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생명

 

1985. 1. 10.새벽

 

본문 : 요한계시룩 3장 1 절∼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횐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둘을 지어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인데 죄와  허물로 죽은 것은, 죄는 하나님과 사이가 가리워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죄요 또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이 죄입니다.

허물은, 자기가 알고 행치 아니하고 아닌 줄 알고 자꾸 그 행위를 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이 죄로 우리의 영이 죽었고 그다음에는 육이 차차 차차 죽어서 육에게 속한  언행 심사의 모든 것이 다 차차 죽어서, 죄로 죽은 자가 이 세상에서 몇 해를  살든지 차차 차차 살면서 늙어지고 쇠해지고 마지막에는 죽는 그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것이 차차 죽어서 없어지는 자 있고 죽은 것이  살아남으로 죽었는데 없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죽은 것이 살아남으로 죽었는데  없어지는 게 있고, 또 죽은 것이 아주 죽음으로 없어지는 거 있고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중에 이 두 가지로 없어집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죽은 것이.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 생명으로 옮겨짐으로  없어지는 거, 예를 들면은 그 생명이 순교한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사망에서  완전히 옮겨졌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고, 그 사람이 의를 행함으로 하루 살아서  그만치 늙어지고 쇠해졌다면 그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없어진 것이고,  그 사람이 하루 생활을 죄를 지음으로 하루라는 그 시간에 늙어지고 쇠해졌으면  그 사람은 완전히 사망으로 옮겨져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 사망으로  옮겨져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났느냐 하면은, 몇 가지로  우리가 살아났다고 늘 공부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로? 저 들어 높이 들어야 내가 여기 보이지. 여기 여반에 좀 높이 들어  봐요. 녜. 모두 보니까 요렇게 가리키는데, 셋으로 요래 가리키는데. 녜, 고것은  맞습니다. 사람들이 대개는 둘로 살아났다 이렇게 말하는데 셋으로 살아났다는  요 교리가 바릅니다. 왜? 하나는 구속 받은 자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하는  요거는, 구속 받은 자가 요래 살아났다 하기 때문에 구속이 먼저 해방을 시키고  난 다음에 둘로 살아나는 것이지 구속 받지 안한 사람은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택함을 입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은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이 이 세 가지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는 합해서 우리의 생명입니다. 또 이 세 가지는 합하여  우리의, 생명의 힘입니다. 이러니까, 누구든지 생명이 자기에게 연결되어 있으면  그 육도 자기에게 필요없는 거는 다 제거하고 필요있는 것은 육성을 시키는 것이  그것이 생명이 하는 일입니다. 생명은 자기에게 상처가 있으면 썩는 것은 자꾸  썩는 그거는 없애서 치료를 하고 치료해서 낫게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생명  역사인데, 우리는. 이 생명이라 말은 이 생명이 곧 영의 생명이요 또 인격의  생명이요 또 도덕의 생명이요 그의 지혜와 능력이 생명이요 마지막에는 그러면  그 기관되는 마음과 몸의 생명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은 이미 영생하는 것으로 중생됐다 그 말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연결된 이 연결이 다시 끊어질 수 없는 연결로 연결됐다 하는 그말입니다.

