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믿음

 

1980. 11. 9. 주일 오후

 

본문 : 요한 계시록 17:12-14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대로 창조된 것들이요. 또 예정과 창조된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움직이는  것이니 이것들은 하나도 섞인 것이 없이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들입니다.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도 하고 이용도 당하고 합니다. 그러나  얼핏보면 이것들이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것은  반동하는 것 같지만으 실은 그 원동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피동들인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순전히 우리 구원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구우너을 위해서  활용을 당하고 있고 또 구원에게 이용을 당하고 구원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가 구원을 방해하는 것같이 그렇게 반동적으로 보여지는 그  이유는 외모적으로 볼때에는 그러한 것같이 그렇게 반동적으로 보여지는 그  이유는 외모적으로 볼때에는 그러한 것같으나 그 목적과 결과가 구원을 위하는  것으로 이루워 집니다. 다만 외모로 모순 같이 보여진 것은 우리의 주관으로  구원이 됐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구원이 아직 이루워 지지 아니한 거짓 것이요  외식이라고 하는 것을 세상과 세상으로된 이 현실이 그것을 들어내 줍니다.

이래서 이것을 가라쳐서 성경에 시험이라 그렇게 명사를 붙였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참 구원이 되지 아니한 것이 구원된 줄로 안 그 본인이 밝히 알도록 하고  또 구우너된 줄로 제 삼자들이 잘못 인식하고 대우하는 이런 것을 다 제거해서  아니라는 것을 들어내서 우리에 구원에 대한 자타에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밝히  들어내는 역활을 합니다. 이러니까 구원의 방해라고 보여지는 그것이 잘못된  구원에 대적이 되고 잘못된 것들에게 대적이 되어 잘못된 것을 깨뜨리고 외식을  깨뜨리고 거짓을 깨뜨리고 이 속고 속이는 것들을 깨뜨리니까 그것이 주장이 될  때에는 이 구원을 방해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어려움이라는 그 시험은 구원이 되어 있지 아니한 것들에게  어려움이 되지 구원이 되어 있는 것들에게는 어려움이 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것이 영광스럽게 존귀하게 감추어 있는 그 실력과 가치를 들어 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석위에 지은 집은 바람이나 홍수가 오히려 들어냈지 그걸  멸하지 못하고 모래 위에 지은 것은 다 멸한다 그렇게 비유를 하신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것이 방해한 것 같으냐 실은 그의 목적과 결말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붙들도록 구원을 잡도록 구원 으로 옮겨 디디도록 구원 속으로  들어 가도록 이렇 만드는 그 결과를 맺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맺게 하는  방편이 구원을 버리고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그 역활로 역사합니다. 구원을  버리고 내게로 돌아오라 구원으로 버리고 내게 돌아온 네가 좋아 지고 유익되고  좋아진다 하는 그 역사를 구원 받을 자에게 구원을 두고서 실랑을 하고 위협도  하고 대적도 하고 또 여러 가지로 달래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이러니까 그면만 보면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라 이렇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 그것이 자기를 소개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라고 하면  그것이 세상인데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인데 그것이 자체를 소개합니다. 나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 자다. 나는 살았으냐 즉시 죽을 자다 내 능력은 유한하다  나는 완전이 아니다 나는 허무하다 나는 이 시간에도 어찌 될지 모른다 하는  자체의 그 이름과 자체의 실력과 자체의 보장과 자체의 그 수명과 자체의 그  허무를 자기에게 써서 붙이고 활동을 합니다. 그 이마에 그것이 쓰여 있으비다.

그것들의 전신에 쓰여 있으니다. 쓰여 있으면서 나 한테로 돌아 오라고 말을  합니다. 돌아로라고 말을 하나 그것이 나는 영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든지  나는 완전자라 나는 실력가라 최후까지 책임을 맡을 수 있는 내락 이렇게 이름을  붙여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에게 속하나 그에게 속하나 그에게 속하나 당장  그에게 속하는 데에는 평안이 오고 하나님꼐 속할라 하면 그로 인해서 어려움이  오고 당장 그에게 속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시지 아니하고 있으니까  그에게 속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읽어보는 자 그 감판을 보는 자 그  이름을 아는 자 그에게 대한 실력도 권위도 책임의 권위도 보장의 기간도 그의  긍국도 성경이 그를 밝히 가르쳐 주었고 또 우리에게 벌써 주관되어 있는 지식이  그것들 가르쳐 주고 있고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그것은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 날뛰는 자는 그에게 피하면 좋으리라  해서다 그에게로 귀속됩니다. 그에게로 귀속되는 자는 그것의 이름도 모르고  그것의 감판도 모르고 읽을 줄을 모르는 신령한 지혜지식이 엇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중생된 자라면 66권의 도리가 그것들을 확실히 똑똑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도 성신의 감동이 똑도기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귀속하는  것은 쉽고 좋지만은 일시적이요 끝이 없는 고로 주저하고 오른편에 서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똑똑히 쓰여 있고 가르치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나는 영원 불변이라 나는 완전이라 사는 것이 내게만 있고 영원히  내게만 있고 완전이 내게만 있고 내게 속한 자는 영생하며 의에 속한 의의  것이니 정죄할 이도 심판할 이도 사망도 없느니라 하는 것을 밝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자체의 소개를 보는 사라마다 하나님께 속하게 되고 현실에서  세상이라는 것을 완전히 배반하고 한님에게 귀속되는 것으로서 단정을 지우는  것입니다.

