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결국과 우리 소망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6일 월새

 

본문 : 벧후3:6-14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는 노아 홍수 때  멸망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이 우주는 "그 동일한 말씀으로 그  같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흥수로 멸하신 다고 한 그대로 멸망받은 것처럼  또 하늘과 땅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그말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하늘과 땅 이거는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해 있다. 불사르면 원소까지 다 없어 지는 것은 아니고  모든 형태를 불살라서 개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슬린 것이 있는 그런 우주는 어떤 것이든지 그 형태를 다  변개시켜 버립니다. 이 물질의 요소는 없어지는 것 아니고, 마치 아름다운 꽃이  썩어서 흙이 되고 또 흙이 변하여서 고기도 되고 사람의 육체도 되고 꽃도 되고  풀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원소는 그대로 있지마는 이 모든 종류와 형태는 완전히  개조된다 하는 그것을 말합니다.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그러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  세상의 모든 것 있는 것 이것은 일단 불로 한번 개조돼서 전 형태가 더 존영한  형태로 개조되는 것도 있고 전 형태를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고 그 원소 가지고  아주 딴것으로 개조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우리가 일하고 있는 회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장도,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나라도, 사회도, 내 소지 품도 모두가 다  한번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일단 죄악이 섞인 것은 다 멸망을 받아 그  형태까지 완전히 소멸돼 버리고 죄악이 없는 깨끗한 것은 더 존귀하게 개조를  합니다. 이래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오든 것이 한번 불타버리고 그것이 아주 좋게  개조될 것도 있고 아주 멸망해서 그 원소만 남아 있지 완전히 그 형태는  하나님이 분개해서 완전히 소멸시키는 그런 것도 있을 것인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언제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환경에 속한 모든 것은 이것은 그대로 소유할  것이라 가만히 있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오늘이라도 주님  오시면 그런 게 변화돼 버립니다. 이러니까 거게 소망을 두지 말라 그말이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움직이는 데에 속했으면 그것이 더 좋게 새로와지고  하나님에게 대한 움직임이 아닌 것은 아무리 좋아도 전부 다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간수하신 바 되어" 그러니까 이것이 불탈 것이라는 것, 멸망할 것 이라는 것  이것을, 아무리 자기가 가정에 어떤 장식품이라도 자기 어떠한 요긴한  소지품이라도 이거는 오늘 불살라질지, 오늘 이것이 아주 승격돼서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서 개조가 될 것인지, 이게 오늘 나와  상관이 없이 완전히 끊어져 버릴 것인지, 이것이 오늘뿐 아니라 영원히 개조돼  가지고 나에게 지금보다 더 필요 있는 것이 되어질 것인지 하는 그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됩니다.

 자기에게 닥쳐진 모든 만물을 자기가 하나님 섬기는 데에 경건을 이루는 데에  이용을 했다고 하면 그 소지품은 더 온전해지고 깨끗해 지고 새로워져 가지고  그것이 영원히 자기의 소지품 되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단스는 단스로 개조될 것인가? 또 자기가 필요한 어떤 무슨 참 좋은 그  보배는 그 보배로 개조될 것인가? 그것은 모릅니다. 개조되는 데 대해서 씨를  심을 때에는, 씨를 심을 때에는 그 씨와 나 가지고 자라는 그 형태는 다르다.

씨는 작은데 자라는 형태는 커지는 것도 있고 씨는 큰데 나 가지고 자라는  형태는 아주 작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자는 따로 있습니다.

 이 종자는 나면 이런 것 되고 저 종자는 나면 저런 것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칙에 "네가 이것을 이렇게 이용했기 때문에 이게 소멸되지 안하고 개조가 되되  그 개조가 네가 이것을 이렇게 취급했기 때문에 이렇게 개조돼 가지고 너에게  이용당하고 필요한 네 소지품이 되고 네가 이렇게 이용했기 때문에 그 개조가 또  저렇게 개조돼 가지고 너에게 네 소유와 필요의 것이 된다." 그것은 자기가  땅위에서 의롭게 사용한 그 종류와 성격과 가치와 그 모든 게 하나님의 법칙에  맞추어 가지고서 그대로 이제 변화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물도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뭇자녀 들이  자유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자유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니? 하나님의  뭇자녀라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들이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대로 사는 것이  저들의 소원이지 중생된 그것이 죄짓는 것이 소원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뭇자녀들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하고 탄식하 면서 기다리고 있다  그말은 중생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고대하고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뜻대도 살면 뭐할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거기에 동참하고 이용된  것들이 다 영원히 새로와져서 영생을 그것도 얻지마는 임시 주인된 인간이 잘못  살아 이용돼 버리면 그때에 해당된 모든 만물은 완전히 멸망을 받고 맙니다.

