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방편

 

1986. 12. 12. 새벽 (금)

 

본문: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걸음의 결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걸음을 걸으셨기에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됐는가? 우리가 사는 생활은 예수님이 이렇게 이 걸음을 걸으신 그 공로로, 예수님이 이렇게 하나님이 도성인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이 사활의 생애를 하신 이 일은, 이렇게 생활하신 이 공로의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그 결과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됐다.

그러면, 하늘에는 온갖 존재들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거게도 영원 자존하신 대주재이신 왕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또 창조주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주권자신데 이분에게 영광이 됐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됐다” 하나님의, 높은 곳 하늘나라에서는 전부가 다 이 설정하신, 예수님이 설정하신 이 생애에 대해서 전부가 다 감탄한 참, 그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보다도 제일 가치 있는 행위, 또 존귀한 행위, 모든 존재들이 평가적으로 이리저리 비교하고 비판하고 평가할 때에 그 이상이 없는 제일 높은 생애, 제일 높은 생활로 그렇게 영광을 돌리게 되고, 또, “땅에서는” 여게는 그저 “땅에서” 이랬지마는 지극히 높은 곳의 정반대인 또 지극히 낮은 땅에서는 그렇게 하는 말로 뜻을 가졌습니다. 기록하기를 이 시적으로 기록했고 또 문장적으로 기록한, 문장적으로 해석하든지 시적으로 해석해도 지극히 높은 곳을 말하고 정반대인 땅을 말한 것은 지극히 낮은 곳을 말한 것입니다. 위로는 그러하고 땅에는 낮은, 제일 낮은 그 끝까지 낮은 데에까지 모두가 다 예수님의 그 생애로 기쁨을 가지게 됐고 또 평화를 가지게 됐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애로, 그 생애를 베푸신 존재, 그 생애를 설정한 존재, 그 생애를 설정한 존재에 대해서는 모든 존재들이 다 영광을 돌렸고, 모든 존재들이 영광을 돌렸고, 또 그 설정한 공로의 그 은택을 입은 자들은 전부 기쁨과 다 평화가 됐다 하는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보면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모든 존재들이 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또 주라고 시인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애는 그 모든 존재 가운데에서 제일 환영받고 존대받고 찬성받고 감탄을 받고 모두 다 중심으로 그 앞에 머리 숙여서 높이 평가해서 영광을 돌린 그 생애고, 왜 그러냐? 그는 땅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전부 어느 것 없이 다 그 은택을 입어서 은택 입은 그 결과로 기쁨과 평화가 충만했다 한 것을 여게 나타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는 간단한 세상이라 하룻 밤 나그네 같지마는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하늘나라는 끝이 없는 영원 무궁한 세계입니다. 영원 무궁한 세계인데 그 세계는 조그만치도 거짓이 없고 또 부정한 것이 없고 틀린 것이 없고 모두 다 옳고 바르고 참되고 정확합니다. 정확한 그 나라입니다.

세상에는 어두운 것이 오히려 광명한 것을 정죄하고 또 거짓이 참을 이렇게 정죄하고 거짓이 참 위에 타고 그렇게 참이 멸시도 당하고 이렇게 모든 일이 정확지 안한 세상이요, 정확지 안한 세상이요 또 공평되지 안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그렇지를 않는 정반대인 정확한 공평된 그런 나라입니다.

그때는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날 뿐만 아니라 밝은 낮에 벌거벗은 자와 같이 그렇게 모든 그 사건들이 다 드러난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또 영감이 있어서 우리가 세상과 달리 모든 것을 정평 정가하고 이렇게 한다 하지마는 이것은 아주 거울로 그저 거울로 이렇게 비추어서 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흐미하지마는 그때는 우리가 다 실상을 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은 짧기도 짧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정확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뭐 죄인이 의인이라고 그렇게 아주 오평을 받고 과장을 하는 그런 일들도 많이 있고 또 의인이 죄인으로 정죄함을 받고 형벌받는 그런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모두가 다 정확지 않는 이 거짓된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게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뭐 나 혼자 정직할 게 뭐 있으며 또 정확할 게 뭐 있으며 의로울 게 뭐 있느냐? 이 모두가 다 참 잡탱이 마구잡이 이거 뭐 이런 거짓된 이 모든 게 되어 있는 세상이고 이런데 뭐 어데 정평 정가의 그런 정확한 세계가 있느냐, 남이 다 이런데 나 혼자 이래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면서 사람이 가다가 낙심하는 그런 일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확성이 자꾸 없어집니다.

