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선지자선교회 1985년 12월 18일 수새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20절∼22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노아 홍수 때에 이 홍수에서 구원 얻은 사람이 노아의 여덟 식구뿐입니다. 온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지마는 그래도  이천 년 동안 번식됐으니까 몇십억 되지 안했느냐 그렇게 우리가 추상 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미리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써서 하나님이 구원 얻는 도리를 그들에게 말해 줬지마는 다 순종치  안했습니다. 순종치 아니함으로 멸망했다 했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노아의 방주 예비할 동안'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순종으로 방주 예비를 해 가지고 그 홍수에서 멸망하지 않고 구원 얻은 사람이  여덟 명이라,  그런데 그거는 뭐이냐? 21절에, 그거는, '물은' 물은 그거 무엇을 표시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홍수로 인간를 전멸하셨고 또 홍수에서 구원 얻은 사람이  여덟 명밖에 없었으니 그 물은 뭐이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그 표로 하나 그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주를 예비하라고 하실 때에에 비하라고 하시는 대로 순종한  사람들은 다 구원을 얻었고 순종치 안한 자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물은 하나의 표인데,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순종해야 될 건가? 그때는 방주를  만들라 이렇게 해서 만들라 하시는 대로 고대로 만드니까 그것이 그들이 볼 때에,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어라 방주로 구원 얻는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마는 막상  그 방주가 그들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란가도 몰랐습니다. 그저 만들라 해서 만든  것뿐이었소.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은 물이 아니고, '물은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게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그러면, 방주를 그때  만들었는데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야 될 건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부활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 되시기까지 하시고, 우리를 구원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시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세 가지 대속의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지극히 전지하신 그 공변된 그 심판에서도 우리는  죄 없는 자로 통과되었습니다. 우리는 의로운 자로 통과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친 자녀가 돼 가지고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우리에게 주신 이 대속, 또 그리스도는  뭐인가? 그리스도는 내나 예수님의 영이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는 사람 되어  오시기 전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책임진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영원 전 우리가 택함을 입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었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가, 예수님은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서 우리를 대속 하셨고, 그리스도는 뭘 하는가?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라 말은 기름 붓는다 그말입니다. 기름 붓는다 그러면, 기름 붓는다는  것은 그때는 몰랐는데 그 후에 하나님께서 신정 국가에서 기름 부어서 하시는  일이 제사장을 기름 부어서 장립시키고 선지자와 왕을 기름 부어서  장립시켰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구원 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말은  우리를, 우리의 제사장이 되시고 선지자 되고 왕이 되신 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우리를 만드십니다. 그러면,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으로 만들어진 것은 구원을 얻습니다. 만들어지지 안한 것은 다 멸망받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이 제사장으로 만들어진 양이 얼마나 되느냐? 고 양은 구원 얻고  또 제가 제사장으로 만들어져서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간단한 시간에 연습을  시켰는데 이 면에서 제사장 저 면에서 제사장, 그러면, 이 세상에서 영원  무궁세계를 다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양이 커서 영원하고, 그래서,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작은 것에 충성했기 때문에 많은 것으로  주겠다 큰 것으로 주겠다 이랬습니다. 적은 것에 충성했으니 많은 것 주겠다 작은  걸로 충성했으니 큰 것으로 주겠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 세상에  우리가 준비 기간에 이 준비를 하는 이것은 양이 심히 적지마는 이것으로써  준비한 대로 영원 무궁세계에서 많고 큰 것을 주시겠다 하는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하느냐? 예수님의 대속의 이 구원과 또  그리스도가 우리를 세 가지 직분의 실력을 갖추어 주실라고 하시는 이 구원과 이  구원을,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심은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 다시 사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를 사죄 칭와 화친을 한 것뿐이요, 또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세운 것뿐이요. 왕으로 세운 것뿐이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의 지공한 심판에서 다 결정 지워서 주신 것뿐이오.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우리가 사죄의, 사죄 입은. 사죄를 받은 자로 살고  칭의를 받은 자로 살고 화친을 받은 자로 살고, 또 우리가 제사장으로 살고  선지자로 살고 왕으로 사는 요 실제의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예수님이 못 박헛는데 그리스도가 못 박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데까지는 우리를,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이  심판에서 통과할 만치 우리는 완전히 사죄를 받았고 칭의를 받았고 화친을  받았고,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그 직권을 우리가 받은 자인데 받기는 받았는데  받아 가지고서 실지로 우리가 실행하는 것은 예수님 이 부활하시지 안했으면  공심판에서 받기만 받았지 우리는 실행의 그 모든 실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실상으로 이래 살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구원하는  표니까 이 구원이 된 것입니까 지금 구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하는 표니' 하는 거는 지금 구원하는, 구원을 지금 자꾸 하고  있습니다. '구원하고 있는 표니 곧 세례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세례라는  것은 어떤 것이 세례냐? 로마인서 6장에 가르친 걸 보면은 세례는 옛사람은 죽고,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세례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에 물을 가지고서 머리  위에다가 찍어서 바르면서 그렇게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침례교에서는 세례를  주지 안하고 침례 합니다. 침례라는 것은 침례 받는 율이 있는데, 그 전에는  강물에 가 가지고 이래 받았었는데 침례 받는, 침례 교회를 만들면 벌써 예배당을  지으면은 침례 받는 물통을 만듭니다. 그 물통은 사랑이, 아주 이래 좀 깊어서 푹  잠그면 물 속에 꽉 잠길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세례 받을 때에, 한  사람을 물 속에다 집어 벗어 가지고, 물속에, 싹 들어가서 안 보입니다. 싹 들어가  안 보이도록 이렇게 해 가지고 그래 들어 올려 가지고서, 이제 그것이  침례입니다. 잠길 침(浸)자 예법 례(禮)자, 물 속에 잠궜다, 그거는 뭐이냐 하면,  잠근 것은, 이래 물 속에 이래 딱 잠궈 버렸으니까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안하니까  아주 죽었다, 죽어서 장사 지냈다, 이래서, 너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장사 지낸 자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침례를 받는 것인데, 그 세례 받는 것이나 침례 받는 것이나 그것은  다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서, 구약 때에, 이렇게 물을 뿌려서 받는 것은 구약의  모든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깨끗게 하실 때에 그때에 이 피를 뿌려 가지고서  그렇게 우리를 깨끗게 했지 피 속에 담근 것이 아니기 때문에 뿌리는 예식으로서  그렇게 세례를 주는 것이고, 또 침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고것을 강조해  가지고서 물속에 한번 들어갔다가 보이지 않도록 해 가지고 이렇게 들어 내 살려  가지고 우리에게 침례라 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나 침례나 우리  정통에서 다 같이 봅니다.

