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인물 평가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4일 금야

 

본문:사무엘상 16장 1절~23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찌니라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사울이 이에 사자를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 아들 다윗의 손으로 사울에게 보내니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여기에 등장된 세 인물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사무엘이요, 한 사람은  사울왕이요, 또 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왕 중에 제일 처음된  왕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서 이 사울을 택하여 왕을 삼는 것이 좋겠다  해서 그래 사울을 택해서 이스라엘 첫 왕을 삼으셨습니다.

그때에, 사무엘상 9장 보면, 9장 1절로부터 10장 25절까지에 보면 사울은  사무엘이 왕을 삼으려고 이렇게 하실 때에 그가 말하기를 ‘나는 가장 말째 작은  지파에 속한 자요, 또 그 중에도 가장 미약한 자라.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런  직책을 감당하겠습니까?’하고 사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택해서  이스라엘 왕을 삼으셨습니다. 그랬는데 그 뒤에 하나님이 사울왕에게 대해서  진노하셔 가지고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왕을 인해서  근심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언제까지 이  사울왕을 인해서 네가 근심하고 있겠느냐? 이미 내가 버렸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말고 다시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  그렇게 말씀을 해서 사무엘이 다윗왕에게 기름 부으러 가게 됐습니다.

갈 때에 사무엘이 말하기를 ‘내가 가면 사울이 이 말을 듣고 나를 죽일 터인데  내가 어떻게 가겠습니까?’ 두려워하니까 ‘네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고  가 가지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청해 가지고 기름을 부어라’ 그렇게 해서 기름  부으러 갔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거짓말을 시키신 게 아니고 제사도 드리고 기름도 붓고  이랬기 때문에 제사드린 것만 사울에게 알리고 기름 부은 것은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혹 오해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밤에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이 사울왕에 대해 본문에서  좀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왕이 이스라엘 중에  가장 작은 자로 알고 자기를 낮추실 그때에 하나님이 왕을 택해서 기름부어 왕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사울 당신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 자기의 부족점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자요  무지무능자로 알 그때에, 겸손할 그때에 하나님이 택해서 왕을 삼으셨는데 왕이  왕 되고 난 다음에는 그는 겸손이 하나도 없어지고 도리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버리고 왕의 사욕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왕을 버려서 왕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진리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자기의 단점을 보고 낙망하는  자도 다 사망이지만,-자기의 단점을 보고 하나님에게 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근근히 살아나갈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고  등용받는 길입니다. 자기의 단점을 발견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아는 그자를 하나님은 들어서 쓰시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꼭 같습니다. 지금도 그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은 또 그 사람도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사람이 필요한고 하니 자기의 무지무능, 자기의 실수 실패 이것을 찾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잘못된 용서를 구하며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이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십니다.

그와 정반대로 자기가 이 세상에 어떤 요소를 구비했든지 ‘내가 이만치 구비해  놨으니까’ 하여 하나님 외에 자기의 가진 것의 그것의 가치를, ‘하나님이 함께  안해도 이 가치만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기의 가진  그것의 가치를, 하나님 없어도 그것만으로라도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어떤 것을  가졌든지 자기의 가진 것을 하나님이 그것을 은혜롭게 이루어 주시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는 첫째 길입니다.

