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20:15
소금-세 가지 뭉텅이
1984. 11. 3. 새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 말씀이 내일 주일 유치반 중간반 공과입니다. 반사 선생님들이 그저 껍데기만 그렇게 들어 가지고 자기가 점점 강퍅해지는 그런 사람 되지 말고 실지로 자기가 요대로 살아야 합니다. 요대로 살면 사람의 말로 발표하는 것은 요렇지마는 발표할 수 없는 참 무한함을, 온전함을, 자기에게 확신이 되는 확고함을 자기가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실천의 도이지 실행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요거 소금으로 비유한 것인데 아주, 소금으로 하나님께서 비유하신 것은 우리 기독자의 생활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비유해서 우리가 잘 깨달을 수 있도록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기독자가 맛을 잃지 아니한, 맛을 잃지 아니한 소금이 되면 어찌 되나. 맛을 잃은 소금이 되면 어찌 되나? 여기에 맛 잃은 소금을 말씀했는데, 맛 잃은 소금을 말씀한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짝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맛 잃은 소금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요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은 나타내 주신 요 도리에 서고 반대인 맛을 가진 소금은 어찌되느냐 하는 그것까지를 생각해서, 맛 잃은 소금에 대한 것은 껍데기이고 맛을 가진 소금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이것은 속에 진짜 알맹이인데, 이 알맹이를 가져야 외식자가 되지 안하지 이 알맹이를 가지지 안하면 외식자가 됩니다. 외식자. 외식자는 뭐 종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만침 그렇게 많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듣고 읽고해서 잘 안다 할지라도 그 속에 권능이 없으면 외식입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 하나님의 도리를 잘 기억하고 잘 말한 다 할지라도 그 속에 알맹이 실행이 없으면 또 외식이 됩니다. 또 사람이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람에게 대해서 조심을 해서 아주 그 사람이 아무런 흠점이 없는 그런 참 깨끗한 심덕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그 관계가 바로 되지 안했으면 전부 다 외식입니다.
여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찌 되느냐? '쓸데없어' 쓸데없는 자가 된다.
쓸데없어 밖에 버린다 하는 이 쓸데없다는 것은 누구에게 대해서 쓸 데가 없는가? 하나님이 사용할 그 사용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할 그 사용 가치가 없고, 또 하나님이 사용할 사용 가치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은 다른데다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창조해 놓으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사용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피조물들에게 다 필요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김치 담을 그 주인에게 필요 없는 소금이면 김장에 필요 없다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왜? 주인이 그 소금을 김장에다가 사용할 터이니까 아주 주인에게 요긴하다 그 말은 김장 소금이 김장에게 요긴하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쓸데없어' 하나님에게 쓸데없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거는 아무 데도 쓸데가 없습니다. 다른데 또 말씀한 걸 보면 '거름에도 쓸 데가 없다' 거름은 곡식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 거름인데, 불택자들은 택자들을.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쓰여지는 사람들인데 이는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쓰일 것이 없고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말입니다.
'쓸데없어' 아무데도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 밖에 버린다, 그러면, 밖에 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취급 하시는 그 취급 밖에, 하나님에게 쓸 데가 없으니까 하나님의 은혜 밖에 하나님의 보호 밖에, 하나님이 귀하게 간직하시는 그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혜와 권능과 하나님의 그 쾌락, 모든 하나님의 좋은 것, 하나님 밖에. 하나님의 은혜 밖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 밖에, 하나님의 보호 밖에 이렇게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밟힘이 된다, 사람들에게 밟힘이 된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아주 멸시, 천대 그런 천한 자가 된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로 그러면 소금이 맛을 잃지 안하고 소금이 그 맛을 잘 지니고 있다고 하면, 참 맛있는 소금, 좋은 소금이 됐다고 하면 어찌되느냐? 그것은 정반대로, '쓸데없어' '아무데도 쓸데없어' 그 반대로 모든 것에게 요긴하게 쓰여지는 게 되어, 그러면 하나님에게도 참 귀중한 등용 할 사람이 되고, 하나님에게도 귀중히 등용되고 모든 사람에게도 귀중히 등용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귀중히 둥용이 된다. 그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안 될 그렇게 요긴한 것이 된다. 아주 쓸모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밖에 버리운 것 정반대 안으로 영접함을 받는다. '밖에' 안으로. 버림받는 것 반대로 영접 받는 것.
그러면, 하나님에게 귀중히 영접함을 받아서 하나님이 귀중히 여기기는 하나님의 대우를 받게 되고 또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귀중히 여기는 대우를 받게 된다. '밖에 버리워' 안에다가 안으로 영접하여, 그러면, 안, 하나님 안, 모든 피조물의 환영 안, 권능 안, 그 모든 행복과 평강과 쾌락 안, 마치 말하면 노아의 방주 밖에서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밖에 버리워' 안으로 영접하여.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이랬는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다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된다. 요것을 학생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줘야 될 것입니다.
사람은 불택자는 택자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취급도 다르고 그의 종류도 다르고 생의 법칙도 다릅니다. 마치 다르기를. 비유컨댄 천한 파리라도 파리가 물속에 못삽니다. 구더기가 뭐 똥물 속에 살든지 썩은 물속에 살든지 구더기가 물속에서 자랐습니다. 물속에서 자랐지마는 일단 이것이 부화가 돼 가지고 파리가 되면 물속에 들어가면 다 빠져 죽습니다. 물속에선 못 삽니다. 물속에서 자란 것이지마는 물속에 못 삽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중생시켜 주심을 입기 전에는, 중생 입기 전에는 불택자와 꼭 같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았지마는 중생 후에는 이 세상에서 살면 죽습니다. 세상에서 못 삽니다. 우리는 구더기가 부화된 거와 같이 우리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서 되어 있던 우리들인데 우리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불택자와 같은 그런 생활 법칙을 하면 죽습니다. 즉시.
