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20:09
소금비유
1980. 2. 10. 주일 오후
본문: 마태복음 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누가복음 14장 35절에 보면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땅에도 쓸데없다" '맛 잃은 소금은 땅에도 쓸데없다.' '변질 변성된 기독자는 땅에도 쓸데없다' 기독자의 본질이 변하고 본성이 변하는 그것은 아무데도 쓸데없어 버리는 것인데 그 버림받는 그것이 땅에도 쓸데없고 거름에도 쓸데없다 하는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독자가 본질과 본성을 떠나서 변질 변성적으로 살면 땅에도 쓸데없다' 하신 이 땅은 세상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땅에도 쓸데없다. 세상에도 쓸데가 없다. 그러면 기독자는 세상에 쓰기 위해서 기독자 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기독자는 세상에 필요해서 세상에 이용할려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이 기독교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기독교의 구원이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은 불택자들이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기독자가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을 떠나면 불신자로도 쓰지 못하고 기독자로도 쓰지 못하고 이것은 아무 데도 쓸데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불택자는 세상에서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것입니다.
기독자는 무궁 세계에서 쓰기 위해서 지으시고 구속한 것으로 무궁 세계에서 쓸 수 있는 자를 계속 만드시는 것입니다. '거름에도 쓸데없다' 이것도 비유입니다.
'거름에도 쓸데없다'고 말씀하신 이 거름은 곡식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거름은 곡식을 가꾸는 데에 이용을 당해서 곡식이 무성하게 결실 하게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곡식은 이것도 비유인데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구원을 이루시는 데에 도움이 되고 이용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불택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여게는 불택자가 무엇에게 유용하게 되어지는 것을 가르쳐서 거름이라고 말했고 땅에도 하는 이것은 이용될 시기와 장소를 말한 것입니다. 불택자는 쓸, 쓰여질 그 시기가 세상이요 또 쓰여질 장소가 세상입니다. 기독자는 영원히 쓰여질 것을 마련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세상에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쓰는 자입니다.
기독자가 기독자로서 살면 세상을 잘 사용하는 사용주가 되어지는 것인데 변질이 되면 세상을 사용하는 자도 이용하는 자도 되지 못하고 또 세상에게도 쓸모가 없는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근본 기독자는 소금으로 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용도가 이탈되면 아무데도 쓸모 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살지 안 하면 불신자의 한 사람으로 살아도 살아진다고 생각하지마는 그것이 아닌 것을 여기 판정해서 말합니다. 세상에도 쓸데없다.
불택자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한 사람으로 세상에게 쓰여지지마는 기독자가 변질된 것은 세상에도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 거름은 그 효력을 가르쳐 말하는 것인데 불택자는 하나님의 곡식인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거름처럼 곡식의 거름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유효하게 쓰여지는 불택자이지마는 택자가 변질된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에도 이용되지 못하고 세상에도 이용되지 못하고 아무작도 쓰지 못할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땅에도 쓸데없고 거름에도 쓸데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거름을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 다 비유인데 불택자는 택자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택자의 구원을 돕기 위해서 마치 음식이 우리 몸을 돕는 것처럼 택자들의 그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을 때부터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택자가 자기 본질 본성대로 살지 안하고 세상에 살면 불택자와 같은 그런 효력이라도 낼 수가 있지 않느냐 생각하지마는 그것이 안 되는 것을 똑똑히 말했습니다.
또 세상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쓰시기 위해서 세상을 쓰기 위해서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셔 놨습니다. 기독자가 세상을 자기 구원을 위하여 쓰지 아니하면 세상에게 쓰여지거나 하지마는 쓰이지도 못합니다. 세상을 쓰는 자도 되지 못하고 세상에게 쓰여지는 자도 되지 못합니다.
근본은 기독자는 세상에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 아닙니다. 세상을 쓰는 주인공으로 지으신 것이 기독자요 기독자가 쓰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자의 구원이 쓰기 위해서 세상은 만드신 것입니다. 불택자는 택자에게 택자의 구원이 유효하게 이용되기 위해서 지으셨지마는 택자가 변질되었을 때에는 택자의 구원을 위해서 유효물도 못되고 택자의 구원을 위하여 이용되는 존재도 못된다 그 말입니다.