에덴동산 처음 인류 시조 때부터 이 배암이 나타난 거는 배암이 아니고 타락한 천사입니다. 타락한 천사 마귀인데 마귀가 배암을 입고 나서 가지고서 그때부터 그만 이 거짓부리가 들어와 가지고 거짓말이 시작돼서 사람이 멸망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마귀는 거짓말쟁이도 되고 거짓말쟁이 애비도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마귀로 말미암아 전부 마귀의 자식들이 다 돼 가지고 사람들이 전부 어짜든지 거짓말 이 거짓돼서, 이렇게 얼마든지 거짓돼서 작은 걸 크다고 큰 걸 작다고 뭐 더 전부 다 자기에게 관련된 것은 전부 과장하고 좋은 것으로 과장하고 또 자기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것은 전부 다 과소 평가해 가지고서 뭣이 뭐인지 이것을 짐작하지 못할 만치 그렇게 되어가는 이런 세상으로 자꾸 되는 이것이기 때문에 기독자들도 여게 그만 물들고 또 이런 것이 자기의 사상과 지혜와 지식과 그 모든 습관에 꽉 들어 배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으례히 이것이 정상인 줄 알고 그렇게 세상살이를 합니다.

이러니까, 뭐 이북에서는 이남에 대해서 참 서로 정권 다툼에서 속이는 거 또 꾀우는 거 그것만 가득찼고, 그러면 이북만 가득찼느냐? 또 이남에도 다 속고 있습니다. 이남도 또 내나 그 비슷하게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다 거짓말 세상이요 다 삐뚤어진 세상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 모든 세상살이를 가리켜서 죄 아래에 있는 세상이라, 사망 아래에 있는 세상이라, 또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두 가지 죽으심이 있는데 한 가지 죽으심으로서 우리를 매고 있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죄에서 해방시키고 사망에서 해방시키고 마귀에서 해방시켰다, 그러면 이 해방시킨 이 해방은 하나님의 공심판적인 그런 해방도 되지마는 실지로 이런 모든 죄라는 것은 삐뚤어진 것을 말하고, 사망이라는 것은 이 삐뚤어진 값으로 그것이 이제 점점 쇠퇴해져 가고 점점 영원히 자꾸 갈수록 더 모두 다 불행스러워져 가는 것을 가리켜서 사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망은 없어지는 거 아닙니다. 사람은 없어지는 줄 알기 때문에 혹 생각하기를 ‘뭐 죽어 없어지면 그만이지’ 이래 생각하지마는 거게는 구더기도 죽는 나라가 아니라 이랬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막 가면서 ‘뭐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자살하지마는 자살하면 아무리 불행스러워도 자살하기 전보다 자살 후는 더합니다. 갈수록이 자꾸, ‘이것으로 끝나지’ 하고서, `끝나면 그만 아니냐?’ 하지만 자꾸 끝이 나지 안하고 갈수록이 점점 더 악화되어지고 더 사망화되어지고 더 저주화되어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모든 피조물은 그것은 다 그 형태만 바꿔지면 없어집니다.

멸해집니다. 이 풀이 흙이 되면은 풀이라 하는 존재는 없어지고 짐승도 이것도 그만 썩어서 물이 되든지 흙이 되든지 하면 없어져 버리고 불에 타서 없어지면 없어져 버립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 불멸의 존재입니다. 사람은 절대 불멸의 존재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만은 자기의 오늘 행위가 내일의 원인이 되고, 내일 행위가 모레의 원인이 되고, 세상 행위가 영원한 나라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자기 행한 것을 자기가 먹는다, 자기 열매를 자기가 먹는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모두가 다 전부 사망 세계입니다. 이렇게 전부가 다 거짓부리로 나타나는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만 자기대로에는 정확성의 생활을 한다고 이렇게 하다가 그만 피곤해서 낙심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거짓되어지고 점점 사망되어지고 마귀화되어지는 여기에서 인간은 아무도 거게서 해방당할 자가 없고 그런 것들에게서 상관없는 이 자유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이 길을 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종교 창설자, 뭐 동양이나 서양에 모든 도덕으로 위대한 사람도 있고 사상으로서 또 윤리로 위대한 사람들도 있고 또 여러가지 철학으로 종교로 다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마는 그 사람들이 죄를 벗어나지 못했고 죄에서 자유하지 못했고 사망과 마귀에게서 자유하지 못했고, 다시 말하면 모두가 다 거짓 걸로 이래 가지고 거짓으로 이래 가지고 자꾸 움직이는 이 움직이는 세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다 그 분위기 속에, 그 모든 조류, 물결 속에서 이렇게 다 살고 갔습니다.

