천하영광을 다 주마고 해도  어림도 없이 하나님에게 딿는 그 딿는 것을 요동치 안하고 함으로써 둘째 아담이  승리를 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지금 이 세상이라는 간단한 한 토막을 두고서, 혹 이 천 년이  넘을런지는 모르지만 대개는 육천 년 동안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이레 되는 날에 쉬셨습니다. 이러니까, 그  육천 년 동안에 그리스도의 나라의 건설을 일으키시고 이제 육천 년이 지나간 그  다음에 예수님의 재림이 와서 영원 무궁한 그리스도의 나라,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되는 그 나라가 시작이 되지 않나 그렇게 사람들이 짐작을 합니다. 왜?  고것을 꼭 이라고 고렇게 단정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또  필요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 이상은 우리가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고 하니 이 세상은,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또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 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피조물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 피조물에게 복종하는 것이 두  가지 역사로서 온 세상은 지금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명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는 영원한 그  음부의 나라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 두시고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저런 현실이 자꾸 바꾸어져 가면서 현실이 우리에게  바꾸어 닥쳐오는 그 현실은 우리는 확고한 지식을 가져야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그 현실은 천태만상의 모양으로 변해집니다. 질도 변해지고 양도 변해지고  형태도 변해지고 모양도 변하고 전부 문체도 변해지고 전부 변해집니다.

변해지나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것이 그렇게 변해 가나 한 말로 말하면, 한 말로 말하면, 그 변해 가는  모든 현실이라는 그 현실을 우리가 한 말로 단정을 지운다고 하면 그 모든  현실은 네가 어느 것을 바라보느냐? 어디에 소망을 두고 있느냐? 어디에 소망을  두고 있느냐? 네가 평안의 소망은 어더 두며. 기쁨의 소망은 어디다가 두며 너  안보의 소망은 어디다 두며, 네가 영광스럽기는 네가 영광스러워지기는 어떤  것이 너를 영광스럽게 해 줄 것이라고서 영광의 소망은 어디다가 두느냐 그렇게,  그 모든 우리가 소망하는 것도 사람의 지식에 따라서 하나만 가진 사람도 있고  열만 가진 사람도 있고 백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의 지식이 넓어짐에  따라서 소망의 종류도 많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것은 네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요것이 잘되리라고 소망을  하느냐? 거기에서 네가 하나님으로, 하나님 한 분으로 모든 그 소망을 다 가져서  이분이 이것도 잘해 준다 저것도 잘해 준다.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아  가지고, 하나님 한 분으로 모든 소망을 삼아 가지고 그렇게 삽니다. '뭐 하나님  한 분이면 되지 딴게 뭐 필요 있습니까? 하나님 한 분이면 다 하나님이 해  주시지요.' '그래?' 하나님께서 권세가 눈앞에 얼릉얼룽하게합니다.

 눈앞에 얼룽얼룽 하는데 그 얼릉얼릉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 한 분에게 이  권세가 있어지고 없어지고 하는 것도 하나님 한 분이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에게 이 권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라.' 성경이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가르치시고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모든 이 세상에 속한  전부가' 들어서 '이 권세는 네가 하나님 바라보면 안 된다. 네가 오늘 주일을  어겼다가는 이 권세가 박살이 난다. 오늘 이 집회에 참석을 했다가는 박살이  난다. 오늘 네가 이 거짓말을 안 하면 박살난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는  박살난다.' 양쪽에서 자꾸 이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이 얼떨떨해 가지고서 '아,  다를 때는 내가 하나님만을 바라보지만 요 딱한 사정 요것만큼은 하나님만을  바라봐 가지고는 당장 낭패된다는 것이, 환하게 백 프로 낭패된다는 것이  보여지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하나님만 바라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서 그 소망하는 대상을 하나님에게서 바꾸어서  다른 데로 옮겨갑니다.

 그러면 고 현실에 관련된 모든 만물과 만 인간은 내가 들어서 다 죽였고 또  거기 관련된 내 영원한 보배가 되는 내 심신의 기능도 다 그것이 이제 하나님  배반자로 딱 되어 가지고서 둘째 사망의 정죄를 받고서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게 눈에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이 이렇게 다  정죄 되어서 실패 되어져도 그거는 원수로 생각지 얻습니다. 자기에게 돈이나  한주먹 뺏들어 가든지 무슨 사업에 방해나 지기면 저놈 내 원수라고 생각을  하지, 자기가 어떤 현실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되는데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안하고 딴걸 바라보게 한 그것으로 인해서 그 현실에 하나님 바라보는 그것을  옮겨 가지고서 피조물 바라보는 것으로서 바꾼 그것은 굉장한 손해요 복구할 수  없는 큰 손해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손해라고, 원수라고 생각지를 아니하고,  마귀라는 놈이 꼬아서 '하 이렇게 요번에 자기가 아니면, 당신이 아니면,  선생님이 아니면, 상관님이 아니면 내가 이번에 이 권세를 다 빼앗길 수밖에  없었는데 참 그렇게 지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옆에 선지자들은 말하기를 '네가 그라면 완전히 그 권세는 다 깨어져 버리고  너는 그 권세가 네게서 죽고 그로 말미암아 거기에 속한 것도 다 죽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남의 말은 쉽게 죽먹듯이 한다. 제 일이 아니라 놓으니까  쉽게 말한다. 무책임하게 말한다. 사랑과 자비가 없이 냉정스럽게 말한다.'  하나님의 선지와 하나님 말씀은 배척을 당하고 그리 기울어집니다.

