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종류의 순종

 

1986. 9. 5. 밤(금)

 

본문:누가복음 5장 5절∼11절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광고 지금 먼저 하겠습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안하고 나오도록 뭐 결심해 봤자 부족해서 안 되는 모양입니다. 수요일 밤에도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고 힘써 보겠다고 손 들고 했지마는 내나 새벽기도 나오는 숫자는 그 숫자에 별로이 많이 넘지를 못했습니다.

이걸 보면 여러분들이 얼마나 약한 사람이며, 얼마나 실행이 없는 사람이며, 얼마나 자기를 꺾어 복종시키지 못하는 참 허무한 자기라는 것을 알아야 되지 그거 모르고 그대로 살아가다가 영원히 후회하고 불쌍한 사람되고 또 지도하는 사람은 공연히 여러분들 때문에 또 하나님 앞에 심판받고 다 못할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에 대해서도 ‘나는 회개할라고 힘을 써도 회개가 잘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힘을 안 써도 회개가 되는 모양인데’ 하고서 저 힘쓰는 거는 많이 써도 안 된다고 하는 그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아주 교만한 자요. 제가 뭔데? 다 힘을 쓸 만침 써야 되지 안 쓰고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힘을 안 쓰고 되는 사람이 없어. 다 쓸 만치 써야 되지 안 쓰고 되는 사람은 없어.

이런데 너도 다른 사람만치 힘쓰면 될 터인데 저 힘쓰는 것은 많이 쓰는 것으로 보여지고 다른 사람 힘쓰는 것은 힘 안 쓰는 것으로 보여지니까 그 얼마나 교만하고 망령된 자입니까? 그자는 순전히 지옥의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새벽기도 꼭 나오도록 해서, 새벽기도 못 나오는 사람이면 혹 뭐 거리 관계로 산에 가서 기도하든지, 그러면 산은 다 가까운 데 있지 않습니까? 부산으로 말하면 그렇게 산이 멀지를 안하니까, 또 산이 멀면 자기 셋방이면 식구들 자는 데 셋방 구석에든지 그렇지 않으면 부엌에라도 가 가지고 기도를 하고 그리 안 하면 셋방에서 가족들이 일어나 가지고 거기서라도 새벽기도를 드리고 이렇게 해야 되지 어쨌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 새벽기도 안 하는 것은 그것은 망령이요 패역입니다. 그거는 망할라고 자꾸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예수님이 하신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우리 예수 믿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새벽기도 안 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늘 산에서 기도하시고 또 성전에서 기도하시고 늘 그날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와 의논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에게 부탁하고, 아버지로 더불어 모든 것을 작정하고 이렇게 했지 한번도 자기 단독이 시작되는 그 날을 시작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데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뭐 날마다 하는 일이 주님과 의논 하나도 안 하고 저 혼자, 제까짓 게 무슨 힘이 있는데? 또 소경이라, 완전히 소경이라 아무것도 못 보는 게 주님 앞에 안 묻고 어떻게 할라고? ‘오늘 내게 무슨 일이 닥치겠습니까? 나를 지도해 주십시오. 또 내가 알아야 될 걸 깨우쳐 주십시오.

내게 무슨 큰 낭패가 있습니까? 이걸 알아서 방비하게 해 주십시오.’ 자기 모르는 오늘의 일을 주님에게 물어야 되겠고, 또 가르쳐 주시면 그대로 모든 것을 준비하고 행해야 되겠고, 또 가르쳐 주신 게 없으면 주님에게 부탁해서 오늘 주님이 도와 달라고서 주님에게 모든 것을 부탁하고 맡기고 이렇게 하고 나서 그날을 출발해야 될 터인데 무슨 담력 있고 배짱 있다고 등신 같은 게 그만 자고 일어나면 떡 밥이나 먹고 일하러만 떡 달아나면 될 줄 아니까 이거 짐승이지 성도는 아닙니다. 이 성도는 아닙니다. 짐승이요, 짐승! 왜? 그날 마귀가 저를 어떻게 삼킬란지, 무슨 죄를 지을란지, 무슨 시험 있을란지, 무슨 환난이 있을란지, 무슨 낭파가 있을란지 이것도 생각지 안하고 그저 자고 일어나서 밥 먹으면 일하러 가는 그것만 생각하니까 일만 가지고 사람이 삽니까, 어데? 밥만 먹고 사람이 삽니까? 사람들이 천해지고 고통스러워지고 실패하는 것이 밥 안 먹어서 모두 실패합니까? 밥보다 더 중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니까, 자고 일어나면 그만 ‘이 날을 주님이 나를 같이 해 주지 안하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지 안하시고, 나를 도와 주시지 안하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지 안하시면 나는 망한다.’ 하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금 원수가 가득차고 오늘도 무슨 낭패의 큰 일이 있는지 모르는 이런 참 앞길을 걸어가야 될 제가, 든든히 나를 보호해 주실 이가 계시고, 나를 옳고 바르게 지도해 주실 이가 계시고,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 주실 이가 계시고, 나를 도와 주실 이가 계시는데, 이분에게 의논하고 이분에게 묻고 이분에게 도움을 받고 이라면 될 터인데 이 일도 하지 안하고 이라는 것은 순전히 짐승 모양으로 아무, 예수를 믿는다 이름만 가지지 짐승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오.

될 수 있으면 멀어도 예배당에 와야 됩니다. 예배당에 못 올 그런 형편도 또 있겠습니다. 그러면 자기 가족끼리라도 자기 셋방 안에서라도 일어나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입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자는 점점 강퍅해집니다.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지고, 게을한 자는 점점 게을해지고, 악독한 자는 점점 악독해지고, 의심하는 자는 점점 의심하고, 불만한 자는 점점 불만해지고, 점점 불만이 자라가고, 원망이 자라가고, 낙망이 자라가고, 의심이 자라가고, 고통이 자라가고, 염려가 자라가고, 세상 욕심이 자라가고, 욕심도 별 욕심 많아. 욕심 그놈도 자꾸 자라갑니다. 분명히 망할 일인데 뭐한다고 망할 그 욕심을 자꾸 쉴새 없이 그 욕심을 가지는지? 이거 새벽기도 안 나오면 자기의 앞길을 누구의 도우심으로 걸어갈 겁니까?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갈 겁니까? 이거 참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은 간 큰 사람이라. 간 큰 사람은 그 간은 뭐이냐? 짐승 같은 간 큰 거라. 짐승은 그게 몰라 간이 크지. 짐승이 잡아먹을라고 지금 흥정을 해도, 지금 이 시간이라도 잡으면 모가지 푹 찔러서 지금 꽥 하고 죽을 건데 말이지 그래도 그걸 모르니까 뭐 사료 먹고 꿀꿀하며 사료 주니까 좋다고 더불거리고 또 사료 주니까 옆에 딴놈 먹을라 하면 못 먹구로 툭툭 때려 주면서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 그 제가 몰라 그렇지, 사람같이 ‘나를 지금 잡아서 죽일라고 지금 와서 있다’ 하는 거 알았으면 그런 그 배짱이 있겠어? 그 짐승 같은 배짱이라, 다.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은 어쨌든지 자기 집에서든지 무엇이든지 그날 첫 시간 하나님 앞에 의논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 일을 하지 않 는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이지.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지 참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야. 새벽기도 다 나오도록 해요.

