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양심

 

1987. 4. 11. 새벽 (토)

 

본문:로마서 6장 3절∼4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21절∼23절)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게는 세례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으로 사는 것을 세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 짓는 옛사람은 죽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이 의롭게 사는 것을 세례받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또 여게는 세례를 가리켜서 착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세례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세례는 예수님의 대속과 함께 자기가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함께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세례라, 그러면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아 새사람을 자라게 기르게 길러가는 것이 그것이 세례라.

또 세례는 자기에게 있는 착한 양심을 써 가지고 점점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이 죄와 세상과 점점 멀어지게 하는, 그러면 자기는 양심을 쓰니까 자기에게 죄는 차차 도말이 되어서 죄의 세력은 약해지고 하나님과 자기와 가까와지는 그것이 세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여게는 눈이 온 몸의 등불됨같이 마음은 자기의 전생활의 눈이 되는 것을 말했습니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라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 있다” 하는 이 마음이 무슨 마음인가? 하늘의 소망을 가진 마음 그것이 양심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가진 마음을 가리켜서 양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네 빛이라 이래. 네 빛이라, 네 빛.

인생에게 밝음이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생에게 밝음이 있는 것은 양심입니다.

양심은 사람에게 밝음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두운 것처럼 네게 있는 빛이 어두워지면, 네게 있는 양심을 쓰지 안하고 버려버리면 네 어두움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네 행동에 대해서는 하나도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알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양심은 자기 모든 생활에 눈이라, 자기의 행동 눈이라. 양심이 없는 자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성경을 많이 읽고 또 연보를 많이 하고 전도를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양심을 쓰지 안하면 그 사람은 소경입니다.

자기 행동에 대해서는 소경이요 또 자기의 모든 생활에 대해서는 소경이기 때문에 소경이 무슨 바른 길을 가겠습니까? 소경은 엉쿠렁에 빠지고 소경은 가다가 뭐인지도 모르고 앞에 부딪히고, 그러면 그런 소경은 자기가 어떻게 된다는 앞으로 걸어갈 것은 모르는 것처럼 양심이 어두우면 그 어두운 것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이 양심은 마음의 눈입니다.

또 세례라면 우리는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점점 살아서 자라가는 그것이 세례니, 일시의 세례만 받는 게 아니고 평생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세례라는 것은 자기를 멸망케 하는 것은 다 제거해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는 좋은 것은 자꾸 살리고 길러서 자라게 하는 것이 세례인데 이 세례가 우리 생활에 전부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자꾸 살아서 일어나서 또 자라고 새사람을 강건케 하고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이것이 우리의 전생활이요 구원 얻는 행동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행동이오.

행동인데, 그러면 이 행동 이 세례 생활 하는 데에는 중요한 것이 뭐이냐? 세례 생활 하는 데에는 중요한 것이 양심이다. 양심이 있어야 옛사람도 알아서 죽이고 새사람도 알아서 살려 기르지 양심 안 쓰면 옛사람 죽이고 새사람 살리는 데에는 그는 완전히 소경이 돼서 옛사람이 뭐인지 새사람이 뭐인지 구별하지 못 하기 때문에 오히려 새사람은 해치고 옛사람만 기르게 된다.

다른 사람이 옛사람을 죽이도록 협조해 주면 원수같이 생각하고 새사람을 기르게 하면은 원수같이 생각합니다. 양심을 쓰면 ‘우선은 내가 듣기 싫어도 이건 옛사람 죽여 주는 나를 구원하는 일이구나. 이 일은 새사람을 자라도록 양식을 주고 협조해 주니까 나를 구원하는 사람이로구나.’ 자기를 구원하는 말인지 자기를 망치는 말인지, 자기를 해하는 행동인지 자기를 유익되게 하는 행동인지, 자기를 위하는 사람인지 자기를 해치는 사람인지, 이거 절대 구별하지 못합니다. 양심 안 쓰는 자는 구별하지 못합니다. 양심을 안 쓰는 자는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를 못합니다.