마치 비유컨덴 모든 것이 부강하고 신신한 본 남편이 있는데 이 본 남편은  이러한 남편이라는 것을 또 소개하고 있는데 간부가 와서 네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 가면은 내가 어떻게 박해를 주겠다 내게로 돌아 오라 유혹을 하면서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간부가 내게 돌아오라 유혹을 하면서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간부가 내게 돌아오라 그러나 돌아오라 그러나 나는 이 시간에 떠날  자다 내게로 돌아오라 떠날 자라는 것과 돌아오라는 것과 두 말이 합해지는 것을  보는 자는 그에게로 미혹 방아서 간부에게로 돌아갈 자가 없습니다. 그 본부의  신실함을 부강함을 보고서 그에게 이 인연을 인해서 그에게 더욱이 귀속하고 이  현실에서 완전히 간부는 버리고 본부의 아내로서 더 견고해지는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간부같이 그것이 여러 모양으로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그에게로 돌아오라고 위협을 하지만은 그 자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그 자체가 무책임하고 떠날 것이라는 것 나를 속이고 내가 돌아  갔다마는 속는다는 것 허사가 된다는 것 내게 대해서 책임을 짖 않는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모든 말이 ㄴ게 대해서는 꾀우는 마링요. 마이는 말이요 속이는 그  역사가 된단느 것을 아는 자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 같으나 그 감판을 하나님이 써서 붙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이러므로 세상과 작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인해서 한니과 더 견고해  지고 현실을 통해서 더 견고해 지고 현실을 통해서 세상은 완전히 평가해서  멀어지고 이리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우해서 지으신 세상이요.

섭리하시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오인하지를 말아야  됩니다. 세상을 껍데기로 볼대에 여게 말했습니다. 3절 끝에 보면 붉은 아 4절에  그 여자는 세상을 말하니다.

 여자는 자줏빗 옷을 입고 금과 보석으로 꾸미고 진주로 구미고 손에는 금잔을  가졌고 이렇게 굉장히 꾸며 있는데 이것이 음녀하는 것을 알면 미혹 받지  않습니다. 음녀하는 것을 모르고 외모에 이 장식만 보고 사람들이 다 끌려  넘어가기 때문에 불택자와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한 사람도 이 유혹에  빠지지 아니한 사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니이 세상을 지으실 때에  굉장한 여러 모로의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이 아름답게 지은 것은 이 아름다움을  인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 아름다움에 끌려 가고 하나니게서 약속으로 주신  큰 소망을 이 아름다움에 쏠려서 이 소망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소망과 하나님이 이매 우리에게 입혀준 그 모든 구속을 이 아름다움에 매력에서  다 버리고 이 아름다움에 끌려 갈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은 이 아름다움ㅇ에 끌려 가지 아니한 자만이 이 구원의  소유자가 됩니다. 이래서 이 아름다움에 끄는 어려움을 가라쳐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온갖 아름다운 아름다움이라면 색깔이 아름다움도  있고 가치의 아름다움도 있고 실효의 이용 가치의 아름다움에서든지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시는 구우너가 하나님이 이매 입혀 주신 이 구속을  버리지 아니한 이 자가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세상을 음녀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음녀성으로 만들었다 이말은 하나의  상증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이 도를 표현해 놨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 남편이요  세상은 간부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본 남편 하나님을 버리고 간부로  따라가는 것 이렇게 성경에 비유해 놨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기의 배우자를 버리고 이 음녀인 세상에게 끌려 가는 것  하나님이 자녀가 하나님이 결혼시켜준 그 배우자는 무엇을 가르쳐 말하는 가  하나님께서 자기가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에 자기의 짝으로 정해준 것 자기  분수의 정해준 것 자기의 배후 자기와 함께 할 세상 이것을 만족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할 세상으로 주지 아니한 그것을 탐하는  그것이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한게시 14장에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다는 말은 결혼하지 안한다는 그말을 말한것 아닙니다.