벌써 새벽기도 안 나오면 사람이 더러워집니다. 사람이 탁해집니다. 사람이 어두워집니다. 안 볼 것은 자꾸 보고 볼 것은 안 보고, 안 생각할 것은 자꾸 생각하고 생각할 것은 안 생각하고, 욕심을 품을 것은 안 품고 안 품을 욕심은 품고, 가질 감정은 안 가지고 안 가질 감정은 가지고, 가질 분노는 안 가지고 안 가질 분노는 가지고, 그러니 점점 망할 것 아닙니까? 누가 사람이 자기를 고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서 하나님 말씀이 고쳐 주셔야 되지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나오고 안 나오면 저거 가정에서라도 모여 가지고 예배를 보고 이래야 이 멸망 가득찬 세상에서 헤어나갈 수가 있지 그리 안 하고 어떻게 됩니까, 되기를? 쿨쿨 잠만 자빠져 자고.

돈 좀 덜 벌어도 저녁으로 일찍 잡시다. 저녁으로 암만 뭐 늦게 자도 열시에는 자야 됩니다. 그리 안 하면 아홉시에 자고. 열시에는 자야 돼요.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다 돈벌이 못해도 딱 그 치워 버리고 열시까지는 다 정리하고 열시에는 그저 자기 누울 자리에 눕도록 그렇게 작정을 하고 그 일을 실행을 하도록 해 봐요. 그라면 정신이 바로 되니까 모든 일이 다 바로 되고 성공이 됩니다.

제가 경험에는 그래요. 모든 신앙 생활에 실패가 어데 있느냐? 실패는 자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데에서 다 실패 옵니다. 누구 하나 찾아오면 또 못 지키지, 뭐 그때는 부지런히 일한다고 또 못 지키지, 그만 자는 시간을 못 지키면 그날 밤에는 일을 좀 뭐이 하는 것 같지마는 그 이튿날 일이 완전히 실패돼 버리고 맙니다.

새벽기도를 다 나오도록 합시다. 이거 암만 말해 봤자 실행 안 하면 소용 없어.

실행을 해야되지 실행 안 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리 배고픈데 밥 먹으면 배부를 줄 알지마는 안 먹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야고보서에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아무리 추운 날 옷을 입으면 따실 줄 알아도 옷을 안 입으면 따셔집니까, 어데? 입어야 따셔지지.

새벽기도 안 나오면 예수 믿는 사람 아닙니다. 뭐 장로님들, 꼭 이 자리에 새벽기도 나오라는 말 아니요. 어데서든지 자기, 멀면 여기 못 오면 산에서든지 집에서든지 가족끼리라도 새벽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려서 첫 시간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또 문의하고 부탁하고 이렇게 하나님으로 더불어 관계를 가지지 안하고 그날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입니다. 만일 장로가 그짓 하면 장로 사면해야 됩니다. 자격 없소. 자격 없습니다. 또 목사가 그짓 하면 그거는 목사 사면해야 되지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목사기 때문에 불쌍하고 가련하게 되고 말아요.

평신도라도 예수님 믿어서 예수님의 은혜로 영육이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첫날, 첫날이라 말은 날 중에는, 날은 모두 다 첫날이요. 삼백육십오 일이 다 첫날입니다. 삼백육십다섯 번 첫날을 만나는 것이요. 삼백육십다섯 번 첫날을 만나는 거라. 그날 처음 만나는 날 아닙니까? 처음 만나는 첫 시간이 새벽에 일어나던, 일어나던 길로 그 시간 아닙니까? 그 시간을 주님으로 더불어 모두 다 의논하지 않고 이 원수 많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이며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빠져 죽일라고 하는 그 원수의 모든 이 궤휼이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소경 같은 내가 살아갈 것입니까? 주님에게 안 물으면 안 되겠다 말이오. 주님에게 부탁 안 하면 안 돼. 또 주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안하면 안 돼.

새벽기도 꼭 나와야 됩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면 하는 길이 없어요. 새벽기도 안 나오면 가는 길이 없어. 먼 데 있는 사람은 새벽기도 못 나오면 자기 집에서라도 모여서 새벽기도 하고 그리 안 하면 가족들이 산에 가서라도 새벽기도 하고 또 자기는 가족끼리 잠깐 예배 보고 그거 가지고 만족이 없으면 산에 가까운 산에 가 가지고 기도하고, 어쨌든지 우리는 주님하고 떨어지지 안해야 살지 주님하고 떨어지면 망합니다.

주님하고 떨어지면 요 죄지을 생각만 자꾸 들어옵니다, 죄지을 생각만. 죄 그놈만 자꾸 생각이 납니다. 망할 그것만 자꾸 생각나요.

새벽기도를 꼭 나올라고, 뭐 새벽기도 나올라 하면은 그 마귀란 놈이 꼬우는 것은 굉장히 꾀웁니다. 새벽으로 새벽기도 간다고 나를 깨워 달라고 해 놓고 깨우면은 그뭐 어떻게 그때 핑계가 많은지, 요리조리 핑계해서 ‘오늘 아침에는 내가 뭐 때문에 안 가기로 어짜고’ 하면서 오만 핑계 다 합니다. 그게 저 죽이는 것이오.

자, 새벽기도를 나와야, 꼭 나와야 되겠다. 안 나오면 망한다. 새벽기도를 해야 안 망한다. 예배당에 안 오면 자기 집에라도 하십시오. 산에라도 하십시오. 새벽기도 안 하는 예수 믿는 사람은 망합니다! 만 명이면 만 명 다 망합니다! 안 망하는 이 하나도 없어! 새벽기도 안 하는 이 쳐놓고 안 망하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다 처음에 새벽기도 하고 열심히 믿어 가지고 성공해 놓고 성공하고 나면은 바빠서 새벽기도 안 하는 사람은 다 망합니다. 고관 대작돼 가지고 망하요. 회사 사장돼 가지고 망하요. 부자돼 가지고 망하요. 다 그래 가지고 다 망하고 맙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면, 예배당에 안 나와도 자기 가족끼리라도 첫날 첫시간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일을 하지 안하는 자는 이거는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다 망한다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 손 듭시다. 그냥 들어? 아는 사람 손 들어.

압니까? 알면 됐어요. 안 하면 망합니다. 뭐 별수 없어.

예수 믿는 사람 쳐놓고 목사든지, 장로든지, 집사든지, 권사든지, 또 권찰이든지, 주일학교 반사든지 새벽기도에 성공 못 하는 사람은 예수 믿어 신앙 성공 못 합니다. 다 망합니다. 제가 뭐, ‘뭐이 바빠서 뭐이 바빠서’ 이래 쌓아도 죽을 때까지 해 봤자 아무 희망 없고 아무 소득 없어. 죽을 때까지 해 가지고 뭐 했는데? ‘바빠서 주일 못 지킨다’ 했는데 `너 바쁘게 일생 녹여 가지고 뭐 했노?’ 망하는 거 외에 딴거 뭐 한 게 뭐 있습니까? 망친 것뿐이지. 그걸 좀 살펴보라 그말이오.