그런고로, 택자들과 불택자들은 아주 다릅니다. 불택자들이 저래 가지고 잘되니까 우리도 저라면 잘될 거 아닌가, 안 믿는 사람들이 저렇게 해서 부자 되니까 우리도 저라면 부자 될 거 아닌가, 안 믿는 사람이 저렇게 처세술을 쓰니까 잘되니 우리도 이 처세술 쓰면 잘될 거 아닌가 안 믿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의 여론 딿고 모든 사람들과 이렇게 화합해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따라서 이렇게 사니까 그 사람이 출세도 빨리 하고 모든 협조자들도 많고 이러니까 사업의 성공도 하고 모든 면에 성공하니 우리도 이 하나님 섬기는 거 좋지마는 하나님 섬길라 하면 인간에게 서로 이렇게 버림을 받아야 되겠고 인간에게 서로 화합할라 하면 하나님에게 버림 받아야 되니 아무 아무 것이 보니까 인간에게 어짜든지 협조를 받고 인간이 다 옹호를 하고 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이래야 되지 하나님과 진리와 또 하나님의 대속과 공로에 맞춰서 살라고 하니까 이 세상과 일치될 때도 있지마는 너무 세상과 거리가 멀어서 마찰될 때 많다.
이러니까, 그렇게 안 하고 사는 사람 잘되니 나도 너무 이렇게 신앙에 고집피워 가지고서 한 자욱도 양보 없이 요 주님의 대속의 공로, 이 세 가지 공로에 맞도록 또 성경 말씀에 맞도록, 성신의 감화에 맞도록 이렇게 산다는 건 너무 지나친 생활이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 그 걸음 걷다가 사람들이 다 실패를 합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그렇게 살아도 잘되는 사람 있는 그것은, 우리는 모릅니다. 그 사람이 택자가 아닌데 마귀란 놈이 제 군대를 교회에다가 투입을 시켜서 교회에다가 보내 가지고, 그것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상관하지 안하기 때문에 교회 들어와도 그거는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불러 온게 아니고 제가 들어온 것입니다. 와 가지고 그 사람 아주 예수 믿기를 인본주의로 믿고, 세상주의로 믿고, 모든 물질주의로 믿고. 모든 정치주의로 믿고, 도덕주의로 믿고 이렇게 믿어도 그 사람이 교계 안에서 다 높이 드러나고 참 교계 안에서 출세를 하고 유명해지고 다 권위 있게 되어 지니 이렇게 이거 믿는다는 것은, 그저 이 세 가지를 버리지 안하고 이 세 가지로 산다는 것은 이것은 너무 조브라운 도요 이건 고집이요 이건 뭐인가 미개이고 뭐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그만 유혹을 받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가지로 살지 안하고 세 가지를 버리고 살아도 되는 그것을 보고 하나, 3, 사람은 마귀가 보낸 불택자요 그 사람은 택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더기로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파리로 부화되지 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런 유혹을 받지 말고 뚜렷이, 우리 구원은 어데서부터 시작됐는고 하니,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 그때 우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정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자를 만들겠다' 하는 그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실 때에. 예정하실 때에, 예정이 될 때에 목적 안에 예정됐습니다. 목적 안에 예정됐어.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예정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어데서 시작됐는고 하니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우리 구원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시작됐는데 그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안했습니다. 존재하지 안했으나, 하나님 혼자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인데. 우리를 하나님이 예정하실 때에, 예정하실 때에 이 목적 안에 있는 자로 우리가 예정을 받아서 예정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예정 구원 얻은 그것이 몇째 구원인고 하니 둘째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구원을 우리가 얻었고, 목적 구원이 없으면 예정 구원이 안 됩니다. 그거는 목적 구원은 존재하는게 아닌데 당신 혼자 목적하신 그것을 예정하실 때에 '이런 것을' 그렇게 예정이 된 것입니다. 예정 구원을 얻었고, 그 후에 세째로 우리가 창조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우리는 목적 안에 있는 자로 예정대로 창조됐습니다. 그러면, 창조 구원을 우리가 얻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섭리해서, 예수 믿기 전에 보고 듣고 접한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보면 그것이 하나도 헛된게 없습니다. 그게 전부 나는 예수님을 안지 얼마 안 됐지마는 우리가 날 때부터 벌써, 배 안에 날 때부터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대로의 그 달성이 되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첫 열매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의 목적하신 첫 결과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섭리 구원을 얻었고, 섭리 구원을 얻어 나오다가 그 다음에는 중생 구원을 우리가 얻었습니다. 벌써 위에서 목적 구원, 예정 구원, 창조 구원, 또 섭리 구원, 섭리 구원, 섭리 구원에서 하나님의 독생자가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는데 대속의 공로가 섭리 중에 한 토막입니다. 섭리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가 대속 구원을 얻었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중생 구원 얻었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지금 성화 구원을 얻어 가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세상을 떠나면은 이 몸을 시공을 초월한 몸으로서 변화함을 받는 그것이 우리의 부활입니다. 부활돼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을 통과하는 심판 통과의 구원을 얻고 난 다음에는 영원 무궁토록 무궁세계에 거주하는 그 구원을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불택자와 아주 다르다. '거름에도 쓸데없다' 불택자는 택자를 위한 거름이지마는 택자가 이거 맛 잃은 것은 택자의 거름도 되지도 못한다, 이거는 아무 데도 쓰지 못한다. 그러니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그러나, 소금이 자기 맛을 지니고 소금의 본질 본성대로 그대로 있게 되면 그것은 참 창조주와 피조물에게 가장 보배로운 것이 되어지고, 아주 쓸모 있는게 되어지고. 창조주와 피조물에게 환영받는, 영접을 받는 그런 것이 되어지고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이렇게 밟힐게 아니라 아주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된다. 그래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소금이 맛을 잃고 또 맛을 가지고 있는 여기에서 그 결과가 아주 달라지는 것, 결과가 뭘로? 쓸데없는데 아주 요긴하게 쓸데 있는 것 또 밖에 버리우는데 아주 안으로 영접함을 받는 것, 밟히는데 정반대로 존귀함을 받는 것. 그러면, 세 가지 아주 존영한 그런 결과가 맺게 된다. 어떻게 하면? 소금이 맛을 잃지 안하면. 소금은 다른 것이 아무 섞이지 안했습니다. 참 주님이 소금으로 비유해서 우리가 알기 쉽게 됐습니다. 소금은 무엇이냐? 소금은 꼭 간 뭉텅이오. 간 짜운 것 간 뭉텅이라. 뭐 딴거 하나도 없습니다. 간 외에는 하나도 없어. 간이 뭉쳐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소금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땀을 흘리고 일을 하다 보면 여기 무엇이 허여이 맺힙니다. 그게 소금이라. 그 소금 보면 내나 짜다 그 말이오. 소금 그거 내나 소금 간 뭉텅이기 때문에 간 빠져 나가면 아무것도 없어. 간이 녹아지면 아무것도 없어. 간 뭉텅이라 다른 거 뮈 잡것이 섞이지 안하고 순전허 간 하나만으로 뭉쳐 있는 것이 소금이라. 간 하나만으로 뭉쳐 있는게 소금이라.
