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사망의 법

 

1986. 12. 14. 주일오후

 

본문:누가복음 2장 13절∼14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오전에는, 영원 자존하신 유일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대주재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주권 개별 섭리자시요 단일 통치로 통일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대적함으로 정죄와 저주와 멸망과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근본 부요하신 분이 그 부요를 다 내놓았고, 존귀와 영광스러운 분이 영광과 존귀를 댓가로 내놨고, 지극히 높은 권세와 능력과 세력을 댓가로 내놓으신 그 도성인신으로 베들레헴에 사람으로 태어나 말 구유에 강보에 싸여서 누우신 그 독생자의 탄생에 대해서 하늘에 천군 천사들이 그 역사의 영광이 위치적인 영계에 가득 찼고 또 가치적인 지극히 높은 데까지 가득 찼고 모든 성결적인 모든 조직과 모든 행사들의 정확 무오한 그 진리적으로 제일 크고 높으신 데까지 그 영광이 가득 차서 모든 존재들이 다 경배하며 감사하며 칭송하며 영광 돌리는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을 말씀하고, 또 아래로는 끝 없는 최저의 아래까지 그 역사의 도성인신하셔서 세 가지 희생하신 그 사랑의 결과로 모든 천한 데까지 다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것을 오전에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이 세 가지 삐뚤어진 일을 하는 데에서 이렇게 모든 데에 질서가 다 깨어졌고 조직이 깨어졌고 공의와 정의가 다 깨어져서 모두가 다 혼잡되고 가증스럽고 거짓되고 사망으로 가득차게 된 이 피조물계에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아 정리 정돈해서 기쁨과 평화가 넘치도록 하시기 위해서 도성인신하사 세 가지 희생한 그 역사의 결과가 위로 지극히 높은 데까지 충만했고 아래로 최저의 낮은 데까지 그 혜택의 평화가 충만해진 것을 오전에 증거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더 없는 가치 있는 일이요 존귀한 일이요 모든 존재들이 다 기뻐 환영하고 찬성하고 영광 돌린 이 참된 가치 있는 지극히 존귀한 생애가 어떤 생애 방편에서 됐는가? 세상에도 생애 방편이 심히 많지마는 이런 방편들은 다 마귀란 놈한테 꼬여 가지고 하는 방편이기 때문에 가리워져 있을 때에는 진정 감사하는 혈육 감사가 있고 동류 감사가 있고 그 모든 정욕 감사가 있지마는 그 어두움의 꺼풀이 다 벗어지고 그 진상이 나타날 때에는 모두 다 놀라면서 속았다고 원망과 불평과 시비와 대적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이 이 어두움의 악령에 유혹받아 가지고 사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지극히 큰 생명의 대속의 법이 땅위에 왔지마는 어떤 자는 이 대속을 의지해서 구원에 이르고 어떤 자는 이 대속을 무시하고 마귀의 법에 속해 가지고서 그렇게 가견 위주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주로 지상 현실 지존으로 앞뒤를 다 생각지 않고 과거 미래 영원까지를 생각지 안하고 그저 자기가 근시자로, 가까이 보는 근사자로 한 토막에 싸여 가지고 살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의 그 가리워 있는 모든 점막이 다 이것이 벗어질 때에 그때에는 다 원망 불평 시비로서 그 진상을 보고 서로 분개하는 것이 그것이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의 세계인 것입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자기는 세상에서 자기도 몰랐고 그 형제들에게 유일한 사랑과 봉사와 아량을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두움의 막이 벗어진 영계에 가서 보니까 그 형제들이 영원히 원망 불평 시비할 그 원인을 깨닫고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나사로를 보내서 그들이 여게 오기 전에 내가 그들을 속이고 그들을 잘못한 그 모든 것이 영원히 발로돼서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이르기 전에 나사로를 보내 가지고 이 사실을 그들에게 좀 알려서 부탁해 달라고 그렇게 홍포 입은 부자가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거게 모든 선자자들이 있으니까 그 선지자들의 말을 들으면은 네가 지금 여게 영계 와 가지고서 이렇게 보고 깨닫고 탄식하고 후회하고 원통히 여기는 그런 것들을 다 선지자들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거게서 충분히 들을 수 있다. 만일 그들의 말을 듣지 안하면 여게서 가서 말할지라도 듣지 않는다.’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면은 들을 것입니다'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면 듣는다는 그것도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 가지고도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그런 말들도 듣지 아니할 것이라’ 하고서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참 가치 있는 이 생명의 생애의 길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첫 열매로 첫 걸음을 걸으신 이 길로 인해서 우리가 이 길을 알게 됐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주님이 길을 뚫어 놨고 길을 열어 주었고, 또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고, 또 이는 만고에 이치가 많지마는 이는 완전 무결한 이치가 이제는 내가 가는 이것이 완전 무결한 이치라.

