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고난


선지자선교회 1983년 7월 31일 주전

 

본문 : 벧전4:12-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고난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일방적으로만 생각을 하고 단편적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고난 없는 사람이 있는 것같이 보이지마는 고난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면이 고난이 없으면 저 면이 고난이 있고, 오늘 고난이 없으면 또  미래에 고난이 있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일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 하니 죽는 날까지 고난 없는 생활로  영원한 무서운 형벌을 마련하는 그 사람이 시편 73편에 보면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또 세상에서 자기의 이런 욕심 저런 소원을 인해서 여러가지  애로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소욕이 땅에 있는 소욕을 인해서 자기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의 성령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고난 당하는 사람이 세상에 두 종류, 또 고난 당하지 않는 사람이 약간 있는  것, 우리가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죽는 날까지 고난 없고 어떤 죄를 짓고 악을 행해도 고난  없고 죽을 때도 고요히 평안하게 죽는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되다 할 것인데 성경은 그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는 지옥에 갈지라도 지옥의 형벌도 받아보면 차차 연단이 돼서 좀 나을  터인데 세상에서 순전히 지옥의 반대되는 데에서 살고 지옥 가니까 다 같은  형벌을 받아도 그 사람에게는 고난에 자기의 느낌이 더 많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하나님의 법을 떠나 제 맘대로 저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죽을 때까지 고난 없는 그 사람이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 요것을 우리가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자기의 육체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 그 사람이  그다음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육체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 당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시험을 당할 때에 너희들이 하나님에게 시험을 당한다고 하지  말아라 자기의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다 그 어려움을 자청해서 그것을 초래케 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지옥 갈 사람으로도 둘째 불쌍한  사람이요 하늘나라 갈 사람으로서는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또 세상에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 당하는 사람 외에 성령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 당하는 사람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의 고난, 성령님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대로 이루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 있으니 그 고난  당하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기를 '복된 사람이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으로 우리는 분류를 하고  언제든지 이 지식 위에서 살아야 합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을 부러워하는 그것은  성도의 지혜가 아닙니다. 또 육체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애연스럽게 여겨서 동정하고 구출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이것이 지당한 마음들입니다.

 그러면 첫째 둘째 그런 것은 우리가 가지지 안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죽는  그 시간까지 영원한 멸망을 마련하는 것으로 일관되는 그런 사람의 입장을  우리가 원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지 안해야 하고, 또 육체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 당하는 그런 사람을 보고 멸시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참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참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자기의 눈을 자기가 찌르는 거와 같고, 자기 옆구리를 자기가 칼로 찌르는 거와  같은 그런 몰라서 비참하고 가련한 자이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겠고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두 고난 당하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면 못씁니다. 죽는날 까지는 고난이  없지마는 영원 무궁세계에 고난을 마련하는 것으로 일관 하고 저희 생애의  보응이 어찌 되나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그런 여유도 없이 쭉  미끄러지는 그 사람을 참 보고 두려워하고 블쌍히 여기고 가련한 데 대해서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어야 하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을 우리가 받고 있으면서 믿지  않는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참 자기를 멸하는 자멸하는 그런 육체의 욕심에 끌려  가지고서 고난 당하는 그런 사람도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마음에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사회하는 장로님이 기도할 때에 '참 이러하신 분을 모시고 무슨 염려  있어서 그분을 떠나서 이렇게 저렇게 하여 자기를 스스로 찌르는 그런  어리석음의 행위를 하다가 온 우리들이라'고 우리를 대표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육체의 소욕으로 인해서 고난당하는 사람도 우리가 블쌍히 여기고  부러워하지 안해야 되겠고, 죽는 날까지 고난은 생각지도 못하고 형통함으로  사는 그런 저주 중에 저주받은 그런 사람도 우리가 부럽게 보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두 사람은 우리가 피해야 되겠고,  성령의 소욕, 예수님이 가지신 소원과 같은 그 소원을 가짐으로 인해서  고난받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부러워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새서 나도 어떻게 하든지 주님이 그 소원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 죽으심으로 이루셨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창조주가 또 피조물의 그  추악한 형상을 영원히 입는 무서운 그 희생으로 인해서 성령의 소원을 이루신  주님을 본받는 성도, 주님과 그런 성도들을 본받아 그 고난에 나도 동참하는 자  되기를 원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인류에게는 고난이 있는데 두 고난은 우리가 받지 아니하도록  피하여야 할 고난이요, 한 가지 고난은 어떻게 해도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입니다.