양심을 버린다면 그 사람은 눈먼 소경이 되어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크겠느냐?” 네가 양심을 쓰지 않고 양심을 버렸으면 네 모든 언행심사의 생활에 대해서 얼마나 그 모든 것이 꺼꾸로 되고 잘못되고 다 어두워지겠느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양심은 뭐이 양심인가? 양심은 자기가 아는 자기 지식대로 생각해서 자기 지식으로 생각해서 자기 지식대로는 옳은 것 그른 것을 구별해서 옳은 대로 행하고 그른 것을 다 버리는 그것이 양심 생활입니다.

이래서, 양심 생활이라 하는 거는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 지식, 남의 지식 아니고 자기 지식. 자기 아는 대로는 옳게 바르게 하고 삐뚤어진 걸 고쳐 볼라고, 그러면 자기 가진 지식대로는 이라면 옳으냐 저라면 옳으냐 어떻게 하면은 옳게 하느냐 하는, 옳게 하는 이것을 찾아 가지고 옳게 해 볼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양심 생활입니다. 그게 양심 생활이오.

양심 생활인데, 그러기 때문에 양심은 뭘 하는 것이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 지식에 지배를 받는 것이 양심입니다. 자기 가진 지식대로는 하는 것, 자기 가진 지식대로는 옳게 바르게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자기 지식대로는 옳게 바르게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교를 믿는 한학자, 유교 믿는 사람들은 그 유교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교대로 어떻게 하면 바르며 어떤 게 삐뚤어졌는가 이래 살펴 가지고 자기 모든 생활을 유교대로 그대로 옳게 바르게, 유교 지식대로 옳게 바르게 하는 그 사람이 유교인으로서는 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불교인은 불경이 자기 지식이기 때문에 불경의 지식을, 부처 믿는 지식을 자기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처 믿는 지식이야 어쨌든지 자기 생활을 마음대로 하는 그자는 불교인으로서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이요 양심이 없는 자입니다.

불교 믿는 자는 불교가 가르친 그대로 그렇게 불교에 삐뚤어진 것은 고치고 불교대로 그대로 믿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 불교 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유교 양심을 가진 사람, 불교 양심을 가진 사람, 또 공산주의는 이북에서 벌써 지금 한 사십 세 이하되는 사람들은 이 세계에 일반적 지식은 다 없고 전부 이북적 지식, 김일성적인 지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김일성이 가르친 이북, 소련과 중공의 공산주의 지식이 아니고 이북 공산주의 지식이 따로 있습니다. 그거는 김일성이가 만들어 놓은 딴 지식인데 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양심이 뭐인가? 김일성이가 교훈한 그 지식대로 할라고 애를 쓰고 그 지식에 틀리면 안 되니까 그 지식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 이북 공산주의의 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양심이라는 것은 자기 지식에 지배를 받는, 지배를 받아서 자기 지식대로 자기가 아는 대로는 옳게 바르게 할라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자기가 아는 대로는 옳게 바르게 할라 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은 지식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을 버린 자는 지식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야 이라든지 저라든지 지식이 상관없이 제 욕심대로 하는 그자도 있고, 제 감정대로 하는 자도 있고, 또 제 무슨 성질대로 하는 자 있고 그것을 가리켜서 양심이 화인 맞았다 이랬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지식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모든 일을 자기 욕심을 준해서 욕심에 맞춰서 합니다. 자기의 감정에 맞춰서 합니다. 또 자기의 무슨 성질에 맞춰 합니다. 또 자기 형편에 맞춰 합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양심이 화인 맞았다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다.

또 지식은 종류가 심히 많은데 별별 지식이 있습니다. 지식은 종류가 많습니다.

뭐 열 가지 스무 가지가 아니오. 불교 지식도 있고, 유교 지식도 있고, 또 강도 지식도 있고, 뺄갱이 지식도 있고 별별 지식이 있으니까 지식의 종류는 심히 많습니다. 많은데 인간에게 참된 지식은 하나뿐입니다. 참된 지식은 뭐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지식, 이 지식은 참 지식이며 옳은 지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참 지식 옳은 지식은 하나뿐이요 삐뚤어진 지식은 수백 수천 종류도 넘은데 참된 지식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은 양심이 살았고 강건하고 양심이 병들었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사람의 지식이 병들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인 산 지식으로 모든 것을 비판하지 안하고 죽은 지식 이 세상 지식 뭐 불교 지식이나, 유교 지식이나, 이런 세상 학문의 지식이나, 하나님의 이 지식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지식 외에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되는 지식은 전부 죽은 지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지식을 따라서 하는 것은 양심도 죽은 양심이 되는 것입니다.

