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7 23:59
세미한 음성
1981. 6. 1. 월새
본문:사도행전 20장 33절-35절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잘 믿으려고 애쓰는 어떤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 자기가 직장 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직장 생활에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어디서 근근히 먹을 정도만 대 준다면 그 시간을 전도하는 데 다 들여서 여생을 순전히 복음 전하는 데 바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소원하는 것이 진심이요 헛된 소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범사가 초절되면 안 되고 차차 순위대로 자라가야 하는데, 복음을 전할 때 입으로 전하는 것보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잘 감당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빛으로 보이고,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또 더 효력있는 위치에 세워 주시면 거기서도 빛을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순서이지, 거기서 빛을 나타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못하면서 더 가치있는 영적 일을 하려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 하는 것을 말해 줬습니다.
또, 직장에서 빛을 나타내고, 부채가 있다면 다 갚고 돈을 모아라, 돈 모은 그것이 곧 사람 모은 것이다, 돈이 사람은 아니지만 돈을 모을 때에는 사람이 되어졌고 돈을 함부로 썼을 때에 사람이 떨어지게 된다 했습니다. 내가 유물주의자라서 재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경제나 물질을 건설하려면 온갖 파란곡절이 있고, 피곤도, 권태나는 일도, 억울한 일도 있지만 그래도 목적한 물질을 모으기까지는 그런 힘든 것을 이겼기 때문에 돈을 모은 것이라고 말을 해 줬습니다.
사람이 도적질을 해서라도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이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도적질하는 데서 돌이켜서 바른 일을 하면 그 열심과 의지와 인내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평안하게만 살고자 하는 게으른 안일자보다는 죄를 짓더라도 열심히 짓는 그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죽은 송장보다는 악인이 희망이 있고 독인이 희망이 있지 송장은 희망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중에서 가장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랬지만 그분이 자기 손으로 장막 뜨는 일을 했습니다. 손으로 일해서 돈 벌어 가면서 전도 사업을 했고, 오히려 자기가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수고해서 번 돈으로 도와 주면서 일했지 아무에게도 물질로 빚지지 않았다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일을 해도 밤이고 낮이고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업을 하면서도 헛된 일을 하지 않았고 할 일만 했습니다. 또 일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시작하고 끝마치지 못해도 하나님의 성령님이 인계하셨기 때문에 자꾸 흥왕되고 크게 되었습니다.
어떤 위대한 인물도 쉴새없이 일만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칼빈은 교리와 신조, 성경 깨달음에 위대한 사람이요 큰 일을 하고 갔지만 그가 모든 것을 다 해 놓고 간 것 아닙니다. 칼빈이 죽고 난 후에 제자들이 그분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예수를 믿었으며, 성경 깨달은 사상이 어떻다고 들은 것과, 그분의 서재에서 노트해 놓은 쪽지를 체계적으로 종합해서 칼빈의 신앙 사상은 이렇고, 성경 사상은 이렇고, 신관은 이렇고, 세상관은 이렇고, 구원관은 이렇고, 죄관은 이렇고, 구속관은 이렇다 하고 편집해서 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밤낮 없이 일만 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고,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은 헛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세 가지 방해되는 일을 하니까 한 가지 잘한 것으로 잘못된 일 세 가지를 배상하니까 항상 빚졌습니다.
또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피동되어서 시작만 하고 갔습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겨우 33년 4개월 동안 시작만 하고 갔으나 하나님이 인계하시니까 근 2천년 동안 세계에 충만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일의 양이나 종류를 많이 하려는 허영으로 날뛰지 말고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일을 바로 찾아서 하는 데 힘을 씁시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인계하시도록 하려면 하나님이 시작한 일을 우리가 찾아서 시늉만 하면 됩니다. 자기가 크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해서 그 일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봤자 얼마나 나타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사람이 다 한 것 같지만 그 사람은 동참만 하고 죽어 버렸고 하나님이 인계 맡아서 하십니다. 모든 복음운동이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볼 것 없습니다. 유명한 성경 인물들이 일했던 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양으로 보더라도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으로 인하여 시작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했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서 심부름했기 때문에 그는 잠깐 일하다가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아벨이 순교의 일을 했습니다. 모든 순교자는 아벨의 계대자입니다. 아벨이 잠깐동안 일하고 순교했는데 그 일을 하나님께서 계대하시니까, 아벨의 피는 예수님의 피보다 못하다고 한 것은 모든 성도의 피가 다 거기에 집합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벨의 피가 예수님의 피만은 못해도 성도들이 흘린 피 전부를 다 뭉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주의 일은 이렇게 깨달아서 해야지 주님이 하시지 않는 일은 천하가 놀라도록 했더라도 홍수 후에 개울이 바짝 마르는 것과 같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순복음 교회에서 좋은 것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는 일을 더 힘있게 하도록 그 원장에게 전화라도 해서 ‘금식기도라는 것이 너무 없었는데 부산에 금식기도원이라는 이름만 내놔도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큰 구원을 줬다. 좋은 일을 시작해서 대단히 감사하다.’ 그렇게 인사라도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그 사람들이 좋은 것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본문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이랬는데 그 사람들은 주는 사람이 되려고 열심입니다.
