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인도

 

1981. 4. 3. 금밤

 

본문 : 출애굽기 13장 17절-22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찌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선지자선교회 애굽에서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를  하셨으며 또 어떤 형편들을 만났으며 또 그때마다 어떻게 해서 형통하게  되었던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예표인  양의 피로 멸망에서 해방을 받았고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보배피로 해방을 받아 하늘나라를 향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과정과 오늘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과정이 꼭  같습니다. 비슷한 게 아니라 내용은 꼭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되 아주 블레셋 땅으로 인도하면 아주 가깝습니다. 가나안에 가기가  가깝고 쉬운데 하나님이 가깝고 길 좋은 그리 인도하지지를 아니하시고 험악하고  아주 통과하기 힘드는 광야로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이대로 너희들은 따라오라내가  가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너희들의 인도를 나타내리니 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아서 따라오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실 때에  가깝고 좋은 길을 두고 험하고 먼길로 둘러서 인도하셔서 홍해 바닷가에  이르렀습니다. 그 바닷가에는 다른데로 갈래야 갈 수 없고 아주 그만 앞에는  바다고 뒤에는 애굽 병정들이 추격하고 하니까 아주 손통에 물려서 어떻게 달리  피난할 수가 없는 그런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러니까 바로왕이 자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우리를 늘 축복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되 저 블레셋으로 인도하면 빠르고  평탄한데 이 홍해 바닷가에 다른데 피할 길도 없이 딱 몰아붙인 것은 우리가  추격을 하면 그들이 전쟁을 보고는 두려워서 항복을 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것이니까 우리가 안심하고 이 기회에 추격하자  하면서 병정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왔습니다.

그들이 볼 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하나님하고 이렇지마는 몇가지 재앙으로서  이렇게 그런 이적은 보였지마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은 그들로 하여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이렇게 아주 절단나는 그런 길로 인도하는 것으로 애굽  사람들이 본 거와 같이 오늘도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을 천국을 향하여  인도하실 때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 예수 믿는 사람들 과연 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계시는가보다 무엇이 술술 피어서 형통하게 잘 된다 이렇게 보여지는  이런 길로 인도하시지를 아니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필 험한 길 먼 길 이제는  꼼짝 못하고 아주 전멸이 되어지는 이런 길로 인도했습니다.

이제는 뭐 멸망은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애굽 군대는  이스라엘의 뭐 몇십배가 아니라 몇백배 강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무 군력이라는  것은 없지 앞에는 홍해가 딱 가로막혀 있지 이러니까 저거 예수 믿는다고 저거  하나님 인도 받는다고 해도 이제 저들은 멸망받는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가  이제는 이 홍해바다 가에서 애굽 병정들에게 다 도륙을 당해서 전멸당하게 된다  이렇게 그들이 다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 믿는 신자들을 인도하실 때에 안 믿는 사람들이  보기도 저거 이제는 예수 믿다 망했다 예수 믿는 자신이 볼 때도 이제는  꼼짝없이 망했다 예수 믿다 망했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아 가지고 그래  했으니까 오늘도 예수 믿는다고 주일 지키고 성경말씀대로 한다고 애를 써서  예수를 믿다가 이렇게 망하게 됐다 하도록 요런 순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그렇게 인도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는가 그들이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믿음없는 사람들은 원망 불평도 했지마는 믿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지금 어려움을 당해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애굽 병정들에게 우리는 다 전멸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또 인도하시느냐 하면 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서 가라고 했는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갈 일이지 네가 나한테 부르짖기  때문에 모세야 부르짖느냐 책망을 하셨습니다.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어디로 인도하느냐? 그래도 돌아서서 어디로  인도하면 좋을건데 홍해바다 가운데로 바로 인도합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바다 가운데로 쑥 들어갑니다. 이러니까 들어가면 죽을 지경이니 이거 어째야  되나 하고 부르짖으까 왜 네가 그래 하느냐 그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바다를  가리키면서 그리 인도해라 그리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가라 해라 이 백성들이  홍해바다로 들어섰습니다. 들어서니까 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가지고 산같이 이래  쌓이고 가운데는 버쩍 마른 대로가 났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홍해바다를 무사히 건넜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건너가는데  통과하는데 우리는 통과 못할 게 뭐 있겠느냐 하고 그 사람들은 꼭 같은  홍해바다에 마른 그 길을 통과했는데 애굽 사람들이 통과할 때는 물이 합쳐  가지고 몰살을 당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인도하시는 그 인도가 인간이 보기에는 전멸되는 그런  이제는 뭐 살 틈도 없고 도무지 피할 길이 없는 이런 아주 전멸을 당하는 이런  길로 인도하셨지마는 결과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그 길이 멸망하는 길이 아니고  형통한 길로 잘 건넜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원수되는 그 원수는 거기에서 절단이 나버려서 다시는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해하지를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가지 재앙 내릴 때에는 그때는 그래도 그렇게 저희들이 느끼지는  못했지마는 이번에는 아 우리의 하나님의 권능이 참 크시다.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 보기에는 꼭 전멸 당할 길 같아도 안심하고 인도를 따라갈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크시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과  하나님의 인도는 어떻든지 상관없으니까 인도만 따라가자 하는 그런 깨달음과  결심이 그들에게 생겨졌던 것입니다.