죽은 양심, 죽은 양심은 하나님의 지식대로 생각지 아니하고 다른 지식대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죽은 양심 병든 양심, 죽은 양심 병든 양심 그렇게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지 안하고 세상 다른 지식대로 생각해서 하는 것을 병든 양심, 죽은 양심.

또 화인 맞은 양심은, 화인이라 하는 것은 쇠를 달궈 가지고 도장을 쿡 찍으면은 그 도장 찍은 그것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건 부칠 때도 그 회사에서 화인을 꾹 찍어 보내면은 그 회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물건 살 때에 거게 모두 다 표를 그 물건을 무쇠라도 그 무쇠에 회사 이름을 딱 찍어 놓으면 이 물건은 회사에서 책임지고 잘못됐을 때는 회사에서 물어주고 잘못됐으면 고쳐 주고 하는 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소도 소뿔에다 화인을 딱 찍어버리면 그 소는 아무것이 화인 맞은 그이의 소다 이래 정해지는 것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다 말은 그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식대로나 또 이 세상 지식대로나 그렇게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이든지 감정이든지 그것의 양심이 돼 가지고 생각하는 걸 가리켜서 양심이 화인 맞았다. 그러면 양심의 주인이 있다.

그 사람의 양심의 주인은 뭐이냐 하면 욕심이라. 뭐이든지 그만 욕심대로 생각합니다. 또 그 사람은 지금 무슨 감정이 생겨져 가지고 있으면은 모든 일을 그 감정대로 생각합니다. 감정 위주로서 판단합니다. 그런 것은 다 화인맞은 양심이요, 병들고 죽은 양심은 병든 지식 죽은 지식, 병든 지식 죽은 지식, 병든 지식이 뭐인데? 죽은 지식이 뭐인데? 병든 지식 죽은 지식이 뭐입니까? 무슨 지식이요? 병든 지식 죽은 지식이 뭐요, 저 ○? 병든 지식 죽은 지식이 뭐라요? 무슨 지식? 하나님의 지식 외에 지식은 전부 병든 지식이요 죽은 지식입니다. 그 지식대로 하면은 양심이 병들었다. 그 사람 양심이 죽었다.

그러면 산 양심은 뭐인가? 하나님의 지식대로 생각하는 것이 산 양심이요 하나님의 지식대로 전체를 생각하는 걸 가리켜서 강건한 양심이라.

양심을 가꾸어라, 가꾸면 차차 커지지 않습니까? 그거는 하나님의 지식 하나 맞추는,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 맞춰 가지고 그대로 하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지식 둘을 맞춰 가지고 그대로 하다가, 셋 맞춰 가지고 그대로 하다가, 하나님의 지식을 여럿을 거게 대해서 구비해야 될 대로 여러 지식을 다 맞춰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장성한 양심이라, 그러면 양심이 어린 사람은 일방적으로만 생각해 가지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 한쪽만 맞춰 가지고 된다 하지마는 장성하면 ‘이거 한쪽 맞춰 가지고 이쪽이 안 맞았다.’ 두 군데 맞추고, 더 자라면 세 군데 맞추고, 네 군데 맞추고, 모든 하나님의 지식에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모든 면으로 맞춰도 딱 들어맞는 일 하고 어느 한 모퉁이라도 하나님의 지식에 삐뚤어지지 않도록 이랄라 하니까, 한 군데만 맞추면 쉽습니까 여러군데 맞추기가 쉽습니까? 어느 게 쉽소? 한 군데 맞추는 게 쉽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한 군데 맞추는 게 쉽다. 한 군데.

