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준비

 

1984. 3. 8. 새벽

 

본문: 요한복음 6장 52절-58절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선지자선교회  우리는 두 심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두 가지 심판을  가졌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공심판이요, 공심판은 사람이라고 난 사람들은 다 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공심판에서 지옥가고 가는 것이 결정됩니다.

 이 공심판에서 지옥 갈 그 정죄를 받지 아니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택함을 입은 우리들은 우리가 이 공심판에서 심판 받아 온갖 죄 값을  당해야 할 그 모든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공로로서 공심판에 모든 정죄와 형은 면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우리에게 명령하고 요구하는 그것이 있어서 이 명령과 요구를 다 행했을 때에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의롭다. 옳다, 참되다 이렇게 인정을 하시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또 예수님이 우리가 행하여야 할 우리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요구를 대신 예수님이 행하셔서 완전한 의인으로 이렇게 공심판을  통과하게 됐습니다.

 이 공심판은 예수님이 대신하심으로서 통과하게 됐는데 하나님의 그 전지한  지혜로 나지 안한 사람의 나서 어떻게 범죄할 것과 어떻게 또 요구할 것을 다  미리 당겨서 예수님이 각각 개인의 것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나기 전, 나가지고 어떻게 범죄할 것을 다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로 아셔서  미리 당겨서 정죄를 했고, 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어떠한 것도 다  미리 당겨서 우리의 영에게 부담을 시켰습니다. 나기 전 우리 영에게, 나지  안했는데 우리 영이 나면은 이런 부담을 가지고 이런 이 정죄 아래에 불순종  아래에 있을 것을 다 우리 영에게 다 부담시키시고, 그러면 부담시켰기 때문에  영이 나기 전에 벌써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나게 됐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에게 다  담당 시키시고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모든 것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상에서 대속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대속을 하셔서 공심판은 면하게  됐습니다.

 공심판을 면한 것으로 우리가 어떤 구원을 받았느냐? 공심판을 면함으로써  영원한 지옥의 사망을 벗어나게 됐습니다. 죄를 벗게 되고, 사망을 벗게 되고,  의롭다 하는 그 의를 입게 됐고, 또 영생을 앞으로 가질 수 있는 자로 이렇게  됐습니다. 불택자들은 거기에서 그만 정죄 심판 받고 예수님이 담당하시지 안하기  때문에 그대로 지옥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정죄 받아 가지고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예수님이 대속해서 면제 해 가지고서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이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자들을 한 토막 세상을 줘 가지고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을 알려 주시는 것이 지금입니다. 성경으로 알려 주시고, 또 설교로  알려 주시고, 또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알려 주시고, 모든 만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닥쳐지는 온갖 그 현실을 통해서 알려 주시고, 열심이 하나님이, 열심이  쉬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알려 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죄가 있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그 죄가 있는 것을 성경을  봄으로써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죄가 있다 하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바울이 젊을 때는 그저 죄인이라고 했지마는서도 차차 나이가 많아 가면서 더  큰 죄인이요, 많은 죄를 가진 죄인으로 이렇게 연약한 자로 이렇게 자꾸 알게 된  것은 그가 나이가 많아 가면서 죄를 많이 범해 그런 것이 아니고, 자꾸 자기의  죄를 깨달으니까 세월이 갈수록 한 가지, 두 가지 자꾸 죄가 더 깨달아져서  자기는 죄가 많은 죄인이라는 것을 자꾸 깨닫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려  주시니까 처음보다 마치 글을 배우면 자꾸 아는 것처럼 세월이 갈수록 성경에서  자기가 어떤 죄가 있다는 것, 죄인이라는 것을 더 깨닫고, 더 깨닫고, 또 하나님의  종들의 설교로도 깨달아지고, 성신의 감동으로 깨달아지고, 또 모든 사물을  접촉할 때 거기에서 깨달아져서 죄에 대한 깨달음의 지식이 점점 넓어지고  많아지니까 거기에 따라서 죄의 받을 형벌도 차차 많아지게 됩니다. 죄에 대한  형벌을 성경을 모를 때는 몰랐지마는서도 이 죄에 대한 형벌은 이렇다. 저 죄에  대한 형벌은 저렇다. 저렇다는 그 죄의 형벌에 대해서 점점 똑똑히 자꾸 알게  됩니다. 또 이 두 가지가 그 알게 되니까 자기는 점점 죄인이 더 되지고, 또  자기는 더 형벌을 많이 받아야 할 자인 것이 자꾸 더 넓어지고 많해집니다.

