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능력과 결합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30일 금야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절∼27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 당시에 성경을 잘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성경 선생님을  가리켜서 율법사라 그렇게 말합니다. 요새 말로 말하면 안 믿는 사람들 말로  말하면 법학 박사라 하는 그런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선생님이라 하는 그런 말입니다.

구약 성경을 잘 아는 선생님이 예수님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율법사이니까 구약 성경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냐, 그러면 구약 성경에 어떻게  영생하는 데는 기록되어 있는 것을 네가 보았으며 또 네가 어떻게 거게 대해서  읽고 깨닫느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물으니까 그 율법사가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이렇게 그 율법사가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에 2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했습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사가 성경을 보고  깨달은 대로 대답을 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네 대답이 옳다 이렇게 긍정을  하셨기 때문에 이는 바로 대답한 것이요 영생 얻는 이치를 바로 말한 것이  됩니다.

영생은 그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열매라 그말입니다. 생명을  가지면 영생이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기에, 영생이라는 것은 생명이 맺은 열매를 가리켜서 영생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영생이 맺는 그 둥치는 생명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나무에 맺어진 결과가 영생이요 영생이 이루어지는 그 원인인 나무는 곧  생명인 것입니다. 생명은 어떤 것이 생명인고 하니 의가 가진 것이 생명입니다.

의가 가진 것이 생명이요 생명에 맺는 열매가 영생입니다. 영생이 맺는 나무는  생명이라 할 수 있고 생명이 맺는 나무는 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게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는 네 가지를 다하는 이것이 네 가지를 다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의를 이루고 네 가지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의가  이루어지고 의가 이루어질 때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고 또 이 생명을 가질  때에 영생을 현실 현실에서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1서 3장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우리가 영생을  이룰려고 할 때에는. 우리가 영생을 만들라고 할 때에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깨끗해야 된다 하는 것을 표시한 말씀입니다.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그 속에 영생이 없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속에는  살인하는 것이 없어야 우리 속에 영생이 이루어지지 살인하는 것이 있으면  영생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안이란 말은 우리 마음 안에도 살인이 없어야  되겠고 우리 생각 안에도 살인이 없어야 되겠고, 우리의 성품 안에도 살인이  없어야 되겠고 우리의 그 모든 감정 안에도 살인이 없어야 되겠고 우리가  경영하고 있는 모든 사업 중에도 살인이 없어야겠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마음이나 뜻이나 성품이나 생각이나 사업이나 활동이나 경영이나  소유나 우리의 지식에나 말에나 행동에 살인이 없어야 영생이 이루어진다, 살인이  있으면 영생이 이루어지지를 못한다 그렇게 여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살인이 어떤 게 살인인가? 살인을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니'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미워하는 것이 없는 거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곧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없으면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이 없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로되 사랑하는  것이 없으면 미워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저녁에 증거할라고 하는 것은 제 간증입니다. 제가 오래 동안  그만 귀찮아서 그저 성경이나 보고 기도나 하고 설교나 하고, 이 교회를 이렇게  운영을 해야 되나 저렇게 다스려야 되나 이런 저런 일을 어떻게 경영하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런 것은 하기가 싫습니다. 가급적 이런 그만 여간 좀 낭파가  당해도 그만 그래 덮어 둬 가지고, '세월이 지나가면 설마 해결되겠지' 이래 둬  버리고 그런 것을 간추리기가 참 싫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오래동안 묵밭을  만들어 놓으면 모든 교회의 행정이 다 마비가 되면 마비된 것을 통해서  마귀떼들이 들어와 가지고 모든 택한 자들의 이 구원을 마구 절단을 냅니다.

이러니까 부득이 이것을 또 이렇게 저렇게 간추려야 되겠고 모든 것을 다 또  비판하고 정평 정가 해서 행정이라 하는 것을 안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요새는 그 일을 좀 하는데 오늘은 그만 그것 안 하고 또 미뤄 놓고, 그만 어찌  됐든지. `뒤에 가서 뭐 뭐이 되든지 되지' 요래 하고 집어 던 져 버리고 그만 저  양산동 기도원으로 그리 그만 피난을 갈라고 그렇게 했는데 오늘 또 지권찰회가  있어서 못 갔습니다. 지권찰회도 다른 사람에게 맡길라고 이래도. 맡기면. 한번  맡기면 그 다음에 또 영향이 있지. 그만 새벽 기도도 좀 다른 사람에게 좀 맡겨서  이래 놓고 조금 기도도 하고 좀 성경 연구도 하고 이라고 싶어도 그만 한 새벽  안 나오면 다른 사람은 그걸 어떻게 잘 보는지. `아, 목사님도 안 나오고 뽑을 때  있으니까 나도 오늘 아침에는 좀 이런 저런 조건, 피곤한 무슨 조건이 있으니까  하루 아침 쌔도 안 되겠나' 이래 가지고 뭐 그런 본은 어떻게 잘뜨는지. 이래서  그만 한 이삼 일만 새벽 예배 빠지면 그만 새벽 기도가 훌빈하이 그만 이제까지  쌓아 놓은 모든 성과 같은 것이 다 무너져 버려서 다 주초만 여게 저게 남아  있고 없어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그것 때문에 그것도 못 합니다.' 오늘은 이런 거  저런 거 하다가 보니까 그만 신앙 생활을 잊어버려 버렸습니다. 물론 뭐 하면서  속으로 기도하고 자꾸 주님을 생각하고 이래 하지만 그 일 하다 보니까 내  마음과 정성은 그 일 하는데 거기 가 있고 주님으로 더불어 밀접하게 이렇게  관계를 가지는 이 일이 성글어졌다 그거 요. 그래서 그 일을 마치고 이제는 오늘  밤에 설교를 해야 되겠는데 설교하는 것도 또. 늘 나오는 교인들이야 뭐 좀 몇  시간 빠져도 되겠다 이래 생각지만 또 보면 먼 데서 모처럼 이 한 시간을  바라보고 여기를 온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만 제가 서지 안하면 그분이 얼마나  마음에 섭섭하겠나 그것을 또 생각하니까 또 그렇지. 먼데서 온 또 교역자들도  만날 기회도 없는데 또 그만 다른 이에게 설교를 맡겨 놓으면 그것도 안 되겠지  이래서 설교를 할라고 해도 하나님과 그만 교제가 멀어졌으니까 설교가 안  나옵니다 안 나와서 저 ○○○조사님에게 전화를 했다가 또 ○○○교회에  전화하니까 벌써 출발했다 하고 또 ○○교회는 또 전화하니까 전화를 안 받고 또  ○목사님한테 양사방 이래 다니다가 그럭저럭 해서 그만 한 15분, 한 10분전이  됐습니다. 할 수 없어서 옷을 입고 이래 나왔는데, 나와서 여게 와 가지고 그저  강단에 인제 서야 되겠는데 서니까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셔서 내게 대해서  간증으로 이것을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것을 알려 주셔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을 여러 분들에게 간증을 합니다.