여러 군데 맞추는 게 쉽다고 생각하는 분들, 여러 군데 맞추는 거. 예, 한 군데 맞추는 게 쉬워.

여러분들이 무슨 기계라도 한 군데는 맞았는데 요 딴 면으로 보니까 안 맞아. 또 그면 맞추고 나니까 또 요면이 안 맞아. 또 그면 맞추고 나니까 요면이 안 맞아.

네 면 맞춰 놓으니까 또, 또 안 맞아. 그래 다섯 면째 또 맞춰야 되고 거게 있는 모든 면 거게 관련된 모든 면을 다 맞출 때에 그것이 완전히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양심을 가꾸는 것이요 양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옛사람 죽이는 것이나 새사람을 살려 기르는 것이나, 또 자기가 이 모든 악령의 역사를 다 버리고 하나님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나, 또 자기 행동이나 생활이 점점 옳아지고 발라지고 깨끗해지는 것이나 이런 것은, 우리 구원을 이루는 데 대한 이런 것은 전부 양심을 안 쓰면 안 됩니다. 양심을 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양심이 뭣 하는데? 양심은 옛사람 죽이는 것이요 새사람살리는 역사를 하는 데에 앞잡이 나선 것이 양심입니다. 옛사람 죽이고 새사람 살리는 제일 앞잡이 나서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 우리 양심입니다.

또 양심은 이 모든 악령과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또 양심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나? 자기 생활과 자기의 모든 앞길과 자기 자체에 대해서, 자기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 똑 올바로 보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눈이라. 양심은 눈이라. 양심은 세례라. 또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양심 안 쓰면 다 헛일이라.

양심은 몇 가지 종류나 됩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이제 배운 거는 세 가지 배웠으니까 세 가지 말하는데 양심은 세 가지뿐 아니라. 한없이 많아요.

양심의 수는 심히 많아요. 이런데 양심은 그 사람의 지식대로, 자기 지식대로는 그 지식대로는 옳게 바르게 할라 하는 그것이 양심이라.

이러니까 삐뚤어진 지식대로 옳게 바르게 할라 하면은 그거 옳게 바르게 할라고 하지마는 지식이 틀렸기 때문에 삐뚤어지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종류는 수가 많으나 다 그 지식이 병들었고 다 죽은 지식이고 이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 가지고 옳게 바르게 할라 하면 병든 것과 죽은 일밖에는 못한다.

또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옳게 바르게 할라고 하면은 그것은 산 일 하게 되는데 그 양심이 어리고 장성한 차이가 있다. 양심이 어린 것은, 양심이 어린 것. 어린 양심은 어떤 게 어린 양심인가? 어린 양심은 거게 대해서, 하나님의 지식이 이면도 보고 이면도 보고 저면도 봐라.

예를 들면은 사회에 대해서 말하면 네가 너도 손해 안 보도록 유익하도록 하고, 이웃 사람도 유익하도록 하고, 또 네 지방 사람도 유익하도록 하고, 너거 나라 사람만 유익할 게 아니라 온 세계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유익하고 모든 사람이 다 유익된 그 일이 있어. 그러면 그러니까 양심을 써서 자기 유익될 그것만 알았지 남에게 손해보일 거는 못 생각했어.

남에게 ‘요라면 내게는 좋지만 남에게는 손해다.’ 예를 들어서 공장을 차려놓고 하는 사람이 ‘요렇게 물건을 만들면 수입은 많겠다. 수입은 많겠다. 그러나 요 물건이 다른 사람들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손해가 된다. 사용하는 사람을 속이게 된다. 일시는 좋지마는 끝까지 수명이 짧아서 손해된다. 속히 고장난다.’ 이러니까 요렇게만 해서 팔면 그러면 요거는 한 일 년 동안은 쓸 수 있기 때문에 요렇게만 해서 팔면 아주 돈도 적게 들고 공도 적게 들고 돈은 비싸게 하니까 일 년을 보고 요렇게 하면은 돈벌이는 되지마는, 그 사람에게 팔기는 ‘이거는 한 십 년 사용합니다’ 하고 제조해서 선전해 놓고 물건을 만들기는 일 년 사용하게 만들어 가지고 도둑놈이라 그 말이오. 그게 그게 뭐이냐 하면 자기에게는 유익이 됐지마는 남에게는 해가 되는 거라.