거게 여인은 우리 사람의 남녀의 여인을 가라쳐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라쳐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너는 죽 먹고 살라는 이 세상을  그의 배우자로 줬는데 하나니을 배반하고 밥 먹고 살기 위해서 밥 먹는 세상  취한 그것이 음녀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어느 정도의 지위와 권세에 서 너는 과장 자리에서 과장을 네게  준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 과장이 왔으면 과장 자리가 과장 자리가 과장  자리라는 그 세상이 자기의 본 아내인데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인데 자기의  배우자인데 방편을 써가지고 그 위에 올라가서 남의 지위남의 권세를 도적해서  가로 취한 그것이 곧 음녀의 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자기의 분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자기의 오는 것이 높은 것이든지 낮은 것이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평안하든지 고생스럽드지 그것이 작기의 짝인데 그것이 자기 짝인데  그것이 자기의 배우자인데 세상을 지나 갈 때에 자기는 그 세상하고 자기하고 살  자기의 배우자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지켜 자기에게 오는 그 세상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배필로 준 자기의 배우로 준 자기의 상대로 준 것인데 사람들이 그것  외에 남의 분수를 탐을 내 가지고서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구원도 물리치고 사죄 칭의 새생명도 물리쳐서 하는 남편과 행위로서 남의  분수의 것을 가로 취한 이것이 남의 것을 도적한 것이요 고것 때문에 고 매력  때문에 고 미 때문에 고 필요성 때문에 고것을 좋아하는 고것 때무네 하나님을  배반한 고면에서 고것이 음행케한 음녀입니다.

이러기에 세상은 음녀성으로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지으신 이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호의 호신이 어떤 사람은 명예의  어떤 사람은 지위어떤 사람은 행락 어떤 사람은 애정 어떤 사람은 정실 어떤  사람은 혈육 어떤 사람은 가정 어떤 사라은 생애 애착욕 어던 사람은 안일 어떤  사람은 문화 어떤 사람은 아른다움 구비한 소유 남보다 뛰어난 좋은 위치 그것이  매력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는 요것을 가라쳐서 세상의 음녀라  음녀성이라 음녀라 그렇게 상증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음녀의  미혹을 받지 아니한 자가 시온산에 섭니다. 모든 음녀의 미혹을 다 이기고 난  자가 시온산에 섭니다. 또 거게 보니 음행의 포도주가 있은다. 음행의 포도주는  세상 문화의 모든 능력들이요 지식들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문화 이것이  자기로 하여금 하나님과 구원과 구속과 멀어지게 하는 역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역사의 문화 건설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 사천년 동안 실험과 경험과 연구와 상상의 모든 노력으로 싸고  싸고 싸논 탑를 싸듯이 싸는 것이 이십세기의 문화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여기에 도취되가지고 여기에 도취되서 자기를 잊어버린 자 여기에 도취되서 술에  취하면 자기를 잊어버린 것 정신도 자기도 다 잊어버려서 완전히 술에 주독의  것이 되 가지고 사람은 용모도 정신도 목적도 방편도 인격도 다 완전히 술의  것이되고 변해지는 것처럼 이 세상 문화로 인해서 구속받은 것도 하나님의  자녀인것도 영생의 구원도 다 잊어버리고 세상 문화 적인 인간이 되고 지식적인  인간이 되고 이것들의 것이 되어짐으로 차차 하나님은 멀어지고 세상은 가까와  지고 하나님을 힘 입어사는 것은 차차 희미해지고 그것으로 힘입어서 그 힘으로  살라는 것은 점점 강해져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이 면으로 세상 문화를 지었기  때문에 음행의 포도주라 말씀했습니다. 이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는 자가 되지를  안해야 되겠고 어떤 자에게는 이것이 이십세기의 문화가 음행케 하는 하나님을  배반케 하는 자기의 분수를 떠나게 하는 음행의 포도주가 되는데 어떤 자는  이것이 음행의 포도주가 되지 아니하고 자기의 빈약한 심신에게 아주 포도당처럼  자기의 양식이 되고 자기의 밥이 되어서 이것도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고 주의 구속을 입어 구속을 나타내는데도 도움이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데도 도움이 되어 양심으로 먹는자 음행의 포도주로 먹는 자 둘로  갈라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음행의 포도주의 이 취하지 아니하는 이 승리를 행  됩니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지 아니하고 취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자기의 옳은  양심이 되어지게 하는 이 승리를 우리가 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또 거게 보면  일곱 머리는 일곱 왕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 어떤 정치든지 그  정치에게 종이 될수도 있고 그 정치의 것이 될 수도 있고 그 정치를 자기의  활동으로 자기의 소유로 자기의 기관으로 자기의 좋은 모든 설비물로 이렇게  이용할 수 있고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그것에게 통치를 받아 그것의 것이  될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라쳐서 짐승에게 속한 일곱머리라 이랬습니다.

