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빛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17일 새벽(목)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위에 소금으로 비유한 것은. 자기 구원을 이루는 데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또 빛으로 비유한 것은 자기가 맡은 바의 자기에게 속한 자들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게 소금이라고 비유한 그 소금이나 또 빛이라고 비유한 그 빛이나 다 같은 것입니다. 소금도 우리가 받아 가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대속의 공로는 우리에게 주셔서 대속의 공로를 우리 것 삼았고 영감도 우리 것 삼았고 진리도 우리 것 삼았지 우리가 대속의 공로 되는 것 아니고 영감 되는 것도 아니고 진리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빛이라고 말한 것도 우리가 빛이 아니고 빛을 가진 자요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 빛도 말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가졌고, 받아서 가졌고 또 영감도 받아 가졌고 진리도 받아 가졌습니다. 그러면, 내 구원도 이 세 가지로 이루고 또 내게 속한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내가 이루어야 할 그 책임진 사람들의 구원도 이 세 가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빛이라고 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세상이 인정하는 이해하는 그런 것으로, 일반 사람들이 다 감동 받고 찬성하고 호평하는 그런 것으로 빛의 해석을 가지기 쉬운데 그런 것은 다 탈선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멸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세평하기를 노벨상을 받았다고 하면 그 노벨상 받은 것은 온 천하가 다 찬성을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이게 빛인 줄 알고 그렇게 했는데 그게 빛이 될 수도 있고 빛이 안 될 수도 있는데 그 자체는 빛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기념하고 영감을 기념하고 진리를 기념해서 그만큼 인정받았다면 그것은 좋은 빛이 되겠지만 그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영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세 가지 힘으로 하지를 아니하고 자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유익을 끼치는 이런 일을 해야 모든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겠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다 유익을 끼치는 참 필요있는 사람이 되겠다 해서, 자기는 과학적으로든지 뭐 또 과학 중에서라도 혹은 무슨 자연 과학이라든지 뭐 뭣을 뭐, 사람의 신체에 대한 것이나 또 사람의 위생에 대한 것이나 그런 모든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그런 일을 한 그것이 일반 사람들이 다 원하는 그런 성질로서 그런 것을 노려서 했다고 하면 그것은 저도 죽었고 남도 죽었고 다 죽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 사람이 그거 할라고, 그거 하기 위해서 머리 싸짜매고 하느라고 주일도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고 성경도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성경은 깜깜하고 그 면에만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예수님의 피공로에는 아무 연결 없이, 그로 말미암아 그 힘으로 된 것 아니고 세상 마귀의 뱀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될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에 말씀하신 어느 성구나 그 성구에 대해서 정의를 바로 가진다는 것이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몇 가지를 정의를 바로 가지면 나머지기는 따라서 정의를 바로 가지게 됩니다. 그것을 바로 가지지 안하고 성경을 다 여게 저게 종합적으로 이리 저리 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 자기는 생명 없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유력한 신학 박사의 서적을 보고 '이 책에는 생명이 없다 이것은 책 보따리다, 책 보따리. 책을 싸 놓은 책 보따리, 크게 말하면 도서실이 지 이거는 산 거는 아니다.' 그렇게 말한다는 그게 아주 바로 깨닫고 하는 말입니다.

이래서, 자기 구원 이루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서 소금으로 비유했고, 또 자기에게 속한, 책임적으로 자기가 책임진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는 것을 비유해서 빛으로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요 방편을 단단히 거머쥐고 혼돈하지 안하고 하면 이 하나로서 원줄기를 정확히 잡으니까 거게 대해서 지엽적인 것은 저절로, 원둥치를 바로 잡았으니까 가지나 잎사귀나 하는 그 지엽적인 그런 것은 절로 그것이 바로 돼 가기 쉽습니다.