남에게 해가 되면은 그게 일 년 동안은 잘 나가다가 일 년, 이 년이 되면은 ‘이 물건은 거짓말쟁이다. 십 년 쓴다 하더니마는 일 년밖에 못 썼으니까 이걸로 책임져라.’ 자꾸 시비가 나면은 그 물건은 도둑 물건이기 때문에 사지 말아라 하니까 마지막에는 제 손해가 가는 거라. 그런 것도 일방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양면도 생각하고 삼 면도 생각하고 다 생각해야 돼.

그래서, 요새 비디오 우리가 살라고 지금 애를 쓰는데 그 한 대에 뭐 천오백만 원이니 천칠백만 원이니 해요. 우리가 세 대를 사야 되는데. 우리가 그런 돈이 없어. 이런데 또 미국서 뭐 이래 올라 하니까 한 칠백만 원이면 사는 거 있고 이거는 천오백만 원 돼야 되고 이런데 ‘천오백만 원짜리는 어떤 것이고?’ 이라니까 그거는 최신형이라.

요새는 뭐이든지 그만 신형 하면 막, 신형병이 들었어. 신형병이 들어서 이건 최신형이라 신형이라 제딴에는 큰 아주 상식이나 아주 큰 지식을 가진 줄 알고 ‘이거는 신형입니다. 이건 최신형입니다.’ ‘너거가 모두 신형병이 들었구나.’ 그런데 ‘이거는 현재 보면 그렇습니다. 보면 환하게 밝아서 현재로 보면 물건이 훨씬 잘 보이고 밝습니다.’ 이래도 그것도 봐야 됩니다.

여기 군인 전지, 미군들 군인 전지에는 약을 넣어 가지고 보면은 약을 처음에 넣어도 밝지 안해요. 흐미한 것이 멀리만 보고 잘 안 밝아. 그거는 오래 씁니다.

하나 넣어보면 적어도 한 뭐 한 달포 써버려.

이래 쓰는데, ‘이거 이래 환합니다. 아주 환합니다.’ 그것은 전지 하나 같은 전지 넣어 가지고 쓰면은 저것의 십분지 일도 못 써. 그만치 환하니까. 또 전구도 빨리 터져버려. 이러니까 이제 이면만 아니라 모든 면이 좋아야 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치우쳐서 일방적 면만 치면 안 돼.

그래 나는 말하기를 ‘야, 이제까지 써 나온 거 모두 오랫 동안 써 나온, 그 오래 동안을 써 나와서 좋은 거 그걸 사라. 암만 구형이라도 그것 사라. 신형 신형 하지만 그거는 아직 써보지 안했으니까 그거는 지금 사놓으면은 어찌 될지 모른다.’ 이러니까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만 이래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면적으로 생각하는 거.

이러기 때문에 양심은 눈이라. 불교인은 불교 양심이 불교인의 눈이라. 이러기 때문에 불교인이 양심 안 쓰면 불교인이지만 불교대로에 하지 안하고 불교에 대해서는 깜깜하고 불교인의 행동은 못 하게 됩니다. 기독자가 기독자 양심을 쓰지 안하면 기독자의 행동은 하지 못합니다.