 그러면 죄도 많해지고, 형벌도 많아집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님이 이렇게 내  많은 죄를 주님이 담당하시고. 또 형을 많이 담당 하셨으니, 예수님이 나를  대속하신 그 공로와 그 형벌, 그 어려움 어려움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하는 그  어려움이 차차 차차 믿는 자에게 더 깨달아져서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꾸 성경을  보고, 또 성신의 감동을 받고, 또 모든 사람들이 깨달은 그 깨달음을 자기가  배우고, 만 사물을 접촉하고 하는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이 죄에 대해서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셨는가 하는 것을 더 깨닫게 되고, 또 어떻게 형벌을 당하셨는데 그  형벌이 어느 정도의 형벌인가 하는 것도 점점 깨닫게 됩니다. 이래서 이 네  가지를 점점 많이 깨닫게 되니까 사도 바울이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을 했고, 또 만삭되지 못하여서 난 그 아이와 같이 그렇게 참, 의를  행하는 힘은 지극히 작은힘도 없는 자인 것을 자기가 깨닫고 이렇게 해서 이 네  가지를 깨닫고. 또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공심판 앞에서 털끝만한 죄도 죄가 없는  자로 예수님이 완전히 다 대속을 하셨고, 또 의로운 자로 이렇게 대신 행하셔서  의로운 자로 이렇게 하셨고, 이렇게 하시는 데에 주님이 얼마나 힘을 쓰시고,  어떻게 해서 힘을 쓰셨는가 하는 그것을 차차 연구해서 이제 더 알게 되어집니다.

 그러면 얼마나 우리를 깨끗게 하셨는가? 깨끗게 하시는 데에 얼마나 힘이  들었으며 자본이 들었으며 희생이 들었는가? 또 하나님 앞에서 완전 순종자의  의인으로 이렇게 세우시는 데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 또 하나님과 이렇게  화친하도록 이 화친을 이루는 데에 주님이 어떤 희생을 했으며, 어떤 고난을  당했으며, 어떻게 그 어려움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자꾸 연구해서 더 알게  되어지는 이것이 기독자들이 세상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죄에 대해서,  형벌에 대해서, 그 죄에 대해서 주님이 하신 일, 그 형벌에 대해서 주님이  담당하신 일, 또 우리를 완전히 무지한 자로, 의인으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이렇게 우리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런 자로 인정을 받도록 이렇게  대신 행하신, 대신 화친하시고, 대신해서 우리에게 죄를 하나도 없이 하신 이  일에 대해서 자꾸 연구해 보고 생각해서 알아지는 그것이 믿는 사람이  깨달아지고 가지는 지식입니다. 그러면 믿으면서 여기에 대해서 점점 연구하고,  깨닫고, 아는 지식을 가지고, 그러면 이렇게 자기의 모든 잘못된 것이 얼마나  많으며, 낱낱이 그걸 하나씩 새겨서 또 거기에 대한 그 결과의 보응이 얼마나  크며,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어떤 죄로 어떻게 멸망받을 자요 멸망받기로 벌써  시작되어 있는 자인 것을 자꾸 연구하는 그 연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은 이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면 그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시고, 그  형벌을 담당하시는 데에는 얼마나 고난을 당하셨는가?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신 그 면을 자꾸 또 연구를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 연구요  성경입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를 연구하고, 또 주님이 이런 자를 하나님의 지공한 그  심판에서도 '죄 없는 자라' 이렇게 죄 없는 자를 만드시기까지에, 또 우리를  하나님 앞에 완전 순종 자라 이렇게 그 순종자로 세우시기 위하기까지에,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하나님과 화친된 자라' 하나님의 친자녀가 돼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우리를 또, 참, 대해서  사랑하시고, 안타깝게 여기시고, 무엇을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이 육신의 그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요구하는 그것이 하나의 하나님이 이  구속받은 자들에게 대해서 관심 가지시는 것을 하나의 알려 주기 위해서 한  형식으로 만들어 놓은겁니다. 그 부모와 자식, 짐승이 짐승이 에미와 새끼의 그  사이에 에미가 어떻게 하는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부모된 자가 자녀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그것을 만들었고, 또 사람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부모가 자녀에게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지며 어떻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신다는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을 다 알려 주는 기관으로 알려 주는 실물  교재로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자꾸 연구해서 알고, 그러면 내 죄와 형벌, 죄 또 형벌, 또 나를  깨끗게 온전케 하신 것, 깨끗게 온전케 하신 것, 깨끗, 죄 없이 했고,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화친을 만들었고, 깨끗게 하시고, 또 깨끗게 된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소망을 주셨는가? 이 소망, 이 네 가지를 우리가 연구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연구하고, 또 죄의 형벌에 대해서 연구하고, 성경이 가르친  걸, 성경이 가르친 그걸 보고서,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이 두 가지, 또 이렇던  자를 얼마나 깨끗하게 온전케 하나님의 화친한 자녀로 이렇게 우리를 대속해서  개조한 이 개조를, 또 우리가 연구해서 알고, 또 이렇게 개조만 하실 뿐 아니라  개조한 우리들에게 지극히 큰 그 소망을 우리에게 주어서 그 소망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이소망 주신 것을 연구해서 이 네 가지를 연구를 합니다.