 영생은 어디서 영생이 맺어지느냐 하면 영생은 생명에서 맺어집니다. 영생은  생명이라는 나무에 맺는 열매가 영생이라 비유컨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은 어디서 생기는가? 생명은 의라는 그 의라는 나무에서 생명이란  생명이 맺어집니다. 그러면, 의는 무엇인가? 의는 믿음이라는 방법을 가지고 만든  것이 의인데, 믿음이라는 방법을 가지고 만든 것이 의인데 의는 어떤 게 의인가?  의는, 베드로후서 3장에 `하늘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는 그  의입니다. 의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의를 받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의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그 의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의를 우리가 받아서 내  의를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에 무엇이 맺습니까? 의라는 나무에 뭐이  맺습니까? 생명이 맺습니다. 또 생명이라는 나무에 뭣이 맺습니까? 영생이  맺습니다. 영생은 우리의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영생하는 것이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은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영생을 단번에  이룹니다. 영생이 된 그 심신의 기능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멸망받지를  안하고 아무것에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이래서, 천지가 다 불타나 의는 불타지  않는다 그말은 의에서는 생명이 맺고 생명에서는 영생이 맺는데 거기에 속한  것들은 다 영원히 멸해지지 않는다 하는 그것을 표시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의라는 것은 어떤 게 의인가? 의는, 이 우주와 영계에는 모든 피조물이  가득 찼는데 영계와 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온갖 피조물이 가득 차 있는데,  그 가득 찬 피조물 속에 들어 있지 안하고 가득 찬 그 피조물을 없는 가운데서  만든 큰 세력이 있습니다. 없는 가운데서 영계 것도 만들고 이 물질계의 것도  만들고 그 모든 것을 만든 큰 능력이 셋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뭐인고 하니,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와 또 하나님의 본체가, 역사하시는 역사인 영감과 또  영감이 역사하는 문서 이치, 문서 진리가 그것이 이 셋의 큰 세력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이 셋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본체가 역사하실 때에 하나님의 본체가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성경에 말하기를 영감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영감이 역사하시는데 영감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가라켜서 말씀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진리요. 또 영감은 진리를 아무것도 없을 때에 이 진리를  보낸 것이요 또 영감은 하나님의 본체에서 역사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은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요 또 진리는 영감은 아닙니다.

영감이 진리요 진리는 영감이 아닙니다. 또 영감은 하나님의 본체가 아닙니다.

본체의 역사가 영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체가 자존하셔 가지고 자존하신  본체가 역사할 때에 영감이요 또 그 영감이 나타났을 때에 진리요 이 셋은  하나입니다. 이는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거 아니고 영원 자존하신 것이며  이 셋이 모든 창조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이렇게 삼위일체를 말씀했는데 삼위일체는  삼위이지만 그 본체는 하나입니다. 이 표현은 본체와 본체의 역사와 역사인 그  진리와 이렇게 셋으로 말하지만 그 셋은 근본이 하나이요 영원 자존하신 존재요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한 그 권 씨요 능력이요 모든 또 창조한 것들을  보존도 하고 관리도 하고 양육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의라는 것은 어떤 것이 의인가? 의는 이 셋 큰 세력과 연결된 그것이  의입니다. 이 큰 세력과 연결이 되는데 그 연결은 언제 연결 이 되는고 하니 그  연결은 현실에서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연결을 가리켜서 의라 그렇게  말하는데 의를 성경에서 두 가지 의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하나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서 이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인된 자는 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사람의 의가 된다 이렇게 해서 의는 두 가지로 성경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이 셋 세력과 이 셋 지극히 큰 세력과 연결이 두 번 됐다  그말입니다. 첫째 연결은 하나님 이 연결되게 한 연결인데 첫째 연결은, 이 절단된  것을 연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이 셋 큰 세력, 전지 전능의 이 셋 능력과 연결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연결했는데, 이 셋 세력과 연결된  외부는 셋 세력과 사람이 연결된 연결이요 내부는 이 셋 세력이 한 성자라는  성호를 가지고 나타나셔서, 삼위일체가 성자라는 하나님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  하나님이 성자의 입은 인성을 통해 가지고 나타나서 이 셋과 결합을 완전히 가진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하신 것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와  본체의 역사인 영감과 또 영감이 나타난 이 진리와 이 셋과 완전한 결합을 가진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승리입니다. 이것이 택한 자들을 대신해서  승리한 승리인데 대신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대신해서 승리한 이 승리가 자기를  위한 승리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고 주님이 대신해서 승리한 그 승리를 자기  승리로 인정하고 믿고 이 승리를 벗지 안하면 이 승리가 자기 승리가 됩니다.

그러면, 이 승리는 무슨 승리인가? 지극히 큰 셋 능력과 완전 결합된 결합의  의입니다. 결합된 것을 가리켜서 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택자들이 지극히  큰 이 세력과 결합이 되면, 그 결합은 현실에서 되는데, 현실에서 결합이 되면 그  사람의 심신의 기능이 다 결합이 되느냐 하면 안 됩니다. 그 현실에 해당된, 그  현실에 해당된 그 심신의 기능만 결합이 됩니다.