세상에게 속한 일곱 머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성도들로 하여금 그 일곱 머리를  싸워 이기는 자 우리의 싸움은 혈육에 있지 아니하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에서 세상을 주관하는 자들과 공중의 악한 영으로 더불어 싸우는 이것은  우리의 싸움이라 했습니다. 이 정치를 자기가 타고 가는 거미가 거미줄을 타고  가는 것처럼 이 정치를 자기가 타고 가는 승구로 자기가 달려가는 자기의 궤도로  자기의 승구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잘 다스리는 귀한 방편으로 이렇게 삼아  이것을 이용하고 황용하고 유익되게 쓰고 이것을 살려쓰는 이것이 일곱 머리를  이기는 사람인데 입곱 머리를 잘 다스리는 귀한 방편으로 이렇게 삼아 이것을  이용하고 할용하고 유익되게 쓰고 이것을 살려 이것에게 지도록 하기 위해서  두신 것이요 어떤 자는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두신 것입니다. 열 불은 온갖  힘인데 과학의 힘인데 과학의 힘이 있고 인간 단합의 힘이 있고 간사의 힘도  있고 이간 붙이는 힘도 있고 유혹의 힘도 있고 꾀우는 힘도 있고 이러저리  변동시키는 힘도 있고 별별 다 힘들이 있는데 이 힘에게 정복을 당하는 자 이  힘을 정복해서 이용하는 자 이것이 내가 그것을 정복해서 내 것을 삼는 이것이  승리요 내가 그것에게 정복을 당하여 그것의 것이 되는 것이 이것이 패전인  것입니다.

열 머리 모든 힘을 내가 주고 사서 내것을 만드는 이것이 패전인 것입니다. 열  머리 모든 힘을 내가 주고 사서 내것을 만드는 이것이 승리요 내가 극섯의 것이  되는 것이 이것이 패전입니다. 그것을 값을 주고 내것을 사는 것은 무엇을 값을  주고 살수 있는가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주면 값이 됩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면  이것을 내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라도 가지고는 이것을 내것을 삼을 것을  내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라도 가지고는 이것을 내것을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라쳐서 마태복음 13장 44절 이하에 밭속에 진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 잇는 것을 다 팔아서 밭을 삼과 같다고 했습니다.

밭은 세상입니다. 그 안에 있는 보배는 영원한 구원이 세상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다 포기하고 이 구원 하나만을 바라 볼 때에 그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모든 힘을 정복합니다.

왜 모든 힘은 제 마음대로 하지만은서도 난은 내 마음대로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대로 할라 하는데 영감과 진리대로 하는 것을 꺾을라고 해 봤자 마지막에는  내 생명 뺐는 것 이상은 더 할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빼앗겨도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는 나는 그대로 행했읍니까 마지막에 나한테 굴복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이것을 이기야 되겠는데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이길 수 없으나  이 모든 것이 함하여 13절에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느역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세상에게 주더라 세상이 똘똘뭉쳐서 하나가 됩니다. 똘똘뭉쳐서  하나가 됩니다. 이리하여 14절에 13절에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절에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예수님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말입니다.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말은  예수님으로 더불어 싸운다 말습니다.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말은 에수님으로  더불어 싸운다 말입니다.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예수님은 만주의 주시요. 영게에 있는 것도 물질계에 있는 것도 다 그것이  어린 양의 것입니다. 어린양의 소유입니다. 어린 양은 그것들의 모든 주인입니다.

주가 되십니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심으로 저를 이기실 터라  모든 통치 지금도 지금도 모든 통치는 당신이 통치합니다. 마귀에게는 이 부분을  네가 통치해라 이 천사에게는 이 부분을 통치해라 마귀는 성도에게 역항적으로  성도에게 마찰을 주는 이 일을 네가 해라 그러나 이 마귀를 다스리는 왕이  구군가 만왕의 왕이신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저를 이기실 터이요.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모르면 못 이겨 모르면 건설 구원은 없어 내가 올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이 건설 구원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평생 듣지도 못하고  그저 갖다가 에수의 이름만 가지고 지나 갑니다.

그기나 안 믿는 사람이나 가 보면 같소 택함에서 기본 구원은 결정됩니다.) 그와  함께 있는 자들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는 세가지가 있어야 이것들을 이긴다 음녀의 유혹도 이기고 포도주의  주독도 이기고 일곱 머리의 그 모든 정치도 이기고 열 뿔의 온갖 힘도 이기고  이긴 자는 진자의 왕이 되고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요게서 영원  토록 소유권이 결정됩니다. 통치권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저와 함께 있는 자들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자들 그중에는 요 세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하나는 부르심을 입고 하는 말은 에수님을 믿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중생된 것을 말합니다. 중생이 되어야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이렇게 있는  가운데도 혹 중생되지 안한 사람이 있는지 모릅니다. 부르심을 입고 중생을 입고  빼심을 얻고 택함을 입고 택함을 뒤에 말했으나 택함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가운데다 끼웠습니다. 먼저 택함을 입은 자들로 아직 까지 중생되지 안한 사람  있고 택함을 입은자로 중생된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택함을 비고 중생을 받은  자로서 하나만 더 있으면 됩니다. 무엇이 있으면 되느냐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진실이 있으면 이깁니다. 진실 없이는 못이깁니다.

진실한 자들만 이깁니다.