 그런데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세례라,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는  표인데 곧 세례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그래 물은 그렇다 말이오 물은, 내나 노아 홍수 때  물은 말이오, 그러면, 노아 홍수 때에 그 물로 심판할 때에 하나님께서 방주를  예비하라고 하실 때에 방주 에비한 사람들은 아무리 홍수 와도 홍수로 말미암아  더 구원이 됐지 손해 보지 안했습니다. 손해보지 안했고, 홍수로 말미암아 온  세계는 노아의 차지, 노아 여덟 식구의 차지가 됐습니다. 그러면, 노아 여덟  식구는 홍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서 크게 구원이 되고 유익이 됐지마는 다른  사람들은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 준비를 하도록 하는데 구원  준비는 어찌 하느냐? 구원 준비는. 그때는 물에 대한 방주로 구원 준비를 한 것은  하나의 표라 말이오. 하나 표적으로 그래 보인 것입니다. 했지마는 지금은  실질적으로 뭐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와 그리스도와 부활하심, 예수의 은혜를  입어야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야 되고 부활하심의 은혜를 입어야 되니,  입어야 되는 것이니까. 예수의 은혜를 입는 것은 사죄 칭의 화친의 이 구원을  우리가 입었고 또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그 직책을 우리가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실제로, 몇 가지입니까? 예수 몇  가지입니까? 세가지. 그리스도는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이 여섯 가지를 실제로  내가 지금 여섯 가지 생활을 할 수 있는 이 일을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주셨으니까, 이제 우리가 이 여섯 가지를 우리 현실에서 생활하는 이것이, 이  여섯 가지 생활해서 내가 사죄를 입는 것이, 칭의를 입는 것이, 화친을 입는 것이,  제사장 되는 것이. 선지자 되는 것이, 왕 되는 것이 이 여섯 가지가 되는 것이  마치 노아 때로 말하면 홍수 안에 방주가 있어 가지고서 그 방주 안에 있는  것이라 말이오. 방주 안에 있으면 살았고 방주 밖에 있으면 다 죽은 거와 마찬  가지로 이 여섯 가지가 이루어진 거는 다 살고 여섯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다 죽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궁세계 가 가지고서 제사장 준비를 해서  제사장 실력이 갖추어진 것만치 하늘나라의 자기 직책을 하고, 선지 직책이 왕의  직책이 된 것만치 그렇게 하고, 사죄를 입고 칭의를 입고 화친을 입은 것만치  자기에게 그것이 실제 생활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본구원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우리가 통과된 이것으로서  우리의 기본구원 얻은 이거는,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이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본구원은 꼭 같지마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 기본구원은 같지마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다시 이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 그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행위구원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뭐이냐? 그것은 간추려서 말하면 세례다. 간추려 말하면 세례다. 세례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세례라. 그래서, 세례를, 물  속에 침례는 집어 넣어 가지고서 죽어 버렸다, 숨도 못 쉬고,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딱 그래 놓고 새로 올라오는 것은 이제, 아주 죽었고 죽고 죽은  가운데서 새로 살아 나왔다는 그 표로 침례를 하고, 우리는 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이 대속을 입는다는 그 표로서 물을 뿌려 가지고서 세례를 줍니다.

