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정조-인격, 종교, 신앙

 

1985. 12. 2 월새벽

 

본문:히브리서 10장 26절∼39절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 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 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 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 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 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 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 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 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 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 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 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 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 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우리 믿는 사람들이 차차차차 믿음의 연조가 많아 갈수록 두 가지 결과를 이룹니 다. 하나는 하나님의 노를 점점 풀고 점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 가 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노를  처음에는 몰라서 뭐 노여워하는  일을 많이 했고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을 많이 했지마는 차차차차 진리를 또 듣고 듣고 함으 로 우리가 고쳐져서 하나님의 노를 차차차차  플어서 이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적어져 가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차차차차 많아져서 점점 하나 님과 가까와지고 축복에 이르는 사람들도 많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잘못 믿 으면 믿어 갈수록 차차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생겨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을 노엽게 하는 일이 생겨지고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어지고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만 점점 많아져 갑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차차 생겨진다 말은 처음에는 이  예수님이, 그 세 가 지 아는 것, 하나는 내가 어떤 죄를, 죄로써 주님에게 어떤 지금 고난을 당하게 했 는가, 어떤 죄로 어떤 고난을 당하게 했는가, 또 내가 하나님 앞에 행하지 안하면 지공한 심판에 다 걸려서 영원히 멸망을 받을 터인데, 내가  할 의무와 책임이 어 떠한데 그것을 주님에게 부담시켜서 주님이 대신 그것을  행하셨는가. 또 내가 하 나님 앞에 어떻게 원수가 되었었는데 그 원수 된 그것을 화목시킬라고 주님이 어 떻게 그 고난을 당하셨는가 하는  이 세 가지를 알기  전에는 이 세 가지를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노는 없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 르고 멸망 받았기 때문에  당신이 사람되시기도 뭐  주저하지를 안했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대속도 주저하지를 아니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사람되신 것이라든지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심이라든지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신 부활하심이라든지 이것이 말할 수 없는  큰 고난인데 이 고난을 당하신 것이 무슨 법으로 고난당할 그런 법이 있어서 당한 것  아닙니다. 또 어떤 자에게 못 견뎌서 당한 것도 아닙니다. 순전히 그거는 하나님의 사랑이 당했습니다. 하나 님의 사랑이 우리를 보고서 견딜 수 없어 가지고 이렇게 있는 것을 다, 당신이 우 리를 구원하는 데는 무엇이든지 아낌 없이 전부, 이게 있어야 구원된다 저게 있어 야 구원된다 할 때에 오만 거 다 당신의  있는 것을 다 들여 가지고서 우리를 구 원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리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이 구속 을 우리가 입어야 될 것이기 때문에 입도록 하기 위해서, 이 또 구속을 벗지 안해 야 되기 때문에 벗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서 이 사실을 다 알리시고, 또 사람들을 통해서 알리시고, 또 성령의 감화를 통해 서 알리시고, 또 우리 속에 중생된 영이 있는데 영은 벌써 우리, 영육으로 된 사람 인데 영이라면 우리 안에 있는 주격입니다. 이 심신이라 하는  이거는 그 영이 소 유하고 있는 피소유의 것이요 영은 주인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영입니다. 영이 살 아났기 때문에 이 주인이 이 심신을 붙들고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이것을 지극히 감사히 여기고 이 대속을 어짜든지, 이렇게  큰 힘들여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신 이 대속이기 때문에 이 대속을 업신여기는 것이 주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이 대속을 조심 없이 던져 버리는 것이 예수님을 아주 짓밟는 일이 됩니다.

짓밟는 일이 되는데, 이것을 한 번 가르치고  두 번 가르치고 열 번 천  번 만 번 자꾸 가르칩니다. 이것을 가르치기를 누가 가르치느냐 하면은, 성경 말씀인 이 문 서는 우리가 보고 아는 것뿐 아니오. 이 문서 속에는 능력이 들었습니다. 이 문서 자체가 독자적 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진리가 능력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치고, 또 우리의 중생된 영, 영이 가르칩니다. 그래서, 중생된 영하고 성령님하고 진리하고는 이 셋이 한덩어리로 돼 가지고서 우리를 이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내가 읽 는 줄 알지마는 이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첫째로 우리의 중생된 영이 제일 애가 달습니다. 영이 제일 애가 달소. 또 그  다음에는 진리가 애가 달소. 또 성령이 애가 달소.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의 아 들이라는 것을 자꾸 증거한다  했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살라, 로마서 8장에 보면은 그걸 말씀해 놨습니다.