 그러나 실상 사랑 같으나 참 미움이 됐고 미움 같으나 사랑이 된 것이 여기에서  판정납니다. 우리의 주관에서 자기 좋게 따뜻하게 해 준다고 사랑이라 냉정스레  한다고서 미움이라 그렇게 판정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든 판정을 하나님에게  붙여서 거기다가 근거를 해 가지고서 판정해야 되고, 하나님에게 근거해서  판정할 때에 판정하는 세부적인 그 지식과 방편은 우리에게 계시해 준 신구약  성경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의 진리라는 이 법칙을 가지고서 판정해서  거기에서 판정해야 되지 그 대목을 떨어져 내려오면 거기에는 천지 만엽으로  타락의 길이 있기 때문에 사이비한게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복잡해서 거기  들어가 놓으면 아무도 구별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서는 모든 비판도 평가도 해 봤자 그것이 다 헛된 노름이요  외식이요 생명 없는 쭉덩이 송장 노름인 것이지 아무 생명에 관련된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확정을 짓는 이 지식, 이 세상에 수많은  현실들이 있지만 수많은 현실 중에 내게는, 내게 당한 현실을 내가 이해를  하든지 못 하든지 내게 대한 현실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천하에 수많은 현실  중에 내게 대해서는 고 현실이 제일 좋기 때문에 내게 주신 현실이라 하는 것을  알아서 자기 현실을 불만하고 남의 현실을 원하는 그런 우리가 망령된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하고, 또 모든 그 현실은 몇 가지를 지금 하나님께서 연단시켜서  시험해 가지고서 합격되어서 바로 하려고 하고 있느냐? 뭐 어떤 것을 판정지우기  위해서 하고 계시는 현실이냐? 현실은 쉽게 말해서 하늘나라를 이루든지 지옥을  이루든지 현실을 받은 자마다 그 사람에게 '네가 이 현실로 천국을 건설할래 이  현실로 지옥을 네가 건설할래 어느 것을 건설할래?' 하는 그 두 가지를 두고서  두 가지를 만드는 그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현실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냐? 이 두 가지에 관련되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뿐입니다. 천국을 건설하느냐 지옥을 건설하느냐 요  두 가지가 고 현실에서 판정되어지는 것이니까 그 현실에서 판정되면 그 현실에  관련되었던 모든 물질이나 사람이나 이 자연이나 자기의 마음이나 자기의 몸이나  그 모든 기능 그 모든 것은 고 현실에서 영생으로 완전히 영생으로 완전히  옮겨지는 것도 있고 영멸로 옮겨지는 것도 있어서 자기 몸 안에 있는 이 기능이  영생과 영멸로 확정되어지는 것이 현실이요 또 자기 현실에게 관련되어 있던  모든 사람이나 만물이나 그 모든 사건이, 다 그것이 영멸의 사건으로서 영생의  사건으로 이렇게 결정이 지워지는 현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하고  살아야합니다.

 마귀라는 놈은 우리를 아무 필요 없는 것으로 자꾸 복잡하게 만듭니다.

복잡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생각할 여유의 시간이 없도록 만들어 가지고서 언제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하고 그만 자꾸 우선 귀에 들리니까 들리는 대로  행하고 눈에 보이니까 보이는 대로 행하고 접촉하니까 접촉하는 대로 행해서 내  현실이라는 그 현실에게 내가 피동돼 가지고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 현실이라는 감옥 속에 갇히면 안 됩니다.

 그 현실은 내 주인으로서 현실이 나를 보호하고 나는 현실에게 속하고 현실이  나를 아듬고 있고 현실이라는 그 품속에 들어 가지고 살 우리들이 아닙니다.

현실은 나의 소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 현실은 나의 소유인 줄 알고 요것을  똑똑히 냉정스럽게 요 현실을 놓고 빗고 깍고 따져 보고 건설 해 보고 갈아 보고  시험해 보고해서 고 현실에서 '요 현실에서는 아! 두 가지 라더라. 요  현실에서는 천국을 건설하느냐 지옥을 건설하느냐 둘 중에 하나라고 했으니까 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천국 건설되며 어떻게 하면 지옥 건설이 되어지는  것인가?' 하는 요것을 딱 선입적 지식을 딱 가지고. 요것을 그 기초 지식으로  가지고 고 현실에서 '아! 내가 그라면 지옥을 만들겠느냐 천국을 만들겠느냐? 둘  중에 어느 걸 만들겠느냐? 아! 천국을 만들지 지옥을 만들 수가 있는가? 그러면,  천국을 만들라면 어떻게 하며 지옥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 지와  만드는 법을 알아야 지옥을 만들지 안하고 지옥 만드는 법에서 피해지겠고, 천국  만드는 법을 알아야 천국 만드는 법을 해 가지고 천국을 마련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이 지옥 만들고 천국 만드는 이 방편에 대해서 내가 거기에  대해서 대조해서 이것을 가지고 요 현실을 따져 보고 현실을 판단해 보고 심사해  보자.' 이렇게 할 때에 거기에서 천국을 만드는 방편도 간단합니다. 아주  간단하요. 천국을 만드는 방편도',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저기에는 두 가지, 두 손가락을 드네, 두 가지요? 요래 놓으니까, 엄지  손가락으로 해 놓으니까 똑 둘로 봤는데, 이제 엄지 손가락은 두고 이래 했으면  좋겠어. 이래, 엄지 손가락으로 해 놓으니까 이거 잘 안 보이는구만. 자 천국  만드는 방법은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네, 세 가지. 잘 알았습니다. 아주 잘 알았습니다. 네. 이것이 천하를 차지하는  천하의 인간 지식을 다 아는 것보다 더 보배로움이요 권위 있는 지식의  생명입니다. 이것을 가지면 지식이 살았습니다. 지식의 생명.