 이 네 가지를 연구하고, 이 네 가지를 연구하는 거기에, 이 네 가지를 이루신 그  주님이 이 네 가지를 이루시는 데에 어떻게 이루셨는가 하는 그것을 연구를  합니다. 그러니까 네 가지 연구하고, 우리는 네 가지가 되는 데, 참 두 가지  비참한 자가 되었는데, 두 가지 아주 존영한 자가 되어졌으니 이것을 이렇게  일으키시는 데에 주님세서 어떠한 그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셨는가 하는, 주님이  이 네 가지 면에 대해서 우리 위해서 어떻게 애쓰시며, 어떻게 희생하시며,  어떻게 그 어려움을 당하셔 가지고서 이 네 가지를 우리에게 해결해 주셨는가  이루어 주셨는가 하는 그것을 연구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대한 네 가지, 우리가 이렇던 자가 이렇게 된 이렇게 비참한  자가 이렇게 존영하게 된 이 네 가지 이것을 연구하고, 이 일을 일으키는 데에  주님께서 어떤 고난을 당하셨으며, 어떤 가난을 당했으며 어떤 희생을  당하심으로서 이 일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고, 또 우리에게 이렇게  좋게된 자, 이렇게 아주 존영하게 된 자를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이 다시  죽은 가운데서,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시고, 영원히, 그는 영원히  입으시고, 역사하셔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천 년 만 년에서 다 완료되는 것은  아니고, 영원히 우리 위해서 사람 되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중보라는 이  인성을 가지시고 영원히 계셔야 우리가 영원히 끊치지 않는 그 연결에 생명과  모든 평강을 얻어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영원한 대속으로 지금 부활하신 이것을  연구합니다.

 그러면, 이 일을 연구하도록 두시는 것이 이 세상살이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연구했는데 이렇게 연구를 점점 하면 자기는 이렇던 죄인이기 때문에 참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기는 밧모섬에서 요한이가 기절해 죽기까지 된 것처럼 자기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아주 천하고, 악하고, 불의하고, 불법하고 한 천하고. 비참하고.

가련한 자이었던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되고 또 이렇던 자가 이렇게 존영한 자가  되어진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되고, 이렇게 비참한 자를 위해서 주님께서 한없는 그  희생을 하신 것을 깨닫게 되고 또 앞으로 영원히 어떤 희생을 하실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됨으로, 이 세상에서 이것이 됨으로 주님 앞에 자기가 감사해서, 참 주님  앞에 감사해서 어떻게 주를 위해서 내가 충성할까 하는, 어떻게 해서 주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까 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자꾸 이제 커 나가고 생겨 나가야  되겠고. 또 나는 이렇게 주님을, 두 가지, 어떤 죄인. 어떤 형벌, 그것을  생각함으로 주님에게 고난 받게 한 이것을 생각함으로 자기 마음이 아프고 참. 안  됐어서 마음에 평상 머리를 들지 못하고 부끄러운 죄인줄로 이렇게 주님 앞에  그저 평생 찬송해도 모자라고, 평생 감사해도 모자라는 이 사람으로 점점  깨달아져 가고 자꾸 변화되어져 가서 자기 죄를 점점 더 알게 됨으로써 자기가  이미 예수님이 대속하기는 했지마는서도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그렇던 죄인이었다는 것을 자꾸 깨닫게 되니까 점점 자기는 과거에 죄인이었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고, 또 어떠한 형벌을 받을 자이었던 것을 자기가 알게 되고,  이렇게 이 일면으로 볼 때에 비참한 차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참,  깨끗하고 존귀한 위치를 가진 이 자기가 되어져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는  얼마나 존귀한 자가 되어진 이것을 깨닫게 되고, 깨달음으로 참 감사하며  기뻐하고, 또 어떻게 지극히 큰 소망, 너희들에게 지극히 큰 소망 그 소망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이 알게 하시기를 성령님에게 구했습니다. 에베소서 일장에도  보면.