그분들은 주는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연보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연보는 하나님에게 바친다고 성경에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니까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지 그 물질은 인간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금식기도원을 짓는데 연보가 20억 원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3억을 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20억 원을 하나님이 가져가는 것 아닙니다. 부산 시내에 있는 교회들이 금식기도 하는데 돕는 비용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구제하는 것 아닙니까? 연보는 하나님이 가져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기뻐하시는 대로 인간을 구원하고 돕는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보는 구제금이 연보입니다. 고린도후서에도 보면 처음에는 연보라고 말해 놓고 그 다음에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라고 또 해석을 해 놨습니다.
교회들이 이것을 다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 금식기도 할 것은 아니지만 기도와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회들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이 두 가지 아주 큰 것을 말했습니다.
금식기도라 말이 저로 말미암아 많이 나갔습니다. 어제 말한 대로 그때는 집회하면 웬만하면 다 금식기도 하면서 참석했습니다.
여기 서봉월씨도 그때 아이 젖 먹일 때인데, 월요일 아침이면 거창읍에서 봉산까지 올라옵니다. 길이 60리 길입니다. 그때는 차가 없을 때니까 아이 업고 걸어서 아침에 올라오면 일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아니하고 금식하면서 참석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거의 다 금식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서 저도 알았는데, 젖은 음식 안 먹으면 안 나오는데 서봉월씨는 집회 마칠 때까지 젖이 나와서 유명해졌습니다.
또 연보도 열심히 했습니다. 어디든지 생각보다 많은 연보가 나왔습니다. 그때 공비들이 개명교회 예배당을 태웠다는 말을 듣고 한번 방문했습니다. 그날 밤이 새도록 찬송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또 설교하면서 마지막에 연보를 했습니다.
연보하면서 예배당 지을 액수를 정하고 했는데 그 액수가 차서 마감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청년이 논 세 마지기를 바치려고 했는데 그만 액수가 다 차서 못 바쳤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청년이 공비에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 사람이 작정한 연보를 받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분이 예배당 짓는 데 바치지 못하고 죽었을지라도 벌써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연보는 되었다 하는 것으로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랬었는데 그 뒤에는 세미한 음성,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면에 힘을 써서 수입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 세계에 나타나지 않은 교리를 앞서 가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무섭고 어렵고, 하나님이 위대한 일을 하시는 것인지 모른다 말입니다.
그 뒤에 고려신학교에서 보니까 성경에 대해서 너무 허무해서 성경에 주력하면서 그런 데 대해서 예사롭게 생각했는데,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고, 울타리가 없어지면 집이 뜯기는 것처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도 그 면을 버려서 큰 손해를 봤습니다.
그걸 이번에 내가 알았습니다. 그전에도 물론 기도회를 했고 산기도도 가고 단식기도도 했지만 이번에 회개한 것은 말씀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 힘쓰지 않은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때는 다른 시내 교회들이 조롱하고 비웃을 만큼 담요 보따리 싸서 산에 가서 밤새껏 자든지 깨든지 기도하다가 새벽 세 시에 내려와서 예배보고 방에 눕지도 않았습니다. 산이 아니면 강단에서 기도하다가 새벽기도 인도하고 그랬었는데 그만 계속해야 된다는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고 슬슬 식어졌습니다.
또 옆에서 별스럽게 예수 믿는다고 욕하는 데 물이 들었습니다. 동산을 지키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해야 했는데…
그때는 너무 핍박이 많았습니다. 기도하는 남반도 있었지만 적었고 여반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반들이 집에서 자지 않고 예배당에 간다.’ 또 ‘그 교회 조사는 과부떼를 데리고 예배당에서 기도하고 산에서 기도한다.’ 자꾸 이렇게 하니까 슬슬 식어졌습니다. 그러든지 말았든지 밀고 나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진리로 이렇게까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또 내가 고신에서 쫓겨 나오지 않았더라면 진리를 자유롭게 증거하지 못합니다.