오늘도 꼭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다니엘을 인도하신 것이라든지 또  신약의 사도바울을 인도하신 것이라든지 보면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서 사는 그것이 오늘 우리는 어떤 것을 따라가느냐? 성령의 감화 성경 말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세 가지. 그저 죄 안된 길 가야 됩니다. 죄 안된 길.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길, 하나님 모시고 가는 길. 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인데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를 인도하셔서 자기  현실에서 주님의 피공로의 인도를 받는 것은 어떤 것이 피공로의 인도를 받는  것인고 하니 죄 안되는 아무리 돈이 생기고 권세가 있고 무엇이 형통해도 좋아도  죄되는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 죄 안되는 길, 그리 가면 재물이 손해가고 무엇이 뭐 절단나고 손해가도 죄만 안 되는 길, 죄만  안 되는 길. 하나님의 뜻에 대립되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 의로운 길,  하나님 배반치 아니하고 모시고 갈 수 있는 길, 성경 말씀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길, 자기 마음 속에 성신의 감화가 끊어지지 안하고 성신의 감화가 자기에게  감동이 되어지는 그 길 이 길을 자기 현실에서 찾아서 사는 것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는 그 인도를 받는 길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체의  이스라엘이요.

어릴 때기 때문에 그때는 환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렇게 인도를 했지마는  오늘 우리는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 이 셋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 셋에  거리끼면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에 거리끼면 돈이 생겨도 우리 갈  길 아니고 취직이 좋은 취직이 되어도 우리 갈 길이 아니고 죽음에서 빠져  나온다 할지라도 우리 갈 길은 아니고 이 세 가지에 거리끼지 아니하는 그 길이  우리 갈길이니 이 세 가지에 걸리지 아니하는 그 길을 가면 이 세 가지에는  걸리지 안하기는 안하지마는 이 길을 가면 살림살이가 절단난다 절단이 나도  우리가 갈 길 사업이 절단난다 사업이 절단나도 우리가 갈 길 사업이 잘 돼도  우리가 갈 길 이리 가다가는 이 가정이 절단나게 돼. 가정이 절단나도 우리가 갈  길 가정이 잘 돼도 우리가 갈 길.

이스라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서 가는 거와 같이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와 피가 인도하는 이  인도를 따라서 가는 것이 우리 갈 길입니다. 이것이 불기둥으로 인도를 따라가는  거와 꼭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는  백성들은 다 전멸이요 다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 이 세 가지가 이스라엘을 불기둥 구름기둥이 인도하신  것처럼 이 세 가지가 우리 현실 현실에서 인도하시는데 이 인도를 따라가야  우리에게는 영과 육의 성공도 있고 구원도 있고 평강이 있지 이 세 가지가  인도하는 그 길을 떠나면 예수 믿는 사람은 그만 멸망입니다. 맛잃은 소금처럼  천해지고 멸망되고 모든 것이 참 비참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세 가지가 인도하는 길, 요 세 가지가 인도하는 길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 세 가지에 거리끼면 우리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아닙니다.

요 세 가지에 거리끼지 안하고 이 세 가지와 일치가 돼야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이 세 가지를 떠나서 가는 길은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요 세 가지를 맞추어 가지고 가는 것이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 가지 맞추는 것. 무엇을 맞추는 것. 제일 처음에는  주님이 사죄를 줬기 때문에 죄를 사해 주셔서 이제는 죄없는 사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없이 죄없이 사는 고 길이 우리 가는 길이라 그 말이오. 죄를  범하고 가는 길은 이거는 주님의 피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 수 있는 그 생활을 그 직장을 그 모든 사업을 그 생활을 우리가  우리 생활인 것을 알고 우리가 해야 됩니다.