 그러면, 세 가지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는 그 현실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 이것은 하나입니다. 셋이지만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의지 안할 수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안할 수 없고, 참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가 됐으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 세 가지는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요, 고 현실에 관련된 자기 지능은  영생으로 살아나 버렸고 고 현실에 관련된 모든 인류와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로  인해서 영원히 새로와지는 다 구원을 얻게 됐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첫째 아담이 범죄해서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았을 때에  모든 피조물이 같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같이 저주를 받았소. 사람이  범죄했는데. 사람은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고 하니 지음을 받을 때부터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 모든 피조물 위에 하나님의 직계자로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고 다스릴 자로. 모든 피조물의 그 대리자로 이렇게 사람이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 하나가 범죄하니 모든 만물이 다 범죄함이 되고 하나님의 저주함을  받게 된 것이 마치 아담 하와가 범죄하니까, 자연법으로 생육하는 모든 인류는  전부 범죄에 참석하게 됐고 정죄와 사망을 받게 된 거와 꼭 같이 된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이 세 가지가 되어졌을 때에  첫째로 하나님이 만족히 여기시고. 내게 있는 그 중생된 영이 마족히 여겨 내  마음과 몸의 기능이 중생된 영의 것이 되고 또 그 영의 것이 되어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지고 이러기 때문에 그 기능이 삽니다.

 또 그때에 관련된 모든 어떤 만물이든지 그것이 또 내가 고 현실에서 이  하나님을 향하여 이 세 가지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영과 연결되어 영육이  합해 가지고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영육이 합해서 하나님과 연결된 그 자의  소유인 모든 그 관련된 것들도 다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영생하고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도 영생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에는 좀이 먹지 않는다.' 그 말은 천 년  억만 년 가도 시간이 그를 해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고 '동록이 슬지 않는다.'  그 말은 어떤 죄악도 해치지 못하는 걸 가리켜 말하고 '도적이 구멍뚫고 도적질  하지 않는다.' 하는 그것은 최종적으로 전멸되는 그 전멸, 사망의 전멸도  하나님의 심판의 전멸도 해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래서, 이 현실에 '모든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믓 아들들이 자유하는  것을 기다린다.' '하나님의 뭇 아들들이 자유하는 것을 기다리다! 그 말은  하나님의 뭇 자녀들이 자유하는, 중생된 것이 하나님의 자녀요 미 중생자는 자녀  아닙니다. 우리가 중생된 데도 옛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새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는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것으로서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거기에 관련된 만물들이 다 살아나게 되고, 또 거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만 새사람은 버려 버리고 옛사람으로 살아서 현실을  옛사람으로 살아 통과하게 되면 거기에 관련된 모든 만물들은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되기 때문에 만물들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믓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현실에서 이 세 가지 건설을 하는데, 이 세 가지로서 천국을  건설하는데, 영생을 건설하는데, 하나님의 아들 양자의, 양자의 권세를  건설하는데, 양자라 말은, 예수님은 그 요소가 신적 요소이기 때문에 적자이요  우리는 예수님과 다른 것은 양자입니다. 그런데, 양자와 적자가 같은 점은  뭐인가? 상속권은 같고 그 근본 요소는 다릅니다. 요소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해서 하나님의 그 신성, 제이위 하나님이시지 만 우리는 순전히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같은 것은 뭐이냐? 예수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이  계명 지켜서 다 얻으신 거와 같이, 상속받으신 거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 될 수가 있다.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그 모든 것이 너희 것이 될  수가 있다. 너희들이 이기면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보좌에 앉은  거와 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가 얻은 이 보좌에 너희들도 같이 앉는다.' 그렇게  주님이 표시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옳은 것을 알아서 그른 것을, 틀린 것도 알 수도 있고, 또 틀린  것을 알아 가지고서 옳은 것을 아는 것은 참 힘듭니다. 자 여러분들, 옳은 것이  많습니까 틀린 것이 많습니까? 어떤 하나에 대해서, 고게 대해서 바른 지식이  많소, 삐뚤어진 지식이 많소? 바른 지식은 몇 개나 됩니까? 하나. 삐뚤어진  지식은 얼마나 되지요? 천만억도 넘습니다. 무수해. 그런데, 아는 방편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옳은 것 바로 아는 것 하나 알아 가지고 그 나머지기 삐뚤어지게  안 그런 거는, '그것도 알아야지?' '그거 알 필요가 없다.' '왜 알 필요가  없노?' '바로 아는 것 하나만 알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바로 아는 것 그 외의  것은 천이든지 만이든지 다 삐뚤어졌다.' 하면 다 아는 것입니다. 그거 틀렸소?  맞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도 이러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은 이래 삐뚤어지고 저래 삐뚤어진 것 그 모든 것아는데,  하나님의 지식인 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가 알고, 아는 대로 실행하고, 알고  아는 대로 실행하면 자신이 점점 성화되어서 하나님과 꼭 같은 자로 성화되어  가니까 성화되니 하나님이 어디 세상 공부를 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에 무엇을  학교를 들어가셨소 안 들어가셨소? 안들어 갔소. 당신이 완전자시기 때문에  당신의 지능은 완전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완전자화되어 가니까 거기에 대해서  모든 것이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하면 미혹 받기 쉽기 때문에, 지옥을 건설하는 것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하나? 이렇게 세 가 지입니까?  그러면, 오른편도 세 가지 왼편도 세 가지입니다. 천국을 건설하는 방편도 세  가지, 지옥을 만드는 방편도 세 가지. 그러면, 지옥 만드는 방편은 세 가지인데  하나는 무엇입니까? 네, 하나는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피조물에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조물에게 소망을 안 두는 것 아니오. 피조물에게  소망을 둡니다. 그러나. 소망을 두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에게  소망을 두라 할 때에 그것에게 소망을 둡니다. 하나님을 거슬려서 거기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옳습니까 틀렸습니까?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네, 옳습니다. 옳은데, 그러면 이 부모를 바라보라는 그것은 하나님이 부모를  바라보라고 부모를 통해서 나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부모를 바라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부모를 바라보는 것이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거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이 사람을 바라봐라 너는 저 사람을 바라봐라  이랬는데 자기가 다른 사람을 부모와 같이 그와 같이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시다가, 부모는 하나님이 바라보라 했으니까 내가  바라봅니다. 네, 바라보는 것 잘합니다. 그러나 가다가 하나님께서 또 바로  우리를 세우시고 시험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바라볼라면 부모를 바라보는 것을  버리야 되고 부모를 바라볼라면 하나님 바라보는 걸 내 놔야 되고. 둘 다 한목.