 이래서, '표니 곧 세례라' 그러면, 세례라, 그러면 우리가 간추려 말 하면 세례라,  세례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간추려 말하면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우리는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우리 대신 죄의  형으로 죽으셨고, 순종으로 죽으셨고, 하나님의 화목의 제물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 대신 죽으셨으니까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가 죽은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를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실지로 지금  당장 죽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가 예수님의 그 죽으심을 따라서 같이 죽는  것은 살아 있으면서 죽은 자와 같이 우리의 마음의 행동을 죽이고 몸의 행동을  죽이고 모든 마음의 정신이나 이런 걸 다 죽이고 다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세례라는 것은 양면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예수님의 그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대신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죽는 이것이  일면이고, 또 일면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 다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중생된 자로 사는 거. 그러니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은 죽이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이게 세례라 말이오.

말하자면 이게 세례라.

 그랬는데, 세례는 또 뭐이냐? 세례는 물로 그라니까 무슨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물로, 세례라 하는 것은 씻을 세(洗)자, 예라는  예(禮)자, 씻는다 하니까 더러운 것 물로 씻는 것으로 이렇게 알지마는 그게  아니라. 세례라는 것은 어떤 것이 세례냐?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그러면 세례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세례는 뭐이냐? 세례는 곧 노아 홍수 때에 물로 구원 얻은 그 표인데  오늘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받아 가는 이 구원이라, 그러면,  자꾸 이렇게 위에다, 밑에 해석을 해 놓고 위에 또 간추려서 결론을 지워놓고 또  결론을 지워 놓고 마지막에 간단하게 우리에게 지금 말해서 했습니다. 그러면,  노아 홍수 때에 그렇게 멸망했고 적은 사람들이 얻은, 구원 얻은 표는 뭐이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의 은혜. 예수의 은혜가 세 가지. 그리스도의.

은혜가 세 가지. 이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데, 이루어지는데, 그 해석을 하니까 그런데,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결론적으로 말하면 뭐꼬? 결론적으로 말하면은 그것이 뭐이라 했습니까?  세례. 중간 결론으로 말하면 세례라 말이오. 세례로 말한, 세례인데, 세례는 또  뭐이냐? 세례는 우리 몸을 물로 씻는 거 그게 세례가 아니고, 우리의 선한  양심이, 선한 양심이라 말은 하나님만을 중심해서 쓰는 양심 말이오. 하나님만을  중심해서 쓰는 양심.

 그러면, 양심도 이 세상에 뭐 백도 천도 넘습니다. 공산주의 양심이 있고 또  불교의 양심이 있고, 불교는 부처를 위주로 해 가지고 부처를 섬기지 안하면 안  되고 부처 앞에 죄를 지으면 큰일납니다. 저는 언제 절에 가 가지고서 부처를  이래 좀 무거운 걸 이래 들어 봤어요 들어서 뒤비시 보니까 그 아주 속은 비었고  구멍이 그 밑구멍이 이래 납딱하이 구멍이 텅 비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그래 가지고서, 그래 내가 중한테 말하기를 '그거. 이것이 무슨 복을 주겠다고  여기다 빌고 있소?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래 내가 그때 저 덕유산 아주 상봉  있는데 가면은 거게 절이 하나 있는데 그날 갔다가 그만 저물어서, 눈은 이렇게  쌓여 가지고 있는데 그, 그 속에 가 가지고. 덕유산 상봉에 갔다가서 그래  내려오니까 먼 데 가지도 못하고 할 수 없어 그 절로 들어갔습니다. 절에 들어가  가지고서 그 절에 가서 이제 이래 하룻밤 자면서 그래 이제 그 절에서 보고서  이랬는데 그런 사람들은 그래 하지마는 우리는, 세례라 하는 것은 하나의 형식을  갖추는 게 아니고, '선한 양심이' '선한 양심이' 이제 불교인의 양심도 있고  공산주의 양심도 있고 또 유교 양심도 있고 미신자의 양심도 있습니다.

 미신자의 양심은. 그전에 제가 보니까 동회에 동산제 지낸다 하는데 정월 뭐  몇일 날인가 날짜 정해 놓은 것있어요. 지내다 보니까, 그 동산제 지내는 사람은  일 년에, 그 동리에서 뽑아요. '올해는 동산 제를 아무 것이가 좀 지내 주면  좋겠다' 그러면은, 그 사람은 아예 동산제 지낸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일을 안  합니다. 일을 안 하고, 그거 잘 지내면 자기도 복 받고 동리도 복 받는다 해  가지고서 일을 안 하고, 한 달 동안을 매새벽마다 가 가지고서 찬물에 어름 떠  내고 목욕을 해요. 목욕을 하고, 또 매일, 한 달 목욕을 해요. 목욕을 하고서. 이제  그때 동산제를 지내러 가는 그날 밤에는 어째 하느냐 하면은 찬물에 목욕하고  삼베. 겨울에 추울때 아닙니까? 정월 달이니까. 정월. 뭐 정월 보름 안이라요.