이래서, 이 중생된 영과 우리 속에 주격 말이오. 영과  또 진리와 영감, 또 예수님 의 피의 능력 이래 가지고 우리에게 자꾸 가르칩니다. 이 피로 말미암아 너희들에 게 구속을 주는 데에는 없어질, 뭐 너거는 금 은 이런 거면, 보배면 제일인 줄  알 지마는 그까짓 거 없어질 금이나 은이나 그런 것 가지고 하지 안했고 어린 양 같 은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이렇게 우리를 속량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 린 양 같은, 어린 양으로 말하면은 사람이 범하는 것처럼  그거는 저는 범하는 죄 가 없습니다. 그거는 아무, 그거는  본능으로 살기 때문에, 사람은  본능으로 사는 게 아니라 이성으로, 이성 판단  가지고, 이성적 욕심, 이성적  감정, 이성적 주관, 이성적 비판, 이거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판 받으면 사람들은  심판 받으나 다른 만물은 심판을 안 받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들어 가지고 이 만물을 잘못 이용하 고 이래 가지고서 사람들 때문에 만물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들의 원수는 뭐이냐? 사람이오. 만물들의 원수는 사람이오. 또 만물들이 그래도 이 사람을 괄시를 못 하는  것은 만물들이 영원히 또 사는 것도 사람으로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하나님의 뜻대로 자유하는 영감과 진리대로 피대로 사는 이 사람은 만물이 뭐  얼마나 귀하게 여겨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또 이 대속을 입지 못한 자, 대속을 받았으나 이 저버리는 자 그런 자에 대해서는 이 만물이 얼마나 탄식하면서 분개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이제 심판을 당할 때는 지옥에서 마구 호소하는 소리가,  만물이 호소하는 소리가 들립 니다. 왜? 내가 잘못해 가지고서 나 때문에,  내가 죄 지을 때에 이용당한 만물은 전부 다 죽습니다. 유황불에 탑니다. 탄다고 없어집니까? 거게는 구더기도 죽지는 안합니다. 안 하고 그것들이 있으면서 고난에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 나라 가도 내 이 팔에 있는 요소가, 팔에 있는 요소가 이것이, 내가 전부 잘못해서 팔의 있는 기능이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니까, 이게 타니까 이게 얼마나 호소 를 하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태워 놓고 너는 지금 영계에 가 있느냐?’ 이렇게 호소 하니까 그때에, 하늘나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어 보면 압니다. 믿어  보면은 잘못됨의 후회가, 그 잘못됨의 그 고통이 그것이 차차차차 깨달아 갈수록이 더 많아지고 심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노경에 말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자다 이렇게,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느끼는 것이 강하고, 느끼는 것이 강하고 느끼는 것이 세밀하고 느끼는 것이 다 참돼집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바로 믿은 사 람이 예수를 잘못 믿는 사람 만나 놓으면  도무지 통하지 안해서 한 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엉망진창이라서, 또 안 믿는 사람을 대하면 이거는 순전히 참 이거 목석 당하는 거고 이거 아무 감각 없는,  이거는 인간의 양심이라든지 인 간의 뭐 그런 거는 하나도 없고  전부 껍데기로 발라 맞추는 것,  발라 맞추는 것 그런 것뿐이라 그말이오.

이렇게 우리를, 세 가지로 큰 구속을 해 주셨기 때문에  이것을 점점 깨닫고 나서 자기네들이 이 세 가지를 생각하고,  세 가지를 생각하는데 한 가지가둘씩입니다.

