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음성

 

1981. 6. 7. 주일오전

 

본문:열왕기상 19장 9절~18절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이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지난 주일날 이 말씀을 증거했고, 오늘 오전에 주일학교와 중간반에서 이  말씀으로 증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엘리야가 브엘세바로 도망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잠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에게  「내가 별스러운 사람이 아니니 이제까지 한 것으로도 족하니까 내 생명을 불러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하다가 피곤해서 쓰러져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에서는 아합왕이 이방 여인 이세벨과 결혼해서 그 여인을 왕후로  세웠는데, 아주 용모가 아름답고 수단이 뛰어난 여인이라서 왕이 완전히 미혹이  되었습니다.

그 여인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꾀어서 자기 사람을 만들었고, 아부하지 않는  선지자들은 거의 다 죽여 버렸기 때문에 엘리야가 생각하기에도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할 만큼 됐고, 죽지 않으려고 정치에 아부하는 거짓 선지자만 남은  그런 때입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이 백성들이 배가 고프든지 무슨 징계가 없으면 회개하지 않을  것이니까 비를 내려 주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해서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합왕이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알고 죽이려고 체포령을  내렸지만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중에 워낙 가뭄이 심해지니까 엘리야를  만나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해서 온 관민들이 엘리야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을 받고 찾아가서 「비 오지 않는 이 문제를  해결을 지으려면 이세벨의 선지, 이방 선지, 정권에 아부한 선지들을 다 데리고  오라」 해서 그 사람들을 다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너희가 섬기는 신과 내가 섬기는 신 중에 어느 신이 참신인지  구별해서, 너희가 섬기는 신이 참신이면 내가 너희 칼에 죽겠고, 내가 섬기는  신이 참신이라면 내 칼에 너희들이 다 죽는 것을 약속하자」 하고 서로  약속했습니다.

참신이라는 증거는 제물을 차려 놓고 섬길 때 신이 하감하는 것으로 시험하기로  했는데,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북 치고 장구 치고 굿을 했지마는 아무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엘리야가 나서서 제물 주위로 도랑을 파고 물을 붓고 제물이 물에  잠기도록 해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살아 계신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이  이렇게 어두워져서 이세벨의 미혹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사오니,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우리  조상적부터 섬겨온 참 하나님이심을 이 제물을 불로 태워서 증거해 주옵소서」  했습니다. 그럴 때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려와서 제물과 물을 태워 버렸습니다.

그 일을 보고 온 백성들이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데 이 거짓  선지자들이 우리를 꾀워서 망쳤다고 분개할 때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전부  기손 강가에 데려다가 목을 베어서 강물에 띄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가 갈멜산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해서 비가 왔고 다시 풍년이 들었습니다.

이 내용이 야고보서 5장에도 기록되어 있고 또 열왕기하 16장 이하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아합왕이 아내 이세벨에게 말하니까 이세벨이 당장에 사람을  엘리야에게 보내서 「내가 내일 이맘 때는 네가 죽인 선지자의 한 사람 같이  너를 죽여서 기손 강물에 띄우겠다. 만일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섬기는  신이 내게 벌 위에 벌을 주리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로서는 그 나라 정권을 잡은 이세벨을 당할 능력이 없으니까  도망을 쳐서 브엘세바로 갔는데 그곳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갈 데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고 다만 하나님과 신앙의 선배밖에는 없으니까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던 브엘세바에 가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불러 달라고 하다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와서 말하기를 「엘리야야, 네가 여러 날 굶었으니 이 음식을  먹어라」 하고 깨워서 일어나니까 머리맡에 숯불이 놓여 있고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또 피곤해서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또 천사가 말하기를 「네가 지금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이 식물을 먹고 기운을  얻어야 갈 수 있으니까 일어나서 이 식물을 먹어라」 하기 때문에 그 식물을  먹고 힘을 얻어서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간 곳이 호렙산입니다. 엘리야로서는 달리 갈 곳이 없습니다. 찾아  봐야 하나님의 사람들이 은혜 받던 그곳밖에는 갈 곳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하고 또 선배들이 은혜 받은 굴을 찾아가는  그런 것과 같습니다.