불교인의 행동은 지식이 병들었기 때문에 불교인의 양심은 병들었고, 모든 이종교의 양심은 병들었고, 세상 사람 양심은 병들었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 지식으로 삼은 그 사람의 양심이 살았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을 유일한 정확 무오의 지식으로 이렇게 삼고 있기는 있지마는 이 지식대로 자기가 해 보자 하는 요게 없는 사람은 그 사람 양심이 있는 사람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양심이 있는 사람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양심이 없어. 양심이 없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이 이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해 보자 하는 그게 없으면 그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눈이 어떻게 된 사람입니까? 눈이 빠진 사람입니까 눈이 소경된 사람입니까? 눈이 소경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뜨면 되지마는 눈이 소경이 됐으니 못 봐.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자기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도, 모든 우리를 속이는 모든 더러운 거 악령 악성 악습의 이 더러운 것을 우리가 버리고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도 양심, 자기의 과거를 보는 것도 양심, ‘내가 과거의 생활 어떻게 했나?’ 양심을 가지고 봐야 자기의 과거가 잘못된 걸 알지 양심 가지고 안 보면 자기 과거의 잘못된 걸 모른다 그 말이오. 또 현재도 내가 이 생활하는 것이 이것이 어찌 돼? 바로 됐나 삐뚤어졌나? 이게 하나님께 거슬리느냐 인간에게 거슬리느냐? 하나님과 인간에게 거슬리면 나에게도 거슬리고 나도 망치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면 양심이라야 현재도 바로 알고 살펴보고, 또 자기 미래도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자기 미래에 대해서도 양심이 있어야 바로 보지 양심 안 쓰는 인간은 못 봐요. 사람 좋게만 하는 인간들, 사람 좋게만 하는 인간들, 사람 좋게 한 것은 똥이 돼 버려. 점점 똥이 돼. 그까짓 거 복받아 봐야 고기덩어리나 복받지 영원한 복은 없어. 알겠습니까? 이러기에 신구약 성경 지식은 전부 하나님 중심 지식입니다. 하나님께 어떠냐? 사람이야 어찌 되든지 하나님 좋으면 사람은 절로 따라 좋아. 하나님에게 맞추지 안하면 인간에게 암만 맞춰봤자 그거는 다 꺼꾸로 맞췄기 때문에 망하고 말아요.

이러기 때문에 양심 안 쓰는 자는 신앙 생활 못 합니다.

양심은 뭐이요? 기독자의 양심은 ‘성경대로 내가 해야 되겠는데 성경이 뭐라 했노?’ 자기 모든 생활을 성경대로 생각하지 안하고 들짱 생각하기를 ‘내가 요라면 내게 유익하나 저라면 내게 유익하나?’ 자기에게 유익할 것만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유익할 것만 생각합니다.

어떤 인간은 또 무슨 화인을 맞았느냐 하면 ‘이라면 내가 돈에 유익이 되나 손해가나?’ 자, 돈 이해를 표준해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의 양심은 그 사람의 양심은 무슨 양심이겠소? 어찌 됐소? 돈을 표준해서 돈 이해만 따져 가지고 모든 일을 비판하고 평가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그 마음은, 그 양심은 무슨 양심이라고요? 화인 맞은 양심. 화인 맞은 양심. 돈이라는 화인을 꾹 찍었기 때문에 모든 일을 돈대로만 생각해.

요새 보니까 우리 나라에서 지금 뭐○○당이 지금 갈라져 가지고 뭐 둘인가 뭐 서인가 이래 나눠졌고 이래 하는데 내가 그 사람들 가만히 보니까 양심이 화인 맞았어. 그 사람들 양심은 무슨 화인을 맞아? 무슨 화인을 맞았어? 한번 말해 봐.

한번 말해 봐. 저 ○조사가? ○조사가? 그래○조사? 권세 화인 맞았어, 권세.

‘이런 수단 좋으니 내가 한번 권세 잡아봐야 되겠다’ 그것도 안 됩니다.

권세의 화인을 맞으면 그 사람의 모든 하는 일이 어두워지겠어요 밝아지겠어요? ‘내가 권세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민족 이 나라에 대해서 앞으로든지 현재든지 바로 되도록 해야 되겠다.’ 바로 될 것만 자꾸 생각하면은 그 사람 거게 대해서 눈이 밝은 사람이요 이 세상적으로는 그 사람이 양심을 쓰는 사람이요,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뭐이든지 자기 정권만 위주로 하는 사람, 어떤 또 장관은 뇌물 먹어 가지고 ‘우선 요때 돈이나 한목 뻐뜩 챙기자.’ 돈만 챙길라 하면 그 사람 돈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