그래 삼에 옷을 입고 또 사흘 동안은 횐죽 먹고. 횐죽물 먹고 그래 가지고 이제  산제 지내러 간 답니다. 이렇게 가는데. 그런 사람들은 또 그 중심이, 뭐 산신을  중심으로 하는 동리도 있고, 또 수신을 중심으로 하는 동리도 있고, 또 북두  칠성이라고 그 칠성을 별별 게 다 있는데, 중심도 그것이 여러 가지 중심이 있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바로 할라 하는 그게 양심이라.

 불교자 양심. 미신자의 양심. 모든 이종교의 양심 여러 가지 있는데. 우리는 선한  양심이라 말은 하나님을 중심한 양심이라 말이오. 하나님을 중심 한, 하나님을  중심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느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느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노를 면하겠느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면하겠느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느냐, 하나님의 기적의  도움을 받겠느냐' 하나님을 중심해서 자기가 옳게 바르게 착하게 해 볼라고 애를  쓰는 고 마음을 가리켜서 선한 양심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 때는 방주 만들라고 하니까 그와 같이, 방주를 만드니까 구원 얻었지마는  지금은. 쭉 연결을 했는데. 이제 연결한, 여섯 가지 아닙니까? 자기가 하나님을  중심해서.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나에게 사죄를 주셨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나에게 칭의를 주셨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나에게 화친을 주셨으니까  내가, 주님이 내 형벌을 대신하면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죄를 범하며,  주님이 내 대신 순종하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순종해 가지고서 나에게 칭의를  줬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가 있으며, 죄를 지을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 하지 안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지 안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고걸 생각하는 고것이 뭐이냐 하면은 착한 양심이라 그말이오.

또,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해 가지고서 이 영광스러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주셨으니까 내가 모두 만물과 하나님과 그 사이를 내가 중보를 해 가지고서  이것을 잘 조화를 맞출 이 제사장 직을 내가 받았고 했으니까, 이 제사장 직을  받고 또 선지직을 받고 왕의 직을 받았기 때문에. 이 직책을 하는 데에 내가  조그마치라도 삐뚤어지면 되겠느냐,  이러니까 어떻게 하면 홰가 사죄에 걸리지 않게 살겠나, 칭의에 걸리지 않게  살겠나, 하나님과 화목에 걸리지 않게 살겠느냐. 어떻게 하면 제사장 직에 걸리지  않게 살겠느냐, 선지 직에 걸리지 않겠느냐, 왕의 직에 걸리지 않게 살겠느냐,  걸리지 않게 살겠느냐 하는 고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요 일을. 사죄를 입고  칭의를 입고 화친을 입은 자로, 화친 받은 자로서 내가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살겠느냐 요 여섯 가지를 자기가 생각하는 고것이 이제 착한 양심이라  말이오. 착한 양심. 요 여섯 가지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고래 되느냐 고것을,  바로 옳게 살라고 애를 쓰는 그것을 가리켜서 선한 양심이라 말했습니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나님을 향하여서 뭘  찾아갑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말이오.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요 뜻을 찾아 가지고서 고 뜻에 딱 맞게 하면은 고것을 가리켜서 무슨  믿음이라고 말했습니까? 고게 산 믿음입니다. 고거 산 믿음. 산 믿음은 전능이요,  전지요. 완전이요, 승리요, 영생이오, 이 산 믿음은.

 그러기 때문에,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에, 산 말, 산 말. 내가, 어제 어데서 전화가 한 마디 왔어. 전화가 왔는데,  자기 교회 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해 가지고 전화가 하나 왔는데 전화를 하고 난  다음에 끝에 내가 안 할 말을 한 마디 해 버렸어. 안 할 말 한 마디 했어. 고게  엊저녁에 내게 밤새도록 고통이라. 그 사람에게 고런 말은 해 줘야 유익이 없는  말인데 유익이 없는 말을 이제. 그냥 쓸데 없는 보통 말을 한 마디 했다  그말이오. 그래서, 고걸 내치 하나님 앞에 또 고침을 받을라고서, 용서를 받을라고  이래 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산 말은, 산 말 해야 되는데 산 말은 무슨 말이 산 말입니까? 산  말은 무슨, 말이 산 말이오. 하나님과 연결된 말이 산 말입니다. 또 산 마음은  뭐이요 연결된 마음이오 또 산 행동은 뭐이요? 연결된 행동이오. 산 기쁨은  뭐입니까? 연결된 기쁨.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피동돼 된 그거는 모두 다 산  것이요 영생이지마는 피동되지 안한 거는 다 죽은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래서,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요것을 중심해 가지고서 요 여섯 가지에 바로 행하려고, 요 여섯 가지  면으로서 바로 행하려고 애를 쓰면, 애를 쓰면 착한 양심, 선한 양심이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중심하는 양심이, 요 여섯 가지를 대조하면서 여섯 가지 면으로  안 틀릴라고 요렇게 애를 쓰면은 고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라,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라. 요 여섯 가지  면으로 자기가 대조해 보면서 바로 하려고 애를 쓰면은 하나님의 바른 뜻을 찾는  것이라. 바른 뜻을 찾아 가지고서 행하면 뭣 됩니까? 산 믿음 되지요.