끊어질 수 없는 연결로 연결됐다. 우리 마음과 몸 이것이 육인데, 이것도  여러분들이 배운 대로 그대로 실행을 해 본 사람은 '아, 마음과 몸은 이것은  육이 분명하다. 영은 마음이 아니요 몸도 아니요 영은 별개의 존재가 있다' 하는  것을 알지마는 자기가 실행하지 안한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이러니까, 오늘 벌써 기독교가 근 이천 년을 내려왔지마는서도, 근 이천 년동안  예수 믿는 교리와 신조에 대해서 조직 신학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조직  신학이 있는데 그 조직 신학에 '사람이 영과 육이 있다 영육이 있다. 이런데,  영은 뭐이냐? 영은 마음이요, 육은 고기 덩어리라.' 이렇게 완전히 영은  부인하고 영이 없는 심신만 가지고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안하다 이라니까 그 영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도 죄 안 짓는 사람이 없는데 그 마음으로 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는 것이 그게 다 죄되는 것인데. 우리가. 중생된 사람도, 목사님도 중생했을  것이고 장로님도 중생했을 것이고 또 자신이 중생됐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고  있는데 중생된 자기로서 죄 짓는 그게 경험이 있다 말이오. 죄라 하는 것은  말씀을 어긴 것은 다 죄니까,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이도 그저 일반적인 그런 뭐  십계명에 뚜렷한 그런 죄는 짓지 안하지마는서도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순종하는 것이 나충성하는 것이나 그런데서는 항상 하나님의 요구에, 요구에  불만스럽고 미달되지 충족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늘 죄인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아, 중생된 영이 죄를 짓지 안하다니?' 이라면서 심지어 여게 어떤  교회 바로 요 옆에 있는 교회서는, 그 사람들은 나를 들어서 욕을 하고 자꾸  이라지만 나는 교회 이름도 차마 그걸 말 못 합니다. 그 교회 이름도, '그  교회서 그랬다, 아무것이가 그랬다' 그렇게 말을 안 합니다. 물론 잘못된 것은,  교리와 신조와 그 도리를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말하지 안하고 하는  것은 거게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말 하지마는서도 그 사람을 들어서  그래 하면은 혹 그 사람 구원 이루는 데에 내가 한 말이 방해가 되어지는 날이면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참람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옆의 교회서는 '중생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 중생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 중생된 마음은. 우리가 중생되고 난 다음에 마음으로 얼마든지  실수하는 걸 알 수 있지 않는가?" 육이 범죄한다 그렇게 말한다고. 육이라 하는  것은 해석을 하기를 고기 덩어리만으로 해석하니까 '고기 덩어리 이게 무슨 죄를  짓노? 고기 덩어리 이게 저 혼자 무슨 죄를 짓노? 마음이 먼저 끌어야 고기  덩어리가 끌려 가 가지고 죄를 짓지.' 이래 가지고, 자기가 죄 지어놓고 '내  고기 덩어리가 죄지었지, 이 육이 지었지 내가 죄 지었느냐' 그렇게 책임을 전  가시킨다고. 그렇게 알지도 못하고 훼방을 하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심판 알면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모두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실행해 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가 근  이처녀이나 돼 가지마는서도 성경에 말해 놓은 영, '성령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또 '거듭 난 것은 육이 아니요 영이라' 이랬는데, 영이라 이렇게 밝혀  놨지마는서도 영을 마음을 영이라 해 놓으니까 그 사람들이 깨달을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거는, 깨닫는 것은 행함으로 깨닫는다 고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깨달음은 분명히, 자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고기 덩어리가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행할 때에 마음은 죄를  지을라고. 마음은 돈 뭉텅이를 보고 갈라고, 마음은 돈 뭉텅이 보고 갈라 하는데  영은 가면 안 된다 하는 것이 자기 속에 있는 걸 환하게 알 것입니다. 또 자기는  지금 제가 옳다고 떠드는데 그 속에서는 조금 정신 차리면은 자기가 옳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거 틀렸다. 내가 이거 자복을 해야 될 일이다. 내가 시비할 게  아니라 자복해야 될 일이다.' 이걸 알 수 있을 터인데, 자기가 행해 보지 안하고  살펴보지 안하기 때문에 영이라는 존재를 모르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근 이천 년이나 내려오도록 영에 대한 실존을 모르고 영이 마음이라 마음이 영  이라 양심이 영 이라 영이 양심이라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뭐이냐?  기독교인들이 다 외식하고 실천하지 않는다, 실천하지 않고 인간의 비위에 맞춰  가지고서 인간의 눈만 맞추고 인간의 생각만 맞추고서, 인간 생각 맞칙 나가니까  하나님의 생각에는 틀린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행함이 없기  때문에 영이라는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찬송하며 보니까, 왜 그 말 했는고 하니 찬송가가 새찬송. 또  합동 고 위에 통일 찬송, 고 셋만 기록한 걸 내가 봤는데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너이를 기록 해 놨어. 너이 기록한 그거는 나는 뭐인지 몰라 하나는 광고를 못  했습니다. 그 너이 중에 하나는 뭐입니까? 예? 개편? 이거 ○○○ 집사가  기륵했을 건데? 예? 신편, 신펀인데 개편이라 하는 거 그것도 또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이오. 신편. 이러니까. 뭐 찬송가도 자꾸 이래서 한 자라도 고쳐  가지고 제 이름으로, 제 이름으로 한 자라도 고쳐 가지고서 제 이름 나타낼려고  합니다.

 이러니까. 요새는 편지가 와서. 이제 내가 어제부터 작정을 했어요. 그 편지 온  것을 그것을 그만 아는데, 몇몇 아는 데. 무슨 무슨 협회라 무슨 선교회라 백  주년 기념 뭣이라 하는 그것은 모조리 오면 불에 태워 버리고 안 보겠다 하는  그걸 내가 작정을 했고, 왜? 봐야 전부 제 사다리 만드는 거 사다리가 뭣  만듭니까? 제가 높이 올라갈라 하면 사다리를 만들어 가지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야 높이 올라가는 거 아닙니까? 저 높여서 모든 사람' 이 '나 여기 있오'  하는 거 알도록 하기 위해서 저 소개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세상으로서는 내가  국회의원 나가겠다고 이렇게 하는 거 하지마는 교회 안에서는 이것이 온전치  못한 정신 없는 일이요 성경에 위반되는 행동이라 그말이오. 이라고, 신고함.

신고함에도, 이제 신고함을 저걸 떼 버리까 저걸 둘까, 왜? 신고함 그거 이만치  나오니까 이놈을 뭐인지 그래도 저거 소원이 뭐 이니까 읽어봐야 혹 옳은 소원  하는 것이면 거기다 뭣을 말해 주든지 해야 될 것이라서 읽어보니까 어떤 사람은  이 신고함에 써 넣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뭐, 몇 번이나, 몇십 번 말하다시피  말했을 거라. 했는데. 자꾸 그저 그만, 그 돈은 누가 대 주는지 몰라. 아마 돈을  대 주는데 돈 대주는 그게 내 생각에는 웝을 팔아 가지고 지금 돈을 만들어서 그  돈을대 주는지 내가 좀 의문이라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뭐 종이 사고 또 봉투  사 가지고 자꾸 써서 넣어.

 넣었는데. 그 넣은 말이 한 마디도 옳은 말이 아니라. 좀 저 먼저 읽어 보고 다  그래 가지고, 그 미혹에 들어 있는 사람은, 미혹에 들어 있는 사람은 내가  편지를 모아 놨다가 줬어. '네가 이 편지를 봐라 편지를 읽어 봐라' 읽어보라  했는데 읽어본 사람은 읽어보고 나서 '아, 이 편지 보니까 이 사람이 정신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살아났는데, 고 거 읽여보고 깨닫지  안하고 그걸 또 '아, 요러니까 나도 요런 면으로 또 지금 마귀 노릇을 하고서  교회를 한번 혼들어 봐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집니다.