그런데 기독자들은 예수님의 공로로 해방받게 됐으니까 예수님의 공로로 해방받게 된 것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거짓부리가 미혹시키는 거짓부리가 해하지를 못하고, 마귀가 해하지 못하고, 영원 멸망이라는 그 세력이 해하지 못하고 자유하기 때문에 거게서 자유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세력을 예수님이 멸했기 때문에 하지 거게서 대속이 아니면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래서, 대속받은 자들은 죄가 접하나 죄가 왕노릇 못 하고 사망이 왕노릇 못 하고 마귀가 왕노릇 못 하는 것은 절대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만 배척하면 배척할 수 있고 우리만 자유하면 자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나그네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사갈 사람들이라 말이요, 또 행인이라 말은 우리가 한 시간 한 시간 살아가는 것은 그것은 자기는 지금 그냥 사는 것이 그것으로 날이 지나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전부 자기가 걸어가는 한 자욱도 없어지지 안하고 그것이 다 영원을 향해서 건설하고 모두 다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서 걸은 그 모든 흔적이라는 것은 영원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의 원인이 되는 것인데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 세상에 따라서 사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절대 사람이라는 것은 속일 수 없다는 거, 또 거짓될 수 없다는 거, 그러면 이 세상에서 속일 수 있고 거짓될 수 있는 것같이 보여지는 그것은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자멸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지 그게 끝까지 속여지지를 못합니다. 속인 것이 낱낱이 다 드러납니다.

이래서, 베드로후서 3장에는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래.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는 그말은 그때부터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 땅위에 마지막 이 우주 종말의 심판 그 심판부터 벌써 거게서부터 모든 비밀이 드러난다.

모든 일이 드러난다는 것은 거게는 모든 일이 정확히 드러난다 말입니다. 의에 털끝만한 의도 옳은 것도 그대로 드러나지 옳은 것이 양이 적다고 그것이 뭐 무시당하고 숨겨지지 안하고, 또 틀린 것이 ‘그까짓 틀린 것이야’ 틀린 양이 적다고 그게 드러나지 않는 거 아니고 그 모든 것을 다, 드러날 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13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서로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거와 같다” 우리가 아는 사람 얼굴 대하면 환하이 다 알지 않습니까, 저 아무것이라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과 같다 그말은 서로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끼리 만날 때에 환하게 아는 거와 같이 모든 존재들의 행위를 우리가 그때 다 알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것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심령이 어두워서 잘 모르지마는 하나님은 전지자기 때문에 그분 앞에 모르는 게 없을 뿐 아니라 그때에는 하나님이 모든 가리워진 것을 다 제거해 버립니다. 가리워지는 것을 제거하기 때문에 지옥이 지옥이 되고 천국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거게는 자기의 모든 거짓됨과 잘못된 것이 환하게 그때 나타나니까 누가 고통을 줘서 고통이 아니라 그 모든 그런 것이 환하게 드러나니까 자기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자기 고통이 되고 모든 옳은 것이 다 그대로 환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그 신자가 깨달을 것은 모든 것이 다 정평 정가의 때가 온다.

모든 것을 똑 바르게 바르게 정평하는 그 때가 오고 모든 가치를 정가하는 그런 때가 온다.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똑똑히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 그대로 똑똑히 믿고, 너무 하나님 말씀과 이 세상이 너무 반대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의심합니다.