 한 가지 고난 뭣? 성령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받는 고난,이 고난을 받기를  원하고 원하고 주님도 그렇게 원하셨습니다. 성도들도 밤낮 이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원해서 기도하고, 금식기도 하고, 철야기도 하고, 산기도  하고 밤낮 이 소원을 가지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 가지 고난은 어쩌든지 피해서 그 고난을 당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도록 노력을 해야 되고, 또 그리스도의 고난, 이 고난은 우리가 받는 자  되기를 원하고 원해서 이 고난으로 끝을 마치는 자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시련을 당하되 불시험을 당하거든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라' 시험 중에 불시험이라 말은 혹독하고 뜨거운  시험이라 말입니다. 뜨거운 어려움이라 말이요. 뜨거운 고난이라 말이요.

 그러면 이 어려움이 우리에게 좋은 것은 아니로되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은 전투 세상인데 무슨 전투냐? 생명과 사망이 싸우는 전투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가 싸우고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악령이 가득 찼고 악의 세력이 아직도 세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사회도 악령과 악의 세력으로 쏜살같이 지옥을 향하여서 흘러가고 있고,  세상의 문화도 그러하고, 도덕도 그러하고, 사회도 그러하고, 털끝만한 것도  살아 있는 것이 없는 완전히 죽은 것 들인데 지금 죽음에서 죽음으로 향하여  점점 더 깊이 깊이 부패해서 달아나고 있는 이 폭포수 같은 이 살수 같은  죄악으로 지옥을 향하여 지금 내려가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는 악령과 하나되고, 죄악과 하나되고, 사망과 하나된  자는 세상살이에는 마찰이 없습니다. 그저 술술 술렁술렁 하면서 자꾸  내려갑니다. 하나도 마찰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곧 성령의 소욕, 예수님이 와서 이루어 놓으신 성령의 소욕과,  또 생명의 이 존재와, 또 자기에게 진리의 생활 방편이 조그마치 있으면  조그마치 마찰이 있고, 많이 있으면 많이 마찰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냇가에 가 가지고 물장난할 때에 그 꼬챙이를 묶어 가지고 실에다  묶어 가지고 위로 댕겨 올라올 때에, 당길 때에 그 꼬챙이가 쪼그만한 것이  요만한 것이 묶여 있으면 당길 때에 물결이 조그만한 것이 그렇게  촐락촐락하면서 마찰이 됩니다. 그래 좀 큰 아이들은 이 만한 나무 동가리를 매  가지고서 띄워놓고 위로 끌고 올라가면 물결이 배 가듯이 물결이 척척  갈라지면서 마찰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죄를 주셨기 때문에  이 사죄를 뺏기지 아니하려고 칭의와 하나님과 화친된 이 세 가지 구속을  뻐앗기지 아니하려고, 세상은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빼앗기지 아니하려고,  또 이 세 가지로 살려고,  안 뺏기려고 함으로써 일어나는 마찰, 이대로 살려고 함으로 일어 나는 마찰,  또 이것을 형제들에게 전하려고 함으로 일어나는 마찰, 이런 마찰이 없을 수  없으니 모든 것은 악령과 사망과 죄악으로 마구 황토수같이 이렇게 흘려내려가고  지옥올 향하여서 흘려내려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성령과 생명과 이 진리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갈라고 하니까 거게 마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이상히 여기지  말고' 너희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함으로, 죄 짓지 안 하고  의롭게, 하나님 배반치 안 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살려고 함으로 인해서 여러가지  고난이 오거든 이상한 일 당한 것으로 그렇게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그게  당연한 일이며 필연한 이치가 아니냐?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너희들이 예수님화된 것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마찰이 있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예수님화된 것.