그러면, 결합된다 말은 이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이 그 심신의 기능의 제  힘으로써 이 결합을 이루는 것은 아니고 주님이 대신해서 이 셋 큰 능력과  결합을 이루어 놓은 이것이 의인데 이 의를 자기를 대신해서 했기 때문에 자기의  모가치인 줄 알고, 자기의 몫인 줄 알고 자기의 것인 줄을 알고 이 셋 콘 세력과  예수님이 대신해서 완전 결합을 가져 놓은 이 결합을 자기가 부인하지 안하고. 이  결합을 배반치 안 하고 이 결합을 가지고 그 현실을 통과하면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 요소는 다 결합의 완성이 돼 버립니다. 단번에 결합되고 이차가  없습니다. 단번에 결합 이 됐으면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완전  결합으로서 다시 이차 시험이 없습니다. 그거는 완전한 결합으로 지극히 큰  하나님의 본체와 결합된 것이요 본체의 역사와 결합된 것이요, 역사인 진리와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본체와 본체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고,  본체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의 역사와 은혜로  이렇게 결합된 것입니다. 그분의 전지 전능과 결합이 됐고 그분의 생명과 결합이  됐고, 본체 결합은 될 수 없는 것이 우리는 피조물이요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본체 결합은 안 되나 그분의 온갖 생명의 역사인 그 역사와는 결합이 완전히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현실에서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된 것은 그는 영생입니다.

그는 불에도 타지 안하고 우주와 영계를 다 불사뤄도 거기에 그것은 타지  않습니다. 또 아무리 뭐 총칼 이런 걸로 수천 발을 쏴도 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피조물을 초월한 고차원의 지극히 큰 이 셋 능력과 세력과 결합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런 것들에게 상해를 받지 않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에 상하지 안한 것도 그때에 그것이 이 셋과 결합됐기 때문에  불타지 안했습니다. 불타지 안한 그것은 결합된 그것은 영생으로, 그 기능은  완전히 영생으로 화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뱃느고의 그 심신의 기능이  그 다음 현실을 만났을 때는 그가 그런 믿음을 가지면 또 불타지 안하지만  믿음을 가지지 안하면 그 몸은 불에 들어가면 탑니다. 에녹이 산 채로 승천한  것이나 엘리야가 산 채로 승천한 것이나 이것은 이 셋 능력과 결합에는 죽음이  없다는 것을 하나 계시의 기관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과 땅이 다 불타서 없어지나 의는 타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영원히 살게 된다, 이 하늘도 다 타서 없어지고 땅도 타서 지고 이 모든  것이 원소로 되어서 다 원소 돼 가지고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든 새  영원한 세계 완전 세계, 죄악이나 죽음이나 슬픔이나 고통이나 늙음이나 쇠함이나  이런 것이 없는 장생 불사의 새 하늘과 새 세게는 의의 것들만 가서 살게 됩니다.

의의 기능들만 가서 살게 되고 또 의의 몸뚱이들만 가서 살게 됩니다. 의의  몸뚱이는 예수님이 대형했기 때문에 탸자들의 그 몸은 예수님의 의를 입고하기  때문에 그거는 다 예수님의 의로써 부활해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갑니다.

그러나, 그 형체는 그와 같이 가지만 그 형체 속에 들어 있는 세포 세포의 개별  개별의 기능은 자기의 그 믿음 여하에 따라서 그 기능이 영생이 되고 안 되고  그것이 현실에서 판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 예수님이 이렇게 결합시켜 놓은 그 결합을 내주지 안하고 그  결합을 끝까지 가지고만 있으면 그 시간은 결합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다 결합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의가 되어져서 영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을 자꾸 하는 것은 왜 하느냐 하면  의는 영생합니다. 의는 죽지 않습니다. 의는 늙지도 쇠하지도 않고 또 의는  피조물들에게 해를 받지 않습니다. 의는 영원히 피조물을 다스립니다. 피조물을  통치하고 피조물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이 의가 뭐이기 때문에 그런가 그걸 여러분들이 좀 바로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는 뭐이 의인가? 영원 자존하신 지극히 큰 셋 세력이 있는데, 셋의  능력이 있는데, 그는 전지 전능의 능력이요 완전이요, 사랑도 모든 속성도  완전인데 이 지극히 큰 능력을. 이름으로써 분류를 한다고 하면 셋 지극히 큰  능력이요 셋 지극히 큰 권세입니다. 이 지극히 큰 이 셋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이 셋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은 이 셋에게 지음을  받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요. 지음을 받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들은 이 셋과  연결이 되어 가지고 움직이는, 이 셋과 연결이 돼 가지고 영생하는 이것들에게  영원히 통치를 받고 관리를 받고. 그것을 탁월한 고차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존대나 받지 해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에베소서 1장에 `만물은 발등상이요 만물 위 교회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만물 위  교회라, 교회 위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위치를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의는 죽지 안하고 의는 영생하는가? 이 의는 뭐 때문에 의가  죽지도 쇠해지지도 낡아지지도 병들지도 아니하고 어떤 피조물들에게도 추호의  해도 보지 아니하고, 그 피조물들과 같은 수준에 있는 게 아니라 피조물이면서  피조물들 위에 탁월해서, 피조물은 발등상이요 피조물 위에 있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과 결합된 의인데 이것을 가리켜서 교회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의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세력이 있고 권세가 있고 상하지 않는가?  않는 그 이유가 뭣 때문에 그렇습니까? 이 의가, 뭣 때문에 이 의가 우주를  통치하고 만물을 통치하고 우주가 불타도 불타지 안하고 영원히 죽음도 쇠함도  병드는 것도 낡아지는 것도 없이 이렇게 영원 완전으로 영생을 하게 되는가?  무엇이기 때문에 의가 그와 같이 되는가?  이 의는 뭣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의가 이러합니까? 뭣으로 된 것입니까? 이  의가 무엇으로 된 것인지, 이 의가 뭣 뭣으로 된 것인지 그것을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여기 여반에도, 저 뒤에는 모두 모릅니까? 아, 네, 저 뒤에도  모두 압니까? 여기 손가락 안 드는 사람들도 있네. 셋을 들었는데 바로 답을  했습니다. 이 셋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셋은 영원 자존자시요 완전자시요  이분이 창조주시요 이분이 주권자시요 주재자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또 주권 개별 섭리자시요 대주재시요 영원 자존자시요 천상 천하의 모든  존재는 이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셋과 어찌 된 것입니까? 이 셋에서 나온 새끼입니까? 이 셋에서, 이  셋은 하나입니다. 이 셋으로 나타나나 이 셋은 하나입니다. 그러면 이 셋이 낳은,  셋에게서 생산돼 나온, 이 셋에서 나온 새끼입니까 이 셋이 쪼갱이가 갈라져  가지고 나온 이 셋의 한 쪼갱이로 된 것입니까? 이 셋에서 새끼로 나온 것입니까  이 셋이 쪼개진 하나의 분자로 돼 가지고 나온 것입니까? 여러분들 한번 스스로  대답해 보십시오. 자, 분자로 돼 나와서 쪼갱이가 돼 나왔다고, 거기서 갈라져  나왔다고 생각하는 분들 한번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틀렸습니다. 손 든 사람  틀렸습니다. 고치십시오.