뭐이냐? 사죄에 대해서 내가 어떤 죄를  내가 가지고 어떻게 멸망받을 터인데 주 님이 이것을 대신 멸망의 고통을 당하셨느냐,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고 명령하시 는 것이 지금 뭣 뭣, 몇  가지나 명령 하셨는데 내가 명령과  요구를 내가 어겨서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멸망받을  정죄받은 나를 주님께서  내가 행할 것을 대신 당신이 낱낱이 행하시느라고 어떤 고난을 당하셨느냐  이거, 또 내가 하나님 에게 대해서 원수된 이  원수된 것이 어떤 면으로  원수가 됐느냐 이것을 보니까 원수된 면이 뭐 심령이 밝아져 갈수록이 이거는  참 불로 태워야 되고 멸망을 받 아야 되고 하나님이 얼마나 분해서 원수를 갚아야 될란지 모를 만치 이런 입장에 있는 자인데 주님이 이것을 대신 화친을 일으키게 해 가지고서, 어떤 고난을 받아 서 화친을 일으켜서, 어떤 수고를 하고 어떤 희생을 했느냐  그걸 우리가 아는 것 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한 가지가 둘씩이니까 세 가지 아니까 몇 가지  아는 겁니까? 예? 여섯 가지, 여섯 가지. 녜, 여섯 가지를 알고, 그러면 우리 거게 대해서 할 일이 뭐인가? 거게 대해서 할 일은 또 한 가지씩 세 가지를 더하면은  삼삼 구, 이제 아홉이 되 겠습니다. 한 가지 더하는 거 뭐이냐 하면은, 그러니까 거게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될 것인가, 얼마나 감사해야 될 것인가, 그 감사할 걸 우리가 생각하니까 삼 삼은 구 아홉이 됐습니다. 그 다음에 또 세 가지 뭐이냐? 그러니 우리가 이 사 죄를, 이 칭의를, 화친을 우리가 어떻게 보수해야 되겠느냐,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지켜야 되겠느냐, 이것이 막바로 우리의 인격의 정조입니다. 인격의 정조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장가 들기를, 이거는 비유로 말합니다. 장가  들기를, 이 세 가 지로 장가 들었습니다. 성경에 이 세 가지로 장가  들었어. 장가 들었는데, 우리가 정조 지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지키는 것이 우리가 주님과의, - 신랑이라 신부라 비유하는 것은 인간들이  남녀 부부로 아주 좋은  남녀 부부 있는 이것은 하나의 그림자로서 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밀접한 것을 보여 주는 한 그림자 입니다. 보여 주는 한 그림자인데, 이러니까, 이것 모르고 ‘아, 우리가 지금  부부 모양으로 무슨’ 전부 타락해 가지고 딴거는 하나도  없고, 부부의 본분이나 책임 이나 또 참, 신비한, 신비한 것으로 의무와 책임 이런 것은 다 잊어버리고 똑 짐승 모양으로 념녀 성교하는 거 이것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아, 주님과 우리와의 부부라 하니까 그런 것만 쑥 들어 와 가지고 이 마귀란 놈이 말이지, 그래 음란한 그것만 들어와 가지고, 그러니까, ‘아, 주님하고 뭐 우리 뭐  부부 모양으로 이거 음란적 인 부부 이런 건가’ 그런 거는 생각하고, 이제, 부부가 어떤 게 부부냐? 아내의, 첫째는 아내의 그 모든 나쁜 거, 연약한 거, 허물, 아내가 잘못했는데 동리에  그 아내가 잘못하니까 남편을  데려다가서 동네 볼기를 뚜드리는 걸 내가  봤습니다. 아내가 잘못했는데 남편을  데려다가서 갖다 놓고 ‘네 이놈, 네가 네 아내를 단속을 이래 했으니 네가 벌을 받아야 되지 않느 냐?’ ‘아이구, 제가 벌을 받겠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 동리  사람들이 발가벗 겨 놓고 엎어 놓고서 막 곤장을 뚜드려대더라 말이오. 아내 잘못한 벌을 받아. 이 일은 이런 일은 과거에는, 과거에는 좀, - 하나님의 이 부부의 이것을 모형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인간 부부 제도를 이렇게 보여  줬는데 - 있었지마는서도 이제 그 만 완전히 썩어 버렸어. 그게 없어. 썩어 버려서 없고,  저 미국의 또 썩은 풍속이 들어오고. 뭐 전부 예수를 잘못  믿어 가지고서 이렇게 썩은  풍속이 들어와서 막 썩어졌습니다.