기독자는 탁하면 안 됩니다. 기독자는 탁해지면 안 돼요. 기독자는 까랑까랑해져야 돼요. 기독자는 정금같이 까랑까랑 해야 돼요. 아주 기독자는 얼음장같이 차와야 돼요. 알겠습니까? 기독자가 또 화평하는 그거는, 화평 가지면 화평해도 아주 말할 수 없는 차운 거기에서 화평이 나와야 됩니다.

기독자가 흐리멍덩하이 물에 뭐 물탄듯 그렇게 기독자가 흐리멍덩하이 그래 풀대죽 같으면 헛일이요. 그거 성공 못 해. 항상 남의 짐덩어리나 되고 골치만 앓지 아무 소용 없어. 기독자는 철두 철미하고 까랑까랑해야 됩니다.

왜? 하나님이 그래요. 주님이 한번도 흐리트부리 했습니까? 주님이 어데 흐리트부리한 일이 있었습니까? 목사 쳐놓고 흐리트부리한 자 쳐놓고서 성공한 사람 어디 있습니까? 없어요. 평신도 장로 쳐놓고 흐리트부리한 그자가 성공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다 불칼같이 뭐 까랑까랑합니다. 평신도도 그래요.

자기 혼자라도 ‘내가 내일 아침 새벽에 새벽기도 안 나가면’ 저 혼자라도 약속할 수 있어요. ‘내가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만일 못 나가면 아침을 굶겠다.

요놈을 굶겨야 되지’ 그라고 난 다음에 새벽기도 못 나오거든 굶겨요. 또 그래도 버릇이 안 고쳐지거들랑 ‘이제는 새벽기도 안 나오면 아침 점심 두 끼를 굶긴다.’ 이래 놓으면 그놈이 항복합니다. 알겠습니까? 그저 그놈 시키는대로 자빠져 자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자빠져 자고, 눕고 싶은 대로 눕고 그뭐 시시럭 시시럭 남편하고 둘이 웃으면서 시시럭 장난이나 하고 시시럭 자기가 드러누웠으면 뭐할 거라? 거기 뭐이 나오요? 뭐 금이 나오요 은이 나오요, 뭐할 거라? 망하는 것뿐이지. 언제든지 세월은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라 하는 건 유한해. 뭐 시간이 얼마든지 있는 줄 아요, 뭐? 정력이 얼마나 있는 줄 알아요. 다 밑천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하나 허비하면은 그다음에 허비한 것만치 그만치 실패됩니다.

기독자들은 먼저 죄를 회개하면 사람이 까랑까랑해져요. 철두 철미해져요. 냉정한 사랑의 사람은 그 사람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뭐 흐리멍덩하게 해 가지고 화목하는 거는 뼈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시대를 따라서 꼭 창기 모양으로 그 시대를 따라서 얼마든지 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거 다 못쓸 사람입니다.

이거 우리 새벽기도 안 나오는 거 새벽기도 나오기로 이거 시작하면은 이것이 예배 중에는 상예배 드렸고 은혜 중에는 제일 큰 이 은혜를 받았는데 뭐 딴거 뭐 할 게 있어야지? 자, 내일 아침부터 이제 새벽기도 안 나오면 밥을 굶고, 내일 아침 굶고, 그래야 그놈이 회개를 해요.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안 나오면 아침 밥 굶길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인제 내일 아침 뭐 일이 있겠다. 일이 있겠어, 인제. 새벽기도 안 가면 밥을 굶겨요. 내일 아침에 암만 먹고 싶어도 굶겨요.

자, 오늘 아침에 새벽기도 안 나온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오늘 아침에 새벽기도 안 나온 사람 손 들어 봐요. 이렇츰 뭐 이렇지는 안 한데. 뻐뜩 들어 봐요, 뻐뜩.

뭐 지금 잘났다고, 뭐. 뻐뜩 들어 봐, 팔이 아프도록 좀. 예, 놓읍시다. 이라면 새벽기도 이렇츰 많이 나왔을라고? 새벽기도 오늘 아침에 나온 사람 팔백 명 안 돼요, 한 칠백 명 그저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뭐 여기 보니까 안 나온 사람 손 들라 하니까 손 안 든 사람 보니까 많은데 모두 거짓말 하는가? 내일 아침부터는 이제 새벽기도 안 나오면 아침밥 굶기로 하나님 앞에 손 들었으니까 요거 하나님 앞에서 약속입니다. 밥을 안 굶으면 하나님 앞에 거짓말 하는 자라. 거짓말 하는 자는 하늘나라 못 가요. 거짓말 하는 자는 하늘나라 못 간다 했어.

한 번 같으면 그 죄를 회개하면 되지만 두 번 같으면 안 돼요. 고범죄기 때문에 고치기 전에는 사함을 못 받아요. 알겠습니까? 고범죄는 고쳐야 되지 고범죄는 사함 못 받습니다. 한 번은 사함을 받는데 그다음부터는 또 알고 짓는 죄는 고범죄이기 때문에 그 죄는 사함 못 받아요. 고쳐야 해결돼요. 고치기 전에는 해결 안 됩니다.

내일 아침에는 이제 밥을 굶든지 새벽기도 나오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겠으니까, 하나라도 실행을 해야 돼요, 실행. 그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저녁에 뭐 이 성경 본문 읽었지마는 이 설교보다도 이거 더 중요한데, 여기 교역자들 많이 왔는데 교역자들 이제 가 가지고 이 은혜 받고 본교회가 가지고 새벽기도 다 나오도록 고거 하면 큰 은혜 받고 갔어요. 그라면 그만 교회 부흥되고 교인들 그만 부자돼요. 그만 교인들 부자되고 그만 교회 부흥됩니다. 새벽기도 나와 가지고 주님하고 의논하는데 주님이 다 복 주시지 안 줄 리가 있습니까? 다 부자 돼요.

십 분 기도 후에 지난 주 오후 예배 재독이 있습니다.

각자가 한 명씩 데리고 오라 했는데 자, 한명씩 데리고 온 사람 또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한 명씩 데리고 온 사람. 오늘 저녁이 아니라 지난 주일이나 또 주일 후에나 한 명씩 데리고 온 사람 손 들어 봐요. 뻐뜩 들어 봐요, 이거 영광인데.

뻐뜩 들어 봐요. 데리고 온 사람은 몇백 명 되겠는데, 몇백 명 되겠는데 처음으로 믿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사람은 이십구 명밖에 이름 기록해 낸 게 안 됐던데? 예? 주일학교, 녜. 주일학교도 뭐 그렇게 불은 게 없던데요? 구천 명이 안 되던데.

팔천 뭐 팔백 얼마라더나? 뭐 그래밖에 안 되던데.