그전에는 바라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둘 다 같이 바라볼 수가 없고 하나님  바라보연 부모 바라보는 걸 내놔야 되겠고 부모 바라볼라면 하나님 바라보는 걸  내놔야 되겠고 요 둘이 꼭 서로 견제가 되어 가지고서 요렇게, 고 비교가 돼  가지고서 요거 취하면 조거 버려야 되 고 조거 취하면 요거 버려야 되는 요런  관계가 딱 외어지는 그런 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로 만들어 주십니다. 고럴  때에 이제까지 부모를 바라보는 것을 잘 했는데 (졸면 안돼. 열심쟁이자 와  졸아? 와 열심쟁이가 졸아 졸기를? 여기까지 온 열심쟁이.)  이제까지는 부모를 바라봤는데 고런 경우에 있을 때에는 어느 것을 버려야  됩니까? 하나님 버려? 어느 것을 버려야 됩니까? 자, 부모 바라보는 걸 버려야  되겠소 하나님 바라보는 걸 버리야 되겠소? 부모 바라보는 것 버리고 하나님  바라보는 것 취하면 천국 건설, 고럴 때에 다를 때는 이렇지만 할 수 없다  하고서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내놓고 부모 바라보는 것으로써 그렇게 바꾸면  고다음에 뭣 됩니까?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많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면서  '너는 이것을 바라봐라. 며칠까지 바라봐라. 명 살까지 바라봐라. 이 현실에서만  바라봐라.' 이렇게 당신이 바라보라고 명령할 때에 바라보지 안하면 하나님  거역입니까. 순종입니까? 거역입니다. 그때에 그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와 이 대답이 시원찮아? 하나님이 바라보게 하는 것을 바라보는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걸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인자 그걸 바라보는 것인지 알게 뭐고? 한번 시험해  봐라!' 하나님 바라볼라 하면 그것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그거 바라 볼라면  하나님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둘로 딱 나누어질 때에 그때에 하나님 바라보는  것으로 딱 하나로 집중하고서 하나님이 그것을 바라보지 말라 했기 때문에  이제까지 바라봤지만 바라보지 말라 했기 때문에 딱 바라보지 않는 것 그것이 그  천국 건설과 지옥 건설이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것을 바라봐라 할 때에 바라보라고 한정해 주는 시간이  있습니다. 한정하는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만 바라봐야 되지 그 시간 넘어 가서  바라보면 안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요 정도만 바라봐야 되지 그 이상 정도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은 그 이상 정도를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가 젖을 먹인다 아버지가 학비를 대 준다 밥을 먹여 준다  옷을 입혀 준다 이것을 소망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소망해야 됩니다. '아,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소망한다. 나 죽고 사는 것도 우리 아버지가 자유할  수 있다. 나 죽는 것 사는 것도 다 아버지에게 소망이 달렸다. 사는 것도  아버지에게 소망이 있고 내가 죽는 것도 아버지가 죽일 수 있다.' 그러면, 죽고  사는 것도 그 부모에게 소망을 가지는 그것은 잘 못입니까 바로 된 것입니까?  잘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한계를 바라보는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이  바라보게 하시되 바라보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점을 넘으면 안 됩니다.

시간적으로도 한계점을 넘으면 안 되고 공간적으로도 한계점을 넘으면 안  됩니다.

 학생이 자기가 방안에서 누워자면서 '내가 마루에 누워자니까, 마루에  누워자지만 어머니가 옆에 누웠으니까 내가 툭 떨어지기 전에 어머니가 날  간수해서 나를 잘 보호해 줄 것이다.' 그것은 이제 바라봐야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바라보지만 자기가 지금 바닷가에 뱃전에 있으면서 그만 배가  파선되어서 버썩 부서져 가지고서 바다에 떨어집니다. '아 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이것을 잘 보호해 줄 터이니까.' 어머니 아버지의 안보를  거기에서 바라봐야 됩니까 그 환경에서는 어머니 아버지의 보호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서 '파선이 됐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이  물에서 건져 주옵소서.' 하고서 당신을 바라봄으로 당신에게 우리가 부탁을 해야  됩니까 그때에 부모의 안보를 바라봐야 됩니까? 어떻습니까? 네, 그때는 또 부모  안 보는 안 바라봐야 돼.

 그러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을 우리가 소망하되 하나님을 소망함으로 그 분이  이렇게 저렇게 소망하라 하기 때문에 그분을 소망하는고로 그분에 따라서 소망을  가지는 것이고 그분이 범위와 정도와 양과 시간과 그 모든 그 종류에 따라서  하나님이 바라보게 하시는 그분을 바라봄으로 그걸 바라보지 하나님을 떠나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 모든 걸  바라보니까 '저것도 저 저것도 피조물 바라보면서 뭐 나만 피조물 바라보나?'  하는데 꼭 같이 피조물 바라봤는데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피조물을 바라봤는데 따지고 보니까  하나님 바라본 것이요, 피조물을 바라봤는데 따지고 보니까 하나님은 안  바라보고 피조물만 바라본 사람이 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는 멸망이요 하나는  구원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은 바라보지 말아라 그말은,  '피조물을 바라보면서 안 바라본다고'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은 피조물도  하나님이 바라보라 하셔서, 하나님이 이것 바라보라 하면 이것 바라보고 저것  바라보라 하면 저것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 시키는 대로  바라보는 것이지 그거 하나님 떠나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본다는 말이 옳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는 것.