 이렇게 모든 관련된 소지품 이용물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들의 그 생활에 따라서  그의 영원한 장래가 결정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 들이 하나님의 뭇아들들이  자유하는 걸 기다리고 있다" 자유한다 말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 그말이오. 영감과 잔리를 떠나 사는 것은 제 소원이  아니라.

 "간수한 바 되어" 그러면 그 모든 것이 그렇게 간수돼 가지고서 뭘 하는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이제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존해 두시고  얼마든지 먹고 입고 쓰고 제 맘대로 접촉해서 살고 만물은 저에게 복종을 하도록  이렇게 해 놓은 이유가 뭐이냐? 그 이유가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이렇게 만물을 제 맘대로 취급하고 또 저에게 복종하고 이용하니까  이것 참 저는 얼마나 존귀한 것이라 이렇게만 생각하고 만물을 으례히 얼마든지  제 자유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지마는 만물은 인간에게  속해서 심판을 받고 인간은 그 사함이 만물을 사용해 가지고 경건을 만드느냐  불경건을 만드느냐 그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만물은 그 사람이 세상 걸 많이 먹고 쓰고 접촉하고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인간이 불경건을 마련했으면 거게 소속한 모든 만물은 완전히  소멸돼서 그 형체가 전혀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경건을  마련했으면, 그게 참 하나님의 아들로 자유를 했으면 거게 소속한 것은 전부  "만물을 새롭게 한다" 할 때에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경영과  보응이 있는데 이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욕심쟁이는 세상을 자꾸  끌어당기기만 당기면 되는 줄로, 또 어짜든지 제 욕심대로 많이 이용만 하면  되는 줄로, 많이 제 목구멍에 넘기기만 넘기면 되는 줄로 이렇게 사는 이것이  세상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무식한 어두움에서 나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무식하게 살 우리들은 아닙니다.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 이니라  멸망할 자는 멸망을 이루도록, 멸망의 그릇이 다 차도록 또 구원은 구원의  그릇이 차도록, 경건은 경건의 그릇이 차도록 불경건은 불경건의 그릇이 차도록,  자기가 경건을 하나 했든지 둘 했든지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의 멸망과  새롭게 되는 그것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을 알고 우리만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됩니다.

 경건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그것이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옳게 살아진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것이 경건이요 경건한 자에게 무궁토록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는 그런 것들이  다 자기의 구원이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써는 안 되지마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주님의 공로와 또 주님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온 것 뭐 있습니까?  크게 말하면 두 가지 있는데 뭣 왔습니까? 주님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온  선물이 뭐입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 말씀 듣고 행하지 안하니까 귀를 꽉 막고  눈을 가려서 도무지 못 깨달아. 도인이 안 돼. 이러니까 아무리 교회에 나와도  하나님의 도가 그 속에 들어가지 안하니까 이것은 뭐 몇십 년 돼도 항상  육덩이라 옛사람.

 이 진리를 깨달으면, 이 진리를 깨달으면 이 진리를 버리고 딴데 절대 못  갑니다. 죽어도 못 갑니다. 진리를 깨달았으면 제가 못 갑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는 아무리 여게서 몇십 년 있어도 소용이 없고 또 무슨 직분을 가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권찰 자체들도 그렇고, 남녀 권찰 자체들도 그렇고 또 자 기가 기르는  사람도 이거는 진리를 깨닫나 못 깨달나 그것을 가지고 못 깨달으면 그거는  언제든지 쭉정이입니다. 쭉정이인 줄 알고 그것을 취급해서 언제든지 알맹이를  넣어 주도록 노력해야 되겠고 또 쭉정 이니까 그게 언제든지 날아갈 것이니까  날아갈 줄 알고 단속을 해야 되지 그것을 모르고 하면 큰 손해를 당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그 일을 스스로는 할 수 없지마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못 할 게 없어. 피의 공로로 날미암아 우리에게 온 큰  선물 은혜 둘이 있는데 뭐입니까? 진리. 성령. 성령은 하나님이시요 진리는 또  천지를 창조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참된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과 진리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 구원을 이루도록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진리를 내가 버리지 안하고, 진리를 모시고 진리의 슬하에 진리의 그  나래 아래에 떠나지 안하고 거게 소속해 있으면 그 진리가 일해 줍니다. 영감이  일해 줍니다.

