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살고 갈까

 

1987. 9. 20. 주일새벽

 

본문: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오늘 가르칠 공과입니다.

제목은 ‘세상은 어떻게 살고 갈까?’ 어떻게 살면 잘 살고 가는 일이 될까?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갈까? 왜? 이 세상은 아주 중요한 세상입니다. 하루밤 나그네와 같이 짧기는 짧지마는 영원을 좌우하는 결정을 지우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중요합니다.

세상 실패는 영원 실패요 세상 성공은 영원 성공입니다. 세상 성공과 실패를 세상적으로 성공과 실패가 그것이 우리의 성공과 실패로 생각하는 데에서 사람들이 다 오산해 가지고 실패를 합니다.

‘세상은 어떻게 살고 갈까?’ 세상은 짧은 세상이지마는 아주 중요한 세상입니다. 왜 중요한가? 영원을 좌우하는 원인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의 영원을 멸망이면 멸망 구원이면 구원 결정지우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아주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세상은 어떠한 것인가? 세상은 어떠한 것인가? 첫째로, 세상은 언제든지 이와 같이 있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구원할 자 멸망할 자 이것이 확실히 판정되면 그때에 모든 것은 다 불사뤄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세상이 자기의 영원히 살 곳인 줄 알고 그렇게 살면 아주 그것은 잘못입니다. 세상이 자기의 살 곳인 줄 알고 준비하는 생활은 전부 다 자기를 속이는 생활이요 망치는 생활입니다.

세상은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또 세상은 영원을 준비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항상, 어릴 때나 장성할 때나 영원을 준비하는 세상인 것을 이거 똑똑히 알고 영원을 준비하는 세상으로 살아야 되지 세상에서 사는 것이 자기인 줄 알고 세상에 살 준비 하는 것은 다 그것은 속는 생활입니다.

세상에서 살 준비 하는 것은 속는 생활이요 세상에서 영원을 준비하는 세상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라면 사람들은 기독자는 세상을 그러면 다 부인해 버리고 세상을 싫어하는, 불교와 같이 염세주의로 그렇게 살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고 세상은 영원을 준비하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중요합니다. 세상에 있는 물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하고 모든 것 필요한데 그 필요는 왜 필요하냐? 그 필요한 것은 영원을 준비하는 데에 이용될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자기의 영원히 살 곳으로 알고 살아도 속는 일, 또 세상에 있는 것은 이것은 어짜든지 자기가 많이 가지면 좋고 또 많이 쓰면 좋다고 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쓸라고, 많이 먹고, 많이 입고, 많이 쓰고 할려고 하는 그 위주로 사는 사람도 그 속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 주신 것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잠깐 가졌다가 떠날 것인데, 그것을 가지는 동안에 자기의 영원을 연습하고 마련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져갈 것은 자기만 가져갑니다. 자기와 자기 행위 그것만 가져갑니다. 자기 행위,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 됐든지 자기와 자기 행위만 가져가기 때문에 세상살이에서 세상에 이런 것 거런 것 이것을 많이 취하고 많이 먹고 많이 입고, 다른 사람은 하루 생활비 예를 들어서 백 원 쓴다면 저는 만 원이나 쓴다든지, 다른 사람은 생활비를 십 원 쓰면 저는 뭐 몇천만 원이나 쓴다든지, 다른 사람은 시장을 적게 보면은 저는 시장을 많이 보고, 또 다른 사람은 하루 생활비 얼마 드는데 자기는 많이 들고, “세상 물건을 쓰는 자는 과도히 쓰지 마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런 거 저런 것을 사용하면서 그거 가지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세상에 갈 자기를 이렇게 저렇게 연습해서 멸망의 사람을 만들든지 또 구원의 사람을 만들든지, 경건한 사람을 만들든지 불경건한 사람을 만들든지, 자기 욕심을 만들든지 어쨌든지 자기를 만들고 또 자기 만든 행위, 자기를 만드는 것은 행위에서 만들기 때문에 자기를 만든 행위와 자기 둘만 가져가지 뭐 억만금이 있어도 하나도 못 가져갑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걸 쓰는데 하나님의 것을 적게 쓰고, 적게 쓰고 같은 것 만들었으면 적게 쓴 사람이 그 나라에 가 가지고서 자기 사용한 것을 것을 보상을 다 자본을 제해버리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쓴 소비세를 제해버리면은 적게 소비한 사람은 남은 것이 많을 것이고 많이 소비한 사람은 남은 것이 적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빚을 지지 안할라고서 무언중에 다 계산합니다. 말 없는 가운데에 다른 사람이, 예를 들어서 만일 밥 한끼라도 사 줬으면은 그걸 대번에 돈을 ‘나 먹은 거는 내가 내겠다’ 이라면 안 되니까 안 할지라도 어디로 어떻게 갚아서라도, 사랑 외에는 빚지지 안할라 하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또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쓰고 갈라고, 자본은 적게 들이고 구원을 잘 이룰라고 그래 애씁니다.

