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를 생각할 것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21일 주전 

 

본문 : 신명기 28장 14절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베드로전서 1장 24절 이하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 토록 있도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가 받아 가지고 우리  생애의 법칙으로 삼고 있는 이 복음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만 보고 편견되기 쉽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어느 한 부분만  보고 그리 치우쳐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또 어디로 치우치든지 치우치는 그 일은  결말이 실패가 돼 그렇지 하기도 쉽고 또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의 등불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그대로 지킬 때에 어느 성구를 지키든지 그 성구로 인해서 모든  우리의 걸음이 바로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그 말은 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모든 것은 다 풀과 같다  그말입니다. 육체가 풀과 같다 하니까 육체 외의 것은 말하지 아니한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육체를 말한 것은 육체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무리 좋고 귀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높이 평가해서  부러워하고, 또 찬양하고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떠날 때에 끝나는 그런  것은 다 총칭해서 풀과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것이라도 이것도 풀과 같으니 풀이 마르는 것처럼 이것도 마르는 때가 있다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무리 젊음이 좋지만 젊음도  조만간에 풀과 같이 다 시들어 지고 말라진다는 것 우리가 생각해야 되고,  아무리 그 육체가 건강하고 아름다와도 그것도 풀과 같습니다. 세상일이 아무리  형통하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하고 자랑할 만하다 할지라도 그것도 다  풀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이 사람이 어떻게 높고 귀한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으로 접촉되는 그 현실만 보고 산다고 하면 뭐 멸망 받을  짐승이나 뼘 다를 것이 없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풀과 같고  또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영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풀의 꽃과 같으니 풀  마르면 꽃 떨어지고 꽃 떨어지면 볼 모양 없이 되는 것처럼 언젠간가 그런  시기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만 하겠습니다.

 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모든 면을 다 생각하면서  전면을 생각하면서 신앙생활하지 아니하고 일면만, 혹은 이 면만 이렇게  생각해서 치우치는 그런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헛되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안해야 성공하지  치우치면 성공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고, 로마서 3장 12절에는 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고 치우쳐서 다 곁길을 걷고 있어 다  무익하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제법 신앙생활을 조심 있게 하는 거  같이 보여지나 살펴보면 한 군데로 치우쳤든지 그렇지 않으면 두 가지로  치우쳤든지 이렇게 치우쳐서 원만치 못한 그런 다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뭐 안  하는 자나 치우쳐서 열심히 하는 자이나, 한 가지로 치우친 자나 두 가지로  치우친 자나 말할 것 없이 모두가 다 무익하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생활하면서 수많은 각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다 간추려서 가지지 못할지라도 중요한 거 서너 가지만 간추려 가지고,  자기는 사람을 대하든지 사건을 대하든지 물질을 대하든지 대할 때에 이 세 가지  면을 한꺼번에 생각하면서 우리말이나 행동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그런 것을  움직인다고 하면 그래도 우리가 함정에 빠지지 아니할 것이라 해서 이 세 가지를  오늘 증거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살고 난 다음에 마지막  끝에는 다 자기의 생활이 치우쳤든지 원만해졌든지 다 그대로 조금도 숨김없이  또 하후하박 없이 정당하고 공정하게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생각한 것은 야고보서 4장 14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대하든지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종말 시간을 내가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잊어서는 우리가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 보면 하루도 잊어버리고 뭐  어떨 때는 한 달도 잊어버리고 또 어떤 사건을 하나 만나 놓으면 그 사건이 다  완전히 해결되기까지는 통히 잊어버리고 그렇게 살기가 쉽습니다.

