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할일(결혼,전도,예복입기)

 

1986. 11. 23. 주일오후

 

 본문:마태복음 22장 1절∼14절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리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오전에 성경 공부 한 시상을 했는데 한 사람이 빠졌습니다. 장정애 권찰 구역이 구등인데 빠졌습니다. 그리 알고, 오후에 내가 이걸 다시 한번 더 광고하려고 하는 것은, 다는 못 하고 몇만 하겠습니다. 일등은 이숙희 권찰 구역인데 연경회에 공부하기로 입학한 사람이 백팔십삼 명이고 신약 점수가 육백육십팔 점이고 구약 점수가 오백열 점이고 고등강, 고등강은 통신과 다 하고 인제 그걸 외우는 것입니다. 외우는 것인데 고등강 점수가 사십사 점으로서 총수가 천사백다섯 점입니다. 아주 탁월합니다.

이복순 구역이 이등인데 가입이 오십팔 명 또 신약 점수가 이백오십삼, 구약 점수가 이백이십구, 대단히 진실합니다. 고등강 점수가 육점입니다. 그래서 오백사십육점. 또 이경순 권찰 구역이 가입이 육십일 명 신약이 백칠십오 점, 구약이 백사십사 점 고등강이 육 점, 합해서 삼백팔십육 점.

그다음에 사등이 이말출 권찰님 구역입니다. 가입이 칠십오 명, 신약 점수가 백육십사 점, 구약 점수가 백이십오 점, 고등강 점수는 한 점도 없습니다. 한 점도 없습니다. 요걸 내가 말하고자 합니다. 아이들 말로 용두사미라, 머리는 용이고 꼬랑댕이는 배암이라, 끝이 쪽 바래 가지고 이렇게 계속성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또 박상희 권찰 구역은 가입이 육십이 명, 또 신약 점수가 백팔십팔, 구약 점수가 백 점, 고등강 점수가 여덟 점, 고등강 점수로 말하면 박상희 권찰 구역이 이등입니다. 그다음에 강성금 권찰님 구역에 가입 육십이, 신약 백오십구, 이라다가 그만 구약에서부터 툭 떨어져 가지고 팔십 점, 고등강 점수는 한 점도 없습니다.

또 윤정숙 구역도 가입 칠십삼, 신약 백오십구, 구약 육십육, 고등강 점수는 한 점수도 없습니다.

이래서 고등강 점수는 한 점이라도 있는 구역은 이숙희, 이복순, 이경순, 박상희,   서봉월, 김선희, 김정희 한 점 있습니다. 그라고 나서 정애연 여섯 점. 이수영 한 점, 그 외에는 전부 전공입니다. 이렇게 시작만 하고 도무지 계속성이 없는 진상을 여러분들에게 지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시작뿐이지 그만 계속성이 없어 놓으니까 끄트머리는 다 말라 빠져서 아무것도 없어 버려.

늘 말하는 대로 여러분들이 구역 식구를 제일 중요한 것이 성경 공부에 많이 참가를 시켜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그 교인을 알뜰히 기르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이미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오. 두번째로는 설교 재독을 많이 듣게 해서 귀문을 열어 줘야 됩니다. 그저 가 가지고 오라 오라 이렇게만 해 가지고서 그저 예배당에 오라 소리 하는 것으로 다인 줄 알고 주일날 참석만 하면 되는 것으로 이래 하고 성경 공부를 하나, 기도를 하나, 또 설교 재독을 듣나, 또 여기 와 봤자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하지 그러면 그거 뭣 합니까? 이거 좀 여러분들이 각성해야 됩니다.

일등 이숙희 구역은 고등강 점수가 사십사 점입니다. 다른 데는 이복순 여섯 점, 이경순 여섯 점, 박상희 여덟 점, 서봉월 다섯 점, 김선희 여섯 점, 김경희 한 점, 이러니까 그 몇 배입니까? 사십사 점이면 이말출 구역에는 고등강 점수에는 한 점도 없습니다. 또 김현찬 구역에도 한 점도 없습니다. 그만치 계속성이 없고 냇들 바람으로, 여게도 평양 사람 많은데 평양 사람은 구호가 산중호출이라, 산에서 뛰어 나오는 범같다. 막 처음에는 야단이 나고 떠들지만 뒤가 없어. 이것 모양으로 여러분들이 시작만뿐이지 도무지 뒤 끈기가 없다 그거요. 고등강이 사십사 점 되는 그런 구역이 있는데 한 점도 없으니까 그게 뭐입니까? 계속성이 전혀 없는 것 아닙니까?

오전에 이 말씀을 증거했는데 기독교는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의 신기성이라 하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신기성, 내가 믿으면 만유의 대주재이신 만왕의 왕이신 이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과 나와 그렇게 친밀히 되어지는 그것은 사람이 상상도 못 합니다. 믿으면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해지는, 그거는 기적 중에 기적이요 능력 중에 능력인데 그 기적은 측량 못 합니다.

또 내가 믿으면 내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지, 믿으면 그까짓 거 공부 세상 과학 한 내끼도 몰라도 믿으면 그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고 얼마나 존영한 사람이, 얼마나 승리하고 부강한 사람이 되는지 모릅니다.