같은 집이라도 건축비를 적게 들이고 같은 집을 지었으면 적게 들이고 같은 집 지은 사람은 수입이 많을 것이고 많이 들이고 같은 건축 했으면 그 사람은 뒤에 남는 게 없을 거 아닙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 계산할 것이라 하는 그것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두 번 우리가 만나지 못 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그것은 참 사람들은 그저 어짜든지 다른 사람을 막 정복해서 끌어엎어 놓고 모든 사람을 제 사다리로 삼고 제 발판으로 삼아 가지고서 이렇게 올라가면 그게 좋은 건 줄 알아도 그게 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저 될 수 있는 대로 자기는 다른 사람의 발판이 될라고, 다른 사람의 사다리가 될라고,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이 커지도록 할라고, 다른 사람이 높아지도록 할라고 이렇게 애를 쓴다 말이오. 암만 눈으로 봐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살이를 잘 알고 살아야 되겠는데 무엇을 표준해 살아야 될 건가? 그 날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했습니다. 그 날이라 하는 것은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마지막에 결말은 뭐이냐 하면 죽습니다.

‘죽는 날’ 또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재림의 날' 또 우리는 반드시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 이다음에 부활을 합니다. ‘부활하는 날’ 또 부활하고 나면은 `네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을 낱낱이 다 조사하고 행동록에 기록된 대로 계산을 댑니다.

우리 사람은 벌판이로 이래 살고 있지마는, 먼저 광주에서 된 거 뭐 천주교에서 명동 성당에서 극을 했다 하는데 광주에서 그때 비참한 그런 거 뭐 그런 것만 딱딱 사진 찍어 가지고서 극을 했다 하는데 그때는 사람을 많이 죽일 게 아니라 몇 사람만 죽여도 이 참혹한 줄 알고 아예 알아서 안 달라들구로 이래 해야 되겠다 그런 방편 쓴다고 썼는지 모르지마는 그런 것만 딱 촬영을 해 가지고 뒤에 나타나니까 그 일이 지내가고 난 다음에 그 나타나니까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라고 ‘그럴 수가 있나?’ 한다 그말이오.

저는 몰랐지마는 사진 짝 찍으면 전부 사진에 딱 박히지 않습니까? 뭐 자기 우는 거 찡그리는 거 뭐 용모의 모든 게 다 박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이 우주는 하나님의 필림입니다. 하나님의 녹음기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먹은 것도 생각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녹음기에 그대로 다 녹음되고 또 자기의 모든 행동한 것도 하나님의 이 필림에 다 전부 촬영이 다 된다 말이오. 다 박힌다 말이오. 이것을 가리켜서 행동록이라 했어. “자기의 행동록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다” 이렇게 말씀했어.