 우리가 영감을 사용하는 것 아니고 진리를 사용하는 게 아니고 진리 그늘 밑에  피난하는 것이오. 영감의 품 안에 안기는 것이오. 진리는 뭐인데? 내가 바른  이치를 깨달은 그 이치는 내가 아니고 그 이치를 깨달은 그 이치가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그 능력을 가진 이치기 때문에 내가 깨달은 것은 그 이치를  예수님의 피를 인해서 나에게 그 이치가 찾아온 것이니까 그 이치를 깨달은 것이  그 이치가 찾아왔기 때문에 내가 그 이치를 만난 거라. 그 이치를 만난 것은 그  이치를 영접했어.

 이라니까 아무리 세상이 그 이치를 버리라고 해도 그 이치를 버리지만 안하면  내가 깨달은 그 이치는 버리라고 있는 천하에 있는 권세 다보다 그 이치는  지극히 능력이 커. 그 이치를 버리지 안하고 그 이치의 그늘 밑에 딱 피난하고  있으면 아무리 피조물이 어떻다 해도 해하지 못합니다. 움직이면 도움이나 됐지  해하지는 못하요.

 또 나에게 감동된 성경대로 옳은 감동된 그 감동이 성신의 감화라. 옳은 감동  그게 성신의 감화인데 그 감동은 하나님이 내게 찾아와서 나를 깨워 가지고  미련하고 둔하고 강퍅한 나에게 성령이 와 가지고 깨워서 감동시켜서 내가  깨달아진 것이라 그것이오. 그러니까 내가 진리에 대해서 감화를 받아 깨달아진  것, 또 나에게 믿어지는 것, 또 나에게 소망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와 가지고 나에게 역사해 가지고 그와 같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게 막바로 전능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마귀란 놈은 '그것은 네가 깨달은 것이다. 네 생각이다.' 자꾸 네  생각이라고 그렇게 미혹을 줍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오. 그것이 하나님이신  성령님이오. 그 깨달은 이치가 전능한 능력을 가진 참된 이치요, 진리요.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말아라" 성령님이 너에게 찾아와  가지고서 너를 일깨워서 너를 붙들고 "나와 동행해서 네 옳은 길을 다 걸어가자  하는 그 성신의 감화가 왔을 때에 네가 그 감화를 집어던지는 것이 성령을  배척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감화를 버리지 안하고 그 감화를 모시고, 그 감화는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이 오셔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감화를 버리지 안하고  그 감화에게 복종만 하면 전능자와 동행하는 것이라.

 우리가 이것은 믿어야 되는 것이지 뭐 다른 것 없습니다. 믿으면 역사가 되고  안 믿으면 버리게 됩니다.

 예수 믿는 이치를 배워 가지고 바로 믿으려고 하면 자기가 점점 진실해져야  되고, 또 자기가 점점 세밀히 구별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되고, 또 자기가 점점  모든 것이 다 정확하고 '올바른 이치대로 심판이 있다, 반드시 따지는 그런  검사가 있다.' 자꾸 이것이 자기에게 알려져서 아무나따나 그만 얼렁뚱땅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점점 돼 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안하고, 불 속에도 계시지 안하고, 바람  속에도 계시지 안하고 어데 있다고 했습니까? 어데 계십니까? 세미한 음성 속에.

고요히 묵상하는 그 묵상으로 만난다 그 말이오.

 자, 마귀는, 마귀는 어떤 데 있습니까? 조용한 데 있습니까 떠드는 데  있습니까? 마귀는 떠드는 데 있습니다. 큰 마귀 작은 마귀 조그만한 마귀,  조그만한 점쟁이도 하면은 그걸 그래. 뜻땅뜻땅 뜻뜻뜻뜻 이래 가지고서 그만  어쨌든가 사람들이 마음을 둥 떠서 옳은 정신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진실되게 세밀하게 공평되게 이렇게 고요히 명상하고 묵상하고 또 이성 비판을  가지도록 하지 못하고 그만 이성도 잃고, 양심도 잃고, 정확도 잃고, 세밀도  잊어버리고 둥둥거리면 떠 가지고서 그 사람이 둥 떠서 바람이 들어 가지고서  걸잡을 수 없도록 그런 사람으로 자꾸 만든다 그거요.