 또 그 다음에 의지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거 의지하라 저거 의지하라 할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작대기 의지하라 하면 작대기  의지해야 되겠고, 하나님께서 네가 이 방을 의지하라 하면 방을 의지해야  되겠고, 하나님이 의지하라 하는 이거 의지하라 하면 이거 의지해야 되지 '아,  나는 이거 의지하지 안합니다. 하나님 직접 의지할랍니다.' 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피조물을 의지하라고 그것을,  이게 나 의지하는 것이니까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니까 의지하라고 하나님이  의지하게 해 주시는 피조물은 의지하지만 하나님 의지가 아닌 피조물은 의지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지가 아닌 피조물 단독 의지는 안합니다. 알아  듣겠습니까?  하나님 의지가 이거 저것을 의지하라 할 때에 의지하지 하나님 의지가 아닌.

하나님 의지의 손이 거기에 와 가지고서 물건을 거머쥐고 이거 의지해라 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걸 의지하는 것이지 하나님 떼 놓고 의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론으로 말하면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는 것. '한 분만 의지하는데 왜 너는 피조물 의지하나?' '아니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니까 내가 의지하는 그분이 이거 의지하라 하면 이거 의지하고 저거  의지 하라 하면 저거 의지하고, 며칠까지만 의지하라면 며칠까지 의지하고. 어느  정도까지만 의지하라 하면 어느 정도까지 의지하고, 어느 한계까지만 의지  하라하면 어느 한계까지 의지 하지, 하나님 그분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에 따라서 의지하는 것이지 내가 하나님 버리고 하나님 가지고 모지라니까  이거 의지한다 하나님하고 이거 둘을 의지한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의지를  나누어서 의지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한 분을 의지하는데 하나님이 의지하는  그것을 요런 방편 저런 방편으로 의지하라 할 때에 당신에 따라서 의지하라 하는  대로 내가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의지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떼 놓고 피조물을 의지하는 그것이 곧 사망을 마련하는 그  현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이러니까 복종이라 하는 것은 이거는 필연 생산입니다. 복종이라 하는 것은  필연 생산이오. 위의 두 가지, 뭐 뭐 있습니까? 소망, 또 의지. 소망 의지가  거기 있으면 거기 복종하게 되고 소망 의지가 여기 있으면 여기 복종하게 되고  이 둘을 따라서 복종은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종으로 마지막  결론이 지워지는 것입니다. 두 가지, 소망하고 의지하는 것이 복종에게까지 가야  결론이 되어지는 것이고 결성이 되어지는 것이지 두 가지 소망하고 의지한다고  해도 복종의 결말을 짓지 안하면 농사 지어서 결실하지 못하는 거와 같고  떨어지는 선 과실과 같이 그렇게 성숙을 하지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전 생활이 무엇인고 하니 지옥과 천국 건설하는  세상이다 하는 것을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또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전지전능, 주권자, 대주재자, 창조주, 모든 것의 주재자 이분과 나와 연결이  되어서 이분의 무한하고 충만한 것을 내가 상속받는 현실이다. 상속받는 현실  세상이다. 이 현실은 무한하신 것을 가지신 무한하신 분이 그 무한한 것을  나에게 아끼지 안하고 다 주실라고 하는데 내가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서 그  무한한 것을 다 거부해서 나는 영영히 물 한 방울도 가지지 못하는 거지가  되어지는 것이 세상이다, 알겠습니까?  자. 세상은 하나님 같은 뭣 되는 것이 세상입니까? 부자, 자 따라합시다. 부자!  하나님 같은 부자! 하나님 같은 부자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는 하나님 같은  부자 된다 말은 하나님이 부자 되신 그대로의 부자는 아니고 나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아 가지고서 다 부자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자존하시고 당신이 창조해 가지고 부자지만 나는 그분에게 양자가 되어 가지고서  상속받아 가지고서 부자 되는 것입니다. 부자 되는 세상. 또 세상은 또  뭐입니까? 자, 뭐입니까? 따라합시다. 거지 되는! 세상! 거지 되는 세상! 물 한  방울도 없는 거지 되는 세상! 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세상은 첫째  무엇을 만드는 세상이라요?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세상입니다. 또 둘째로는  세상은 뭐를 만드는 세상입니까? 부자와 거지 만드는 세상입니다.

 또 셋째로 세상은 하나님 같은 지능을 만드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같은 지능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지능을 자기 지능의 원천으로 만들어 가지고,  껍데기는, 겉으머리는 자기 지능이지만 이 지능에 나 오는 것은 원천은 하나님의  지능입니다. 하나님의 지능이 자기의 지능이 라는 지능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래 그리스도인에게 나오는 그 지능은 무슨 지능입니까? 하나님의 지능. 어떤  지능입니까? 전지의 지혜, 전능의 능력! 아멘!! 자 따라합시다. 아멘! 아멘!!  죽어도 좋다 아멘!! 살아도 좋다 아멘!! 죽음과 살림이 근방에 오지 못하는 승리  아멘!! 예. 이게 우리 기독자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자요. 이제 몇 가지  했습니까? 세 가지. 세 가지.