 우리의 개인의 마지막 시간은 우리가 모릅니다. 개인의 종말 시간을 우리가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건강하면 그 사람의 종말은 아직 멀었다, 또  젊으면 멀었다, 그 모든 자기에게 당면된 장수를 해야될 그런 모든 조건들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종말 시간은 아직 멀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계산하는데  그것은 성경이 가르쳐 준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것들이 인생의 종말  시간을 지연시킬 수는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의 종말에  대해서는 오늘이 내 마지막 시간인지, 오늘밤인지,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 끝나기 전에 내 마지막 시간이 닥칠란 지 우리는 모릅니다. 성경에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요렇게 알고 사는 것이 이것이 성령의 지혜요 총명이요  바로 아는 것이지, '이런 이런 조건이 있기 때문에 설마 오늘이야 내가 죽겠나,  금년에야 죽겠나, 이 달에야 죽겠나, 거창 집회 전에야 죽겠나' 그것 다 헛된  장담이요, 헛된 장담이요 또 헛된 믿음입니다, 그거 다 소용 없는 주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내 마지막 시간은 나는 모른다, 내가  어떤 사업을 경영하면서도 내 마지막 시간은 모른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다  끝날란지 중간에 끝날란지 시작도 못 하고 생각만 하고 끝날란지, '내가 이  사람과 서로 말하는 것은 오늘은 이렇게 말하지만 내일은 그렇게 말할 요량하고  오늘은 좀 강경한 말을 하고 내일은 좀 부드럽게 말하지' 그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이라도, 오늘  죽어도 주님이 새 생명을 불러도 할 말이면 하고 안 할 말이면 안 하고 할  일이면 하고 안 할 일어면 안 하고, 계획할 일이면 하고 '아, 내가 오늘  죽는다면 계획할 거 없다' 그렇다면 안 해야 됩니다. 오늘 죽어도 계획할 일이면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혜에 대해서 이 지식에 대해서 하나님의 이 계시의  이 지혜에 대해서 우리는 자꾸 진실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내 마지막  시간이 언제라는 것을 성공은 모른다고 말했는데 내가 어느 정도 내 마지막  시간을 모르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어느 정도 모르는 사람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 평가하고 있는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여기 대해서  전혀 무식입니다. 전혀 무식이고 전혀 진실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칙에  대해서 진실되지 못한 면들이 더러 있기는 있지만 참 자기의 종말 시간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진실되이 믿고 있는 그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이런 것을 자주 살펴야 되겠는데, 내가 내 마지막 시간에, 내가 다시  말하면 내 죽는 시간, 내가 죽는 시간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이 시간에 죽을지  다음 시간에 죽을지, 가다 죽을란지, 예배보다 죽을란지, 자다가 죽을란지 나는  모른다, 내 죽음에 대해서 실상은 모르는데, 하나님이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모른다는 여기 대해서 어느 정도 내가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악령의 꼬임에 빠져서 '돈에 대해서 어떻게 하나' 돈에 대한 생각  자기에게 당면한 사건에 대한 생각. 죽으면 그걸로 끝나 버립니다.' 돈이라  사건이나 또 사람에게 대해서나 이런 굵닥굵닥한데 대해서 그만 그런 것에  대해서 분주하고 복잡하고 다급하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이것을 다급하게, 자꾸  우리 마음을 조급하게 다급하게 우리를 급박하게 이렇게 몰아넣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거기서 내 종말 시간이 어느 시간인지 내가 모른다 이것을  생각해 볼 만한 이런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것이 큰 저주입니다.

 우리는 어떤 뭐 사람에게 대해서나 물질에 대해서나 일에 대해서나 나는 이  시간 죽어도 이 일은 해야 된다 하는 죽어도 해야 될 그 일만 하고 오늘  죽는다면 이 일은 할 필요가 없다 하는 일이라면 안 하고 하면 그 사람은 실패  없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인간에 대해서나 물질에 더해서나 사건에 대해서  허탕을 치지 안할 것이요 헛정력을 소모하지 안 할 것이요 헛된 모든 시간을  보내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지혜가 아주 우리에게는 중요한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아, 나는 오늘 죽을지 모른다. 오늘 죽을지 모르니 이 사람에게 이  말을 해야 되겠다. 오늘 죽을지 모르니 어서 죽기 전에 이 일을 이렇게 처리해야  되었다. 오늘 죽을지 모르니 이 물질에 대해서 이렇게 내가 처리해야 되겠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인지 모르니 마지막 시간이 오늘 닥쳐도 후회할 것이 없는  모든 정비와 정돈을 하고 오늘 죽어도 해야 될 일만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진실로 지혜있는 사람이며 복있는 사람이며 슬기있는 사람이며 참 그 사람은  든든한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그 실상화해 봅시다.