또 우리가 현실에서 불의가 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불의가 되는 길은  우리가 가지 못하는 길입니다. 의로운 길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 그 길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또 하나님과 화평.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그 길이 하나님 모시고 직장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 모시고 일할 수 있고 하나님 모시고 돈벌이 할 수 있고  하나님 모시고 사업할 수 있고 하나님 모시고 장사할 수 있고 하나님 모시고 할  수 있는 그 장사 그 사업 그 직장 그 취직 그 출세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도하시는 우리가 갈길이지 하나님 거슬리면서 가는 길은 하나님이 우리  인도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겨 취직하는 어겨 취직되는 것, 어겨 사업되는 것,  어겨 돈벌이 되는 것, 어겨서 무슨 성공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가 아닙니다. 또 죄가 되는 그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고 첫째 살필 것이 예수님의  피로 살펴야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나 내가 지금  직장이 없는데 이 직장을 갈까 저 직장을 갈까 어느 직장으로 취직을 할꼬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느 직장이 돈벌이가 많이 되는가 그것은 마귀의 시험에 든  생각입니다. 또 어느 직장이 수월한가 그것도 마귀가 주는 유혹입니다. 어느  직장이 장구할까 그것도 마귀가 주는 유혹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직장이든지 사업이든지 장사든지 모든 것 시작할 때에 돈을  문제삼지 말고 평안하고 된 것을 문제삼지 말고 그 장사가 길 것인가 짧을  것인가 그것도 문제삼지 말고 우리는 직장이나 모든 일을 택할 때에 자기  현실에서 내가 지금 이래 볼까 저래 볼까 어떻게 할까 자기가 현재에서 자기가  행할 길을 찾을 때에 첫째가 예수님의 피로 찾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찾아야 돼요.

자 이 길도 아 이 길도 죄가 된다. 죄 안되는 길을 찾으니까 좋고 넓은 길은 다  죄가 되고 하필 쓰지 못할 그 길이 죄 안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암만 나빠도 그  길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또 두 번째는 찾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이제는 맞은  길이냐 하나님의 뜻에 배치가 되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은 길이야 되는데 아  이 길도 이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맞지 않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다. 이것도 하나님 뜻이야 된다. 이것도 하나님 뜻이야  된다. 이것도 하나님 뜻이야 된다. 하나님 뜻에 위반되지 안하는 길을 택하니까  내나 아까 죄 안 지으려고 택한 길, 그 길이라 그 말이오. 둘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렇지마는 이것이 하나님 모시고 사는 길이냐? 이 사업은 어떠냐?  이 사업은 하나님 모시고 사는 길은 아니다. 하나님 모시고는 이 사업 못한다 이  직장 이 모든 무엇은 이거는 하나님 모시고는 못산다. 이거는 하나님을 배반해야  된다. 하나님 배반해야 되는 거는 다 제거해버리고 하나님 모시고 할 수 있는 고  일을 택하니까 내나 처음에 발견한 그 길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주의 피의 인도는 받았습니다. 주의 피의 인도는 받았소. 주의  피의 인도는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차적으로 심사할 것은 보자 그런데  이제 내가 생각으로만 이럴게 아니라 신구약 성경 말씀에 비춰보자. 자 그러면  이 길은 아깝게 해서는 이 길은 해서는 안된다 이 취직은 하면 안된다 했는데 왜  안되느냐? 성경 말씀 가지고 따져 보자 성경 말씀 가지고 따져 보니까 아니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해서 아까 처음에 택한 그 길이 성경 말씀에 위반되지  않는다 했으면 이제 두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랬는데 셋째로 마지막으로는 자 그 길을 갈라고 하니 어떠냐? 그 길을 가려고  하니 좋은 길 다 놔두고 험한 그 길을 택해 가려고 하니 마음이 평안하고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상쾌하고 또 아까 심사는 했는데 그 길을 갈라 하니까 마음이  꼬꾸름하이 불안합니다. 불안하면 성신의 감화의 길이 아닌가 심사를 해야  됩니다. 왜 불안하냐? 불안한 것도 여럿이 있는데 돈벌이가 적게 되니 돈  욕심내는 물욕이라는 그 물욕이라는 그 마음 그게 들어서 불안케 하는 것인지  안일 욕심이라는 그게 들어서 불안케 하는 것인지 무엇이 불안케 하는 것인지  심사해서 보니까 양심은 불안치 아니하고 이런 욕심 저런 욕심 모든 욕심들이 또  가족들이 들어서 이와 같이 반대할 수 있느냐 그런 걸 생각하니까 불안하면  그거는 성신의 감화로 불안한 것이 아니고 그거는 마귀적으로 불안한 것입니다.

