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1979. 12. 23. 주일 오후

 

본문: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오전에 예수님 탄생하시기 전 주님과 탄생후의 주님과 또 탄생하신 그 순서와  목적과 이루신 결과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나타나시기 전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오, 또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찬조하신 분이시오, 또 창조된 것들을 생명과 지혜로 영원히  충만케 하시는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이시오. 또 이 세상도 예수님이 지으셨고 또  영계와 물질계의 주인공이 되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창세기  1장에 흑암 중에 물위에 운행하시더라 하신 그 운행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오  또 에덴동산에 아담 해와를 두시고 늘 같이 계시고 인도하시던 분 범죄 후에  숲속에 숨었을 때에 아담을 찾으시던 그 하나님, 범죄한 아담과 그 자손이  멸망하게 된 그 멸망에서 여인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셔 가지고 죄인들을  대속해서 이제는 구원하실 것을 약속 맺고, 약속대로 때가 됨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오,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것은 인류역사가 있은 지 사천 년 후에  나타나셨지만 예수님은 영원전 자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존재의  계산을 사람으로 나타나신 그때부터만 알고 그 이전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시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모르는 소행에서 예수님보다 먼저 난자가 있다고  이렇게들 말합니다.

 사람으로 나타나신 것은 여러 도덕자들과 종교 창설자들보다 뒤에  나타나셨지만은 그들은 다 예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어 오신 그 목적과 이유를 오전에 간단하게 증거를  했습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구별함을 받은 선택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인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해서 탄생하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시오  그후에 아담의 자손은 다 일반인이신데 일반인 중에 선택을 입은 사람들은  특수한 은혜를 입은 특수의 사람이라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예수님이 오신 것은 넓은 범위에서는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존재를 위해서  오셨지마는 좁은 범위에서 말하면 택함을 입은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년에 한번씩 성탄을 기념하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는 그 기념을 기념하는 날을 하루씩 지켜 내려옵니다. 12월 25일인데  이날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전한  날입니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과 또 승천하신 것과 또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우리의 전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 중에도 이 성탄일이라 해서 이리 성탄주일로 지킬 때에는 한층  새롭게 여기에 대해서 우리의 깨달음도 가져야 하겠고, 떠 우리의 마음가짐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와의 관계를 맺은 이 일에 대해서 오전에 네 가지씩 네  가지를 합해서 한 가지 또 네 가지를 합해서 한 가지 우리의 할 일은 두  가지인데 이 두 가지를 더욱 더 새롭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했습니다.

 네 가지 첫째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네 가지의 큰 역사를 이루어 네 가지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영원한 가난을 부요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부요를 다  쓰셨습니다. 하나님 부요를 다 우리를 영원한 가난에서 구원해서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그 모든 부요를 내어놓으시고 가난해짐으로 택함을 입은 우리들이  부요해졌다고 또 부요해지기 위해서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큰사랑과 큰 은혜와 큰 공로를 가지고 희생의 공로를 가지고  우리에게 부요를 주신 이 부요를 받아 가지고 잘 간직하고 부요를 가진 부요자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를 무한히 영원히 지옥에 형벌에서 머물 수 있는 이런 원인인  죄를 범한 우리들을 거기서 구출해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만물 위 존영한  자리에 우리를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지극히 높으신 분이 지극히 낮아짐으로  우리를 높아지게 해주신 이 높아짐을 받은 이것을 또 우리가 간직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의 고통을 세상과 무궁의 고통에서  구출하시기 위해서 평강의 하나님으로서 가진 고난을 다 담당하셔서 우리를  평강의 세계로 옮겨 주셨습니다. 세상이나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는 평강을  우리가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 평강을 가진자 인 것을 알고 평강  가진자로서 이 평강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살리기 위해서 주님이 친히  죽으셨습니다. 또 죽으실 뿐만 아니라 또 살아 나셔서 우리 구원을  완성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하는 이 생명을 가진 자기 인  것을 깨닫고 이 생명가진 이 산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네 가지를 합해서 한가지라고 말했습니다. 한가지 받아 가져 있는  자로 살 것, 이것이 우리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이 네 가지를 받았으니 받아  가진자로 살 것,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기념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우리가 늘  기억하고 나타낸다는 뜻인데 이 네 가지를 우리가 받아 가지고 이 네 가지로  사는 이것이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오, 주를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기를 왜 죽었느냐? 왜 영원히 가난해졌으며 영원히 낮아졌으며,  영원히 고통을 당하고 영원히 사망하게 된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그것을  방편을 잘못써서 그런 실패를 초래하게 된 입니다