‘내가 이만치 지식이 있으니, 힘이 있으니, 지혜가 있으니, 열심이 있으니,  이만치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이런 지위가 있으니, 무엇이  있으니 이것 가지고’ 그것만 가지고라도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가 어렵다 그말은, 자기의 어떤 가진 것이든지 하나님이 그것을  축복으로 이용해 주시면 축복이 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그것은  다 화가 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될 게 없는데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하지 않아도 쓸모가 있고 유익을 취할 수가 있다 생각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제일 진노거리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화덩어리가 됩니다. 자기  있는 것이 적게 있는 것을 ‘이게 하나님이 같이 안하면 이것이 화가 된다.’  이래 여기는 자보다 많이 가진 자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이것이  화가 된다’ 화가 된다 하는 것을 아는 그 사람은, 많이 가지고 그렇게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크게 쓰십니다, 적게 가지고 그렇게 아는 사람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안 좋을 것이 없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면 화되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식도  화가 되고, 돈도 화가 되고, 잘난 용모도 화가 되고, 젊음도 화가 되고, 힘도  화가 되고, 전체가 화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진 것에 함께 하지 않으면 전체가 화가 되고,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고, 우리의 가진 것 이것조차도 하나님이  함께 해야 이것이 화가 안되고 쓸모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것을  요것을 믿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사울왕이 처음에 등용될 때는 이 이치에 맞아서 등용이 됐고, 버림을 받을  때에는 이 이치에 버림받을 그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버림을 받을 때에 그 행동을 보니까 첫째 그랬습니다. 15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하시는 그 말씀은 무시하고 자기 욕심만 취했습니다. 보기에 좋은  짐승,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 또 그래 놓고 자기 위해서 승리했다고 또 승리의  승전비를 세우고,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해 버리고 자기를 생각하는  데에만 급급한 그것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는 시작입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잊어버릴라, 잘못 찾을라, 감당치 못하고 버릴라.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마음이 기울어져야 될 터인데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야 뭐라고 하든지 그것은 상관하지 않고 자기 편만 생각합니다.

자기 유익, 자기에게 필요한 것, 자기 형편, 자기 사정, 자기 유익, 또 땅에  있는 것 그것만 자기가 욕심부린 그것이 사울왕이 버림을 당한 첫째 원인입니다.

지금도 꼭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잘나고 못나고, ‘하나님이 내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이 내게 지금 무엇을 요구하시며 명령하시는가?’ 여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자기에게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하시는가?’ 이  말씀하나를 순종해서 감당하려고 하는 이 사람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쓰임  받는 사람이고, 정반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이야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요구와 명령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저 좋은 대로 제게 필요한  것, 저만 생각해서 땅의 것만 취하기를 날뛰는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버림을 당하고 나면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여기에 보니까, 16장 14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신이 사울왕을 떠나 버렸습니다. 이제까지는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신이  같이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버리니까 첫째 사울왕에게 일어나는 역사가 영감이  없어졌습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이 없어졌습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이, 성신의  감화 감동은 전지의 감동이요 전능의 감동이요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소원의  감동인데 그만 이 감동이 떠나 버립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없어져  버렸지.

하나님의 소원이 과거에는 제 소원이고 아무것도, 소원 중에 하나님의 소원만이  자기 소원이었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없어지지, 하나님의 지혜가 없어지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지지,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그것이 벌써 버림을 받은  증거입니다.

버림을 받은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 떨면서 신청하지 아니하고,  청종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대해서만 급급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만  급급하니까 ‘이것이 내게 필요있다. 저것이 내게 필요있다.’ 저 좋은 대로  제게 필요한 그것만 취하게 되는 그것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원인이고,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증거는 첫째가 성령이 떠납니다. 성령이 떠나면 어찌  되느냐?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소원이  일치돼야 되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자기에게 없지, 하나님의 지혜가 없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지지 이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면 어찌 되느냐? 그다음에 보니까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를 멸하기 위해서, 넘어지고 절단나도록 하기 위해서 거기에 쓰시는  이 악신이 사울왕에게 들어갔습니다. 이제 사울왕에게 들어가고 보니까 사울왕은  머리가 아픕니다. 심히 번민스럽습니다. 어떻게 할 일 많고 복잡하고 이래서  머리가 복잡해서 견디지 못할 만치 번뇌됩니다.