실지화시켜 봅시다. 그저 아무나 따나 둥둥둥 그래 살지 말고 실지로 한번 그  생활을 한번 시작해 봅시다. 그 생할을 시작한 사람만 정신 있는 사람이지  이것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은 제가 어떤 사업가라도, 어떤 유명한 그 명예와  영광을 가지고 잊다 할 지라도 그 사람은 실은 정신 없는 정신 이상자입니다.

미친 사람입니다. 나도 그럴 때는 미친 사람이요, 여러분들도 미친 사람이요  그거는 정신 없이 지금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생활은 다 후회될 생활이요  하나도 자기에게 유익되지 못하는 그런 다 헛된 수고일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현실을 만나서 자기가 당면한 사람의 관계나 사건의 관계나 물질의  관계나 거기에 내 종말 시간은 언젠지 모른다 말씀하신, '너희는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성경이 말했습니다. 내 마지막 시간 죽는 시간은 언젠지 모르는 이 지식을 그  현실에다가 끌어 붙여서, 그 현실에 이 지식을 결부시켜 가지고 이 지식대로  현실을 내가 처리하지 못했다면 그는 다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고 속이는  일이요 그것은 다 미치광이 일이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천하를 점령해도  소용없습니다. 요거 중요한 지식입니다. 뭐 이거 없이 다 삽니다. 천 명도 만  명도 억만 명도 수십 억도 다 이 진실을 가지지 못하고 다 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 그래 살고 있는데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거기서 인정을 받아야 되지.

 그러므로, 요것을 한번 우리가 시작한 사람은 다시 한번 새롭게 해 가지고 이  일을 깨우쳐서 강하게 합시다. 이 일을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그저  아직까지 '나는 살 날이 많다. 나는 살 것만 생각하고 사는 그런 생활은 완전히  미친 생활이요, 완전히 마귀에게 홀려서 정신 빠진 생활입니다. 이거는 성경이  말하기를 죽은 생활이라, 중생된 사람이나 이거는 자는 생활이요 이거는 자기  생활은 하나도 아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거 한번 시작해 봅시다.

 우리 현실에, 현실에는 사람 문제 물질 문제 사건 문제 뭐 생사 문제 별별  문제들이 다 뭉쳐 가지고 내 현실이 되는 것인데, 내 현실에 어떤 것이  봉착됐든지 거기 먼저 내 마지막 시간은 모른다. 내 마지막 시간은 모른다는 이  지식을 여기다가 결부시켜 가지고 나는 내가 죽는 시간을 모르니 이 시간에  죽을란지 다음 시간에 죽을란지 백 년 후에 죽을란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살아  있을란지 나는 내 마지막 죽음이라는 그 시간은 모르니, 나는 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니. 나는 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른다. 얼마나 지금 가깝게 와 있는지  멀게 되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내 죽음은 모르니, 죽음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내 죽음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마지막 종말 시간을 내가 모르니  모르는 사람으로 이 현실을 처리하자, 이 현실 처리에 자기의 종말. 시간을  모르는 이 진실성을 가지고 현실에다가 결부를 시켜 가지고 현실을 처리하는 이  사람들 한번 됩시다. 이제까지 이렇게 살던 사람이 이 일에 대해서 등한히  했으면 오늘 이 시간에 아주 생생하게. 다시 소생시켜서 새롭게 가집시다. 여기  대해서 생각지 못했으면 다시 시작을 합시다.