그곳 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불렀습니다. 「네가  어떻게 해서 여기 있느냐」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에게 대한 열심이  특별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단을 헐고, 또  이방신을 이끌어 들여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죽여 버리고 정권에 아부하는  간교한 선지자들만 남아 있는데, 하나님 편에 선지자로서는 나만 남았는데 지금  나를 죽이려고 찾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눈을 들고 어느 시대든지 세상 권세에 등을 대고 앞잡이가 된  하나님의 종들과 교회는 참 교회를 미혹하는 적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엘리야야 네가 일어서서 이 산 언덕에 서  있으면 내가 지나갈 것인데 네가 나를 만나면 이제까지 네가 하던 일이 성공으로  끝을 맺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여호와 하나님 지나가시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는데,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아주 무서운 큰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위엄스러운 바람이니 여기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고 바라봤지만 바람이 다  지나가도록 하나님은 그 가운데 계시지를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아주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지진 속에 내가 만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면서 또 기다렸으나 하나님은 계시지를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이 일어나서 산을 태우는데, 「아, 선조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이 불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면서 살폈는데 불  가운데도 여호와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러니까 엘리야로서는 그만  낙망이 될 지경입니다.

이런데 그 후에 귀에 아삼아삼하게 들리는 가느다란 세미한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에 비하면 가늘게 들리는 음성이니까 특별한 것이 아닌데  들려오기 때문에 그 음성을 들으니까 그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엘리야를 부릅니다.

「엘리야야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엘리야는 모르고 덤볐다는  말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열심히 특심했는데,  내막인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배반하고 제단도 헐고  이방 제단을 쌓아 놓고 하나님의 선지자는 다 죽이고, 아부하는 선지자들은 살려  놓고 또 이방 선지자를 끌어들여서 완전히 이스라엘 나라가 뒤집혔는데 나  혼자만 굴하지 않으니까 나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피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내 생명을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만 남은 것이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아니한 진실한 성도 7천을  지금 내가 남겨 두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오던 길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죽음을 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길로 돌아가라니까 기가  막힐 일입니다.

브엘세바를 지나고 예루살렘을 지나서 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다메섹은  이스라엘의 적지입니다. 아람나라의 수도가 되는 도시인데 그곳에 가서  하사엘이라는 아람 왕의 신하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 나라의 왕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가서 예후에게 이스라엘 왕이 되도록 기름을 붓고, 또  농사짓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선지자로 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명령을 하시면서 「네가 못 한 일을 이 세 사람이 다 이룰 것인데, 하사엘의  칼에 죽지 아니하고 그의 칼을 피한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고, 이스라엘 왕  예후의 칼에 죽지 아니하고 피한 자는 엘리사의 칼에 죽을 것이라. 그러면 네가  소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성사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문서로 기록해서 주신 것은 우리  신약교회의 성도들에게 거울이 되고 구원 얻는 길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의 지나간 이야기를 역사로 기록한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기록하려면 온 세상에도 둘 곳이 없는 가운데서 간추려서 구원 도리로 주신  영생의 길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증거하려는 것은 「하사엘의 칼을 피한 자는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한 자는 엘리사가 죽이리라」 하신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때까지는 큰 선지자요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고  많은 투쟁도 했고 진리를 보수하면서 많은 수고를 했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세 가지 순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깨뜨리고, 또 지진이 일어나고, 불이 일어났지만 그  가운데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여호와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들린 세미한 음성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세 가지  일을 엘리사에게 명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무슨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지 굳게 잡지 못하면 애써서 생활해 봐야 구원은 다 헛일이 됩니다.

바람은 운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이런 저런 운동들이 바람처럼  일어나서 산처럼 우뚝 솟은 것도, 바위 같은 굳은 것도 다 가르고 쪼갭니다.

바위 같은 굳은 마음도 깨뜨리고, 산과 같이 고결한 권세도 쪼개는 큰 역사가  기독교 운동에서 일어나는 것을 하나 상징한 것입니다.