 이렇게 해서 주님에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고난당하신 것을 생각해서 우리는 참,  마음에 이 사실을 우리가 실감해서, 자기가 실감을 해서 마음에 주님이 나 위해서  고난당하신 그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실감을 가져서 내가 이런 죄인으로서 이런  형을 받아 멸망받을 자인데 주님에게 내가 이걸 담당을 시키고, 주님이 담당해  주셨다는데 대해서 감사하고, 참 죄송하고, 부끄럽고, 어떻게 이 분의 이 대속의  은혜에 감사를 하며,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러니까 이 깨달은 사람들이,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 일생동안 살다가 로마에서 그저 거기에서 자꾸 이 주님의  대속을 생각함으로써 대속을 오늘 밤 이 자리에서 증거를 하면 그 증거 받은  사람들이 나가서 그대로 사니까 그 이튿날이면 순교를 다 당합니다. 네로 황제 때  순교를 당하고, 또 그 이튿날은 자리를 옮겨 가지고서, 또 거기에서 그래도  은밀히 모두 다 연락이 돼 가지고서 와서 그 설교를 듣고, 그 성신의 깨달음을  받고, 자기들도 다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이 이렇게 힘들여서 사죄해  주신 이 사죄를 다시 더럽힐 수가 없고, 또 의롭게 해 주신 의를 보존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주님이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화친해 놓은 이 화친을 다시는 주를  배반할 수가 없고, 또 이렇게 힘들여서 하늘나라에 큰 소망을 주셨는데 이 소망을  팔 수 없는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이튿날 네로 황제의 그 정치에서는 다  이런 것들을 부인해 버리라고 이런 것을 반대해 버리라고, 그라면 살려 준다고  하니까 그럴 수가 없어서 다 인정하고. 증거하고. 순교당한 것이 그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는 순교 당할 때에 모든 제자들이 순교를 당하면서 베드로에게 '우리는  여기에서 죽어 마땅하지마는서도 아무래도 베드로 선생님은 여기에서 죽는다면은  이도를 가르치지 못할 터이니까 가르치지 못하면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면  다 이렇게 주님 앞에 참, 죽고 죽고 또 죽어도 우리는 거기에 감히 억만 분의  일도 갚을 수 없는 이 지극히 큰, 참, 죄인이 큰 형벌에서 주님이 대신 담당하셔  가지고서 우리를 대속하시고, 이렇게 존영한 구원을 주셨고, 지극히 큰 하늘에  소망을 이렇게 주셨으니 마땅히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있는 전부를. 다 소유를  희생한다 해도 하나님 당신이 날 위해서 근본 하나님의 부요자가 가난하게 된데  비해서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아무리 주님이 주신 구원과 이 복음에 이 운동을  위해서 낮아지고 천해진다고 해도 나 위해서 하나님으로서 나 위해 천해진 그  천해짐에 억억만분의 일도 이거는 참, 형용할 수가 없는 이런 자인 것을 우리가  몰라서 하나님의 노를 격해서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안하고, 무시하고, 아주  멸시하고, 자꾸 이래서 한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 깨우쳐 주고, 깨우쳐도 이  세상눈에 보이는 이런 것만 알고 여기에만 자꾸 기울어지기를, 마치 주님은  우리를 참, 자기의 친 아내로 이렇게 사랑 하시는데 이 남편인 하나님을 배반하고  간부인 이 세상, 악령과 이 세상 이것을 좋아서 그렇게 나아가는 이 일을 한번 두  번이 아니라, 일생동안 자꾸 이렇게 하기 때문에, 히브리서 10장 26절 이하에,  요새 본 말씀에 하나님이 분노해서 이렇게 하신 이 사랑과 은혜의 노고를 자기가  생각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또 자기를 깨끗게 한 성령을 욕되게 하고,  주의 피공로를 이렇게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그 자에 대한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이제 공심판에는 아니고, 이 사적으로, 공심판은 면제됐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지마는서도 이 사심판 상대가 우리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 믿는 것은  사심판에 대한 이 일들입니다. 이랬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분개하시고, 분개 하시고 괘씸해하시니까 지옥은 보내지 안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이 공로를 입힌 것을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자기가 활동하는 그  활동하는 데는 주지 않는다 말이오. 활동하는 데는 주지 않기 때문에 그 소멸되는  것은 지옥이 소멸된다는 말이 아니고, 그것은 소멸되지 안하고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이것이 영원히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있을  그것이 다 타버리고 맙니다. 다 멸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할일은 뭐이냐? 