이 세상이 너무 많고 숫자가 다수, 수가 많고 하나님 말씀은 수가 적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다 이거 다수가결로서, 아무리 사람이 열 사람이 있는 가운데서 한 사람이 말하고 아홉 사람이 말하면 아홉 사람 말을 신청하고 한 사람 말을 그것을 다 제쳐 버리는 것이 그게 세상이라 말이오. 이 마귀의 지식은 많이 있고 하나님 지식은 적게 있기 때문에 이 마귀 지식이 다 이렇게 거짓부리 돼 있으니까 하나님이 지식하는 걸 이걸 다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털끝만치도 오판이 없는 세계가 온다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털끝만치도 오판이 없는 세계가 온다. 또 숨길 수 없는 세계가 온다. 모든 것이 다, 지금은 모르고 다 뭐 첩첩이 가리워서, 사람이 지혜로 가지고서 자기의 악을 얼마든지 덮어 가루니까 제게도, 가룰 때는 제가 알았지마는 가루고 난 다음에는 제 눈에도 안 보이고 다른 사람 눈에도 안 보이니까 그 사람이 악인이 의인으로 이렇게 욱 드러나고 이렇게 하지마는 그것이 자기 속이는 일이라. 자기가 그런게 덮어 놓고도 오래 지나고 난 다음에 자기도 잊어버려 버립니다. 잊어버려 자기도 스스로 의인인 줄 참으로 압니다.

그래 가지고서 이 세상은 영원을 준비하는 세상이요 또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오묘한 세상이오. 세상은 짧은 세상이나 영원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이오. 또 뭐 어떻게 잘못된 것이라도 그것을 고쳐 버리면 그만 되는 고칠 수 있는 세상이요 이 오묘한 세상입니다. 또 자기가 어떻게 좋고 바른 것을 단번에 다 던져 버려서 깨트려 버리는, 일생 동안 만들어 놓은 것을 단번에 바싹 깨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박살내 버리는 그런 세상이라.

옳게 많이 해 놓은 것을 단번에 박살낼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라. 참 기가 막히고 참혹한 세상이라. 또 이렇게 잘못된 그 모든 것을 이것을 다 고쳐서 잘못된 것을 다 없애 버리고 고칠 수 있는 세상이라. 이것을 가리켜서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어지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오늘 떠날란지 내일 떠날랄지 모르는데 딱 일단 세상에서 떠나게 되면은 그 세상은 잘못된 것도 영원히 추호도 변동을 못 합니다.

그대로입니다.

또 자기가 억울하게 옳은 거 해 놓고 난 다음에 깨뜨린 거 박살낸 그런 것도, 어떤 사람은 수십 년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던 사람, 그러면 자기가 가정에서 수십 년 동안 인정받던 사람, 또 그 동리에서 수십 년 동안 인정받던 사람, 그 인정받던 그 사람, 또 공로자로 모두 다 감사함을 받고 있는 그 사람의 공로를 제 말 한 마디로 바싹 깨 가지고서 박살내서 흔적도 없이 그렇게 만드는 일들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 가지고서 자기의 아름답게 건설해 놓은 그 아름다운 건설을 다 박살내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다 거짓된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모든 정확이, 정확의 나라가 온다 그걸, 정평 정가의, 조금도 거게서 어누리나 불굼이 없는 정확한 나라가 온다, 그 나라가 오늘이 뭐이냐 하면 우리가 문 열고 턱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라. 들어가 버리면 다시 소용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라 하는 것은 그 시간을 지나가지 안하고서 즉시 해야 되지 그것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정확한 세계가 온다. 그때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어. 정확한 세계가 온다. 정평한 세계가 온다. 또 모든 것이 다 얼굴과 얼굴 대하는 거와 같이 모든 그 사실이 그대로 환하게 드러나는 세계가 온다.