이러니까 이런 줄 알고 우리는 그 날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른다.’ 또 ‘주님의 재림도 언제 올지 모른다.' 내가 죽을 때에 그때, 일생을 살고서 마지막 결론으로 죽을 때에 ‘나 일생 산 것은 후회가 없다.’ 죽을 때에 후회 없는 생활 해야 되고 죽을 때에, ‘인생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강단에서 자꾸 이래 살아라 성경 말씀에 저래 살아라 하는 그게 옳다.’ 이제 다 같이 이 세상에 있을 때는 내가 사는 게 어리석다 싶었지마는 죽을 때 딱 보니까 ‘그 사람 사는 생활은 전부 산 생활은 헛일이고 내가 산 생활은 참 이거 바로 살았다. 하나님이 나를 바로 지도해 주셨다.’ 또 예수님의 재림이 되고 보니까 그 모든 거 다 불타지지 않습니까? 불타지는데 자기의 행동만 엉그리하이 남아 있습니다. 배암이 죽으면 살은 다 빠지고 배암 가시라고 엉거드리하이 이래 가지고 엉그리 있습니다. 그 가시가 독합니다. 그 가시에 찔리면 그만 병나요. 배암 가시 찔렸다 하면 그거 뭐 파내야 되지, 그거 살을 도려내야 되지 그만 썩어 들어가 버려.

이거 모양으로 이 세상에 행동한 것 보니까 막 배암 가시보다 더 합니다. 저는 돈을 인해서 그 행동 했고, 지위 위해서 그 행동 했고, 영광 위해서 그 행동 했고,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선전해서 알려 주기 위해서 그 행동 했고, 했는데 그 하는 그것이,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저희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자기를 영광스럽게 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 행위가 뒤에 떡 남아 있는 거 보니까 모든 사람이 다 보고 싫어하고, 다 조롱하고, 다 끔찍스럽게 생각하는 그게 뭐 좋습니까? 이러니까 부부간도, 부부간도 살살 속여서 꼬와서, 여자는 꼬와야 돼. 여자는 꼬와야 된다 나는 그걸 아직도 거기 대해서 무식하고 있어. 여자는 꼬와야 돼.

꼬우면 그만 좋아해요. 꼬우면, 그러니까 다 꼬여서 사는데 옳은 것은 말하면 원수같이 생각해. 옳은 것을 말하면 원수같이 생각해. 그래도 나이가 많으면 차차차 그 길을 들어서요.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 때에 뭐 위해 살 것인가? 네가 죽음의 날을 생각하고 거게 계산을 대라. 죽음의 날을 생각하고 ‘죽을 때에 어찌 되나?’ 죽을 그때의 계산으로 네가 평생 살아라. 예수님의 재림을 만나는 그때의 계산으로 살아라. 이다음에 부활할 그날에 수지 계산에 맞아야 된다. 부활할 그때에 ‘이게 유익이다.’ 부활할 그때의 이해로 살아라. 하나님의 심판 때에 ‘이건 참 유리하다. 이건 손해갔다.’ 심판 때의 그때의 이해로 살아라. 영원히 자기 행동에 갚음을 받는 그 날에 계산으로 살아라. 그 날 계산이 제 계산이지 떠날 때에 이 세상에 있는 뭐뭐 두고 갈 그까짓 거야 좋으면 뭣하며 나쁘면 뭣할 것입니까? 이러니까 우리 개인의 죽음의 날, 예수님의 재림의 날, 부활의 날, 심판의 날, 영원히 갚음을 받는 날 그날을 항상 생각하면서 그 날의 수지 계산으로 계산을 대고 살아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오산하고 오판하면 안 됩니다. 세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살아야 되지 잘못 살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전생활이 그 날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하루 종일 살고 난 다음에 ‘오늘은 보자, 오늘은 돈은 얼마나 수입이 됐노? 다른 사람을 얼마나 내 발아래 쳐넣고 내가 밟고 올라섰노? 다른 사람을 내가 얼마나 이용을 했노?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이용을 당했노?’ 그런 것 가지고서 그래 하는 건 다 멸망받을 사람들이, 생명의 도리를 모르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래 살고 우리는 그래 사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살면서, ‘오늘은 보자, 내가 죽을 때에 죽는 그 날에 수입을 오늘 봤나 손해를 봤나? 돈은 뭉떵 모았지마는 죽을 그날에 모든 하나님과 만물에게 수치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했다. 오늘은 수입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기는 당했지마는 죽을 그때를, 오늘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오늘 생활은 참 잘됐다.’ 언제든지 죽음에 계산하고, 재림에 계산하고, 부활에 계산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계산하고, 영원히 갚음을 받는 거게다가 계산을 대 가지고서 그것이 내 수지 계산이지 딴거는 다 소용 없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오산하고 오판하고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묻는 말에 ‘영원을 가진 인생의 제일 요긴한 토막이 어느 토막인가?’ ‘세상에 있는 기간입니다.’ ‘각인의 세상살이는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경건과 불경건, 구원과 멸망을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자꾸 뭐 세상에서 날도 우리가 차지했고, 공간도 차지했고, 공기도 차지했고, 물질도 차지했고 모든 거 차지했는데 그것을 많이 먹으면 좋은 줄 알고 많이 가지면 좋은 줄 아는 것이 아주 오산이고 착각이라.

