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빛


선지자선교회 1980년 2월 29일 금새

 

 본문: 마태복음 5장 13∼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 그리스도 인들의 직책을, 직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두시는 이유는 소금으로 쓰시기 위해서 두시고 빛으로  쓰시기 위해서 두십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무엇이 될 것인가,  세상의 미혹이 될 것인가, 세상의 사망이 될 것인가? 세상의 구원이, 구원이  우리는 세상의 구원이 되기 위해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금으로 빛으로 쓰시기 위해서 세상에 두셨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소금으로 빛으로 쓰실 때에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로 인해서 소금을 가지게 되고 빛을 가지게 됩니다.

소금으로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모든 세상에게 전하여져서 세상이 구원  얻게 하는 것을 비유하신 것이고 또,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으로 세상을 이 구원으로 밝게 하기 위해서 이 구원으로 세상을 어두운 세상을  밝게 하기 위해서 어둡고 밝은 것도 하나의 비유로 쓴 말씀입니다.

  세상이 모두다 비뚤어져 어두워진 잘못돼 어두워진 거짓되어 어두워진 세상에게  바르게 옳게 깨끗하게 참되게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두셨고 또,  우리로 인하여서 세상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금으로 빛으로 비유한 것은 다 예수님의 구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6가지 구원. 사죄의 구원, 칭의의 구원, 새생명의 구원, 하나님의 자녀의 구원,  하나님의 법칙으로 생애법칙을 삼게 되는 구원, 하나님의 백성인 구원, 이 구원을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주셨고 이 구원을 받은 자는 이 구원으로  하나님이 두신 것을 가르쳐서 주인이 소금으로 빛으로 쓰시기 위해서 두셨다 하는  것이요.

 또, 이 6가지 구원으로 우리가 삶으로 인해서 세상이 이 6가지 구원으로 감동  받아 이 구원을 받아 세상이 또 구원을 가진 자가 되고 또 이 구원을 받아 세상도  모든 사망을 벗고 생명과 평강에 이르게 되는 이것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맛을 잃으면 짜게 못한다, 말 아래 있는 등불은 필요 없다 이런 말씀은 우리  기독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구원으로만 어디서든지 쓰여지고 이 구원만  세상에게 주기 위해서 사는 것이지 달리 사는 것은 아닌데 기독자가 이 6가지  구원으로 살아 이 구원을 세상에게 주는 여기만 쓰여지는 것인데 여게만 쓰여지게  되면 세상 사람들에게만 아니고 모든 만물들에게도 다 필요하고 환영하고 존대를  받을 수 있는 것들이요,  만일 기독자가 이 6가지 구원으로 살아 세상에게는 6가지 구원을 주고  하나님에게는 이 6가지 구원으로 세상에서 이용되도록 거룩하게 쓰여지도록 이렇게  되면 한없는 존귀한 자고, 만일 기독자가 이 구원으로 쓰여지지 안 하면 맛 잃은  소금이라. 그는 제가 일시에 온 천하에게 환영을 받고 존대를 받아도 결과적으로는  모든 존재들에게 해독을 끼친 자요, 필요 없는 자요, 버림당할 자요, 천대받을  자가 되는 것이고 구원으로만 살면 금생 뿐만 아니라 내세에 무궁에까지  예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에게 보배로움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보배로움이 되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게, 이렇게 구원으로 살 때에 하나님에게는 보배롭게 쓰여지는 쓰여진 자가  되고 또 이 구원으로 살 때에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보배로운 필요한 것이 됩니다.

그면 우리가 구원으로 살 때에는 보배롭게 쓰여진 자가 되고 또 세상에게는 예수님  다음으로 모든 존재에게는 보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어떤 혁명가로, 어떤  정치가로, 어떤 사업가로, 어떤 문화건설가로, 자선가로 무엇으로 세계에 유명한  사람으로 무엇으로 살려고 했든지 기독자가 이 6가지 구원으로만 세상에게도  쓰여지고 하나님에게도 쓰여져서 6가지 구원으로만 살면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구원이 됩니다.