 가난해진 것은 부요해질려고 하다가 가난해졌고 높아질려고 하다가 천해졌고  평안해질려고 하다가 고통스러워졌고, 안 죽을려고 하다가 죽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악령이 와서 꾀와서 모든 존재가 있기 전 영원 자존자가 어떤 분이시며  그의 속성이 무엇이며 그가 창조해 놓은 모든 존재들이 있는 것과 이 모든  전체의 안녕 질서의 이 자유의 법칙을 몰랐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악령이 단순히  자기만 보고 자기만 알고 그 외에 보이는 것은 선악과 한 가지만 보고 이  둘이라는 요 깊은 감옥 속에 가두어서 그 밖에 도리는 전혀 몰라서 부요해진다는  것이 모든 존재를 대항하여 모든 존재의 것을 빼앗는 그 방편의 것으로 될 줄  알았고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하여 자기의 평강을 마련 할 수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모든 것에게 연결을 끊고 자기중심에서 살려는 여기에서 사망이  정반대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뱀이 꼬아가지고 아담 해와가 뱀에게  꼬여가지고 그때에 살던 방편은 생명의 방편에서 완전히 사망의 방편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돌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방편이 잘못돼서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런고로 잘못된 장편으로  가난해졌고, 낮아졌고, 고통스러워졌고, 죽게 된 이것을 예수님께서 옳은 방편  곧 사는 방편, 가난해짐으로 부요하게 되고 낮아짐으로 높아지고,  고통스러워지므로 편안해지고 죽음으로 살게되는 사망으로 사망을 이겨 살고,  고통으로 고통을 이겨 평강을 얻게 되고 낮아짐으로 천한 것을 이겨 존귀해지고  모든 것을 내어줌으로 얻어 부요하게 되는 모든 존재들에게 이치가 딱 들어맞는  이 자유의 법칙대로 예수님께서 하여서 우리를 구출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믿는 도리는 세상 사망의 법칙과 정반대 됩니다. 죽은 자는  산자를 알 수 없고 산자는 죽은자를 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받을 수도 벗고 들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그들이 모르는 방편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빛은 어두움이 이해 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산자를 알 수가 없고, 이 유한한  것은 무한에 속한 것을 모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을 알 수가 없고 이 유한한  것은 무한에 속한 것을 모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을 모릅니다. 큰 것은 작은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녀를 알아도 자녀는 부모를 잘 모릅니다. 부모 만침 되어야  이제 부모를 알지 그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생명의 법을  가지고 우리를 네 가지로 구원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인간적 법칙으로 이해해서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하나님의 법칙으로 해서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법칙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있는 소유를 희생하는 것은  사랑이니까 우리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이런 이치로 우리가 예수님에게  감사를 합니다. 그것은 초보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감사를 합니다. 그러나 차차  장성해 가면 그런 성질의 것으로 감사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자존자시오,  하나님은 창조자시오, 하나님은 시은자이시기 때문에 그에게 감사하는 그것이  지혜고 바라보는 것이 부요이고 그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 네 가지를 받아 이제는 네 가지를 가진 사람으로 사는 이것이 주를  기념하는 것이며 주를 찬양하는 것이며, 또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받아 이 네 가지 가진 것을 깨닫고 이 네 가지를 가진 자기로 사는 것이  이것이 우리가 첫째로 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이  첫째로 할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썩지도 쇠해지지도 없어지지도 더러워지지도 아니하는 영원한  신령과 생명에 속한 것으로 부요해졌습니다. 이제 그런 제목 말고 그 뜻은  알기가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기도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부요해졌으니까 이 부요를 내 부요 삼아 이 부요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 되고, 또 지위도 존귀도 그러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만물 위에 뛰어난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 우편인 이  지위와 이 권세를 가진 우리기 때문에 이 권세를 가진 자로 이 권세를 가진 이  권세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이 권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고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할 평강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할 생명과 신령에  속한 평강 이 평강은 쓸수록 점점 이 평강이 커집니다. 이것은 지금 그대로만  듣고 계십시오.