이 세가지 중에 둘은 하나님이 혼자 하십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우리와 함께  합니다. 택함을 입은 것도 하나님이 혼자 하시고 중생도 하나님이 혼자 하시고  진실 요것은 택하심과 중생시키심과 하나님과 함께 해서 우리가 함께 해서 요  진실을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요 진실은 하나님의 에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인데 요 진실은 본인이 알기에 제가 단독하는 것같이 이기지는 그만큼  저에게 다하지 안하면 요 진실을 이루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지 안하면 요 진실은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 진실은 일단 이단 삼단이 있어 삼단에 도달해야 비로서  진실이 이루워 진 것입니다. 이것은 다 현실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현실을  더나서는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일단은 무엇인가 일단은 우리 이 심신 속에  하나님이 이 심신의 이 빛으로 지어 주신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양시입니다.

그것을 가라ㅊ서 양심이라 하는데 양심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지식을 다  법적으로 삼고 이 지식을 잣대로 삼고 이 지식을 저울로 삼고 이 지식으 가지고  옳고 바르게 해 나갈라고 하는 요것이 양심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같은 것이나  그 양심의 활동은 다릅니다.

그 지식이 이러하면 그 양심의 활동이 이러학 그 지식이 저러하면 그 양심의  활동이 저러하고 그 지식이 어리면 양심의 활동이 그만큼 어리고 그 지식이  편벽되면 양심의 활동이 편벽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경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불경 지식적인 양심이요. 공산주의를 가진 그 공산주의의 지식을 가진자는  공산주의 적인 양심이요 공산주의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독재  전 사욕만 되어있는 김 일성이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김 일정적인 그 지식적인  양심입니다. 양심 중에 신앙 양심이라고 말하는 신앙 양심은 어떤 것이 신앙  양심인가 신앙 양심은 하나님을 딸른 양심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딸른  양심이라 말은 하나님의 지식을 신구약 성경 지식을 딸른 양심 또 하나님께서 이  자연 모든 만물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천태 만상의 그 모든  심리 이런 것을 보아 아 깨달아 지는 진리 지식과 이 모든 자연의 법칙 이것을  자기의 지식으로 삼아 가지고 이것을 잣대로 삼고 이것을 저울 같이 삼고 이것을  먹줄같이 삼아서 요대로 맞추워 갈라고 애를 쓰는 요것이 양심입니다. 요렇게  할려고 하면 양심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요 진리 지식과 이 자연의 모든  법칙을 가지고 자기가 옳고 바르게 할라고 애를 쓸 때에 양심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이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활용을 해도 자기의 옛사람은 양심을 만나지  못하게 이간 불입니다. 그 사이를 자꾸 가로 막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의 무슨 주관이든지 무슨 소원이든지 양심이든지 아니 자기 욕심이든지  무엇이든지 그것이 있으면 내가 아는 이 지식대로 내가 아는 자연의 이치대로  옳고 바른 것을 취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방해를 합니다. 왜 그대로 할때에  내기에 돈이 손해갈 때에는 돈이 방해를 합니다. 내가 요대로 할라고 할때에 내  앞에 명예나 영광이나 권세가 와서 얼렁얼렁 할 때에 거게 탐이 나서 요대로의  옳은 길을 걷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양심을 만나지 못합니다. 양심은  어떤 존재인가 양심이라는 것은 이것은 자기의 이매 되어 있는 현실이라는 이매  되어 잇는 현실이라는 그것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거게 붙들리지 않는 것이  양심입니다. 자기의 사정에 붙들리지 않는 것이 양심이요 자기의 모든 처자나  형편이나 사정이나 여게 붙들리지 안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어떤 한 사건이  있으면 이 사건은 자기에게 붙들리지 아니하여 자기를 사정보지 않습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이나 원수나 상관 없이 원수나 자기나 남이나 무엇이나 상관없이 요  당면한 요 사건에 대해서만 요기 옳다 저기 그르다 요렇게 판 정하는 것이  요것이 양심입니다.

그러기에 이 양심을 찾을라고 만날라고 애를 쓰면 차차차차 옛사람은 배척을  당하게 됩니다. 옛사람이 배척을 당해서 옛사람이 이제는 세도를 부리지 못하고  옛사람이 차차차차 배척을 당하고 이 양심으로 인해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 자기 파묻어 버렸고 배척해 버렸고 잊어 버렸던 자기가 이제는 나타나서  자기가 그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양심을 만났을 때에 이 양심에 작용으로  양심을 내가 만날라고 애를 씀으로 양심을 만나고 양심과 합동 역사함으로 차차  예사람 자기 아닌 이것은 물러가게 되고 쫓겨나가게 되고 이놈이 나갈때에 좋게  나기는기 아니라 별별 작용을 해 가지고서 달라들어도 내 마음이나 내 성질이나  내 뜻이나 내 욕심은 그놈과 깊은 인연이 있어서 그 습성 그 구습 자기 중심  이걸 가지고 유혹을 했는데 이렇게 대적하나 양심 만은 그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양심은 그자에게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런데 내 마음이 단독이 이것을 물러치지 못하는 것을 내 뜻이 내 마음과 내  행위가 단독 이것을 옛사람 물리치지 못하는 것을 내가 양심을 만나 양심의  도움을 입어서 이것이 차차차차 물러감에 따라 내 마음은 그거와 적이 되는 것을  알고 그를 배척을 하고 더듬어 찾을 때에 참 주인공인 중생된 영을 만나게  됩니다. 참 자기를 만나게 됩니다. 이래서 성경에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이 세상을 탐해서  참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를 자기로 이렇게 삼아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자기 아닌 옛사람 자기를 죽인 이것 이것이 가장을 해  가지고 자기라고 나타나서 내 마음을 지배하고 내 몸을 지배해서 완전히 사마화  시킴라고 하는 이 원수인데 나는 까마득이 그걸 모르고 속고 있는데 이제 내가  하나님의 진리와 이 자연의 이치를 가지고서 바른 것을 찾을 라고 하는 고것이  양심을 찾을 라고 한느 것이요 이라면 차차차차 거게 갖다가서 양심이 들어  납니다.