믿으면 내게 대한 모든 피조물이 측량 못할 만치 변해 버립니다. 베드로가 믿으니까 역사에 없는 바다물이 땐땐한 세멘트 바닥과 같이 땐땐해지지 안했습니까? 믿으니까 홍해 바다가 육지가 됐고 믿으니까 요단강이 대로가 되지 안했습니까? 내가 믿을 때에 나와 관련한 모든 피조물들의 그 변화되는 것은 측량 못 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그 성과 그것도 측량 못 합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신기성, 믿음의 신비성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어야 되는데 안 믿으니까 헛일입니다.

노아가 일백 이십 년이나 배 모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조롱받고 천대받고 멸시받고, 배 모아봤자 수입은 일전 한푼도 없습니다. 멸시와 조롱은 양사방서 우겨 들어옵니다. 그런데 노아가 피곤했습니까, 외로웠습니까, 좌절됐습니까, 슬펐습니까? 기쁘고 기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잘난 척 하고 날뛰는 그 모든 사람들을 보고 불쌍하고 가련해서 견디지를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는 자신의 행복감을 그는 측량 못 했기 때문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거 뭐입니까? 하나님이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니 하나님 말씀대로 될 것을 믿는 거게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을 믿으면 우리의 행복됨을 이걸 뭐 측량 못 할 터인데 안 믿기 때문에 이 행복을 다 뺏겨 버리고 가련한 자가 돼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으면 예수 없이 온 세상을 차지한 사람의 그 사람의 비참하고 가련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비참하게 가련하게 여기지 안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에는 믿는 데에서만 성공이 있는 것이지 믿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내가 믿을 때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모든 그 능력과 은혜는 측량 못 할 만치 변해지고 나도 믿을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측량 못 할 만치 뭐 상상도 못 할 만치 변해집니다. 고귀해집니다. 내가 믿을 때 나와 관련된 모든 피조물이 상상도 못 할 만치 변해집니다. 맹수의 입이 왜 막혔습니까, 믿을 때에 왜 그 불이 내음새도 내지를 못했습니까? 내가 믿을 때에 피조물이 변화되는 거, 내가 믿을 때에 내 자체가 변화되는 거, 내가 믿을 때에 내게 대한 하나님이 변화되는 거, 내가 믿을 때에 내게 대한 모든 피조물이 변화되는 거, 내가 믿을 때에 그 결과로 맺어지는 그 결과는 상상도 못 할 만치 변해지는 거, 이게 기독교입니다. 안 믿으면 그 사람에게는 소용 없어.

믿는 사람의 세상 행복은 믿음으로 권능 있기도 하고, 믿음으로 지혜도 되고, 믿음으로 기쁨도 되고, 믿음으로 행복도 되고, 믿음으로 성공도 되고, 믿음으로 존귀한 자도 되고, 믿음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 점령도 하고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힘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선포해 놓은 것을 참되다 옳다 절대 가감도 변동 없고 그대로다 믿는 그것이 하나님 대접이오. 하나님이 그것만 봅니다. 당신에게 뭐이 없습니까? 뭐 우리의 인력을 구합니까? 아니오.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었는데 인간들의 인력 그까짓 거 구하지도 안합니다. 인간들이 돈 드리는 걸 구합니까? 돈 그까짓 것 다 당신의 것인데 뭐 뉘게 있다 말입니까? 다만 당신을 알아 주는 것이요, 당신을 알아 주는 것. 당신을 믿어 드리는 것, 당신을 참되다 옳다 하고서 그분을 믿고 그대로 행동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요 그것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오전에 이 말씀을 증거했는데 이 혼인 잔치는 임금은 하나님이고 임금의 아들은 도성인신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신부는 모든 택한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를 말합니다. 혼인 잔치라 말은 이 구세주이신, 하나님이신, 우주를 창조하시고 오신, 하나님이신 이 예수님과 교회가 동거, 같이 거하고. 동거 동행 동락, 같이 거하고 같이 행하고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일하고 모든 행복과 영광을 같이 누리면서 영생하는 이 결합을 가지는 것이 구약 교회는 구약 교회 시대이고 신약 교회는 신약 교회 시대입니다.

오늘 지금 이 신약 교회 시대는 뭣하는 것이냐? 하나님이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영계 것과 이 물질계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에 영원한 왕으로 계실 대주재자요 전능자요 주권자요 만왕의 왕이신 그분하고 교회하고 밀접한 결합을 가져 하나가 돼서 하나님과 나와 하나돼서, 아무리 육체의 부부야 좋다 해 봤자 부부일신이라 하지마는 뚜렷이 그거는 두 뭉텅이 합했으면 합했지, 한테 뭉쳤으면 뭉쳤지 따로지마는 성경에 예수님은 머리시요 우리는 그 몸이요 그 지체라 했습니다. 한 몸뚱이.