자기 구원 이루는 데에는,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맛을 잃으면, 맛을 잃는다 말은 우리 기독자들이 진리를 잃어버리는 걸 말하고 영감을 잃어버리는 걸 말하고 예수님의 세 가지 대 속을 잃어버리는 것을 가리켜서 맛을 잃는다, 잃어버린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세 가지, 맛은 이것은 성도의 맛이요 성도의 생명이요 성도의 가치입니다. 성도는 이것만이가 성도의 생명이요 성도의 힘이요 성도의 가치인데, 이 세 가지는 잃으면 다시는,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무엇으로 잃은 진리를 다시 찾으며 잃은 영감을 다시 네가 찾아 가지며 잃어버린 대속을 찾아 가질 수가 있느냐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진리는 언제 자기 것을 삼으며 언제 이 진리를 잃어버릴 수 있는지? 자기가 현실이 아닌, 현실이 아닌 미래에 대해서 미래적으로 거게 대해서 뭐 아나 모르나 한가지요. 알면 좀 편리하고 또 과거도 그러합니다. 이 진리를 자기 진리를 삼는 것은 꼭 현실에서만 자기 진리를 삼을 수가 있지 다른 데서는 자기 진리를 삼을 수가 없습니다. 현실에서 자기 진리를 삼아야 할 터인데, 현실에서 자기 진리를 삼아 놓으면 그 진리는 영원히 제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맛이요 가치요 능력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기 진리를 삼았으면 그 진리는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 하고 영원히 자기 진리가 되지만 현실에서 자기 진리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현실에서 자기 진리를 빼앗겼으면 다시는 그 진리는 찾는 길이 없습니다.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무엇으로 그 진리를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 현실에서 진리 잃어 버렸으면 그 현실에 대한, 그 현실에 내 진리 그것은 영원히 찾지 못합니다. 찾지 못하는 그것은 다시 말하면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두 번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현실은 한 번으로 그만 영원히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 내가 가진 이 진리를 내가 잃어버리면,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이 시간 내가 가진 진리를 이 시간 내가 잃어버리지 악하고 빼앗기지 안하고 이 진리를 이 현실에서 가지고 있었으면 이 진리는 영원히 나의 진리요 이 진리는 자기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위에 있는 것을 자기 것 만드는 것은 어떻게 만든다 했지요? 자기보다 위에, 위에 있는 것을, 자기보다 큰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방편이 있고 자기 밑에 자기보다 작은 것을 자기 것 삼는 그런 방편이 있는데, 자기보다 크고 위에 있는 것을 자기 것 삼는 방편은 뭐이라고 말했소? 저 OOO선생, 예? 내가 소속됨으로써? 그 말을, 비슷한데, 고보다도 더 좋은 거는 내가 순종함으로, 거게 복종함으로 자기 것을 삼는 것입니다. 자기 것 삼는 것은 내가 그의 것이 됐다 말이오. 큰 것의 것이 내가 됨으로서 그 큰 것이 내것이 된다 그거요 또 자기보다 작은 것을 자기 것 삼는 데에는 어떻게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OOO선생, 비슷한 말인데, OOO, 자기 밑에 거, 자기보다 약한 그런 것은 어떻게 해야 자기 것을 삼을 수가 있지? 통치함으로? 그래도 그거 잘못 알아 듣겠어, 또 저 양성원 학생, 또 OO선생, 장 그런 소리 하네, 보자, 누가 알꼬? O조사, 또 OOO집사, 예? 뭐라하노? 또 보자, 저 울산에 있는 조사 OO교회 조사, 어디 있어? 뭐이지? 이름은, 알기만 하지 내가 누군지 몰라, OO교회 조사님 대답해 봐. 그 말이 한 구십 점 됐는데, 그 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알기 쉽게, 네. 점령함으로, 다 말은, 뜻은 맞은 것이오. 통치함으로 또 뭐 다스림으로 이렇게 하는데, 거게는 승리함으로, 알겠소? 거게는 승리가 제일 백 점이라. 승리. 점령은 물론 승리했으니까 점령하지만 승리라 이렇게 하면 제일 좋다 그 말이오. 자기 밑에, 자기로부터의 그 이하의 것은 자기가 그것을 싸워 가지고, 그거하고 싸워서 이겨야 되지 이기지 안하면 그것은 내것 삼지 못합니다. 