옛날은 제가 있는 동리는 한 백여 호  됩니다. 백여 호 되는데 다른 성이, 타성이 없어요. 전부 백가만 살고 있어요. 백가만 살고 있는데,  그것을 내가 보지는 못했 는데 말을 들었습니다 어릴 대에, 어릴 때에, 내가 조그만,  그때 아마 세 살 먹었 는지 두 살 먹었는지, 그래도 알아 듣는다  말이오. 그때 알아 들은 그때 들은 것 이, 그때 본 것이 기억이 더 많이 나요. 여러분은 안 그렇습니까? 이런데, 막 어른 들이 막 떨면서, 떨면서 막 이거 우후죽순같이 그래 쌓는데, ‘뒷골 샘에 누가 여 물을 펴다 부어 놨다. 여물을 퍼다  부어 놨다.’ 여물은 소 먹는, 소  먹일라고서, 여물 먹일라고서 썰어 놓은 그걸 여물이라 합니다. ‘여물을 펴 부어 놨다’ 이라 면서 막 동네가 수근거리고 야단을 지기요. 그래 나는 그 말만 듣고 그때에, 그 말 만 듣고 뒤에 기억만 나지 그때, 그때는 내가 가서 보지를 못했어요. ‘여물을 퍼 다 부어 놨다’ 그 여물  퍼다 붓는 거는 어째 퍼다  붓는 지 누가 압니까? 아는 사람 손들어 봐. 여물 퍼다 붓는 거 왜 퍼다 붓는지 아는 사람 손들어 봐. 이렇게 무식해 놓으니까 참 탈이라. 그래  놓으니까, 한번 뻐뜩 들어 봐요.  여물 퍼 넣는 거, 요거밖에 없네. 여물퍼다 붓는 것은 말로 ‘생피  붙었다’ 이랍니다. 생피 붙 었다, 생피 붙었다 하는 그 말은 뭐이냐 하면은 동성  동본끼리 그런 관계를 가졌 다 이랬는데, 요새는 동성 동본끼리 아니고  뭐 남매끼리도, 모자끼리도, 부녀끼리 도, 이러니까 이거 완전히 소돔 고모라 성보다도 이상이나 더러워졌습니다. 이래도 이거 예사라 말이오! 이제 뻔뻔하이.

이래서, 이 세 가지, 삼삼 구인데 거게 한 가지 더 있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이러 니까, 내가 얼마나 삼삼 구에다가,  내가 그러니까, 이렇게 주님이  나에게 힘들여 가지고서 나에게 주신 이 사죄 칭의 화친이니 이걸 내가 어떻게 보수해야 되겠느 냐, 어떻게 보수를 해야 되겠느냐 이게 인제 문제라 말이오. 어떻게 보수해야 되겠 느냐? 그러니까, 이 보수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정조입니 다. 흰돌 준다, 흰돌을, 흰돌을 준다, 흰돌을 주는데 그 흰돌 위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 비밀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계시록에 말했습니다. 흰돌을 준다, 그 흰돌 그게 뭐이냐 하면은 우리에게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정조입니다. 이 세 가 지 정조. 이것이 인격의 정조요. 인격의 정조요.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 이 맺은 정 조입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맺어졌습니다.

이 세 가지를 이것을, 여자도 자기가, 남자하고 여자하고 둘이 정조를 맺어 놨으면 죽엇으면 죽었지 그걸 정조를 버립니까? 요새는  그렇지 안해. 나는 여기 처음에, 뭐 이거 이제 말한 대로 그 더러운 그런 것은 아예 생각지도 뭇하고 ‘그런 일이 없다’ 그런 데는 다 안심하고 이랬는데, 이랬는데,  이제 부산 와서 한 십 오 년 지나고 난 다음에 ‘이상스럽다, 이상스럽다’ 이래 가지고서  요새는 막 내 눈에 그런 것이 막, 그런 것만 막 보이고 이제, 내가  색경을 는지 몰라요. 색경을 썼는 지 몰라. 색경을 썼는지 몰라서 이제, 내가 색경을 써서 잘못 보는 건지 몰라도 그 러면 색경을 써서 그런지, 색경을 새파란 색경 쓰면 전부 다 새파랗게 보여요. 이 래 내가, 그렇게 내가 그런 잘못된 색경을 써서 그런지 전부 다 그렇게 막 보여진 다 그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렇게 보여지는 게 뭐 하나 둘뿐이 아니라 자꾸 터 무니 없이 이래 놓으니까 이거 참 이 세상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소돔 고모 라 성 이상입니다.