이 걸음을 걸어서 이 발자취를 따라서 오는 자마다 완전 무결한 이치의 합리적인 그런 걸음을 걷게 되고 이것이 곧 참된 생명이라 말했습니다.

이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생명이라 하는 것은 완전 능력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 생명이 무슨 능력보다도 그 능력이 제재를 받으면 그것은 생명이 되지를 못합니다. 반드시 그 생명이 언젠간가 멸해지는 때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어떤 것이 생명이냐? 생명은 완전자와 완전 친합을 가진 것이 그것이 생명이라. 이러기 때문에 자존자도 좋아하고 협조하고 피조물도 다 협조하고 좋아하는 이것이 참 힘이라. 이것이 생명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 생명의 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렇게 하늘에 천군 천사들이 깨닫고 찬송하고 땅에서는 그것을 모르고, 모르지마는 마치 봄이 오니 모든 식물과 곤충들이 이 사시에 봄이 돌아오는 줄도 모르지마는 어짠지 그들에게 오무라진 것이 뻐들어지고 얼어 붙은 것이 녹아지고 모두 다 말라진 그 모든 새움들이 새로 생기를 돋아서 오르는 거와 마찬가지로 땅위에 이렇게 이 모든 존재들이 이 셋 사랑의 희생으로 인해서 생기 얻어서 행복되게 되는 것을 가리켜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세 가지로 이렇게 희생의 제물되신 이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위해서 하신 것이요, 혹 잘못하면 창조주 위했다 하면은 그러면 이 일 한 것는 피조물인가 그래 생각하나 창조주가 창조주 자체를 위한 것입니다. 창조주를 위한 것이요 모든 피조물을 영계와 물질계의 전부를 위한 것인데 말하자면 음부까지 지옥까지도 다 위한 것이요, 그 안에는 인류를 위한 것이요, 인류 안에는 택자들을 위한 것이요, 택자들 안에는 중생된 자들을 위한 것이요, 중생된 자 안에는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어지는 대로의 것을 위하는 그 결과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은 지옥에 있는 것들도 다 주라 찬성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오전에 보류하고 중단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대속의 제물로 희생한 것은 그 소유와 영광과 존귀와 지위와 권세 이 세 가지를 희생한 것인데 이 세 가지를 희생한 것은 이 세 가지로 범죄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범죄한 그 댓가를, 소유욕으로 절대자이시며 절대자인 그 제도와 법칙과 조직 이것은 면할 수 없고 변개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 조직이요 제도요 이것을 가리켜서 시편 2편에는 결박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결박. 이것이 어데 먼지 하나라도 샐 수 있도록 그렇게 허무한 그런 제도와 법칙이 아니고 아주 그것을 가리켜서 결박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결박이라는 그 뜻은 이런 데서는 잘 모르나 시골에 가면은 이 자리 짠다고 자리에 날을 만들라고 삼으로 노를 비벼 가지고서 자꾸 요 동글동글하게 감아서 뭉쳐 놓은 게 있습니다. 그걸 노뭉치라고 합니다, 노뭉치. 또 지금 요새는 이거 나이롱줄 그런 거 가지고서 막 이리 감고 저리 감고 감아 가지고서 막 있는 그런 그 줄로도 여러 수십 첩으로 감고 얽어서 빈틈 없이 그래 돼진 거와 마찬가지인 그런 것으로 좀 모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조직해 놓으신 그 제도와 결박은 조그만한 것도 거게서 이탈할 수 없도록 그렇게 강하게 또 틈 없이 여러 층어리로 결박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자존자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지음을 받은 것들의 생애 제도와 서로간에 관계 맺는 이 모든 상호 관계에 이 모든 것을 그렇게 철두 철미하게 조직을 꾸며 놓은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그분의 한 솜씨를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은 우리가 모르나 이 우주 안에는 우리 지구 땅덩어리와 같은 이런 거, 이런 거 몇십 배 큰 거, 몇백 배 큰 거, 또 그것이 빠르기를 이 넓은 우주를 이십사 시간 만에 한 번씩 돌아다니는 것도 있고 일 년 만에 한 번 도는 것도 있고 또 여러 수천 년 만에 한 번 도는 것도 있고 또 며칠 만에 한 번 도는 것들도 있으니까 이 수많은 존재가 마구 오고 가고 이래 섞여서 복잡하기가 우리 사람들이 이 교통에 도로를 만들어 놓고 여게 이 모든 차량들이 오고 가고 하는 데 이 복잡한 것도 그 질서가 조금 잘 안 하면 부딪혀서 서로 교통 사고가 매일 생기는 것도 많은 건들이 생기는데 이것은 참 하나의 장난감이요 이것은 성글기가 짝이 없는 뜨문뜨문 있는 것이지마는,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의 조직체를 해 놓고 이 공간만 아니라 이 지구 땅덩어리 속에도 이런 거 저런 거 이치가 오고 가고 이래 가지고서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이런 것이 하나 나왔다 하면은 무엇이 하나 나왔다, 저거 눈에 보이는 대로 이게 나왔다 저게 나왔다 하지마는 그 모든 것은 수많은 존재들이 오고 가고 하는 거게서 화합되고 여게서 결렬되고 거게서 또 마찰되고 또 화합하고 충돌하고 이런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우주 가운데 있는 수많은 그 모든 별들의 그 중량이 이렇게 오고 가고 하는 복잡한 그 모든 왕래를 이래 하고 있지마는 그것이 우리가 안 이후에 그것들이 자기 궤도를 따라서 가는 데에 그 무슨 어떤 것이 서로 궤도를 이탈해 가지고서 마찰돼서 부딪혀 깨져서 이 땅위에 어떻게 나타나는 그런 것을 사람들이 말하지마는 별로이 그런 걸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다시 말하면 그분의 능하신 솜씨, 그분의 철두철미한 조직, 그분의 세밀하고 구비한 그 모든 질서 정연 이런 것을 우리가 모든 자연계시인 이 모든 것을 보아서 알 수가 있고, 또 신구약 성경 말씀 가운데서 그 봉지, 아가리만 떼놓은 그 봉지를 떼 놓은 그 속에 무한한 영감이 들어서 영감을 가지고서 그 세계를 들여다 볼 때에 사람들이 놀랠 만치 굉장한 당신의 그 솜씨와 범위와 철두 철미한 그것을 차차 알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믿어 갈수록 점점 하나님과 자기와는 너무 거리 먼 것을 깨닫고 되고, 또 하나님과 자기와는 너무 이질적인 것인 것을 깨닫기 때문에 자기가 갈수록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입니다. 마치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그런 아이와 같은 자입니다.’ 그런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모든 하나님의 그분의 어떠하신 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한 지식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제일 중요한 지식이고, 그다음에는 사람을 아는 지식이 다음에 둘째로 중요한 지식이고, 그다음에는 인간과의 모든 만물과의 관계를 아는 것이 셋째 지식이고, 넷째는 물물 관계를 아는 것이 넷째 지식입니다.