 그러니까 떠들거든 마귀 역사하는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떠들면. 지금은 그런  것을 다 소탕했다 하는데 그런 것도 소탕 않고 그런 것 냅두는 게 좋은 건데,  공연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뭐 미신 타파니 뭐니, 미신 그게 있어야 기독교도  있습니다. 미신 그것도 신비한 것이오. 신비한 것을 다 버리거든 공산주의를  지금 향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

 저 금정산에 가면 여기 뚱뚱뚱뚱 땅땅땅땅땅 밤새도록 하는 그게 뭐이냐?  그것이 마귀역사인데 그럼으로써 기독자들은 참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고 사람을 전부 과학화시켜서, 과학화 시키려 하는 이것이 전부  물질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종교성을 다 박멸하려 하는 것이고 신비성을 박멸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모든 미신 타파 뭐 이종교 어짜고 하는 그것이  좋은 운동인 줄 알아도 그게 내나 마귀 운동이라. 알겠어? 과학 운동이 마귀  운동의 대가리 입니다.

 그러기에 이 공산주의자들은 그런 우상 숭배나 미신이나 종교나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전부가 이 물리 하나 가지고 따져서 사람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인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을 물리에 따라 가지고  물리대로 살게 하니까 고기덩어리와 고기덩어리에 신비한 마음, 심신, 육 이것만  살지 영을 완전히 부인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것이 공산주의요 과학자들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체 주의 일을 하는 체하지마는 그게 실은 마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뭐 산업 전도니 대학생  선교회니 뭐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 복음 운동 같지마는 참된 복음 운동은 그런  것이 가리고 있습니다.

 내가 똑똑히는 모르지마는 요전번에 뭐 대학생 선교회인가 거게서 이 모두 다  나이 많고 이런 사람들, 눈 어두운 사람들 이 신약 성경을 녹음해서 그 카세트를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판매하게 됐으니까 사서 보라 이래서 내가 하나 주문하라  해 가지고 봤습니다. 들어보니까 아주 그 사람들이 참 음성도 아나운서들이 한  것이니까 음성도 아주 감정도 풍부하고 또 모든 형태도 좋고 다 이랬는데 남자가  한 장 읽으면 여자가 한 장 읽고 있는데 내가 얼마 안 들어봤는데 들어보니까  아마 그 성경이 그것이 이야기 성경으로 꾸민 그 성경을 그렇게 녹음한 것이  아닌가? 아직까지 똑똑히는 살펴 못 봤습니다. 이래서 누구에게 맡겨 한번 그것  좀 살펴봐라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떠들고 이런 것 가지고도 안 되고 또 그냥 조용히 이래  가지고 이것만 해도 안 됩니다. 참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다 보면 자기가  못견뎌서 애통도 나오고 못견뎌서 고함도 나오고 자기 감정이 움직여서 하나님을  상대하도록 여게까지 나가야 되는 것이지 그냥 딱 안에 앉아 가지고 옛사람,  옛사람 그것대로 조금도 변동 없이 그것이 앉아서 딱딱 하는 것은 변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앞으로 어떻게 하나? 저 삼층을 저것을 철야기도 하는 것으로  남녀반 두 칸을 만들자 하는 사람들의 의사가 있습니다. 남녀반 두 칸을 만들면  그 안에 그 뭐꼬 에어콘인가 그것 바람 나오는 것 그것을 여름에는 해 놓고  겨울에는 또 좀 따뜻한 뭐 보일러인가 그걸 피워서 그래 놓고 소리가 바깥에  들리지 안하도록 그래 놓고 그 안에서 얼마든지 고함을 지르고 얼마든지  뚜드리고 이라면서 좀 그렇게 좀 심한 발작을 하는 가운데서 뭣이 좀 변화가 둬  터인데 이 도무지 그것이 전혀 없이 그래도 안 되고,  또 그런 단계를 거친 사람은 자기가 심령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소리를 내면  벌써 펑안하고 그 마음이 녹아지는 간절한 그 심령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서  교제하는 이런 단계에 나아가고 하니까 일학년도 있고 중학생도 있고 대학생도  있고 아라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자유로 언제든지 와서 거게서는 철야기도 할 수  있도로 그렇게 지금 남녀반을 따로 갈라서 두 칸을 만들어 볼까 그것도 한번  생각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는 그 이치를 들어 가지고 그  이치대로 행해야 되는 것이지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항상 떠들어도 제  주관대로 저는 제대로 그래 가지고 날뛰는 그런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이치를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이치는 떠들면 깨닫지 못하게 돼 조용히 그 이치를 배워 가지고 그  이치를 또 조용히 묵상하고 묵상하고 고요히 눈 감고, 묵상이라 하는 건 소리  나는 것 아닙니다.묵상은 잠죽 묵(默)자, 잠 죽고 말하지 안하고 잠 죽고  생각하는 것이 그게 묵상입니다.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기가 또 가만히 눈  감고 깨달으니까 깨달아지고 또 깨달은 그것을 자기가 이대로'과거가 어찌  살았느냐? 현재는 이래 살고 있느냐? 앞으로 이래 살려 하면 어떤 애로가  있겠느냐?' 그런 것을 가만히 눈 감고 생각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기도는 일반적으로 장성한 기도는 고요히 자기 마음을 기울여서 참 소리를 안  내는데 마음은 녹습니다. 소리는 안 내는데 눈물은 납니다. 그러나 거기에  나아가는 데는 옛사람 이것이 그대로는 되는 게 아니라 좀 기도하면서 고함도  지르고 이래 어째 하는 가운데서 돼져, OOO조사님이 조사 되고 나서 얼마 전에는 좀 살아나는 것 같더 니만 요때는  죽어버려. 죽은 그게 쓴물, 쑥물을 먹어서 죽었어. 쑥물 먹은 그걸 발견을 해  가지고 와서 회개하면 살아나고 그전에는 살아 나지 못해요. OOO조사가 안 볼 걸  봤고, 본 안 받을 걸 본받았고 하는 그 사상에 쑥물을 먹었기 때문에 신앙이  지금 죽어 있어.