이 사울왕 버린 것 보니까 첫째 둘째 셋째 이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그  증거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생각지 아니하고 저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을 원인, 버림받으면 성신의 감화 감동은 없고 마귀의  감화 감동이 이제는 자기에게 와 가지고 주장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사무엘은 하나님이  함께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함께 했는데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그 원인을 찾아보면 사무엘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밖에 없었고, 사모하는 것이, 또 모신 것이, 의논하는 것이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무엘이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만 하나님을 친밀히 사귀는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하나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있는 것 이것이 불학무식한,  불학-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무엘이지만, 낳아서 얼마되지 않은, 그저 밥먹고  이렇게 다닐 만하니까 자기 어머니가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 앞에 바쳐서 항상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밤이나 낮이나, 놀아도 거기서 놀고 그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만 생각하고 이렇게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만 사모하고  하나님으로 뭐 될 것을 바라지 딴 걸로 뭘 될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이 하나님과 동행한 그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이 전지와  같이 있는 것이요, 전능과 같이 있는 것이요, 완전과 같이 있는 것이요, 승리와  같이 있는 것이요, 행복과 평강과 생명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어 가지고 손해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 하나님과 같이  있는 데는 돈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유식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잘나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못나도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갖다 바치는 것보다도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부모와 같이 있기를 원하는 것을 부모는 힘껏  좋아하지 아무리 잘나도 부모하고 같이 있기는 싫어하고 제가 사업으로 날뛰든지  어디를 돌아다니며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참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부모와 같이 있기를 싫어하면 어떤 것을 갖다 해 줘도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부부간도 친구간도 그렇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같이 한 사람인데 하나님과 이렇게 친밀해진 원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은 하나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과 속삭거리기를 좋아하고 의논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묻기를, 배우기를, 하나님의 도움을, 하나님에게 얻는 것을  좋아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또 하나님과 이렇게 같이 있어 하나님이 좋아해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이 사무엘은 정치가 중에서 독특한  정치가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맡고 난 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에 원수들이  많았지만 원수들이 사무엘을, 사무엘의 정권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달려들면  그들이 패해서 갔지 이쪽에는 해되지를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사 중에는 제일 마지막 사사인데, 많은 사사들의 시대가  지나갔지만 사무엘이 사사될 때와 같이 그렇게 평안하고 조용하고 외적의 그  해를 받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일 특수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는 그에게 언제든지 평강을 주십니다. 외부로 보면  요셉이가 참 말할 수 없는 그 어려움을 당한 것 같았지만 남이 모르는 그  속으로는 굉장한 참 평강과 기쁨과 재미를 봤습니다.

또 사도바울도 그가 고린도후서에 보면, 그 일생 생활을 가만히 명상해 보면 참  너무 끔찍해서 생각하기에도 징그러울 만합니다. 이랬지만 제3자들이 보기에  이랬지 자기로서는 굉장한 위로와 기쁨을 누렸습니다. 일어났다고 하면 복음이  크게 전파되고 큰 승리와 성공을 이루었고, 그래서 그분이 말하기를 ‘환란이  심한 그것보다 주의 위로가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이 환란으로 보여지지를  않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평강이 있습니다. 안팎이 다 평안하고, 안팎이  평안하지 않으면 세상이 모르는, 겉이 험한 그 속에 굉장한 평안이 있습니다.

이러기에 모든 성도들이 간증하기를 십자가의 그 길을 전부 기뻐했습니다.

제3자가 볼 때에는 ‘아마 이 사람이 지금은 너무 외로워서, 너무 기가 막혀서  지금 한숨을 쉬고 밥맛이 없고 아마 낙망하고 있을 것이다. 위로를 하러 가야  되겠다.’ 하고 위로를 하러 가면 상상도 못할 만치 그 사람은 속으로 한없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갔던 사람이 놀라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겉과 속이 다 평안하게 평안을 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겉이 불안한 속에  상상도 못할 특수한 평강을, 이 환란 속에 들어 있는 특수한 평강을 주시든지  어쨌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괴롭히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갔지만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너거 전부보다 나으신 아버지와 함께 있기  때문에 평안하다’ 했습니다.