과학자들이 많이 말하지마는 그들은 물물 관계만 알고 있는 것이지 다른 것을 보지를 못하고, 다만 거게서 조금 머리든 사람들은 물물 관계 그것이 인물 관계, 사람과 물질의 그 관계가 어떠하다는 것을 발견을 해 가지고서 그 면을 조금 발견해서 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노벨상을 줍니다.

예를 들어서 뭐 천연두 손님 앓으면 얽는 그런 것을 우두 내는 그것으로 예방하는 것을 발견한 그런 사람은 모든 물질과 사람과의 관계점을 발견해 가지고 유리한 점을 발견해서 표시했을 때에 그들을 노벨상자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그분의 그 한 일이 무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이 반거짓말 지식이라 말하는 것은 과학은 과학 자체는 그것이 물리는 맞지마는 그 물질과 인간과의 그 관계성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반거짓말의 지식이라. 과학에 대해서 물질에 대해서 인간과의 관계점은 다 새카맣게 모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번에 그 광도에서 원자를 책임지고 발사한 사람이 인간과 물질과의 조화성을 바로 맞추지 못한 그 책임성을 가지고 사 년 동안 근신하면서 죄인의 느낌을 회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러기에, 시편 2편에 보면은 이런데 땅위는 있는 모든 군왕들이, 땅위에 있는 정권자들이, 군왕들이라 말은 하필 정권을 잡은 일국의 한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해석을 해 들어가면은 군왕들이라 하는 것은 다 자주자를 말합니다.