이렇게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와의 이렇게 하나로 결합이 돼서, 하나로 결합이 되다니? 본질과 본성 결합이라. 그분과 나와의 그냥 이거 공간적으로 한테 있는 게 아니고 본질이 같고 본성이 같고 지능이 같애. 모든 지식이 같고,  그러니 희로애락이 다 같애. 그분하고 꼭 한 사람이라. 하나라.

이런 이 신비한 신인 결합을 이루는 것이 구약 교회 그 시대요 신약 교회 시대인데 구약 교회 시대의 사람들이 이것은 무시하고 장사하고 농사짓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것만 좋은 줄 알았지 이 중대한 이 혼인 잔치를 그들이 무시하고 하다가서 뭐라 했습니까? 임금이 군대 데리고 와 가지고 진멸했다 했습니다. 그들을 죽이고 동리를 불살랐다 이랬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신약 교회 그림자로 주후 칠십 년에 육체의 이스라엘에게는 예루살렘 멸망이 이르렀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에서는 자기 자녀를 잡아먹지 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힘센 자녀가 자기 애비 에미를 잡아먹지 안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막 그래 잡아먹고 서로 그래 지냈습니다. 아무것도, 생명은 붙어 있지 물도 없지 양식도 없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안 그라고 어찌 됩니까? 그것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모든 역사가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혼인 잔치에 오지 안해서 한 것이 노아 홍수 때에 여덟 사람만 남고 나머지기 뭐 농사 짓느니 장사하느니 과학을 공부하느니 뭣이 왕이니 황금 만능이라 과학 만능이라 하는 자들 모조리 홍수 속에 싹 밀어서 다 멸망시켰습니다. 그들이 암만 연구해도 홍수 멸망을 꿰뚫고 올라가지를 못하니까 어짭니까? 이스라엘에게도 망령된 학자, 정치가, 재벌가, 예술가 뭐 별것들이 많았지마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에 그 멸망을 벗어날 자가 없었습니다. 다 그 가운데서 죽고 말았어. 멸망받고 말았어.

오늘 신약 교회의 혼인 잔치인데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과 우리와의 친밀을 갖추어서 영원히 동거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동락하고, 동행하고, 한 몸을 이루어서 희로애락을 하나님과 같이 하고, 하나님이 누리시는 그 모든 것을 내것으로 같이 누리는 이 지극히 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신약 교회의 시대입니다. 이거 지금은 혼인 잔치요, 지금이.

“내가 소를 잡고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는 첫째는 예수님의 피가 있지, 사죄, 칭의, 화친, 예수님의 부활의 영생이 있지,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살과 영감과 진리 가지고 우리를 얼마든지 먹고 장성하도록, 얼마든지 배불리 먹으라고, 이 잔치에서 얼마든지 먹으라고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려서 다 영생하게 하리라” 이렇게 만반의 만찬을 베풀어 놓고 우리를 청하는 것이 오늘 신약 교회의 시대입니다.

이런데, 어떤 자는 세상에 큰 일이 있어서 ‘나는 지금 큰 사업을 하는데 동서양에 지금 첫째 가니 둘째 가니 사업을 하고 있다, 나는 재벌이 어데 있어서 어떤 별당을 꾸며 놓고 아름다운 산장을 꾸며 놓고 어떤 섬을 하나 차지하고 어떤 지역에 경치 좋은 뭣을 차치해 놓고 내 밑에는 지금 백성이 몇억이 따르고 있다, 얼마만한 지경에서 내가 왕으로 있다.’ 제딴에는 별게 있지마는 여러분들 눈을 바짝 뜨십시오. 아무리 좋고 영광스럽고 권세 있고 지위 있고 높아도 이 잔치에 참여하지 안한 자는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리를 불사르고”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혼인 잔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제딴에는 큰 일 한다고 ‘세계에 문화 운동을 내가 하고 있다, 문화 운동에 나는 어떤 과학에 어떤 노벨상을 받은 자이다, 문화 운동 하고 있다, 정치 운동, 민족 운동, 자유 운동, 민주주의 운동, 공산주의 운동,’ ‘고르바쵸프야, 네가 공산주의 운동을 한다고 큰거 하는 체하고서 그 소련의 대민족을 움직이고 있으니까 큰 일 하는 줄 알지마는 네가 눈을 떠서 오늘은 하나님과 인생과 영원한 친밀의 결합을 가지는 혼인 잔치가 열리고 있는 이 시대다, 네가 혼인 잔치를 무시하고 뭐 사업 뭐 업 뭐 업 너 볼일대로 간다고 하지마는 임금이 노해서 진멸할 때에는 땅도 산도 너도 완전히 불타고 멸망받고 만다.’ 그것을 모르고 날뛰니까 그 사람에게 두려움이 생각납니까, 부러움이 생각납니까, 불쌍하고 가련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믿으면 자기의 행복감에 대해서 견디지 못하는 쉬지 못한 기쁨이 넘치고 믿으면 예수 없이 사는 사람의 그 비참하고 가련한 데 대해서 눈물을 안 흘릴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요전에 김일성이가 죽었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막 기쁘고 즐거워하지마는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서 마음에 자기 혼자 돌아가서 탄식을 하고 크게 한숨을 쉬고 참 인생이 불쌍하다 그이의 불쌍하다는 동정을 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 그가 저 망할 줄 모르고 철없이 벌로 날뛰었지, 또 안 죽고 살아 있다, 안 죽고 살아 있어도 내나 그 일 하니 혼인 잔치에 참가치 안하고 이걸 무시하고 달리 한 자들은 다 임금의 진노의 대상이요 임금이 동리와 그 사람을 진멸하신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의 모든 우주를 다 불에 태워서 녹혀서 원소로 돌려 보내는 그것을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우주의 모든 체질을 녹혀서 다 원소로 돌려 보낼 때에 그때 효력 있는 게 아니라면 그때에 우주를 불로 녹힐 때에 그 불을 무시하고 거게서 튀어나오고 불의 해를 받지 안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면 가치로 칠 것이 뭐 있습니까? 그거는 곧 닥치는데,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는데,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닥칠 터인데.