또 나보다 큰 것은 내가 거게 복종해야 내것 삼지 그리 안 하면 내것 삼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자기가 이 현실에 진리는 자기보다 크기 때문에 이 진리에게 내가 복종을 하면, 진리의 것이 되면 진리는 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현실에서 진리에게 복종해서 진리를 모시고 진리를 잃어버리지 안하게 되면, 내가 그 진리와 현실에 동행했으면 그 현실은 내가 전투해 가지고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승리했으니까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진리는, 현실에, 그 잃어버린 진리는 다시는 찾지 못한다 그말입니다. 다시 찾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그 현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하지만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도 현실이 쭉 계속되지만 계속된 그것은 딴 현실이오, 딴 현실. 또 지나간 현실은 지나가 버렸고 새 현실이오. 그러기 때문에, 지나간 헌실에 자기가 가져야 할 그 진리를, 영감을, 예수님의 대속을 잃어버린 것은 그 다음에는,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찾지 못한다는 거 요것을' 우리에게 명백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네가 네 진리 네 영감 네 대속을 네가 한번 잃어버렸으면 그것은 다시 찾지 못한다, '그 다음에 또 그 진리 생활하면 되지 않습니까?' 안됩니다. 그것은 그 다음의 것이오 다음의 것이지, 한번 그것은 지나가 버렸으면, 지나간 그 현실도 그 현실에 대한 진리도 한번 잃어버렸으면 다시 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해서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이랬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자기의 이 심신의 기능이 기본구원은 그것은 다 예수님의 공로로만 된 것이고 이 건설구원 성화구원 이 심신의 기능구원은 이것은 현실 현실에서 우리갸 구원하는 것인데, 현실에 있는 기능이 그것이 진리의 기능이 되고 영감의 기능이 되고 예수님의 대속의 기능이 되면 영생을 가졌고 전능합니다. 그러면, 자기의 기능이 그렇게 전능 전지 영생하는, 모든 천상 천하의 모든 걸 다 통치할 수 있는 이 심신의 기능이 되는 것인데 그만 이 심신의 기능이 현실에서 진리를 잃어버렸고 영감을 잃어버렸고 예수님의 대속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그 현실에 해당된, 그 현실에서 전투한, 출전한 그 기능이 이 세 가지를 잃어버려서 소금이 맛을 잃었으면 다시 그걸, 그 기능이 잃은 진리를, 잃은 영감을, 잃은 대속을 그 기능이 찾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다시 못 찾습니다. 다시 못 찾아.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그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누가 들어서? 천상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짜게 못 합니다. 하나님도 짜게 못 합니다. 하나님도 짜게 못 합니다. 왜? 그 현실을, 하나님께서 다시 현실이 두 번 닥치도록 그렇게 할 그런 권리가 없고 그런 약속을 하지 안했고 그런 선포가 없어. 하나님이 전능자이기 때문에 그건 못 합니다. 불변자이기 때문에 못 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아무것으로도 짜게 할 수 없다, 절대 못 한다 그 말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요 현실에 내가 이 내 기능이 진리의 기능이 되고 영감의 기능이 되고 대속의 기능이 되면, 이 내 기능이, 진리의 기능이라면 전지 전능의 기능이요 영감의 기능이라면 전지 전능의 기능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기능이라면 완전의 기능이라 그 말이오 이 현실에 내 완전한 기능 될 수 있는 것이 내가 요 세 가지 잃어버리면 다시는 복구가 안 된다, 다시는 찾지 못한다 여게 제일 중점을 두고 말한 겁니다.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게 있으면 인제, 이 세 가지를 잃어버린, 이 세 가지를 잃어버린 그 심신의 기능은 어찌 되는가? 그거는 쓸데 없다, 그 거는 쓸데 없다.

