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주신 목적

 

1981. 2. 23. 새벽 (월)

 

본문:고린도후서 13장 1절∼5절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기까지 하시고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영원 전 스스로 계신  데서부터 시작한 구원이요, 또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려고 생각도 하시기  전에 당신이 작정하신 구원이요, 또 하나님의 하나만 되는 목적으로 소망으로  정하신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인간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이신 성령과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진리 이 두 가지가 일으키는 지극히 큰 구원이기 때문에 이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 일을 성공했습니다.

우리에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주실 것 같으면 엿새 동안 지은 것을 주시는  데는 아무 힘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첫째는 자존하신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삼도록  하려는 것이요, 둘째로는 영원 불변인 하나님의 뜻이요 참된 이치인 진리를  우리의 법칙으로 삼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셋째로는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다 통치하고 그것들에게 은혜를 무한히 충만히 베푸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구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인 이 진리를 우리의 법칙과 지혜로 삼고 하나님을  우리의 전부로 삼도록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면 그렇게 주시면 될 터인데 이  세상은 왜 주셨으며 또 우리를 세상에서 살도록 하시는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삼는 그 일을  위함이요, 또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의 지혜와 법칙으로 삼도록 하시는 데 쓰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에서 하루를 살든지 한 시간을 살든지, 또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의 수입이 무엇이며, 또 우리에게 손해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똑똑히 확정짓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목적을 무엇이라고 했지요?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그때  우리 목적은 무엇입니까? 어느 장소에 있든지 우리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  여름이나 가을이나 봄이나 어느 때든지 우리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쁜 일을  닥쳤을 때도 우리 목적은 무엇입니까? 말할 수 없는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우리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이 목적이라니요? 구원이 무엇인데요? 예,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것과 하나님의 법칙과 지혜인 이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목적입니다.

언제든지 이 목적을 단단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목적은 변치 않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죽을 때나 살 때나,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나, 사업이 실패될 때나 성공될  때나 언제든지 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되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되고, 진리는 내 진리가 되고  나는 진리의 것이 되어서 진리와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나를 자유하지 못하고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과 진리가 나를 자유해서 죽는 데 쓰시든지, 사는 데  쓰시든지, 가난한 데 쓰시든지, 배고픈 데 쓰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만이 나를  자유할 수 있고 진리만이 자유할 수 있는 이 사람 되는 것이 목적인데, 이걸  착각하는 데서 사람들이 실수도 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것만 굳게  잡으면 모든 면에 지혜가 됩니다.

만일 큰 횡재가 닥쳤다고 합시다. 평생에 돈 몇 푼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수억원  재산이 덜퍽 왔으면 그게 그 사람에게 수입입니까? 아니요, 그 사람의 수입은  따로 있습니다. 거기서도 하나님과 진리를 수입하는 것이라야 그 사람의 수입이  됩니다.

만일 그럴 때 돈 차지하고 하나님과 진리를 잊었으면 그것은 목적 달성한 것이  아니오. 성공이 아니라 손해 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돈이 와도 그 돈을  목적이나 수입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없어질 돈 때문에 하나님 차지 못 할까,  진리 차지 못 할까 해서 돈에 마음에 가지 않고 하나님 차지하고, 하나님 떠나서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영감 도리대로만 하려고 애를 써서 그 수입만 자기  수입으로 삼습니다.

그러다가 그 많은 돈이 갑자기 없어지고 거지가 됐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실패자입니까? 돈이 다 없어질 때도 그는 주님과 진리를 잊지 않으려고 하면서  주님과 진리를 담뿍 수입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돈이 없어지면 환장을 하는데, 이 사람은 그때도 ‘주여, 모든 것이  없어져도 주님만 내 주님 되고, 진리만 내 진리 되면 됩니다!’ 하면서,  없어지든지 말든지 하나님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수입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부요할 때는 하나님 모시고 살면서 ‘주여, 주여’ 하다가, 가난해지니까  주님을 휙 버립니다. 또 가난할 때는 ‘주여, 주여’ 하다가 부요해지니까 주님을  버립니다. 이런 형편 저런 형편으로 인해서 주님을 버리는 일도 생기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도 생기는데 그럴 때 바로 표시가 납니다. 주님이 시험하실 그때  주님에게 대한 변동의 여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심한 고통이 와도 주님을 버리지 않으면 ‘참 너는 세상에서 제일 되는  고통 속에서도 나를 버릴까, 나를 놓칠까, 내 법칙을 어길까 하는 것을 제일로  삼는구나!’ 하시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안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주시면 사람들 보기에는 존영하게  됐지만, 존영하게 되거나 말거나 일편단심 주님 놓지 않고 저의 주님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주님도 ‘부요보다 나를 낫게 여기고, 가난보다 나를 크게 여기고, 죽는  것보다 나를 크게 여기고, 죽는 데서 살아나오는 것보다도 나를 크게 여기니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만을 귀중히 여기고 너는 나만  귀중히 여기는구나.’ 하십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요 에녹이요 노아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구속하시고  예수 믿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진리를 내 하나님과 내 법칙과 지혜로  삼도록 세상 이것저것을 주신 줄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5절에 「너는 스스로 자기를 시험해서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확증하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일을 닥치면 믿음이 있는지, 참 하나님만을  모시고 하나님만을 소망하는지, 다른 걸 소망하는지 가만히 자기를 시험해 봐야  합니다.