다만 기독자는 세상에서 소금으로만 쓰여집니다. 소금으로만 쓰여집니다. 소금으로 쓰시는 이는 주인공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소금으로 쓰십니다.
기독자는 소금으로 쓰여지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여기에만 꼭 전용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계시인 만물인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쇠는 쇠로만 쓰이고 금은 금으로만 쓰이고 짐승은 짐승으로만 쓰이고 붉은 물은 붉은 물로만 푸른 물은 푸른 물감으로만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무엇으로 되어 있던지 그것으로 쓰여지지 그것으로 쓰이지 안 하면 변질된 것이요 그것은 아무짝도 못쓰는 것입니다. 돌 하나도 돌이 변질됐으면 못씁니다. 물도 변질 됐으면 못씁니다. 별스러운 이치가 아니라 모든 자연 만물이 그 자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로 그 본질 본성대로 그대로의 쓰여지는 것이지 그것이 본질과 본성이 변해졌으면 못쓰는 것입니다.
기독자는 이 비유대로 세상 소금이라 이 소금은 일곱 가지를 포함해서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소금은 순전히 간뿐이지 단 것도 쓴 것도 다른 맛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 짜운 것 짜운 것만 뭉쳐 가지고 있는 것이 소금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자는 예수님의 구원으로만 되어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뭉텅이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간추려서 6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사죄 받은 것이요 사죄 받아서 이제는 죄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변질된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기독자가 변질된 것입니다. 기독자가 어데서나 이것으로써 쓰여져서 녹아지지 안 하면 변성된 것입니다. 본성이 변해졌습니다. 사죄 받은 죄 없는 사람 의로운 사람 기독자가 어데 갖다 놓든지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것은 본질을 그대로 가진 것입니다. 의가 없으면 변질된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기독자로서 본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그것은 기독자의 본질이 변질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속하여 하나님과 결합되어 하나님 중심의 사람 하나님 위주의 사람 어데서든지 하나님 위주의 사람으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있으면 기독자가 본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가 자기 중심이나 인류 중심 문화 중심 세계 중심 국가 중심 민족 중심 가정 중심 뭐 돈 중심 권세 무슨 뭐이든지 하나님 중심과 위주로 있으면 그것은 기독자의 본질을 그대로 가진 것이요 다른 중심과 위주로 있으면 변질된 기독자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일부입니다.
또 기독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소새끼는 소를 닮고 개새끼는 개를 닮고 첫째 아담의 새끼는 아담을 닮고 둘째 아담의 자녀는 둘째 아담 곧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대로 된 사람이라면 그는 기독자의 본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아닌 다른 인간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기독자로서는 변질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공통성 있는 것 8가지를 말했고 공통성 없는 4가지를 말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그 신성의 속성들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통성 있는 속성은 지식, 지혜, 선, 사랑, 거룩, 의, 진실, 주권, 영원 불변, 자존 완전, 단일, 이렇게 해서 12가지 속성으로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라면 그는 변질되지 아니한 기독자입니다.
만일 어떤 시기나 장소나 사건에 접해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속성을 버린 사람이라면 잠시간이라도 그는 변질된 기독자입니다.
또 기독자는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진리와 영감이 그의 생애 법칙입니다.
만물이 조물주가 각자에게 법칙을 주신 그 법칙대로 살면 살고 법칙을 어기면 즉시 죽습니다. 이 꽃이 핀 이것도 뿌리는 땅 속에 줄기는 공간에 햇빛과 공기와 수분을 먹고살도록 했는데 그 법칙을 떠나면 즉시 말라죽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감과 진리를 저의 전 생애 법칙으로 삼아 살고 있으면 기독자의 본질대로의 기독자입니다. 만일 이 생애 법칙을 떠나 다른 법칙으로 살고 있으면 그는 변질된 기독자인 것입니다.
기독자는 하늘 나라에서만 사는 백성입니다. 하늘 나라는 진리 안, 하나님의 통치 하에서 사는 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진리의 울타리 안,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면 그 사람은 본질대로의 기독자입니다. 만일 그가 진리를 떠난 생애에서 하나님외에 다른 것에게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에게 위배된 다른 것에게 통치를 받으면 변질된 기독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를 통해 가지고 통치하셔서 무엇을 통해서 통치하든지 그의 법칙대로 통치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관으로 쓰셔서 통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도 그 통치 받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본질입니다.