자주자. 자기가 주인이 돼서 자주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이 절대자의 결박을 벗어나서 제 욕심대로 할라고 애를 쓴다.

그럴 때에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저희를 비웃으리로다” 웃으심이여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하는 것은 이 큰 지극히 큰 존재에 절대성의 이 조직과 질서와 궤도와 그 세포를 이것을 피조물이 벗어날 수 없는 이것인데, 벗어나면 깨지고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고 이 모든 군왕들, 인간들에게 자주성이 있는 것만치 주권성이 있는 것만치 그것은 다 이것을 벗어날라고 하기 때문에 다 자멸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그 모든 것을 비웃는다. 자살 자멸 행위인 줄 모르고 날뛰기 때문에 비웃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사망의 법이 어떤 것이 사망의 법이냐 하면은 이 절대자가 조직하고 절대자가 우리에게 간략하게 생애 법칙으로 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발표한 신구약 성경인데 이 성경 말씀은 여게 준해서 간략 명료하게 우리에게 발표해 놓은 생애 법칙인 것입니다.

법칙인데 이 법칙을 사람들이 무시하고, 이 법칙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이요 이 법칙을 무시하지 안하고 이 법칙에 따를라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그것이 신앙 세계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서는 그러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이 법칙에 준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이 법칙을 무시하고 악령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 있고, 있는데 두 가지를 수많은 종류의 분야들이 있지마는 간추려서 강령적으로 말하면 이 세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소유, 존귀 영광, 또 지위 권세 이 세 가지로 말할 수가 있는데 이 세 가지를 간단하게 말해서 이 세 가지를 위에 계시는 자존자 지존자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분의 명령에 따라 그분이 원하시는 그 소원을 따라 이것을 타를 위해서, 자기 아닌 타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처음에 이것을 내놓고 하나 희생한 자가 있으니 그것이 누구냐?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이요 곧 하나님이 사람 되어서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이 한 생명의 길이 열려 있고, 하나는 첫째 아담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당한 것은 무슨 일인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마귀에게 얻은 생애 법칙은 예수님의 생애 법칙의 정반대의 법칙입니다. 소유를 위해서 모든 존재에게서는 네 소유를 취할 그 모든 너희의 이 소유를 취할 수 있는 네 농장으로 삼아라, 모든 인류와 모든 존재를 네 소유를 취하는 농장으로 삼아라, 네 존귀와 영광을 취하는 모든 농지로 삼아라, 또 네 지위와 권세를 취하는 그 모든 농지 무대로 삼아라 이렇게 하는 것이 첫째 아담을 마귀가 와서 꼬운 것입니다.