전능자가 사랑하셔서 품에 안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는데도 두려움이 있다면  ‘나는 지금 전능하신 주님을 모시지 않고 있다. 괜히 모신 줄 알고 있지  거짓부리로구나.’ 회개하고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기에게 닥치는 하나하나의 현실에서 주님과 진리와 자기와의  관계가 어떠한지 알게 됩니다. 없는 것도 알게 되고, 허무한 것도 알게 되고, 있는  것도 알게 됩니다.

거기서 없는 줄 알았으면 없다고 확정해서 자기에게 있도록 해야 하겠고, 또  하나님과 진리를 자기가 모시고 있습니다. ‘아, 이 정도에서는 있다.’ 하는 것이  있으면 있는 줄 확정하고 안심합니다.

그러다가도 또 더 어렵고 큰 일이 닥치니까 변동이 됩니다. ‘작은 돈에서는  요동치 않았는데 큰 돈에서는 내가 흔들리는구나! 작은 감정이 올 때는  괜찮았는데 큰 감정이 오니까 흔들리는구나! 작은 문제와 큰 문제에 따라서 내가  달라지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확정해서 없다 있다, 자기가 작다 크다, 강하다 약하다, 하나님을  어느 정도 믿는다 안 믿는다, 바라본다 안 바라본다 하는 것을 이 세상 닥치는  일에서 알도록 하시려고 하나님이 세상을 주시고, 현실을 주시고, 또 알 뿐만  아니라 안 다음에는 다시 하나님과 진리를 자기 것을 삼도록 하시려고 그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에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을 우리 수입으로 삼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두셨는가 하는 걸 단단히 잡아야 합니다. 이걸 다  착각하기 쉽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얻고 기뻐 즐거워하는 사람을 보면 참 염려가 많습니다.

‘이번에는 사업에 대성공을 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한 턱 내겠습니다.’  대접을 받으면서 그걸 언제 바로 잡아줘야 할 것이니까 문제라 말입니다. 그  사람은 그것이 절단나면 반드시 수심이 꽉 찬 사람이 될 거라 그거요.

이러니까 세상 것으로 인해서 기쁜 것도 염려, 세상 것으로 인해서 걱정하는 것도  염려, 또 세상 것을 보고 죽자 살자 하면서 예의도 체면도 다 버리고 마구  사생결단을 하는 그것도 염려… 이렇게 모두 다 이게 바로 되지 않기 때문에 다  난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의 수입이 무엇인지? 세상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을 한 자리에서도 자꾸 주시니까 이런 사람이 나오고 저런  사람이 나오고, 이런 상대 저런 상대가 자꾸 닥치는데, 그럴 때 ‘왜 이 현실을  주시는가?’ 하는 것을 바로 잡기만 하면 성공합니다.

바로 잡았으면 ‘여기서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의 관계를 바로 잡도록 주신  것이니까 이렇게 해야 하겠다.’ 해서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세상을 차지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이것 때문에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 수입이 무엇이며, 우리의 손해가 뭣인지?  어떤 큰 것을 얻어도 주님과 진리를 잊어버렸으면 자기는 큰 손해를 봤습니다.

생명 끊어지는 일이 닥쳐도 요동치 않고 주님과 진리를 굳게 잡았으면 대성공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패는 세상이 모르는 성패요. 우리의 성패를 세상에게 말하면  우리를 미쳤다고 하는데 우리가 미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미쳤습니다. 우리의  성패는 하나님과 진리에 있습니다.

세상 모든 현실은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약하고 강한지 알게  합니다. 약하면 강하게 만들고, 강하면 감사하고 더 써먹고, 여기서는 강했는데 그  다음에 보니까 약한 게 나오면 ‘오, 그럴 때는 강했는데 여기는 약하구나. 이  면에서 강해져야 되겠다.’ 이렇게 새로 보강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닥치는 현실은 자기가 하나님과 진리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를 나타내 보이는 현실이요, 또 그것을 확고하게 만드는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나와, 진리와 나와의 관계에 이용되는 현실이라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걸 착각하는 데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 얼마든지 마귀가 유혹을 줍니다.

이것만 바로 잡고 있으면 마귀란 놈이 유혹을 주지를 못합니다. 세상 유혹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이 되어있는 사람이오. 자기 중심의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를 표준하고 자기를 위주로 해서 살 때 손해가 되면  견디지를 못해요. 하나님께 손해 가는 건 상관없고.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사람은 하나님에게 손해 안 가면 상관없고, 자기 손해 가는  건 돌보지 않습니다. 이게 하나님 중심의 사람입니다.

그럴 때 또 하나님이 ‘내가 네 하나님 되겠다.’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사람보다 무한히 지혜롭고 다정다감한 하나님이십니다.

또 ‘네가 나를 이렇게 버리니 나는 네 하나님 되는 것이 부끄럽다.’ 하는 것도  이 현실에서 다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큰 것을 보고 우리는 살아야 됩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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