이렇게 우리에게 대해서  네 가지, 아주 못쓸 것 더러운 것이 네 가지 있는 것을 예수님이 담당해서 아주  네 가지 이 존귀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대한 이  네 가지, 이 네 가지를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이 어떻게 당하신 그것을 우리가  연구해서 깨달아 주님에게 대한 네 가지를 우리가 깨닫고, 마음에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또 감사하고 이 두 가지로 인하여서 우리 자신에게 대해서는  밧모섬에 있는 요한이와 같이 그만 참, 생각하면 눈물 나고, 생각하면 죄송하고  황송하고, 이 두 가지 문에는 우리는 땅 속에 파고 들어 가야 되겠고, 이 네  가지를 위해서 주님이 대신 당하신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에 죄송하고 송구해서  도무지 마음에 견디지를 못하겠고, 이렇게 주님의 대속으로 우리 자체가 두 가지  이거 아주 존영하게 영광스럽게 된 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우리는 또 얼마나  기뻐해야 되겠고, 얼마나 기뻐해야 되겠고, 이 일을 이루어 주신 주님의 수고를  생각할 때에 또 얼마나 감사해야 되겠고, 그런고로 주님에게 대해서 슬픔과  감사가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고, 우리 자신에게 대해서 한없는 그 겸손과 한 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는 이 양이 주님의 이렇게 대속하신  주님을 위로하는 일이 되어지고,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되어지고, 우리를  그렇게 한데 대해서 주님이 그저 만족하시고 기뻐하시고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하셔야 되고, 우리가 이 네 가지, 우리 자신에게 대해서 겸손과 기쁨이  없으면 이것이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또 주님에게 대해서 황송하고 죄송해서 견딜 수 없는 이것이 없으면, 또  주님에게 대해서 감사하고 감사하는 이 감사가 없으면 주님에게 대해서 이 네  가지, 하나는 부끄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고, 죄에 대해서 부끄럽고, 형벌 대신  당했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고, 또 나를 대속하기 위해서 큰 힘들였으니 감사하기  짝이 없고, 또 나를 이렇게 지극히 존영한 이 소망을 주셨으니 그저 그분 앞에  기쁨이 짝이 없는 이 일로서, 이 네 가지로서 당신이, 대속하신 당신이 후회없고  기쁘시고 마음에 만족하시고, 오히려 그게 심할 때 그게 커가면 커갈수록 당신이  우리에게 위로를 해 주시고, 뭐. 그렇게 뭐 하고 하지마는서도 내가 너거를  사랑해서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네가 죽을 지경으로 기절해서 죽을 만치 마음이  아파 견디지 못해서 그리 하니까 주님이 등어리를 어루만지면서 위로해 주시면  '요한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는 그 위로를 해 주셨고,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가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주를 모실 수 없는 자입니다. 나를  떠나시옵소서' 하는 이 깨달음을 가지고 했을 때에 주님이 '베드로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요 깨달음 요것을 가지고서 네가 있으면 있는 것 만침 너는 인생을  구원할 수가 있고, 네 자신도 구원할 수가 있다'고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이 노여워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강팍한 자 완패한 자가 되지 말아야 되고, 또 주님이 이렇게 큰 대속을  주셨는데 우리가 이 대속을 업신여기고 이 세상 이런 데에 제하고 싶은 대로 제  욕심대로 이렇게 해서 주님이 어려움 당해 가지고 우리를 구원했는데 제 하고  싶은 대로 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 제 주장대로 이렇게 해서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이 노엽게 하는 요것을 우리가 회개해야 되고, 주님을 노엽게 하고,  섭섭하게 하고, 주님을 분노하게 하고, 주님이 마음에는 처음에는 왜 저랄까  하시다가 심해지고 난 다음에는 주님이 마음에 섭섭하게 된 마음을 가지시고  섭섭한 마음이 심해서는 나중에 괘씸하다 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괘씸하다는  마음이 심해져서 마음에는 분개하시고, 분개한 마음이 심해져서 원수로 삼아서  내가 원수 갚는 게 내게 있다. 내가 또 원수를 갚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사람과 꼭 같은, 죄가 없으시지 꼭 같은 감정을 가졌습니다. 꼭 같은  감정을 가졌소.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이 다정다감히 하지 안하고, 감정이 없는  그거는 짐승같은 사람이오. 그렇기 때문에 감정 없는 사람, 미련한 사람, 둔한  사람 그것이 불행스러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이 우리의 할일이요, 주님의 그 긍휼하심을 입은,  주님이 우리를 긍휼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다가 나중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처음에 우리가 당신에게 노를 끼치던 그 생활을 회개해서  하나님의 노를 풀어서 하나님께서 '그만 해라, 그만 해라' 하나님이 그 노가  풀리시고, 오히려 노하신 것이 우리에게 돌아서 가지고서 돌이켜져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이 되어져야 되겠고, 불쌍히 여기심이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신  것같이 애낌 없이 모든 것을 다 주고자 하시는 그 주님이 되어져야 되겠고,  거기에서 이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든든히 여기시고 우리를 안심하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실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자꾸 우리가 변해져 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우리가 어떻게 천한 자가 어떻게 존귀해 진 것,  어떻게 천한 두 가지, 이렇게 존귀하게 된 것 이 두 가지 이것을 우리가 연구해서  평생 연구해서 이 강도가 전부, 점점 강해져야 되겠고 이 실감이 점점 강해져야  되겠고, 여기에 대한 지식이 전부 한 가지 두 가지 자꾸 넓어가야 하겠고,  주님에게 대해서 부끄러운 머리를 들 수 없는 이 부끄러움에 머리 숙인 겸손이  점점 강해져야 되겠고, 그 범위가 점점 넓어져야 되겠고, 감사와 그분을 위해서  살고 싶은 이것이 점점 넓어져야 되고, 강해져야 되는 이것이 우리의 다 입니다.