그런 걸 다 버리고 이 길은 가려고 하니 마음에 참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피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니까 기쁘고 즐겁고  개운한데 돈을 생각하면 근심이 술술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것은 성령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신의 감화가 자기에게  기쁨이 되어지고 감동이 되어지면 요 길이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우리를  인도하는 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이 길입니다.

이래서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의 인도를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해  가지고 가나안을 가려고 하는 그 걸음에 제일 첫째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아서 간 이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꼭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여호와가 인도를 했는 그러면 오늘  우리는 무얼로 인도합니까? 오늘 우리를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성령과  진리와 피 이 셋이 우리를 인도한다는 이 해석이 틀렸습니까? 이 해석 외에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까? 우리가 공연히 덤벙 덤벙 해 가지고 자꾸 지내보내지 말고 우리가 비판하고  평가하고 판단해봐야 됩니다.

이스라엘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한 그 인도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앞서가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너희들을 인도하겠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면 오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뭘로 인도하십니까?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으로 우리를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 외에 우리를 인도하는  인도가 무엇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거와  같이 오늘은 우리는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로구나 그거야 내나 오늘 우리에게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로구나  요것을 굳게 잡아요. 해석이 틀렸으면 해석이 틀렸다고 자기는 부인해버리든지  그러면 이 해석이 맞으면 맞다고 확정을 지우라 그 말이오.

그러면 그들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는 그 인도를 딿지 안하고 떠났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이 유지가 되겠습니까? 그것도 한번 좀 생각해봐요.

유지가 되겠습니까?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가지 안하면 하나님을 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떨어질 것 하나님이 그들을 책임지지 안하실 것.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지 아니하실 것. 그러면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애굽으로  잡혀갈 것밖에 더 있습니까? 애굽으로 잡혀가면 그들 이스라엘 때문에 애굽  사람들이 전멸을 당했는데 집집마다 소 말 양 나귀 사람 맏새끼는 마구  몰살했는데 그 재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지금 녹아났는데 아이 애굽 사람이  녹아났는데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권능으로 인도하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포기하시고 그들이 잡힐 것은 애굽 사람에게 밖에 잡힐 데가 없으니까  애굽 사람들이 그 사람들과 어떻게 했겠느냐 말이오. 멸망 외에 다른 길이  있습니까?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봐야 됩니다.

오늘 믿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인도를 떠나도 밥을 먹고사니까 사는 줄  알지마는 우리는 이 밥 먹고사는 것 우리 생활 아닙니다. 우리 구원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지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사십 여 년 광야에 돌아다녔지마는 그 시체가 믿지 아니함으로  광야에서 다 엎드러졌다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전부 송장됐습니다.

사십 년동안 고생해도 송장이 되고 가나안 가지 못했습니다. 광야 송장이 되고  말았소. 이 세 가지 인도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뭐 몇 십 년을  살아도 백세를 살아도 자기는 광야같은 이 세상에서 다 멸망을 받고 가나안에 갈  분량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이 이 두 가지 인도를 받지 안하면 그들은 멸망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거와 같이 오늘 우리 기독자들이 이 세 가지 인도를 받는  데서만 우리 구원이 되지 이 세 가지 인도를 떠나서는 제가 뭐 어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어떻게 권위있는 사람이 되고 어떻게 뭐 개혁을 한다 혁명을 한다  선교를 한다 큰 목회를 한다 부산에 한국에 제일 큰 교회 목회를 한다 아무리  해도 자기 구원은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정을 해야지요. 요 세 가지 인도를 받지 아니한 고 현실에는  자기 구원은 없습니다. 요 세 가지 인도를 받는 데에서 하나님에게 대한 것을  다시 배울 것도 있고 깨달을 것도 있고 시발할 것도 있지 이 세 가지 인도를  받지 안하면 멸망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그것으로서 안 갈 것, 성경 말씀대로가 아니라면  안 갈 것, 주님의 피의 이 구속에 거리끼면 안 갈 것, 주의 피에 거리껴도  우리가 못 가는 것, 성경 말씀에 거리껴도 못 가는 것. 성신의 감화감동이 되는  그 감동되지 않는 길도 못 가는 것. 이 세 가지가 인도하는 이 세 가지가  거리끼지 안하고 이 세 가지와 맞는 이 세 가지와 동행할 수 있는 이 세 가지와  일치되는 사죄와 동행할 수 있고 칭의와 동행할 수 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과 동행할 수가 있고 성경 진리와 동행할 수가 있고 성신의 감화와 동행할  수가 있는 요것이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은 나타납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이걸 떠난 데에는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확정지워요 단정지워요. 우리가 그저 술술 자꾸 창증병 든  사람이 음식은 다른 사람 배나 자꾸 먹고 싶고 먹고 나서는 또 먹고 나서는  설사하고 먹고 나서는 설사하고 몸이 띵띵 부어 가지고 죽는 것처럼 듣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 이래 가지고 우리가 구원이 절단납니다. 요거 확정을 지웁시다.