 어제 사회할 때도 백지 중언부언으로 아무 필요 없는 기도하고 이 형식으로  하나의 형식만 갖춰. 시간만 자꾸 보낸다 그말이오. 성령이 역사하지 안하는  그런 것.

 사람 죽는 것은 마귀란 놈이 요거는 뭘 먹이면 죽는다는 걸 잘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의 그 불콩을 안 먹어야 안 죽지 마귀의 불콩만 먹으면 그만 죽어.

잘 믿는 사람은 그대로 또 죽입니다. 마귀의 술책이 굉장한 것이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새벽으로 나와도 예수 믿는 이치를 말할 때에 그 이치를  깨달아 가지고 그 이치를 내가 사용합니까, 그 이치를 사용합니까 그 이치에게  복종을 합니까 어짭니까? 이치를 사용합니까? 사용하면 심판 받아요. 그 이치는  우리에게 사용될 이치가 아니라. 그 이치에게 순종해야 돼요.

 그 이치를 모셔야 됩니까 그 이치를 제가 거느려야 됩니까, 저 뒤에? 거느려야  된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그 이치를 모시고 그 이치의 그늘 밑에서 딱  숨어서 피난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녜, 그겁니다.

 이치가 없는 데에 무슨 그 이치대로의 생활이 있으며, 이치대로의 생활이  없는데 무슨 구원이 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예배당에 와도 이치를  자기가 모르는 자, 또 앵무새 모양으로 이치에 깨달음은 없고, 깨달음은 없고 그  이치를 소리만 배워 가지고서 팔아 먹는 이치의 장사꾼 그는 참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련한 자입니다. 그러기에 오면 이치를 깨달아야 돼요.

 어떤 사람은 내가 그런 사람 종종 보는데 부산 시내에 다 돌아다녔답니다. 또  서울 있는데 서울 교회에 다 돌아다녔답니다. 뭐 하러?  '뭐 하러 돌아다녔더냐? 노래 잘 부르는 노래의 기술 배우러. 돌아 다녔더냐?  좋은 음성 들으러 돌아다녔더냐? 많은 사람 모이는 것 보러 돌아다녔더냐?  떠드는 것 보려고 돌아다녔더냐? 너를 치켜 올려서 대우해 주는 그런 대우받는  대우해 주는 곳을 찾아 돌아다녔더냐? 뭐 하러 돌아다녔더냐?' '예수 믿는  이치를, 이치를 배우려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 네가 지금 찾는 곳은 어떤 곳이냐?' '예수 믿는 이치를 바로 가르쳐서  예수 믿는 이치를 바로 깨닫게 해 주는, 예수 믿는 이치, 진리, 그것을 찾아서  교회를 비교할 때는 이 교회와 저 교회와 예수 믿는 이치를 여게서 잘 가르치나  저게서 잘 가르치나? 여게서 세밀히 가르치나 저게서 세밀히 가르치나? 여게서  도수가 높게 가르치나 저게서 도수나 높게 가르치나? 여게서 바로 가르치나  저게서 바로 가르치나? 어데서 바로 가르치나? 나는 그것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바른 은혜를 찾아 돌아다닌 사람입니다.