 이 평강을 가진 자기라는 것을 깨닫고 이 평강을 가진 자로 이 평강을 자기  평강으로 삼아 이 평강으로 살아야 됩니다. 이 평강으로 이제 생명도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이 다음에 영생하는 생명을 얻어 가지고 영생하는 거  아니오, 지금 영생하는 생명을 중생할 때에 벌써 이 생명을 받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를 죽일 자는 없습니다. 이매 죽을  고깃덩어리의 생명, 이 자연 생명, 저주 아래에 있는 생명은 이것은 죽일 수도  있고, 이것은 죽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이 생명은 영생하는 참  생명, 다시 하나님과 끊어질 수 없는 이 영감으로 결합되고 진리로 결합되어  영감의 힘으로 진리의 힘으로 살아난 우리의 생명은 영감의 힘으로 진리의  힘으로 영감 진리로 사는 이 영생하는 이 생명 가진 이 생명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생명을 가지고 우리가 이 사람으로 계속 사는 것이 주를  기념하는 것이며, 주를 찬양하는 것이며 자기 생활을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편, 곧 우리를 살리는 방편 우리를  부요케 하는 방편 그 평화롭게 하는 방편 예수님이 이 방편을 썼습니다. 이제  생명의 방편을 가져 오셔 가지고서 쓰셔서 우리를 구출했습니다. 예수님이 쓰신  방편은 산 방편이오, 완전한 방편이십니다. 완전한 방편인데 죽음의 방편이 볼  때에는 미련한 방편이오, 어리석은 방편이오, 손해가는 방편이지마는 죽음의  방편을 산다고 견해하고 있는 그 지식을 가지고 평가하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구출하신 이 방편은 손해가는 방편이오, 이는 참 죽는 망하는 방편으로 이렇게  견해가 되어지지 실은 이 방편이 그런 방편이 아니고 영영히 살고 존귀해지고  부요해지고 평강스러워지는 방편인데 이 방편은 당신에게만이 아니고 당신에게  속한자까지 다 구출한 완전한 생애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이제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가 네 가지를 얻은 이 사람으로 영원한  부요를 영원한 존귀를 영원한 평강을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받았는데 예수님에게  받았는데 이 네 가지를 받아서 이 네 가지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네 가지로  사는 생활을 하는 요 생활에 초보가 사람에서 시작되고 요 생애에 완전 숙달이  된 후 사는 생애가 무궁 세계에서 사는 생애입니다. 무궁세계에서 사는 생애는  어떤 법칙으로 사는가 하면 무궁세계에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신 이 법을 가지고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래 하늘나라는 자기의 가진 것을  자기의 가진 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명령하시는 대로 자기 아닌 모든 것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가진 부요를 주는 것입니다. 가진 부요를 주는 이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입니다.

 또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자기 보다 낮은 것을 천한 것을 존귀히 되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존귀를 이것을 희생해서 상대방을 존귀케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평강을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명령대로 자기 아닌 다른 것에게 평강을  더하기 위해서 자기의 평강을 희생해서 주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기의 가진 생명,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자기와  결합된 이 결합 말입니다. 이 결합을 자기 아니 다른 것에게 하나님과 결합이  충만하여 생명이 충만해지기 위해서 자기의 결합과 생명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생애입니다.

 이런데 하늘나라는 이것이 유한을 초월한 무한에 속했고 불완전에 속했기  때문에 거기는 다 신령의 본질과 본성을 가진 것들이오, 생명의 본질과 본성을  가진 것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 것과 다릅니다. 있는 부요를 이 생명 생활로 주어  가난하게 되니까 있는 부요가 더 부요해집니다. 가난해짐으로 부요해지고,  낮아짐으로 점점 높아지고 고난을 자취하므로 평안해지고, 생명을 줌으로 생명에  충만해지는 이것이 신령과 생명에 속한 하늘나라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아직까지  세상에 안 나왔습니다. 세상에 가리워져 가지고 이것을 세상에 기독자들이  대부분이 모르고 있습니다. 신령과 생명에 속한 것으로 우리에게 부요하게 했다  했지마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늘나라의 것은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은 줄수록 사랑이 강해지고 뜨거워집니다. 하늘나라는 다른 자의  천한 것을 존귀케 하기 위해서 자기가 천해질 대에 점점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기이한 세계입니다. 기이한 세계요. 그렇기 때문에 좋소, 세상에서도 이것이  비추어 와서 이 생애를 천국에 비해서는 그림자와 같고 실상에 비추어서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지마는 세상에도 이 생애로 자기 생애를 삼고 살고 간  사람들이 많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생명이 사는 생애 예수님이 우리를 구출하신 이 생애, 이 생애를 일차적으로  우리들이 쉬운데 붙어서 생활합니다. 쉬운데 붙어 생활해서 이미 불의한 사망과  저주와 저주 아래에 있는 이 부요 이것을 이 사망에 속한 이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냐? 형제에게 이 네 가지를 주기 위한 사랑으로 가지 이 소유를 주기 위해서  이것을 써서 없앱니다. 이 부요를 내놓습니다. 이 부요를 씁니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걸음마, 어린아이가 걸음마 하는 것 같이 걸음마하는 산 생활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써서 살리기 위해서 씁니다. 쓰면 이 쓴 것이 이상하게도 없어  질 때가 되면 쓰면 올달샘 위에 물 퍼 쓰는 거와 같이 쓰니까 더 많이 납니다.