녜, 주일학생도 좋아요. 안 되거든 업고 와요. 안 되거든 ‘야야 가자’ 하면서 업고라도 와. 업고 와도 주님 앞에 약속은 지켰습니다. 업고라도 와 가지고 예배당에 와서 어린 아이 업고 와요. 뉘 아이라도 주인한테 말해 가지고 업고 와요. 말 안 하고 업고 오면 그만 남의 아이 유괴했다고 큰일날 터이니까.

부모네들이 걱정할 터이니까 말하고서 업고 와도 업고 와요.

어짜든지 우리가 한 사람씩 인도해 가지고 학습받도록 하고 세례받도록 해 가지고 교인을 일 년에 한 사람씩이라도 꼭 만들도록 그래 합시다. 그래 작정하면 십 년 살았으면 열 명 만들었고 오십 년 살았으면 오십 명 만들었고 이라면 안 되겠습니까? 그 작은 것 같지마는 뭐 ‘한 명’ 하는 거 그렇지마는 그것도 계속하면은 나중에 큰 숫자가 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말이지.

오늘 밤에는 꼭 두 가지만 제가 말을 할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늘 들었기 때문에 뭐 간단하게 두 가지만 말할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저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려 가지고 고기를 잡아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했습니다. 그때에 시몬이가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저 깊은 데 내리니까 고기가 그렇게 많이 잡혔습니다.

잡힌 거, 그렇게 그물을 깊은 데 내리니까 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물을 내리니까 고기 잡힌 것이, 그 고기 잡힌 그것이 고기가 그렇게 잡힐 만한 이치에 맞아서 잡혔습니까, 잡힐 수 있는 그런 방편을 해서 잡혔습니까,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힐 만한 때가 돼서 잡혔습니까, 어떻습니까? 그물을 던져서 그런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 잡힌 것은 그물을 내린 그 방편을 하니까 그 방편이 잘돼서 고기가 잡혔습니까, 그때는 고기가 많이 잡힐 그런 시기라서 많이 잡혔습니까? 어찌 됩니까? 자, 잡힐 수 있는 그런, 고기 많이 잡히는 때가 있습니다. 잡힐 시기가 있어요. 저 함경도 명태잡이를 할 때에 그 명태가 한창 들이모일 때는 그 명태떼가 들이모이면 자꾸 저 뒤에 놈이 와 가지고 자꾸 뚫고 들어오니까 나중에 명태떼가 산이 됩니다. 명태떼가 산이 돼요. 자꾸 밑에 자꾸 들이밀고 들어오니까 자꾸 위에 놈은 들리고 들리고 해 가지고 그만 물 없는데 명태 산이 돼요, 그만. 자꾸.

그 잡힐 절기에는 그리 됩니다.

여게도 그런 그 시기를 잘 맞춰서 잡혔는지, 또 잘 잡을 수 있도록 그렇게 모두 모든 그물 치는 것이라든지 그 기술을 잘 써서 그렇게 됐는지, 기술이 좋아서 잡혔는지, 많이 잡힐 만한 그런 시기가 돼 가지고 잡혔는지, 자, 시기가 돼서 잡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아무도 안 듭니까? 그러면 그렇게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기술을 잘, 기술이 좋아서 그렇게 고기가 잡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도 아니고, 기술도 방편도 시기도 아니고, 그러면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고기가 잡히도록,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그 말씀하신 책임을 지시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책임을 지시고 고기가 잡히도록 해서 잡힌 것으로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다. 녜, 잘 아네요. 녜, 요거 단단히 잡으십시오.

그렇게 고기가 잡힌 것은 고기 잡힐 만한 시기가 돼서 잡힌 것도 아니요 기술이 좋아서 방편을 잘해서 고기 잡힌 것도 아닙니다. 그거는 순전히 ‘가서 고기를 잡아라’ 말씀하신 주님이, 고기가 안 잡히면 주님은 거짓말 하는 사람 되지 않습니까? 속인 사람되지 않소? 말씀하신 주님이 당신이 말씀하신 책임을 지느라고 고기가 잡히도록 해서 그렇게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여러분들 깨달음이나 내 깨달음이나 꼭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로 건너가라’ 이렇게 해서 건너 가니까 홍해 바다가 갈라져 가지고 바다 물이 산더미같이 이렇게 모이고 가운데는 큰 길이 나서 물이 없는 바짝 마른 길이 뻔뻔한 대로가 나섰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바다로 주님이 건너가라 할 때에 건너가니까 그렇게 물이 양쪽으로 갈라질 그런 시기가 돼서 갈라졌습니까, 또 그들이 가면서 무슨 조화를 부려서 갈라졌습니까? 물은 갈라졌습니다. 그러면 물 갈라진 것이 갈라질 그 때가 돼서 갈라졌는지, 또 그들이 바다로 걸어갈 때에 걸어가면서 조화를 부려서 바닷물이 갈라졌는지, 바다로 건너가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건너가라고 말했는데 건너가라 했는데 건너가다 빠져 죽으면 주님에게 책임이 있지 안해요? 이러니까 바다로 건너가라고 말씀하신 그 주님이 말한 책임을 지시고 그렇게 건너갈 수 있도록 주님이 만들어서 그 홍해 바다가 갈라져 대로가 됐다고 이렇게 여러분들이 깨달은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녜, 이것입니다. 이겁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께서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했는데 우상에 절 안 하는 사람은 불미 속에 넣어서 다 태워 죽인다고 그렇게 나라에서 명령을 내리고 이랬을 때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 하다가 그만 불미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불미 속에 던지움을 받았습니다. 던지움을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나오는데 보니까 불내음새도 나지 안하고 하나도 상하지 안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고 하다가 불에 들어갔으니까 우상에 절하지 아니한다고 한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그것이 들어서 불 속에 안 타게 됐습니까, 또 무슨 그들에게 다른 조화가 있어서 안 타게 됐습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하신 그 계명을 지키라고, 우상 섬기지 말라고 하신 그 주님이 우상 섬기지 안하니까 우상 섬기지 말라고 하신 주님이 책임을 지시고 불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태우지 못하게 해서 타지 안한 것입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대로 순종하니까 순종하는 거 보고, 순종하는 거 보고 주님이 불에 타지 안하도록 해서 안 탔습니까, 그들이 우상 숭배 안 한, 우상 숭배하지 안한 그들의 능력이 들어서 불에 타지 안 했습니까, 그때 무슨 다른 이치가 있어서 안 탔습니까? 안 탈 이치가 있어서 안 탔습니까 그들이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그 행동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불에 타지 안했습니까? 우상 숭배 하지 말라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이 우상에 절하지 않기 위해서 불에 태워 죽일라고 집어 넣으니까 ‘네 이놈들 태워 봐라’ 하고서 주님이 타지 안하도록, 불이 태우지 못하도록 하니까 주님의 조화의 능력으로 불타지 안했습니까? 어떻습니까? 그 우상에 절하지 아니한, 그들의 그 절하지 아니한 그 믿음의 힘, 절하지 아니한 믿음의 힘으로 불타지 안했습니까, 그런 무슨 조화 해서 안 탔습니까, 안 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어서 안 탔습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이 주님의 말씀을 하신대로 그대로 순종하니까 순종한다고 주님이 타지 안하도록 해서 안 탔습니까? 뭐입니까? 자, 주님이 타지 안 하도록 해서, 그들이 뭐 우상에 절 안 하는 그 믿음으로 안 탄 것도 아니고, 또 무슨 다른 조화로 안 탄 것도 아니고, 불 안 탈 수 있는 그런 이치가 있어 안 탄 것도 아니고, 순전히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이, 그 명령을 지키니까 주님이 귀하게 보셔서, 명령 지키니까, 당신 말씀하신 그 명령을 지키니까 명령 지킨다고 주님이 불타지 안하도록 해서 불타지 안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녜, 그러면 다 이거 다 아네요. 요걸 손만 들 게 아니라 굳게 잡으십시오.