이 세 가지 인도를 따르는 그때만 구원이 있고 하나님 우리와 동행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이 세 가지 인도를 떠난 데에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악령이 그를 사로잡아서 제 마음대로 멸망을 시킬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요 세 가지 인도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없고 하나님의 권능도 없고 하나님의  보호도 없고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으로서는 요 세 가지 인도를 떠나면  자기는 멸망받는 그 길입니다.

요것을 돌아가서 우리가 얼마든지 새김질합시다.

그러면 이렇게 이 세 가지가 인도하는 그 길. 이 길은 블레셋으로 가면 가깝고  쉽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필 길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지 안하고 광야로  인도했었습니다. 광야, 광야로 인도했소. 오늘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요한계시 18장에 보면 사도요한을 성령님께서 그를 광야로 인도해 가지고 광야로  가보니까 눈이 뜨여 있습니다. 광야에 가서 보니까 음녀도 보여졌고 용도  보여졌고 음녀의 금잔도 보여졌고 온 세상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도  보여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긴다는 것도 보여졌습니다. 광야에 갔을 때에  광야는 첫째가 아무도 없는 의로운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어짜든지 아무리 도시에 살아도 고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이  한 방을 여럿 있어도 요 세 가지 인도를 받으면 거기에서 고독이 됩니다.

외로와집니다. 고독이 됩니다. 또 아주 허허벌판입니다. 허스럽습니다. 텅 빈  것같이 아기자기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참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공간같이 텅 빈 것같이 이렇게 허무해 보이는 길입니다. 이  길 따라가는 길이 아주 허허벌판같이 집도 짓고 집을 짓고 딱 들어앉아서  침대놓고 요이불 속에 들어가야 참 따뜻하고 좋은건데 빈들판에 그런 게  있습니까? 외롭고 허수롭고 거기에는 아무런 이 세상적인 무슨 재미나 또 무슨  건설이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세상적인 재미가 없는 그런 무엇이 구비되어 있는  그런 것이 없는 길입니다. 참 맹물 한가지요.

요 세 가지로 인도를 받아가면 외로와지고 텅 비고 집도 뭐 가족도 아무것도  없어. 이런 것이 없어. 이런 길로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한방에 있어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수십명이 한테 있어도 이 세 가지가 인도하는 길은 반드시  광야성 이 광야성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 광야성으로 인도하는 이  광야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뭣 때문에 광야로 인도했겠소? 블레셋으로 저런데로  다른데로 인도하면 눈에 보이는 것도 많고 들리는 것도 많고 접하는 것이 많고  욕심나는 것도 많고 탐스러운 것도 있고 많이 있는데 그런 걸 접하면 거기에  속화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가지고 사람들 접하는 가운데서 당장  부패해져버렸습니다. 그런 걸 접하는 가운데에서 속화되어지고 하나님에게  향하는 그 모든 것이 갈라지고 나누어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이스라엘하고  단 둘이 딱 합치되기 위해서 소원해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재미가 아무  재미 있는 거 없어. 왜 재미가 있는 재미가 없는 그런 이 세 가지 인도를  따라가면 왜 아기자기 재미있는 그런 것이 나타나지 그런 것이 없는 그런 길인가  왜 의로운 길인가 아무런 함축성이 없이 허허 벌판같은 그런 길인가? 이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와만 밀접해지기를 원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가 인도하는 길에 가견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부의 길은 광야입니다. 다만 거기에서 이걸 초월해서 하나님 한분을  상대하는 여기에 도달하면 그 길은 참 말할 수 없는 기쁨의 길이요 가치있는  길이요 능력있는 길이지마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주 쓸쓸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그런 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는 그 길을 현실에서 가려고  보니 광야라 이거요. 광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길을 가기를 싫어합니다.