 이제는 넷째, 넷째는 뭐이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쾌락이, 무한하신 쾌락을  이루는 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쾌락을 내 쾌락만 드는 것이  세상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 그렇게 말씀했읍나다. 이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네, 성경 잘 압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쾌락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내 쾌락이 되어서 하나님의  쾌락과 같은 쾌락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쾌락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쾌락에 연결돼 가지고 그 쾌락이 내 쾌락이 되어서 내 쾌락으로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넷째로 건설하는 것입니까? 넷째 건설. 넷째 건설.

 또 이 하나님의 쾌락이 하나도 없는 지옥의 고통을 지옥의 고통을 지옥의 말할  수 없는 '그의 고난과 애통이 세세토록 올라간다.' 이랬습니다. '그의 고난과  애통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 그 말은 고난과 애통의 그 영향이 그렇게  세세토록 모든 그 음부에 충만하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옥의 고통을 마련하는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마련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면, 자 몇 가지 마련했소? 처음에 천국과 지옥 마련하는 세상. 둘째, (뭐라  하노.) 네, 그 부자와 가난을 마련하는 세상. 또 셋째는 뭐입니까? 웅? 옳지,  나는 몰라서, 지능과, 아주 하나님 같은 지능과, 하나도 아는게 없어. 바로  아는게 하나도 없어. 고렇츰 무식할 수가 없어. 그렇츰 어리석을 수가 없어.

전부가 다 옳은 것의 반대가 되는 꺼꾸로된 것, 반대만 가지는 그렇게, 하나님의  지능인데, 무지 무능 영영한 무지 무능을 마련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영영한  무지 무능을 마련하는 것이 세상이라. 또 이제 넷째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쾌락을 우리 쾌락으로 마련하는 것이 세상이요. 영영한 유황불 구렁텅이의  고통을 마련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

 또 하나만 더 합시다. 하나 뭐 남았을까? 하나 뭐 있을꼬? 거기 안 든 것 하나  말해 봐요. 거기 안 든 것. 그것 다 뭐 있는데 뭐 천국에는 의례히 영생하는  나라지. 천국은 영생하는 나라요. 천국은 영생 사망이 없는 나라요. 그 나라  얻었으면 거기 다 되었어. 응? 뭐? 크게 말해 봐.

 영광과 수치. 네. 그것이겠습니다. 영광과 수치. 영광은 뭐이 영광인고 하니.

제가 잘나 가지고 영광된 것 아닙니다. 제가 부자 돼 가지고 영광된 것  아닙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까 남에게 있는 것입니까?  영광은 남에게 있소. 영광은 남에게 있어.

 자, 이제 지식이 제일 많고 능력이 많고 소유가 많고 이런데 이것 가지고 전부  참자기 좋도록 자기 소원 성취대로 다 했습니다. 다 했으니까 그 사람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참 별 소리 다 하네. 오만 것 다  가지고 자기 소원 성취대로 싸 했는데 영광이 없어? 영광 없으면 뭐 있습니까?  뭐 있소? 욕, 욕. 자, 영광 반대는 욕이라. 욕. 영광 반대는 욕이오. 모든  존재들이 욕합니다. '아무것이 그 사람이 여기에서 부자라 하고 권세도 있고  그렇게 참 아주 구비해서 소원 성취를 다해 가지고 산다 하는데 그분이 어더  계십니까?' 이러니까 그 동네 사람들에게 물으니까 입이 비쭉 거리며 돼지 같은  놈의 새끼. 꼭 같은 놈이 찾아왔구만. 꼭 같은 놈이 찾아았어. 와 그 사람  나한테 뭐하려고 물어, 그 돼지 새끼를?' 자, 이랍니다.

 이제 또 한 사람 묻습니다. '아, 그 사람이 여기에서 그렇게 그 사람이 아주  어리석게 자기 있는 것을 다 그만 허비해서 그 사람이 그렇게 지금 곤고하게  지낸다고 하는데 그분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니까, '여보시오. 왜 그분이  곤고하게 지내요? 그분으로 인해서 우리 동리가 살았소. 우리 동리에 그분의  혜택을 받지 안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이 아니면 우리가 못 살아요.

그분은 우리의 신 같고 우리의 왕 같고 우리의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고 그분은  우리의 애모 중에 애모요 우리의 은인 중에 은인입니다.' 이라면서 그분을  찾는다 하니까 그만 또 '아이구' 절을 넙죽하면서 '아. 그분을 어찌  찾아오셨습니까?' '네, 그분과 내가 친구입니다.' 아 이러니까 이분이 고만 절을  하며 '그 어른과 친구 되십니까? 예 내가 모시지요. 그런데 오시기에 많이  피곤했을 터인데 제가 업고 가지요.' 업을라고 달라들어. '아이구 내가  걸어가지요.' '아이구, 어쩌 걸어갈 수 있습니까? 여기까지  몰라서 우리가  오시도록, 걸어 오시도록 했는데 업고 가야 되지요. 그리 안 하면 뭐 타고 갈  것이라도. 가마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냥 갈 수가 있습니까?' 고만 어떻게  이렇게 존귀하게 하는지. 그러니까 그 사람 영광, 찾아간 사람 그 사람을 그렇게  대우하는 것 보니까 그 동네 있는 그 사람이 영광이 있소 없소? 도야지 같은  놈이라고 욕하는 사람 되는게 좋겠소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찾아만 와도 '그  분을 어찌 찾습니까?' 하면서 마구 영광스럽게 대우하는 그게 좋겠습니까?  이러니까, 자 몇째가 이제 영광이지요. 다섯째, 영광. 그 영광 그게 남아  있겠습니다. 영광 그게 남아 있겠습니다. 영광.