또 ‘십자가상에 못을 박혔으니까 아마 심히 고통스러워서 엘리 엘리 라막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 이 믿음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십자가상에서 어떻게 기쁘고 좋은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지위, 영광스러운 역사,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환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런 직책을, 이런 역사를 어떻게 나에게  맡겨 줬습니까?’ 감탄해 못견뎌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사무엘은 그가 사사 중에, 사사로 들어서고 난 다음에는  그 연방이 조용하고 평안했습니다. 그에게 고통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 하는데에 좀 고민했으나 하나님이 ‘너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배척당하는 배척 네가  당하니’ 하는 말로 사무엘은 다시 큰 위로와 큰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그가 일국의 왕을 잘못 세우면, 하나님의 명령은  이 사람에게 기름부으라고 하는데 딴 사람에게 기름부었으면 이스라엘에 대해서  멸망되는 모든 책임을 사무엘이 져야 될 것 아닙니까? 그 맏아들이 떡 오니까  사무엘이 말하기를, 어떻게 잘났는지 인물이 잘났어, 키가 훌륭해, 신체가  구비해, 말을 잘해 그만 사무엘이 그 인물을 보고 깜짝 놀라서 ‘사울왕이  없어져도 문제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예비해  놨구나.’ 하면서 놀라 기뻐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예비해 놨구나.’ 하고 기름을 부으려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기름붓지 말라.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하기를 인물 잘나고 키 크고 신체 건강하고 말 잘하고 지식있고, 이 세상에  떠날 때 두고 갈 것 그런 것들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만 나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여호와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그말은 인간 속에 하나님이  나타내신 이 계시와 영감이 속에 들어 있는 그게 가치지, 그게 가치지 그것은  없이 이 세상 것으로 암만 번들 번들하게 들여 채워봤자 하나님은 그것을  무가치한 자로 버린다 이랬습니다.

사무엘이 그때에 이새의 맏아들에게 기름을 부었으면 사무엘은 얼마동안 안정한  통치를 했지만 하나님과 백성 앞에 큰 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로 하여금 실수하게 둬 두지를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내려가서  애굽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셔 가지고 아브라함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바로왕에게 현몽해 가지고 아브라함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첫째로 평강을 주시고, 둘째로는 그의 생활에 실족이  없도록 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되게 하는 방편은 사무엘이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같이 있었던 이것이  그 원인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증거는 그에게 평강이 있었고, 겉이  불안하면 겉의 그 불안한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 속에 한없는 평강이  있었고 이러니까 그것이 더 좋습니다. 또 그는 사람이라 실수하기 쉽지만 그  실수가 실수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실수하는 것이 본인이 회개해서 유익만  되게 하지 실수의 열매로서 죄에 나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해 주십니다.

사무엘이 거기다가 기름 부으려고 시작했다가 하나님께서 ‘이는 내가 버렸다.

너는 외모로 보지만 나는 인간의 중심을 본다.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본다.’ 이  말씀하는 데에 사무엘이 이제까지 받지 못한 은혜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새의 마지막 아들 다윗을 소리하라 해 가지고 기름부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에게는 평강이 있고, 겉이  환란스러워도 속에 평강이 있으니까 넘침으로서 환란 그것이 다 없어지고 평강화  된다 말이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에게는 평강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에게는  실족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실족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이 등용한 사람은, 다윗왕을 하나님이 등용하셨는데 등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등용하셨는가?  첫째로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가득찬 사람입니다.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차 있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등용하십니다. 다윗왕은  산에 가서 양을 치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살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 부모로 통해서 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하나님이 주신 성경  말씀을 그대로 자기 마음에 채우고 살았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은 여호와가 버렸다.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본다.’ 그말은 그  중심에 여호와가 없다 그 말이오. 다윗은 그 중심에 여호와가 계셨습니다.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있은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첫째 조건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사무엘은 그 앞에 있었고,  다윗은 그 속에 여호와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그는 여호와가 없기 때문에  여호와가 그를 버렸다.

하나님께 등용되는 첫째 조건은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쓰십니다. 하나님에게 붙들려 쓰일려면 영감과 진리가 그 마음에  들어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에 진리와 영감이 들어 있으면 하나님에게 등용되고  아무리 세상 것으로 가득차게 구비해도 진리와 영감이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버리십니다. 잘못하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으로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이 들어 있는 그것을 대신 할 수 있는 줄로, 그것을 대용  될 수가 있을 줄로, 영감과 진리의 그 대신이, 알아 듣게 대신이, 대용이 될  줄로 이렇게 알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것은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이 자기 속에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것입니다.