그러면, 여기 간으로 비유한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경 말씀과 영감 이 세 가지로 뭉쳐 있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의 뭉텅이라. 기독자는 이 세 가지 뭉텅이가 돼야 됩니다. 주님의 대속의 뭉텅이가 돼야 된다 말은 사죄 받은 사죄 뭉텅이, 죄 없는 뭉텅이가 돼야 되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뭉텅이가 돼야 되고. 또 하나님의 것이 되어서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되는, 하나님이 내 왕이 되고 하나님은 주인이 되고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된 것인데. 하나님과 연결된 것, 하나님은 내 머리가 되고 나는 그의 몸이 되어서 하나님과 연결된 뭉텅이 이 세 가지 뭉텅이가 되어 있는데 이 세 가지 뭉텅이로 되어 있는 그것은 짠 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간은 가지고 있지마는 그것이 녹아지지 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꼭 이 소금은 간이 녹아진 것만침 짜지 녹아지지 안하고 짜워지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녹아진 것만침 짭니다. 만일 소금 뭉텅이는 소금 뭉텅이인데 하나도 녹아지지 안한다면 우리 혀로 암만 핥아 봤자 짜운게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 녹아지면 녹아진 것만침 짜워집니다. 녹아진 것만침 짜워지는 데, 소금이 가지고 있는 간 뭉텅이 되어 있는 그것이 간이 다 나오면 벌써 그 형체는 없어졌습니다. 간 뭉텅이 형체이기 때문에 간이 없어졌으면 형체는 없어지고 형체가 없어지면 간은 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녹아지는 것인데,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빛이라 그 말은 김장의 소금이라 그 말 한 가지입니다. 이거는 김장의 소금이라. 김장의 소금이라 김장할 소금이라. 이것은 간장의 소금이라 이건 간장 담을 소금이라, 간장의 소금이라, 간장을 위해서 있는 소금이라, 김장을 위해서 있는 소금이라, 김장에 쓸 소금이라 그 말입니다. 세상의 소금이란 말은 세상에 쓰여질, 세상에 쓰여질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김장 소금이 그것이 녹아지지 안하면 그 김장 다 버리고 못 씁니다. 이거 사람이 그걸 모르고 거기다가 소금인 줄 알고 녹는 줄 알고 그만 덜덜 섞어 이래 놨는데 그거는 간이 하나도 없는 소금이라. 간이 하나도 나오지 안해. 간이 나오지 안하면 그거는 녹지 안해. 녹지 안하니까 간이 안 나온다 말이오. 간이 안 나오면 그 김장 다 썩어서 버리지 않습니까? 그게 나오면 간이 나오면 간 나온 그것이 소금은 없어졌는데, 그러면 소금이 없어졌느냐? 없어지지 안했다 그 말이오. 만일 김장 한 도가지에 다 소금을 넣었으면 소금은 하나도 없어지지 안했어. 그걸 김장에 있는 간을 다 잡아 뽑으면 간을 잡아 뽑으면 내나 처음에 있는 소금 중량만치 그 소금 뭉텅이가 되고 맙니다. 소금이 뭉쳐 있던 것이 이래 흩어져서 다른데 가 가지고서 이렇게 스며들어서 그 모든 것을, 그 모든 것에 소금의 이 짠맛이 다 들어가 가지고 그걸 썩지 못하게 하고 또 그거 맛있게 한 것 그게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는 간 뭉텅이가 자기에게 관련된 이 세상을 향해서 이 세 가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로 그들에게 전달되어서 그들이 이 세 가지화 되기 위해서, 그들이 소금 간화 되어서, 간화 되고 마니까 오래 둬도 그 김장이 썩지도 안하지 또 김장이 아주 맛이 있지 하는 거 모양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세 가지, 주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를 자기가 다른 이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로 희생해, 이 세 가지로 대속으로 자기가 희생하고.
영감으로 희생하고, 진리로 희생해야 되지 암만 희생해 봤자 달리 희생하는 거는 소용이 없다 말이오. 간으로 희생해야 되지.