 이제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교회의 머리시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 교회는 만물 안에 있어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니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만물들에게  하실 일을 이 교회가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서 중보자로 만물들에게 하니까  만물이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을 교회에게 감사하요 안하요? 감사합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현실에서 만물의 중보자, 만물의 시은자 만물의  감사의 대상, 만물에게 영광을 받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우리 '너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몇 가지로 이 5가지를 마련합니까? 세 가지로  5가지를 마련합니다. 세 가지로 5가지 마련하는 것, 5가지 마련하는 것 우리가  그 크고 작은 모든 사람이 다 감사를 하고 모든 사람이 있다가서 '하나님이여,  아무것이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무것이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이구, 하나님이 아무것이 그 사람 뭐 하려고 만들었는고 참 그런 사람을  만든 것은 하나님에게 원망스럽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요, '아무것이  만들어 주신 것을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알지도 못 하는  사람까지 영광을 돌리게 그렇게 하는 것을, 그렇게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런지 구체적인 방편 하나도 모릅니다. 구체적인 방편을  우리가 하나도 모르요. 하나도 몰라. 하나도 모르는데, 이 5가지.

 자, 처음에 뭣 되는 것? 자, 좋은 것만 말합시다. 천국 마련하는 것. 또 둘째.

부자 마련하는 것. 또 셋째, 기능 만드는 것. 또 넷째. 쾌락 만드는 것. 또  다섯째. 영광 만들어 내는 것. 이렇게 많은 것, 영광이라 하면 굉장히 광범위  한데, 영광이라면 피조물이 있는 데까지 다 있는 것이니까 그 영광이면 참  굉장히 범위가 넓은데 그 영광을 우리가 마련할라 할 때에 그 방편을, 방편을 백  가지 하면 좋겠소 열 가지 하면 좋겠소? 그 방편을 백 가지 가지고 마련하도록  했으면 좋겠소 열 가지 가지고 마련하도록 했으면 좋겠소? 열 가지 가지고  마련하게 했으면 좋지요. 열 가지 가지고서 마련하는 것보다 세 가지 가지고  마련하는게 좋소 열 가지로 마련하는게 좋소? 세 가지로.

 그러면 세 가지보다 더 축소해서 조브라 트릴 수는 없을까요? 조브라 트릴 수는  없을까요? 조브라트릴 수가 있습니다. 조브라트릴 수가 있습니다. 조브라트릴  수가 있습니다. 조브라트리는 거는 뭐이냐?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여.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면 돼. 하나님이 웃으라면 웃고 성내라면 성내고  앉으라면 앉고 서하면 서고 읽으라면 읽고 자라면 자고,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을 딿는 요거 하나면  되는데 고렇게 하면 너무 사람들이 시험에 들기 쉽고 착각해서 실수하기 쉽기  때문에 그 방편을 세 가지로 말한 것입니다. 세 가지 뭐? 하나, 하나 뭐?  (바라보는 것.) 또 하나, (의 지하는 것.) 또 하나, (복종하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이 수많은 현실이 있으나 이 현실에서는 이 다섯 가지가 좌우  되는데, 이 5가지가 좌우되는 이것을 옳은 것 좋은 것 5가지를 마련하려고 하는  데에는 몇 가지 하면 됩니까? 세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네.

세 가지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해서  이렇게 간단 명료한 간단한 방편을 가지고서 역사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가지고서 이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인데, 이 세 가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것 자 이제까지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뭐 바라 봤습니까? 피조물, 예수 믿기 전에는 뭐 의지했습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무엇을 따라서 우리가 움직였습니까'? 이런데 성경 말씀에 이  바라보는 것 의지하는 것 복종하는 것이 세 가지를 옮기는 것이 어느 정도  어렵다고 말했습니까? 자, 한목 저 뒤에 대답해 봅시다. 어느 정도 어렵다고  말했습니까? 또 한번, 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했습니다. 누가 말했습니까? 누가 말했습니까? 네,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데 우리는 이렇게 어려움을 통해야.

이 세 가지가 바라보던 것을 완전히 잘못된 바라보는 것을 바로 고쳐서 바로  바라보고, 잘못된 의지를 고쳐서 바로 의지하고, 잘못된 그 피동을 고쳐서  올바른 피동으로 고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오늘 우리들이 이것을 어렵게  생각합니까 쉽게 생각합니까? 이것을 돈벌이보다 어렵게 생각합니까 쉽게  생각합니까? 이것을 세상 공부하는 것보다 어렵게 생각했습니까 쉽게  취급했습니까? 이러니까 다 쭉덩이오. 다 쭉덩이오. 다 거짓부리요. 다  외식이오. 전부 다 주관 종교요. 제대로 믿었지, 제대로 믿었지, 조작배기  가짜배기 도를 믿었지 인간의 말로 도를 삼은 것처럼 자기 주관을 도를 삼아  가지고서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귀라는 놈이 요렇게 꼬우고 꼬와  가지고서 죽는 고 시간까지 딱 가게 했다가 마지막 죽을 때가 되니까 탁 이제  네까짓 놈이야 죽기가 몇 시간밖에 안 남았으니까 마음대로 해라.' 하니까 그때  죽을 때에 '아이고' 원통해서 후회하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어. 원통하고 후회가  되어서 울지 않는 사람이 없어. 원통하고 후회 하지만 입이 힘이 없어 말도  못하지, 손이 힘이 없어 글도 쓰지 못하지 다리가 힘이 없어 활동도 못하지 이래  가지고 죽는 걸 보고서 마귀라는 놈은 손뼉칩니다. '야! 이놈 아 후회할 것 뭐  하려고 했노? 야! 이놈아 후회할 걸 뭐 하려고 했노? 잘 뒤지거라 잘 뒤지거라'  이라면서 마귀라는 놈이 조롱을 합니다. 마귀라는 놈이 조롱을 하요.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그래도 아주 지능이 겸전한 사람 의지가 겸전한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떻게 얼마나  없습니까? 얼마나 없습니까? 얼마나 없습니까? 와 소리가 작아져? 뭐 가치가  적습니까? 돈벌이 하는 것은 하루 종일 외치라고 해도 외칠 터인데 왜 이거 뭐  가치가 적소? 그래, 얼마나 어렵습니까? 저 뒤에는 죽었는가 소리 없어. 그래  가지고 안돼. 속에 목통이 터질 만침 절대! 어렵습니다! 이렇게 절대 어려운  것을 내가 쉽게 봤으니 이놈이 얼마나 거짓부리며, 얼마나 인본주의며, 얼마나  주관주의며, 얼마나 망하고 또 망하고 죽고 또 죽고 죽어 뿌리 없는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  같이. 참 첩첩으로 죽어 있는 내다.' 이것을 깨닫고 탄식하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이 어려움을 깨닫는 것 만치 자기는 겸손해질 것이요 이 바꾸는 것이  필요한 것 만치 자기는 참 떨리게 될 것이오.