쓸데 없는 일 했기 때문에 쓸데 없습니다. 쓸모 없는 기능입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밖에 버립니다. 예수님 안으로 자꾸 들어가서 중앙, 중심, 중심, 중앙을 향하여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다 거기서 생명에서 다 제거돼 버렸다.

밖에 버렸다 예수 안에서 예수 밖으로 버렸다, 생명 안에서 생명 밖으로 버렸다, 진리 안에서 진리 밖으로 버렸고 영감 안에서 영감 밖으로 버렸고 예수님의 대속 안에서 예수 대속 밖으로 버렸다. 이러니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그 말은 세상에서도 사람에게 천대받고 영원히 모든 피조물들에게 천대받는다. 그러면, 지옥에 있는 것들은 어떤 건가? 지옥에 있는 것은 피조물들에게 천대받는 것들이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천대받는 거는 피조물들에게, 천대받는 것은 하나님에게도 천대받고 피조물들에게도 천대받습니다.

그런데, 요 소금이 맛을 잃지 않고 맛을 가지고 있으면 그 반대로, 버리면 그렇다 하니까 가지면 정반대로 쓸모 있다,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쓸모 있는 기능이 되고 쓸모 있는 일을 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일 중에 제일 자기에게 대해서는 천상 천하에 제일 가치 있고 중요하고 큰 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시는 일, 모든 피조물들이 원하고 있는 일, 제일 귀중한 일이 무슨 일인가? 그것이 내가 소금으로 사는 것입니다. 진리로 현실올, 영감으로 현실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현실을 산 이 일이 내게 대해서는 천상 천하에 제일 큰 일이고,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창조주나 피조물 모든 존재들이 내게 대해서 원하는 일이 뭐입니까? 내지 대해서는 모든 창조주와 피조물들이 다 원하고 있는 그 일은 무슨 일이겠습니까? 그 일은, 원하고 있는 일은 무슨 일이오? 한번 대답해 볼까? 그거 원하요, 그거 원해. 요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범위를 알아서, 이걸 알고 보면 뭐 생명을, 없어질 놈의 생명 때문에 이것을, 내주겠소 뭐 하겠소? 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는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을 내놓지 안하는데, 이 커다란 적에게는, 큰 적에게는 해를 보지 안하는 데 소스락 벌거지, 소스락 벌거지, 이 사소한 일에 대해서 그만 깜박 깜빡 잃어버리고 만다 그거요, 사소한 일에. 그까짓 거는 금할라면 금할 수 있고 버릴려면 버릴 수 있고 안 할라면 안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에게 그만 이거 깜빡 깜빡 이것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때, OOO목사님이라고 하면 OO신학교 설립자요 그 사람이 초대 교장이요 이사장인데, 그분이 그때 와서 설교를 하면서 그런 말 합디다. 그런 말 하면서, '과수원에 사과 나무를 강도가 와서 거두로 벱니까 뭘로 벱더까?' 이라니까 모두 몰랐다 말이오. 모르니까, 소스락 벌거지로 다 베 버립니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 과수원의 그 사과 나무는 소스락 벌거지, 눈에 보이지도 안하는 것, 그 속에서 살살 먹어 가지고 속을 다 파 먹어 버리니까 그 주인이 와서 싹 베 내버린다 말이오 그거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이와같이 사소한 죄로 인간이 다 실패하고 다 안 된다, 그 죄를 우리가 업수이, '그까짓 죄야 회개할라면 회개하지, 뭐 그까짓 죄야 뭐 어려울 게 뭐 있는가?' 시뻐보는 그 죄로서 인간들이 다 망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들이 보면 위대한 일을 할라고, 보면 요새도 뭐, 뭐 언간히 써 먹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 해가 얼른 가 버리면 싶어. 왜? '백주년 백주년' 막 그 백주년이라 하는, 제까짓 게 백주년이면 백주 년에 무슨 공로가 있었으며 뭘 일했으며, 백주년에 오랑케노릇만 하고 항상 마귀노릇 방해노릇만 한 것이 백주년 기념이라 해 가지고 마구 그걸 이용해 가지고 무슨, 물건 하나라도 '백주년 기념으로 이 물건 내놨습니다. 백주년 기념으로' 막 이래 가지고 백주년 기념일이, 어떻게 백주년이 많은지 백주년이 얼른 지나가 버리면 싶어. 백주년이, 나는 그 해가 싫다 그 말이오 너무 사람들이 악용해 먹기 때문에.

그래서,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하는 그 말씀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우리가 한번 잃은 진리는 다시 못 찾는 다, 한번 잃은 영감은 다시 못 찾는다, 한번 잃은 대속은 못 찾는다. 아, 또 내일 있지 않느냐? 내일은 내일 몫이요, 내일 몫이요, 내일 또 내 진리이고 내일 내 영감이고 내 대속이지 지금 이 시간 잃어버렸으면 다시 찾지 못한다는 것, 그러면, 이 시간에 해당된 내 기능은 다시 살아 나지 못합니다. 그거는 쓸데 없는, 쓸데 없는 기능 됐고 쓸데 없는 일 했고 그 모든 만물 모든 존재에게 버림 당해서 다 밟히고 천대받을 것뿐이라 그 말이오 그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다시 짜게 못 한다 그 말이오.

이렇게, 이 세 가지, 성도의 맛은 이 세 가지인데, 성도가 특수한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성도의 가치는 이 세 가지인데 이 세 가지로 살면, 세 가지로 살면 쓸모 있는 일 했다. 참 모든 존재들이 기다리는 귀중한 일 랬다 또 귀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능이 됐다. 그러니까, 밖으로 버리는 데 안으로 영접해 들인다 점점 중앙으로, 주 안으로 가까이 들어간다, 이것이 들어서 자꾸 중심인 주님 안으로 들어가 가지고, 이제 예를 들 면 백번째 귀중한 것이 구십번의 귀중한 것 되고, 구십번의 귀중이 십 번의 귀중이 되고, 십번 귀중이 되는 것이, 이번 귀중이 됩니다. 이번 귀중. 일번 귀중은 누가 일번 귀중입니까? 예? 일번 귀중은 뭐이지요? 일번, 일호 귀중은 뭐이야? 그것도 몰라? 예, 예수님이 일호 귀중이라 요. 예수님이 일호 귀중이라 일호 귀중이, 예수님이 중심이라. 일호 귀중인데, 일호 귀중에 이호 귀중, 삼호 귀중이 이호 귀중 되고 사호 귀중이 삼호 귀중 되고 자꾸 이렇게, 이 세 가지 이와같이 지금 이걸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밖으로 내버리지 안하고 안으로 자꾸 들어간다, 한 번 하면 더 들어가고 한 번 하면 더 들어가고, 그러면, 이것은 우리들이 건설 해 갈 수 있는데, 제일 중심은 예수님이 됐고, 예수님의 중심을 향해서 점점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간다 그 말이오. 밖으로 버리는 거 대신에 점점 안으로 중앙으로 영접해 들이게 된다.

사람에게 밟히는 거 대신에 사람들이 다 모시고 있게 된다. 모시고 있게 된다 모시게 되는 것은 다 사람들이 바라본다 그 말이오. 거기 뭐 나올 터이니까.