또 그러면, 거기서 새끼를 낳아서, 이 셋이 하나인데 거기서 새끼가 나와 가지고  거기서 새끼가 나 가지고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 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것도 틀렸습니다.

그러면, 새끼라면 우리는 신적 요소가 됩니다. 틀렸습니다. 그러면, 갈라져 나온,  쪼개져 나온 쪼갱이도 아니고 거기서 새끼로 돼 나온 것도 아니고 이 셋과  완전히 결합 이 된 것으로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네, 그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십시오. 셋과 완전히 결합으로 하나가 됐습니다. 본체적으로는  하나가 안 됐지만 모든 지식적으로나 지혜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활동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희로애락적으로나 비판적으로나 평가적으로나 그 모든  역사적으로는 이 셋과 똘똘 뭉쳐서 하나 된 것이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된 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이 의가 왜 이렇게 모든 피조물을 통치할 수 있고 피조물을 탁월해 있고  피조물로 어떤 불이 나고 피조물로 어떤 원자탄 아니라 뭐 어떤 것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피조물들이 장난하는 피조물들에게 추호도 거게 피해나 피동이나  침해를 받지 안하고 영원히 피조물들을 통치하고 피조물들을 관리하고  피조물들의 왕으로 주인으로 피조물들의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그렇게 피조물을  탁윌해 가지고 있어 피조물 위, 영원 자존자 아래 그 중간의 위치를 잡고 권위를  잡고 있는 것은 지극히 큰 이 셋 능력과 결합된 결합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의라 하는 것은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된 결합 때문에 이렇게  능력있게 된 것입니다. 혹 이 세상 것으로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면, 만일 어떤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에 제일 권위있는 그 자와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으면  그 단체는 통치할 수 있고 그 단체에게는 피해를 받지를 않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나라의 그 정권 최고의 정권자와 결합이 돼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치하에는 그 정치 아래, 그 치하, 그 정치 아래에서는 아무것에게도 해를 받지  안하고 아무것에게라도 우두머리가 돼 가지고 그런 것들을 통치할 수가 있는  그런 것이 세상의 모든 이치들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이치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는. 가정에 의가 있으면 의로운 가정은 영원히 망치 않습니다.

아무리 없앨라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의로운 가정은, 의인은, 의로운 단체는,  의로운 사회는, 의로운 교회는 영원히 상하지 안하고 영생하게 된 것입니다. 의가  뭐이기 때문에?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면 우리 천한 죄인들이 어떻게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될 수 있느냐?  결합이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 결합을 시켜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당신이 이 결합을 할라고 해 봐도 당신이 당신이지 이  피조물과 결합을 시킬 수 없는 것은, 피조물이 이렇게 잘못돼 가지고 절단돼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다 밟아 가지고 이와 같이 정죄받아서 사망되어 있고 절단돼  있는 것인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권세로 결합을 시킬 수 없습니다. 만일 권세로  결합을 시키면 하나님의 지공법이 범해지게 됩니다. 또 지성법이 범해지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결합을 시키는 데에는 하나님이 사람으로라야 사람이  잘못된 이 모든 것을 또 사람이 자기가 가진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는 데는  사람이라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득이 사람이 되셔 가지고 오셨습니다. 사람이  되셔 가지고 오셨는데, 사람이 되셔 가지고 오셨는데 겉은 사람이요 속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입니다. 예수님 이 사람되신 사람은  자연인이 아니고 특수인으로서 원죄와 본죄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으로서는  이 완전 결합을 이미 가지고는 있지만 가지고는 있지만 이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는 완전 결합을 이것을 성공을 할란지 안 할란지 의문입니다. 사람의 인성  단독으로서는. 거게다가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 부담했기 때문에 열 명이면 열  모가치가 됐고 만 명이면 만 모가치가 됐기 때문에. 수많은 그 택자들의 몸을  대신 했기 때문에 이 완전 결합이라 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데 이제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무한하신 하나님이 그 인성을 붙들고 일위가 돼 가지고, 일위란 말은  함께 움직였다 그말입니다. 일위라는 것은 한 직책을 말합니다. 일위 돼 가지고  움직여 가지고 완전 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셋 능력과 결합이 되면 모든 피조물은 다 통치하고 피조물  위에 있는 건데 이 결합을 아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질 수가 없는데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 완전 결합을 가지셨습니다.