 이러므로, 이 바꾸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바꾸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만  하나님 한 분밖에는 이것을 할 자가 없으시니 그 사람은 뭣하는 사람됩니까? 저  뒤에 뭣하는 사람됩니까? 뭣 하는 사람됩니까? 와 이 중간에는 다 죽었어.

무엇보다도 이렇게 5가지, 아주 멸망 받는 것 5가지를 마련하든지, 또 이렇게 참  보배로운 5가지를 마련하든지 하는 것이 이 지상 현실에서, 되어지는 것인데,  멸망을 마련하는 것은 바꾸지 안하고 인생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멸망을  마련하는 것이고, 영광의 구원을 마련하는 것은 이것을 바꾸는 것이 구원을  마련하는 것이니 이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천하를 차지하는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 바꾸는 것을 마련하는 것은 이렇게 보배이기 때문에 꼭 바꾸기는  바꾸어야 되는데 이 바꾸는 것이 인간에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얼마나  불가능합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누구만이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니 우리에게는 하는 길이 하나 있으니까 그 길은 무엇입니까? 따라  합시다 기도! 기도!! 기도!! 기도!! 기도t! 기도!! 기도!! 기도 외에는 되는  길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을 걸어서 기도하고, 자기의 모든 몸을 던져 기도하고. 밥을  굶어 기도하고 결사적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의 전능을 끌어오는 약속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 '구하는 자마다 내가 줄 것이라. 네가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다 시행을  하겠다.' 하는 이 계약을 거머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계약을 거머쥐고  기도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거부하지 못합니다. 계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청종하십시오. 주여 구합니다! 주십시오. 계약입니다! 계약입니다!' 자꾸  말하십시요!  '주님이여 계약입니다! 이것은 내가 주님에게, 이 바꾸는 것은 나는 할 수  없는데, 당신이 바꾸는 것을 홀로 하실 수 있는데 내가 기도하면 주시마고  하시지 안했습니까? 계약을 의지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이것을 바꾸어  주옵소서. 계약입니다! 바꾸어 주옵소서! 계약입니다. 바꾸어 주시옵소서!  계약입니다! 바꾸어 주시옵소서! 계약입니다! 당신 이 선포한 언약입니다!  바꾸어 주시옵소서!' 하고서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합니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앞으로만 달릴 것입니다!  바꾸어야 됩니다! 바꾸어야 할 필요성! 바꾸어야 할 필요성! 바꾸면 5가지가  됩니다! 계약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계약을 의지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계약 이행에 불변의 여호와십니다! 여호와가 계약했습니다! 여호와의  계약입니다! 여호와의 계약!! 하나님은 계약 이행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계약을 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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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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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4 소금비유/ 마태복음 5장 13절/ 800210주전 선지자 2015.11.08
2893 소금노릇을 위하여/ 마태복음 18장 5절-10절/ 851110주새 선지자 2015.11.08
2892 소금노릇을 위하여/ 마태복음5장 13절/ 851201 남권찰회 선지자 2015.11.08
2891 소금-세 가지 뭉텅이/ 마태복음 5장 13절/ 841103토새 선지자 2015.11.08
2890 소금-세 가지 존귀한 가치/ 마태복음 5장 13절/ 841107수야 선지자 2015.11.08
2889 소금의 맛 세 가지/ 마태복음 5장 13절/ 860105 남권찰회 선지자 2015.11.08
2888 소금의 존영 세 가지/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6수새 선지자 2015.11.08
» 소망,의지,복종 바끌 필요-기도/ 마가복음 10장23절-31절/ 840508화전집회 선지자 2015.11.15
2886 소망도 방편도 바꾸라/ 누가복음 5장1절11절/ 860831주후 선지자 20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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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4 소망을 주의 재림에 둔 결과는 거룩과 경건/ 마태복음 24장 35절-44절/ 870624수야 선지자 2015.11.15
2883 소망을 하늘에 두면 눈이 밝아진다/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820108금야 선지자 2015.11.15
2882 소망의 문/ 호세아 2장 14절-20절/ 840826주후 선지자 2015.11.22
2881 소망의 문/ 호세아 2장 15절/ 840829수새 선지자 2015.11.22
2880 소속과 능동을 바꾸라/ 창세기 12장 1절-9절/ 810123금야 선지자 2015.11.22
2879 소원/ 예레미야 5장 1절/ 791010수새 선지자 2015.11.22
2878 소원, 지식, 행동/ 고린도전서 4장 1절-5절/ 800512월새 선지자 2015.11.22
2877 소원성취법/ 요한복음 15장 7절/ 870802주후 선지자 201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