달라들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인도하는 대로의 현실에서 그것을  택하면 껍데기는 광야인데 이 광야 광야이기 때문에 아무 미혹이나 또 그  유혹이나 속화나 이런 것 없이 외로우니까 하나님하고 가까와져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은 한없는 평강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여호수아 갈렙 모세 이런 사람들은 이 광야로 인도하는 여기에서  굉장한 재미를 봤습니다. 재미를 봤지마는 믿음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원망 불평이 앞섭니다. 믿는 사람이 외로움을 각오해야 됩니다. 외로움을  각오하지 안하면 주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외로움을 각오해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 인도하시는 길은 외로운 길이라는 것 아무리 한자리 사람이  수십명이 있어도 주님의 인도하는 그 길은 외로운 길입니다. 또 아주 허한  길이요. 아무런 아기자기에 고런 재미가 없는 길입니다. 땅 위에 온갖 붙일 그  재미가 없으니 마음에 붙을 재미가 붙을 자리가 없지 텅 비었으니 의지할 것이  없지 외로우니 동행할 이가 없지. 외로우니까 하나님 찾고 의지할 것 없이 텅  비었으니까 하나님 찾고 아무런 재미붙은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하고 재미를 붙일  수밖에 없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이 우리들을 하나님 인도하시는 길인 것을 깨닫고 자기가  광야 아닌 도시 주의 인도를 따르면 그런 아주 호화로운 그런 도시와 같은 그런  것을 만나지리라고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오늘 믿는 사람들이 사업을 경영하든지 가정을 경영하든지 무슨 어떤 걸  경영할지라도 심지어 신학교 같은 그런 신학교 같은 그런 걸 경영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는 첫째가 세 가지로 인도하는데 인도를 받으면 광야로 인도하신다  하는 요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인도하는 그 인도만이 내가 따라갈 길이요  하나님이 날 인도하시지 않는 그 길은 사망이니까 노아의 방주 밖과 같으니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것. 요거 확정짓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반드시 광야다  하나님께서 날 광야로 인도하신다,.

대궐에 살아도 광야로 인도하시고 아주 수많은 사람의 머리가 되어서 사람의 성  속에 파묻혀 있어도 자기는 성령이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시는 인도의 길은 광야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 사업은 광야인 사업이요. 자기의 직장은 자기의 모든 경영은  심지어 신학교도 하나님이 인도하는 신학교는 그 광야로 인도하는 그 인도라 이  광야성, 이 광야성을 깊히 깨닫고 이 광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갈 때에 이  광야 되어 있을 때에 광야적일 때에 이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의심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필연의 것이요.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를 하시는 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데서든지 이 세 가지 불기둥 구름기둥 이 세 가지  우리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인도는 이 세 가지인데 이 인도를 딿지 안하면  구원이 없고 그 걸음은 전체가 멸망입니다. 이 인도를 따를 때에는 반드시  광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자기가 대궐에 있어도 광야  생활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세 가지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어떤 사업을 해도 그 사업이 광야성이 없으면 성령의 사업은 아닙니다.

어떤 신학교라도 광야성이 아니면 하나님의 인도를 벌써 떠난 것입니다. 이  광야로 인도하신다는 것.

요한계시록에 보면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을 많이 말해놨습니다. 그러면 광야로  인도하시는데 무슨 일을 닥쳤는가 홍해바다를 닥쳤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소. 이러나 지나가고 보니까 인간이 보기에 어려웠지 인간이 보기에  멸망이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 자기에게 대란한 신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신실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는 홍해로  인도했을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솜씨 보자 하고 큰 구경거리 났기 때문에 기뻤지  근심되지를 안했습니다. 두렵지가 안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라가면 수월하고 형통할 줄 알아도  반드시 이스라엘이 홍해를 만난 거와 같은 이런 일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여기에는 한번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몇 십 번을 당할런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홍해와 같은 이런 어려움을 진퇴양란으로 제 삼자가 보나 본인이  보나 역사를 보나 통계를 보나 이거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하는 그 일을  봉착했으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갔는데 영감대로 성경진리대로 예수님의  대속을 맞추어서 살았는데 이런 어려움이 닥쳤으면 이 어려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이 어려움이 당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낙망하고 그날밤에 그 녹아난 거와 같은 이런 사람으로 사는 자도 있고 모세와  같은 그런 신앙의 사람들, 기쁘고 즐거워하는 그 기쁨으로 사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계약이요.