거기서 뭐 나오니까 바라본다 그 말이오. 바라 봐. 거기서 뭐이 '나오거든, 좋은 게 나오거든, 뭐 거기 좋은 게 나와? 어디서 나와? 진리에서 나오지. 어디서 나와? 영감에서 나오지, 어디서 나와? 예수님의 대속에서 나오지, 어디서 나와? 자존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예수님의 대속은 자존자와 연결시켰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참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하는 것도 그거요. 빛인데, 빛이라 해 놓고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한다. 숨기우지 못한다, 이거는 숨기워진다는, 숨기워진다는 것은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숨겨도 되지만 제가 숨지 못한다 하는 그런 뜻이 중점입니다. 숨지 못한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 말씀을 어겨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놓고, 빛노릇을 하지 안하고 어두움의 노릇을 하고 난 다음에 어두움의 노릇 한 그 보응의 결과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오지 못하게 할라고 암만 애써도 네가 못 막는다. 절 대 못 막는다. 그것이 숨기우지 못한다 말이오. 예수를 잘못 믿어 가지고 잘못 믿은 그 값으로 그 징계의 멸망의 보응이 오는 것을 제가 안 받을라고 백방 노력하고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 행한 것을 그것을 아무리 잘못 행한 그 값을 안 받을라고 백 방으로, 언변으로 방어하고, 돈으로 방어하고, 지혜로 방어하고, 권위로 방어하고 암만 방어해 봤자 그 보응은 그대로 간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신앙 생활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만이 보시는 그 신앙 생활이 어떻게 됐다 하는 그 결과가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 산 위의 동리와 같이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 모든 사람이 환하게 보게 다 드러나게 되는데, 드러나게 되니까 수치스러우니까 이 드러나지 안할라고 아무리 숨을라고 애를 써도 숨기우지 못한다, 네가 숨지 못한다 그 말이오 숨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을 평할 때 벌써 그 사람을 당장 보고 '아, 위대하다' 할 것이 아니고, 일 년을 통계해 보고, 십 년을 통계 해 보고, 몇십 년을 통계해 보고, 그 사람이 벌써 예수 믿은 지 몇십 년을 예수 믿는데, 몇십 년 예수 믿은 몇십 년 신앙 생활 한 걸 통계해 보면 환하이 나온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행한 대로 갚는 이 일이 철두 철미 해서 행한 대로 보응 받는 그 보응을 제가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다 또 그것을 모든 사람이 다 환하이 알도록 다 드러나게 된다 그 말이오

또 그 다음에 비유 말씀하시기를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안하고 등경 위에 둔다. 말 아래 두지 않는다, 말 아래 두지 안하고 등경 위에 둔다 이것은, 등불 주인은 누군고 하니 곧 예수님이시요 곧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이 둥불 주인인데 이 등불을 이 못된 사람들이 가룰라고 애를 씁니다. 제가 증거한 진리라면 그 진리는 막 선포를 해 가지고 그거 진리도 같지 많은 것을 가지고 자꾸 이렇게, 찍해야 한 오십 점도 안 될 걸 이걸 가지고 이래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한 진리는 백 점 진리라도 그것은 어떻게 하든지 매장을 시켜서 가룰라고 애를 씁니다. 매장을 시켜서 가룰라고, 이단이라고 정죄도 하고 또 마구 오만 짓을 다 해도, 그러니까, 또 이 사람도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향하라 했는데, 그렇게 그 악위 세력이, 그 진리가 제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절 통해서 나타낸 짓리인데 그 진리를 다른 사람이 가룰라고 하면 제가 가리워지는 것보다도 그 나타내신 하나님이 가리워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루니까 하나님이 가리워집니까? 가리워지지 않습니다. 이런데, 사람이 헛된 걱정을 해 가지고 '하, 이단이라고 모는가?' 그 변명을 하고 자꾸 이와같이 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이오.

옳은 건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고 했으면 그만이야, 그만. 그 다음에는 뭐이냐? 주인이 등경 위에 올려 놔. 등불 주인이 등경 위에 올려 놔. 올려 놔서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보이도록 해 그러기 때문에, 자체만 바로 됐으면, 자체만 이 세 가지로 바로 되면 온 세상이 매장할라 해도 매장되지를 않습니다.