 그러면 지금은 산 믿음으로 우리 구원 준비를 한다 말이오. 그때는, 홍수로  멸망시킬 때에는 방주로 이차 같이 만들어 가지고 구원했어. 방주, 나무를 끊어  대라, 또 삐져라, 또 빠르게 해라 이래 가지고 맞추니까 됐지마는 오늘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요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고 조 현실에 따라서  순종하고, 그때는 순종한 것이 그것이 배 모으는 그 순종이었지마는 지금은  뭐이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딿는 것이라 말이오. 우리 인격. 이래 가지고서  요 현실마다 요렇게 하라 조렇게 하라 하는 대로 고렇게 하면은 고것이 산  믿음이 되는 것이고. 한 말로 말하면 산 믿음, 산 순종이라. 한 말로 말하면 산  순종이고, 고게 또 여러 말로 말하면 고것이 산 말이 될 때도 있고. 산 행동이 될  때도 있고. 산 눈으로 산 산 눈으로 보는 게 될 때도 있고. 산 귀로 듣는 것이 될  때도 있고, 산 귀로 듣는 게 뭐입니까? 산 귀로 듣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파  연결된 것은 내가 듣지마는 연결되지 안한 거는 다, 다 치워 버린다 말이오. 암만  다른 사람이 수근 수근 암만 해도 이제 하나님이 요 말은 네가 들어라 하는 말은  듣고 하나님이 들어라 소리 안 한 거는 안 듣는다 그말이오. 보는 것도  하나님께서 '네가 요걸 봐라' 할 때는 보지마는 아무리. 뭐 좋다고 막 이래 떠들어  쌓아도 이제, 하나님이 보지 말라는 거는 안 봐야 된다 말이오.

 인제 고렇게 하는 것이 그게 뭐이냐? 그때는 배를 모았지마는 지금은 시키는  대로 우리에게. 산 믿음이라 하는 것은 내가 언행 심사로 행동하는 거, 또 네가  지식은 요런 지식을 가져라 시키는 대로 지식을 가지는 것 또 하나님께서 너는  요런 사람이 되라 하는 대로 사람이 되는 거, 그러면, 산 믿음으로 하면은 산  지식이 이루어지고 산 행동이 이루어지고 산 사람이 이루어지고, 이러니까 이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이 되어지는 것이고, 고것이 마치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을 입은 자로 사는 것이고 그러면 고게 구원이라. 요다음에는 고게 구원이 돼  가지고서 고대로 된 것은 다, 불로 심판하는데 남아 있고 영생하지마는 고와 같이  되지 안한 것은 이 세상을 태울 때에 다 타 버리고 만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대로 예수를 믿어야 되지,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선한 양심을 쓰지 안하는 사람은 구원이 멉니다. 구원에 근방에 가지도 못해.

착한 양심을 써 가지고 친한 양심이 노력을 해 가지고서 구원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고 만날 수 있는 것인데 양심도 쓰지 안한 사람이 뭐 되겠습니까? 고기를  잡을라 하면 물에 가야 잡는데 물에 가 가지고도 고기를 잡을라 하면 쉽게 되는  것 아니고 고기 어데 있는고 이걸 찾아 가지고 그놈 또 잡을라고, 발견을 해도  잡을라 하면 힘이 드는 것인데 이제 공중에서 어데든지 대고 고기 잡는다고서  그물을 공중에나 아무 데나 대고 이래 던지고 이래 가지고서 고기가  잡히겠습니까? 안 잡힌다 그거요. 이 착한 양심을 써 가지고도 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기가 힘이 드는데 양심도 쓰지 안하고 자기 속에 흉측한 이런 욕심 저런  욕심 아주 더러운 생각, 더러운 마음, 더러운 감정. 뭐 시기, 질투, 그 모든 훼방,  교만 또 이간, 간사, 그 모든 거짓된 거 이런 게 가혹히 우리 속에 쌓여 가지고  있는데 그대로, 이 시간은 이놈 나쁜 놈대로 살고 저놈 나쁜 놈대로 살고 전부  악령 악성으로 된 이것으로 이 시간 살고 저 시간 살고 이래 사는 사람이  양심이라 말은 그런 걸 다 치워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해서 바로 하려고 애를  쓰면은 그게 어렇게 좀 찾아질 수가 있고 나중에 연습하면 차차차차 잘 찾을  수가 있고 이래 돼지는 것인데. 양심 안 쓰는 사람은 구원은 못 이루는 것이오.