 기독자가 6가지 구원으로만 살면 세상의 구원이 됩니다. 세상의 저거 구원이  됩니다. 세상의 저거 구원이 되는 것이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

세상들에게 우리가 아니면 빛이 없는데 우리로 인해서 저들이 빛을 가지게 되고  우리로 인해서 저들이 소금의 간을 가지게 되고, 아무리 깍두기를 담는다 할지라도  소금이 없으면 그 깍두기는 싱겁지마는 소금이 들어가면 그 온 깍두기에 소금  간물이 배어서 맛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우리는 세상의 구원입니다. 세상 저거들의  구원이요, 우리가 없으면 저거들에게는 구원이 없어요. 우리로 인해서 저희들에게  구원이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구원이라. 우리는 세상의 구원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구원으로 쓰십니다. 게, 우리로 인해서  세상은 구원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이것으로만 쓰여질 자인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가 다른 데에 쓰여질 수 있는 자인 줄 알고 다른 데에 유력하게 유명하게  쓰여지면 저 할 일 잘한 것으로 아는 그 자는 완전히 악령에게 삼켜져 있는  것입니다.

  기독자는 어떤 유력한 정치가가 되어 정치를 할지라도 저는 정치하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자가 아닌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유력한 정치가라는 정치가된  그 정치라는 것은 제가 그 정치 그것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으로 하나님에게  쓰여지기 위해서 어디서, 정치 그 자리에서 구원으로 쓰여지기 위해서 또 정치  그것을 통해서 세상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형편, 저런 사정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처지라는 그것은  소금으로 빛으로 직책을 할 수 있는 그 위치요, 그 위치 위치니까 그 우리 할 것  아닙니다. 그 위치에서 소금노릇하고 빛 노릇 할 우리들입니다.

  마치 비유컨데 어떤 주부가 김장을 하려고 이제 소금을 가질려고 합니다.

주인이 김장할려고 소금을 마련했습니다. 마련했는데 다른 소금은 간장 같으면  물에 들어가는데 이거는 채소에 들어갑니다. 채소에 들어가면 그면 채소에  들어가면 그 채소에는 소금하고 채소하고 두 가지가 한데 합해졌습니다.

합해졌으면 마지막에는 소금하고 채소하고 하나가 되어 버렸지요. 하나가  됐겠습니다.

 그러나, 근본 그 본질과 본성 근본은 소금이 채소가 되고 채소가 소금이 되고  이렇게 바꾸어집니까? 언제든지 채소는 채소대로 있고 소금은 소금대로 있어.

소금은 그 채소에게 소금으로 배어있는 것이지 소금이 채소 된 것 아닙니다. 또,  채소에게 소금이 배어 있으니까 채소를 먹으면 간이 들었지, 그 채소가 소금 된  것은 아닙니다. 소금은 소금대로 거게서 간이 밸려면 간은 뽑을 수 있습니다.

뽑으면 채소만 남습니다. 또, 짜운 김치에서 간이 밸려면 간만 뽑아서 간만 뽑으면  채소만 남고 채소만 뽑으면 간만 남습니다. 게, 간이 채소 되고 채소가 간 된 것은  아니란 그 말이요, 한데 이래 끼이지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러면 한번 물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아주 큰 사업가로서 대사업을  합니다. 대사업을 기독자가하고 있습니다. 그면, 대사업을 하고 있는 대사업은  보니까 그 사업을 하는데 그 사람이 참 기독자로서 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업은 소금에 속한 것입니까? 사업은 비유컨대 사업은 소금입니까?  채소입니까? 그 사업은 소금입니까? 채소입니까? 여반에 그 사업은 소금이요,  채소요? 그 사업은 소금입니까? 채소입니까? 그 사업은 소금, 또 남반에는 채소.

그러면 어느 것이 맞는고? 한쪽 편은 그 사업은 채소라, 한쪽 편은 그 사업을  소금이라. 어느 말이 맞는지 한번 물어봅시다.

 그러면, 그 사업이 소금이라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봅시다. 한 사람도  없네요. 그 사업은 채소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예.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업은 채소 같지요.