아벨은, 아벨은 이 세 가지로 바로 됐었는데, 그때 예수님이 어디 있냐? 그때부터, 양의 피로 제사드리는 것이 대속을 벌써 예표해 가지고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내나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것이라 말이오. 입어 가지고, 저거 형제 빈 들판에 죽여 버려 가지고, 죽여서 묻어 버렸으니까 누가 압니까? 사람도 그때 뭐 많이 없을 때인데. 그때도 사람 많이 있기는 있었어요. 그 기록한 것은 신앙에 관련된 아담 하와의 자손이, 가인과 아벨뿐이지 그 외에, 신앙의, 하나님의 택하지 안한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 말이오. 아담 하와가 그때 많이 낳아 놨어요. 많이 낳아 놨지만 그거는 호적에 둘 필요가 없어. 신앙 계통에 넣을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라, 그러니까, 혹 어떤 사람이 묻기를 '아, 그때 가인이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두려워한다는 그때 무슨 사람이 있었습니까?' 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까? 이래 물어. 그거 그럴싸 하거든. 그거 참 모를 거라. 그것은 신앙으로서 하나님의 택한 자도 낳아 놓고 택하지 안한 자도 낳아 놨기 때문에, 택하지 안한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택한 자는 요것만 말한 것입니다.

그때 아벨을 대신해서 나온 사람이 이름이 뭐이지? 셋, 그래. 셋인데, 셋을 낳아 가지고 그렇다 그 말은, 그때 사람이 있었지만 이제 신앙 계통으로 새로 나와야 되기 때문에 셋이 나왔다 그거요. 그 아벨이 죽은 대신에 셋을 하나님이 창조해 냈는데 그때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그걸 한 게 아니라 새로, 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택한 자로 창조하기 위해서 셋을 창조해 가지고 그때 그와같이 했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계대를 시켰다 이거요.

그랬는데, 그 아벨이 그렇게 외롭게 죽고 아무도 모르게 죽고 그렇게 천하게 죽었지만 그가 이 빛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 빛이 오늘까지 나와서, 아마 아벨 모르는 사람 잘 없을거야. 아벨은 얼추 다 알아요. 아벨이 유명해요. 그래 모두 아벨의 설교도 많이 하고 이 아벨로 말미암아 은혜도 많이 받습니다. 저도 아벨을 자주 써 먹습니다. 자주 기도할 때에 그 아벨은 이랬는데 아벨을 생각하면 나에게 힘을 줘. '이 신앙 생활 하는 데에는 바로 제일 친근한 사람도 적이 될 수가 있다.

친근한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도 미움이 될 수가 있다. 이렇게 이 진리와 하나 할 때에는 인간들에게 버림을 당할 수가 있다. 버림을 당해서 아무도 모르게 빈들판에서 죽임을 받았지만 아벨은, 아벨의 피는 이제 예수님의 피 다음으로서 능력있는 피로 그와같이 증거를 했다' 이러기 때문에, 말 아래 두지 안하고 등경 위에 둔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진리를 증거했으면 그 진리를 전파되지 않는다고, 가룬다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말하지 말아라 사람의 영은,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OO노회에서 '이는 이단이다'. 정죄를 해 가지고 노회적으로 결의를 해 버렸다 말이오. 노회적으로 결의를 했는데, 결의한 것을 가서 말하니까 그 사람들도 '아, 나는 모르고 따라갔다' 다 이라는데, 고걸 가지고 들고 나서서 말 할 필요가 없어 왜? 그게 참빛이 됐다면 주인이 등경 위에 놔 가지고 자꾸 비취게 할 터이니까 당장에 안 해도 십년 후에 비취든지 백 년 후에 비취든지 자꾸 갈수록 자꾸 빛나는데 그것 말할 필요가 없어. 그래, 그 논문 내라고 그래 쌓는데 '그거 뭐 내가 말했으면 됐지 논문 낼 필요가 없다' 그러고, 다른 사람들이 또 논문을 내면 하지만 말로 말하니까 말하고 말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는 것은, 등경 등잔불은, 등불은 주인이 등경 위에 놓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 차차 비취게 되니까, 거게 관련된 사람들은 다 비취게 되는 것이니까 그런 염려 할 필요가 없다 여게서 우리가 또 해결을 많이 짓습니다.

목회자들은 자기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증거할 때에 다른 사람이, 은혜 있는 설교 했는데 그 은혜 있는 설교를 가로막아 가지고 그것을 방해해서 자꾸 매장시키는 그런 일 할 때에 좀 안타깝다 말이오. 많이 부애가 난다 말이오 '왜 자꾸 이라는고?' 해 가지고 잘못하면 제가 그 원수의 훌랭이에 홀켜 가기 쉽소.