 예수님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을 마귀 소원인 세상 속에서 살라 하니까 마찰이  되고, 또 죄악이 살수같이 내려가는 세상에서 예수님이 죄없이 해 주셨으니  죄없는 자로 살려고 하니까 마찰이 되고, 또 이렇게 전부 다 인간들 자기  주장으로 자율로 주관으로 살고 있는 세상에 객관인 유일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로 살려 하니까 자연히 마찰이 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가 왕이 돼  가지고 제 자주장으로 제 욕심 제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을  따라서 살려고 하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고 살려고 하니까 자연히 세상과  반대가 되니 마찰 있는 것이 필연한 일이 아니냐? 왜 이상하게 여기느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주님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심판이 나타날 때에 자기에게 성령화 그리스도의  구속화 진리화된 것이 작으면 세상에서 마찰이 작고 이것이 크면 마찰이 크니,  너희들에게 마찰이 없으면 주님 대면할 때에 부끄러울 것뿐이지 하나도 주님과  하나된 것이 없으니 그 나라에 가서 벌거벗은 자와 같이 될 것이고 너희들이  성령화 진리화 그리스도의 피화 된 것이 크면 세상에서 마찰이 많고 그 나라에  가서 주님과 하나됨이 크고 많고 강하기 때문에 더 영광 있는 자로 나타나지  않느냐? 그러기 때문에 이걸 바라보면서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죄악의 세상에서 마찰 없기를 원하느냐? 하나님과 진리와의  일치화된 것이 없으면 그거는 없는 것인데 영광의 주님 앞에 나타날 때에  벌거벗은 자로 아무것도 성화된 것이 없는, 그 나라에 쓸모는 하나도 없는 자로  나타나야 될 것이고,  그 나라를 생각하면서 그 나라에 쓸모 있는 자로 그 나라에 있는 그 실존을  지금 내가 끌어다가 내가 입어서 실상화된 것이 있으면 있는 것만치 마찰이 있는  것이니 마찰이 적으면 그 나라에 영광이 적고 마찰이 크면 그 나라에 영광이  크니, 이제 받는 마찰과 장차 나타날 그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마찰이 하루밤과 같이 잠깐 지나가지마는 네가 그리스도화된,  하나님화되고 그리스도화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네가 참 사람을 이루고 온전한  행위로써 네가 참 무궁토록 칭찬하고 영광되고 존귀하고 기념할 만하다고 다른  모든 것이 모범할 만한 그런, 너희에게 참이 이루어진 그것이 거짓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에 마찰되는 것으로써 표적이 된다.

 그러므로 마찰된 그것이 그렇게 성화된 표적이니 이제 마찰과 이 다음에 나타날  영광은 비교 못한다. 이 마찰은 많아봤자 찍해야 백 년 미만일 것이요 그 나라에  나타날 그 영광은 영원 무궁하다.

 이 나라에서 마찰되어서 피조물들에게 마찰되어 고난 당하는 것은 그것은  잠깐이지마는 무궁세계의 하나님과 하나님화된 모든 것에게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된 그 나라에서 환영받고 영광스러운 것은 족히 비교 못한다. 시간으로도,  양으로도, 가치로도, 영광으로도, 힘으로도 고난하는 그 힘과 영광의 힘은 족히  비교하지를 못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니까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고난을 당할 때 '내게도 내게도 성령의 소욕이  내게도 와서 이루어졌구나.' 세상과 마찰될 때에 '이 죄악과 하나가 안 되고  나도 죄악과 대립되는 게 있구나. 이 모든 불의외 대립되는 것이 있구나.

하나님과 대립된 그 세력들 거게 마찰되는 것 보니까 나도 조물주 자존자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된 양이 있구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세상에 분주하고 복잡하고 고민하고 번민스럽고  불안하거든 그리스도로 더불어 거듭난 사람이라면 돈이고 직장이고 권세고 인간  사정이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그만 가서 성경을 자꾸 읽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 읽고 묵상하고 하면은 좀 후에 자기가 영광의 빛,  진리의 빛화됩니다. 화되면 그 모든 어두움이 불을 켜면 어두움이 다 사라지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화, 영감화,  하나님화되면 세상은 참 선물이요 밥이 됩니다. 해할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럴 때에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안 하고 세상으로 가 가지고  제가 세상 무슨 술책을 꾸며 가지고 그런 것을 해결 지울라고 하는 자는 점점  깊은 침륜에 빠져서 멸망에까지 저는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1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 받지 말려니와' 우리가 세상에서 참 죄를 지어  가지고 고난 당하는 그런 것은 참 못할 일입니다.