이번에 보니까 이만치 또 와 놨어. 그래 그 사람 여게 앉았는데 내 눈에 지금은  안 보인다. 앉았는데, 그 사람이 지금 막 죄를 막 물 머듯이 먹고 마시는 그  사람이라. 제가 지금. 그래 놓으니까 자꾸 그런 거라. 그래서 지금 편지를  이만치 모아 놨어. 이러니까, 또 누구든지 보고 싶은 사람은 와서 보십시오.

 이라고, 먼저 보고 '내가, 내가 좀 정신이 이상합니다. 정신이 좀, 내가  미쳐지는 것 같습니다.' '네가 미쳤다 하는 것을 알면 그1다 그러니까 다시 그래  하지 말고 이래 해라' 이러고 '인제 써 넣지 마라.' 안 한다 했는데, 그래서 그  편지 그거다 태워 버렸습니다. 태웠는데, 또 이만치 써 넣어 놨다 말이오. 써  넣어 놓고, 또 어떤 자는 써 넣기를 그렇게 써 넣여 놨웁니다. '나는 서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 서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제 이름을 써 넣지  않고 그래 떡 해 놓고 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가 짐작은 하지마는서도 내가 말  안 해. 그래 놓고 귀신 소리를 많이 써 놨어. 그걸 지금 안 없앴습니다. 안  없앴으니까 고것을 이제 여기 주일 학교 반사들에게 다 회람을 시킬 겁니다. 다  읽힐 거라. 읽어보면 뭣이 들었는지,  이렇게, 그게 뭐이냐? 여게 찬송가에 오늘 아침에 그래서 내가 말한 것 처럼  그게 뭣이냐? 자, 원죄가 뭣 이 원죄입니까? 원죄가 뭐이라고 아는 사람. 녜,  뭐이요? 원죄가 자기중심이라. 자기중심인데 '자기중심을 가리켜서 원죄라고  말하지 안하고 다른 말로 하는 것이 뭐입니까? 다른 말로 하는 것이 뭐이지요?  크게 말해 봐. 다른 말로 뭐입니까? 악

 악이라는 이것도 그렇게 쉬운 깨달음인줄 알아도 쉬운 깨달음 아니오. 쉬운  깨달음이 아니라. 이 악이라는 것을 자기중심이요 피조물 중심이라 하는 이게  오늘까지 이천 년 내려왔지마는 모든 조직 신학에 정의가 안 나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러니까 이게 뭐인지를 모른다 그말이오.

 내가 저 아래도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오늘날이라 하는 이걸 모든 성경  학자들이 뭐라고 지금 해석을 해 놨는고 싶어서 내게 있는 주셔도 다 찾아  보니까 고 말은 거게, 그거 뭐인지 거게 제일, 신명기 28장에는 생명되는 절수가  고 절수입니다. 거게 생명이 있습니다. 고거 빼 놓으면 생명이 없어. 고거 빼  놓으면 다 다른 성경에 다 기록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성경에 기록하지  안한 것이거게만 특별히 기록해 있는 거 고것이, 고 신명기 28장에서 증거하는  그 생명인 고 증거는 뭐이냐 하면은 1절에 거게 있다 말이오. '오늘날 네게'  거기 있는데 이 해석이 뭐인고 싶어서 내게 있는 주석을 또 다 찾아보고 칼빈  주셔도 찾아 보니까 거게 대한 언급을 하지 안했어. 그만 지나가 버리고 그거  생각을 안 하고 그다음에 뭐 이래 '복 받는 걸 그런 걸 말하는데 요게 없으면  그다음에 복 받는 거 암만 말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 뭣이든지 하나도 안  틀리고 딱 들어맞기가 어렵지 거게 옳은 것을 한 가지나 두 가지나 그런 종류를  행하기는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또 인제 먼저 내가 주석을 전부 편집실에다 다 그만 책을 줘 버렸기  때문에, 그때 아마 책이 한 한 짐이나 될란지 뭐 얼마나 될란지. 줘 버렸어.

이랬는데, 거기 또 '찾아봐라' 또 거게도 없어. 그래서 또 이제 ○목사가 왔기  때문에 '그거 뭐인지 주석에, 칼빈 주석에 없다' 그라니까 칼빈 주석에,  '봅시다' 양사방 찾아봐야, 내가 찾아보고 없는데 뭐 찾아봐야 있어야지? 없다  말이오. '그러면. 세계 제일 유명한 어떤 신학자가 있는데 그 주석이 양성원  도서실에 있으니까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찾아봐라' 또 찾아봐도 없어요.

 이게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대  시대마다 당신이 일을 시킵니다. 내가 이거 알아 깨달은 것 아니오. 이 말을  만흘히 여기는 자는 망하고 맙니다. 옆에 말을 그렇츰 옳게 가르쳐 줘도  모르니까, 이런 저런 아무 주석에도 없는데 그 말 하는 저, 모두 다 내가 늘  가르치고 난 다음에 '이걸 다른 주석에 가서 찾아봐라' 찾아봐 라 해도. 봐라  하는거, 나는 봐서 없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이고 그런 것은 내가 아는  것이고. 내가 여기서 거석해 가지고서,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그것도 내가 성경 보고 깨달은 것 아니오. 성경보고 거게 뭐 있다 그걸, 성경에  암만 봐도, 여러 천 번 읽어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내가 실행을. 내가  실행을 해 보고 내가 설교하는 가운데에서 깨닫고 명상하는 가운데에 깨달았는데  깨닫고 나니까 확실하다 말이오.