이래서, 거게 꼬인 그 타락한 이후에는 사람들의 그 법이 전부 다 어데서든지 대하면은 어떻게 하면 여게서 내 소유를 넓히고 키울까, 어떻게 하면 여게서 나를 존귀하게 영광스럽게 이렇게 섬기게 할까, 또 어떻게 하면 여게서 내 권세 아래에 모든 것을 통치하고 모든 것을 내 권세 아래에 복종을 시킬까 하는 이 세 가지 위주로 사는 것이 첫째 아담이 배암에게 꼬여 가지고 받은 자의 사망의 법인 것입니다. 이 사망의 법이 지금도 이 세상에 가득 차 가지고서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에서는 이 세 가지 사망법이 능숙한 것을 실력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하고 이 세 가지 사망법이 무능한 것을 이 세상에서 무능자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녀를 낳아 가지고서 일생 동안 자꾸 가르쳐서 이런 거 저런 거 가르치는 모든 일생 동안 공부시키는 것이 무슨 공부를 시키느냐? 사망법을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사망법 이 세 가지를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네가 단 둘이 만났으면 그 사람을 네가 소유해야 되지, 취득해야 되지, 또 네가 그로 하여금 너를 존귀히 영광스럽게 섬기도록 해야 되지, 또 그 모든 것을 네가 너에게 통치받고 네 권세 아래에 지배받아서 있도록 해야 되지 하는 이 실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래서, 제가 언제 설교할 때에 그런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메어다 놓는 그 모든 사람들은 구걸하는 일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다. 구걸하도록 구걸하는 길을 열어 준 사람들인데 구걸하는 것을 수십 년 그렇게 구걸하도록 메어다 주고 땀 흘려서 애썼지마는 마지막에 그에게 인간병을 고쳐 줬을 때에 인간병 고쳐 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서 인간병을 고쳐 줬을 때에 그 사람은 결국 베드로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앉은뱅이를 메어다 줘서 구걸하면 갈라먹기로 한 그 사람은 아주 뺏겨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이 ‘내가 수년 동안 공들었는데 네가 나에게 속하지 않느냐?’ 할 때에 ‘네가 나를 이용해 먹을라고 했지 나는 너에게 과거에 무식할 때는 속았지마는 깨닫고 난 다음에는 다시 더 속지 않겠다’ 하고서 완전히 배척해 버렸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땅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가 아니고 마귀의 법칙을 가지고서 일생 동안 공부시키는 것이나 모든 다 이래 하는 것이 이것이 구걸하는 그 법칙을 가르치고 실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병신을 가르쳐서 병신 노릇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으면서 ‘네가 구걸하되 네가 병신은 하나 있으면은 둘 있는 것처럼 해야 구걸을 많이 하지 그렇지 않으면 못 할 것이다’ 하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인간이 타락된 인간으로서 비정상적인 인간 노릇을 많이 해야 네가 모든 사람에게 네가 착취를 하고 유익을 보고 그에게 이용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거는 구걸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그 구걸한 것이 병신이기 때문에 구걸했지, 병낫고 보니까 구걸할 필요 없고 자기가 어짜든지 다른 사람에게 구제하면서 살 수 있는 거, 인간병을 고치지 못해 그렇지 인간이 정상적으로 인간병을 고치고 난 다음에는 무한한 조물주의 것이 자기 원천이요 자기의 포도나무요 자기는 가지니까 얼마든지 빨아당기면 되는 것인데 인간의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가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면은 그런 모든 인간으로 더불어 자기가 유익을 볼라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이래서, 며칠 전에도 설교하기를 하나님 한 분만으로 얻고 하나님 한 분으로서 나의 소망과 취득은 가지고 피조물들에게는 취득하지 안하고 하나님 한 분에게 얻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주고 주고 하고도 마지막에 다 주지 못한 그 면을 탄식하면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라’ 하고서 간 이것이 정상의 사람이요, 이제 이 제약이라는 공간 우주 경계선을 넘어서 거게서 벗어나서 이 자유의 무한한 세계에 거게 속해 가지고서 거게를 바라보고, 땅위에 있으나 그 높은 차원에서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의 그 모든 사상이요 감정이라 하는 것을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이래서, 이런 것을 다 말하는 것은 이제 자살하는 법 이 마귀의 법을 벗어나자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넓은 범위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가진 소유를 인색할 때에, 자기 가진 소유를 인색할 때에 거게서 인간은 외로와지는 것입니다. 자기 가진 소유나 영광이나 존귀나 지위나 권세나 이 세 가지를 자기가 가지고 쓰기를 인색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외로와지는 것입니다. 인색하는 자에게는 외로와 집니다.

또 이것을 탐하는 자에게는 고통스러워 집니다. 이것을 탐하는 자에게는 불안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탐하는 자에게는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을 취득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대적이 생깁니다.

또 이것을 남용하는 자에게는 사망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남용하는 자에게는, 이것을 제것인 줄 알고 제맘대로 주권적으로 사용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무엇이 죽어도 죽습니다. 죽고 죽어서 마지막에는 끄트머리 자아까지 죽어 버리고 마는 것이 그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서, 자기가 이것을 월권 남용하는 이것을 버리면은 사망의 그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망의 어두움에서 해방됩니다. 또 이것을 취득하는 그 세계를 버리면, 취득 방편, 취득 생활 방편을 버릴 때에는 그때에는 대적이 없어집니다. 또 이것에 대한 탐심을 버리는 자에게는 그는 외롭지 않습니다.

친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다 공동 소유라. 이 모든 것이 공동 소유라.