이렇게 희생하니까 그것이 본인에게는 그것이 없어지고 그거 희생하니까 소유도 다 절단나 버렸고 몸도 절단났고 생명도 끝났고 끝났지마는 그 사람이 가진 이 세 가지는 썩는게 아닙니다. 대속도 썩는게 아니고. 영감도 썩는게 아니고, 진리도 썩는게 아니고 이거는 다 완전이며 영원이며 불변이며 이것은 다 전지전능의 완전입니다. 완전 불변 영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어데 가 있느냐? 나 한 사람 가지고 있던 것이 그것이 내가 녹아짐으로 전하고 보니까 그것이 백 명에게도 가 있고 천 명에도 가 있고 만 명에도 가 있고 다 가 있습니다. 얼마가 가 있든지, 억만 명이 가 있든지 얼마가 가 있든지 간 데마다 그것이 그 속에 뭘로 있느냐? 그 속에 대속으로 그 속에 스며 있고, 영감으로 스며 있고 진리로 그 속에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면, 그속에 들어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뭣 하느냐? 두 가지 한다 말이오.
뭐? 하나는 방부. 썩지 안하게 하는 것, 모든 사망하지 않게 하는 것 하고 하나는 또 맛있게 하는 것, 이제 비로소 거기에서 인간 가치가 회복되고 인간의 지위가 회복되고 인간 맛이 회복되고 인간의 존귀가 회복 되고 거기에서 비로소 인간 가치, 인간 맛, 인간 지위, 인간 존귀, 인간이 가진 모든 권세, 행복 그것이 인제 회복되어서 참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지고 하나님 다음으로 천군 천사를 통치할 수 있는, 세상을 완전히 통치할 수 있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자기 것으로 판리하고 치리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얼마든지 충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인간 가치가 완전히 회복된다 그거요.
이것이 소금 비유인데, 소금이 이 세 가지가 없어도 맛 잃은 소금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성경 말씀대로 제가 암만 행한다 해도 소용이 없어. 성경 말씀 행하는 그것도 삼분지 일이라 말이오. 성경 말씀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데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거기에 성령이 감동시켜서 성령이 찬성을 해 줘야 돼. 성령이 감동시켜서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데 진리로 행하는 것보다 영감으로, 진리로 행하는 것이 영감으로 행한 것이 됐고 진리와 영감대로 행한대도 또 소용 없어. 진리와 영감으로 행해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행해졌어야 돼.
이러기 때문에, 그 논리 순서로 말하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것이 되어져야, 이 세 가지 대속의 것이 되어지면은 이제 성령이 와 가지고서 같이 하고 또 대속과 성령이 같이 되면 진리가 또 함께 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뭐하러 오셨느냐? 성령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알리고 또 접촉하고 이래 가지고서 대속의 것이 되게, 대속의 것이 되고 대속의 종이 되고 대속의 지체가 되고, 대속의 성전이 되고, 대속의 몸이 되고 대속의 신부가 되고, 대속의 제사장이 되고 대속의 선지가 되고 대속의 왕이 되고 이렇게 대속의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누가 그라는데? 성령이 와서 그랍니다.
그러면, 성령이 와서 혼자 그라는가? 아니오. 진리하고 같이 그랍니다. 성령과 진리 이 둘은 예수님의 대속을 돕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게 뭐이냐? 예수님의 대속이 필요한데 대속으로 인해서 성령과 진리가 왔고. 또 온 성령과 진리는 이 대속을 우리에게 베풀어서 이 대속의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성령과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서 온 영감과 진리요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영감과 진리는 못 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왔고 온 영감과 진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확고하게 확실하게 우리에게 밀접하게 해서 우리가 대속화되도록, 사죄화되고 칭의화되고 하나님과 연결화되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성령과 진리가 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살아나기를 이 셋으로 살아났습니다. 첫째 뭘로 살아 났느냐? 예수님의 대속과 성경말씀과 영감 이 셋으로 우리가 중생된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은 이 세 가지로 중생됐는데 이것이 차차 자라서 이 세 가지 뭉텅이가 됐어.
이 세 가지, 그 사람은 쿡 쥐어 박아도 이 세 가 지가 나오고, 그 사람은 어데 가도 이 세 가지가 나오고 이 세 가지 외에 변질 없어. 이 세 가지로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는 이 세 가지가, 이 세 가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을, 속에다 이 세 가지가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자기는 녹았는데. 이 세 가지는 희생 외에는 전달이 안되는 것인데 희생으로 전달 됐으니까 사람 보기에는 그 사람이 없어진 거 같았지마는 그 사람이 이 세 가지 뭉텅인데 이 세 가지 뭉텅이는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있다 말이오.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있어.
이것이 므나 비유에서, 므나를 남긴 사람은 한 고을을 차지하고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차지했다고 말한 것 같이, 그 사람이 이 세 가지 소금 뭉텅이, 이 대속과 영감과 진리 뭉텅이가 돼 가지고서 그게, 뭉텅이가 컸는지 작었는지 모르는 것은 그것이 녹아 가지고, 녹아 가지고 몇 십 명에게 녹아 들어간 사람이 있고 몇 사람에게 녹아 들어간 사람이 있고, 몇 천 명에게 녹아 들어 간 사람도 있고, 몇 만 명에게 녹아 들어간 사람 있고 녹아 들어갔으니까 없는 것 같지마는 그것이 다 그 속에 녹아 들어가 가지고 다 있다 말이오. 다 있으니까 이다음에 부활해 가지고서 하늘나라에 갔을 때에 이 세 가지로 녹아진 그 간이, 자기가 가진 대속과 영감과 진리가 어데 까지 뻗쳐 나갔느냐 그것이 영원무궁토록 자기의 무대요 자기의 차지한 고을이요 자기가 환영 받고 영접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믿음의 아들이요, 그것이 제자요, 또 그것이 자기의 그 모든 활무대라 자기의 면류관이라. 자기의 것이라. 자기 기쁨이라.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만물 안에 충만한다 했습니다.