기독자는 이 본질로만 쓰여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본질로 쓰시기 위해서 세워 놓은 구속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때에는 그 본성이 녹여져 가지고 쓰여집니다. 녹는 대로 씁니다. 희생으로 쓰십니다.
하나님이 이 6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구원으로 쓰실려고 하실 때에 죄짓지 않는 자로 하나님이 쓰실려고 하실 때에 눈도 빼이고 팔도 끊기고 돈도 손해보고 지위도 권세도 건강도 뺏기는 일들 있습니다. 이는 사죄로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 세상에서 의롭게 쓰시기 위해서 이 의롭게 쓰시기 위한 이 의 때문에 그 사람이 여러 가지로 자체와 소유와 모든 무대가 희생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본성대로 녹아지는 것이요 소금이 녹아 그 간이 다른 것들에게 퍼져 스며들어 뭉치로 되어있는 소금이 많은 물건들 속에 짜운 간으로 그 속에 스며들어 작용하고 존재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생명이 되는 물질주의 세상 속에 하나님 중심자로 하나님이 쓰실려고 할 때에 자기 위주의 인간들 속에 하나님 위주의 사람으로 쓰실려고 할 때에 그는 여러 가지로 이를 인해서 쓰여지고 희생돼서 녹아지고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중심으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쓰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세상에 하나님이 쓰실려고 하니까 그는 녹아져야 간이 다른 것에게 배어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것을 보존키 위해서 그 자체가 희생되고 손해볼 때에 세상은 과연 하나님의 속성대로는 죽어도 사는구나 이는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사람이라는 것을 제 3자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심기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감의 법칙으로 하나님이 쓰실려고 쓰실 때에 하나님이 영감의 법칙으로 쓰실 때에 거게는 세상이 영감의 법칙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영감의 법칙대로 하나님이 쓰시니까 세상에 그는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고 자체는 녹아질 수밖에 없는 이 희생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사는 것을 세상에게 보여줄 수 있고 그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고 그들의 양심 속에 감화로 심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가 진리를 흐려 진리를 버리는 세상 속에서 하필 진리 안에서만 기회주의자로 돈에 통치 받아 유리하면 돈에 통치 받고 인간에게 통치 받아 유리하면 인간에게 통치 받고 기회주의자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아니하고 오만 것들에게 통치 받는 이것이 능한 처세술로 인정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 한 분에게만 통치 받아 그에게만 피동 되고 그로만 통하고 정하는 사는 자로 하나님이 쓰실려고 하니까 그는 죽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지위와 권세와 직장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금이 녹는 것처럼 자체가 녹아지는 것이요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는 범죄로 녹아짐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통치자로 하나님이 쓰시므로 통치 때문에 그는 거기 쓰여져서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소금의 본질을 가진 것이요 이것이 녹아지는 이것이 소금의 본성을 가진 것입니다. 소금은 비유입니다. 소금이 간 하나만 가진 것처럼 기독자는 기독자의 구원 요 하나만을 가진 요 뭉텅이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간 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쓰십니다.
죄악으로 썩는 세상에 의로 무죄자로 의가 없는 세상에 의로 하나님 중심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법칙을 제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법칙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무시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자로 이 6가지로 세상을 간 치듯이 이 6가지로 세상의 타락을 방비하고 절망에 소망을 주고 인간의 가치와 인간미가 없는 데에 인간의 가치와 정말로 인간의 본미를 본질을 소생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 세워놓으신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런데 맛을 잃으면 다시 짜게 하지 못한다 하는 말씀은 본성이 변해도 본질이 변해도 헛일입니다. 기독자가 이 6가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6가지로 쓰여져 6가지로 하나님에게 쓰여져 6가지로 된 자로 하나님에게 쓰여져 없어지지 안 하면 이 간은 소용이 없습니다. 변질됐습니다.
없어져도 간 없어 없어져도 소용없습니다. 희생을 해도 소용없고 이것을 이 구원을 가진 자라도 자체가 희생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 구원을 가지지 못한 자도 맛 잃은 소금이요 이 6가지 구원을 가진 자라도 희생하지 아니하면 또 맛 잃은 자입니다.