자, 요셉이가 그라면 여러가지로 이렇게 시험을 당해 가지고 고난을 많이 겪다가 마지막에는 감옥까지 들어갔는데 그와 같이 요셉이가 감옥까지 들어가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일 하니까 그와 같은 행동을, 믿음을 지키느라고 그와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믿음을 지키느라고 그와 같은 행동을 하니까 그 행동한 그것이 들어서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됐습니까? 그렇게 모든 행동이 주님에게 순종하는 행동을 하니까 주님이 총리대신이 되게 해 주셔서 총리대신 됐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한 그 행동이 애굽나라에 총리대신이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 행동한 그 행동의 실력이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나에게 이렇게 순종하니 내가 총리대신이 되게 해 주겠다’ 하고서 주님이 총리대신이 되게 하시니까 당장 총리대신 됐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녜 이겁니다. 이것이오.

그러면 그렇게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그것은 그 행동이 들어서 뭐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이기 때문에 내가 계약을 이행하니까 하나님께서,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해 주시기 때문에 그 일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계약 이행을 하니까 하나님이 계약 이행을 해 줘서, 계약 실행을 해 줘서 그 일이 된 것이지 그 행동 그 자체가 되게 한 것 아닙니다.

요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성경에, 하나님 말씀대로 네가 행해라. 오늘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러면 이 명령을 너희에게 명령하신 그분이 너희에게 축복해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감으로 시키시는 그대로 딱딱 순종을 하면 순종하는 고 순종 그것이, 순종하는 그 일이 능력이 있어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됩니까? 내가 하나님 명령 순종을 하니까 명령 순종하면 그렇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자가 되게 해 주시겠다고 계약하신 주님이 그렇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자가 되도록 해 주셔서 됩니까? 자기가 그 순종하니까 순종하는 행동이, 실력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순종하니까 순종한다고 계약하신 주님이 계약 이행을 해서 주님이 해 주셔서 그렇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됩니까? 그 행동이 그렇게 뛰어나게 한 것입니까? 행동하니까 행동했다고 하나님이 뛰어나게 해 주셔서 된 것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행동 하니까 ‘네가 이렇게 하니 내가 뛰어나게 해 주겠다’ 하시고 그렇게 말씀한 대로 순종하면 내가 이렇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분이 해 줘서 뛰어난 자가 됐습니까? 순종하니까 순종한 그 행위가 뛰어날 수 있는 행위가 돼 가지고 뛰어나게 됐습니까? 행위가 뛰어날 수 있어서 뛰어나게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고. 그라면 순종을 하니까 주님이 그렇게 뛰어나게 해 주셔서 됐다고 믿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뭐라고 꾀우는고 하니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하면 하나님이 모든 축복을 해 줘서 농사 지을 때든지 공부할 때든지 무엇을 할 때든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의 계명대로 지켜서 행동하면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공부도 잘되게 하시고, 장사도 잘되게 하시고, 모든 사업도 잘되게 하시고, 모든 거 다 잘되게 해 주시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을 할 때에, 우리가 말씀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을 할 때에 그 행동 그것이 복이 되도록 하는, 그 행동 그것이 복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까 행동을 할 때에 그렇게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한다고 하나님께서 복되게 해 주셔서 복이 됩니까 뭐입니까? 행동 할 때에 행동이, 그 시키는 대로 하면은 그 행동이 복이 되어 가지고 복이 됐다고 그렇게 믿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거 다 잘 믿는데.

그게 아니고 내가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동을 하니까 행동을 했다고 주님이 기뻐하셔서 ‘네가 나 내시키는 대로 이와같이 했으니까 내가 복 되게 해 주겠다’고 해서 주님이 복되게 해 주셔서 복이 됐다고 요렇게 믿는 사람 손 한번 듭시다. 그러면 다 잘 믿는데, 예수 다 잘 믿는데. 여러분들이 뭐 핑계할 수 없어. 알기는 다 아는데.

이런데, 마귀란 놈은 와 가지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행동할 때에,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 주님의 말씀대로 행동할 때에 그 행동 자체가 복이 될 만하면 행동하고 복이 안 될 만하면 행동 안 합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을 ‘요 행동을 하면 이 일이 잘 되겠다’ 싶으면 그 행동하고 ‘이 행동하면은 일이 안 되고 일이 낭패가 되겠다’ 그렇게 생각이 되면은 안 합니다.

자,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현실에서, 현실을 주실 때에 그 현실에 주님의 말씀 시키시는 대로 행동하면은 그 행동하는 그것이, 만일 그때에 행동하는 것이 자기 사업이 절단나는 행동이라면은 그 행동을 하면은 어찌 됩니까?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현실에서 행동을한다고 하면 그 행동이 자기 사업이 바싹 부숴질 수 있는 그런 행동일 때에 그 행동을 하면 어찌 됩니까? 그 행동 하면 어찌 됩니까? 그 행동하면은 바싹 부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 행동은 바싹 부숴질 행동이라도, 바싹 부숴질 행동이라도 그와같이 행동을 하라 하신 분이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면 네가 축복받아 모든 게 잘 되겠다’ 이렇게 하나님이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 계약한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이, 행동하는 그것이 그것이 사업은 바싹 부숴질지라도 하나님에게 축복은 받을 수 있는 그 행동이 되는 것이니까 그 행동할 때에 바싹 부숴지는 행동을 하면은 그 사업이 바싹 부서집니까 주님 시키시는 대로 행동하면은 복을 줘서 벌컥 부흥이 되도록 이렇게 해 주시마고 하신 주님의 계약이기 때문에 그 행동할 때에 그 행동이 바싹 부숴질 행동이면 하나님의 축복이 오겠습니까 안 오겠습니까? 오겠습니까 안 오겠습니까? 자, 안 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또 행동한 것이 바싹 부숴질 행동이라도 하나님의 계약이기 때문에 나는 계약 지키는 것이야 나 할 일이고, 나 하는 일은 계약 지키는 것이 나 할 일이고 당신이 축복하는 것은 뭐 복받을 그 일을 해야 그런 게 아니라 당신 계약 지키는 거기 있습니다. 계약을 지키니까 축복해 주고 계약 안 지켰으니까 망칩니다.