바른 은혜를 찾아 돌아다닌 사람이오.

 아예 여러분들이 서부교회 나온 사람 쳐놓고 그 사람이 되도록 만 들어야 이제  그것이 마귀에게 흘켜가지 안하지 그것 안 만들어 놓으면 소용 없어. 언제  흘켜갈지 몰라.

 우리 진영에 여기 교역자들도 그것 뭐 지금 목사가 됐지마는 언제 마귀에게  홀켜갈지 모르는 사람 꽉 찼습니다. 또 바로 깨달은 자는 죽어도 이 길은  버리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 나오거든 예수 믿는 이치를 하나씩 꼭꼭  배워 가지고 가십시오.

 어제도, 모든 현재에 생활 하는 그 생활의 계획과 경영과 목적은 어데서  가져온다고요? 어데 것을 가져와요? 그 날의 것을. 그 날 언제? 그 날이 뭐이요?  자, 그 날 뭐 한번 말해 보이소. 그 날, 첫째? 죽는 날. 죽는 날은 십 년 후에  있습니까, 이십 년 후에 있습니까, 오늘 있습니까? 언제 있습니까, OOO선생?  오늘 있는지 십 년 후에 있는지 뭐 예수님의 재림이 만일 몇십 년 있다고 하면,  몇십 년 안 있어. 언제 있는지 모르지. 오늘 있는지 몰라.

 죽는 날, 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또? 부활하는 날, 우리가 죽었다  부활하는 날, 또,? 심판하는 날, 또? 영원한 이제 보응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대우해서 대우받는 날.

 몇 가지입니까? 그 날이 몇 가지요? 날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저 뒤에? 녜, 다섯. 다섯 가지 날.

 이 날은 몇십 년 후에 있습니까 오늘 있을지 언제 있을지 모릅니까? 몇십 년  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오늘 있는지 언제 있는지 모른다고  그렇게 알고 있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녜, 모릅니다. 그러나 있기는 분명히  있습니다.

 있으니까 그 날을 생각하면서'그 날에 어찌 되느냐?' 그 날에 소원을 오늘에  이루고, 그 날에 후회를 오늘에 다시 처리하고, 그 날에 부러운 것을 오늘에  하고 그 날에 두려운 것을 오늘에 해결짓고, 그 날에 영광스러운 것을 오늘에  마련하는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어데 성경에 그래 놨습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주의 날  이것이, 주의 날 이것이 몇 가지 종류의 날이라요? 주의 날이 다섯 가지 종류의  날이요, 주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그러면 소망을 어데 두라  말입니까? 어데 두라 말이요? 그 날에 소망 두라고 하지 안했소? 그 날에  소망두고, 또 "사모하라" 또 우리 생각은 또 어데 두라 했소? 우리 생각은 어데  두라 했소? 그 날에 둬야지. 그 날에 소망, 그 날에 둔 그 생각 이것을 행동은  언제 합니까? 현재 해야지.

 요렇게 성경에 말한 요 이치를 딱 깨달은 사람은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암만  봐야 저거는 잡탱이라는, 입으로는 깨달으나 참 그 사실을 자기가 느끼지 안하기  때문에 사람이 변화가 안 돼. 이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사건을 당할 때에  어떻게 해 나갈지 비판을 몰라. 처리를 바로 하지 못해.

 아침에 권찰회 있는데 늦은 사람들은 권찰회 참석을 못 하고 다 가나 늘 건찰회  참석하는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과거에는 남반은 순전히 남권찰님들에게 다  맡겨놓고 남반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말고 권면도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 했는데  이제는 다시 그 방편을 바꿨습니다.

 왜? 남권찰님들에게 맡겨 놓으니까 저거가 날은 새끼가 아니라. 생모가 아니라  말이오. 남권찰들은 자기네들이 낳은 생모가 아니고 다른 이가 낳아 놓은 걸  남의 아이를 고아 데려다 기르듯이 그래 놓으니까 관심이 없어. 다 떨어뜨려  버렸어. 이러니까 거기다 맡길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자기 구역에 있는 남반은 아직도 남반 혼자만 나오는 그 남반의  가정은 여권찰님들이 발을 대지 말고 방문하지 말고 배후 에서 기도만 하고 이제  부부가 다 믿는 사람이라면 여자가 있으니까 그 여권찰이 그 집을 갈 수 있어.