 죄를 지어서 고난 당하는 그런 일은 당하지 아니하도록 어서, 죄 지어서 고난  당했으면 주님의 피에 고해서 하나님 앞에 사유함을 받고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오는 그 악의 세력을, 자기가 다 회개를 하고 주님에게 고해서 '이것까지도  주님이 맡아 주십시오' 해서 주님에게 맡기십시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주님이 그것을 맡으시고 다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음으로 고난 받거든 어서 회개하고 그 고난을 주님에게  맡기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다 담당을 해 주십니다. 주님은 담당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 그것들을 다 당신이 지었소. 당신의 것들이오. 당신이 얼마든지  자유로 할 수 있습니다.

 없는 데서 만들어 냈고, 길렀고, 먹이고, 입혔고, 또 모든 택한 자의 죄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을 다 담당하셔서 형벌받았기 때문에 당당히 당신이 담당할 수가  있습니다.

 '이 죄를 이것을 그려라. 삭제해라. 그려라.' '허, 죄가 있는데 벌도 안 받고  그릴 수가 있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힌 그걸 가 봐라. 죄를 한번 벌 받았으면  되지 두 번 받을 수가 있나?' 딱 그려버려.

 죄를 지음으로 고난 받으면 빨리 그것까지도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받고 어서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서면서 '이것까지 맡아 주십시오' 할 때 주님은  그것을 맡아 주십니다. 그 죄악의 세력을 저 천길 만길 땅속에 파묻어서 다시는  영원히 솟아나지 못하게 파묻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이 이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세상에는 고난이 두 가지, 인류에게는  고난이 세 가지. 세 가지인데 고난 하나는 세상에서는 없고 무궁세계만 있는 것.

고난 두 가지는 세상에서 자기 욕심으로 인해서 고난 당하는 고난이 있고,  성령의 소욕으로 인해서 고난 오는 고난이 있고 고난 두 가지 있으니, 육신의  욕심으로 인하여 당한 고난, 죄 지음으로 당하는 고난은 당하지 안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할 것 이고 성령으로 당하는 고난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됩니다.

 이렇게 죄악이 물살같이 흘려내려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 죄악과 일치되면  술렁술렁 저거 동무라고 잘 내려갈 것인데 그와 반대되는, 사망에 반대되는  생명이 있고, 악령에 반대되는 성령이 있고, 죄악에 반대되는 의가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이 사망인 죄악인 악령인 세상에 마찰이 있는 것이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왜? 너에게 세상과 마찰되는 세상과 다른 그것이 네게도 이루어졌으니 그것이  영광의 나라에 가 가지고 영광될 것이며, 존귀될 것이며, 모든 존재들이 다  환영할 것들이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기뻐하고즐거워 해라. 왜  너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당하고, 진리 때문에 고난 당하고 예수 믿으려고  함으로써 고난 당하고, 죄 안 지으려고 고난 당하고 의롭게 살려고 함으로 고난  당하고,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섬김으로 살려고 함으로 고난 당하는 그 고난을  네가 왜 부끄러워하느냐? 왜 네가 무서워하느냐?  너에게 이렇게 인생에게 가장 보배로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네가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이 네 속에 이루어진 것이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기뻐해소 그리스도가 이기고 영광의  보좌에 앉은 거와 같은 그 이기면 이김이 너에게 있고 이기는 요소가 너에게  있어 가지고 당하는 것이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것이 무궁세계께서  영광스럽고 기쁘고 즐겁가 될 그 요소의 증표다. 이상히 여기지 말고 기뻐하라.

 18절에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땅위에서 그리스도의 입혀 주신 이 구속을 입은 이 구속  입은 자로 살라고 할 때에 마찰이 있게 되는 구속을 입어 진리화, 성령화,  하나님화됨으로 이 죄악 세상에 마찰되는 그 고난 이것도 너희들이 어렵다  하거든 하나님과 성령과 진리를 멸하려고 하는 그 악의 세력과 악의 존재들의  받을 그 형벌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들은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는 여기서 구출하는 운동을 노력해라.