자기가 만일 행동할 때에,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때에 그 행동하는 것이 그 사업이 잘될 수 있는 그런 행동이 됐으면 그때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이 많이 옵니까 적게 옵니까? 많이 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적게 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많이도 적게도 그것은, 내가 주님 시키는 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 행동하는 것이 그 사업이 잘될 수 있는 그 행동이든지 그 사업이 망할 수 있는 그 행동이든지 어짜든지 현실에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했기 때문에 주님이 축복은 주시는 것이니까 주님의 축복대로 되지 그 행동이 그것이, 그 사업이 잘될 행동이다 못될 행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데에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다. 없습니다. 없습니다.

없는데, 없는데 하나님께서 순종을 할 때에 그 순종이 사업이 잘될 수 있는 그런 순종도 있고 어떨 때는 사업이 바싹 부숴질 수 있는 그런 순종도 있고 그럴 때에 바싹 부숴질 수 있는 그 순종하는 것과 사업이 잘될 수 있는 그 순종하는 것과 그 두 순종에 대해서 점수가 꼭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점수가 꼭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봅시다. 꼭 같다고 생각한 분들 손 들어 보십시다. 인제 모르네, 그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꼭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그러면 자,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몇 사람 있고 꼭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몇 사람 있고.

그러면, 바싹 부숴질 수 있는 그런 순종을 더 하나님이 가치 있게 여기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다. 그러면 그 일이, 그래 순종하면 그 일이 이치에, 일하는 이치에 맞아서 잘될 수 있겠다는, 잘될 수 있겠다 하는, 그 잘될 수 있는 그런, 잘될 수 있는 그 순종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것은 그 둘이 순종은 같은데, 순종은 같은데 하나는 안심을 할 수 있는 순종이고 하나는 좀 의문이 붙습니다. 의문이 붙는데 그 사람이 순종을 하는 데도, 순종하는 데도 ‘바싹 부숴지든지 그 일이 잘되든지 말든지 그거는 상관 없고 주님이 순종만 하면 복 주신다 했기 때문에 그거는 주님이 하실 일이니까 부숴져 봤자 당신이,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부숴져 봤자 당신께는 어려울 것 없고 또 그게 일이 잘돼 봤자 상관없고, 그거는 상관도 없다. 일이야 부숴지든지 잘되든지 상관없다. 주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대로만 나는 하는 것이니까 약속대로만 하면은 주님은 축복해 주신다.’ 요렇게 믿는 믿음을 가지고 믿는 사람이 있고, 믿는 사람이 있고, 그 믿음이 하나 있고, 일호. 그 믿음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순종을 하면서 이것은 순종을 하는데 그 순종하는 그 방편이 그 일이 잘되게 되는, 잘되는, 잘되는 이치에 맞은 그런 순종이기 때문에 이제 그 순종을 안심하고 딱 순종하는 그 순종이 있으니 고거 이호. 이호.

또 삼호는 순종이 순종해서 될 만한 것이 보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보다도 이거는 아주 박살나는 것 같은 그런 데서 순종하는 것은 ‘박살이 나도 나는 순종한다. 왜? 박살나는 게 상관없다.’ 이렇게 박살나는 순종을 할 때에 그 순종이 좋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분, 이게 삼호입니다. 그러면 일호 이호 삼호지요.

알아들었습니까? 일호 이호 삼호 아닙니까? 일호 이호 삼호지요? 일호가 있고 이호가 있고, 일호는 뭐이지요? 일호는 ‘뭐 바싹 부숴지는 순종이나 잘되는 순종이나 그저 그 부숴지고 잘 되고 하는 그건 나는 상관할 것 없다. 나는 순종만 하면 당신이 복 주신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순종하는 것은 순종하는 그 행동 자체가 그 사업이 부숴지거나 흥하거나 그까짓 거는 상관없다. 내가 그거 바라보지 않는다. 순전히 주님의 축복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숴져도 관계없고 잘 돼도 관계없고, 잘돼도 그까짓 거 잘되는 거 내가 그거 안 바라보고 또 부숴져도 상관없고 주님이 주시는 그 축복만 내가 바라보니까 부숴지거나 잘되거나 그까짓 거야 나 알 것 하나도 없고 순종만 하면 나 할 일 다 됐다.’ 요렇게 하는 것이 일호.

또 이호는, ‘순종하는데 요 일이, 순종하는 요것은 요 순종하는 요 자체가, 순종하는 자체 그것도 일이 잘될 수 있는 그런 참 순종이다. 요거야말로 요거는 참 일이 잘 될 수 있는 순종이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또 축복도 있고 하니까 요것이 좋다. 요건 참 좋다.’ 하고서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는 고거 이호.

또 하나는, ‘될 만할 때야 다 순종하지. 될 만할 때야 다 순종하지마는 아주 바싹 부숴질 때 그때 순종하기 어렵지. 그러니까 바싹 부숴질 수 있는 그 순종 요게 제일 가치 있다. 바싹 부숴질 수 있는 그럴 때 순종하는 요것이 더 가치 있는 순종이다.’ 고거 삼호.

그라면 내가 점수를 묻겠습니다. 자, 이호가 그것이 상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이호가 상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는 이호가 상등이라고 손 더러 드네.

또 ‘바싹 부숴질 것같이 보여도 나는 순종한다. 이게 제일 좋은 순종이다.’ 그것이 제일 좋은 순종으로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삼호가 제일 좋은 순종으로? ‘사람들이 뭐 될상바르면 순종하지마는 바싹 부서질상바르면 순종 안 한다. 이런데 나는 바싹 부숴질 수 있을 때 순종한다. 그게 역경에 순종하기 때문에 그게 더 가치 있다.’ 그 삼호가 제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라면 자, ‘부숴지거나 그게 잘되거나, 내가 순종하는 것이 그 일 자체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이 일 자체에 대해서 뭐 되거나 안 되거나, 방해되거나 안 되거나, 부숴지거나 말거나 그게 상관할 거 뭐꼬?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주님이 복 준다 하기 때문에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이지 나는 그래 가지고 일이 잘되면 뭐 잘된 그거 받을라고? 그거 나는 안 받는다. 부숴져도 잘돼도 나는 상관없다. 주님에게 순종하면 주님이 나에게 복 주신다. 그러면 순종하는 건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 부숴져도 상관없고 그 일이 잘돼도 상관없고 그 일이 될 만한 이치라도 상관없고 안 될 이치라도 상관없고 어짜든지 그만 현실에 주님에게 순종만 한다.’ 그 순종, 그게 일호인데 일호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 예수를 믿기는 믿어요. 여러분들 배우기는 잘 배웠어. 배우기는 잘 배웠어.