지진은 모든 것을 뒤흔들어서 크게 변동시키는 운동을 말한 것입니다. 사람을  회개시키기도 하고 변화시키는 운동이 기독교 안에 있습니다.

불은 기독교 운동 가운데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지고, 의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하는 그런 운동을 말합니다.

그러면 기독자의 신앙을 뜨겁게 만들기도 하고, 크게 변동시키기도 하고, 굳은  마음들을 깨뜨리는 운동은 참으로 귀한 일이지마는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던 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아주 크게 활동했습니다. 세계의 문화와 법이 그 나라에서  됐다고 할 만큼, 또 세계의 종교가 다 집합됐다고 할 만큼 문화의 나라요 선진의  나라였습니다.

그 로마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왕성했던지 국왕이 교황 앞에 머리를 숙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번에 저격당한 교황도 그 계통에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기독교 정치주의라고 하는데 그렇게 굉장한 세력으로 복음운동을  했지마는 그걸로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그 후에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이 있는데, 기독교를 사회 개량하는 종교로  알아서 어느 나라든지 기독교만 들어가면 사회가 개량되고 문예가 부흥되고 또  경제 부흥이 일어난다 이래서, 영국은 북해에서 해적질 하던 나라였는데  기독교를 받은 후에는 아주 위대한 기독교 사회의 국가가 됐습니다.

또 기독교 철학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사회주의가  크게 역사했는데 지금은 기독교 유물주의가 아주 횡행해서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고, 돈벌이는 목사가 제일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렇게 기독교 유물주의, 또 기독교 무신론주의, 기독교가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기독교 용신주의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바람 지진 불로 상징했는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무슨 큰  운동이나 변동이나 뜨거운 역사에 미혹받으면 안 됩니다. 그런 자는 시야가 좁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려면 사학이나 법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는 것은, 법은  인간들이 안녕 질서를 선택하는 것을 알려는 것이고, 사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한 페이지에 놓고 한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작은 부분이나 감정이라는  보자기에 치우치지 않고 시공을 초월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불교는 우상 종교요 구원이 없다고 성경이 말했고 우리도 그렇게  봅니다. 그 불교 본부에도 가면 아주 뜨겁고 세력있고 지진 같은 굉장한 변동이  있습니다. 어떤 종교라도 그 종교 운동이 일어나는 본부는 굉장합니다.

통일교도 한국에서는 알아 주지 않지마는 그 운동이 일어나는 나라마다  굉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가니까 한국 사람은 얼굴이 노랗고 키도 작고  코도 납작하고 못났는데, 그런데 어떤 미국 사람이 좇아와서 문선명씨를 자기  어버이라 하면서 어버이 나라 한국 사람이라고 반갑게 절을 하더랍니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것만 봐도 얼마나 그 운동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종교들이 하는 운동보다도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사회 운동은 더  굉장합니다. 우리 대통령이 미국 방문할 때 TV에서 보니까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취임할 때 제일 돈을 많이 들여서 화려하고 웅장하게 했다던데 직접 참석해서  보면 다 놀랄 것입니다.

‘이 운동이 크니까 여기 하나님이 계시겠다. 이 운동이 크니까 정말로 구원이  여기 있겠다.’ 이런 어리석고 유치한 생각을 하지 말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 운동이 있고, 지진 운동이 있고, 불 운동이 있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다 하는 이것이 오늘 말세에 아주 필요합니다. 말세에 교인들에게  아주 필요합니다.