이래서, 요한계시 20장에는 말씀하시기를 땅에서도 바다에서 뭐 공중에서도 다 모두 죽은 사람들 죽은 사람을 다 내 주니까 다 자기 거석을 다 입고 나오는데, 자기 이 세상에 입고 살던 자기의 그 심신을 다 입고 그대로 나오는데 그 나오는 것이 보니까 다 “행동록에 기록한 대로 심판받는다” 그 행동록에 기록한 대로 심판받는다 이랬는데 아마 요새 이것을 기록하면 거게서 녹음된 대로 심판받는다, 쵤영된 대로 심판받는다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거게서 필름을 가지고 촬영하면 그때 된 그 현상이 그대로 박혀나오고, 또 그때 소리는 테이프에 녹음하면 녹음 소리 그대로 녹음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하신 이 세계가 인간에게, 지금 하나님이 뭐 만든 거 가지고, 인간들이 만든 게 아니오.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은 것이 인간들이 무지해 가리워 있다가 지금 차차 차차 이게 하나씩 둘씩 나타나는 것이라 말이오.

나타나는데, 이러니까 지금은 말하기를 이 공간에는 소리가 이렇게 다 저축되는 이 세계 우주가 있다. 그것을 가리켜서 음파라 이렇게들 말하는데 그 음파 속에서 수백 년 전, 수천 년 전에 어떤 사람의 말한 그 음성을 비용만 많이 들이면 그것을 빼내 가지고 지금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왜? 그것이 이거 우주에 다 저장돼 있고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돼 있다 하는 그것을 요새 과학자들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한 것을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이 거짓부리 세상에서 많이 유혹을 받고 있는데 정평 정가의 세계가 온다. 그 세계가 있다. 또 모든 것이 모든 진상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같이 환하게 보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아주 자기에게 참 감탄한 의인이라고 이거 뭐 석가모니는 우리에게 대해서 참 이렇게 의인이다 이라지마는 그거 인제 그 사실이 다 드러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무지해 가지고 그걸 모르지마는 이다음에는 모든 게 다 드러나기 때문에 앞으로 이게 이 세계가 바꾸어져서 모든 것이 정확히 다 정평 정가가 나타나게 되고, 또 모든 그 은밀한 거 나타난 거 전부가 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같이 나타나게 될 때에 그때는 아마 감사해서 일생 동안 아주 그 앞에 두 손을 박수하고 빌고 감사한 그것이 ‘네가 나를 이렇게 속여 죽였고 이렇게 속여 죽였구나’ 하는 것을 다 복수 원수의 나라가 지옥의 나라입니다. 이러니까 이러한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하늘나라는 정평의 나라라, 정가의 나라라, 정확의 나라라, 또 요새는 가치가 언제는 금이 가치가 막 이렇게 올라 금 가치가 있다가 어떨 때는 금 가치가 뚝 떨어졌다가 이 세상은 이렇지마는 하늘나라는 모든 것이 정평 정가의 그 나라가 완전이 되어지니까 그 나라를 보면서 우리가 살아야 되는데, 그러면, 그 나라에 가면 누가 지금은 뭐 아무리 싫어도, 싫어도 이 강제의 세력에 따라서 그 사람을 찬성하기 싫지마는 찬성하고, 또 그 사람을 찬성하고 싶지마는 찬성 못 하고 이렇게 모두 다 이 환경 속에 환경의 그 피해를 받아 가지고서 모두 다 정확하게 움직이지 못하지마는 이다음에는 이 개미 한 마리도 왔다가 그런 모든 존재들은 다 그런 모든 만물들이 다 언권이 꼭 같고, 언권이 그 발언권이 꼭 같고, 또 자유권이 꼭 같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천하게 그렇게 밟혀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도 그때는 발언권이 꼭 동등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섭섭한 거 억울한 거 또 분한 거 모든 자기가 손해간 거 그거 전부 호소 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만물 심판이라.

이러한 나라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으신 걸음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 그 모두 한 것을 전부가 다 감탄하고 찬성합니다. 누가 이 일 했느냐? 하나님이 이 일 했다 말이오. 이 일 하신 하나님에게 대해서 모든 존재가 감탄하고 찬성합니다.