 그 집을 가 가지고서 남반에게 심방을 하되 직접 말하지 말고 그 아내되는  여권찰을 통해서 부인에게'네가 남편에게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지도를 해  가지고서 그 부인으로 인해서 남편이 믿음에 힘을 얻고 그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간접적인 그 신앙 역사를 하도록 그렇게 해서 여권찰이 그 가정에  남녀반에 대해서 주도적인 주인으로, 신앙의 참 주도적인 지도자로 역사를 하고,  남권찰은 그라면 어짜느냐? 남권찰은 거게 대해서 협조만 해. 협조만 해요.

 그것도 남권찰은 권위를 빼앗긴 것입니다. 권위를 뺏긴 것이오. 권세를 줬는데  그 권세 가지고 잘 하라고 줬는데 그 권세를 가지고서 옳은 일 못 하고 그만  게을해서 감당 못 하면 권세 뻇겨야지 어떻게 됩니까?   그러고 또 각 구역장은 자기 구역에서 분구될 때는 기본수를 자기 구역에 남궈  놓고 갔습니다. 분구할 때에 식구가 열 명이 분구를 했는데 열 명 그 사람은 다  낙심하고 떨어져 가 버려도 분구한 구역이 열 명이 되면 분구할 때에 남궈놓은  기본수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대로 있고, 열 명을 분구시켜서 기본수가 원 모구에 재적되어 있 는데 열 명  나간 그 구역이 송두리로 없어져 버 렸습니다. 또 열 명 그 식구가 다섯 명 줄고  다섯 명밖에는 없습니다. 뭐 그때 나간 그 식구야 늙었든지 죽었든지 이사를  갔든지 상관 없이 현재 그 구역에 식구가 어찌 되느냐 계산해 가지고 송두리로  없어졌으면 그 기본수를 없애야 되겠습니까 그대로 둬 둬야 되겠습니까? 어째야  되겠소? 이렇츰 어두워 놨으니 마귀가 요리해 먹기 좋다 그거요. 그 기본수는  없애야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안해요? 또 다섯이 줄고 다섯만 있으면 그  기본수를 어째야 되겠습니까? 다섯만 두고 다섯은 없애야 되지 그 모구역  기본수를.

 또 분구됐는데 분구할 때에 있는 사람은 다 낙심했는지 뭐 죽었는지 없어져  버리고 분구된 구역장이 새로 전도를 해 가지고서 열 명 나 갔는데 열 명이  있으면, 열 명이 그 구역에 있으면은 기본수를 그대로 둬야 됩니까 줄여야  됩니까? 그대로 둬야 됩니다. 아흡 명이 있으면 어째 됩니까? 기본수 한 명은  줄이고 아홉 명 그대로 둬 둬야 됩니다.

 그것은 분구를 시킨 모구역장들이 그것을 자기네들이 알 터이니까 조사를 해  가지고 그것을 신고를 하도록 해 주십시오. 다음 토요일날 주일 전날 권찰회까지  그것을 신고를 해 주시고 또 OOO집사님은 그것을 잘 받아서 정리를 하도록  하십시오.

 그러고 남권찰님들은 자기가 맡은 남반의 명부를 작성하고?'이 남 반은  여구역장이 누구라, 구역은 누구 구역이라.' 하는 그것을 명시해서 그 명단을  제출해 주시고, 또 자기가 맡은 식구 가운데에서 죽어서 없어진 식구, 또 이사  가서 없어진 식구, 또 낙심해서 없어진 식구 또 다른 교회로 교회를 옮겨서  없어진 식구, 그것을 명시해 가지고 그 명단을 낼 때에 내 주십시오.

 여권찰님들은 자기 구역에 있는 여반 식구는 하지 말고 남반 식구만'우리  구역에는 남식구가 몇몇이라', 중간반까지 포합해서.'남식구가 몇 몇이라,  이런데 몇은 누구에게 맡겨 있고 누구에게 맡겨 누가 담당 하고 누가 담당하고'  그 담당한 것을 어느 남권찰에게 보냈는지? 어느 남권찰 그 학교에 보냈는지  말이요, 어데 보냈다 어데 보냈다 하는 그걸 명시해서,  '아무 남권찰에게는 보냈더니마는 그 학생을 잘 길러서 좋은 학생을 만들어  놨다, 어느 권찰 학교에는 보냈더니마는 아이까지 잃어버려 버렸다. 아이까지  잃어버려 버렸다 식구를 맡길 때에는 몇을 맡겼는데 다 어데로 도망해 버리고  어디로 다 잃어버려 버렸는지 보니까 치금은 찾아보니 열 맡겼는데 둘밖에 없다.