일호. 일호 그게 신앙입니다. 그라면 우리가 사업이라든지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그 죽을 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라 할 때에, 그러면 죽을 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그 시간에 순종해야 되는데 그 순종하는 그 명령이, 순종해야 될 명령이 살 만한, 살 만한 이치에 맞은 순종이면 좋습니까 이거는 절대 살 수는 없고 죽는, 멸망받고 죽는 그 명령이면 좋습니까? 죽는 명령이 좋습니까 그 살아날 수 있는 그런, 살기에, 살 만한 그런 참 좋은 명령이면 좋습니까? 죽을 명령이나 살아날 명령이나 이 명령이나 저 명령이나 꼭 같다 이래서 같습니까 어느 명령이 좋습니까? 그때 어느 명령을 해 줬으면 좋겠습니까? 죽을 지경인데 주님이 그 현실에서, 나는 현실에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인데 주님이 현실을 만드는 대로 나는 순종해. 만드는 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어. 그러면 그때 순종해야 될 때에 주님이 내가 살아 나갈 수 있는, 나를 죽일라 하는데 살아 나갈 수 있는 그런 그 명령을 내 가지고 그런 현실을 만들어서 살아 나갈 수 있는 그런 명령 순종이 되도록 그렇게 현실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까 이제 죽음에 지금 들어 가지고 있는데 고게서 그 사람들이 부애가 나 가지고 더 십 배나 독을 가지고 죽일 수 있는, 죽일 수 있는 그런, 그 사람에게 부애를 채워서 더 더 강하게 독하게 죽일 수 있는 그런 명령을, 그런 명령이, 그런 명령 순종이 되도록 그렇게 현실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까 어떤 명령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까? 현실 만드는 대로 우리가 순종하게 되기 때문에 말이오.

그러면 그때에 살아 나갈 수 있는 그 현실 돼, 상대방이 묻기를 말이요, 상대방이 묻기를 내가 살아 나가기에, 살아 나갈 수 있는 그런 명령으로 물을 수 있다 말이오. 상대방이 물을 때에 ‘요 명령은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말씀대로 순종해도 요 사람에게 거슬리지 안하고 부애지르지 안하고 요라니까 요 사람이 내게 대해서 후대를 해 주겠다’ 하는 그런 명령, 그런 명령을 그 상대방이, 상대방이 그런 나한테 질문을 하도록, 상대방이 그런 질문을 나한테 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그 심리를 만들어 줘서 나에게 문초하는 그 상대방이 내게 묻기를 내가 그때에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안하고 답을 해도 그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지 안하고 악독이 폭발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말로 나에게 묻도록 그렇게, 묻는 말을 그렇게 묻도록, 그렇게 묻도록 해 주시면 좋습니까? 그 사람이 나한테 물을 때에 그 묻는 대답을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그 사람이 그만 화가 막 백 배나 나 가지고 막 이를 응크리고 ‘이놈의 새끼’ 막 이러면서 화를 내 가지고 악독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상대방이 하면 좋습니까 내 대답이 그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그런 질문을 하면 좋습니까? 어떤 질문이 왔으면 좋습니까? 어떤 질문이 오면 좋습니까? 화를 내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봅시다.

막 화가 백 배나 나는, 날 수 있는, 내가 옳은 대답을 하면 그렇게 화가 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상대방이 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 손 들어 봅시다.

이런 질문이나 저런 질문이나 그까짓 거야 무슨 질문이든지, ‘무슨 질문이든지 해라.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만 답하겠다. 무슨 질문이든지 상관없다.’ 요렇게 상관없다 하는 요 사람이 제일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예수 잘 믿어. 핑계 못 대. 여러분들 핑계 못 해. 이만침, 이만치 똑똑히 아는데 뭐 뭐할 거요? 뭐 목사도 어림도 없어, 이거 다. 이만치 여러분들은 배워서 벌써 심령이 밝아졌다 말이오. 밝아졌어.

그러면 이 공산주의가 우리를 붙들고 고문과 고형을 하는데 그 공산주의가, 나는 하나님 말씀을 어길 수 없는데, 어길 수 없는데 공산주의가 내가 공산주의 부애를 지르도록 촉분을 지르도록, 말씀대로 하면은 그 사람에게 촉분이 질러지도록, 촉분이 지르도록 그렇게 그 사람이 나한테, 저 사람이, 그 공산주의가 나한테 물을 때에, 물을 때에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을 수 없으니까말씀대로 대답을 하는 것이 공산주의 그 사람에게 화가 나지 안할, 화가 나지 안할 그런 말을 공산주의가 나한테 물어 줬으면 좋겠는데, 이 공산주의가 나한테 말을 묻기를 꼭 내가 말씀대로 대답을 하면은 막 화를 백 배나 낼 수 있는 그런 말을 공산주의가 나한테 묻는다 말이오.

그러면 자, 화가 백 배나 나는 그런 말로 나한테 물으면 그때 좋겠소 내가 말씀대로 대답할 때에 그 공산주의에게 화가 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공산주의가 해 주면 좋겠소 어느 게 좋겠습니까? 화가 안 나는, 내가 대답해도 화가 안 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공산주의가 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사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공산주의가 묻는데 내가 옳게 대답을 하면 화가 백 배나 날 수 있는 그런 질문했으면 좋겠다, 꼬시고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뭐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대답을 해서 그가 화 날 그런 질문을 하든지 화가 안 날 그런 순수한 질문을 하든지 어떤 질문을 하든지 내게는 상관없다 싶은 사람들 손 들어 봅시다. 잘 믿어. 잘 믿어. 다 알았어. 이게 제일이야. 상관없어. 상관없어.

제야 무슨 질문하든지 내게는 상관없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답할 것뿐이지. 나는 신앙 생활 할 것뿐이지.

그런데 그 사람이 내게 화가 백 배나 날 수 있는 질문을 할 때도 있고 또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대답을 해도 부애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할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이 이런 질문 저런 질문 하는 것은 누가 그렇게 시킵니까 누가 그렇게 시킵니까? 누가 시켜요? 주님이 시켜? 주님이 시켜? 마귀가 시켜, 마귀가.

마귀가 시키지 안해? 마귀가 그 사람들 주장하지 안해? 마귀가 주장하지 안해, 그거? 또 마귀는 누가 시켜요? 마귀는 누가 시켜? 주님이 시켜. 주님이 시킨다고 이라면 그만 알아듣기가 어려워. 초절주의가 돼 버려요. 마귀가 시켜요.

마귀가 시키는데 마귀는 주님의 부리는 종이 됐거든. 마귀는 주님이 부리는 종 됐어. 과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는, 못박히기 전에는 마귀가 주님의 종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종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종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마귀가 주님의 종 됐어요? 종 아니오.

그러면 주님이 마귀의 종 됐습니까? 주님이 마귀의 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주님도 마귀의 종 아니고 마귀도 주님의 종 아니라요.

첫째 아담은 마귀의 종 됐어요 안 됐어요? 종 됐어요. 둘째 아담은 마귀의 종 아직 안 됐어요. 이제 도전해 가지고 한번 싸움을 한번, 씨름을 한번 시뤄 봐야 돼요. 시뤄 봐 가지고 난 다음에는, 십자가에서 이기고 난 다음에는 주님이 마귀 종 됐습니까 마귀가 주님의 종 됐습니까? 마귀가 주님의 종 됐어.