이래서, 이것이 우리가 인격의 정조요,  종교 정조요, 신앙 정조요. 인격의  정조요 신앙의 정조요 종교 정조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정조 지키는 것,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정조 지키는 것은, 뭐 남녀 정조라  하는 것은 그거 다른 남자하고 무슨 연애를 했다든지 무슨 성교를  했다든지 이라면 정조를 파는 것으 로서 그렇게, 음행한 연고 외에는  이혼하지 말아라, 그 음행한  연고인데, 주님이 해석을 하기를 남자나 여자나 서로 보고서 탐욕을 품은 것은 그거는 음행이라 이 랬다 말이오. 남의 남자나 남의 여자에게 탐욕 품지 안하는 그자에게 대해서 이혼 한다면 이혼한 자가 나쁩니다. 그 말을 우리가 또  이제 듣기를 어떻게 들었느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음욕 품으면 음행한 자라 이렇게 말했는데 우리는 해석하기 를 음욕 품은 게 아니고  이거 꼭 육적으로 범한  그거나 범한 거지 그거는 범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해석한다 말이오.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우리가 참 정신 차리지 안하면  안 됩니다, 더러워져서. 우리가,  에덴 동산에서도 그것 때문에 망했고, 또 소돔 고모라 성도 그것 때문에 망했고, 노아 때도 그것 때 문에 망했고, 예수님 재림 때도 그것 때문에 망한다고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자기가 무슨 힘을 들여서, 예를 들어서 자기가 어데 가 가지고 참 돈을 벌어도 그냥 번 돈이 아니고 참 자기가 고역을 해 가지고서 어떻게, 아주 고 생을 해서 돈을 벌어 가지고, 그 돈을 벌어서 그 돈을 솔빡 다들여 가지고서 아내 를 사랑하니까 아내를 위해서 보석 반지를 하나 샀다 합시다. 자기 있는 뭐 참 생 명을 내놓고 돈을 벌어 가지고 그 돈을  다 들여서 보석을 하나 사다가서 아내에 게 줬다 말이오. 아내에게 줬는데, 그 아내가 보석반지를 볼 때마다 좋아하는 것도 보고, 좋아하는 것도 그 남편 이 볼 때에 위로가  될 것이고, 위로가, 고생한 거는 다 지나가 버렸고, 그 아내에게 선물을 갖다 줬더니마는 좋아하는  걸 보고 그 위 로가 될 것이고, 그 아내가 또  그 보석 반지를 보고서 속으로  자꾸 눈물을 툭툭 흘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볼 때에 그 남편이 만족할 거라 말이오. ‘요거 보고 뭐 자꾸 그라고 있어? 저 농 안에 넣든지 그만 손가락에 끼든지 그래 버려요’ 이라 니까 ‘아, 예예’ 손가락에 끼면서도 보고 이라니까 그 남편이 자기가 어떻게 어 떻게 고생한 것을 그것을 그 아내가 생각하고, ‘그것을 해  가지고서 다른 데 쓰 지 안하고 전부 다 그걸 똘똘 뭉쳐 가지고서 날  사랑해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좋게 한다고 보석 반지 하나 사 가지고 왔으니까’ 그걸 사랑을 생각하고 고생을 생각하고 자기를 위하는 걸 생각하고, 이제 주님의  고생을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 하고 자기를 위하는 것 생각하고 이 선물을 생각하니까 이제 눈물이 나오고 기쁘 고 뭐, 기쁘고 눈물 나오고 이렇다 그말이오.

그럴 때에, 그럴 건데, 보니까, 인제 보니까 이 선물 사 준  걸 이걸 저 보니 부엌 에 돌아다닙니다. 부엌에, 집어 빼 던져서 부엌에 보니까  밟혀 가지고 있어. 그거 보면 좋겠소. ‘아, 이거 세상에, 내가 어떻게 만든 이 보석반지인데 이걸, 이걸 집 어 던져 버려서 부엌에 있다.’ 속이 상하지마는 또 이걸  닦아 가지고서 이걸 다 해 가지고서 ‘여보, 이거 어째, 어디다 거친했어요, 이거?’  ‘아, 예. 어데 있습 니까? 내가 어데 둔 거 같은데, 어데 둔 거 같은데 그만, 어데 내가 잘 둔 거 같았 는데 어데 빠졌읍디까?’ 그 소리 하는 거 보면 쥐  박으면 싶을 거라. 안 그렇겠 어? 이라면서 ‘어짜는고 보자.’ 주니까, 떡 받아 가지고서, 아무 감각도 없고 아 무 감사도 없고 또, 또  슬그머니, 보니까 방안에 어데 구석에,  구석에 휘뜩 던져 버립니다. 휘뜩 던지면, 자, 그라면, 휘뜩 던지는 그걸, 만일 그런 형편이라고 하고 보면은 그 마누라에게 이제 그래도 굽신거리는 자가 있겠소, 이제 한번 싸우겠소, 주먹으로 쥐 박겠소? 주먹으로 쥐 박을 남자  한번 손들어 봐. 모두 성자다. 나는 쥐 박겠어. 나는 쥐 박겠어. 손 안 든 남자들 좀 들어  봐. 이게 인간부터 돼 놔야 뭐 예수를 믿지.