옥토에 뿌린 씨라고 말씀하신 그 옥토에 뿌린 씨도 내나 꼭 같은 이치의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 그 사람 마음을  주장하고, 또 성신의 감화가 더 감동시켜서 주장하게 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비결입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에게 등용되지 않습니다.

‘외모로 가지고는 안되고 여호와가 그 중심을 본다.’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본다  그 말이오. 여호와는 전능하신 자가 말씀해 놓으신 그 말씀대로 이용하시는  전능자라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둘째로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전 인류가 반대해도 소용없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모네들도 왕이 되게 기름을 붓는다 하니까 이  얼마나 기가 찰 놀랠 일입니까? 일국의 그때 사사니까 지금 대통령보다도 굉장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이요 왕입니다.

종교와 정권을 다 혼자 가지고 있는 사무엘인데, 또 사사라도 참 유력한  사사인데 이분이 와 가지고 기름부으려 하는데, 자기 아들 중에 기름을 부으려  하는데 일곱만 내세우고 마지막 아들은 그것은 데려오지도 않았으니까 그 부모가  ‘아이구, 다윗 그까짓 거야 세워 가지고 안되겠고 우리 큰 아들은 세우면 될  터인데’ 이렇게 했지, 부모가 다윗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이웃이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소. 버림을 받아 저 산골에 가서 양이나 먹이고  심부름이나 하고 하는 그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등용했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무리 배척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암만  배척해도, 사람이 몰라줘도, 부모형제가 몰라줘도, 부부간이 몰라줘도, 교인이  몰라줘도, 이웃 사람이 몰라줘도, 스승이 몰라줘도, 지도자가 몰라줘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인간이 몰라줘도 당신이 등용하시면  등용이 되는 것이지 인간이 몰라준다고, 천거를 안 한다고 안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등용하는 사람은 인간의 방해, 인간의 부인이, 인간이  부인하는 그 인간의 부인이 상관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요게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또 셋째로는 하나님이 등용하게 되면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했다’  그랬습니다. 16장 13절에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됐다’ 하나님의 영이 크게  그에게 역사했다 하는 말입니다. 크게 감동했다 말은 크게 역사했다 말인데,  다윗이 모든 면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크게 동행했으니까 그  다윗은 전능자 아닙니까? 전지자 아닙니까? 하나님의 신이 크게 그에게  감동됐으니까, 역사했으니까 이만하면 하나님 다음으로 세력가는 자 아닙니까?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이 세상 것 그런 것 준비해도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면 그런 것 없어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준비하는 그 준비를 반대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등용하시면 되는 줄로 믿는 사람은 이 세상 것 준비해도 이거 있어야  된다고 해서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벌써 그것은 하나님과 그것으로  멀어졌습니다. 왜 사람들이 공부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업하다가 멀어지고  이 세상것 기반 닦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 사람은 왜 그러냐? 이거 있어야  된다고, ‘이거 있어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도 그것만 가지고 안된다.

이것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그것을 마련하지.

하나님이 등용하시느냐 버리느냐 그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이 쓰실 때에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피조물에게 대해서 뭘 못할 것이며, 모든 것 하나님이  만드신 분인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문제가 뭐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너 학교 가거라.’ 하니까 이것이 학교 안 가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 학교 가고, ‘네가 학교 가 가지고 공부를  잘못하면 복음을 가릴 터이니까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등이 돼야 된다.’  하니까 어쩔 수 없어 하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시키시니 안할 수 없는 믿음으로 하지 ‘이거 있어야 된다. 하나님만  있어 가지고 안된다. 이것이 있어야 된다.’ 그런 죄를 범하지 아니한 것이  다니엘이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는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동행을 합니다. 또, 하나님이  동행하고 또 악령이 이 다윗을 도왔습니다. 악령이 다윗을 도왔소. 사울왕에게  악령이 들어가 가지고 그 머리를 번뇌케 만들지 않았으면 다윗이 사울왕에게  그렇게 요긴하게 쓰여졌겠습니까? 악령이 사울왕에게 와 가지고 마구 전신을  혼미케 하고 번뇌케 하고 고통스럽게 견디지 못하게 하니까 저 다윗이 불려  올라갔습니다. 악령이 하나님이 등용하신 다윗에게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 모든 역사가 다윗을 돕는 일이 됐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올라가도록 했소.