박태선씨가 우리 교회도 왔고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박태선씨가 지금으로부터  25, 6년 전에 문선명씨의 통일교 원리에 피가름을 말하면서 피가 확연히  바꾸어져야 변화가 되고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불을 일으키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그때 서울 원일교회에서 집회 인도를 하면서 박태선씨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하는데 뒤에 굵직굵직한 청년들이  수십 명이 와서 둘러섰는데 직감적으로 거기서 온 사람이라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그 청년들이 ‘어떻게 해서 이단이라 하느냐?’ 하기 때문에  피가름을 주장하는 것을 말해 주면서 ‘당신들 교주 박태선장로가 나를 잘  아니까 부산에 백영희조사를 잡아오라고 했는지 가서 물어 보고 오라’ 했더니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쾅! 쾅! 쾅!’ 마이크에 대고 두드리면  사람들이 깜짝 깜짝 놀라서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는 말이 ‘정통,  밥통 다 소용없고 나는 하나님과 직통이라!’ 하면서 집회를 했는데, 마치고  나면 금이니 보석이니 하는 패물이 두 말, 서 말씩 나왔습니다. 병 낫는다, 뭐가  어떻게 된다 하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갖다 바쳤던지 옆에  수북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패를 짜서 ‘자, 병 나은 사람은 간증하십시오!’ 하면 ‘나는 이런  병이 나았다!’ 하고 간증하는데 그 중에는 거짓말도 있다 말이오. 그런 운동이  한번 지나갔었습니다.

또 양도천목사라는 분은 음욕, 성욕을 제거하려고 자신의 성기를 거세를  했습니다. 그것 하나만 봐도 성경적이 아닌데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참 잘  살아 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알 것입니다. 성경적이 아니면 절제든 고행이든  소용없습니다.

그분이 한강 백사장에서 집회를 하는데 ‘열흘만 참석하면 성령 충만을 받는데,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했으니까 성령 충만 받으면 남이 기록한  성경이 무슨 필요가 있나? 우리도 다 그렇게 된다’ 했습니다.

그때 제가 우이동 산집회 인도하고 오다가 차에서 봤는데, 10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지금 집회로 말하면 천만 명도 더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천 명  모이는 집회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도 복음운동으로 나섰습니다. 부산에 고신까지 합동해서 그  사람을 초청해서 미문화원 뒤 광장에서 집회했었는데 부산이 들썩들썩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로 쏠려서 야단이 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이 죽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흔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하나님의 운동처럼 보여도  나중에 삐끄러져 나가 버리고 만다 말이오. 그런 운동도 있었습니다.

또 그 뒤에 문선명씨가 통일교 운동을 서울에서 했는데 부산에서는 안 됐습니다.

그 뒤로 국내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그 운동이  대단합니다. 일본에서도 그 운동을 막으려 했지만 못 막았고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도 못 막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저런 운동이 예수의 이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또 거기에서도  전도하니까 믿는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게 기독교의 진수나 기독교의  최종 최고가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운동이 지나간 뒤에 세미한 음성이 있었는데 그 음성 가운데서 세 가지  권세를 받았습니다. 어떤 운동이 일어나더라도 우리의 구원은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껍데기 운동에 구원이 있지 않습니다. 그 운동으로 전도받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더라도 구원을 이루는 것은 세미한 음성에서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그러면 세미한 음성은 무엇인가? 지난 시간에 세미한 음성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제일 외부는 무엇인가? 세상에는 사람들이 놀랄 만한 지식이나 학문이나  사상이나 주장이 많은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은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  많은 것 중에서 신구약 성경 66권이 제일 요긴하고 요지가 되는 세미한 음성의  위치에 있습니다.

또 신구약 성경에는 66권에 기록된 도리를 읽고 외우고 보는 가운데에서 일반  신학에서 말하는 내재적 영감이 있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문서만이 아니라 성경  말씀 안에는 성령의 감화 역사가 있어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하는데 이 역사를  내재적 영감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읽되 성경 안에 계신 성신의 감화로 자기 구원에 필요한 성경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세미한 음성입니다. 성경을 100독을 하고 외워도 그것은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과 같은 것이요,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진리를 바로 깨닫게  하는 것이 성경 안에서는 세미한 음성입니다.

여러분들도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바로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깨닫는  방편은 사람에게 배워서 되는 것도 있고, 직접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도 있는데,  한 자리에서 같이 들어도 바로 깨닫는 사람이 있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성신의 감화가 있고 없는 데서 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감화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자기  인격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오는 것이지 무슨 학문 배우듯이  와서 앉아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다. 갈급하고 가난하고 간절하고 빈 마음이라야  합니다. 쓴 뿌리가 다 도말되고 옥토 같은 마음을 가져야 성신의 감화가 사람을  통해서 가르치든지 성경을 읽을 때 깨닫도록 합니다.