헛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눈을 감고 뭘 보겠습니까?  그러니까 양심을 써야 이제 발견을 할 수가 있고 또 자기가 거기서,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라' 몸으로 산 제사 드린다 말은 너는 살아 있으나, 산 제사라 말은  무슨 말인가? 너는 살아 있으나 너는 제단 위에 죽은 것 같이 되고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샀기 때문에 너는 지금은 네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니라 완전히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자가 되어져야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이 구원을 이루는 건데 제 욕심  차릴 대로 다 차리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나머지기 찌끄러기 가지고서  예수를 믿는다는 고것이 구원이 되어지는 것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거게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기적과 축복을 보지 못한다 말이오

 그래 내가 어제도 들으니까 '야, 이런 기적이 나왔고 저런 기적이 나왔고' 모두  기적이 나오고 이랬는데, 다른 교회서 자꾸 전화가 이래 오는데, 이런 기적이  나오고 저런 기적이 나왔다고 이라니까, 기적이 많이 나온 교회면 그 교회  부흥됩니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기적이 났으니까 다른 사람 보고서 '아, 야'  제일 껍데기로 보는 것은 '아, 그 사람 일이 뭐이, 어려운 일이 되였다. 아, 그  사람 경제의 문제가 해결이 됐다. 또 그 사람이' 그것보다 나중에 고상한  사람들은 '아, 그사람이 사람이 변화가 됐다. 그 사람이 그 전과 다르더라.' 이렇게  무엇인가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우리의 소유를 무슨 변화시켜  줬든지 우리 자체가 변화가 되든지 뭐이 변화가 된 걸 다른 사람들이 봐야 그게  빛이 되어지고 교회가 되어지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뭐 되겠습니까?  개척 교회들을 내가 이래 보는데. 보니까 어떤 교회는 그저 '오늘은 사람이 몇  명 왔습니다' 여게다가 강조를 두고 있고, 또 어떤 교회는 보니까 여게는 '오늘  누가 이리 이리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어떻게 회개하고 어떻게 살다가서 기적을  만났습니다.' 자꾸 기적을 보고 한다 말이오. 기적을 기적과 축복을 보고 있어.

'하. 아무 것이가, 이런 사람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뭐 전부 이래 가지고, '이제는  굶어 죽지 않을 수 없는데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또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됐는데 해결이 됐습니다.' 아 그거는 뭐, 그 문제만 해결되고 그 계약만 되면 되는  것인데 갔더니마는 계약이 안 되고 다 퇴짜가 되 버리는데, 퇴짜가 됐는데 '그거  아마 하나님이 안 주니 그런가 보다' 하고서 어데 기도원에 가 가자고서 성경을.

성경을 그때, 그 사람은 어째 네 번 보기로 작정했대요. 네 번 보기로 했는데 두  번 보고 나니까 고만 '이만하면 됐다' 싶어 와서 했는데 그만 헛일이라,  헛일이라서, 그 계약 다 헛일이지. '내가. 성경을 내가 그때 네 번 볼라 했는데.

하나님이 네 번 보라고 지시해 주신 건데 네 번 안 보고 두 번 봐서 틀렸다. 이래  이제 가서, 그 일은 틀렸고 가서 죄나 회개하자' 하면서 가서 성경을 그 자리에  가 가지고 새로 두 번을 더 봤더래요. 더 보고 오니까 뜻밖에 통지가 왔더래요.

통지가, 계약됐다고, 그때 다른 사람하고 다 됐는데 그거 치워 버리고 됐다고.

우리 주님이 모든 인간의 심리를 다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도 제가 오다가 차길에서, 거기가 길이 험해요. 길이  험한데, 어제도 내가 보니까, 얼마나 되겠느냐 보니까 한 천미터 된다고. 천 미터  되는 이거, 이거 포장을 하면 좋겠는데 뭐 이래 가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요. 많이  걸려서, 그래 그걸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 교회 O장로님이 내무  국장이니까 거기 다. '일 년 계산에 거게 넣어 가지고서 하면 될 건데 뭐 그런가?'  한번 말을 하려고 이라다가, 가만히, 그라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회개를  했어요. '아, 자기가 그 자리 앉아 가지고서 다른 일만 잘해도 그게 고마운 일이고  어쩌든지 영광을 돌리며 되는 것인데 내가 또 거기다 짐으로 그런 소리를 해?  그게 틀린 짓이 다 틀린 짓이고, 또 그보다 더 능력 있는 주님이 계시는데 그럴  게 뭐 있나?' 그래 가지고 내가 기도를 했어요. '요거 하나님의 뜻이면 요거 해  주십시오' 그래 기도를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또 그래 내가 기도를 했어. '이제  요거는 한 번만 기도했지 다시는 여게 대해서는 기도 안 하겠습니다.' 또 그래  기도를 하고 결론을 지웠어.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면 들어 주실 것이고 뜻  아니면 안 들어 주실 것이고 그렇겠지요.