사울왕이 이렇게 번민스러우니까 견디지를 못해서 하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이  하나 말하기를 악기 잘 다루는 사람을 청해다가 악귀가, 악신이 들어와서 왕을  괴롭게 하거들랑 그 좋은 수금을 타 가지고 왕의 마음이 기쁠 때에 그때 그만  악신은 나갈 것입니다. 그래 해 보십시오.’ 이러니까 사울왕이 모든 신하들을 다 불렀습니다. 불러 가지고 ‘얘, 이렇게  말하는데 나를 위해서 그렇게 수금을 잘 타는 그런 사람 하나 구해 봐라.’  이러니까 온 신하들이 나서 가지고 광고를 하는 가운데에서 어떤 소년이 하나  말하기를 다윗을 소개를 했습니다. ‘그런 목동이 하나 있습니다.’ ‘얼른 불러  오너라.’ 청해 가지고 오니까 당장에 그 모든 신하들도 이 다윗을 마구 이렇게  존대합니다.

그 신하들도, 또 거기에 있는 청년들도 다윗을 위하는 자 됐고, 또 사울왕도  오니까 아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면서 ‘지금 네가, 이 내가 지금 악신 때문에  견디지 못하겠으니까 한번 수금을 타 보라.’ 수금을 타니까 악신이 그만 썩  물러가고 사울왕이 쾌감드니까 사울이 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아꼈습니다.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에게는 자기 가족이 몰라줘도 상관없고, 하나님이 등용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등용할 수 있는 자, 하나님이 등용할 수 있는 자는 그  중심이 바로 돼야 됩니다. 그 중심에 여호와가 가득찼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가득찼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등용해.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인간이 추천 안하고 몰라줘도 상관없었고, 또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당장에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크게 감동되었고,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었고, 이러니까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고 난 다음에 다윗에게  첫째 일한 것이 누구입니까? 그것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첫째 일한 것이  누구입니까? 여호와의 신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되고 난 다음에 이 다윗을 위해서  첫째로 일한 자가 누구입니까? 누구지요? 누구입니까? 악신. 악신이 첫째로  일했습니다. 둘째로는 누가 일했습니까? 사울왕의, 그 왕권 가진 왕의 머리 아픈  왕의 병이 다윗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 다음에 누가 일했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공론하기를 ‘아무래도 이  수금 잘 타는 사람을 데려다가 해야 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단합해 가지고 또 다윗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이러니까 거기에 있는 소년 하나가 또 다윗을 소개해서 다윗 위해서 일했습니다.

다윗이 오니까 그 신하들과 모든 사람들과 사울왕이 다윗을 금쪽같이 높입니다.

이렇게 귀중히 높였소. 하나님이 쓰시면 이렇게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보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전쟁은 다윗의  인기를 올리려고, 다윗의 권위 올리려고 난 전쟁입니다. 그 전쟁은 다윗의  권위를 올리기 위해서 일어난 전쟁이오. 또 그 전쟁은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다윗에게 마구 마음이 다 집중해서 기울어지도록 만드는 그런 전쟁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등용할 때에는 모든 것이 다 합해서, 모든 것이  다 합해 가지고 하나님이 등용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사람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대항할 수가 없어. 다윗이 아무리 수금을 잘 타 봤자 이렇게  하나님이 분위기 조정을 하지 않았으면 그 수금 잘 타는 것이 뭐 세월이 그리  나겠소? 이러나 하나님이 위하실려고 하면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가진 것이 다  가진 것만치 필요하도록, 그 사람의 하는 일만 유명해지도록, 성공이 되도록, 그  사람이 하는 일만 잘 되도록 이렇게 공간을 전부 그 사람을 위해서 활용을 하지,  인간의 심리를 다 활용을 하지, 마귀를 활용을 하지, 모든 인간들의 생명을 다  활용을 하지 이러니까 전체를 하나님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 사람에게는 전부가 이렇게 협동해서 그 사람이 되도록  이렇게 만드니까 어떤 인간이 그걸 반대를 하겠습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등용당한 사울왕이 왜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했느냐?  버림당한 것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버림당한 것은 왜 버림당했습니까?  하나님 말씀 생각지 아니하고 저 생각하는 그게 버림당한 원인입니다.