그래 가지고 그만 나중에 가서 진리를 매장하는 그 사람에게 점령당해 가지고, 자기는 진리를 주장하지만 실상은 진리의 적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쉽다 말이오.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 들려져요? 말귀가 알아 들려져? 이거 나 혼자 말하지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거 같애. 말귀를 알아 들으면 장 하는데 그거 그렇츰 모를까? 그러니까, 말 아래 두지 않는다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서, 자기 가 무엇이든지 옳게 해 놨는데 저 사람이 저란다고 자꾸 변명을 하고 변론을 하고 할 필요가 없어. 변론하지 말라 했어. 그러면, 자기가 뭘, 권찰들도 자기가 교인을 바로 지도하지 안했어요? 바로 지도를 했으면 빛노릇을 했어. 바로 지도해서 빛노릇을 했는데 바로 지도하고 나니까 그렇지 않다고 와 가지고 막 우겨 대서 그 사람을 미혹을 하면 천하 가 다 미혹하든지 말든지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능력 있어. 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그만 하라 이에서 지나치면 악으로 좇아난다' 그거는 자기 중심으로 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게 탈선 돼 버리고 만다. 그래놨으면, 빛을 말했으면 빛 주인이 등경 위에 둘 터이니까, 옳은 것을 말했으면 이제 옳은 것의 주인이신, 진리가 힘이 없습니까? 진리가 나보다 힘 있습니다. 진리를 매장할라면 진리 자체가 매장되지 안하요. 영감 자체가 매장되지 안하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매장 되지 안하요 예수님의 대속은 세상을 이겼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다 이겼소.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점령해 버렸소. 이러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요 말씀에서 굳게 해결을 잡으면 그런 시험에 들지 말라 그 말이오. 내가 이래 하는데 자꾸 저게 들어서 그란다고 이래 가지고 나중에 자꾸 싸워 댄다 말이오 그럴 필요가 없어. 말 아래 두지 안해요. 주인이 말 아래 못 두구로 해요. 등경 위에 높이 들어요. 높이 둬 가지고, 그거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온 집안 사람들에게 비취느니라.' 집안 사람이라, 그것은, 등불 켰는데 집안 사람에게 비취지 저 딴 동네 비취는 거 아니라, 딴 동네까지 빛이 갑니까, 어디? 딴 동네까지 빛이 안 간다 말이오 빛도 크면 먼데 가지만, 햇빛은 온 천하에 다 가지만 이제 이 전기불은 아마 백 촉을 써 놔 봤자 먼 데는 안 갑니다. 멀리는 안 가, 그만 아주 멀면 희미하이 아무 보이지 안해요.

아마 백 촉 써 놓으면, 캄캄한 밤에 백 촉 써 놓으면 한 몇십 리는 갈 겁니다.

몇십 리는 가지만 천 리는 안 가요. 천 리 그런 데는 못 간다 그 말이오.

그런데, 자기 집안 식구라, 그러면, 요 집안 식구라 하는 것이 그게 뭐이냐 하면 저거 식구라 그 말이오. 저거 식구 빛의 주인의 식구인데 곧 그 등에 속한 식구라, 그 둥에 속한 식구, 이 방에는 이 등 쓰고 저 방에는 저 등 쓰고 했는데, 등불이 자기가 환하게 비춰서 환하게 사람들을 밝게 할 그 책임을 가겼는데 책임 가진 그 범위 내의 사람들에게는 환하게 빛을 비취느니라. 이러니까, 비취는데, 그 집안 식구라 하는 그것을 해석을 자기 빛에 해당된 사람이라 그 말이오 자기 빛에 해당된 사람이라. 요게 아무나따나 자꾸 끼어 맞추는 게 아니고 요게 해석이 바로 된 것입니다. 자기 빛에 해당된 사람이라. 일곱 별에 해당된 금 촛대라, 자기에게 해당된 사람이라.

그런데, 그러면, '온 식구에게 비취느니라' 비취면, 그러면,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두움 속에 있습니까 빛 속에 있습니까? 예? 그 방안에 있는 사람이 어두움 속에 있소 빛 속에 있소? 빛 속에 있다 말이지, 빛 속에 들었지 안했고? 빛 속에 들었는데, 이 사람 하나 빛이 되니까 그 온 방안은 빛 속에 들었다 여게 지금 큰 진리가 있다 말이오. 자기 한 사람이, 이 빛이 세 가지 빛을 나타내고 있으니까 자꾸 이거, 뭐 조그만한 거 켰다가 자꾸 촉수을 돋우라 그 말이오.

촉수를 자꾸 돋워요. 촉수를 돋워서 온 방에 환하이 밝도록만 자꾸 돋워. '돌리게 하라' 그 말은 돋워라 그 말이오. 자꾸 돋우니까 이제 온 집안 식구가 환한 빛 속에 있습니다. 자기 하나가 빛을 발했는데 그 빛이 약하면, 빛이 약하면 방 안에 깜깜하다 그 말이오, 빛이 약하면 성냥불 딱 켜 가지고 그 불이 탐박 꺼지고 나면 그 다음에 성냥 그트리기 잿덩어리에게 불이 붙으면 그거 똑 뭣만합니까? 벼룩만하지요, 벼룩. 고걸 벼룩불이라 해, 벼룩불. 벼룩만 해 벼룩만한데 그것 빛은 빛이지만 작아 놓으니까 방안은 깜깜하지 그거 있으나 없으나, 소용없다 말이오.