우리 구원의 도리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에 그 결과가 어찌됐습니까?  이 어려움에는 보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권능을 구경했고 또  자기들에게 없던 믿음이 생겨졌고 자기네들을 괴롭혔던 것은 거기에서  절단났습니다. 지금도 꼭 같습니다.

그러면 이 홍해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루어진 그 결과가 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권능 구경했고 하나는 이제는 따라오면서 괴롭히던  원수가 다시는 보지 못하도록 끝장나버렸고 절단났고 자기네들에게 없던 감사와  기쁨과 믿음이 생겨졌습니다. 이 세 가지가 났습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인도를 받을 때에 반드시 광야로 인도한다는 것을 이것을  미리 선입적 지식으로 우리가 가져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말해도 이걸 느끼지를  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심지어 교회에서 무슨 사업하는 것도 문채있고  광채있고 번쩍거리는 것, 아주 사람으로 인성을 쌓는 세상 권세자 모양으로  이렇게 옹호하고 환영하는 것이 많이 있는 광야 정 반대의 광야 전 반대의  현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다 시험에 들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다가도 광야가 나오면 치워버립니다. 광야가 나오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습니다. 돌아섭니다. 광야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의 길입니다. 거기에 오묘가 있습니다. 무슨 오묘, 홍해바다 만난 오묘.

무슨 오묘, 큰 낭패 절단 큰 환란. 제 삼자도 보고 두여워하고 놀라고 이런  참으로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어려움.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려운 일.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려움에는  애굽은 녹아나고 맙니다.

이십사금만 남아있을 수 있는 불은 금 외의 것은 싹 타버립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해결하지 아니하면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려움에 우리가 따라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거기에까지 우리가 주를 따라서  갔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보호하시니 우리는 그 능력으로 구원얻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지 못한 것은 전체가 전멸돼 버렸습니다. 이것이 비로소  우리가 이별되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믿는 정도 고 사람 정도가 다 각각 다른데 고 사람의 정도로서  자기에게 적이 되어있는 그 모든 영적이나 육적이나 적이 되어있는 그 모든 것이  소멸되어지는 것은 그게 소멸될만한 데까지 주님을 따라나가야 소멸이 됩니다.

그전에는 소멸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광야까지 갔기 때문에 홍해바다까지 갔기  때문에 애굽이 절단나지 홍해바다까지 인도를 따라가지 안했으면 애굽사람은  저들과 가까와지고 저들은 다 전멸시키지 애굽 사람들이 전멸당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를 따라가는 이 걸음이 걸음에 앞에 어려운 게 있다고 순종  안하는 고것이 어리석은 사람이요, 앞에 어려움이 있을 고 어려움이 있을 고때에  고 어려움을 만나서 고 어려움이 어떤 어려움이냐?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고런 어려움이 닥칠 때에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에게 역사할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는 구원있고 하나님 권능 아닌 모든 것은  박살당하고 소멸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미리부터 선입 지식을 가지고 이 세상을 향해야 되지 이런  것을 평소에 더 굳게 다지고 다지고 확고한 지식으로 가지지 아니한 사람이 이  세 가지 인도를 받아 광야에 후퇴하지 않고 쭉 따라서 광야로 들어가고 이  인도를 받아서 앞에 죽는 것밖에 없는 이 손골목 홍해바다까지 따라나가겠느냐?  이걸 보고도 닥치면 피하고 안갈라 하는데 이 지식을 확고히 가지지 안하면  이렇게 주님의 인도를 따라서 광야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인도를 따라서  홍해바다에 가지 않습니다. 거기에 가지 안하면 제가 해도 살 수 있는 그  자리인데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나타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내 목숨을 살릴 수 없다는 거기까지 갈 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권능으로 내가 구원을 얻게 될 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은 애굽 병정들같이 다소 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다음에 계속해서 새겨서 요새는 지금 우리는 자꾸 이 말씀  가지고 지금 새김질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새기고 얼마나 우리가 확고하게  가져야 될런지 너무 시간 많이 갔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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