이것을 가라쳐서 잊어버린 여인이 빗자루를 가지고 그 은돈을 찾을 라고  찾기까지 쓴다 하는 그것이 양심을 찾는 것을 가라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찾아 양심을 찾아 자기 속에 는 자연에 빛을 찾으니 이 빛과 마음과 이  몸의 기능이 합세가 되어 졌을 때에 그때에 그대에 사모하는 것이 뭐이냐  사모하는 것이 진리와 중생된 새사람 참 자기 입니다.

이럴 때에 비로서 아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참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어디서든지 진리로 자유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무리 연수 앞에서도 사랑이  자유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무리 생명에 위협을 준다 할지라도 의로  자유하여 그것에게 꺾어지지 않는 죽기를 두려워함으로서 종되는 이 종의 멍에를  벗고 죽음 앞에서도 의로 자유로 양심ㅇ로 자유로 진리로 자유로 참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할때에 그 사람이 자기 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기  입니다. 양심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기를 만나게 합니다. 성경 말씀에 이  진리에 역사와 자연의 이 역사가 내 마음을 충동시키고 내 마음을 일깨워서 내  마음이 비로서 양 마음의 주인공이 된 양심을 찾아 이제는 양심과 진리와 자연의  법칙과 이 셋이 하나되어 움직일 때에 옛사람은 쫓ㄱ 나가고 물러 나가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 자기가 나오고 이제는 그때에 내 마으은 마음의 주인된 영을  만났고 내 몸은 몸의 주인인 마음과 영을 만나서 영육이 함해서 한 덩어리가 될  때에 요 사람을 가라쳐서 참 사라이라 새사람이라 말합니다. 요 참 사람이라  이럴때에 이럴 때에 이 셋이 합하면 거게 제일 머리도는 중생된 영이 진리  안으로 인도해서 진리를 소개시킵니다. 진리와 합합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8장에  하시기를 이매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마릉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 참 너를 찾아서 네가 참 사람이 되고  진리를 알지니 했습니다.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제자된 참 사람이 내 심신을 진리로 소개해서  진리와 결합되어 하나가 되어질 때에 비로서 진리가 저를 자유케 하리라 요러면  진리를 만난 요진리는 모든 피조물보다 강하기 때문에 요 진리는 나를 자유하게  합니다. 나를 자유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가졌는데 요 진리가  하나님이신 성령을 만나게 하여 영감을 만날 때에 이럴 때에 성령이 인정하는  진실 이 진리와 모든 만물이 인정하는 진실 자기가 인정하는 진실 요 세 단게의  진실이 될 때에 자기 자기가 자기 양심이 자기 마음이 자기를 인정하는 요  단게에 도달하면 비로서 진리로 중생된 요 영이 진리와 일치를 시켜서 진리가  인정하는 진리에게 인정을 받는 진리에게 환영을 받는 진리가 한 편이라고 같이  협동하고 동행할 수 있는 요 진리의 인정 진리가 나를 참되다 인정하고 진리가  나를 인정하는 것 의임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 하신다 말은 진리가 인정한다 말입니다.

진리가 인정하는 현실 고라고 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신 성령의 감화와 하나될  때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인정을 해야 영감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면 이진실에 중생된 영이 진리로 인도하는 것도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고 또 진리가 성령으로 더불어 성령님에게 인도하는 것도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고 왜 거게는 필연성입니다. 필연적으로 벌써 미혹을  초월했습니다. 미혹을 초월했기 때문에 거는 미혹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는 아무 미혹없이 거게는 자동적으로 필연적으로 전진해서 벌서 중생된  영에게 도달해 도달했으면 영이 진리에 도달시키는 것은 방해물이 없기 때문에  도달하고 영과 진리와 내 심신이 합작됐을 때에는 하나님에게 연결시키는 것은  이것은 필연성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라쳐서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킬 것이요 내 게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우리가 그에게 와서 거처를 같이 하겠다  또 나를 그에게서 다 나타내서 세상에 보여 주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위에 둘은 필연성으로 되기 때문에 우리의 할일은 아니고 우리가 할  일은 자기가 한 것같이 우리 단독이 한 것같이 우리 단독이 한 것같이 해야 될  일은 어디서 어디까지냐 요것은 우리가 이 마음과 몸의 가능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자기대로의 아는 지식 많이 알든지 적게 알든지 요 지식을 아는  범위내에서 요 지식을 모든 자연의 것들의 이 이치를 자기가 아는 범위내에서 고  지식 아는 지식 고것을 써서 옳게 바르게 요 지식대로 요 지식의 모순됨이 없이  배치 됨이 없이 안느 지식 고대로 맞추고 자연에서 받은 이치 고대로 맞춰서  바로 할라고 애쓰는 요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요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요것을 하면 어디서 맞춰져 오느냐 요렇게 할라고 할때에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원수 요놈이 마찰을 해서 요놈이 대적합니다. 이것이 대내전입니다. 자 대내전  자기안에 있는 싸움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원수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들어서  자꾸 갖다가 지옥가자 합니다. 그놈이 들어서 옳게 하는 것을 못하게 합니다.