 어리석어서 귀신이 들어 놓으면 깜깜 어두워서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이런 말은  극단의 말이요, 마지막 말이니까 내일 죽을지라도 '너는 천 년 만 년 산다'  이렇게 해져야 되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까, 국민학교 일 학년 네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 너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죽어도 후회  없는. 죽어도 해야 되는 그 일만 촐촐 추려서 해도 네가 다 못 하는데 죽음을  잊어버리고 하는 그런 것은 다 네 일이 아니다 하면서 그 죽음을 말하면 '잔인한  부모라, 잔인한 부모라' 만일, 앞으로 우리 교회에 유아원을 시작할라고 하고  있습니다. 계획하고 있습니다. 유아원을 시작해서 국민학교 가기 전까지의 그  학생들을 다른 데서는 삼만 원씩 받고 입학금 삼 만원씩 받는데 우리는 돈 받지  안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유아원에서 그 어린 아이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가르쳐 줘서 그렇게 선도하는 그 일을 할라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유아원을 차려 놓고 만일 가르칠 때에 너희들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 지  모르니, 죽기는 죽으니까 죽을 줄 알고 죽어도 이 일은 해야 된다 하는 일만  하고 아이고 오늘 죽고 내일 죽을지 모르니까 죽는다면 이거 할 일이 없다 하는  일은 하지말고 죽어도 해야 될 그 일만 촐촐 간추려서 너희들이 하라 그러면  인생이 짧은 시간에 허송 세월 하나도 안 하고 헛된 일 하나도 하지 안하고 꼭  자기에게 유익한, 다른 사람에게 유익될, 금생과 내세에 유익한 올바른 참된  일만 촐촐 추려서 참된 일만 하고 살고 가는 사람이 될 터이니까' 그런 말은  일생 동안 한 마디도 못 듣고, 팔 십이라도 팔 십이 돼도 한 번도 못 듣고  그라다가 사람들이 죽고, 한 번도 못 듣고 그렇게 하다가 죽는 것인데 이런 말을  만일 한다고 하면 아마 그 학부형들이 '아, 거기는 아이들 보낼 자리가 못 된다.

아이들에게 이제 갓나서 지금 청춘이 만리 같은 아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말해 주니 거기는 잔인한 모임이다 잔인한 교훈이다.' 그래 가지고 일생을  살면서 일생 동안 속고 마지막 죽을 때에 후회하는 그 일만하고 망치도록.

금생과 내세를 망치도록 만드는 자가 부모가 아니냐? 부형이 아니냐! 만일  그렇게 교훈한다면 싫어하고 잔인한 교훈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섞여 있지 안하는 교훈이라면 다 지옥 가는 교훈이요 멸망하는 교훈입니다.

 우리 현실에는 내 개인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서 '나는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니,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이 일은 급하게 해야 되겠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 일은 급속히 해야 되겠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으면 그만 뭐 그까짓 놈의 일 가지고 내가 할게 없다. 이래서, 자기  현실에 어릴 때부터 죽으니 빨리 빨리 서둘러야 되겠다 죽으니 이따위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자기 현실에서 인생의 종말을 모르는 이 지식에 대한 진실을  가지고 자기 현실에 취사 선택을 하여서 사는 그 사람이면 우주와 영계를  점령하고 모든 것을 자기가 통치 할 수 있는 실력가를 만들 것이요, 영원히 가도  해와 같이 빛나고 후회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르는 데에서 모든 죽는 일을 다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내 생활은 과거를 내가 생각해서 계산해 보면 이것을 잊어버린  거기에서 전부 망칠 생활했고 다른 사람 망치는 생활했고 다 후회하는 생활했고  속이는 생활했고 다 속는 생활했습니다. 이걸 모르기 때문에 이걸 모르는 자에게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요리 조리 꾀웠습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마귀란 놈이  꾀어도 꾀임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지혜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든지 이것을 기억합시다. 현실에서는 이 한 가지를 고게다가 결부시켜서  여기 맞추어서 현실을 정리합시다.

 또, 하나는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 보니까,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  했습니다. 우주의 종말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우주의 종말. 그거 뭐 강대국이니  문화국이니 선진국이니 말할 거 없이 주님 구름타고 오시면 다 불덩이 되고  맙니다. 다 불덩어리 되고 맙니다. 내 집도 불덩어리 네 집도 불덩어리 이  나라도 저 나라도 다 불덩어리 되고 맙니다. 다만 거기서 하나님의 특수한  보호를 입은 자만, 특수의 보호를 입은 물건들만 특수한 보호를 입은 지역들만,  이것을 가리켜서 의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로운 것이라 말은 하나님이 미리  선포해 놓은 법칙을 따라서 그 법칙대로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  홍수가 온 천하를 다 침몰시켰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그 조그만한 배 한  척은 침몰시키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하나님의 후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생각하기에 좋고 접촉하기에  좋고 아무리 좋고 좋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현실에서 좋은 것만 보고 살면 저는  속았습니다. 망합니다. 좋든지 나쁘든지 어떻다 할지라도 이제 오늘 이 우주의  종말인, 우주는 불탈란지 모른다. 우주가 불로 화해 지는 것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른다, 조만간에 반드시 이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타서 다  녹아진다고 말씀했는데 그 날이 어느 날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으며 우주의  종말은 나는 모른다, 내 현실에 우주의 종말이 이 시간이라면 내가 어떻게 할까  이 시간이라도 나는 이 일은 해야 된다 이 시간이라면 나는 급속히 이 일을 해야  되겠다 우주의 종말이 이 시간이라면 나는 할 필요가 없다 거기서 허사 선택을  하겠습니다.