이러니까 주님이 시켜요. 주님이 시켜서 이제 주님이 마귀에게 시켜 가지고 요 사람에게는, 요 사람에게는, 요 사람 요 믿는 사람이 성경대로 대답을 하면은 막 화가 폭발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하도록 그렇게 마귀에게 시키고, 그라면 마귀가 그라니까 ‘네가 요 질문을 해라.’ 또 그렇게 화가 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또 하도록 또 그렇게 시켜서 하고, 그러니까 마귀를 총지배하고 있는, 마귀의 세계에 사령장관이 누구입니까? 사령장관이 누구요? 마귀의 장관이 누구입니까? 마귀의 왕이 누구요? 마귀의 상전이 누구요? 주님이라 말이요, 주님. 알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면 그 인민군이 우리에게 이말 저말 하는 그것은 우리의 뭐입니까? 이말 저말 하는 거 우리의 뭐이지요? 내게 대해서 이말 저런 말 하는 것은 그것은 뭐입니까? 내게 대해서 뭐입니까? 내 뭐입니까? 한목 대답해. 내 뭐입니까? 뭐입니까? 시험은 왜? 현실이지 무슨 시험이야, 시험은. 이렇게 저렇게 나한테 말한 그거 뭐냐 하면은 현실 아니요, 현실. 현실이지 뭐 자꾸 초절로 자꾸 뛰어가지 마. 현실 아니요? 현실을 누가 만들었어요? 현실은 누가 만들어 줍니까? 자, 현실은 누가 말들어 줍니까? 한목 대답해. 현실은 누가 만들어 주십니까? ‘성령님’ 해. 마태복음 4장에 다 공부하지 안했어요? 성령님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간다고 하지 안했어요? 그러면 성령님이 예수님을 시험받도록 이끌고 갔는데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시는데 뭘로 이끄시요? 현실로 이끄셔. 이거 알아듣습니까? 기억이 돼요? 자,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무슨 일을 닥쳐서 주님이 어떤 현실에서, 어떤 현실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든지, 어떤 현실에서 주님의 말씀 지키든지 지키는 것이 그 일이 잘될 수 있는 그런, 주님이 인도하셔서 그 일이 잘될 수 있는 그 순종과, 주님에게 순종할라 하면 그 일이 안 되고 낭패될 수 있는 그런 순종과 둘이 있으니까 그 두 순종 가운데에 잘될 수 있는 순종이 좋아요, 그런 순종이 닥치면 좋아요 잘 안 될 수 있는 그런 순종이 닥치면 좋아요, 어느 게 좋아요? 잘될 수 있는 그런 순종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잘 안 될 수 있는 그런 순종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잘될 수 있는 순종이나 잘 안 될 수 있는 순종이나 나는 순종의 효력으로 되는 그거 바라는 게 아니고 내가 주님의 계약대로 순종하니까 당신이 복 주신다 하는 당신이 만들어 주는 복 그걸 받는 것이니까 내 순종하는 것이 그 사건에야, 뭐 사건에야 잘될 수 있는 순종이든지 그 사건이 박살될 수 있는 순종이든지 내게는 상관 없다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다 됐어. 이만하면 뭐 예수 다 믿어요. 핑계할 수 없어. 요거면 다 돼. 여러분들이 요것만 꼭 요대로 실행만 하면 됩니다. 실행만 하면 돼요. 오늘 저녁에 큰 거 배웠어. 뭐 더 배울 것 없어. 이거 너무 좋은 것 많이 배웠어. 알겠습니까? 다니엘이든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요셉이라든지, 다윗이라든지, 야곱이라든지, 이삭이라든지, 이 모든 사람들, 자기 순종한, 그 순종한 행동 그것이 들어서 일을 잘 만들었습니까 순종한 행동 그것은 일 잘 만들고 못 만드는 상관도 없고 계약하신 주님이 그 일을 해 주셔서 일이 잘됩니까? 어떻습니까? 행동하는 거야 그 일에 잘되고 못되고 그까짓 거 잘돼 봤자 소용없고 못돼 봤자 소용없고 그건 상관없고 다만 내가 계약을 지킬 때에 계약하신, 계약한 대로 지키면 내가 계약한 대로 이행해 주시겠다고 하신 계약 명령한 그분이 우리에게 해 주셔서 잘된 것을 믿으십시오. 알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모든 순종할 때에 순종, 믿음 생활, 순종 생활 할 때에 순종 생활 그것이 일이 잘되게 합니까 순종한다고 주님이 나에게 복을 주셔서, 복으로 주님이 좋은 걸 해 주셔서 잘 됩니까? 주님이 해 주셔서 잘 됩니까 내가 순종할 때에 순종한 행동 그것이 잘해서 잘됩니까? 뭐입니까? 순종하는 행동의 효력입니까 계약 지킨다고 계약 지킨 그 효력입니까? 계약 지킨 효력입니까 행동한 효력입니까? 계약 지킨 효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요겁니다.

이러니까 계약 지키는 효력이니까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지킬라고 할 때에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그것이 자기 사실에야 방해가 되고 또 잘되고 또 손해될 일 낭파될 일 잘될 일, 잘될 일 손해될 일 낭패될 일 방해될 일 그것이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크게 말해요.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없어요.

없는데 왜 현실에 순종을 할라다 잘될상바르면 순종하고 안될상바르면 왜 순종 안 합니까? 요것이 안 믿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에 잘될상바르니까 순종하는 그것도 믿음 아니요, 또 안될상바르니까 순종 안 하는 그것도 믿음 아니오.

알겠습니까? 안될상바르니까 이 역경으로 순종하는 그것도 반쪼가리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잘될상바르니까 순종하는 그것도 반쪼가리 믿음이오. 왜? 온 쪼가리 믿음 아니오.

잘될상바르거나 못될상바르거나 우리 행동과 우리가 복받는 거와는, 우리 행동과 우리 복받는 것과는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행동이 우리 행복을 만듭니까 우리는 주님 뜻대로 행동하고 행복은 주님이 만들어 주십니까? 리 행동이 행복을 만듭니까 주님이 지킨다고 행복을 만들어 주십니까? 자, 우리 행동이 행복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우리 행동이 행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행동은 주님의 계약을 지키니까 계약 지킨다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주님이 행복을 만들어 주시는 행복인 것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이거야. 요거 똑똑히 알아요. 요거 알면 됩니다. 오늘 저녁에 좋은 거 배웠어.

광고는 다 했고, 이러니까 내일 새벽에 다 나와요. 자, 내일 새벽에 나오기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한번 작정하는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봐요. 작정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녜, 놓읍시다. 그 작정했는데 내일 아침에 못 나오는 사람은, 못 나오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아침밥 굶기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이제 내일 아침에 밥은 많이 남겠다. 그 약속 안 지키면 하나님 앞에 위약자 거짓말쟁이요. 그건 암만 배가 고파도 꼭 지키십시오. 배가 고파도 꼭 지켜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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