 그래, 우리가 이렇게 참 우리 현실에 자꾸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야 되겠어요.

모두 기적과 축복이, 자, 새벽 기도 오늘 새벽에 나왔는데 새벽 기도 나온  사람들만 해도 요 사람들이 모든 일이 다 잘돼서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 '아, 그  사람 새벽 기도 나왔더마는 그렇다, 뭐 어떻다' 이게 이제 확실히 본인도 알고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고 이렇게 나타나야 되는데, 예수 믿어서 새벽 기도 나와  봤자. 예수를 잘 믿는다 해 봤자 아무 표도 없이 이러니까 다른 사람이 믿을 수가  있어야지? 죄를 지어도 그만 죄를 지어도 징계도 없지, 뭐 자기 딴에는 믿음을  지켰다 하는데 아무 기적도 축복도 없지 이래 놓으니까 안 돼. 이래 놓으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우리고 따로 떨어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도 그래요. 자식도 이것을 말하다가 안 들으면은 그만 도의 치지를 한다고서  그만 '어라, 내비둬라, 그거는 내비둬 버려라.' 그만 선 밖에 내놔 버려. 내놓고,  그거야 어짜든지 세월에게 맡겨서 '세월이 가면은 어찌 되겠지' 하고서 그라는 거  모양으로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이 될 상 바르면 자꾸 붙들고 안 되면 징계도  주고 이라지마는 아예 안 될 자는 집어 던져 버리고, 집어 던지면 어째 됩니까?  '아따, 집어 던지니까 하나님 간섭 없으니까 좋다' 하지마는 좋은 게 아니라 어느  때가 되면은 망해 놓으면은 뒤에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나중에 일어서지를  못해요. 그러니까, 미리부터 단속해야 되지.

 그러니,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착한 양심을 써 가지고서 어짜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읍시다. 찾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현실마다 그게 있으니까,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요대로만 행하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반드시  있고 없는 것은 없습니다. 있는데, 그 순서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주시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했습니까? 우리에게 기적과 축복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했소? 손가락으로 한 번 가리켜 보이소. 아, 옳지. 세 가지  가리키는데 언간히 맞기는 맞아. 세 가지. 하나는 내 자신을 와 가지고서  변화시키는 그것이 제일 큰 것이고, 또 둘째 거는 뭐입니까? 하늘나라의 것  그것이 둘째로 큰 것이고, 그 다음에 이 세상 것, 껍데기 땅에 속한 것 이것 주는  것이니까, 어릴 때는 땅에 속한 것을 먼저 줘요. 모르니까, 신령한 것도 모르고  자신이 변화된 것도 모르기 때문에 요렇게 산 믿음을 지키면 제일 신앙이 어릴  때에는 이 껍데기부터 먼저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은 지 뭐 이삼 년 안에  자기의 육체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사람은 예수를 어째 잘못 믿어서 그런  것입니다 육체의 일은 이삼 년이면 다 해결되고 남아요. 뭐 경제 문제나 모든 거  다 다 완전히 터전이 잡혀져 버려요. 삼 년이면 됩니다. 되고, 이제 그 다음에  하늘나라의 축복과 자기가 성화되는 그것은 평생 해도 모자라요. 평생 해도  모자라.