우리가 어리석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하나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도 없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진다. 천지는 변해도 내 말은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공연히 과장한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과장스러운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 년을 살든지 십 년을 살든지 백 년을 살든지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혼인 잔치에 참석해 가지고서 베풀어 놓은 그 모든 만찬으로 실컷 먹고 기뻐 즐거워하며 뛰놀 것뿐입니다.

왜? 왕이 그의 모든 것을 보장해 주고 이제 그 혼인 잔치에서 혼인으로 말미암은 기쁨, 혼인으로 말미암은 모든 은혜, 그저 우리는 죽는 날까지 예수의 피로 살찌고, 예수의 부활로 살찌고, 성령으로 살찌고, 진리로 살찌고, 사망이 와도 사망이 나한테 꼼짝 못하도록, 사망이 백 번 열 번 와 가지고 위협해도 너는 너 할 일 하지 사망에게 털끝만치도 피동되지 안하고 죽음에게 피동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죽음에 피동되지 안했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인다 하는 데에 그 신사참배에 피동되지 안한 사람은 죽음에 피동되지 안한 사람입니다. 죽인다고 백 번 위협해 봤자 눈도 꼼짝거리지 안했는데 거기 하나도 피동되지 안했습니다. 죽음에 자유했소. 공산주의가 와서 그래도 죽음에 자유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죽음으로 나에게 죄에서 자유 해방시켜 줬는데 다시 내가 죄의 종이 돼? 다시 죽음의 종이 돼? 내가 죽었지 다시 마귀의 종이 돼?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나를 해방시켜 자유케 했는데 얻은 이 자유를 내가 어떻게 내 생명을 인하여서 내가 이 자유를 팔겠느냐? 사망아 네가 아무리 와서 호령쳐도 나는 너에게 털끝만치도 피동하지 않을 줄 알아라, 온 세상 죄악이 관영해서 모든 인간이 다 죄악화돼도, 세상에  관영한 죄악이 와도  죄 너에게 털끝만치도 나는 피동 안 할 줄 알아라, 마귀가 오만 고형하고 오만 술책을 부려도 마귀 너에게 털끝만치도 피동 안 할 줄 알아라, 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오늘입니다.

하나님의 완전법을 예수님이 대신 행해 주신 요것을 내가 가졌으니 다시 내가 하나님의 완전법을 범하지만 안하면 완전법을 이행한 하나님의 공심판 하나님의 의로 통과한 것은 내 의요 하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이 의를 나에게 입혀 주셨는데 이 의를 내가 무엇 가지고 팔겠습니까? 이런고로, 하나님의 의를 입은 완전자, 완전 생명자, 하나님과 완전 관계를 맺은 자, 하나님의 입법을 완전 이행한 자,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완전히 자유하는 자, 하나님을 향하여서 완전 영생하는 자, 이 사람이 지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과 결혼하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되는 것이요, 오늘에 예수님의 두 가지 죽으심으로써 완전 생명과  완전 자유를 내가 얻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나에게 완전 영생을 주신 이 영생을 내가 양식으로 삼아서 주님의 죽으심과 살으심을 내 양식 삼아, ‘예수님이 나 위해서 어떤 분이 어떻게 죽었느냐, 이래 죽으셔 가지고 나에게 대속의 공로를 입혀 줬는데 이 대속을 내가 어떻게 보존하며 어떻게 모시며 어떻게 귀중히 하느냐?’ 요 실력을 기르고 이래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주님과 나와의 한 몸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죽는 날까지는 혼인 잔치입니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의 그 기간은 혼인 잔치요, 죽는 날까지의 우리의 양식은 예수님의 사활로 내 인격성, 내 영, 내 마음, 내 몸, 내 인격, 인격이 예수님의 사활을 먹어서 예수님의 사활로 강건해지는 것, 예수님의 사활로 예수님과 나와 하나되는 것 이것을 죽는 날까지 하다가 세상을 뜨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이거는 영생이요 이거는 완전이지마는 이것이 아닌, 혼인 잔치를 무시하고 어만 길 간 어떤 것이라도 하루 했으면 하루 그것은 멸망이요 불살라집니다. 이틀 했으면 이틀 그거는 멸망이요  불살라집니다. 한 시간을 이 혼인 잔치를 무시하고 돌아갔으면, 한 시간 혼인 잔치에 참석 안 하고 살았으면 고거는 멸망하고 불살라집니다. 십 년이면 십 년 오 년이면 오 년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해서 예수님과 하나되고 예수님의 사활의 피와 살, 예수님의 공로를 내가 양식 삼아서 하는 것도 좋지마는 나는 지금 민족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는 국가 운동 하고 있는데.’ ‘아니야. 세계 전인류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십 세기의 문화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아니야.  나는 과학 운동을 하고 있는데.’ 좋은 거 한다마는 그것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그것은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든 것이요 진노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이 군대 보내 가지고서 멸망시킬 때 멸망 속에 든 것이지 멸망 밖에 든 거 아니다.