완전 결합을 가지시고 이 결합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주었는데. 이 결합 가진 것은 완전히 대신한 완전 대속하신 결합이기 때문에 이  결합을 우리가 가졌을 때에 완전 결합의 우리라 됩니다. 완전 결합이 되나 이  완전 결합된 이 결합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되지 이 결합을 버리면 이것은  결합이 될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결합을, 완전 결합을 단번에 할라고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수많은 현실로 나누어 가지고 우리에게 이 완전 결합된 이것을  우리에게 줄 때에 조그만한 뽀스래기를 주니까 고 뽀스래기 그걸 그 결합을 내가  뺏기지 안할라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뱃기지 안하니까 이제 뽀스래기 그  완전 결합은 가졌고 뽀스래기도 자꾸 모우니까, 먼지도 모우면 태산 된다고 하는  말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현실에서 하나님이 대신해서 완전 결합을 이루어 놓은  이 결합을 우리에게 주는데 내가 그것을 실상으로 마다하고 던져 버리면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입고 내주지 안하고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그걸 내주지  안하고 가질라고 할 때에는 피조물들이. 피조물이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해도  그 방해를 이기고 가졌으면 그다음에 모든 괴조물들을 이 결합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할 수 있고 피조물들에게 다시는 유혹이나 받아서 변동되지 않기  때문에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결합이 되는고로 이 결합을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현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결합을 가질라고 하면 온  세상은 달라들어 서 세상은 마귀의 세상이요 다 이거는 사망의 것들이요 죄의  것들이기 때문에 달라들어 가지고 이 결합을 가지지 못하도록 할 때에 우리가 이  결합을 가질라고 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박해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박해를  합니다. 그들에게 박해받을 수 있는 그것을, 그것이 다 없어져도 이 결합을 양보치  안하고 결합을 빼앗기지 안했을 때에는 그들이 이 결합을 방해 할 수 있는  한정이 있어서,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첫째 아담으로 남아 있을 때에  방해하지 첫째 아담이 이 방해 받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다 그들에게 해를 다  받아도 이 결합을 뺏기지 안했으면 다 없어져도 결합을 뺏기지 안 했으니까  그들이 더 시험할 수가 없습니다. 없어졌으니까 더 시험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승리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이 결합을 뺏기지 안할라고 위해서 기도하고  결합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현실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오늘 간증한다는 그말은, 이렇게 한다고는 했는데 하나님과의  완전 결합이 그것이 돼 가지고 계속되지 안한 그 증표로 내게 설교 할 말씀이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다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셔서 있게 됐으니까 그 결합이  끊어졌었든지 잇겨 있었든가 나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증거할 말씀이  없어서 고민할 때에는 주님이 나에게 빛으로 나와 함께 하는 그것이 끊쳐져서  끊겨졌는지. 당신이 나에게 끊쳐지지 안했는데 나에게 외면을 하시고 잠깐 동안  나에게 상대하시지 안하셔서 그래 됐는지 혹은 죄로 말미암아 끊겨졌는지 내가  그거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지 끊겨진 그 암흑이라는 것을 제가 한 두 시간  봤습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밤에 증거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 셋 능력과  결합되는 이것이 최고의 성공이요 완성이요. 뭐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불이  타든지 말든지, 불타는 데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불탈 것이기 때문에  어짜든지 불타지 않을 것으로 준비해야 되겠다 하는 거게 대해서 우리가 자극을  받고 거기서 준비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 우리가 이 의가 준비 됐으면 불타고  오는 그것은 우리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와도 우리에게는 뭐 아무  피해가 없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후서 3장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는 그 말씀 그다음 절수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이것을 바라보나니  그러므로 홈도 없고 점도 없고 주름 잡힘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주님 재림하실  때에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준비가 되면 아.무  염려 없이 평강 가운데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데에는  홈과 점과 주름 잡힘이 없는 이 의가 돼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의가 되는 데에는 너희 안에 미움이  있으면 다시 말하면 너희 피부 안에든지 생각 안에든지 지식 안에든지 사상  안에든지 행동안에든지 모든 성품 안에든지 너희 안이라면 내 마음 전체 요소 안.

내 고기덩어리의 모든 요소 안 이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안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없는데. 우리의 이 심신 안에는 사람을 미워하는, 다시 말하면 사람을  사랑치 않는 그 요소가 우리에게 없어야 이 셋으로 더불어 결합을 할 수가 있지,  그러면, 영생이라 하는 것은 무엇에게 맺어졌습니까? 영생의 나무는 뭐입니까?  영생의 나무는 뭐입니까? 생명! 생명의 나무는 뭐입니까? 의! 의의 나무는  뭐입니까? 지극히 큰 이 능력과 결합을 시킨 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 의를 이루는 데에는 우리 이 피부 안이. 몸뚱이 안이. 우리의 마음  안에 마음 안에 형제를 해치는 그게 있으면, 형제를 해치는 그 마음이나 생각이나  성질이나 뜻이나 지식이나 내게 습성이나 무슨, 과거의 무슨 사건들로 인해서든지  어쨌든지 내 피부 속과 내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해하는 그것이 우리 속에  있으면 영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의는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이 피부, 이 고기덩어리 이 마음 안을 우리가 그런 것이  하나도 없이 깨끗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깨끗이 하는 것이.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뭐 이렇게 저렇게 원망 불평 미워하는 거 또  해하는 거 거짓말하는 거 이런 거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은 영생이라 하는  것은, 의는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이분과 결합을 못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결합해 놓은 그 결합을 입는데, 결합을 입는 데에는 이런 더러운 것을 가진 자는  그 결합을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깨끗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요새 보면 우리 교인들은 너무 진실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서부  교회는 다 썩었다 하는 그것을 썩었다고 따라 하라 하니까 이 부근만 따라 하지  저 뒤에 사람들하고 저 뒤에는 따라 안 합니다. 따라 하는 그 사람은 썩었습니다.