이것만 되면 하나님의 모든 건 당신의 것이요,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모든 걸 주는 것이지, 그분이 줘야 우리에게 돼지는 것이지, 여기에서 얻지는  안하고 제가 저주받은 힘, 주님 떨어졌는 힘, 그까짓 힘 가지고서 노력을 하면  얼마나 노력을 할 겁니까? 수고를 하면 제가 절 위해서 살면 얼마나 알뜰히 살  것이라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주를 위해서 살지 안하고. 이거는, 내 힘이니까 내  모가치 위해서 내대로 살겠습니다. 하는 이거는 전부 망령이고 패역이지, 이거는  멸망 일로 뿐이지 딴 거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이 목요일 날인데 오늘 밤에 세례를 베풀어질 것이고, 또 다음  주일에 성찬이 있을 터인데 잘 깨끗이 준비해서, 주님의 노여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이것을 우리 주관으로서는 인제 노여움을 다  풀었다 하는 그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가 죽는 날까지 우는  것이요. 우는 것이요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노를 풀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동정하시고 우리에게 대해서 만족하시는, 선지자들에게 이 아합  왕을 이렇게 멸망을 시켜야 되겠다. 선포를 하셔서 선지자가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예언하시고 그 아합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자기가 깨닫고 죄를 회개 하면서 걸음을 옳게 걷지 못했어. 걸음을 옳게 걷지  못하고 참, 피골이 상접하게 되면서 걸음을 옳게 걷지 못하고 이래 되니까 주님이  전하라고 한 선지자를 불러 가지고서 말하기를 '야, 내가 아합 왕을 이렇게  멸하려고 했는데 네가 아합 왕의 요새 그 형편을 보느냐 아합 왕이 걸음을 걷지  못한다. 젊은 사람이요 강건한 사람인데 걸음을 옳게 걷지 못하고 그저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을 네가 보느냐?' 그러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당신의 마음이 다  풀려졌다 말이오. 풀려져서 '내가 이제는 내가 그를 멸하지 않겠다' 이래 돌아섰다  말이오, 그랬지만 또 그 뒤에 이세벨 여인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 또 하나님을  노엽게 하다가 결국은 참, 비참하게 돼서 비참하게, 이세벨 여인은 얼마나  하나님이 분개했던지 이층에서 내리뜨려서 전부이 박살이 돼서 막 깨져  버렸습니다. 개들이 와서 다 먹어 버렸다. 그 선지자를 통해서 요렇게 내가  복수하겠다 하신대로 했다 그거야. 그 자녀 칠십 명은 한 칼에 무찔러 가지고, 한  광주리에 담아 가자고,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하겠다 하는 그대로 되지 않아요?  예언한 대로 됐다 말이오. 예언한 대로 됐는데 아합이 그 전에는  예언하셨지마는서도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노를 풀고 도리어 불쌍히 여겼고  동정하셨다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실 수 있는 그저 우리  마음에는 자꾸 주님을 노엽게 한데 대해서 마음에 견디지 못하는 요게 있는 것  만침 당신의 마음에는 위로가 된다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의 자녀든지  자기의 아내든지 자기 처자가 잘못한 거기에 대해서 잘못함을 느끼지 안할  때에는 분하다가 처음에 느끼면 마음이 차차 좀 분한 마음이 차차 약해지다가  나중에 심히 그것을 참, 느껴서 마음에 마음 아파 못 견뎌 하고 이라면은 도리어  그 도수가 지내가면 마음에 괘씸한 분개한 마음만, 분개한 마음도 있고, 또  마음에 동정하는 마음도 있고 자꾸 이라다가 나중에는 차차 차차 그 처자에 하는  마음과 정신과 행동에 따라서 괘씸도 동정도 이 둘이 이라다가 차차 괘씸은  사라지고 동정이 자꾸 동정으로 바꿔지는 꼭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꼭같은 그 성정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대범하시지 그렇게 생각지 마십시오. 시기 제일 많은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 아주 다정다감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다정다감을  당신이 만들었어. 만드신 창조주입니다.