 그러니까 어짜든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자꾸 '하나님의 기적을 받자, 축복을 받자' 어제 아침에도 말 했지마는  OOOOO교회에서는 인사할 때에 '아, 오늘도 반드시 기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꾸 기적과 축복을 교인들에게 바라보도록 '아, 하나님의 기적으로  잘되자,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되자' 이걸 바라보도록 만드니까 사람들이 거게다가  관심을 가지니 자연히 '하나님께 기적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되겠다'  이라니까 그 사람이 자구 고쳐지니까 자꾸, 자기에게 '예수 믿어 보니, 아, 기적이  나온다, 축복이 나온다' 이 경험 있으니까 자꾸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달라들  것 아니요? 이러니까, 자꾸 그 사람들이 자꾸 많이 전도하고 이래 가지고 와  가지고 그렇게 오십만 명이나 모인 것이지, 공연히 '에, 그거는 이단이다, 뭣이다'  근방에 가지도 못할 사람들이 그 망령된 소리를 하고 있어. 어떤 사람은 '아,  교회는 성경에 말하기를, 백 쉰 세 마리가' 베드로가 바다에서 고기 잡은 것 몇  마리이고? '백 쉰 세 마리를 끌어올렸기 때문에 이게 교회다. 그러기 때문에, 백  오십 명 이상 되면 그거는 욕심으로서 대교회 주의다. 안된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그러면 예수님은 뮈 오천 명 그래 했으니까 그러면 대교회 주의로서 못 쓸  것이로구먼?  이렇게, 뮈이냐? 자꾸 기적과 축복을 자꾸 말하니까, '어라, 오늘도 내가 막 빡빡  이래 가지고서, 내가 속여서라도. 도적질 해서라도' 이런 게 아니라 그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아야 되니 내가 도적질 해서 안 되겠고 거짓말해서 안되겠고,  정직해야 되겠고. 진실해야 되겠고' 내가 신앙 버려 버리고, 바쁠 때는 신앙 버려  버리고 돈 벌고 바쁠 때는 다 뭐 주일이고 다 어기고 뭐 하고 이 사람이 안 된다  그말이오.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내가 돈 버는 것 보다  나으니까 내가 기적과 축복을 받도록 먼저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는 것부터  잘하고 그 다음에. 모두 이거 저거 하는 것도 예수 믿는 그 믿음으로 해야 되지  예수 믿는 믿음 아니면은 하지 않겠다' 이 사람이 되니까 그 교회가 자꾸  부흥된다 말이오. 오늘 우리도 이런 사람 됩시다. 인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잘되도록 제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아, 신명기 28장에 보니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것이 뭐 사간이 제 힘으로 해 가지고서 어떻게 그래 되겠습니까?  사람이 그래 된다고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다 됐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기적과 축복으로 되고, 꾀를 쓰고 악을 부리고 죄를 지어 가지고서  될라고 하는 그런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성공하겠다 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자 그말이오  자. 한반 따라 합시다. 오늘도! 기적과! 축복을! 받아서! 모든 일을 성공하자!  자꾸 이 사람이 자꾸 되기 위해서 자꾸 그저 무엇보다도 착한 양심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고대로만 행하는 것만,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하나님이 아니고  미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꾸 이래 해 봐요, 하면은 하나님께서 순서를 따라서  요 면에 기적 축복 조 면에 기적 축복 이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사람도 온전한  사람이 되고 행위도 온전한 행위가 되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자기 것이  되어지는, 자, 소유에 이렇게 큰 부자가 되지, 자기가 온전한 행위가 되지, 온전한  사람이 되지 이라면 뭐 딴거 더 뭐 바랄 게 뭐 있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권찰님들은, 모두 모르기 때문에 심방 가서, 이렇게 혹한이 되니까  추우면 화재가 많이 납니다. 추우면 그것도 생각도 안 하고 자꾸 이래 불을 들여  가지고서 화재가 많이 나니까 불조심 하고 또 연탄 까스 조심해 가지고서 상하지  안하도록 그런 면을 가서 좀 살펴 봐요. 추워 놓으면 죽을 줄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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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5 세 가지 할 일/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50619수새 선지자 2015.11.06
2994 세 가지 할 일/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840812주새 선지자 2015.11.06
2993 세 가지 할일/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861123주후 선지자 2015.11.06
2992 세 가지가 공존하는 세상/ 골로새서 3장 1절-4절/ 791214금새 선지자 2015.11.06
2991 세 가지를 생각할 것/ 신명기 28장 14절/ 850721주전 선지자 2015.11.06
2990 세 가지만 할 것/ 신명기 28장 1절-35절/ 850113주후 선지자 2015.11.06
2989 세 능력과 결합 / 누가복음 10장 25절-27절 / 850830금야 선지자 2015.11.06
2988 세 능력과 결합해 주는 결과/ 고린도전서 13장 1절∼8절/ 850901주전 선지자 2015.11.06
2987 세 번 반성하라/ 창세기 11장 1절-9절/ 810621주후 선지자 2015.11.06
2986 세 사랑의 연결/ 요한복음 15장 9절-16절/ 860316주전 선지자 2015.11.06
2985 세 인물 평가/ 사무엘상 16장 13절-14절/ 811205토새 선지자 2015.11.06
2984 세 인물 평가/ 사무엘상 16장 1절-23절/ 811204금야 선지자 2015.11.06
2983 세 전투와 깨달음, 기도/ 시편 1장 1절-3절/ 831008토새 선지자 2015.11.06
2982 세 종류 시험/ 마태복음 4장 1절-11절/ 860903수야 선지자 2015.11.06
2981 세가지 이긴자/ 요한계시록 3장 18절-22절 / 871030금야 선지자 2015.11.06
2980 세가지 잡을것/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40818토새 선지자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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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베드로전서 3장 20절-22절/ 851218수새 선지자 2015.11.07
2977 세례/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 890226주전 선지자 201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