그것을 가지고 자기는 어떻게 그것을 가지고 행동했느냐? 자기 행동을 지금 연습해서 만들고, 거게서 자기를 연습해서 만들고, 그 모든 만물을 가지고 살게 한 그것은 거게서 자기 행위와 자기 자체와 자기의 소유를 마련하는 그 현실로 알고 살아야 됩니다.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으드는 그 사람은 물질 가지고서 세상에서 다른 사람 봉사한 것은 제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항상 그게 뭐이냐? 땅에 두고 땅에 저축하지 안하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입에 저축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몸에 저축하고, 돈 없어 이 모든 병 고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의 치료에 저축하고, 전부, 또 인간을 구원하는 모든 복음 운동에 저축하고 전부 자꾸 저축만 했지 그 사람은 땅위에 모으는 일을 하지 안했어. 그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

이러니까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구원이냐 멸망이냐, 영원한 수치냐, 다른 사람에게 조롱받을 수치냐 모든 사람이 ‘아’ 참 감화받을 수 있는 칭찬이냐? 수치냐 칭찬이냐, 멸망이냐 구원이냐, 거지냐 부자냐, 저만 따독거려 모아 가지고서 자꾸 하는 그거 어데 가서 누가 알아 줄 겁니까, 알아 주기를? 어리석어.

그러면 주의 날은 언젠가? 별세의 날, 예수님의 재림의 날, 부활의 날, 심판의 날,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 그날이니까 그 날에 좋으니까 항상 그 날을 생각하고, 그 날을 생각하고 그 날에 수입이 내 수입이요 그 날에 손해가 내 손해지 그 날에 손해가 아닌 손해는 뭐 그거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상관 없어. 그 날에 손해가 내 손해 그 날에 수입이 내 수입이니까 거기다가 표준을 두고서 수지 계산을 맞춰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또 우리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 `주의 날에 있습니다.' `우리의 수입은 어디 있는가?’ ‘주의 날에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 날, 목적도 주의 날에다 두고, 수지도, 수지 계산도 주의 날에다 두고, 또 성공과 실패도 주의 날에다 두고, 그 날에 성공이 내 성공이고 그 날에 실패가 내 실패지 그 날에 상관 없는 실패 그까짓 거 암만 해도 소용 없습니다. 그 날에 성공 아닌 성공은 아무리 해 봤자 저는 소용 없습니다. 왜? 내가 그 날을 만날 터이니까. 결말이 그 날이기 때문에.

요거 생각하면서, 요번에 두번째 가르치는데 어짜든지 자기가 맡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데 자기가 먼저 요것을 기억하고 요대로 사는 사람과 안 사는 사람의 말도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이러니까 꼭 반사들도 요대로 살아야 돼요. 이대로 안 살고, 하루 종일 살면 어떤 사람은 그래도 사는 가운데서 ‘오늘은 보자 어떤고?’ 그 날에다가 두고서, 그 날을 두고서 ‘오늘 수지 계산이 어찌 됐노?’ 이래서 암만 돈이 끌어와도, 돈이 와도 그 날에는 소용 없기 때문에 다 집어치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날에 수입 없는 그 사업에서 막 돈을 거머닥친다 해도 그까짓 거 당장 치워버립니다. 그 날에 수입 없는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 날에 수입 없는 사업 하지 안해요. 그 날에 유익되는 그런 사업 해.