이래서 이것을 성경에 말하기를 씨와 양식을 주어 가난한 자에게 주는 자에게는  의로운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을 더 많이 풍성하게 한다 그렇게  고린도후서 9장에 말씀 해놓았습니다. 이것이 생명이 사는 생활입니다.

 또 둘째는 이 네 가지 주님이 내게 주신 이것을 형제에게 주기 위해서 이 네  가지를 가진자로서 내가 사는 이 생애 주님이 주신 이 지위, 이 지위를  가진자로서 이 지위로 사는 자, 이 지위로 사는 이 생애가 무어냐? 자기가  세상에 가지고 있는 이 지위를 형제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써서 이것을  투자해서 이 지위를 사용하여 지위가 이것이 씀으로 낮아지는 것, 이 지위를  써서 낮아 지는 것, 이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하나님께서 주신 이 네 가지  이것을 형제에게 주기 위해서 세상에 높은 지위를 이것을 형제의 낮음을 존귀케  하기 위해서 이것을 써서 낮아짐으로 나것을 써서 낮아짐으로 (나인숙씨  정신차려 그라면 그 식구에게 축복이 안가 저주가가 왜 소용없는 것 생각해,  그까짖것 그게 뭔데, 못 알아들으면 헛일입니다. 지식적으로 알면 소용없어  능력을 받아야 되지)

 자기의 가진 지위를 무슨 존귀든지 말이오, 존귀를 주님에에 받은 이 참 존귀  이 존귀를 자기의 존귀로 삼아 이 존귀대로 사는 생애, 곧 사망과 죄악과 세상에  있는 이 존귀를 형제에게 생명에 속한 존귀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이것을  그가 받기 위해서 자기로서는 주님이 주신 이 존귀가 사는 이 존귀로 사는  생활이오, 이 존귀로 사는 생활이 세상이 볼 때에는 세상의 존귀를 이것을  형제에게 이것 주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을 하면 이 존귀가 주님이  낮아지신 것 같이 이 존귀가 낮아짐으로 참 주님에게 얻는 존귀는 참  존귀해지고, 이것으로 인해서 천한데 있는 형제가 이 존귀로 돌아오게 됩니다.

존귀로 돌아오게 돼요. 이것이 우리가 생명 생활이오.

 또 가지가 가진 평강을 이 세상적으로 가진 평강을 주님이 주신 하늘나라에서  주신 평강 이 평강으로 살라고 하니까 세상적으로 가진 이 평강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고통이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하늘의 평강으로 사는 것이오,  고통이 되어짐으로 하늘에 속한 평강을 형제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됩니다.

이러기에 죽은 평강이 산 평강이 됩니다.

 또 자기의 생명을 이것은 죽은 생명이오, 죽을 생명인데 영생하는 생명으로  내가 이 죽을 생명을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려고 하니까 죽은 생명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 생명이 쓰여져 다 없어지는 것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 곧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생명을 주기 위해서 이 생명이 충만하게 강하게 역사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첫째로 또 한가지 할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념해서 이  생활을 능숙하게 하는데, 이 하는데는 두가지 할 일을 오전에 말했습니다. 첫째  네 가지가 할 일 하나, 둘째 네 가지가 또 할 일 하나, 이제 이 두가지가 할  일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있는 것, 죽어 지는 것이  살아지는 것,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 것, 고통당하는 것이 평안해지는 것, 이  비밀을 모르면 여기에서 주저해 가지고서 중단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서  착각 해가지고서 혼돈해서 믿는 사람이 항상 옛사람 죽음의 생활로 살고 산  생활로 살지 못합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서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사망적으로 되어 있고,  저주적으로 되어 있고 없어 질 것으로 된 것이 이것이 세상것인데, 이것을  생명생활로 살아서 이것을 생명생활로 살아 이 전부가 생명생활로 살아질 것.