우리는 만인간 안에 들어가고 만물 안에 들어가 가지고서 만인간 안에 만물 안에서 살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와서 살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살고 우리는 만인간과 만물 안에서 살고, 이래서, 예수님이, 모든 물속에 있는 것까지 다 주라고 시인해서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것처럼 우리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들이 그저 간단, 비유한 것은 우리로 기억하기 쉽고 깨닫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비유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나는 세상 소금이라' 세상 소금이라 말은 세상을 위해서 있는 소금이라 그 말이오. 세상에 필요한 소금이라, '이 소금 이거 뭐 하겠소?' '아 그거 김장 소금이라.' 김장을 위해서 소금이 있는 것이라. 김장은 뭐할라고? 김장은, 주인 위해서 있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인데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참 썩지 않도록 하고 세상이 맛이 있어서 아주 주인이 김장을 먹으니까, 버썩 버썩 먹으니까 어떻게 맛이 있는지. 그거 모양으로 온 세상은 하나님이 잡수시기에, 하나님의 잡수시기에 맛 있도록, 십일조에 대해서 하나님이 잡수실 것이라 그렇게 많이 말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이 참 맛있게 잡수실 수 있는 거, 비유라 말이오. 맛있게 잡수실 수 있는 김장 소금이 안 들어가면 안 된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 흠향 할 수 있는, 이 세 가지가 들어가 가지고 보니까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변화 됐으니까 맛이 있을 수밖에는 하나님과 아주, 창조주와 피조물이지마는 이 둘이 하나 결합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 맛이 있지 않겠소? 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니까 또 그 맛이 있지 않겠소? 또 성경 말씀대로 된 것이니까 맛이 있지 않겠소? 또 성령의 감화대로 된 것이니까 또 맛이 있다 그 말이오.
그러면,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화 됐기 때문에 하나님이 목적 정하신 목적대로 완성된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소? 하나님은 그걸 자시고 산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의 기쁨은 뭐이 하나님의 기쁨인고 하니 우리가 잘되는 것을 당신이 기뻐하시지 뭐 당신은 완전자이고 자존자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뭘 드릴 수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안심하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우리가 보배 덩어리, 행복 덩어리, 평강 덩어리, 생명 덩어리. 존영 덩어리.
모든 피조물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귀중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잃으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됩니다.
질이 틀려서. 또 아무리 이 세 가지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가 녹을 기회에 녹지 안하면 또 헛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약을 믿어야 되지, '내가 이 세 가지로 녹을 때 녹아 버리고 나면 그만 그만이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녹으면 그만입니까? 녹으니까 가장 쓸모 있는 것이 돼지지, 없어지면 무슨 쓸모 있는 것이 되겠습니까? 쓸모 있는 것 되고, 많이 쓸모 있는 것 돼야 되고 더 귀중히 쓸모 있는 것 돼야 되고 더 환영받고 더 영접받고 더 존귀함을 받는 것이라. 이러니까, 우리는 이것을 소망을 가지고서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연보에 대해서도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안하나 보라' 내가 가진 것 얼마 안되지마는 그것을 온전한 십일조, 온전한 헌물로 드리면, 그거 드리면 무진장의 것이 오니까, 드릴 때는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드려야 되지 소망 없이 드리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망을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에는 머리 투구라 이랬습니다. 머리 투구. 머리가 제일 중요 한 것 아닙니까? 소망이 우리가 가질 것 중에는 제일 중요하다 그 말이오. 하나님 의지하는 것도 좋고 바라보는 것도 좋고 참 믿는 것도 좋지마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제일 중요합니다. 소망을 보면서. 내가 소금 되면 얼마나 오느냐? 소금 되면은. 성경이 전부 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쌓을 곳이 없이 복을 주신다.' 그러면, 내게 있는 것 다 이와 같이 잘 녹아진 소금처럼 이렇게 사용하게 되면 쌓을 곳이 없이 준다, 또 씨를 심구고 나니까 또 씨를 줘서 더 풍성하고 모든 것이 다 넉넉해서 의의 열매를 가득 차게 하기 위함이라 이렇게, 자꾸 하나님과 연결돼 놓으니까, 무한자와 연결되니까, 무한이 내게 연결 되니까 무한이 나와. 수도 파이프가 큰 저수지에 연결됐으면 저수지 물이 다 달아 오르도록까지 열어 놓으면 얼마든지 나올 것 아니겠습니까? 나오는데, 처음에 삼부 파이프로 나오다가 삼부 파이프로 그 물이 나와서 잘 쓰여지니까 삼부 파이프 가지고는 작다. 삼부 파이프를 키워 가지고서 육부, 그 다음에 인치, 몇십부 이래 가지고 자꾸 키우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더 더 더 말했어. 더 많이, 씨를 더 많이 주고 양식도 더 많이 주고 자꾸 더 풍성하게 해서 의의 열매가 가득 차게 하신다 그렇게 계약을 했다 말이오.
하나님께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녹아지는 소금이 되는 데에는 녹아지는 소금이 됨으로써 더 쓸모 있는 게 된다. 더 쓸모 있는 게 돼. 녹아졌으면 그건 다 쓰이지 안했소? 다 쓰이지. 다 쓰여졌는데 자꾸 더 쓰여질 수 있는 것이 자꾸 되어진다 말이오.