 이라니까 이렇게 뜨거우신 이를 우리가 모셨으니 얼마든지 우리가 만족하고도  무한히 남음이 있습니다. 만족함에도 무한이 남음이 있을 수 있고, 얼마든지  애정을 기울이고도, 무한히 남을 수 있고, 또 받는 대로 받고, 받고, 영원히  받아도 또 남은 무한의 애정이 동정이 그의 사랑이 있는 주님이십니다. 이러니까  이분을 알면 이분으로 더불어 가지면 다이고 만족이지, 이분 외에 딴 것을 구할게  하나도 없어. 이분 한 분이면 다라.

 그런고로 이렇게 해서 이번에 성찬을 우리가 먹을 때에 주님을 노엽게 하고  있는 자가 주님의 피를 곧 짓밟고 이렇게 업신여기면서, 행동으로는 예수님의  피를 욕되게 짓밟으면서 주님의 피를 성찬에서 먹는 것은 주님의 피를 욕되게  자기가 알고 행동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주님의 피를 먹고 마시는게 아니라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되고, 주님의 피를 더럽히는 그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든지 깨끗하게 준비해 가지고 성찬에 참예해서 이번 성찬을 인해서  주님이 다 노여움을 푸시고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 앞에 세상 일이나 영계 일이나 모든 것이 어려움 없이 착  기쁨으로 평강으로 통과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가 되야겠습니다.

 저도 거창 있을 때와 달라졌어. 거창 있을 때와 같이 도무지 기도하지 못하지,  명상하지 못하지, 암만해 봐야 소용이 없어. 할 기회가 없어. 뭐, 피곤해서 좀,  이젠 그라면 병이 나서 또 주의 일을 못하겠다 싶어도 그랄 여가가 없이 뭐. 자꾸  누웠다가 또 전화 하니까 그 전화를 끊으라 해도 어떤 전화인지 또 모르겠다 그  말이오, 모르겠으니 내비둬서 누웠다가 일어나도 나중에는 짜증이 난다 그말이오.