 중생된 영이, 중생된 영이, 영 중생이, 영 중생이 몇 번이나 중생하느냐, 몇  번이나 중생하느냐 이래 물으면 한 번만 중생하지 두 번 중생하는 일이 없다  하는 그것은 세계 학자들이 다 공통돼 있습니다. 이건 공통돼 가지고 있어.

그러면, 중생된 영이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그런 영으로 중생 됐느냐  다시 죽지 않을 영생으로 중생 됐느냐? 영생으로 중생 됐다는 거 다 압니다.

그러면, 영생으로 중생했고 다시 죽지 안하고 그러면 그 둘 만 해도. 자기네들이  말하고 있는 그 교리만 해도 밝혀지지마는서도 심령이 어두와 놓으니까 요렇게는  말했지마는서도 요거 연결시키지 못한다 그 말이오.

 자, 그러면, 중생된 영은 영생으로 중생했으면, 영생이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한번 대답해 봐요. 예? 안 죽는 게 영생이요 죽는 게 영생이오? 안 죽는 게 영생  아니오? 그러면, 안 죽으면. 안 죽으면 죄를 지어도 안 죽습니까? 영이 죄를  지어도 안 죽습니까? 성경에 범죄한 영은 죽는다고 딱 말했습니다. 그러면.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안 죽는다 말은 죄를 si 짓는다 말 아니오? 다  자기네들이 깨달아 놓은 대로의 말 했지마는서도, 발명가가 말이오, 아무리  발명할라고 다 해 놔도 거게, 쩍 해야 거게서 하나만 딱 하면 발명이 될 터인데  평생 발명을, 연구 다 해 놓고도 그걸 모릅니다. 어만 사람이 그거 다 듣고  구경하고 얘기 듣고 난 다음에 고 사람이 딱 고거 깨달아 가지고 발명가가  됩니다.

 하나님이 가리워 놓으면, 가리워 놓아서 열어 주지 안하면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계시 종교라, 사람이 자꾸 연구를 해 가지고서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는 계시 종교라, 계시 종교라 말은 열 계(啓)자 보일  시(示)자, 하나님이 열어 보이는 종교가 기독교라 말이오. 하나님이 열어 보여야  보지 열어 보이지 안하면 모릅니다.

 이러니까, 암만 그렇지만 세계의 모든 신학자들이 다 뭐, 아마 ○○ 신학교  신학자들도다, 합동측 총신측 신학자라고 하면은, '보자. 사람이 중생되면  중생을 몇 번이나 하노' 하면은 단번 중생이라 하는 그것은 전부 다 공통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단번 중생이라, 그러면, 중생한 것은 몇 해나 사는  것으로 중생 됐느냐? 영생하는 것으로 중생됐다, 다 영생하는 것으로 중생됐다  이것도 다 공통입니다. 요거 다 됐습니다. 요 둘 만 하면, 그러면, 중생된 영이  범죄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거게 벌써 나와 있지 않습니까? 나와 있지만 그  발표를 못하고 그 말을 이해를 못 한다 그말이오. 그거 뭐이냐? 그만치 하나님이  어둡게 만들어 심령이 어두워져서 거기까지 와 가지고 고다음에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것은 성경 단절에 명문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여게 저게 모든 성경  가운데서 자기 신앙, 신앙을 지키니까, 신구약 성경에 명문되어 있는 그 명문은  몇 가지 아닙니다. 요거 찍해야 책 이거뿐 아니오? 이걸 사람들이 이 책을 다  가치없이 여겨서 못 외우지 만일 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어학만치 보배로  여기면은, 어학을, 한 영어 하나를 아주 달통하는 것 만치 외우면 이 신구약  성경은 그보다 외우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다 외웠을 것입니다. 얼마 되지  안하는 책이오.

 이런데, 이것을, 다 이 가운데 있지마는서도 그만 이거 볼 때는 이것만 보고  저거 잊어버리고 저거 볼 때는 저거만 보고 잊어버리고 이라고 이것을 전부  총합하지 안하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거 볼 때는 이거 읽을 때는, 이것도 어려운  소리입니다. 이것도, 이것도 쉬운 말이 아니오. 여러분들이 못 알아 듣는다  그거요. 자, 이 성경 읽을 때에는, 창세기 읽을 때에는 출애굽기 모르고 창세기  출애굽기 읽을 때는 저 계시록 모르고, 이제 모르기 때문에, 이거 볼 때는 저거  잊어 버려 버리고 저거 볼 때 이거 잊어버리고, 그런데, 이거 볼 때는  잊어버리고 저거 볼 때는 이거 잊어버리고 암만 보고 나도 잊어 버려지는데,  잊어 버려지는데. 잊어 버려지지 안하는 비결이 뭐이라 했어요? 잊어 버리지  안하고, 그걸 항상 들여다 보고 잊어 버리지 안하는 비결이 뭐이라고  말했습니까? 야고보서 몇 장에 있습니까? 예? 1장에? 1장 몇 절에 있노? 23절.