따라 안 하는 사람은 썩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다 썩었습니다. 분명히 그  속에는 확 썩어 가지고 팍 썩어가지고 성한 것이 없습니다. 다 썩었습니다. 안  썩었으면 자기에게 썩어 있는 것을 알고 `썩었다' 할 때에 `아멘' 하고 손을  들어야지 그 사람은 썩은 데에서 지금 벗어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돼 가지고 의가 되는 것이며 결합된  의이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에게도 해를 받지 안하는 것이니 이것이 얼마나 그  내부가 깨끗해야 되겠습니까? 얼마나 깨끗해야 이 셋 능력과 결합이 되  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걸 알고 우리가 자신을 깨끗이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 없는 사람이 생각할 때에 `그래도 속으로야 뭐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고 뭐 그런 게 있지' 절대 없습니다. 그게 있으면 영생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있으면 즉시 물리치고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밥도  굶고 야단을 지기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속에 그런 것이 없이 깨끗해야 이 셋과 결합이 된다 하는 이것을  하나 기억을 해야 되고, 내가 오늘 저녁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해야  되고. 깨끗한 동시에 우리가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을 할라고 하면, 내라는  이 인적 요소를 네 가지로 말했는데, 마음, 목숨, 힘, 뜻 이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네 가지로 말했는데 이 네 가지를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기울여야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결합되기 위해서 이 네 가지를 다 기울여야 된다 그것을  오늘 저녁에 말하고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요소를 이 네 가지로 들어  말했는데, 마음 목숨 힘 뜻 이 네 가지로 말했는데 네 가지를 다해서 이 셋  세력과 결합할라고. 이 결합하기 위해서 이 네 가지를 다 기울여야 된다 이렇게  말한 이것을 지금 오늘 저녁에 말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기울여야  결합이 된다, 그러면, 결합이 되면 영생이 맺어질 수가 있다 하는 말인데, 그러면,  이 네 가지를 다해서 결합이 돼야 된다 하는 이 네 가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고 그치겠습니다. 여게 마음을 다한다 그말은,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하면  자꾸 뭣을 이 마음이 지금, 마음이 활동하는 그 활동을 말합니다. 마음이 활동하는  활동. 마음이 활동하는 그 활동. 마음이 활동하는 그 활동이 전부 이 셋 결합에  다 기울여져 있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런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자기 가 무슨  사업에 문제가 있다든지. 또 사건에 문제가 있다든지 좋은 문제 나 나쁜 문제나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가 있을 때에는 내 마음이, 내 마음의 활동이 다 거기  기울어져서 꿈에도 그 일, 밥 먹으면서도, 자면서도 잠들기 전에는 그것을  잊어버릴 시간이 없이. 내 마음이 사용을 한다고 하면 전부 다 거게 다  기울여지는 그런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근심되는  일이든지 또 좋은 일이든지 계획하는 일 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그러면 그걸 뭐라고 표현할까요? 어떤 사람이 지금 자기에게 무슨 사형을,  사형받는 일, 사형받게 돼 가지고 지금 사형을 받고 있습니다. 사형을 받고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은 일시도 떠나지 안하친 움직임은 전부 사형에 다 가 있을  것입니다. 사형에 다 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무슨 자기가 어떤 불법을  행해 가지고 지금 곧 체포만 되면 사형을 받을 터이니까 체포만 되면 사형받을  터이니까 그 사람이 지금 피해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도망치고 있으면  도망치는 그 사람의 그 마음은 어떻게 하면 내가 여기 피할꼬 하는, 피해야  된다는 데 거게 마음이 다 기울여져서 활동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 우스광 소리지만 아마 어떤 사람이 만일 연애를 한다고 하면 자기가 지금  한창 연애하고 있을 때에 그때에 자기 마음은 꿈이고 생시고 항상 밥 먹을 때나.

밤낮으로 마음이 거게 가서 기울여져 가지고 있는 것을 체험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런 체험하지 안했습니까? 첫사랑의 뭐 결혼의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가 무슨 사업을 할 때도 그 사업을 할라 할 때에 그 사업에 그  마음이 다 기울여지는 사업이 있고, 또 사업에 대해서 그저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마음을 쓸 때는 쓰고 안 쓸 때는 안 쓰지만 내 마음의 움직임이 거게 다  기울여질 때 있습니다. 다 기울여질 때 있는 그와 같은 그걸 말합니다. 마음을  다한다 말은 마음의 움직임이 거게 다 기울여지는 그것을 말합니다. 이 셋과  결합되는 이 결합에 마음의 움직임이 다 기울여져야 된다 요걸 말하니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또 거게 목숨을 다한다 하는 이 목숨은 내 생명 바쳐 놓으면 된다는 그 말  아닙니다. 이 목숨은. 여게 있는 생명이라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금방 시체가  됐을 때에는 손도 눈도 모든 안팎의 지체도 신경도 완전히 동결됩니다. 완전히  죽어서 딱 멈춰졌습니다. 멈췄지만 생명이 딱 돌아오면 그 모든 것이 다  움직입니다. 이래서 전신의 안팎의 그 지체라 하는 것이 육체의 생명이 오면 그  모든 것이 생명으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거 생명으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것처럼  목숨을 다한다 말은 내 전신 전체의 움직임의 그 동기, 움직임의 그 시발,  움직이는 그 동기, 움직이는 시발 그 시발이 움직이는 전 육체의 안팎 지체의  전부의 그 움직이는 것이 이것이 이 셋과 결합되는 여기에 기울여져 있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목숨을 다하고' 그랬습니다. 목숨 다한다는 것은,  자기의 심신의 목숨이라는 거는 심신의 생명이 없으면 동결되는데 심신에 생명이  올 때에 그 심신은 이 생명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기 때문에 모든 전신 전체의  움직임이 다 이 셋 결합에 거기 있어야 된다, 그러면 그만, 거게 미친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거게 완전 도취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고, 거게 완전히 다 기울여져서  그만 사람이되는 것을 말합니다.