이 소금은 별스러운 소금이라. 녹아지니까 자꾸 녹아지니까, 녹아지니까 이제, 한 말을 녹혔더니마는 나중에 보니까 열 말이 와 있습니다. 열 말을 녹혔는데 그 다음에 백 말이 와 있습니다. 자꾸 이것이 기독자에 대한 무한하신 분에 연결되어 가지고 되어지는 모든 믿음의 비결이라 그 말이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너희들이 믿으면 나 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러니까, 요번 공과에 요것을 단단히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는 이 세 가지 뭉텅이가 돼야 된다, 이 세 가지 외의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이 대속과 진리와 영감 이 세 가지 외의 것은 제가 아무리 좋다 해도 그건 자기를 썩후는 것이고 죽이는 것이지 자기에게 유익된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이 세 가지 뭉텅이가 돼야 돼, 이 세 가지 뭉텅이 이 세 가지만 우리에게 유익하지, 세 가지 아니면 돈도, 이 세 가지 외에 돈이 유익하냐? 아니오. 이 돈이 세 가지로 물이 들어 세 가지화 된 돈 이면 필요하지마는 세 가지화된 돈이 아니면 소용이 없어. 우리의 돈도 이 세 가지화되고 우리의 권세도 이 세 가지화 되고 지위도 세 가지화 되고 자기의 모든 기능도 이 세 가지화 되고 어짜든지 무엇이든지 이 세 가지로 다 감염해서 이 세 가지의 것이 되어 버리면 됐습니다. 세 가지의 것이 돼야 돼요. 내 손도 이 세 가지의 것, 눈도 세 가지의 것, 귀도 세 가지의 것. 손도 발도 세 가지의 것, 내 마음도 세 가지의 것, 지식도 세 가지의 것, 내 생명도 세 가지의 것, 내 재물도 세 가지의 것. 내 지위도 세 가지의 것, 모든 것이 이 세 가지의 것이 돼야 된다. 세 가지의 것으로, 세 가지로 된 뭉텅이 그것만 내 재물이요, 내 몸이요, 내 소유요 내게 유익될 것이지 이 세 가지로 되어지지 안한 짓은 아무 소용없어. 이 세 가지화 된 것이라야 된다 말이오 이 세 가지로 화 된 거 이것이 비유에 간으로 되어 있는 거와 같이 되어 있는 것, 이 세 가지가 이제는 녹아져야 될터인데, 이것이 녹아져서 다른데 가야 효력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것이 다른이에게 전달되는 데에는 이 세 가지가 전달되는 데에는 자기가 희생하지 안하면, 희생 방편 외에는 전달이 안 된다. 희생 방편 외에는 전달되는 길은 없다 그 말이오. 희생되는 거 외에는 전달되는 길은 없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 가지가 희생이 될수록이 자꾸 기한 전에, 생명이 끝나는 그 시간이 되기 전에는 자꾸 희생할 것이 많아져서, 처음에는 요만한 김치 한 도가지에다 그것이 녹아지니까 맛이 있게 됐는데 그 다음에 한 번 녹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한 도가지가 아니라 여러 수십 도가지에 녹아서 간할 수 있고 그 다음에는 그거 녹아지고 나니까 여러 수백 도가지에게, 이래서, 차차차 요라고 있으니까 조그만한 자기 구역에서. 구역을, 구역 식구에게 요 세 가지로 간을 내어서 참 맛있는 김치,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는 구역 식구가 되더니마는 이것이 차차 커 가지고서 이제는 자기 한 교회에서 아주 소금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로 희생된 고걸 인해서 온 교회가 다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뻐 만족하실 수 있는 참 하나님의 음식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식물이, 이것도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음식이 된다는 이것도 비유요. 하나님이 만족하고 기뻐하실 수 있는, 흠향 하실 수 있는 보배로운 사람들이 되지, 그라고 나니까 이것이 그 지방에 그래 돼지지 지방에 그래 되고 그 나라, 한국에 그래 돼지지. 이러면 이게 세계에 그래 되어지지, 자꾸 생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더 자꾸 더 많은 소금되어지고 더 넓게 쓰여지고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이것이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만 되어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 또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은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에 자기 세상이 넓든지 좁든지 자기 세상에 있으니까 자기 현실입니다. 자기 현실이니 자기 현실에서 희생을 해야. 이 세 가지로 희생해야 효력이 난다. 아무리 자기 현실에서 희생해 봤자, 불교로도 희생할 수 있고, 자기 욕심으로도 희생하고 돈 위해서 돈으로 희생할 수도 있고, 권세로 희생할 수도 있고 자기 취미로 희생할 수도 있고, 자기 행락으로 희생할 수도 있고, 죄로 희생할 수도 있는데 다 소용 없고 이 세 가지로 희생해야 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돼야 된다, 이 세 가지로만 희생해야 된다, 희생을 해도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소용없다. 이 세가지가 있어도 희생 없으면 소용없다 요것을 잘 알아서 학생들에게 요것을 잘 가르치도록. 가정에도 그렇습니다.
가정에 자기가 모두 다 이거 여러 가지로 어려움 당한 사람들 많이 있는데 보면 이 세 가지가 아닌 희생하기 때문에 죽자껏 그 가정에 종지 종으로 희생해 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필요 있는 물건 되지요. 필요 있는 도구 되고, 또 그 욕심에 만족하는 이용물 되어지고 하지만 아무 소용없어. 인간이 부모로 자녀에게 암만 희생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암만 남편으로 희생해 봤자 소용없어. 아내가 아무리 남편에게 아내로 암만 희생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소용없어. 이용물이라. 이용물. 알겠소? 따라해요. 이용물! 이용물! 이용물! 이용물이라. 소용없어. 저도 이용물이니까 다 죽고 썩어 버렸고 나중에 천대받고, 천대받고. 그 이용한 자도 천대받고 죽고 다 그래. 꼭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돼. 부모가 자녀에게 희생해도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요거는 썩는데 이르지 안하고 요거는 저도 존귀해지고 상대방도 존귀해지고, 또 남편이 아내에게 대해서도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도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됩니다.