멸망 속에 든 것인 것을 알아라! 멸망 속에 든 것인 걸 알아라! 네가 멸망속에 든 것이야 귀하고 천한 게 어데 있노? 멸망 속에 든 것이면 다 멸망이지 귀하고 천한 것이 어데 있노, 있기를? 멸망 속에 든 거 가지고 자랑하지 말아라! 멸망 속에 들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든 이것으로 자랑하라. 이것으로 뽐내라, 이거로 빛내라, 이것으로 네가 광을 내라. 그외의 것 무슨 가치 있다고. 우리가 정신 차려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이게 제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게 제일 할 일이오.

오늘도 예수님의 죽으신 피와 살로, 오늘도 하나님이 또 피조물로 우리 위해서 다시 살아나서 신인양성일위로 이 고역한 부활하셔 가지고서 주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의 양식 삼아서 날마다 예수님의 사활로 자라가고 충만해지고 강건해지고 능력 있어지고 장성해지고 예수님의 사활로 하나님하고 나하고 가깝고 밀접하고 밀접하다가 나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은 내 안에, 나는 하나님의 지체와 하나님의 몸, 성전,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 나의 생명, 내 중에 나, 이렇게 결합의 결과를 맺는 것이 우리 할 일 중에 제일 중요한 일이고, 눈을 떠 봐요. 내가 며칠 전에 회개를 했어요. 아레 새벽에 민주주의는 어떻고 공산주의는 어떻고 여게 대해서 좀 말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놈아, 너 그거 이거나 저거나 어데 있어? 그 사망선 위에 있어, 사망 아래 있어?’ 따져보니까 다 사망 아래 있는 거라. ‘너는 사망에서 건져서 생명선에서 일하는 놈이 사망 안에 있는 거 크면 작으면 옳으면 그르면 뭐, 옳으면 얼마나 옳으며 그르면 얼마나 그르냐? 다 정죄받고 사망 아래 있지 않느냐?’ 이래서 내가 그날 회개를 하고 그 원고를 다 없애 버리라고  그 테이프를 내가 오층에 나한테 가져오라 해 가지고 갖다 놨습니다. 그것은 그날 설교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다시는, 암만 해 봐야 죽음 속에 있는 건데 사망선 이하에 있는 것인데 생명 세계에 일하는 자가 사망 세계에 있는 거야 그것도 사망 저것도 사망, 그것도 죄 저것도 죄, 이것도 속이는 거 저것도 속이는 거, 성경에 말하기를 서로 속인다 했으니까. 많이 속이는 놈이 위에 가고 적게 속이는 놈은 속고 이러니까 다 그거라.

성경이 “서로 속이고 속는다” 네가 많이 속이는 자 너 많이 속였다 그거 가리면 뭐 할 것이고? 너는 적게 속였다. 적게 속이나 많이 속이나 다 그것은 다 속이는 것이요 정죄 받을 것이지.

왜? 인간들에게 왜 속이는 것이 되느냐? ‘이게 좋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시킨다고 야단을 쳐도 결과가 사망을 벗어나는 것을 가르치지 안했고, 죄를 벗어나는 길을 가르치지 안했고, 마귀를 벗어나는 길을 가르치지 안했고, 멸망을 벗어나는 걸 가르치지 안했고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는 걸 가르치지 안했으니까 결국은 멸망만 가르쳤지 멸망 아닌 거 하나도 가르치지 못했으니까 다 속인 거 아닙니까? 뭐이요? 우리는 이 비유에서, 나는 혼인 잔치에 참석해서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이 오찬, 아주 맛있게 만들어 놓은 이 양식, 먹어도 배고프지 않고 죽지 않는 썩지 안할 양식, 영생토록 있을 양식, 이 양식 먹으니까 사랑이 막 강하게 자랍니다. 이 양식 먹으니까 의지가 강하게 자랍니다. 이 양식 먹으니까 진실이 강하게 자랍니다. 이 양식 먹으니까 거룩이 자랍니다. 이 양식 먹으니까 화평이 자랍니다. 이 양식을 먹으니까 하나님의 속성이 내게서 무럭무럭 자라서 하나님과 같은 자 됩니다.