그랬는데, 또 그걸 이제, 그것도 분하지마는 나중에  보니까, ‘그거 어쨌지?’ 하 니까 없습니다. 마음에 ‘저놈의 여자가  지금 저걸, 저거 간부가  어데 있는갑다.

아마. 간부에게 빼다  줬는가 보다’  이 마음이  생겨져서 자꾸  독촉을 합니다.

‘내놔 봐. 내놔 봐. 그거 어데 있지? 어쨌지?’ 이라니까, 자꾸 내놓으라 하니까, 삽짝 밖에 못 나가구로 하고 내놓으라 하니까 이게 내놓지를 못합니다. 그래 나중 에 ‘이거 어짜는가 보자’ 하고 보며 내놓으라 하니까 뭐 뭐라고 뭐 구더렁구더 렁 딴 일 하는듯이 가고 가더니마는, 슬쩍 삽짝 밖에 나가더니마는, 뒤에 살살 따 라가니까 자기가 의심하는 고 남자한테 딱 가 가지고서, 거게 가더니마는, 고 집에 들어가더니마는 뭘 어째하더니마는 요래 가지고서 요래 가지고 아 또 들어오더니, 저리 들어오더니마는, 그래 가지고서 보니, 가만히 보니까 집 안에 어느 구석에 슬 그머니 떡 놓고서, ‘아, 안 찾아내?’ 이라니까 `그거 내가  어데 둔 거 같은데 ' 뒤적뒤적 하더니마는 내놓는다 말이오. 그래 내놓으면서 ‘아, 그거 내가 그만 이 거 잘 거친할 건데 거기다 뒀다가 내가, 아무 데 그걸 내가 둬서 그만 그래 둔 걸 잊어 버려서 그만 그래  버려 됐네’ 이라면 그  남편이 아내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겠소? 자, 어떻게 하겠소? 한번 해 봐? 말해 봐. 저 우리 ○○○ 집사 애처가이 지? 한번 말해봐. 어떻게  하겠어? 쫓아내야 돼? 성자다.  아낼 여가가 어데 있어 아낼 여가가 어데 있어? 자, 저 ○○○이. 안 죽을  만큼해서? 그래. 살인은 못 해 도 말이지요, 그만 다짜고짜 주먹이 올라갈 것 아니야? 올라갈 거 아닙니까? 우리 가 이것을 생각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이래 하셨는데 이것을, 자, 업신여기지, ‘하 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 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 께서 그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이제  무서운 맹렬한 불만 기다려라 이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이랬는데, 이걸 업신여기는 것도, 업신여겨 예사로, 예사로 사죄를  집어 던져 버리고 죄 짓습니다. 또  예사로 주님의 명령을 그만  순종하던 것을 저버려 버리고 순종하지 안합니다. 예사로 하나님  배반하고 이 사신 우상에게 절합니다.

이러니까, 자 신사 참배 절하는 거 주님 배반하고 그거하고 서로 결혼한 것이니까 거게 대해서 주님이 신사 참배 한 자에게 화를  줘요 안 줘요? 화 줘요. 화 줘요.

이렇게 깨달은 사람들은 죽어도 신사 참배를 안 했습니다. 안 했지마는 이렇게 깨 닫지 못하는 사람은 다 신사 참배했어. 신사 참배하고 뻔뻔하지마는 그거 아직 몰 라 그래요. 신사 참배한 그거 얼마나 큰 죄라는 걸, 평생 그것이 참 마음에 사무쳐 서 ‘앞으로 내가, 그런 때가 있으면, 내가 죽어도 이런  뭐 국기 배례니 이런 거, 신사 참배 안 하겠다’ 이렇게 깨닫는 것이  없으면은 그 사람 주님을 아주 만홀 히 여기고 업신여기고 노엽게 하는 자입니다.