‘나는 박사라서 자다가 들어도 무식한 사람들보다는 낫다.’ ‘네가 속았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제재받고 이용당하고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유식하고  명철한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고 진실해야지 교만한 자는 소용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통해서 깨닫든지 성경 보고 깨닫든지 어쨌든지 깨닫는 것이  제일이요, 깨닫지 못하면 불쌍한 사람 되고 맙니다.

그러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성경을 깨달은 사람에게 대해서 세미한 음성은  어떤 것이냐?  현실을 만나서 하나님 앞에 ‘내가 이 사람을 물리쳐야 됩니까, 환영해야  됩니까? 이 말을 들어야 됩니까, 거부해야 됩니까? 이 일을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물으면 자기를 중생시킨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세미한 음성입니다.

이것은 귀로 들어야 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한 이 귀는 심령의 귀, 양심입니다. 양심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감화를 제일 빨리 듣습니다.


세미한 음성이라고 한 것은 아주 가늘어서 자세히 듣지 않으면 안 들린다는  말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은밀히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가늘게  기도하라는 말입니까? 양심으로 기도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니까, 세미한 음성은 양심으로 들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양심으로 세미한  음성을, 영감을 잘 듣겠습니까? 가만히 앉았으면 잘 들립니까? 눈을 감고 보이는  것을 다 제거하고 ‘주여, 이 현실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양심을 써서 고요히 생각하는 명상, 묵상에서 잘 들릴까요  춤추고 뛰고 굴리면 잘 들릴까요?  춤추고 한바탕 놀면 힘이 나는데, 공산주의가 협박하고,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인다고 할 때 그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밤중에 신랑 맞이하는  최종이 결정되는 때인데 뛰고 굴림으로 생긴 힘이 그때도 활동할까요? 못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대로 눈감고 생각하는 것으로 됩니다. 눈을 감고  고요히, 뺨을 맞으면서도 성신의 감동이 알려 주는 알림을 생각하면서 ‘아,  이것이 성경이요, 이것이 진리요, 이것이 하나님이 옳고 바르고 참되다고 가르쳐  주신 것이니 여기에 내 생명을 바쳐도 좋다!’ 이렇게 고요히 명상하고 묵상하는  데서 나온 힘이라야 세상을 이깁니다.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이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얼마나  매를 맞았던지, 그 사람들이 죽인다 어쩐다 하면서 옥에 처넣어 놨는데, 착고에  채여서 고요히 생각하고 생각하고, 명상하고 명상하고, 묵상하고 묵상하는 중에  성령님이 오셔서 깨닫게 하시니까 그 일이 얼마나 영광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했으니까 반드시 결과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셔서  복음으로 인간을 구원하다가 당한 일이니까 아주 기쁩니다.

귀신을 쫓아낸 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셨는데 그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 염려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심 같이 자기도 죄인을 귀신에게서 구출하다가 매  맞았으니까 기쁩니다.

고요히 명상하는 가운데서 이렇게 깨달아지니까 힘이 나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고함을 질렀는데 그만 지진이 나서 옥터가 무너지면서 옥문이 활짝  열리고 죄수들의 묶인 줄이 풀렸습니다.

그러니까 옥사장이 자다가 깨어나서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사형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낫다 싶어서 자살하려고 할 때 바울이 「옥사장아,  네 생명을 해하지 말아라 죄수가 하나도 도망하지 않았다」 하고 그 사람을  만류했습니다.

그때야 옥사장이 무릎을 꿇고 빌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너의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그날 밤에 바울을 자기 집으로 모셔 놓고 치료하고, 세례 받고, 예배 보고  하룻밤에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제일  깨끗한 교회요.