하나도 뭐 훼방하는 게 없어. 하나도 훼방하거나 조롱하거나 뭐 입을 비쭉거리는 거 ‘뭐 그래 봤자 뭐 별게 있나?’ 그게 아니고 전부 모든 존재들이 진정 감탄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또, 모든 존재 말단에, 말단에 있는 말단의 그것까지 전부 혜택을 다 입고 그로 인해서 덕을 봤더라. 사람이 도덕이니 뭐이니 덕이라 하는, 덕이라 하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나에 대한 혜택을 입은 그걸 가리켜서 덕이라, 덕이 크다 하는 것은 남에게 혜택을 입힌 것이 크다, 덕이 없는 사람이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친 게 없다 하는 그런 말을 가리켜 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모든 존재 말하면, 모든 존재를 이래 크게 말한다면 제일 위에 제일 아래, 제일 위에 여게도 그 전부 영광을 돌리고, 돌리고, 왜 돌리느냐? 제일 아래 이것까지 다 그 혜택을 입었더라. 그래서 그들이 다 기뻐하고 평화를 가지고 있더라. 이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했는가 그것을 우리에게 지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그 생활한 것이 참 평안하고 든든하고 위에 가도 든든하고 밑에 가도 든든하고 원수가 없는 모든 존재들이 다 못 견뎌해서 이와같이 지금 환영하고 찬양하고 높이고 모두 다 아끼고 ‘그는 없어지면 안 된다’ 그러니까 만일 앞으로 이 우주가 이거 끝나 버리고 제 이차적으로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에서는 만일 하나님이 없어진다고 ‘내가 이제 좀 피해서 내가 좀 어데로 하야를 하고 내가 어디로 좀 피해서 없어질 터이니까 너거끼리 잘 살아라’ 하나님은 없어진다 하면 모든 존재가 다 죽습니다. 모든 존재가 다 죽어. 왜? 그분이 제일 좋고 그분이 공평되고 옳기 때문에 다 좋아하는 이런 환영을 받고, 거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지 하나님 안 계시면 소망을 안 가져.

이렇게 이 평가적으로 이렇게 가치있는 이 생활이 있고, 모든 존재들이 그거는 없어져야 된다 하고서 적 아닌 것이 없고, 훼방 안 하는 것이 없고, 저주 안 하는 것이 없고, 그게 없어지기를 원치 안하는 것이 없고, 대적되지 안하는 것이 없는 이 생활, 이 양극의 생활이 있다 말이오.

이렇게 모든 존재가 좋아하는 이 생애가 있고 모든 존재가 싫어하는 이 생애가 있고 정 양극의 이 생애가 땅위에 있는데 너희들이 어느 생애를 취할 것이냐? 양극의 생애 있는데 사람들은 마귀에게 꼬여서 어두워져 가지고 몰라서 양극 중에 아주 사망 절단나는 멸망받는 이거 참 말할 수 없는 이런 생애가 가치 있다고 취하는 것이 이 세상법을 따라서, 신앙 생활하지 안하고 사는 인간들이라 그말이오.

이거 가지고 제가 뭘 마귀란 놈에게 꼬이니까 돈 한푼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또 지위 하나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자기 감정 하나를 만족하기 위해서 자기 주관 자기의 그런 거 하나 만족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있고, 이거는 참 말할 수 없는 자살 자살 자살 자멸 자멸 자살 이 무서운 해독의 이 생활을 제가 자꾸 자취하고 있으면서 오늘 그거 자취해 놓고 난 다음에 ‘오늘은 참 재수 있다, 오늘은 참 성공했다.’ 이렇게 하는 이것이 전부 말하자면 이거 누가 말하기를 ‘전부 다 비정상의 미친 생활이다. 이건 다 전부 이거 다 비정상의 인간들이다.’ 이거 그렇기 때문에 전부 이 세상에 있는 전생활을 한 말로 말해서 디모데후서 3장에는 말하기를 “다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저는 저 사람 속이고 저 사람한테 저 속고 이래 가지고 전부 저는 속이고 또 제가 속히고 이렇게, 남을 속일 때는 제가 속인 줄 알았지만 저는 남 속인 그것도 또 제가 속았다 말이오. 전부 속이는 거 외에 딴거는 없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양극의 생애가 있는데, 양극의 생애가 있는데 이렇게 지극히 높은 곳에서 지극히 낮은 곳에서도 모두가 다 환영하고 찬성이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런 생애를 할 수 있는데 왜 모든 존재가 이렇게 다 멸시하고 천대하고 이렇게 하는 그런 천하고 더러운 이 생애의 방편을 취할 것이 뭐 있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가치 있는 존귀한 생애, 이 생애 있는데 그 생애를, 그 뭐이냐? 그 생애를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닙니다. 복잡한 거 아닌데 그 생애를 어제 몇 가지로 말했어요? 손가락으로 한번 가르쳐 보이소. 몇 가지로 말했습니까? 어제 이 생애를 몇 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생애를 했는데 몇 가지로 하니까 이 생애가 됐습니까? 그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어제 아침에 내나 가르치고, 어제 아침만 가르친 게 아니라 이 평생 가르쳐, 내나 여기 온 지 오늘 뭐, 어데 보니까 그렇더라? 투표하는 데 보니까 그렇던가? 삼십오 년 뭐 육 개월 됐던가, 내가 이 교회 온 지가 말이지. 그래도 늦게 온 사람 늦게 왔지마는 그 계속해서 하는 말인데 그걸 몰라요? 몇 가지? 예수님께서는 몇 가지 생애 방편을 자기 생애 방편으로 취했는데 그 취한 결과가 이렇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녜, 이 세 가지. 세 가지라는 사람들 많고 그것도 안 드는 사람도 있는데 모르는가? 이 세 가지, 세 가지. 세 가지 방편 이거, 인간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이거 인간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것인데 이것이 제일 가치 있는 생애입니다.