 '그러므로' 19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예수님이 받는 고난과 같은 그 고난을 받는 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당한 고난입니다.

 어떤 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뜻이 오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하나님의 뜻이 강하게 역사하심같이 선지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강하게 역사하여서 그 뜻을 어기지 못하고 죽는 데까지 그 뜻에  복종한 것처럼 나도 그 뜻에 불들려서, 그 뜻에 밀려서 꼼짝 못하고 그 뜻으로,  그 뜻을 이렇게, 마찰되는 그 뜻을 자기에게 강하게 오기를 원하고 그 뜻으로  말미암아 끝을 마치기를 원하는 이것이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선을 행하는 가운데' 요 현재사입니다. '선을 행하는 가운데' 현재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게 뭐인데? 그게 선입니다. 그게 선이라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하는 모든 방편과 조건과 법칙을 우리에게 준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중심, 무궁세계는 하나님 중심 외에는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대로 뜻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바로 너에게 하나님의 뜻 그것이 하나님 중심의 법칙이니 하나님  중심의 법칙대로 하나님 중심의 생애를 하면서 '가운데' 하면서 '그 영혼을' 네  영혼을, 네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네 영을, 네 영과 혼 그것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 해라.

 그 조물주에 부탁하는 것은 '오, 주여 내 영과 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것은  이제 내 생명이 끝나니 내 영과 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운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아버지께 부탁을  했고, 또 사도행전 7장에 보면은 54에서 60절에 보면은 돌에 맞아 운명하면서  '내가 눈을 열어 보니 아버지 우편에 서신 어린양이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모든  것을 승리하시고 영광의 우편에 서서 계시는 주님이 나를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 하면서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마지막 큰 소리로 '저들이  알지 못하고 이렇게 생명을 대항하는 것이니 저들에게 정죄하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 구원하여 줍소서.' 하고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아니함으로 오는 고난, 세 가지 대속을 그대로 내 생에서  나타낼라고 기념하는 생애를 함으로 말미암아 오는 고난, 혹암에 있는  형제들에게 이 생명선을 보내 가지고 구출하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당하는 고난이니까 이 고난을 당하는 자들아.' 그 고난 당하는  하나님 중심인 그 생애를 하는 가운데에서 네 영혼을 조물주에게 부탁하라.

 "그 생애를 계속하는 그 가운데서 '오,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면서  운명해라. 죽어라. 끝을 마쳐라."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것도 우리는 고난이 올 때에 그리스도의 요소가, 그리스도의 양이 내게도  이루어진 것을 인해서 기뻐하라. 또 이렇게 고난 당하는 것이 영광의 주가  나타나실 때에 부끄럽지 않는 자로 서기 위한 네가 변화되고 성화된 그것이  너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렇게 고난받는 자 위에 영광의 영, 영광의 영이 네 위에 있어서 너를  영광스럽게 하려고 지금 영광의 영이 네 위에 있어서 이런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다만 네가 죄를 범함으로 고난 당하는 이런 일은 네가 죽어도 하지 안하도록  피해라. 주의 구속을 네가 기념하면 범죄함으로 인하여 너에게 오는 고난은 있을  수가 없느니라.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곧 주님의 구속을 입고 또 그대로 살고 이  구속을 형제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오는 고난이 하나님의 뜻대로 오는 고난이니까  이 고난을 행하는 중에서 끝을 마치라.

 '네 영혼을 조물주에게 부탁하라' '오,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서  끝을 마치라. 우리는 쉬면 안 됩니다. 주님이 우리 영혼을 부르는 그 시간까지  이 고난을 계속하다가 가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형상이, 예수님의 사상이, 예수님의 법 칙이, 예수님의  소원이, 그분에게 속한 그분의 모든 것이 내게도 있는 것만치 마찰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마찰만 보지 말고 너에게 그분과 같은 것이 너에게 생겨짐을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것이 곧 영광의 주가 나타날 때에 영광되게 하려는  영광의 성령이 너를 영광되게 하려고 지금 너에게 와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죄를 지음으로 고난 당하는 일은 하지 말아라. 이런 아버지의 뜻대로 당하는  고난은 그 고난에서, 고난 거게서 네 영혼이 아버지에게로 가는 그 종결을  맺도록 해라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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