고려신학교 졸업할 때 졸업 논문을 발표하라고 해서 읽어 내려가는데, 절반을 읽어 내려가니까 이상근목사님이 깜짝 놀라면서 다른 사람들이 미혹받고 시험에 든다면서 중단을 시켰습니다.
그 논문 내용은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본이시라, 죄도 하나님이 근본이시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것을 붙들어서 더 좋아졌지만 나머지 필요한 것을 버린 셈입니다.
이래서, 다시 기도회를 시작한 것도 그런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목사님, 서부교회는 말씀만 주력하고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기도에 대해서 그런 마음이 좀 들었었는데 그 말을 듣고 기도에 대해서 강하게 느껴져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는 당나귀를 통해서, 나무를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짐승을 통해서, 주일학교 학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칠 때가 있는데 무엇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든지 그대로 하면 순종이요, 거역하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기도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 순복음교회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서부교회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말을 듣고 감동이 되었고, 또 내게도 기도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강하게 느껴져서 시작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어린아이가 하든지 어른이 하든지 또 짐승에게서 보든지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됩니다.
제가 새를 몇 마리 기르고 있는데, 잉꼬를 길러 보라고 옆에서 권해서 기르다가 지금은 처분했습니다. 왜 처분했느냐? 그 새는 다른 새보다도 암수 둘이 좋아서 야단이지 새끼 기르는 것도 다른 새보다 못하고 순전히 정욕적 사랑뿐입니다.
또 문조를 사다 놨는데 그것은 인내력이 있고 화평성이 있고 또 새끼를 잘 기르기 때문에 ‘좀 도덕성이 있다,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해서 기르고 있습니다.
또 한번은 아주 겨울인데 양지 볕에 보니까 똥파리가 날아다닙디다. 그걸 보면서도 배운 것이 많습니다. 조금만 추워도 파리는 땅에 떨어져서 죽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살아 있습디다. 또 여기보다 더 추운 영하 3, 40도 되는데 곳에서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니까 추위를 이기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아무도 죽일 수가 없습니다. ‘파리는 추우면 죽는 것이 통계인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니까 추위가 죽이지 못하는구나. 이런 하나님이신데 내가 생명에 대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가졌다!’ 하는 것을 똥파리에서 깨달아서 아주 은혜를 입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보여 주십니다. 제가 6·25를 이긴 가운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다른 곳에서 내 조카와 함께 잤는데 조카가 오줌을 싸서 내 옷이 젖었습니다. 그 전날 토요일에 제 아내가 ‘내일 인민재판이 있는데 조사님을 두번째로 사형시키려고 하니까 아무래도 내일 주일은 오지 마시라’고 기별을 했습니다. 또 그곳에서도 모두 내일 주일은 여기서 우리에게 은혜를 끼쳐 달라고 붙들기 때문에 그렇게 할 작정으로 잤는데 오줌에 젖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하기를 ‘오줌은 썩은 것인데 내 옷이 오줌으로 더러워졌으니 이것으로 내가 부패해진다. 내가 어제 돌아갔어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은 내가 부패해진다는 자연계시다.’ 이렇게 깨달아져서 그만 달음질쳐서 위천교회로 돌아갔습니다.
교회에 가니까 제직들은 새파랗게 놀라는데 나는 어떻게 기쁘고 평안하든지, 그까짓 공산주의가 어떻게 하더라도 복되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얼마나 좋든지.
그날 제일 은혜 있는 설교를 하게 된 것은 오줌에서 내가 경고를 받아서 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연보함에 연보를 하는데 이것은 사람에게 연보하는 일이 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연보 주머니로 거두면 부끄러움을 당하겠다 싶어서 연보하던 사람이 보는 사람 없으니까 연보를 안 합니다. 연보는 다른 사람 구제하는 것인데 연보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세상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뺏고 하나님에게는 뺏기지만 기독교는 사람에게 주고 하나님에게 얻습니다. 하나님에게 얻으니 복이고 사람에게 주니 복이 됩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줘도 무한의 하나님에게 받아서 주니까 자기는 주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에게는 받는 사람이 되는데 이 사람을 하나님은 제일 좋아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것을 다 받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아들이라 말은 받는다는 말인데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제일 잘 받은 분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보니까 초절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 돕는 일을, 연보하는 일을 연습하지 않으니까 자꾸 도태가 되고 교인 숫자는 많아도 항상 경제에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필요해서 연보할 때마다 액수보다 적게 나온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하던데,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기울이지를 않습니다.