그러면, 23절 읽어보자. '누구든지 도를 듣고' 22절이가?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다음에 23절 맞았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의 어떤 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뭐이라 했습니까?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그 복을  받으리라'  그러면, 성경을 출애굽기 보고 또 저 딴거 볼 때에 출애굽기 잊어버리고 또 저  성경 볼 때는 이 성경 잊어버리고, 저 성경 볼 때에 이 성경 잊어버리고 이 성경  볼 때에 저 성경 잊어버리고 이러니까 전체가 다 한테 합하지 안하니까 이 모든  성경이 합해 가지고서 깨달아지는 진리는 깨달아지지 않는다 그 말이오. 와  그러냐? 이 성경 볼 때는 저 성경 잊어버리고 저 성경 볼 때는 이 성경  잊어버리고,  그러면, 잊어 버리지 안하고, 모든 성경을 봤는데 그 성경을, 전 성경을 잊어  버리지 안하고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그것은 그 방법이 뭐이라 했습니까? 예?  실행이라 말이오. 실행을 안 하니까, 저 성경은 저 성경 대로 해석하고 이  성경은 이 성경대로 해석해 버리니까 이게 전체가 종합 해 가지고서 마치 위에  스라브를 할라 하면은 이거 뭐 기둥도 뭣도 다 이래 해 가지고 위에 옥상이  올라가고 상량이 올라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밑에 이게 있어야 되는데 이게  전체가 없어 놓으니까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종합적인 해석은  전혀 모른다 그말이오. 왜 모르느냐? 그거 실행 안 한 증거라 그말이오. 왜 다른  사람 모르는데 아느냐? 실행하는 증거라 그거오. 이런데, 이거 참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우리가 죽기는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것을 에베소 2장에 보면은 압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 말은 영은 단번에 죽었고, 이 마음과 몸 둘이 합해서 고기  덩어리인데, 마음과 몸 이것은 육인데 육 이거는 단번에 죽는 게 아니고 슬슬  나무를 베어 놓으면, 나무를 베어 놓으면, 소나무 같은 거 겨울에는 베어  놓으면은 벌써 베어서 한 달 돼도 새파빛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끊겼기  때문에 차차 차차 말라서 죽는다 그말이오. 이거 모양으로 생명어 영인데 영이  죽었기 때문에 이 위에 슬슬 이래 가지고 죽어서 얼마나 걸리느냐? 칠 십 년  사는 사람은 칠십 년 만에 죽고 백 살 사는 사람 백 살 만에 다 죽고 그래  가지고 슬슬 죽는 이것이 다 죄와 허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살아나기를 몇 가지로 살아났어요? 여기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똑똑히 배워. 똑똑히 배워야 마귀 노 릇을  안하지. 그래, 이 세 가지로 살아났습니다. 세 가지로 살아났는데 그것도 내나.

우리도 구속 받지 안했오? 따져 보고 생각해 보면 알 것이 고 또 자기가 행해  보면 알 것인데, 이거는, 세 가지로 살아났다는 말 그것도 아마 이단이라고,  '우리가 중생된 것은 세 가지로 중생됐다.' '물과 성령으로 살아났다 거듭났다.

물과 성령으로 살아났다' 그런데 거게서는, 물과 성령 두 가지인데, 두 가지  살아났는데 세 가지로 살아났다 하며 또 이단 이라고 또 야단 법석이오.

이단이라고 또 법석일 거라. 그것은 번연히 알면서. 예수님의 대속 받은 사람이  성령과 진리로 살아나지 대속 없는 사람 어찌 살아납니까? 그러면, 대속으로,  먼저 대속으로, 대속을 먼저 자기가 입고 그다음에 또 성경 말씀을 자기가  전도로 듣고 그다음에 성신의 감화를 받고 이래 가지고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우리 영을 살릴 때에, 우리 영을 살릴 때에 영이 성령이  우리에게 먼저 옵니까 진리가 먼저 옵니까? 진리가 먼저 오요 성령이 먼저 오요?  진리가 먼저 오요. 진리는 겉으머리요. 진리는 겉으머리로 내게 됐는데 그  진리가 있기 전에 먼저 날 살릴라고 움직이는 그 움직임의 근원은 뭐입니까?  근원은 뭐이요? 진리요 성령이요? 성령이라 말이오 성령이 움직여서 진리를 통해  가지고 나를 살렸다 그거요.

 이랬는데, 둘로 살아나지 안하고 서이로서 중생됐다 하면은 또 사람들이 그랄  거라. 이거 뭐 머리가. 여러분들, 내가 그게 지금 탄식이라. 이 말 하면은 저 말  잊어버리고, 이러기 때문에 만날 할 때는 이거 소용 없는 서론이 많다 그거요.

못 알아 들으니까, 이거 못 알아 들었으니까 '이거 이거 이거 이거' 또 실컷 해  놓으면 그게 한 한 시간 설교 할라 하면은 한 사십 분이나 들어가야 되고, 겨우  고거 알고 난 다음에 '요거 이제 다 알 았으니 똑똑히 알고 있으십시오' 고래  알려 놓고서 '요거라, 이럴라 하니까 벌써 그말 한 거 다 잊어 버렸다 말이오.