그러면, 세미한 음성 가운데서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이방의 왕을 세우고, 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세우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선지자를 세우라 했습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한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방의 정치가 정죄하지  못하고, 제거하지 못하고, 개선하지 못하고,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또 그들이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 정치나 도덕이나 종교들이 인간의 멸망할 것을 제거해서 구원시키는  것도 있지마는 그걸로 세상이 정화되고 구원이 됩니까? 그것 가지고 완성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예후가 해결한다고 한 것은 세상이  정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죄를 타락한 교회가 드러내고, 또 세상 도덕이나  이종교가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타락한 일반 기독교가 구원하는 것을 말한  것인데, 이것은 일반적 구원을 말한 것입니다.

일반적 구원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11장 1절부터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척량하는 잣대를 주면서 말씀하시기를 「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들만 척량하라」 했습니다.

성전 밖마당도 외부에서 보면 성전이지만 성전 내부에서 보면 성전이 아닌데  이것을 이방인에게 내어줘서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히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도 타락한 교회는 많지만 모든 책보다 성경, 성경 책 중에 성령이  감동으로 바로 깨닫게 하는 것, 성경이 바로 깨닫게 해 주는 것보다도 자기가  현실을 당해서 영감이 인도하는 대로 찾아서 예수 믿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기에 「마흔 두달 동안 짓밟게 하리라, 이방인에게 내어줬다」 이랬으니까  교회라는 이름은 있으나 타락한 교회요, 이 교회가 세상의 이용물로 세상에게  짓밟히기를 마흔 두 달이라 했는데, 3년 반입니다.

3년 반은 7년의 반 토막입니다. 7년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말한 것이니까  신약시대, 예수님 재림 때까지 세상에 이용당하고 세상의 이용물이 되고 세상의  앞잡이가 된 짓밟힌 맛 잃은 소금이라는 말입니다.

이름만 교회지 실은 세상이요, 세상 앞잡이가 되어 참된 교회로 더불어 싸우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교회, 이방에게 내어 줘서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히게 한 이  교회는 척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도 충현교회 장로님들이 현재 한국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지 저에게 묻기 때문에 ‘지금 기독교 종교 법안을 작성하려고 하는데 종교  법안을 제정할 위원들이 성경이 아닌 세상 지식을 근거해서 만든다면 탈선된다.

성경을 근거하지 아니하고 만든다면 이방 사람이 만든 것보다 못하다. 이방  사람이 만들면 으레 교회와는 맞지 않을 것이고, 예수 믿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을 근거하지 아니하고 세상 지식을 근거해서 종교법을  만들면 미혹이 크다’ 하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사엘의 칼을 피한 것을 예후가 죽인다 한 것은 세상 정치, 도덕,  이종교가 인간의 안녕 질서를 책임지고 유지하고 인간을 구원하지마는 그것은  세상적 구원이요, 이 세상이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일반 교회들이 구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들이 구원하지 못하는 것, 일반 교회들이 정죄하지 못하는 것을  구원시킬 자는 어떤 자이냐? 이것은 세미한 음성, 자기의 현실에서 성신의  감화가 인도해 주는 이 영감 받는 것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기독자의 참된 구원을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1층 2층 3층으로 말했는데, 그 너머 세미한 음성을 여러분들이  깊이 새기고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을 자세히 보면 환하게 보입니다.

우리 구원은 신구약 66권을 바로 깨닫는 데서 시작되고, 자기 현실에 성신의  감화 감동대로 피동되는 데서 완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이 외에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도덕 행위나 봉사 행위를 어떻게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피동된 것, 피조물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 것만 남습니다.

이것도 알기 어려운 말입니다. 인간이 한 것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인간의 힘으로 그 일을 하다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그것이 비로소 위에서부터 와서  새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이루어지지 그 외의 것은 다 헛것이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도 집이지만  마지막에는 불타는 것이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이라야 성경 말씀에  정죄받지 않습니다.

반석 위의 집이라 한 그 반석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근거하고 하나님께  뿌리박아서 그분에게 맞아야 되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인간을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다 불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자기 주관이나 생각대로 된 구원이 서리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된 구원이라야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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