예수 믿는 사람도 올바른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뭐 내게 손해가도 말씀대로 해 보자. 내가 죽어도 말씀대로 해 보자. 내가 남한테 오해를 받아도 말씀대로 해 보자.’ ‘야, 이라면 오해 받겠다. 이라면 오해받을 거다. 요게 꼭 옳기는 옳은데 요라면 오해받겠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무슨 병 들었소? 남의 눈 병 들었소. ‘남이 어떻게 보나?’ 남이 보는 것도 좋지마는 그까짓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대로 됐으면 남이 이래 보든지 저래 보든지 상관이 없어, 까짓 거. 누가 있어? 이게 실행이라.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들의 여론이나 공론 그런 것을 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안다”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어짜든지 양심 안 가꾸면 신앙 생활은 헛일입니다. 뭐 조금만 해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저 양산동 기도실에 가 보면 천리향이 하나 있습니다. 천리향 그거 하나 있어서 그것을 살릴라고 이렇게 가꿔서 애를 쓰고 이래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 짐보따리를 가지고 와 가지고 땅에 놓으면, 땅에 놓으면 먼지 묻을 거 같거든. 그 가에 요만치 높이 요래 해 놨어요. 거게 얹으면 먼지 안 묻어. 먼지 안 묻겠다고 자기 짐만 생각하고 그 큰 보따리를 콱 그래 버리니까 그만 그 천리향 가지도 뚝 뿔라져 버리지, 다 망가져 버리지.

또 아이들이 와 가지고 그거 가지고 장난하고 하니까 아이는 귀하지마는 그거, 천리향이 그래 그런 나무 잘 가꾸어 놓은 그거 뿌지르고 노는 거 그거 하지 마라 하면은 안 하도록 그렇게 그것을 아이를 타이르든지 어떻게 하든지 해서 그렇게 할라고 하지 안하고 그거 그라면 그만 싫어하고 이라니까 그게 좋은 줄 알고 아이에게 ‘그래 그래.’ 암말도 말고 `다른 사람 안 보나?' 이래 가지고 또 뭐 꺾거나 말거나 이래 가지고 전부 다 꺾어 놨어. 그런 데도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이 무슨 신앙 생활 해? 그래 내가 그랬어. ‘이거 양산동 기도실에 짜다라 기도하러 와도 양심은 하나도 안 쓰니 이 사람들이 양산동 기도실에 오는 것은 이거 하나 병이다.’ 놀러 오는 곳이고, 또 이거 집구석에서 일할라 하니까 힘들고 하니까 그만 소풍 오는 것이고, 이거 소풍 바람이 들어서, 거기 천막 쳐놓고 거기서 밥해 먹고 또 공기 좋은 데서 거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렇게 이거저거 뭐고 세월이나 보내고 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그래서 ‘이 양심을 안 쓰니 구원이 헛일이다.’ 그렇게 말했어.

모든 걸 다 그래요. 자기가 ‘이 성경 말씀대로 해 보자. 어떻게 하면 성경대로 바로 옳게 하겠느냐? 어떻게 하면 성경 말씀대로 하겠느냐?’ 요게 신자의 신앙 양심입니다. 그거 없으면 망합니다. ‘내가 성경 말씀대로 어떻게 해야 성경 말씀대로 내가 할 수 있느냐? 요래 하나 조래 하나?’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옳게 바르게 행해 볼라고 하는 요거 없으면 신앙 생활에 구원은 다 헛일입니다.

생각해 보지 않으면 헛일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저분 말이요, 저분? 저 조네. 동생 지금 새벽기도 나와요? 왜, 안 나와요? 죽었구만. 양심 안 쓰는구만. 그 무슨 집사지? ○집사? ○집사 왔으면 손 들어 봐, 남반에 ○집사? 죽었어. 요새 뭐 돈벌이 합니까? 체, 돈벌이 하면 그놈 해 버리고 신앙 버려버리고 신앙 와 버리면 돈벌이 다 치우고 이래 돼 버리고, 그게 내나, 그게 다 비정상이라. 변질된 거라, 변질된 거.

돈벌이도 하고 신앙 생활도 해야 될 것 아니겠소? ‘신앙 신앙 하니까 병들었다 하니까 인제 돈벌이만 잘하겠다.’ 그건 세상으로 병든 거라. 그것도 죽은 거라.