절대자가 만들어 가지고서 다 은혜로 주신 것인데 이것이 공동 소유라. 나는 부강한데 저 거지가 있으면은 거지의 모가치와 내 모가치를 나에게 한테 줘 가지고서, 거지 저에게 주면은 제 모가치 그놈이 남용해 가지고서 자살 행위할 터이니까 거지의 모가치를 나에게 줘 가지고서 이렇게 주신 이 공동 소유라.’ 하는 것을 이것을 깨닫고 살 때에 그때에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공동 소유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좀 더 이제 깨달아져서 ‘나는 청지기 생활이로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서 나는 가지고 저는 없는데 없는 저의 것까지 나에게 맡겨 주시면서, 그에게 맡겨 놓으면 남용해서 자살할 터이니까 이제 내가 그것을 가지고서 청지기로 그의 모가치까지 내가 가지고서 그 모든 것을 조절해 가지고서 이것을 바로 사용하도록 하신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이 청지기 생활을 깨달을 때에 그는 자기의 생활할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깨달아서 의무와 책임 감당하기에 분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동 소유인 것을 깨달을 때에 평강이 오고 온유가 옵니다. 공동 소유인 걸 깨달을 때에 평강과 온유가 오고 이것의 청지기 생활인 것을 깨달을 때에 자기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분망하게 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사랑의 빚 외에는 빚을 아무것도 지지 말아라” 하는 것은 사랑의 빚이라는 것은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입혀주면 얼마든지 입고 이와같이 하지만 그 외에는 남에게 털끝만한 것이라도 외의 것을 가지지 말고, 네가 가해하지 말고, 네가 남의 것을 공으로 취하지 마라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청지기 생활을 깨달을 때에 자기의 의무와 책임에 분망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이제 이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평강과 기쁨과 생명이 되어 있는 것이니 이것을 내가 잘 주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이것이 가서 생명도 되고 이것이 가서 기쁨도 되고 이거 또 평강도 되는 것인데 이것을 하지 못하면 나는 빚진 자라 하는 그것을 생각할 때에 모든 사람은 벌써, 존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서 처음에 이제 사망이 벗어져, 또 대적이 없어져, 또 고독이 없어져, 또 불안이 없어져, 평안해, 또 그다음에는 온유해져, 뭐 그렇게 조급할 필요가 없어. 절대자가 해 가지고 있는데 제가 암만 날뛴다고서 남의 것 취하지도 못합니다. 딱 소유도 절대적으로 예정과 조직이 딱 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내놓고 탐심을 가진다고서 취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온유해집니다.