잊어버리고나면 또 헛일이라 그다음에 또 봐도 그만 다 잊어버리고 없으니까 할  수 없어 또 자꾸 서론이라. 이러니까 가르치는 시간이 없다 말이오. 이것도 다  이래 다 알았으면 이런 말 뭐 할 게 뭐 있습니까?  세 가지로 살아났습니다.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명이 뭣이 우리의 생명입니까? 우리의 생명은 뭐. 우리 생명이 뭐이지?  우리 생명이 뭐이 생명입니까? 자, 여반에 아는 사람 말해 봐. 우리의 생명이  뭐이요? 이 세 가지로 살아났으니까 이 세 가지가 우리 생명 아니오 그만?  그렇지 않아? 왜 사람들이 도무지 이거 조화성을 모르고 연합성을 모르고 이래  놓으니까 고만 하나 요거 알면 요리 가 버리고 요것만 알고 조것 또 다 모르고  이래 놓으니까 만날 마귀 놀음만 하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 생명.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우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생명이 뭐이 생명이냐? 우리 생명은 주님의 대속의 피공로가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말은 뭐이냐? 피와  살을 먹는거, 주님의 피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츰 많은 사람 주님의 피를 한  방울씩 먹으려 해도 얼마나 되게? 다 말하면 지금 저 낙동강 물만 해도 다  그렇게 한 방울씩 못 먹을 건데.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 그 말은 뭐이냐?  주님의 공로로 양식 삼는다는 말인데 인격 양식이라 인격의 양식은, 마음은  양식은 자꾸 마음으로 생각하고, 심령의 양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주님의 피와 살이 양식이라 그 말은 주님이 우리를 대속한 절정의 맨 꼭대기  우두머리가 뭐이냐 하면 십자가의 대속이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그  대속의 공로를 자꾸 생각하면 배가 불러지고 장성하고 튼튼해지고 그 속에  영생이 자란다 그랬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이 있고' 이랬습니다. 그거  잊어 버리면 영생이 없어. 영생이라 말은, 생명이라 말과 영생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까? 생명은 영생케 하는 생명이고 영생이라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다는  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말합니다. 생명이 먼저 있고, 생명이 영생합니다.

이런데 주님의 피가 생명인 것을 말씀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주님의 피가 우리 생명이요, 또 성경 말씀이 우리 생명이요, 영감이  우리 생명이기 때문에, 그러면 생명을 떠나는 것은, 생명 떠나면 죽소 사요?  생명 떠나면 삽니까 죽습니까? 자, 생명 떠나면, 생명을 떠나면 생명이 떠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봐요. 생명 떠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저 ○○○씨 손 안 들었네? 들었어? 녜, 손 놔요.

 그러면 생명 떠나면 죽어요. 생명 떠나면 죽는데 이 생명이 영의 생명이요  우리의 인격의 생명이요, 우리 행위의 생명이요. 우리의 도덕의 생명이요 우리의  모든 의의 생명이요, 우리 전부 행위 생명이요 도덕 생명이요 진실 생명이요  거룩 생명이요 의의 생명이요 화평 생명이요 사랑의 생명이요 영의 생명이요 또  이 마음의 생명이요 고기 덩어리의 생명이요 다 생명인데 이 생명이 뭘 떠나면  죽습니까? 뭘 떠나면 죽소? 영 가지 떠나면 죽습니까? 세 가지 떠나면 죽는다  그말이오, 세 가지 떠나면. 그러면, 우리가 장성하고 강건하면은 뭣으로  강건해집니까? 몇 가지로 강건해집니까? 세 가지로 강건해져. 세 가지로. 세  가지로 강건해지고 세 가지로 자라갑니다.

 이런데. 제가 언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잊어 버려 버렸고 또 진리도  떠나버렸고 영감도 떠나 버리고 그 속에 뭐 있습니까? 떠나 버리면 뭐 있습니까,  그 속에? 예? 떠나 버리면 생각이 있어, 생각.  (저 ○○○ 저 사람이 지금 참  깨닫기는 잘 하고 대답 잘 하는데, 저게 실 천이,실행이 없어서 지금 천물이 돼  가지고 있어. 너는 실천이 없어 천물이 돼. 아는 대로 죽자 살자 이를 다물고  그만 '죽어도 양보 안 한다. 안 할거는 안 한 다 할 거는 한다. 이라면, 우리  교회서 깨닫는 중에 제일 잘 깨달아. 물어 보면 제일 잘 깨않는다 그말이오.

이렇지만 실행이 없으니까, 네가 마귀에게 들려 가지고 지금 실행을 못 하고  있어. 실행해.)   생각이라. 자. 주님의 공로 잊어버리고 또 영감 잊어버리고  진리 잊어 버리니까 그 속에 뭐이냐? 제 생각뿐이라. 제 생각뿐이라. 제 생각  그걸 다른 말로 말하면 내나 자기중심이고 자기, 악이지요.

 이런데. 그러면, 죽은 자에게 뭣이 살아나겠오 자 라나겠오? 이러니까, 사람을  딱 접촉할 때에 '보자.' 접촉할 때에 '이 사람이 지금 주님의 대속의 피와  진리와 영감과 연결돼서 그 입에서 나오는 게 진리가 나오나, 그 속에,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영감이 나오나,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나오나,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 제 생각 나오나?' 이 걸 보면 알 거라.

제 생각 나오는 것이 그것이 죽은 자요, 산 자요? 말해봐. 제 생각 자꾸, 제  생각 자꾸 말합니다. 제 생각 말하고. 제 생각 말하고 제 뜻 말하고 제 지혜  말하고 그러면 그거 나오는 것이 죽은 말이요, 산 말이오? 죽은 말인데, 그러면,  죽은 말 듣는 자는, 죽은 말을 들으니까 달콤하이 맛이 있고 죽은 말 듣는 자는  그자는 죽었오. 살았오? 그자도 죽은 자라. 들으면 죽어. 알겠소? 너무 가련하고  답답하다 그말이오. 이거 사람들이 몰라.

 이번에 우리 진영에 ○○교회에서는 ○○○목사 데려다가서 집회했습니다. 집회  했는데 나는 떡 말하기를 '아, 그거 뭐 잘했다' 이러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만  우리 획선을 그읍시다.' 자꾸 이라는데 '아, 끊는 거는 하나님이 하셔. 내버려  둬' 이라니까, '그라니 이거 아마 이거 뭐 겁이나서 그라는 갑다. 그래 아니면  뭣을, 그라면, 똑똑히 그래 안 하면 텁텁해서 그라는 갑다.' 그거는 하나님이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도록 내버려 두고 옳은 건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그거는 틀렸다' 고것만 하면 그만 다했어. 옳은 거는 옳다 하면 다 되고 틀린  거는 틀렸다 하면 다 됐어. 그 이상 말하지 안하니까 그게 약한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알기 때문에 말 안 하는 거라.