그러면 선배가 후배에게 대해서도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됩니다. 어데든지 요 세 가지 뭉텅이가 돼 가지고서 희생해야 되지 이 세 가지 뭉텅이가 되지 안하고서 희생하는 것은 미친 짓이오. 자살 행위요. 이 세 가지로 희생하지 안한 그거는 자살 행위요 미친 행위요 아무 가치 없는 행위입니다. 그런 자들 많다 그 말이오. 모두 배암이 시켜 놓은 이거 구습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희생하지 안한 그것이 뭣이 마귀란 놈이 내놓은 것이 '너는' 부모에게 '자녀 위해서 희생해라, 남편에게 희생해라, 아내로 희생해라 뭐 백성 위해서 희생해라. 민족 위해서 희생해라' 마귀가 시켜 놓은 것이라. 이 세 가지로 희생 안 하는 건 다 저도 죽고 그도 죽고 다 죽소. 다 썩어 버린다 말이오. 인간을 속이는 거짓말이라 그 말이오. 거짓말의 정의를 어데 두느냐? 인간의 구원에 필요없는 말 하는 거는 전부 속이는 말이오. 라합이 거짓말 했지마는 그거 거짓말 아니라 그 말이오. 라합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협조하는 구원에 필요한 말 했기 때문에 그 말은 인간이 볼 때에는 있는 걸 없다 했으니까 거짓 말 같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대속으로써 인간을 구원하는 말이 됐지 이것을 멸망시키는 말이 안 됐다 그 말이오. 인간을 멸망시키는 말이 안 됐기 때문에 그 말은 참말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라합이 그 말 한 것을 인해서 구원해 줬습니다.
거짓말이나 참말은 근거를 어데 두고 정의를 어데 두느냐? 인간에게 구원에 유익된 말이면 거짓말 해도 그것이 참말이 됩니다. 참말. 참말 된다 말은 그것은 그 사람에게 유익된 말은 참 말이요 그 사람을 해치는 말, 속이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거짓말 정의도 뚫고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 보면 이제 그 정의가 따로 있는데, 정의를 모르고 껍데기에서 말해 가지고는 다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 가지로, 세 가지 뭉텅이가 돼야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 가지로 말도 이 세 가지로 하고, 또 비판도 이 세 가지로 하고 접촉도 이 세 가지로 하고, 봉사도 이 세 가지로 하고, 교제도 이 세 가지로 하고, 선포도 이 세 가지로 하고, 행동도 이 세 가지로 하고, 사랑도 이 세 가지로 하고 이 세 가지 떠나면 죽어요. 이 세 가지만이 죽지 않는 영원함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에게는 주님의 피 없으면 다 죽어요. 주님의 이 세 가지 대속, 이 대속과 또 대속을 위한 진리와 또 대속을 위한 영감 이 셋은 하나인데, 그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과 피, 증거하는 것이 이 셋이 있으니 이 셋이 우리에게 증거한다. 성령과 물과 피가 우리에게 증거한다. 이 셋은 셋이 아니라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요러니까, 이 셋이 되어야 하고 이 셋이 되는 데에는 하나님이 자기 현실에게 줬는데 그때, 녹아질 때 그때 그때 녹아질 때 녹아져야 되지 녹아지지 안하면 또 맛 잃은 소금이 된다. 세 가지 없이 녹아져도 맛 잃은 거 세 가지 있고 녹아지지 안해도 맛 잃은 것, 세 가지 있고 그때가 다 녹아질 때 녹아지는 것이 그것이 맛있는 소금이라. 그러면 그 결과는 뭐이 되느냐?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는 참 가정에 필요한 사람, 부부간에 필요한 사람 사회에 필요한 사람 어데든지 그것은 아주 하나님에게도 피조물에게도 필요한 사람이 되어지고 아주 깊은 안방으로, 아주 깊은 인간의 마음 속에 속 깊은 마음 속으로 영접합을 받게 됩니다. 또 존귀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걸 잘 깨달아서, 가정에서 여러 가지 억울하게 참 뭐 기가 막힌다 하는 그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데 왜 그렇게 둬 두느냐? 둬 두는 그거는 이유가 있다 그 말이오.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 요 세 가지로 녹아지지 안하기 때문에 그런 그것이니까 요 세 가지 되어지도록 본질을 완전히 바꿔야 됩니다. 요 세 가지가 되어지도록 요렇게 요것을 바꿔 가지고 요 세 가지로 녹아 봐요. 세 가지로 녹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뭐이냐? 천대 안 받는다 했어. 존대받는다 했어. 밖에 버리지 안하고 환영받는다 했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가감이나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번에 학생들에게, 그래서, 어데서든지 우리는 희생 할 자요.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희생할 자, 희생할 자인데 이 세 가지로 희생을 해야. 세 가지로 희생을 해야, 조그만한 소인이 희생하고 나니까 대인이 되어지고 대인이 희생하고 나니까 유명한 사람이 되고 유명한 사람이 희생하고 나니까 위대한 사람이 되고 위대한 사람이 희생하고 나니까 세계가 놀라는 이 사람이 점점 되어진다 말이오. 하나님은 변함 없이 요래 하는데 사람들은 고렇게 가다가서 높아지니까 그만 오만한 자리에 앉아 가지고서 다 썩어져 버리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쳐 실패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변동이 없습니다.
요것을 단단히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이 기억하고 학생들에게 강하게 가르쳐요. 강하게 가르치고, 여러분들이 과거에 못 했으면 지금부터라도 작정해.