온유해진다 말은 다른 사람을 대해서 따뜻하게 대하는 그것도 온유이지만 그런 것은 다 지엽적인 온유고 온유된다 말은 그분의 절대적인 예정이라 하는 것을 다 깨닫고 알고 보니까 그렇게 조급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 예정대로 이루어지는데 그 예정을 벗어나서 자기가 뭣을 그 궤도를 깨뜨리고 뭘 이루리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 다 거게서 조급이 나오고 또 원망이 나오고 시비가 나오고 인간들끼리 싸우지마는 “네가 싸우고 다투고 피를 흘려도 취하지 못한다” 절대 그분에게 있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항상 원망 불평 시비 낙망 원수 분쟁입니다. 이것을 아는 데는 모든 것이 온유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그분의 법칙에 대해서 이탈될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이 되는, 생명이 되는 돈을, 다른 사람에게 그 신앙의 뜨거운 불이 될 수 있는 그것을 내가 가지고서 내가 악용하고 내가 월권 남용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심판을 장만하랴, 이런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온유하고 겸손하게 돼 가지고, 아무리 제가 세계에 다 부자라도 이제 세계에 제일 큰 소유권을 뭣이든지 권세나 지위나 그 모든 물질이나 자기의 뭐 어떤 것이라도 그 소유를 가졌을 때에 자기가 그 사명을 바로 깨달으면 ‘내가 이 소유를 가졌는데 이 소유가 저 사람의 생명도 되고, 저 사람의 기쁨도 되고, 저 사람의 해결도 되고, 저 사람의 화평도 되고, 저 사람의 서로끼리 싸우고 원수 짓는 그 원수의 모든 화평도 되어지고, 이 모든 것이 다 기쁨과 평화가 되어지는 것인데 내가 이것을 가지고서 바로 이것을 다 배급하지 못하고 이것을 바로 분급하지 못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생명을 가로취하고 있는 것이 되지 않는가?’ 하는 여기에서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이 그것이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성인에게 나는 다 빚진 자라.” 이렇게 말한 것이요, 누가복음 16장에 청지기 비유한 것이 이런 데에서 비유한 것이고 탕자 비유도 다 이런 데서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깊은 뜻이 어떻게 넓고 넓은지 들어가 보면은 한없이 넓고 그런 것을 온 세상에도 두지 못할 만한 그런 것을 이 간단한 육십육 권에 둬 가지고서 진실되이 이 말씀을 믿고 자기 신앙 양심을 써서 찾아 들어가면은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만난다” 그말은,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는 것은 착한 양심으로 들어가면은 영감을 만나 가지고서 영감 만나면 모든 것이 다 바로 알게 되면은 무식하므로서 이렇게 실수하고 오해하고 곡해하고 원망하고 불평한 그것이 바로 알 때에 모든 것이 해결되어짐으로써 비로소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리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온유한 자라 말은 그런 것을 모두 알고 보니까 그 마음이 조급하지 안하고 담대하고 누굴누굴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역사에 지금 6.25 같은 난리가 난다고 해도 온유합니다. 그것도 주님의 절대 예정이요 택한 자를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깨달은 자는 6.25가 와도 이제 남을 위해서나 걱정하지 자기 위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어느 단계에 가면, 다른 사람 때문에 성도 내고, 다른 사람 때문에 조급한 말도 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강행도 있지 자기에게 대해서는 자기 위해서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자기에게는 다 주님에게 맡겨 놨기 때문에 아무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맡은 사명에서 이래 할까 저래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유가 이것이 자기가 단단히 취해서 많이 소유로 부강해질라고, 또 영광과 존귀로 부요해질라고, 지위와 권세로 부강해질라고 이래 하는 여기에서 죽음이 왔습니다. 이것 때문에 죽음이 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배암이 꼬울 때에 그거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가졌으면 될 터인데 제가 하나님 될 줄 알고 제가 존영하게 될 줄 알고 하는, 그 속에 이 소유욕, 또 영광욕, 지위욕 이런 것들이 그 속에 포함됐었기 때문에 벌써 종자로 그런 사상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딱 보이니까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로울 만치 탐스럽기도 했다” 그 속에 죄악이 들어서 벌써, 그 선악과를 볼 때는 자기 속에 있는 대로 봅니다. 있는 대로 봐서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보름달을 보지마는 자기 되어 있는 정신 상태에 따라서 보름달 보고 우는 사람도 있고, 고독감을 견디는 사람도 있고, 비관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참 평강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의욕을 가지는 사람도 별별 사람들이 있는 거와 같이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이 자유하게 하는 이 성경 말씀이, 그대로 하면 자꾸 펴여서 마치 누에를 키우면 애기잠 자고 나면은 그 꺼풀 벗고 또 두벌 꺼풀 벗고 세벌 꺼풀 벗고 벗어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나비가 되고 고치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자꾸 이 세상에서 말씀대로 자기 현실에서 한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 자꾸 지키면 우리가 자꾸 탈피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꺼풀을 자꾸 벗고 벗고 온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서 “문들을 열어 놨다” 이렇게 해. 문들을 열어 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이 문을 또 열고 들어가고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그러면 자꾸 우리가 애쓰고 이라면은 자꾸 문이 열려서 또 새 세계 새 세계 깊고 깊은 세계 자꾸 이렇게, 깊은 세계가 넓은 세계입니다. 밖으로 나올수록 좁은 세계요 들어가면은 넓은 세계입니다.

혹 사람들이 이 물질로 말하면 ‘겉에 그릇이 제일 큰 그릇이지 어째 겉에 그릇보다 큰 그릇이 속에 들어갈 수 있느냐?’ 요거는 물질로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껍데기가 제일 크고 그다음에 속 껍데기는 좀 작고 작고 이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진리라는 것은 들어갈수록이 더 커지고 이제 이 겉의 것은 더 좁고 불완전하고 약하고 들어갈수록이 강하고 넓고 자꾸 넓어서 속에 문을 열고 들어갈수록이 이제 모든 것이 다 우주 안에서 통일되는 이 전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종교라 하는 모든 종교들은 말하는 것이 대국적이라는 말 많이 씁니다. ‘대국적으로 말하는 거라.’ 대국적이라 말 쓰는데 기독교는 대국적이라 말 쓰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전체를 말합니다. 전체주의가 기독교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이 전부를 다 해 가지고서 망라해서 거게서 올바른 그 자유법을 택한 것이 기독교의 우리에게 주신 이 생애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조부라운 마음을 가지고서 마귀가 주는 사망법, 사망법은 자기의 소유를 인해서 범죄해서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소유를 다 내놓음으로 댓가를 해서 우리를 속량한 것입니다.