버림당하고 나니까 왕은 왕이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떠나 버리니까 왕이기 때문에  천해졌지, 하나님의 권능이 떠났기 때문에, 떠났으니까 목회자이기 때문에  천하지, 왕이기 때문에 천하지, 껍데기만 가지고 권능이 없으니까 천해집니다.

그러는데 악신이 들어왔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사무엘에게 대해서 세 가지를 우리가 여기에서 찾아  봤습니다. 함께 하는 원인, 함께 하니까 평안, 함께 하니까 실수 없고, 그 속에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만 들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것보고 등용하셨어.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인간이 천거 없어도 인간의 천거가 없어도 됐습니다.

뭐 사람이 날 천거해서 어디로 보내주고 할 필요 없어. 하나님이 천거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에 채워 있으면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데  사람들이 소개 안해 주면 뭐 어쩔 겁니까? 인간들의 소개를 바라서 ‘어디로  가면 좋은 데로 보내주고 어떻게 해야 등용될까?’ 그 참 굴욕적이고 애터지는  일인데 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영감과 진리만 내 속에 계속 충만해지면  하나님이 날 등용하시니까 인간이 뭐, 인간에게 사정할 필요가 없어. 이 길이  쉽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등용하시니까 아무리 무지 무능하지만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충만하니까 문제가 뭐입니까? 그러고 나니까 악령도 그를 위했지, 사울왕의 병든  것도 그를 위했지, 모든 사람들도 그를 위했지, 모든 사람들의 중론이 다,  공론이 그만 척, 뭣 때문에 수금타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 된다 그런  소리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심리가 다 다윗을 위했지, 신하들도 위했지, 또  거기에 있는 소년들이 아는 지식이 또 다윗을 위했지, 이러니까 다윗이 청함받아  가지고 이렇게 존귀하게 됐지, 전쟁 일어나는 것이 또 다윗만 세월나게 하지,  유명하게 하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게 하지,  사울왕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그만 잠이 폭 들고  파수군도 다 잠이 폭 들어서, 잠이 들어서 옆에 와 깨워도 몰라. 이러니까 와  가지고 사울왕을 죽일 건데 죽일 수 있을 만치 왔다 간 흔적을 떡 내고 가  버렸다 말이오. 가고 나서 잠깨 보니까 다윗이 왔다 간 것이 분명하거든.

죽이고도, 죽이고도 남고 여기까지 왔다가 이래 하고 갔는데 잤으니 또 다윗의  유명입니다. 전체가 다윗을 마구 유명하게 했소. 유력하게 했소.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밤에 이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면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참 평안하고 좋습니다. 하나님에게 들어 쓰이기만 한다고  하면 모든 것이 문제없고 전체가 협조해서 이렇게 협동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하는 일을 방해할 수가 없어. 배짱있는 일 아니오? 이 좋은 일, 제일 크고  튼튼하고 사람에게 아니꼬운 소리 안하고 굴욕적인 소리 안하고, 제일 씩씩하고  튼튼하고 유력하고 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우리가 뭐 어데 궁색스런 소리를 할  것입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이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이유, 하나님에게 등용되는  이유, 버림당할 때에 그 나타나는 흔적, 동행할 때에 그에게 이루어지는 역사,  하나님이 등용하실 때에 모든 것이 어떻게 하는지?

이 자리에서 확정을 지우고 가요. 확정을 지우고. 이는 진리입니다. 이치입니다.

이 이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외모는 변해져도 이 이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꼭 쥐고, 이 이치는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옛날도 오늘도 꼭  같습니다. 이 이치는 우리에게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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