 이러니까 이거 참 답답하다 말이오. 우리 교회 희망 있는 청년들이 막 죽어  자빠져 자빠지기를. 왜 뒈지노, 뒈지기를? 뭣 때문에? 왜 귀신 말을 듣노.

듣기를? 사모하기를,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 사모하고, 또 진리 사모하고 영감  사모하고, 진리 사모하는 것이, 뭐 신구약 성경을 다 사모하는 것 거석하니까  자기가 사모하는 가운데에서, 그러면, 씨 뿌리는 비유 다른 거 할, 다른 거  일하는 거 외에 딴거 할려면, 씨 뿌리는 비유가 뭐인지 씨 뿌리는 비유를 자기  혼자 해석을 하고 설교를 하고 또 은혜를 받고 그리 안하면 포도나무 비유를 또  자기가 혼자 해석을 하고 또 은혜를 받고 또 요한계시록 뭐 1절이면 1절  생각하고 2절이면 2절 생각하면서 또 해석을 하면서 은혜를 받고 이렇게, 열  처녀 비유라면 열 처녀 비유 해석하며 자꾸 말씀을 이렇게 자꾸 생각하고,  이라니까, 일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자기 일 하면서도, 손으로 일을 하면서  말씀을 생각하면 그 말씀이 말씀이 방해자요, 말씀이 전능자요? 예?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른 거는 제 생각 하면은, 다른 거 생각하다가서 손도  끊기지마는서도 말씀 생각하면 손이 안 끊깁니다. 암만 번개 같은 기계속에서도  손이 안 끊겨. 딴거 생각하다가 끊기지. 끊긴이에게 사람 물어 보십시오. '네가  거기서 하나님 말씀 생각하다가 끊겼나 딴거 생각하다 끊겼나?' 딴거 생각하다  끊겼지. 말씀을 생각하면 말씀은 전능이요 전지인데, 그 말씀을 생각 하면  전지전능이 자기에게 연결되어 있는데 손이 끊겨집니까? 벌써 기계가 고장 나  가지고 끊길 상바르면 알기 전에 자기 영감 돼서 손 대지 안하고 일어섰을 건데?  이러니까, 말씀을 생각하는 거 암만 생각해 봐야 손해 없고 영감 생각 하는 거  암만 생각해야 일에 지장이 없습니다. 주님의 피공로 생각하는 거 암만 생각해  봤자 지장 없어. 생각할수록 '자꾸 긴장이 더 되고 조심이 더 되고 지혜가 더  되고 힘이 더 되고 이제 욕망이 더 나고 용기가 더 나고 조심이 더 나고 하니까  점점 좋아지지.

 이러니까, 이 셋으로 살아났으니 이 셋을 잊어 버리면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셋을 잊어 버리면 영은 살아 있지마는서도 뭐이 죽습니까? 이 셋을  잊어 버렸으면 뭐이 죽습니까? 예? 이 셋을 잊어 버리면 뭐이 죽소? 자, 이 셋을  잊어 버리면 뭐이 죽지? 육이 죽는데, 마음이 죽어. 이 셋을 잊어 버리면 마음이  죽어. 마음이 죽은 마음이라. 죽은 마음이니까 죽은 마음이 뭐 생각하고  계획하고 소원하니까 전부 죽은 것만 계획하고 생각하고 소원할 것 아닙니까?  이라면 망한다 그말이오.

 왜 이걸 모르냐 그말이오, 모르기를. 이래 놓으니까 살아서 풀풀 뛰던 게 그만  뒈져 버려.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마는서도 남을 죽이는 그자를 하나님께서 그  아각의 무리를 그대로 내두지 안했어. 마지막에 때릴 때는 그만 전멸을 당했어.

이래 가지고 전멸당한 것도 또 회개 할 줄은 모르고 책임은 또 딴 데다  전가시킨다 말이오. 그게 완전히 정신 빠진 미친 자라. 왜 다른 사람 죽는데  같이 따라 죽어, 죽기를? 왜 그러면, 그사람이나 그런 말을 듣고 접촉을 하면은  내 심령이 더러워지고 내게 용기 옳은 거는 없어지고 자꾸 더러운 것만  있어지고, 내가 더러워지는 걸 보면 알 터인데, 왜?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 알라고 하지 안했오? '악한 동무는' 뭐 어째? '선한 행실을 손해케  하느니라.' 그 사람을 전촉하니까 성령이 충만이 오느냐. 접촉하니까 진리가  깨달아지느냐, 그 사람을 접촉하니까  주님의 피공로가 가까워지느냐? 접촉할수록이 피도 성령도 진리도 간 곳이  없어지고 깜깜해지고 자기 심령은 완전히 인간 심령으로 이래 가지고서  더러워지고 신앙은 완전히 죽어지고 하는 걸 번연히 보면. 그 열매를 봐서, '아,  이 사람 만나니까 내가 심령이 죽는다. 이거 만나니까 내가 그만 주의 피의  공로에 대해 감동이 없다. 진리의 감동이 없다. 영감의 감동이 없다.' 알 터인데  이런 어리석은 노릇을 한다 그거요.

 사데 교회가 와 죽었느냐? 사데 교회가 죽은 것은, 살았다는 이름은 있다 말은  예수 믿는다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다 예수 믿는다는 이름은 있지마는서도  실상은 죽은 자라.