 내가 만일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라든지 회개하는 일이라든지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도를 전하여 주는 것이라든지 한다면 이제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우주의 종말이 이 시간이 된다면 내가 이 사람에게 설득을 시키지 못했고  가르치지를 못했고 알리지를 못했고 납득시키지를 못했고 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급하게 해야 되겠다, 그 사람에게 말을 해도 고속으로 할  것입니다. 재빌재빌하게 지껄여서. 제가 요새 설교하는 것 이 좀 빨리하는 것은  시간은 자꾸 늘어져서 사십 분 넘으면, 뭐 오십 분 넘으면 지루하다고 하고 있지  한 시간 넘으면 아이구, 서부 교회는 설교 길어서, 못가겠다고 이래 하니까 이  짧은 시간에 해야 될 터이지 가르칠 거는 가르칠 거는 이 시간에 다 가르쳐야  되겠지 할라니까 그만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재빌재빌 재빌재빌 자꾸 이렇게  그렇게 빠른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 대해서, 이래도 빠른 말 해야 되나 좀  느리게 해야 되나, 이라다가 아무래도 빠르게 해야 되겠다 해서 또 빠른 것을  취택을 합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우주의 종말이 온다, 우주의 종말이 오면 강대국도 끝난다.

약소국도 끝난다, 모든 부귀 영광도 끝난다, 모든 미인 미남도 끝난다. 세계에  모든 참피온들도 다 끝난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도 다 끝난다, 모두가 다  체질이 불에 타서 녹아지는데 다만 의만 남는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만 남고  그 외의 거는 뭐 좋고 크고 강해도 다 불탄바 이십 세기에 자랑하는 과학도 다  불에 타서 바짝 타서 없어질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 아무리 급해도  이제 이 두 가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이 두 가지 생각해야  되겠고 아무리 두려워도 이 두 가지 생각해야 되겠고 아무리 겁이 나도 이 두  가지 생각해야 되겠고 아무리 벼락같은 산벼락 같은 일이 닥쳐도 이 두 가지  생각해야 되고 해야지 이거 생각지 못하고 '아. 벼락같은 일이 닥쳤으니까 이  일을 어짜냐' 하면 그 사람은 정신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언제 주님이 구름타고 오셔서 이 우주의 끝날이 닥칠란지 모른다 오늘 불로  화할란지 모른다, 오늘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란지 모른다 오늘  인간들의 시시비비의 심중 이심증으로 덮고 속이고 가루고 있는 모든 이 표리가  다른 거짓부리가 다시 변동할 수 없는 영원한 것으로 확 드러나는 이 시간이  오늘인지 못른다, 아이쿠, 이러니까 이 시간 닥치기 전에 내가 부끄러울 것은  오늘에 정리해야 되겠다, 오늘에, 덮고 가루었던 것은 오늘에 그 모든 것을 주의  피에 고해서 다 해결지워야 되겠다, 또 이런 것은 사람에게 고해서 해결지울  것은 고해서 해결짓고, 광고해서 해결지울 것 은 광고해서 해결짓고, 모두 주의  피에 고해서 해결지울 것은 해결지우고 다 해결지워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급속히 생각하였다면 그런 거 하는 것은 그것이 후회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현실에 우주의 종말은 어느 시간인지 모르는 이 사실을 결부시켜  가지고 우리는 현실을 처리해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는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보면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는 영광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는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죄도 없고 시기도 없고  외식도 없고 아첨도 없고 참모도 없고 거짓도 없고 거기는 모든 더러운 것들이  없습니다. 이 세상살이를 걸어갈 때에 우리를 피곤케하고 곤궁케 하는 모든  거짓부리들이 그 나라에는 없습니다. 모든 그 허위의 것들이 다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다 참된 나라로서 죄인은 죄인으로 회개하고 다 참돼졌고. 