그러나, 이게 한 삼십 촉 쯤 되면 어북 환하고 백 촉 되면 굉장히 밝다 그 말이오.

그러면, 네가 빛을 많이 발하면 네게 속한 식구들이 아주 더 밝은 빛 속에 살게 된다. 그러면, 빛 속에 있다 말은 진리 속에 있다 말이오. 영감 속에 있다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 속에 있다 말이오. 대속 속에 있는데, 너 하나가 바로 되면 그 모든 것이 다 바로 돼진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그걸 고칠라고, 그걸 고칠라고 거게 애쓸 게 아니라 네가 자꾸 빛만 자꾸, 빛만 돋구어라. 도수만 돋진라, 열의 도수만 돋구어서 자꾸 이재 일 촉이 십 촉, 삼십 촉, 백 촉 이렇게, 삼백 촉. 이래 놓으면 굉장할 거라, 뭐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뜨거워서 못 견딜만치 그만 이렇게 환하이 밝아질 거라. 빛 속에 있게 된다. 또 빛 속에 있게 돼 가지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 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영광 돌리는 사람 된다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이 대속의 은혜를 깨달았으니까 영광을 돌리니까, 감사가 있어야 영광 돌리는 거 아닙니까? 감사가 있고, 또 그 은혜를 저거가 받았기 때문에 영광 돌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네게 속한 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의,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변하게 까지 된다. 너 하나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네게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까지도 변화될 수 있다. 영광의 찬미라 말은 그게 그만, 그 사람들이 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영광의 찬미가 돼 버렸어. 영광의 찬미 됐으면 그 이상 된 게 없어. 완전히 됐다 그 말이오. 완전이 된다 이거요.

이래서, 네 자체를 구원하는 데에는 이 소금이 맛을 잃지 말아라,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는 네가 빛을 나타내라. 이 세 가지를 나타내라. 나타낼 때에 다른 사람들이 가룰까 염려하고, 뭐 가룬다고 그 시비 하다 보면 네가 빛이 까무라져 버리고 안 된다. 주인이 둥경 위에 두니까 너는 그런 책임 없어. 가루거나 말거나 그런 거는 책임을 가질 필요가 없어. 책임을 가질 필요가 없고, 자꾸 빛만 발해요.

빛만 발하면 어디까지 성과가 있겠느냐? 그들이 다 환한 빛 속에 있고 전부 어두움을 다,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빛 속에 있게 되고, 또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 그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된다.

네게 속한 사람을 구원하는 방편이 이것이요 네 자체를 구원하는 방편이 이것이라고 자체 구원을 소금으로 비유했고 다른 사람 구원을 이 등불로 비유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회가 있습니다. 결혼 상담회 그거 자꾸 읽어요.

오늘은, 요번 상담회는 남반만 읽고 요다음 상담회는 여반만 읽고 이래 가지고, 자꾸 주루룩 읽으면, 그라면 거게 대해서 스톱을 해 가지고 자기가 신청을 합니다.

이런데, '이 결혼 상담회 거기서 결정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도 되는 수가 있어. 이래도 결혼 상담이라고 모이기 때문에 거기서 결혼이라는 말이 자꾸 이래 떠올라 가지고 이 모든 일이 되어지는 것이자 꼭 거기서 뭐 된다고 되는 거 아니라 말이오.

우리 OOO집사님 한 달에 사만 원씩 전도비를 꼭 줍니다. 주면서, 호별 방문 전도하라 해. 호별 방문 전도해야 전도 한 사람도 해서 교회 인도 한 사람 없을 거라. 없어도 자꾸 그렇게 전파함으로서 이제 이게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사람이 범위 좁게 말고 자꾸 돌아다니며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 이래 함으로써 이제 그것이 복음 운동이 돼 가지고, '어디 다닙니까?' '서부교회 다닙니다.' 자꾸 이래 가지고 이제 복음 운동이 자꾸, 직접으로 간접으로 간간접으로 간간접으로 뭐 백 번이나 간간접으로 돼 가지고 되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범위에서, 조브랍게 생각지 말고, 모든 일을 해야 된다 그거요.

결혼 상담회 필요한 사람들은 가서 참석을 해요. 참석하면, 신랑 구할 사람 그리가고 처녀 구할 사람 그리 가고 다 가면 돼요. 지난밤에도 두 쌍 결혼식 했는데 그것 다 모두 결혼 상담이라 하는 그런 말 한 마디를 가지고 모두 그런 데 관심을 가지고 자꾸 일을 해서 자꾸, 일이 돼지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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