 그러면, 그 사업에서 그 사람이 사업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인데 주인이 맡겨  준건데 채소는 주인이 소금하고 한데 합하게 만들었는데 그 사업에서 자기는 소금  노릇만 할려고 하는 그것은 구원노릇만 할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 사업, 우리가 그 사업이  됩니까, 사업이 우리가 됩니까? 우리가 거기서 구원이 됩니까, 구원이 우리가  됩니까? 그 사업에서 우리 기독자들은 무엇이 됩니까? 사업가가 됩니까, 소금이  됩니까, 구원가가 됩니까? 우리는 거기서 구원노릇 하는 것이 우립니까? 거기서  사업노릇 하는 것이 우립니까? 예, 우리는 구원노릇 하는 것이 우리요.

 그러면 그 사업은 이런 사업, 저런 사업은 누가 자기에게 만나게 한 것입니까?  한번은 소금에다 갔다가서 무를 대 가지고서 여게서는 소금하고 물하고 섞어서  소금을 녹이더니마는 또 한군데는 가니까 채소하고 또 소금하고 한데 만나게 해서  또 소금을 녹게 합니다. 또 한 군데는 가니까 죽을 쒀 가지고 그 죽하고 또  소금하고 한데 만나게 해 가지고서 소금을 녹게 합니다.

 그러면 그 소금이 어떤 때는 죽 만나서 죽하고 만나게 되고, 어떨 때는 채소를  만나게 되고, 어떤 때는 그 맹물을 만나게 되고 어떨 때는 떡 반죽을 만나게 되고  어떨 때는 고기를 만나게 되고 여러 가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러면 만나게 되는  그것은 소금이 제가 이것을 찾아가서 만나게 됐습니까? 그것은 누가 그렇게  소금에게 만나게 해줬습니까? 주인이 소금이 그것을 오라해서 그렇게 만난 것이  아니고 주인이 그렇게 만나게 해줬습니까? 예. 주인이 만나게 해줬습니다. 요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면 떡 반죽, 물, 고기, 채소, 생선 별 군데 갔다가서 또 사람이 약할 때에 그  링게르 그것도 만들려고 물에 접촉해 가지고 그걸 또 만난다 말이요. 여러 가지를  만나는데 그면 소금에게 여러 가지를 어떨 때는 이것 만나게 하고, 저것 만나게  하고 그저 이렇게 자꾸 여러 군데 소금을 쓸라고 만나게 합니다. 그면 소금이  여기도 쓰여지고 저게도 쓰여지고 여러 군데 쓰여지는데 여러 군데 쓰여지는 죽,  밥, 떡, 채소, 물, 여러 가지 만나게 된 그것은 비윤데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대해서는 어떤 것입니까? 채소니 또 물이니 고기니 이래 여러 가지를 이 소금이  만나게 되는데 그런 것은 비윤데 그런 것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비유해서 그런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까? 현실, 우리에게 무엇이지요? 우리 현실이라는 그것이  답이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예. 맞습니다.

  게, 현실이라는 것은 어떨 때는 사랑되는 현실, 어떨 때는 또 자기가 예술가,  문화가, 무슨 민족가, 또 호주, 그 가정에 호주 호주입니다. 그 가정에 호주가  됐습니다. 그만 호주가 된 그 호주는 소금 편에 속한 소금 편에 섰겠습니까? 그  채소나 고기나 생선 그런 것 편에 속했습니까? 어떤 것입니까? 자기가 호주 됐으면  호주 된 그거는 뭡니까? 소금입니까? 소금이 만나진 그겁니까? 소금이 만나진 물건  그것이지요. 예,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거 저런 거 하는 것을 제가 해서 된 줄로  아는 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자가 세상에서  어떤 것을 하려고 한 그대로 된 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작정 그대로  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그것을 인간의 마음속에 소원이 되게 하시고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의 뜻을 사람에게 넣어서 사람이 그것을  소원하게 하고 그 소원하게 하고 하나님이 그 소원하게 한 소원을 통하여 그  사람을 통하여 그것을 이루니까 이루어졌지. 하나님이 안 하시면 안 된다 말이요,  요것을 세상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두고 사람이 그것을 소원하게 사시고 소원한 것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그것을 이룬다 말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뜻을 사람 안에 두고 사람으로 하여금 소원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란 말이요. 그면, 자기가 세상에서 어떤 처지,  형편, 지위, 권세, 사업, 다소의 양, 모든 총명, 모든 질 이것을 가지게 된 그것이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것을 닥치도록 예정하셔 가지고 섭리해서 그대로 닥친  것입니다. 고대로 닥친 것이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무엇 되도록 하는 소원을 넣어  줘 가지고 고대로 하니까 그대로 됐단 말이요.