안 보여, 보니까.

양심 안 쓰면 안 돼. ‘내가 이렇게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내가 이거 돈벌이 하는 이거는 하지마는 내가 신앙 생활 이게 바로 됐나, 이거?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 하나님 말씀대로 됐느냐?’ 요렇게 좀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럴 수가 없어. 양심을 쓰는 사람은 자빠졌다가도 일어납니다. 양심을 쓰는 사람은 궁지에 빠졌다가도 헤어나옵니다. 양심을 쓰는 사람은 삐뚤어진 길을 가다가도 바른 길을 찾아나옵니다.

양심이 뭐인데?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데 이거 이라면 하나님의 뜻이냐 저라면 하나님의 뜻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볼라 하는 그것을 자꾸생각하는 그것이 양심이니 그게 있어야 네 눈이 밝음이 있지 그거 없으면 네 생애와 네 과거에 대해서도 깜깜해서 모르고 현재에 대해서도 모르고 미래에 대해서도 모르니까 망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소경이 무슨 일 있소? 소경이 눈 하나 멂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비참하게 된 것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우리가 눈 하나 어두우면 다 이와 같이 비참하게 된다 하는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바디매오 소경에 대해서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암만 해 봐야 소용 없어. 자기가 알았으면 그대로 할라고 애를 써야 되는데 그대로 할라고 애를 쓰지 안 하니까, 이 양심을 쓰지 안하니까 헛일이라. 양심 안 쓰는 인간은 멸망입니다. 그걸 아십시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어제는 오백이십육 명이 와서 기도하고 갔는데 여게서는 이렇지만 다른 데서도 기도해서 하루 삼십 분 기도를 꼭 놓치지 말고 등록한 사람들은 다 요대로 기도하고 등록 안 한 사람은 등록을 해 놓고 또 기도하고 자기 혼자라도 표를 해 놓고 기록하는 게 좋습니다. ‘오늘은 내가 기도했다 안 했다’ 그런 것도 자기 일과표에다가 해 놓는 게 좋아.

그걸 뭐 초월해서 하는 사람은 그것보다도 다른 복잡한 게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으례히, 삼십 분 기도는 으례히 합니다. 그 빠질 리가 없어. 처음에 어릴 때는 삼십 분 기도 이거 안 빠질라고 애를 써야 나중에 기도하는 사람이 차차 돼져요.

예수 믿는 거 양심을 써서 예수 믿으면 자꾸 돈이 꾸역꾸역 들어와서 그만 우리 교회가 돈도 부자되고, 권세도 부자되고, 자기 사업도 부자되고, 자꾸 오뉴월에 연한 순 자라듯이 자꾸 자라 올라가지, 경제도 자라고 모든 게 자라 올라갈 건데 도무지 양심을 쓰지 안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양심을 쓰지 안하기 때문에.

사람 좋게만 하지, 사람 좋게만 하는 그자를 뭐라고 말합니까? 팔방미인이라, 이 남자에게도 미인이고 저 남자에게도 미인이고 이 남자도 좋아하고 저 남자도 좋아하고, 팔방미인이면 그거 뭐입니까? 여기 남반들 말해. 팔방미인이 뭐요? 창기. 팔방미인은 창기라! 창기.

하나님을 상대하지 안하고 인간만 좋게 해 가지고 이 사람 만나면 ‘어, 그래.’ 좋게 말하고 저 사람 만나면 저라고, 네가 창기성을 버리라. 네딴에는 ‘그게 처세술이라, 이라는 것이 사람을 얻는 처세술이라. 이라니까 사람을 얻고 사람 손해보지 않는다.’ 사람 얻기 위해서 이 사람에게 이렇게 좋게 하고 저 사람에게 저렇게 좋게 하고, 네딴에는 그것이 처세술이요 지혜 있게 구는 줄 알지마는 너는 하나님 앞에는 창기다, 창기. 이거 알고 좀 깨끗하게 살아요, 좀. 누가 뭐라 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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