 '네 행위의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자기가 은혜 받은 일이 있다 말이오. 과거에 은혜 받은 일에 있어서.

능력도 받았고 지혜도 받았고 용기도 받았고 기쁨도 받았다 그말이오. 그거는  받은 거라. 깨달은 것은. 어떻게 들었느냐 하는 건 진리를 들었고, 받았다 하는  건 은혜 받았다 그말이오. 자기가 그때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서 '내가  주를 위해 죽어도 죽겠다. 또 내가 어짜든지 죽자 살자 하고 어짜든지 이  주일학교 반사 노릇을 해야 되겠다. 내가 어짜든지 말씀대로 한번 살아봐야  되겠다. 성경을 읽어봐야 되겠다' 이런 감동과 이런 마음과 이런 깨달음과 이런  결심을 받았었는데 그건 다 어디 갔느냐 그거요.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그러면.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들은 것은. 또 자기가 받은 것은  생각해야 되고 들은 것은 지켜야 되고, 자기가 받은 것은 생각해야돼 '과거에  내가 이런 은혜를 받았는데 그때 어째 받아서, 그 은혜를 받아서 이런 감동을  받았다. 이런 열심을 내가 받았었다, 이런 간절을 받았었다, 이런 회개하는  마음을 받았었다.' 받은 게 있다 말이오. 받은 것은 자기가 생각해야 돼. 와  생각하면 나오는데 생각하지 안하고 그거 하나도 없는 썩은 인간이 돼 버리고  마는 거라? 또 들은 것은 지켜 행해야지. 행하지 안하면 죽은 자라 그말이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하지 안했어? 말씀을 잊어 버리면  죽은 자라. 십자가의 대속을 잊어 버리면 죽은 자라. 영감을 잊어 버리면 죽은  자라.

 이러니까 이 세상에는 얼마나, 이 서부교인들은 심판이 큽니다. 서부교인들은  심판이 크요. 다른 데보다 배운 것을, 못 배웠다고, 몰랐다고 핑계 못해. 다  가르쳤다고 할 만치 세밀히 가르쳤어. 어데보다 세밀히 가르쳤어. 다른 사람이  너무 지나치다 할 만치 가르쳤어.

 이러니까 자기가 주님의 보배피 공로만 잊어 버리면 마음은 죽었오. 마음이  살아나는 건 주님의 보배피 공로를 생각하면 마음이 살아나. 진리를 자꾸  생각하면 마음이 살아나. 그 가운데에서 자기가 영감을 지금 받을려고 생각하면  그만 살아나. 마음이 살아나. 마음이 살아나면 고기 덩어리가 살아나. 마음과  고기 덩어리가 살아나면 행위가 살아나. 마음이 죽은 증거는 고기 덩어리가  죽었고 고기 덩어리가 죽은 증거는 행위가 죽었어. 뭐 있어야지?

 이 지금 서부 교회에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서, 과거에 내가 죽다가 살아 났어.

내가 좋은 걸 경험했어.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이 교회들이 어떻게 된다 하는 걸  내가 죽기 전에 그런 꼴을 당해 가지고서 죽으면 저자는 저럴 자다 저 자는 저럴  자다 저 자는 저럴 자다 하는 걸 그때 다 알았는데, 다 이러니까, 내가 헛되이  믿지 말고 그걸, 죽지 안하고 살아났으니까 그걸 다 살려서 개조를 해야지  그대로 두면 다 죽는다 그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이 마귀들이 와 가지고서  자꾸 이제 없다가 있다가 없다가 있다가, 그거 내가 그걸 그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습니다. 않는 것은 내가 조금 힘을 요만치 쓰면 고게  알랑알랑 하고, 빨끈 쓰면 그만 어디로 달아나고 없고 하나도 안 쓰면 또 그게  와 디리 모아 들고, 이게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나에게 이런 진리를 맡겨  줬기 때문에 날 사랑하셔서 이렇게 깨라고 하는 거 있는데. 이거 내가 지금 또  이거 내가 힘 쓰는 것이고 깨우는 방식이라. 이게 깨우는 방식 아, 내가 뭘  그렇다고 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깨워서 죽은 자들을 살리는 운동이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듣고 단단히 하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우리가 이 고기 덩어리의 생명, 생명이 둘 아니오? 영생하는 생명이  있고 고기 덩어리의 생명이 있는데, 영생하는 생명이 몇 가지가 합해 가지고서  영생하는 생명이 됐습니까? 자, 또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잊어 버리지  말아요. 이러니까. 영생하는 생명, 고기 덩어리 생명만 있으면 마지막에  유황불덩이에 타 버리고 말아요.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나야 그게 영원히 살지.

 이러니까 우리가 영생하는 이 생명을 떠나면 죽은 자 되고 죽은 행위 되고 죽은  사람 되고, 이 생명과 연결이 되면은 자꾸 사는 거라.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면, 포도나무가, 포도나무가 뭐인데? 예수님을 가리켜  말했는데 예수님이 뭐인데? 예수님이 피요 성령이요 진리입니다.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인 예수님이시라.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이 셋을 떠나면 죽는 줄 아십시오. 이 셋을  떠나면 죽고 이 셋만 자꾸 생각해서 이 셋으로 내가 충만해지는 것이 내가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전지전능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행복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이 셋을 잊어 버리면 내 생명도 잊어버리고 내게 산 거는  없어지고 죽은 것만 자꾸 마귀만 들어와 가지고서 가득 차게 된다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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