이게 우리 할 일이고,

둘째로 할 일은 청함을 받은 자들은 오지 안하고 저거 볼일 보러 갔으니까 이 세상에서 ‘나는 사업이 있다, 나는 내 농장이 있다.’ 다 각각 그게 귀해서 그리 가는 사람 암만 해도 안 오는 사람 할 수 없고, “길거리에 나서서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병신이나 눈먼 자나 마구 끌고 오너라” 하는 이것이 지금입니다.

지금. 그래도 그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보다 큽니다. 우주보다 커. 하나를 구원하면 우주보다 커, 그 생명이.

이러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거 형제간에 너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하면은 막 사지를 못 쓰고 어데 예수 믿을 사람이라 하면 뭐 오 리고 십 리고 밤이고 낮이고 사지를 못 쓰고 날뛰고 형제간에 대해서는 그것의 십분지 일만 해도 우리가 좋아할 터이고 이럴 터인데 형제간에 내 몰라라 하고 거기 거석한다 이래 가지고 불만 불평을 품고 많아도, 왜? 요 비밀을 아는 사람은.

지금 사거리로 돌아다니면서 멸망받을 사람 주님이 막 끌고 오라 하니까 지금 가면 끌고 오는데, 끌고 오면 하나만 끌고 오면 그 가치가 얼마나 큰데? 하나 끌고 오면 그 가치가 큰데, 얼마나 가치 크다 했습니까? 성경에는 얼마나 가치가 크다 했소? 얼마나? 천하보다 귀하다 했어, 천하보다. 하나 끌고 오면 천하보다 귀한 걸 차지했어.

이러기 때문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디모데후서 4장 1절 이하에도 보면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것을 두고 너희들에게 엄히 명하노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희들은 쉬지 말고 열심히 전해라”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해라. 그들은 강퍅해서 찔레와 가시와 같은 그런 사람들이라, 그들은 마음이 철면피같이 뻣뻣한 사람들이라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해라. 그러면 저희 속에 선지자 있은 줄은 저희들이 알리라.” 이래서, 자꾸 다니면서 전하면, 자꾸 다녀서 열심히 전하여제가 오전에도, 내가 그 성적을 가져올라 하다가 안 가져 왔습니다. 우리 교회에 자기 구역에서 분구한 거 말고 출석한 수로서는 ○○○집사님 구역이 탁월하게 출석이 제일 많습니다.

사백 몇 명이 출석합니다. 사백 몇 명이, 그 구역에. 그런 사람들 다 보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쉬지 않고 일해요. 쉬지 않고 전해. 쉬지 않고. 쉬지 않고 전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부를 자가 다 닥쳐서 부르니까 가서 전하니까 그만 돼.

전하니까 돼. 모르기는 하지마는 앞으로 이 년 이내에 ○○○집사님 구역이 제일 큰 구역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제가 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전하는 사람이 없어. 열심히 전하는 사람이.

오전에 내가 이경순, 백을순을 말했는데 ○○○그 할마이도 지금 팔십둘인가 서인가 돼. 쉬지 않고 마음이나 생각이나, 몸뚱이는 활동 안 해도 쉬지 않고 전합니다. ○○○도 쉬지 않고 전해요. 그 모두 국민학교 다니지도 안하고 근방에도 가지도 못한 사람들이라. 아주 캄캄 무식한 사람들이라. 열심히 전하니까 우리 전 교회에서 십등이라, 십등.

그러니까, 지금은 사거리로 다니면서 미친 자든지 병신이든지 등신이든지 선한 자든지 악한 자든지 모조리 끌고 오라 하는 때입니다. 끌고 오라 하는 때. 지금 끌고 오라 하니까 부지런히 그 소리 듣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자꾸 전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우리 할 일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동서남북으로 다니면서 열심히 전도해서 끌어올 것, 암만 전도해도 그 밑에 보면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 받은 자는 적다”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암만 한다 해도 택함을 받은 자가 아니면 안 나옵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자가 어데 있는지 모르니까 자꾸 전해야 되고,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 사람에게 복을 빌어서 그 사람이 복을 받지 안하면 그 복이 네게로 와서 너는 두 몫 받는다” 했어. 그 사람이 받으면 한 몫 받고. 전도해 가지고 전도해서 그 사람이 들으면  들은 그 수입 받고 안 들으면 배나 수입이 더 많아.