 또 `힘을 다하고' 하는 그것은 이제 목숨보다는 다릅니다. 힘 그것은, 힘을  다한다 그 말은 이제 거기서 시작됐는데, 이제는 네가 그 둘은 시발의 종자를  말하고 이 힘은 그것을 뒤에 계속하는 그걸 가리켜서 힘이라 말합니다. 그것이  계속돼야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힘을 다하고'  또 뜻을 다해야 된다 말은 벌써 그것이 써어억 밖에 많이 나와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계획하는 그런 것을, 계획하는 그런 계획해서 입지 세우는 그 계획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하지 안하면 영생이 네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는 것을 말씀했으니. 우리에게 내게 있는 인적 요소. 인적 요소, 마음,  여러분들이 그 좀 해석이 어려워서, 마음 목숨 힘 뜻 힘 뜻은 외부를 말하고  마음과 목숨은 동기를 말합니다. 그렇게 되지 안하면 영생이 안 된다  말씀하셨으니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은 사람으로서는 절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 아버지의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 이라는데, 오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것을 아주 자기가 쉽게, 하루 한  번쯤이나 생각하면 되고 또 주일날 와서나 생각하면 되고 맘을 먹으면 되고 또  기도할 때나 한번 생각하면 되고 그런 것으로 생각하니까, 영생을 이루는 데에는  이 모든 피조물을 탁월한 그 위에, 하나님의 지체요 몸이요 만물의 주가 되는  이런 의가 되는 의를 이루어지는 이 결합을 자기가 보존하고 가지게 되는 의를  이루는 이 일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이거는 안 됩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이걸 다해도 인간의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다하는 것은 성령이  와서 해 주실 있도록, 성령이 와서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인적 요소의  자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말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 우리에게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자꾸 이 일은 연습으로 됩니다. 연습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도리를 여러분들이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할라고 해도 안 되지만  이 도리를 깨달았으니까 탈선될 리는 없으니까 자꾸 사모하십시오. 그저, 쉬지  않고 이렇게 주님과 나와에 주님이 대신 결합을 주셨는데 이 결합을 내가 벗지  안하고 이 결합을 입고 있고 이 결합은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되기 때문에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된 이것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주님이 대신 결합을  주셨으니 이 주신 결합을 벗지 안할라고 애를 쓰고 이 결합이 좋다는 것을  자기가 평가해 가지고 이 결합을 되기를 원하고. 이 결합이 되기를 원해도 안  되는데 예수님이 대신 해 주셨기 때문에 이 결합을 놓지만 안하면 된다, 이  결합이 소원이 되고라야 예수님이 대신 결합해 준 것을 자기가 소망하게 되고,  또 이 보배로운 것을 알고 소망할 때에 자기는 자기 것이 될 수 있을 만치  자기는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말하는  건 그것입니다. 우리가 건설구원을 이룰라고 하면 우리의 마음의 움직임의 시발,  또 내 전신 전체를 움직이는 원동력, 그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말한 것입니다.

시발을 말한 것이라. 이 전부와 또 그것을 외부적으로 계속하는 모든 계속.

자기가 의지를 세워서 계획하는 거 또 그 힘으로 계속하는 거 그것을 다해야  된다 이렇기 때문에 이 다한다는 것이 이것이 일조 일석에 될 리가 없습니다.

자꾸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루도, 계속 다른 걸 생각지 안하고 이것  만 생각하고, 그러면, 이것만 생각합니다. 자꾸. 이것만 생각하고 이 결합을 뺏기지  안할라고만 하고, 생각하고 결합을 뺏기지 안할라고 하고. 이라면 사업은 언제  하고? 공부는 언제 하고? 먹고 살기는 언제 먹고 살고? 이것은. 요걸 바로  깨달으면 이 셋과 결합이 될라고 이 셋과 결합이. 이 셋과 결합이, 셋과 자기와의  천 리가 멀면 천리가 먼 것만치 모든 피조물은 자기에게 그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천 리 멀던 것이 백 리가 멀게 되면 백 리가 먼 것만치 모든 피조물은  자기의 것이 되고 십 리가 멀면 십 리 먼 것만치 되어지고, 이분과 가까워지는 것  마치 모든 피조물들은 거게 따라서 움직이고 그대로의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이 다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래도 이제까지 우리가 예수 믿은 것은 다 헛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좀 밝히 옳게 예수를 믿어서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살아야  되겠고, 믿음으로 살 때에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하는 것을 우리가 실제로  기적을 체험해 가지고 기적으로 사는 기적을 봐야 되겠고 이래서 우리는 꼭  과학자입니다.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만 되는 줄 알았지 하나가 천도 되고 만도  되고 만이 하나도 없이 없어진다는 그 기적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기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기적으로. 이래서 이 믿음을 가지고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이 돼야  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도 우리에게 대해서 역사한다는 것을  대구 집회 때에서 육백여 명에게 나타났고. 또 이번에 거창 집회에서는 병 그런  것보다도 다른 행위의 기적이 많은데 모두 다 기록을 안 해 냅니다. 구역장들도  다 복을 받지 못할 참 박복한 사람들이라. 여게 대해서 구역장들도 그때는  말하니까 기록해 냈지만 지금은 기록해 내지 안해. 보니까 자기네들이 말하는  것이 `뭐 어찌 됐다 어찌 됐다' 병 나은 것도 많고 자기 행위에 대해서 기적된  일이 많으나마 그것을 다 모두 `어짜다 보니까 그렇지' 우연으로 생각하는 그런  자는 악령에게 흘켜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뭐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인간이 하지 안한 그런 하나님의 기적으로  된 것이 사람마다 아마 거의 다 받았을 건데 그거 전부 자연으로 돌렸기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기적으로 역사한 것을 `아 하나님이 기적으로 역사 했다'  그걸 믿고, `하나님이 요와 같이 기적으로 역사하면 내가 살 게 문제가 있겠느냐?  그라면, 나는 전부 그 나라와 그 의에만 전공을 하고 다른 거는 하나님이 다 이와  같은 기적으로 해 준다면 못 될 게 뭐 있으며 뭐 부자 안 될 게 있으며 정권  권세를 못 잡을 게 뭐 있겠느냐' 하는, 이렇게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될 터인데 기적을 다 부인하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 송장들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할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이니라.