하나는 뭐입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자기의 모든 소유를 자기 위해서 사용하지 안하고 자기 모든 소유를 다 멸망하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아닌, 자기 아닌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그분에게 그거 필요가 없고 하나님 외에 모든 존재에게 자기 아닌 모든 것들을 위해서 자기에게 있는 소유를 다 투자하는 자, 예수님이 그거 아닙니까? 또, 자기가 마땅히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데 지금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자기 아닌 모든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영광과 존귀함과 칭찬,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인데 그걸 하나도 받지 못하고 그 모든 걸 다 희생해서 다 투자한 것.

하나 남았는데 하나는 뭐입니까? 지위와 권세, 예수님은 창조주의 전능의 세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지만 그 세력 하나도 부리지 못해. 왜? 그걸 부리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 한 마디 할 권리가 없었어. 말 한 마디 할 권리가 없었어. 말 한 마디도 당신 뜻대로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해. 자기 주권으로 말한 거는 하나도 없소.

이러기 때문에 이제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주권을 가진 것은 예수님의 신성이야 근본도 주권 가지고 있지마는 인성이 모든 주권을 가진 그것은 이것 때문에, 권세를 있는 것을 다 자기 아닌 모든 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희생했다 말이오. 마땅히 권리를 부리지만 내가 권리 부리면 저게 구원되지 못하겠고, 내가 권리 부리면 저게 감탄받지 못할 거고, 내가 권리 부리면은 저것이 양식이 되지 못하고, 참사람이 되어지는 그 양식이 되지 못하고 그걸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그 주사가 되지 못할 터이고, 이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당신이 완전히 희생한 그 생애가 이것이 영원 무궁세계에서 하나님에게도 칭찬받아 감탄받아서, 칭찬받아서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칭찬 받았고, 모든 피조물에게도 “다 무릎을 꿇고 주라고 다 시인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렇게 이런 분을 보내 주신 걸 감사합니다’ 하고서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영원히 영원히, 이 세상은 하룻 밤 나그네와 같은데 영원한 영원한 세계에서 영광과 존귀가 되어지는, 이 모든 존재들에게 환영받는 이 생애 방편이 몇 가지냐? 세 가지인데 요것을 이 마귀란 놈은 요것을 제일 나쁜 것으로 말해놨습니다. 제일 가치 있는 생애 이 세 가지 생애를 마귀란 놈이 제일 나쁘고 망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세 가지를 제일 싫어합니다. 아무리 좋다가도 제 영광과 존귀를 허는 거 말하면 막 죽자 살자 하고 달라듭니다.