이러니까, 우리 할일은 첫째는 혼인 잔치에서 지금 배불리 먹고 신랑하고 멋진 혼인을 할 것, 멋진 결혼을 할 것, 내 안에 주님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어서 주님과 하나되는, 모두가 다 한 몸이 되는 이 신비한 결합, 세상에 조그만한 나라에 대통령하고 하나되는 것도 그럴 건데 만유주요 만왕의 왕이요 우주의 대주재요 창조주요 전지 전능자인데 그분하고 나하고 빈틈없이 서로 상호 내주하는 하나된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어데 있습니까? 오늘에는 시시하게 보지마는 믿는 자는 크게 보고 믿지 않는 자는 ‘저거 거짓말쟁이들 모두 거짓말 같다.’ 거짓말로 볼라면 보라 그말이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동분 서주로 동서남북으로 뛰어 돌아다니면서 그저 힘 있는 데까지 자꾸 가서 오라고, 혼인 잔치에 오라고 자꾸 청해요. 암만 청해도 택함을 받지 안한 자는 못 옵니다. 그래 가지고 택함 받은 자 와요. 가서 웅변가가 뭐 전한다고 오는가? 그거 아니오.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과 믿음 가지고 전하면 됩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그는 신학을 해도 도무지 합격을 못 해서 나중에 할 수 없어서 그 사람을 그냥 목사 시켜 줬소. 뭐 시험도 못 치고 언변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이 때니까, 이 때니까 지금 주님이 사거리로 돌아다니면서 누구든지 청해 오라. 청해 와서 혼인 잔치에, 하나님과 인간이 결합되는,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하나님이 영생하는 양식을 베풀어 놓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지금 양식으로 베풀어 놓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잡아서 실컷 요리를 만들어 놓고 이리 오라 하니까 어짜든지 불러서 지금 구원하자.’ 이 구원코자 하는 마음 요 마음, ‘내가 돌아다니며 전하면 주님의 성령이 와서 구원하신다’ 하는 요 믿음, 사랑의 소원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을 믿는 요 믿음 둘뿐이라. 이것만 가지고 전했어.

이러니까 최권능 목사님은 옛날은 남녀 구별이 있어서 이른 아침에 일찌거니 길을 가니까 처녀가 무명밭에서 명 다래를 따고 있는데 해가 돋으면 벌어지니까 못 따 그거는, 추울 때 아침에 따지. 명 다래 따는데 그 전도는 하면은 여자 보고 말한다고 큰일 날 거고 그러니까 말은 못 하고 지나가면서 ‘예수를 믿었으면 좋을 걸’ 이라고 지나갔어. 그러나 그 속에 그 여인을 구원코자 하는 마음과 하나님이 이 말을 통해서도 구원하리라 하는 그 믿음 가지고 전했어.

그 처녀가 돌아가서 병이 나 가지고 백 약이 무효라. 아무리 낫울래도 낫울 수가 없어. 이런데 그 이웃에 어데 교회가 하나 있어서 ‘그 사람 아무 그 아까운 처녀가 죽는다고 하니까 한번 전도나 가 하자’ 하고서 가서 ‘교회가서 예수 좀 믿어보십시오.’ 하니까 그 여자가 빨딱 일어나더니만 내가 그 소리를 잊어버려 그랬는데 내가 그 소리 듣고 난 다음에 내가 병이 났는데 그 무슨 소리냐 새로 더 한번 더 해 달라고서. ‘예수 믿고 구원 얻으라’ 하니까 또 생각이 안 나 또 한번 말해 달라고. 자꾸 말하니까 자꾸 살아나. 자꾸 살아나. 그래 가지고 그 처녀가 믿어서 구원을 얻어서 유명한 신자가 됐습니다.

무슨 조화가 있습니까, 무슨 언변을 논리를 썼습니까? 아무 논리도 쓰지 안했거든. 예수 믿었으면 좋을 걸 하니까 그 속에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간절, 암만 무식하지마는 하나님이 내가 전하면 구원해 주시리라 하는 그 믿음 그 둘뿐이라.

한번은 저문데, 저문데 이래 가다가서 보니까 저 위에 사람이 하나 거기서 어두우니까 바빠 놓으니까 지금 나무를 지우느라고 급하게 바쁜데 여기서 보니까 그 사람 있는데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거기서 고함을 지르기를 급한 일이 있으니까 내려오라고. 그래 가지고서는 옛날 양반이라 그러니까 무슨 아마 일이 있는가 싶어 쫓아 내려오니까 ‘예수 믿으십시오’ 하니까 그 사람이 화를 내 가지고서 그만 제비를 붙을라 하니까 도망을 갔다 말이오. 이렇지만 그말이 전도라.

그 사람이 가 가지고서 견디지를 못해서 나중에 자기 집에다가 교회를 세웠어.

그래 가지고 삼 년 만에 돌아가니까 거게 교회가 서 가지고서 그 사람이 ‘어째서 이 교회가 섰습니까?’ `내가 어데 가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 지나가며 그라는데 그때 내가 부애가 나서 그랬지만 그말 듣고 나서 도무지 내 마음에 불안해 견디지를 못해서 예수를 믿을 마음을 가지면 내 마음이 편코 그리 안 하면 내가 편치 못하고 그래 내가 예수를 믿고 지금 내가 교회를 세우고 참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그래 한 그 사람이 내입니다' 하면서 최권능 목사가 그 나타냈어.

이러니까 이 일자 무식꾼의 말이요, 나는 그걸 신기하게 생각했지. ‘아마 저런 사람들에게는 등신들만 있을 것이다. 백을순 집사 구역에 저기는 등신만 있을 것이다, 전도 등신들만 했겠지.’ 이렇다는 유명한 유식꾼들, 아주 유식꾼들 재산가들 그런 사람도 있어. 이 사람을 어떻게 전도했소?’ 이라니까 ‘그저 뭐 나오라 하니까 나왔지, 뭐.' 여러분들, 지금이 우리가 사거리로 다니면서 이렇게 왕이 진노해서 곧 불만 내리면 끝나 버리고 마는데 멸망하기 전에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 이것이 우리의 때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 할 일이 우리 할 일이오.