 되는 그것이 하나님 그렇게 그 사람에게 마치 주인이 소금에게는 채소를 갔다가  채소를 채소에게다 쓸라고 채소를 옆에 갔다가서 붙여서 섞고, 이 소금은 간장  만들려고 물을 갔다가 이 소금에 이렇게 접해서 섞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주인이  이 소금을 두고 이것도 갔다가서 대고 저것도 갔다가서 대서 소금을 여게도 갔다가  뿌리고 저게도 갔다가 뿌리고서 쓰여지도록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이 하여서  소금과 또 그게 접하는 것과 또 빛과 빛이 비치울 모든 접하는 것들과 이것을  분별해서 구별해야지,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돈 되면 안됩니다.

  나중에 그렇게 섞으니까 소금이 채소 되고 채소가, 소금 되고 한데 섞었습니다.

그러나 근본 요소는 다릅니다. 근본 요소는 그것은 요소가 변해진 것 아니요.

요소가 변해진 것 아니고 요소가 서로 갔다가 배어 들어가서 합해졌습니다. 빛이  비취니 모든 것이 환해졌소. 빛과 빛에 조명의 받아 반사되는 그것과 빛과 다르단  말이요. 빛의 요소와 모든 그게 그로 인해서 환해진 것들에 요소와 언제든지  엄연히 꼭 따로 있지 혼합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변질된 것 아닙니다. 혼합돼서  그렇지 이 요소가 바꾸어진 것이 아니란 말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디서든지 우리는 빛의 요소요, 소금의 요소입니다.

구원의 요소요, 구원의 덩어리요, 구원 요소, 구원으로 되어있는 구원 요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데 저런데 활동하게 된 그것은 마치 소금에게 다른 요소를  갔다가서 한데 합해서 붙어지는 모양으로 구원으로만 되어있는 우리에게 이런 거  저런 것을 우리에게 접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으로 시작을 할 때에 구원으로 녹아질  때에 이것이 구원이 그들에게 베기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떤 그 사업을 하면  예수 믿는 구원이 다른 사람이 그 구원을 하는 데에는 그 사업만 있는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사업을 하면 그 사업에 이 구원이 배 들어가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이  정치를 하게 되면 그 다른 사람 정치와 달라서 다른 사람 정치하는 데는 정치만  이제 하고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예수 믿는 구원이 그 정치에 베  들어가기 위해서 정치하고 있는 그것이라 말이요.

  기독자는 이 구원의 요소뿐입니다. 구원의 요소, 구원으로 된 이 구원요소  뿐인데 이런 거 저런 거 접하는 것이니 이것을 분별해야 되지. 기독자가  구원요소를 버리고 말이요 구원인 이 요소를 버리고 자기가 사업가나 민족가나  혁명가나 정치가나 예술가나 뭐 문화가, 무슨 갔다가서 사업가나 자선가나 그런  것이 그런 것을 하는 것이 제일인줄 알고 그것이 저 할 일인 줄 알면 헛일했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고 다만 거게서 기독 자들은 구원으로만  녹아질 것 뿐이요, 구원으로만 녹아지면 그것이 기독자의 본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3가지를 똑똑히 구별할 것. 빛과 소금의 그 자체가 있고 또  이것들이 쓰여지는, 쓰여지는 물이나 채소나 무엇이든지 또, 그 자체가 있고  완전히 두 종류입니다. 이런데 이 2가지를 합하게 하는 분은 주인공이라. 합하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 이 3가지를 똑똑히 구별해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구별하지 안 하고 혼합해 버려요. 이것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가 자꾸 속화가 되어져가고 섞여져 갑니다. 이렇게 구별할 자는  성도인데 구별하지 않는 사람은 실컷 산다고 하는데 그 사람 예수 잘 믿는다고  했는데 가서 보면 도덕주의요, 정치주의요, 민족주의, 문화주의, 그라면 박애주의  그 아닙니까? 기독교 같지마는 완전히 그것은 악마와 마귀의 큰 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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