제가 이제가지 길들여 논 그 습성에 위반되고 취미에 위반되고 이제까지 해논데  위반되고 세상이것 저것에게 모순되고 위반되고 손해 갖고 안되고 파괴되고  하니까 안된다고 요놈이 달라듭니다. 그러나 요놈에게 미혹 받지 말고 자기가  이매 두가지 지식을 가진 요 지식을 활용해서 요 지식이 말하는 옳은 대로 행할  때에 비로서 자기의 양심은 자구 솟아 납니다. 이래서 그러면 요렇게 할라고  할때에 한번 하고 두번 하면은 고게서 양심이 생겨져서 양심이 자구 갖다가서  큽니다. 양심이 자랍니다. 양심이 자라면 아는 것도 넓게 알고 양심이 자라면  아는 것도 길게 알고 깊이 알고 또 양심의 세력이 강해서 내 마음이 이 양심을  쉽게 거절하지 못합니다. 거부하지를 못합니다. 몸이 거부하지 못합니다. 이  양심은 자기의 무얼 먹고 자라느냐 성경 지식을 먹고 자라고 이 자연계시에  지식을 먹고 자라 이제 하나만 알 때는 요것은 틀렸다 알았는데 둘을 알고  보니까 틀린 것 둘을 알게 됩니다. 하나만 알아야 될때 알 때에는 깨야 할 것이  하나 뿐이지만은서도 한 지식을 더 아니까 해야 할것이 둘이 됩니다. 요것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차차 옛사람이 죽어지고 요 심신이 양심에게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 요것이 길이 들어져서 양심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이래서  일차적으로 양심이 우리 심신에 왕이 되야 됩니다. 양심이 우리의 심신의  주도자가 되고 주권자가 되고 왕이되야 됩니다. 이러면 이것이 이제 강하게  역사해서 옛사람이 차차 쇠해져서 물러가는 동시에 잊어벼렸던 자기를 찾게  됩니다.

잊어벼렸던 참 자기를 찾게 됩니다. 이 참 자기는 환란 중에서 찾기가 쉽고  자기가 큰 멸망이나 실수 중에서 찾깆고 어쨌든지 세상과 육이 망하게 되는  그때에 묻혀 있든 것이 이리하여 이제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 사람 이것만  되면은 그 다음에는 주의할 것 하나 바껭 없습니다. 주의 할것은 오만한 자리만  앉으면 멸망입니다. 오만한 자리에만 앉지 아니하고 거게서 여전히 갈그을  가지고서 겸손히 나가면 중생된 영과 진리가 우리의 심신을 붙들고 나아가는 그  세계는 벌써 세상이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세상의 이 선을 넘은  세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는 세상이 따라오지를 못합니다. 세상이 거게는  오지를 못합니다.

그 위에서 이제는 나가는 걸음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주께서 이기심 같이 이 세상은 의례히 이겼고 세상은 그에게 지배를 받는 것이니  요것이 현실에서 되어지는데 요럴 때에 자기 현실이라는 요 현실에 자기  현실이라는 요 현실에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과 하나니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완전과 하나님의 진리와 뜻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븜과 하나님의 완전전과 하나님의 진리와 뜻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도성인신 십자가의 대속 중생 중생 요 양심 요것이  자기의 현실이라는 연실 속에 마음의 기능 속에 요걸 입은 요 마음의 기능이  몸의 기능으로서 현실이라는 현실 속에 마음의 기능 속에 요걸 입은 요 마음의  기능이 몸의 기능으로서 현실을 통과 했을 때에 요것으로서 요 절정은  끝마쳤습니다. 요것이 완성이 됐습니다.