모든  허물과 실수는 다 후회하고 다 고쳐서 참돼졌고, 다 검었던 것이, 희어진 것이나  흰 것이 희어진 것이나 모두가 다 깨끗하게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고  온전하고 온전하고 온전하고, 깨끗하고 깨끗하고, 참되고 참되고, 모든 이러기  때문에, 병든 것이나 슬픈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죽음이나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잘  살았든지 못 살았든지 이 영광의 나라에 다 갈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에 가면 이  영광을 무시한 사람은 그 영광 속에서 자기에게는 후회와 수치가 될 것이고. 그  영광의 나라를 말씀하신 대로 마련해 가지고 갔다면 영광으로 그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가 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조만간에, 오늘 내가 이 세상을 거쳐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갈란지 모른다, 우주의, 종말이 오늘로써 끝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맞이할란지 모른다. 우리 현실에서 언제든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우리는  현실에서 생각하면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영원한  영광에 방해된다면 우리는 버려야 되겠고 아무리 쓰고 아무리 괴로와도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필요하다면 우리는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서 언제든지 내 개인의 마지막 시간과, 우주의 마지막  시간과, 영원한 영광과 나라가 기다리고 있는 영광의 나라와 이 세 가지는  언제든지 생각하면서 거기 맞추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아무나따나 살고 이 세상 모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다수만 하면  돼지느냐? 다수가 효력 없는 그때가 옵니다. 뭐 세상은 언변 좋고, 많이. 온갖  것으로 주장해서 많이 주장만 세워서 많은 사람만 설득시키고 다 정복시키고  설복만 시키면 되는 줄 알지만 천인 만인이 다 설복을 당해서 옳다 찬성해도  소용없습니다. 각 사람의 행한 대로 판단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 보면 모든 사람의 행한 대로 판단하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인간의  언어에 설득당하지 안합니다. 인간의 다수에 매수 당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사람의 행한 대로 다  판단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4장에 바울을 말하기를 '내 양심에 자책할 것을 나는  찾지 못하나 이러므로 내가 두렵고 떨린다 모든 것을 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이 심판대에 앉아서 모든 것을 판단하시니 그분 앞에 가서 내가 설  때에 내 모든 행동의 정체가 어떻게 될란지 나는 모른 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부르시는 그 시간까지 항상 떨면서 또 생각나면 고치고 생각나면 또 보충하고  이렇게 하면서 떨면서 무거운 짐진 자와 같이 갈수록 눌리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우리의 현실에서 내 마지막 시간은 모른다. 내 죽음은  모른다, 우리의 끝나는, 모두 다 체질이 불에 타서 녹아지는 그때는 모른다,  영원한 하늘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준비하고.

신구약 성경에 말씀해 놓으신 이 말씀으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이 말씀  가지고 심판하시니까 이 말씀 가지고 우리가 사심판. 내가, 내 개인이, 내가  성경 말씀 보고 하나씩 내가, 누가 나를 심판하는게 하니라 내가, 개인 스스로  사심판에서 하나 하나 심판하신 이 말씀에 걸리는 것이 없이, 무엇이든지 있으면  이 말씀은, 아예 성경 말씀 가지고 변호할 조건이 없으면 회개하고 고치고  변호할 조건을 찾아 조건이 있으면 딱 그걸 기억하고 '요 사건에는 네가 틀렸다'  하면 '주여, 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이 말씀이 있으니까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이 말씀을 근거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 말씀의  배경을 단단히 가지고 우리가 안심하고 그거 없이는 안심할 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 삼각을 가지고 삽시다. 이 현실에서 삼각 위에 하나님의  심판을 그 위에 올려 놓고 바라보면서 우리는 사는 사람이 되어 집시다. 우리가  오늘 예배보다가 주님 만날란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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