이러니까 하청풍언씨 그런 사람도 빈민굴에 가 가지고서 자기 눈에 안약 넣을 여가가 없어서 눈이 상하고 마누라가 상해도 그래도 살았지. 그러니까 그런 이는 다 그 날에다 저축해. 저축도 그 날에 저축하고, 다 손해도 그 날 손해를 지금 방어하고, 수치도 그 날 수치를 모두 다 해결짓고, 그 날에 영광 존귀 있는 그것을 해요. 그 날을 두고 살아요. 이 세상 사람은 그 날을 전연히 몰라요. 그러니까 그 생활이 엉망이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크나 작으나 일생 생활을 우리는 그 날을 두고서 그 날에 수지 계산으로 내 수지 계산을 삼아서 살아야 합니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언제든지 요 공과를 외우면서, 이 자꾸 여러번 공부하는 것은 이걸 반사 선생님들이 외우고 이 공과를 완전히 자기의 복음을 삼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이 공과를 외우고 반사 선생 노릇을 잘할라 하다 보면은 자기가 바로 구원 됩니다.

그라고 지하철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이거 이상하게도 말이요, 다른 데를 다 메우고 여기 맨뒤에 메우기로 했는데 다른 데는 하나도 안 메우고 여기부터 먼저 파고 메우고 해. 이래 놓으니까 여기만 메우면 쪼삣하게 이래 올라올 것 아니겠소? 다 메우고 여기 깊어지면 저절로 매워지는데. 이 정반대로 처음에 안 그러기로 했는데 뭐 여기 서부산 경찰서에서 교통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서 하는데 교통 문제야 좀 불편해도 사람 수만 명이 안 죽는 게 낫지 수만 명이야 죽든지 말았든지 교통에 편리하고 불편한 그것을 위주로 삼는 그런 서장이 어디 있겠소, 있기를? 그거 거짓말일 거라 말이요, 가 물어보면. 그 사람이 그러면 서장이 몰랐든지.

여게는 지금 사람이 벌써 수만 명이 예배 보는데 장보가 이런 장보가 이 철근으로 철근 공굴로 해 가지고 이런 것은 부산에는 없어요. 서울에도 없어요.

전국에 이래 긴 건 없어요. 모두 다 철골로 해 가지고 이래 했지.

이래 놓으니까 자기네들이 ‘이거 이런 걸 어데 허가를 내 줬노?’ 철골로 한 건 이보다 더 긴 것도 있지마는 이 철근으로 해 가지고 공굴한 건 이런 게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도 그때 그걸 뭐 철골로 안 하고 이래 놓으니까 그것도 있지마는 다 허가 내 가지고 했기 때문에, 이거 보고 ‘이런 집을 누가 허가를 내 줬노?’ 다 위험성을 가지고 있어. 이미 돼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사람 안 죽도록 해야 될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여게서 그렇기 때문에 빠이루 박는 것도 지금 주의해 박았고 이러니까 또 이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러니까 ‘여게는 맨뒤에 해야 되지 이라면 안 되겠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면 그 서장이 ‘그래도 안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우리가 서에 데모할 거라 말이요, 참말로. 정말로. 그럴 리가, 서장이 그래 할 리가 없다 말이오. 이런데 저거 구설이라, 내가 생각하기를. 이거 또 몰라서 서장이 모르고 또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이러니까 여러분들 기도를 많이 해야 돼.

기도를 많이 하면 다른 데부터 다 메우고 여기 맨뒤에 메울 터인데 딴데는 하나도 안 메우고 여기부터 먼저 메우는 이게 우리가 기도를 바로 해서 하나님이 듣고 하시는 것인지 뭐인지 모르겠다 그거요. 응답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기도를 많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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