요것으로 송곳 끝으머리는 이루워 졌습니다. 이럴 때에 이것으로서 부분적의  완성이 됐고 이래 된 이것은 하나님의 시판 넘어 무궁 세계에서 하나님은 제일  왕이 되시고 그 밑에 모든 것이 다 부합하고 부합되어 가지고서 자기에게 건너  온다는 그 중생된 영도 함께 부합하고 부합되어 가지고서 자기에게 건너 온다는  그 중생된 영도 함께 부합되어 영은 영 안에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목적  이것이 그 안에 다 하나 되어 자기의 히밍 되고 자기의 소망이 되고 자기의  지혜가 되고 자기의 능력이 되고 이것이 자기 안에 자기가 되어 이것이 자기  안에 자기가 되어 무궁 세계에서 영게는 마음이라는 이 승구를 타고 마음이라는  제 일 영게있는 모든 것을 접선할 수 있는 송곳 끝과 같고 이 발단과 같은 이  마음을 통하여 영게있는 모든 것과 접하고 이 몸의 기능을 통해서 물질계의 모든  것과 접하여 내가 그 안에 들어 갈 때에 하나님도 같이 들어가 있고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나타내고 나는 만물 안에서 그들에게 충만해지고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었고 하나님은 내 안에 내가 되었고 하나님은 내  생명이 되었고 하나님은 내 지능이 되었고 하나님은 내 안에 내가 되었고 내  주가 되었고 내 왕이 되었고 나는 그의 성전이 되었고 그의 몸이 되었고 내 주가  되었고 내 왕이 되었고 나는 그의 성전이 되었고 그의 몸이 되었고 그의 지체가  되었고 그는 나에게 머리가 되었고 나는 그의 몸이 되는 이것이 우리의 구우너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면에서 힘을 써야 될긴가 그러기에 자기 양심을 만나지  아니한 자는 구원에는 천리만리 멉니다. 먼저 일단 양심을 만나기 전에는 구원이  안 됩니다. 양심을 만난 이후에 구원이 됩니다. 양심을 만나는 데에는 옛사람  이놈이 방해하기 때분에 자기 안에서 수많은 대내전이 있어 승리로 비로서  양심을 만나지 이 자기 아닌 엣사람 이놈을 쫓아내기 전에는 이놈을 죽이기  전에는 절대 양심을 못 만납니다. 왜 이놈이 이간을 붙이고 방해를 지깁니다.

이놈을 물리치고 양심을 만나는 그 전투자가 누군가 우리의 마음의 기능이요.

우리의 몸의 기능이 진리와 자연의 이 지식을 받아 가지고서 이것이 옳다는  긍정하는 요 마음과 요 몸의 기능이 요기 들어서 힘을 쓰는 요것이 양심이,  요게서 움트는 것이요 요게 배 가지고서 발족하여 생겨지는 것이요 양심이  비로서 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 속에 옳고 바르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옳고 바르게 참되게 이 구원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요것을 다하는 다시말하면 사욕을 완전히 포기한  자기를 부인한 요것을 다해서 내 전부를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바른 그  구원을 이루워 가 보겠다는 요것이 마음에 생겨져야 구우너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생겨져야 요것이 생겨지면 자기 안에 반드시 싸움이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자기 아닌 옛사람 이놈으로 더불어 싸움이 있는데 이 싸움을 싸워서 이기야  비로서 양심을 만나게 됩니다. 양심의 인도를 받아 갈때에 양심의 인도를 받을  때에 양심의 인도를 양심에게 집중되어 양심이 통솔자 되고 양심의 인도를  받았을때에 그 때에 영을 만나게 외어서 영의 사람이 됩니다. 그때에 영으로 살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영이 나를 진리의 궤도로 진리에 문으로 나를 같이  데리고 갈 때에 그 안에 계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거게서 비로서 영감을  만나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영이 나를 진리의 궤도로 진리에 문으로 나를  같이 데리고 갈 때에 그 아네 계시는 분이 성령닙이십니다. 거게서 비로서 영감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기 영감은 이 밖에 지금 우리 갖다가서 양심을 만나지  못할때에도 신비하게 우리에게 외부적에서 역사합니다. 우리 주위에 외부적으로  이 진리대로 역사하고 역사하나 만나게 될 때에는 이 순서를 통과하면 성령이  나를 주관하게 됩니다. 영감이 나를 주관하게 되면 영감이 나를 주관하는 분이  내생에는 하나님이 하는 생애요 하나님의 역사기 때문에 피조물은 소원하고 고대  하다가 이걸 원합니다. 이것을 가라쳐서 만물이 하나님의 묻 아들들의 자유함이  이르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자기  마음에 가책을 두고는 이 구우너에 접선이 안 됩니다. 자기 마음에 가책되는 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야 됩니다. 끊어 버리야 됩니다. 와전히 벗어나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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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0 세상의 빛과 소금/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51006 남권찰회 선지자 201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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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7 세상의 빛/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80904 남권찰회 선지자 201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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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4 세상의 결국과 우리 소망/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830606월새 선지자 2015.11.08
2663 세상을 주신 목적/ 고린도후서 13장 1절-5절/ 810223월새 선지자 2015.11.08
2662 세상을 이긴 원천/ 히브리서 11장 7절/ 86112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8
2661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한계시록 17장 13절-14절/ 1980년 46 공과 선지자 201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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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8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갈까/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1983년 24 공과 선지자 2015.11.08
2657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갈까/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1983년 24 공과 선지자 201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