너거는 하나님의 일 딴 거 아니다 너거가 믿기만 해라 하나님의 일하는 거는  믿기만 하면 된다' 하는 그것을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말씀하신 대로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양심을 가지고 맑은 마음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믿는 지혜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에게 환하게 알아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 저녁에 설교를 안 할라 했는데, 나는 오늘 저녁에 평생 처음 받는  은혜를 나는 받았습니다. 설교하기 전에 받았습니다. 설교하기 전에 받은 거는  나는 그것입니다. `아, 정말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내가 오늘밤에 깨달은 거와 같은 깨달음을 내가  과거에는 가지지를 못했었습니다. 이 다해야 된다는 것 다해야 되는데. 위에 둘은  시발을 말하고,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발동하는 발동하는 시동, 발동 시동을  말하고, 그다음에는 그것이 시동된 것이 계속되는 것을 말했으니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건 도무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해 주시는 데에는 우리가 거게 그만 다 기울여져서 세상이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만치 그만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하니까 `저거는 굶아  죽겠다' 하는데, 그것만 생각했는데 사업은 잘되고, 그것만 생각했는데 직장에서는  자꾸 영전이 돼지고.

또 그것만 생각했는데 사건 해결은 자꾸 돼지고 이래서 우리가 `아, 하나님의  기적이라 하나님의 기적이면 못 할 것이 없다. 이 하나님의 기적 이것을 맛본  사람. 이래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의 기적이 오는데 마음만 잘못 먹어도 기적이  중단, 안 가질 욕심만 가져도 기적이 중단 안 될 성품만 가져도 기적이 중단, 안  될 계획만 가져도 기적이 중단, 주님이 원하시는 그것만 자꾸 원하고 원하고  하니까 막 기적이 막 쏟아져 옵니다. 이래 가지고 기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말세에 구원은 못 이룹니다. 건설구원은 못 이룹니다. 우리가 다 그것을  그 저 조작배기로 가지고 너무 낙관시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는 생활은 있는 것을 다 기울이기 어렵고 다 기울이고 난 다음에는 놀며  삽니다. 그이의 능력에 붙들려서, 양을 품에 아듬고 가는 것처럼 전능의 기적에  붙들려 가지고 이 세상 사는 것을 지금부터 체험하고 경험해서 이와 같이 나가는  목사가 돼야 되겠고, 전도사가 돼야 되겠고, 권사가 돼야 되겠고. 장로가 돼야  되겠고, 집사가 돼야 되겠고 돼서 순전히 하나님의 기적으로 삽시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사는 사람. 우리가 됩시다. 이래서 이 네 가지를 다하라는 이 네 가지,  둘은 그 시발 동기되는 거, 차로 시동을 걸면 부르릉 시동 걸리는 거 모양으로  이제 모든 시동이 거게 있어야 된다 말이오. 모든 시동이 이 셋과 결합되는  여기에 있어야 된다, 모든 계속이 이 셋과 결합되는 여기에 있어야 된다, 우리는  이 결합이 이렇게 보배인데 우리 힘으로는 결합할 수가 없는데 예수님이 결합해  놨기 때문에 이 결합을 뺏기지만 안하면 된다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 결합을 생명 건지기 위해서 뺏길 리가 없습니다. 세상에 뭐  물질이나 지위나 권세나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시켜 놓은 칭의의 이 결합을  대속의 이 결합을 뺏길 리가. 내 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만 안 내주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것 안 내주고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으면 무엇과  결합되어 있습니까? 몇과 결합되어 있소? 셋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셋이 뭐이요?  전지 전능 완전 대주재 주권자 창조주, 주권 개별 섭리자 그분하고 결합이 되어서  그분의 수족이 되었고 그분의 몸이 되 었고 그분과 함께 움직이니까 그에게  피조물에게 대해서 모든 것을 은혜 줄 것뿐이지 피조물에게 피해를 받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독교는 기적입니다. 기적인데, 오늘까지  신학자들은 기적을 부인하는 이걸, 그걸 들어 가지고 큰 손해를 봤는데, 제가  이번에 아프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님의 기적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 큰 죄라는  걸 생각하고 기적을 선포했습니다. 기적을 선포하고 나니까 우리 진영 교역자들이  `기적을 자꾸 말하면 그 기적 만일 사람들이 많이 와 가지고 거 기서 송장 나오면  어짭니까?' 여러가지를 말해서 반대를 많이 했으나 내게는 확고한 확신이 왔기  때문에 기적을 그것을 놓지 안하고 믿었습니다. 믿어서 한 집회에서 육백여  명에게 나타난 기적을 봤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없고 사도 시대도 사도 바울의  행주치마나 손수건만 갖다 얹져도 다 나았다는 그때 숫자와 같은. 지금 숫자가  많이 모였기 때문에. 이랬는데,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인하여서 기적으로 삽시다.

따라합시다. 기적으로 삽시다! 기적으로 살자! 기적으로 일하자! 기적으로  승리하자! 기적으로 성공하자! 기적으로 세상을 이기자! 기져으로 불심판을  이기자! 기적은 믿음으로 조성한다! 놓지 맙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놓지 말고 이제 기적으로 삽시다. 이제 기적말고는. 기적 아니라면  그만 다 던져 버립시다. 우리 손으로 꼼짝꼼짝 하는 그거 하지말고 우리가 손으로  꼼짝꼼짝 하는 거는 이 결합을 빼앗기지 안할라고 꼼짝 꼼짝 하는 것이고 우리  꼼짝꼼짝은 이 셋 결합 뺏기지 안할라고 꼼짝꼼짝 하는 것이고, 우리의 성공은  기적으로 성공하고 그러면, `너 뭐 할라고 지금 뭐 공부한다고 여기 자꾸 열심히  하느냐?' 당신에게 믿음인데 순종할라고, 순종 안 하면, 꼼짝꼼짝하이 글 쓰고  이래 공부 안 하면 순종 안 되기 때문에 그분과 결합 뺏기지 않기 위해서 모든  활동을 하지 우리가 땅 위에서 뭣을 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그런 일을 다  버립시다. 이제 일은 기적으로 되고 우리의 전활동은 이 셋과 이 셋 결합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언행 심사를 다 움직이는 움직임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집시다. 맞습니까? 믿습니까, 이걸! 믿습니까?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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