'아, 나는 어데든지 이 세 가지로 살겠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살겠다.' 요렇게 사는 데에는, 요렇게 사는 방편에는 희생 방편밖에 없다. 요렇게 사는 방편은 진리로 사는 방편, 다른 사람에게 거 끌어 당기는 생활 못 해요. 요 세 가지로 사는 것은. 진리로 살라 하면은 자기가 손해 봐야 되고 자기가 억울함 당해야 되고 자기가 양보해야 되고 자기가 희생해야 되고 전부가 희생이라. 진리로 사는 생활은 희생 생활이요. 영감으로 사는 생활은 희생 생활이요, 주님의 피공로로 사는 생활은 희생 생활이오, 그러면 없어졌느냐? 그러면 점점 더 많아져. 또 더 존귀해져.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해도 그렇다' 할 때에는 말은 하면 박할까 싶어. 그래도 '고생했나? 이 세 가지에서 혹 이 변질된 거 아닙니까? 소금이 간이 없는 소금 아닙니까?' 간이 없는 소금은 암만 녹아 봤자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간이 없는 소금. 간 없이 녹았기 때문에 그렇지 이 세 가지 간으로서 녹았으면 절대로 녹아지는 그 효력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녹아지는 효력은 뭘로 나오는가? 녹아지는 효력은 아주 쓸모 있는 것으로 그 효력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아주 중앙으로 환영하는, 그 깊은 품에 말이요, 자기 마음 중심에 환영을 받는, 이래 속에, 아주 안으로 환영받는 것이 되어지고, 이렇게 발에 밟히는게 아니라 어깨에 메고 돌아 다니는 존귀함을 받게 된다. 이런데, 녹아지지 안했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세 가지가 아니든지 이 두 가지 고장이지 이 두 가지만 겸하여 있으면은 우리 기독자는 이렇게 이 세 가지 존귀함을 받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존귀함을 받게 돼요.
그러니까, 요것을 학생들에게 단단히 가르쳐서, 여러분들이 새김질하고 기도하고 새김질해서, 이걸 또 안 가르쳐서는 학생들이, 그날, 내가 금요일 밤에 나오지들 못해서 오늘 아침에 여기에 대해서 좀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증거하는 것이니까 반사 선생님들이 단단히 기억해요. 기도해 봐요. 기도하면은, 기도하면은 묵상 가운데 '이치에 그러하다' 하는게 깨달아집니다. 이치에 '이는 틀림없는, 그만 요거는 틀림없는 이치다' 깨달아질 거고.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가 그대로 실행을 해 보면, 실행을 해 보면 당장에 효력이 납니다. 그날 아침에 가서 실행하니까 그만 밉상스럽게 보던 가족들이 존귀하게 여겨 줍니다.
그 구역 식구들이. 재독하러 가고 기도하러 가고 그 구역 식구들이 저 산에 가는데, 산에 가 가지고서 '어라, 내가 인제 녹아지는 소금 돼야 되겠다' 그 세 가지를 쓰면, 세 가지로 녹아지면 금방 그만 다른 사람들의 눈이 그만 달라집니다. 그만 대우가 달라져. 그만 자기 가치가 달라지고, 즉시 효력이 나는 것인데, 이렇게 생명의 지름길이 우리에게 있는데 우리가 걷지 안하기 때문에 이거는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재독 말해 쌓아야 칠십이 명이라. 이러니까 죽기가 늦었어. 화를 받기가 늦었어. 자기네들이 아느냐 하면 몰라. 내나 이리 말하면 고거 아는 것 같지만 또 이리 말하면 대답도 못 해. 원만히 알아야 안 됩니까? 옆쪽 모떼기만 알면 뭐 합니까, 모떼기만 알면? 모떼기 그게 다 아니라 모떼기를 똑똑히 알면 둥글둥글하이 다 알게 돼. 요모로. 요모 알았는데, 요모를 똑 바로 알게 되면 둥글둥글하이 다 알게 돼. 전체를 다 알아야 돼. 전체를 다 알아야 되는데 그걸 언제 그걸 다 가르치겠소? 이러니까 할 수 없이 요 모를 좀 가르치다가 또 요 모를 가르치다 하지마는 자기가 그것을 실행하면 하나님이 전체를 다 알려줄 건데, 전체를 다 알아야 돼지지, 그래야, 신앙은 둥글둥글하게 자라 나가지 모배기로 자라 나가지 않습니다. 한쪽이, 어느 일면이 잘못 됐으면, 거기에 푹 쪼그러져 있으면 그것 때문에 다른 것도 자라 나가는 줄 알아도 안 자라 나갑니다. 하나님은 장점을 따라서 자라 나가지 않소. 하나님은 단점을 따라서 자라 나갑니다. 그 사람의 제일 단점 그것이 자라가야 자라지지 그것 자라기 전에는 장점 암만 해 봤자 그건 소용 없어.
나중에 깎으면 다 깎여 버려. 옥을 깎을 때에 한군데 폭 들어간게 있으면은, 자, 옥이 불룩한 걸 따라서 깎습니까 폭 들어간 건 따라서 깎겠습니까? 뭐 깎지요? 들어간데 흠 있는 그것 그놈 깎아 나가도록 그래 깎습니까 불룩한 것 높은 것 그것 따라서 깎습니까? 어찌 돼요? 어찌 돼요? 옥을 가는데 말이요, 이래 가는데 불룩하이 나온 그것 따라서 지금 깎습니까 속에 흠이 있는 거, 깊은데 제일 구멍이 빠꿈하이 뚫렸는데 그 구멍이 없도록 깎습니까? 네? 어째요? 구멍이 있으면 아무짝도 못 쓰기 때문에. 구멍이 없도록 깎으니까 나중에는 주먹덩이만한 것이 조그만하이 콩 내끼만할 수도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의 단점을 따라서 자라는 것이지 장점 따라 자라는 것 아니라 그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