생명생활에게 쓰여 질 것, 생명생활의 것이 되어지는 것, 이것이 이제 우리가  세상을 마치는 것, 이 구원, 이것이 십자가의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살리는 것입니다. 이래서 현재 있는 것을 쓰니까 없어지는 이것이  없어짐으로 영원히 있어 지는 것이 됐고, 이 다음 무궁세계에서는 이것이 아닌  생명에 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무궁세계의 것은 써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망의 것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으로 사니까 사망세계는 없어져야  생명세계로 옮겨 갈 것이 아니겠오? 그러니까 없어지는 것 생명의 생활로 살아  없어지는 것은 사망 생활로 없어지는 것이오, 생명생활로 생명세계로 옮기면  사망세계는 없고 생명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망아래에 있는 이것이 생명으로 살아 이것이 사망세계에  없어지는 과정을 이해를 못하고 근시자로서 자기 주관, 인본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울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는 것을 너희들이 사랑하면 진정 사랑하면  기뻐했으리라 나보다는 그는 크시기 때문에 큰 자에게 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가 일차 생명으로 사는 것은 죽은 것이 생명생활로 사니까 죽은 것이  살아나니 죽은 것이 없었습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니 죽은 것이 없소, 이 다음  무궁세계에서 살 때에는 산 것 뿐이기 때문에 산 것이 산 것으로 살아서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무궁세계의 부요는 없어지지 안하고 부요를 쓸수록 점점  부요해지는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 자연의 계시에서 한 나무가지가 이 둥치에서 진액을 얻어 그 다음에  젖가지에게 조금 주니까 원 대목가지가 좀 크고 많아 주니까 더 크고, 이 가지가  많이 주면 널고 큰 가지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지를 그만치 키운 가지는 이  대목가지는 그 가지를 능히 보존하고 능히 양육하고 그의 중보자가 될 만치  가지가 굵지 안하면 그의 대목가지는 부러집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다 하늘나라의 생명법칙을 가르치고 있는데 다만  타락한 인간만이 사망의 법칙을 끌어 왔기 때문에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마는 이 물질의 과학법은 아직까지 변질이 안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네 가지 얻어 가진 자로 살 것, 네 가지 가진 자로  사는 생활 곧 죽은 것이 사는 생활 죽은 것으로 사는 이것을 기억할 것,   그러기에 우리가 사망아래 있는 것이 하나님이 무한하신 법대로 모든  존재들에게 혜택이 되어지는 법대로 내 모든 소유가 쓰여지는 이것이 완성이오,  완전히 저주와 사망을 벗어나는 것이오, 무한한 생명의 것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합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잠시 잠깐 후면 이제 이  나라에서 새로 조직된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된 이 통일  정권 아래에서 한 법칙으로 살게 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게 지식으로만 가지지 말고 실재로 자기 현실에서 이 부요가 내 부요로  이 존귀로 이 평강으로 이 생명으로 사는 자에게 세상이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죽여도 그는 해하지 못합니다. 모든 존재는 그를 유익되게 협조만하지 해하는  일은 절대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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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1 성찬/ 고린도전서 11장 17절-32절/ 890305주전 선지자 2015.11.06
3050 성찬 후/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80306주후 선지자 2015.11.06
3049 성찬 후 설교/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90306월새 선지자 2015.11.06
3048 성찬-여섯가지 능력/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60303월새 선지자 2015.11.06
3047 성찬으로 새로워지자/ 고린도전서 11장 23절-34절/ 840309금새 선지자 2015.11.06
3046 성찬준비/ 요한복음 6장 52절-58절/ 840308목새 선지자 2015.11.06
3045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11장 17절-33절/ 810227금야 선지자 2015.11.06
3044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11장 23절-32절/ 890301수야 선지자 2015.11.06
3043 성찬준비/ 빌립보서 2장 5절-11절/ 890228화새 선지자 2015.11.06
3042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90303금새 선지자 2015.11.06
3041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89030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6
3040 성탄/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791223주전 선지자 2015.11.06
» 성탄/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791223주후 선지자 2015.11.06
3038 성탄/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1979년 52공과 선지자 2015.11.06
3037 성탄 기념/ 이사야 9장 6절-7절/ 851225수새 선지자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