호수에는 물이 빠져나가야 물이 들어옵니다. 이와같이 자꾸 연보해야 하나님께서 자꾸 주실 것인데 수도꼭지를 딱 막아놨습니다. 연보궤를 둔 것이 여러분들에게 수도꼭지 막도록 하는 죄를 지은 것과 한 가지요. 그래서 저걸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또 제가 연보에 대해서 생각한 것은, 주일학교에서 연보상 주는 것도 치워 버리고, 연보는 하나님께 은혜 받아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것과, 그렇게 구원하면 구원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이 자꾸 주신다는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 주고 반사 선생님이 연보를 거두도록 하고 또 중간반도 그렇게 하고, 장년반은 좀 두고 보려는 생각입니다.
내가 참석했던 날은 연보를 하지 않아서 다음날 강집사님을 참석시켜서 그곳에서 하는 것을 들어 봤습니다. ‘자, 금식기도를 위해서 연보합시다’ 하니까 연보 거두는 사람들이 미리 배치된 자리에서 앉아 가지고 거두니까 잠깐 끝나더랍니다. 우리는 집회 때 연보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그런 것은 배워야 돼요. 좋은 것은 배워야지요.
그 교회가 갑자기 그래 커졌는데 지금 15만명 넘게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보면 좋은 것을 합니다. 금식기도 하지, 연보하지, 연보하니까 또 증거가 있거든요.
며칠 전에 저하고 여러 목사님 장로님이 모여서 사직동교회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을 제가 말하는 중에 연보에 대해서도 말이 나왔었습니다. 연보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백 배도 더 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연보를 작정하고 달리 쓴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은 돈 빌려 줬다가 홀딱 망해 버렸답니다. 이렇게 증거가 환하게 나타나니까 거기 대해서는 교인들이 힘을 얻더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그 자리에 신 장로님이 있었는데, 그 장로님은 금요일마다 부산에 내려오면 토요일 아침 9시나 되면 대구로 가지, 또 다른 심부름을 시키니까 거창에도 몇 번이나 가야 하지, 여기 저기로 다녀야 하니까 병원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
그래서 ‘신장로님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까?’ 물으니까 ‘그래도 지난 주일에 십일조 60만원 가져왔습니다’ 해요. 6백만원 수입이면 개인병원으로는 많은 수입이지 적은 것 아닙니다. 이번에도 양성원 하는 데 보니까 그분이 2천만원을 했어요. 이것도 경험이 있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좋은 진리를 받았는데 이게 어렵지 뭐 다른 것은 하기 쉽습니다.
금식기도, 산기도, 연보, 전도하는 것보다 진리 깨닫는 것이 제일 어렵고 보배가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도록 전도하는 것이 둘째로 어렵습니다. 연보하는 것은 쉽지만 남한테 전도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어려운 것은 해 놓고 그만 저 밑에 있는 것, 울타리를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금식기도, 산기도, 기도회, 연보 이것만 하면 우리 서부교회가 놀랄 만큼 가속도로 커질 것입니다. 왜? 그러면 본인들이 알 것입니다.
그리고 집회에서 기적적으로 병 나은 사람들은 다 구역장이 보고를 받아서 기록하십시오. 아마 다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창자에 구멍 뚫린 것이 막혔지만 우리가 가볍게 여겼습니다.
집회에서 ‘기도하지 말고 잠자라. 어쨌든지 진리를 깨달아야 된다’ 하니까 그만 기도가 식어졌습니다. 이제 새로 시작해야 돼요. 익숙하던 것을 잊어 버렸으니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집사님들 장로님들 권찰님들도 더러 금식기도 하고 산기도도 가고, 또 십일조는 다 내고, 또 연보는 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연보하십시오. 이래야 하나님이 자꾸 주십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양성원에 1천만원 연보한 사람이 있던데 경험이 좀 있는 모양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러니까 사람에게는 주면 하나님에게 받습니다. 하나님에게 받는 것도 복이요, 사람들에게 주는 것도 복입니다. 사람에게 깍쟁이 노릇하지 않고 베풀면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사람에게 베풀면 하나님께서도 베풀고,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이런 것은 처음 믿을 때부터 다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 믿을 때 첫 주일부터 십일조는 철저하게 했습니다. 집에서 기른 채소도 가격을 쳐서 십일조 계산하기를 믿기로 작정한 첫 주일부터 했습니다.
이런 것을 예사로 하니까 교회가 침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