열 맡겼는데 열이 그대로 있다.'  열이 그대로 있는데 그 열이 이게 장성해 가지고서 열이 또 열을 늘궈서,  중성된 종 칭찬받은 것과 같이 배나 장사해서 늘군 사람, 또 반을 늘군 사람, 또  잃어버린 사람, 그런 것을 세밀히 해 가지고 그걸 해 가지고서 여권찰님들은  남권찰님에게 책임 추궁을 해야 됩니다.

 '내가 너거 학교에 가르치라고 열 명을 갖다 맡겼는데 열 명 다 어쨌노? 아이  내놔라. 식구 내놔라.' 여게서 책임 추궁을 안 해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는 다 책임 추궁이 되는 겁니다. 뭐 본디오 빌라도가 손을 떡 씻으며'나는  상관 없다' 한다고 됐습니까?' 본디오 빌라도에게 정죄받아 십사자 못박혀  죽으시고' 하는 것을 이는 온 역 사가 세계가 다 알도록 정죄되고 있지  많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깨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얼마 동안 거게 대해서 단속 안 하고, 또 도적이 들었다 그말이오. 여게서  권찰로 내놓은 사람들이 다른 교회로 이렇게 가고 다른 교파로 가고 이라는데 그  사람이 제 가는 대로 가는 것 어짤 수 없고 하지마는 맡긴 식구는 그것을  챙겨서'내가 너한테 맡겼는데 이 식구를 어떻게 했노?' 그것을 책임 추궁해  가지고서 찾아야지.

 또 남권찰님들은 자꾸 교역자로도 나가고 이래 변동 많이 됐기 때문에 자기가  인계를 맡을 때에는 그 식구를 다 거석해 가지고 요번 지금 조사하는 데에  여게서, 그러면 맡겨 놓은 걸 열 명을 맡겼는데 인계는 다섯 명밖에 안  시켰습니다.'다섯 명 어쨌노?' 가서 찾아야지, 가서. 못 찾아도 자식을  잃어버리고 그러면 말도 없이 지내고 있어요? 가서 말을 해야지.

 우리는 깨어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새벽기도 나와도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소용 없어. 예수 믿는 것은 딴것 없어.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요 이치대로  믿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요 이치대로 믿어야 되지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제 주관대로 암만 열심 있어도 소용 없고 떠들어도 아무 소용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또 십 분 기도 후에 남녀반 봉사가  있으니까 가서 오늘 낼 것은 내고, 저 삿보도 뭐 천칠백 원 주고 샀는데 오백  원밖에 안 줄라 한답니다. 오백 원이라도 팔아버려 우리가 간수 못 할 바에야  그것 지금 거석해 놓고 언제 뭐 시세나 대고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장소가 좁아서.

 이러니까 팔되 우리 교인들이 사는 데 팔면 그 사람들 돈 남기면 그 사람들 돈  남겨서 부자되면 그 돈이 내나 교회 부자지 뭐 딴 돈 되겠소? 이러니까 그런  것도 정리하고 빨리 빨리 팔 것은 팔고 그냥 불로 화목으로 실어다 보낼 것은  실어 보내 버리고 빨리 정리를 해버려.

 정리하고, '유급의 일할 목수나 잡부가 있으면 현장 소장에게 신청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거는, 이거는 광고 안 합니다. 무엇 때문인지 나 모르겠소. 무슨  목수가 무슨 뭐 있는지? 어쨌든지 지금 준공 검사만 빨리 맡을 지금 우리가 거게  준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됩니다. 이제 나머지기 일은 준공 검사 마치고 일단 다,  우리가 건축할 돈도 없고, 끝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얼마 쉬어 가지고 새로  필요하면 남은 일을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뭐 천장이니 뭐이니 그런 거는 안  해도 준공 검사가 나지 않느냐 싶은데 좀 숨 좀 쉬어 가지고 좀 잘 생각해서  하도록 하고 저 없고, 삼층 꾸미는 것도 그리 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필요가 십 분 기도 후에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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