이라는데, 그 보석 반지를 간부에게 가서 이렇게, 간부와 더불어 연애하는 것도 분 한데 이거 간부에게 그 보석 반지도 다 갖다 줘 버렸다 그말이오. 간부가 뭐이, 우 리 간부는 뭐이 우리 간부입니까?  세상이 우리 간부 아니오? 세상이,  돈도 우리 간부요, 사람도 간부요, 벼슬도 간부요, 직장도 간부요  무슨, 사업도 간부요, 모든 권세, 모두가 간부라 말이오, 간부. 이게 좋아서, 이게 탐이 나 가지고서 그것 때문 에 사죄 다 갖다 줘 버렸지, 칭의 갖다 줘 버렸지, 화친  갖다 줘 버렸지, 전부 그 것 때문에 다, 그것의 요구대로 해 가지고 이거 다 버렸으니까 갖다 준 거 아닙니 까? 이랬으니까, 우리가 이것을 자꾸 느껴서 우리가 강하게 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설교도 한 번 듣고 두 번 듣기를 싫어하는 인간이 있는데 그 사람은 구 원을 이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오. 왜? 그래 보십시오. 아, 예를 들어서 ‘주님은 전능자라.’ 내가 혼자 `주님은  전능자시라, 전능하신 주님이,  전능하신 분이 내 주님이라, 전능하신 분이 내 주님이라’ 자꾸 , 한  번 말하면은, 아무리 물먹이라 도 말이오, 아무리 물먹이라도 한 번  칠하면 조금 충충하이 묻습니다. 또 마르고 나면 또 칠하고 마르고 나서 도  칠하고 나중에는 새카매집니까 안 됩니까? 새카 매집니다. 그와 마찬가지야. 또, 새카만 거를 또 빨고 또  빨고 또 빨고 하면 하얘 진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주님의 말씀을 자꾸 생각하니까 내게 또 짙어 지고 짙어지고, ‘아, 전능하신, 전능하신 분은 나의 주님이시다. 전능하신  아버지 시다. 전지하신 아버지시다. 창조주 아버지시다. 주권자 아버지시다’ 자꾸 이렇게 말할수록이 우리 속에 자꾸 믿어집니다. 우리 속에  자꾸 담겨져서 우리가 그와같 이 화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여기 저 ○○○ 집사님, 이번에 총공회 때에 내가 장로로 세웁니다. 장로 로 세우는데, 장로 될 분 중에 제일 먼저 내가 선택한 것은 ○○○씨를 먼저 선택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보면, ○○○집사  손들어 봐. 왔나? 저기 있는데,  다른 사람은 보면 저 미친 사람이라 해,  미친 사람이라, 그라지마는 나는 안다  그말이 오. 그 사람을 뭐 다른 것  때문에 장로 세울 게 아니라  이제 주님이 기쁘하셔서 장로 세워. 어떤 사람이 그거 말해. ‘아, 그 ○○○  집사님이 언제 보니까 뭐 혼 자 손을 가지고 막 이래 쌓고 이래 쌓습디다. 좀 돈 거 아닙니까?’ 이렇게 말해.

그래 그럴 수 있어. 혼자 이럴수 있어. 이래 가지고  말해도 ‘주여’ 이래, 뭐 속 으로 말이 있거든. 속으로 뭐이냐 하면 ‘콱 깨서 그만 손가락이, 손이 부서지든지 때리든지 막 박살을 내겠습니다.’ 자꾸 이래 그만 이거 혼자 ‘주여’ 멀거이 길 가다가 ‘주여, 엑!' 막 이렇게 한다 말이오. `죽어도!' 이래  가지고 또 연습도 한 다 말이오. 깽 그러면 져 버렸어.

개싸움에 보니까 큰 개가, 아, 작은 개를 물고 그만 ‘저놈 이제 작은 놈 저놈  죽 인다’ 이랬더니마는 보니까 그만 쭉 갈라. 주인들이 와서 턱 갈라 버려. ‘왜, 왜 싸움 안 시키고 왜 저래 가릅니까?’ `벌써 판결 났습니다.' `어느  개가 이겼습니 까?’ ‘저 작은 개가 이겼습니다.' `아, 저 큰 개가 막 물고 이래 이렇게 막 흔들 고 이래 막 물고 이래 흔들어요, 이래, 흔드는데, ‘왜 졌습니까?’ ‘아, 깽  그러 면 지는 겁니다.' 고거 내가 운동장에 가서, 개 싸움 하는데 역부러, 뭐 한번, ‘거 기 가서 한번 보자.’ 보니까 깽 그래. 깽 그라니까 떼, 거게서 내가 딱 깨달았어.