이는 다시 짜게 못한다 그 말은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은 한 현실 한 현실 자기에게 통과하는 고 현실에서 요 직책을 했어야 돼지고 고 현실이라는 고 기회를 지나 보냈으면 다시는 고 현실을 복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 만큼은 완전히 변질된 것으로서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아무데도 쓸데없다 변하면 쓸데없다 기독자가 본질 본성대로 6가지 구원으로 하나님에게 쓰여져 녹아져 6가지 구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스며들도록 배어 가도록 퍼져 들어가도록 이렇게 되면 모든 것에게 쓸모 있는 것이 되어졌고 이 변질이 되면 조물주에게도 피조물에게도 자기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사업에게도 세상에게도 아무데도 실은 쓸데없는 자라 무익을 준 것이고 해를 기친 것뿐이기 때문에 아무데도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모든 것에게 하나님 다음으로 필요 있는 존재로 쓰여질 수도 있고 기독자는 어떤 곳보다도 쓸모 없는 몹쓸 그런 것이 될 수 있는 양극을 가진 것이 기독자입니다. '버리운다' 하는 말은 배척을 당한다 하는 말입니다. 기독자가 본질 본성대로 살면 모든 것에 배척 당하는 반대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기독자가 본질 본성을 버려 이 생애를 버리면 하나님에게도 피조물에게도 전체는 버림당해. 당한 그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영원히 탑니다. 사람에게 밟힘이 된다.
사람은 피조물의 영장입니다. '사람에게 밟힘 된다.' '기독자가 본질과 본성대로 살기만 하면 만물에게는 물론이요 만물위 인간에게 밟히는 반대로 머리 위에 메고 어깨에 메고 머리에 이고 다닌다' 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49장에 (2-23절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열 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보면 믿음으로 산 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군왕들이 왕비들이 그를 어깨에 메고 그 발을 핥는다 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리하여 밟히는 것 반대로 베드로서1장에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보면 영원히 칭찬과 이는 하나님과 만물에게 칭찬 영광과 하나님의 그 영광을 드러냈고 만물에게 영광을 받는 걸 말합니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으로 하나님도 귀중히 여기시고 모든 피조물에게도 존귀히 대우받는 이것으로 관 씌워 주신다. 관 씌워 준다는 말은 승리자가 쓰는 관을 말합니다. 면류관을 말합니다. 이 이 승리로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승리로 너에게 입혀 주겠다 하는 약속입니다.
이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내가 가정에 부부 단 둘이 있어도 나는 이 비유대로의 소금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소금은 비유입니다. 기억하기 좋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어도 나는 소금이다. 나는 녹아질 때에 펴지고 크고 넓어지고 많은 것을 점령하게 된다. 여러 수만 명 모인 속이라도 '나는 소금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6가지 구원의 뭉텅이이다. 나는 예수의 구원이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에게 6가지 구원으로 이 자리에서 쓰여질 자다. 이것을 나타낼 자다.
이것으로 쓰여져 내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이것으로 녹아짐으로 6가지 구원이 모든 이웃에게 퍼져 번져 박히게 하는 것이 재세의 나의 목적이다.'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외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세상에 권세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합니다. 암만 말해도 그것은 우리의 본질과 본성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나는 아닙니다. 그것은 소금이 잘 녹기는 녹았는데 녹은 소금이 이것이 간이 잘 배어 들어가도록 막대기로 젓는 거 이것을 사람이 이리 저리 뒤적거리면서 간물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거 같이 기독자의 구원이 빨리 널리 번져 배어 들어가도록 스며들어가도록 하는 데에 이용되고 끝나는 것입니다.
다 같은 한 쓰여짐에도 이름 없는 사람과 이름 있는 사람의 그 퍼져나가는 속도와 범위가 다르고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꼭 같은 요 6가지로 쓰여졌을지라도 퍼져 나가고 번져 나가는 강도와 속도와 범위가 다른 이것뿐인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은 아닙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하십시다.
모든 자에게 쓸모 있고 모든 자에게 모든 것에게 쓸모 없고 모든 것에게 환영받고 모든 것에게 버림당하고 모든 것에게 칭찬 영광 존귀 받고 짓밟히고 이 귀로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뭉텅이입니다. 구원만을 가지고 있는 기독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구원으로 세상에 쓰셔서 우리의 생명을 이 구원으로 쓰시고 이 구원으로 쓰셔서 우리가 녹아짐으로 못 죽은 자들에게 이 구원이 번져가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재세의 존재 목적이요 하나님이 주신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