혼인 잔치에 참석해서 어서 주님과 나와의 밀접한 관계를 맺을 것, 하나는 양사방 다니면서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멸망이 오기 전에 이 사람들을 구출하도록 노력할 것.

또 한 가지는 그렇게 혼인 잔치에 참석했지마는 예복을 입지 안한 사람은 쫓겨났어.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한 시간 안 입고 살았으면 한 시간 안 입고 산 그거는 멸망입니다. 하루 종일을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예수님의 대속은 내것 대속을 입은 나는 주의 것, 주님의 대속은 내것 나는 주의 것으로 사는 요 믿음을  가지고 살지 안한 시간은 일 년이고 십 년이고 몇십 년이고 다 멸망입니다.

하루 가운데서 요렇게 주님의 대속은 내것 되고 대속을 내것 삼은 나는 주님의 것 되고, 주님의 대속은 내것 되고 주님의 대속 입은 나는 주님의 것 되고 요것을 입고 사는 그 시간만이, 그 날만이, 그 행동만이 우리의 심신의 기능구원이 되는 것이지 그 외의 거는 다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조심해서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그걸 연습하요. ‘주님이여다 해석할 수 없으니까주님의 것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이것을 자꾸 ‘주님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또 시간 있으면 ‘주님의 사활의 대속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자유 줬으니 내가 이 자유를 다시는 마귀와 죄와 사망에서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요거 결심하고 결심하고 다지는 거.

‘하나님의 공심판을, 다 이행해서 법을 이행해 가지고 나에게 하나님의 의를 줬으니 하나님의 친밀의 의를 줬으니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주신 이 의를, 하나님의 의를 내가 뭐 때문에 뭐 주고 바꾸고 무엇을 내가 탐이 나 가지고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나에게 주신 이 하나님이 의를 내가 팔겠느냐?’ 하나님의 의로 완전한 생명, 완전한 생명으로 사는 것, 예수님의 부활로 나에게 영생 줬으니까 주님이 나는 못 하는데 주님이 내 대신 하나님의 법을 완전 이행한 그걸 나 줬어. 이행이 하나도 없는데. 나는 그게 내것 됐으니까 그것 내것 삼고 나는 다시 주님의 영감과 진리의 법을 범하지 안하면 돼. 범했으면 즉시 ‘주여, 내가 범했습니다. 다시 입습니다.’ 하면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입으면 돼. 요걸 믿읍시다.

우리 할 일은 세 가지밖에 없어. 세 가지 외에는 ‘그 사람이 세계를 점령했단다’ ‘야, 그래도 사망 아래에 있다, 그것도 죄 아래 있다, 그것도 마귀 아래 있다, 영원히 마귀를 모시고 살아야 된다, 죄 아래서 죄의 종노릇 해야 된다, 사망의 종노릇해야 된다, 그는 영생이 없다, 하나님의 공심판에 걸린다, 하나님과 불목되어 있다.’ 이것을 새기면서 예수님의 사활을 항상 생각합니다. 딴거 없어요.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피와 살을 먹는 거 뭐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사활의 대속을 뭘로 먹습니까? 입으로 먹습니까? 아니오. 이거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내가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차차 차차 조금씩 더 깨닫고, 깨닫고 난 다음에는 이 사실을 믿고, 믿고 난 다음에는 소망하고, 소망하고 난 다음에는 나도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요걸 생각하니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고 예수님의 대속을 내가 놓기 싫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힘이 내게 나오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내게 나오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나에게 간절한 소욕이 나오고 이래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믿음으로 행하니까 내가 못 할 게 척척 됩니다.

내가 못 할 게 돼. 내가 못 걸어갈 게 물위에 걸어가게 돼. 내가 못 하는 것이 사자 앞에서 호령을 쳐서 사자가 입을 벌리지 못해. 인민군 앞에서 고함을 쳐도 인민군이 꼼짝을  못 해. 일본 나라의 맹수 같은 그런 정치자들이면서도 내가 요 믿고 요래 하니까 그들이 꼼짝 못 해.

이것이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이렇게 믿어 본 사람은 자꾸 믿는데 믿어 보지 안한 사람은 안 믿습니다. 베드로가 순종해 보지 안했으면 그가 고기를 집어 던지고 고기보다 더 큰 인간 수입이 큰 것을 어떻게 그가 알았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 할 일 세 가지 잊지 맙시다. 우리 할 일 세 가지. 혼인 잔치에서 맘껏 먹고 신랑하고 친밀하십시오. 혼인하십시오. 우리는 혼인해야 됩니다. 혼인 잔치에 실컷 먹고 신랑으로 더불어 결혼식 할 것, 결혼할 것, 신랑으로 더불어 결혼할 것, 예수님과 나와의 하나될 것. 열심히 다니면서 사거리로 다니면서 마구 끌어올 것.

쉬지 말고 예복을 입을 것. 예복 벗으면 소용 없어. 예복 벗으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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