‘오, 깽 그라면 안 된다. 원수에게 고문과 고형을 당할  때에 아야 하면 안 된다, 아야 하면 안 된다, 아야,  아이구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자꾸 그걸 연습하는 거라. 아프면 ‘주여!' 아프면 주여!’ 또  때리면 ‘주여!' 때리면 `주여!' 때리면 주여' 아야 소리를 이제 ‘주여’로 바꿔 버렸다 말이오. 바꾼다 말이오.  자꾸 이 래 바꾸기를 자꾸 연습을 해.

이렇게, 자꾸 한 번 들으면 또 다르고,  저 혼자 성경 봐도 또 차차차차 굳어지고 강해지고 이런데, 설교 말씀에서 이래 한 번 설교 들으니까 또 강해지고 두 번 들 으니까 강해지고 이렇게 제가 변화시킬라고 하면은  이제 다른 사람이 옆으로 자 꾸 그렇게 말해 주면 좋을 것인데, 이 순 가짜배기가 말이지, 가짜배기가 한 번 설 교 듣고 두 번 들으니까 ‘아이고, 또 자꾸 재벌 잔소리한다’ 이러니까, ‘장 새 벽으로 나와 봐야 장 그거니까 새벽 기도 나갈 필요가 있는가?’ 네까짓 거는 몰 라, 어떤 자라도 너는 몰라! 네까짓 게 무슨 구원을 얻어?  기본구원이나 얻지. 건 설구원은 하나도 없어!

이제 이 세 가지를, 처음에 두 가지,  또 세 가지, 삼삼 구, 셋씩이니까 세째  것이 뭐이지? 감사, 세째 것이 감사, 또 네째 것은 뭐이야?  예? 수절, 보수, 보수, 이렇 게 힘들여서 생명까지 바쳐서 해 준 것을 이걸 업신여기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겠 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믿어 갈수록이  점점 하나님의 노가 더 짙어지는 자 있고, 또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만족이 짙어지는 자 있고, 하나님의 아 주 근심이 점점 많아져 가지고 근심이 켜져  가는 사람이 있고 기쁨이 커져 가는 사람 있고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예수 믿어 갈수록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자 있고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자 있고, 이러니까, 우리가,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 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하는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고, 자, 그러면 노 풀면 뭐 할라고? 노  풀면, 노를 풀어서 받는 결과는 뭐입니까? 노 를 풀면 뭐이 됩니까? 노를 풀면, 노를  풀면 전부가 치료가 됩니다. 노를 풀면은 화가 다 달아나 버립니다. 병이 다 달아나 버립니다. 노를 풀면은 모든 실패가 다 달아납니다. 가련하고 천하고 죽는 거, 모두 다, 노를  풀면 우리에게 하잖은 것은 전부 다 싹 소멸돼서 치료돼 버립니다. 주님의 노를 풀면  주님의 노만 풀면 주님 이 모든 크고 작은 것을 주권적으로, 개별도 다 주권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움직 이고 있는데 주님의 노를 다 풀었는데 무엇이 우리에게 해하겠습니까? 우리가 원 치 안하는 모든 것은 다 치료되는 것은 주님의 노를 푸는 거는 다 치료됩니다. 또 금생과 내세에, 영과 육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거,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이 우리에게 오는 데는 뭣 하면 옵니까? 예? 기쁘시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 의 모든 좋은 것은 우리에게 다 와.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노를 푸는 것과 기쁘시 게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우리 할 일이다 하는 것을 어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히브리 10장 26절 이하를 집에 돌아가서 자꾸  읽어 봐요. 그래서, 다른 데서는 딴거 가지고 하는데 우리 총공회서는 장로 목사 이렇게 성경 시취에는 신 명기 28장을 다 외우라 했어요. 28장만 외워도 어짜면 망할 줄 알고, 이거 망할 것 을, 성경에 어떻게 하면 망한다 하는 그걸 해 놨는데 망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 런 짓을 한다 그말이오. 또 복받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그런 일을 해. 아, 복 받는 것과 망하는 길은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데  거게 다 있는 건데 뭐 그걸 떠 나 가지고 제가 알뜰히, 부지런히, 열심히 하고, ‘내가  이 직장에 충성하면 되겠 지. 알뜰히 하면 되겠지. 열심히 하면 되겠지. 모든  걸 깍쟁이같이 단단히 거머쥐 고 요렇게 흉측하게만 하고 인색하게만 하면  되겠지.’ 안 돼. 그거 가지고 되는 거 아니야. 지나치게 아껴도 가난해진다 했습니다. 성경에.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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