자기에게 있는 영광과 존귀를 덮어 가리고, 그 존귀를 허는 사람은 자기에게 손해보이지 안했기 때문에 그건 가치 있지마는 자기 영광과 존귀를 드러내는 것은 자기의 모든 영원한 세계를 깨트리기 때문에 그것을 오히려 적으로 삼고 그것을 피할라고 애를 쓰는데, 이 세상에 사람들은 없는 것도 있다고, 없는 것까지도 있다고 뭐, 주먹만 하면 태산같이 그렇다고, 없는 것도 있다고 이래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인간의 모든 평가론이 이렇게 정반대로 꺼꾸로 돼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정신을 바로 차리겠느냐? 예수님의 세 가지 죽으심의 사죄로서 모든 것을 이 세 가지를 우리에게 깨뜨려 이 세 가지에서 해방시켜 가지고서 자유케 한 것인 것입니다.

이걸 그러기 때문에 이 말을 들어도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우리를 자유를 줬다 하는 이것을 말로 암만 외워도 그 뜻이 뭐인가, 뜻이 뭐인가 하는 그것이 자기가 자꾸 배웠으면 알 뿐 아니라 배워서 암만 해도 지식으로 알지 자기가 실지로 그거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알고 난 다음에 어째야 됩니까? 실행하고, 실행하고 나면은 어찌 됩니까? 실행하고 나면 어찌 됩니까? 예? 실행하고 나면은 참 내 제자가 되고, 인제 “참 내 제자가 되고” 성화된다 말이오.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러면 진리를 또 알아. 그러면 자유케 해.

자유한다 말은 무슨 말이요? 이 세상 꺼꾸로 된 세상에서 바로 살 수 있다 그말이오. 꺼꾸로 된 세상. 이 모두 다 정평해서 ‘속이면 복이 있다’ 말하자면 ‘뺏들면 복이 있다’ 뺏들면 복이 있는 게 아니라 화입니다.

자, 이 세상에서는 주면 좋다 해요 뺏들면 좋다 해요? 세상에서는 어때요? 주면 좋다 해요 뺏들면 좋다 해요? 주면 좋아하지. 하늘나라서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하늘나라 준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주는 걸 좋아해요 달라 하는 것을 좋아해요? 어떤 거 좋아해요? 달라 하는 걸 좋아해요 주러 온 거 좋아해요? 달라 하는 거 좋아해요.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지 안 주면 우리가 못 살기 때문에 그건 창조주기 때문에 이래 하지마는 세상에서 인인 관계에서 보면, 사도행전 20장에 말씀하시기를 뭐라 했습니까? 여게도 가고 저게도 가고 오늘도 수입을 많이 봤다, 이 사람의 혜택을 입고 저 사람의 혜택을 입었다, 이걸 복 있다 했습니까 어떤 자가 복 있다 했습니까? 사도행전 20장 몇 절이지? 35절이가?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세상 생활의 정 꺼꾸로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을 이루기가 어려워. 예수님의 이 공로가 아니면 아무도 이걸 못 얻어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복 있는 길은 세상에 미련한 길이라 다 이렇게 했으나 참으로 구원 얻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의 길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세상이 이해 못 할 걸음을 걸어서 이렇게 지극히 높은 데와 지극히 낮은 그 공간 속에, 지극히 높은 데와 지극히 낮은 그 공간 속에 예수님의 생애의 영광이 충만했고 모든 것들이 다 기쁨과 평화를 얻어서 감사하고 못 견뎌. 전부가 다 그로 인해서 다 행복됐고 그러니까 감사와 영광이 충만했으니 그것이 뭐이냐? 잠깐 동안 이 삼십삼 년 동안 생애에서 이 세 가지 방편을 취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 예수님의 생애 이 세 가지 방편으로 이 혜택 받았으니까 그를 찬양하고 그를 높이고 이렇게 그분의 기뻐하시는 바를 하기 위해서 세 가지 방편을 취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영원 무궁세계를 생각함으로서 이 세 가지 방편을 취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 있는 생활이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삼십 분 기도하는 거 놓지 맙시다.

이래 뭐 자기만 자고 자기만 자니까 잠 그까짓 거 더 자나 안 자나 좀 참석하면 심령이 열릴 터인데, 이런 말 저거가 평생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이거 그만 마니까 그거 어찌 됩니까? 참 불쌍하다 말이오. 종일 너는 도야지라. 돈만 보고 사니까 도야지지 뭐? 뭣 합니까? 제가 또 뭘 압니까?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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