또 영광과 존귀를 탐해서 하나님의 법도와 제도를 벗어나서 범죄해 죽었기 때문에 그 댓가로 주님은 존귀와 영광을 댓가로 내놓고 우리를 대속한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지위와 권세 그것을 탐해서 범죄했기 때문에 그것을 인해서 내놓고 예수님께서 낮아짐으로써 댓가를 내고 우리를 속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말로 말하면 털끝만한 권세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말 한 마디도 당신 주권으로 말하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을 못하도록 영원히 사람되어 부활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부활을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자유성을 완전히 양보했는데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나에게 준 자유를 어떻게 내가 팔며 내가 오늘 또 내 자유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랴?’ 죽었으면 죽었지 그 일을 할 수 없는 생애를 가진 그것이 영생하는 힘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런 것을 탐해서, 오늘도 우리가 그런 것 때문에 시비하고, 그런 것 때문에 양심을 꺾고, 그런 것 때문에 말씀을 어기고, 그런 것 때문에 주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팔고 하는 이런 일을 버리고, 이런 사망의 법칙을 벗어나서 이제는 생명의 법칙인 예수님의 세 가지 이 대속물로 예수님이 내어 놨을 때에 이 세 가지 내어 놓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과 기쁨과 평강은 우주와 영계에 가득 찼습니다. 모든 존재에 가득 찼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이래서, 빌립보서 2장 5절에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어떤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예수의 마음 뭐인데?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안하시고 자기를 비어 창조주가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입고 종과 같이 되어 와 가지고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였다. 이럼으로 그가 높임을 받아 가지고서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이 다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 마음을 품으라 하는 것은 이 마음 품으면 이 생활 할 수가 있고 이 생활 하면 이런 존귀의, 자기가 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씌움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 이 모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으로 살라 할 때에 온갖 애로와 마찰이 있고, 또 우리가 예수님이 낮아지신 이 세 가지 낮아지심에, 가난해지심에 이 발자취를 따라서 살라고 하면은 여러가지 애로와 굴곡과 마찰들이 많이 있지마는, 이것은 네가 어느 정도 예수님 모형되었으며, 어느 정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힘있게 따라 걸어가며, 어느 정도 네가 일곱 가지 대속을 빼앗기지 안하고 지키고 있느냐 하는 그런 것의 연단이기 때문에 이 연단 받는 것이니 그런 연단에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마치 불로 금을 연단해서 정금만 남고 잡철은 다 타는 그것보다도 이제, 없어질 것, 피조물 요소로 된 것은 다 없어지고, 피조물이면서 피조물 요소로 된 거는 다 없어지고 창조주, 완전자, 영원 무궁의 불변자, 완전자의 요소를 네가 받아 가지고서 네것 만들어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결국 무엇이 목표가 뭐이냐?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으로 관씌움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잠시 잠깐 근심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깨닫고 난 다음에는 또 기뻐하고 기뻐하고 하니까 이 걸음을 너희들이 피곤치 안하고 걸어가면 때가 되면 높임을 받으리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 이 말씀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세 가지 이 탐심 이것으로서 자멸하는 행위를 우리가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이거 벗어나자는 것.

어리석어 그렇지. 하나님의 절대 이거 절대 전체적인 하나님의 자유법에서 예정이 딱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벗어나지 못합니다.

제가 공연히 애를 쓰고 야단지기다가 실수해 가지고서 제 지옥을 제가 만들고 제 원수를 제가 만들지 이것 제가 삼으면 얼마든지 모든 사람이 다 좋게 화평하게 얼마든지 살 수 있고 평안하게 살 수 있고, 지금 마귀들이 이 법도대로 살면은 이해를 못 하니까 욕을 하지마는 잠시 잠깐 후면은 욕하는 이 모든 어두운 것이 다 벗어져 버리고 모든 것이 다 대낮에 벌거벗은 거와 같이 드러날 것이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같이 드러날 것이고, 지금은 거울 속으로 보는 거와같이 흐미하지만 그때는 다 대면한 것같이 환하게 드러난다 하기 때문에 잠시 잠깐 후면 인간의 비도 인간의 시도 모두 다 드러납니다. 악도 선도 다 드러납니다.

그 모든 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때가 오기 전에 뭐 잘못된 거 있으면 어서 고쳐서 정리 정돈하거나 수습하고 자기의 행한 의가 드러나지 안했다고 거기 대해서, 또 자기 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는다고, 은혜를 모른다고 이렇게 원망 불평하는 그런 아주 낮은 계급에서, 깨닫지 못한 계급에 살지 말고 그런 것을 초월해 가지고 무한한 그 세계에서 얼마든지 가고 가고 가고 가고 행하고 행해도 오히려 유위부족이라 십자가에 못박힐 때도 ‘나는 꺼꾸로 못박아 주십시오’ 할 수 있는 그런 풍성한, 아주 힘있고 풍부한 그 생명력에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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