누웠다 일어나, 누웠다 일어나 자꾸 이렇게 몇 번 거치만 뭐, 뭐, 그만 그리 돼  이러니까 참, 이 일을 딴일 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라다가 나중에는, 그래도  이라다가 그만 마음에 좀 짜증이 나고, 이라다가도 주님의 피와 살을 먹어,  짜증이 나도 주님의 피와 살을 먹어서 이것을 생각할 때는 또 이제 그렇게. 한번  생각한 그게 더 안됐다 그 말이오. 그렇게 짜증 낸 그게 또 후회가 되고 주님  앞에 미안하고 죄송해서 견디지를 못하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참된 양식이라  말은, 양식은, 참된 양식은 먹으면 영양 많은게 참된 양식 아니요? 이러니까  주님의 이 공로를 생각할 때는 우리의 인격이라는 우리의 의를 행하는 힘,  희생하는 힘, 그것이 힘이 강건해져서 하고도, 또 유의 부족이라는 그것이  생겨지기 때문에 양식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깨끗이 준비해서 우리가 참, 주님과 결합이 돼 가지고 주님의 생명과 피와 살과  내가 결합이 돼셔 주님의 죽으심과 나와 연합이 되어서 내가 죽은 자가 되고  주님과 연합해서 다시 산 자가 되어서 이렇게 사는 이 죽고 사는 사활의 이  연결식이 이것이 성찬식입니다. 이 식을 해서 우리가 모든 보는 시야도 달라지고,  보는 것도 달라지고, 듣는 것도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고, 원하는 것도  달라지고, 평가도 달라지고, 행위도 달라지고, 모든 취미도 기쁨도 다 달라져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마음대로 얼마든지 역사하실 수가 있고,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서 이 세상을 다 정복하고 능력을 다 발휘해서 당신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이런 능력 있는 우리가 되어서 서부교회가 아주 새로와지고 큰  축복의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 세례를 베풀 터인데 요새 거기에 대해서 좀, 제가 좀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 미혼 처녀들은, 남자들은 미혼자도 세례를 주나 미혼 처녀들은  세례를 주지 안했습니다. 세례 주지 안한 그것은 왜 안 주었느냐? 아무래도  여자들은 독립성, 자율성이 없기 때문에 결혼하면 그 남편에게 언제든지 피동적인  피동성을 가졌고, 하나님도 또 그렇게 말씀 했고, 이라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자리까지 올라왔던 그런 신앙이 도리어 뒤로 끌려 내려가서 죄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써 타락하는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못하지마는서도 세례까지 올라 왔다가 도로 죄짓는 그런데는 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 그래 세례를 주지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세례를 무제한으로 주지  안하고 이라면 처녀들도 뭐, 평상 처녀로 지낼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 세례를  안 주면 안 되겠다 하는 거기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생각하다가, 연령 제한을  했습니다. 성경에 과부로서 육십 세가 미만되면 등록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육십  세 미만에는 시집가고자 하는 그 생각이 나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서 이만침  하나님 앞에서 작정하던 것이 다시 배반하고서 나가서 도리어 더럽히는 죄가  되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연한을 정한 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아마 연한을  정해서 제한을 해야 되겠다 해서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삼십 세로 제한을  했습니다. 서른 살 먹으면 벌써 서른 살까치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을 해도  그래도 자기의 주체성이 주체성이 확립이 됐고, 신앙성도 다 인격성이 그만치  확립이 됐기 때문에 자기에게 다 책임이 있고. 또 그만하면 그렇게 결혼했다고  대번에 변질될 그런 사람이 아닐 만치 벌써 자기의 개인의 그 주체성이나  인격성이 확립이 됐기 때문에 그만한 연령이면 세례를 줘도 그렇게 많은  실수되는 일은 적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돼서 삼십 세로 정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권찰님들 가운데 자기 구역에 그 신앙이 처녀들에 대해서는 신앙이  어리면 안 됩니다. 삼십 세가 돼도 신앙이 어려서 그 사람이 결혼이 나서 결혼이,  이방 결혼이 나서면 세례 받았다가 이방 결혼하면 정죄를 받습니다. 치리를  받아야 됩니다. 치리를 받아서 그 부모네들도 석달, 본인은 여섯 달 치리를  받아야 됩니다. 그 치리 받아야 되는데 치리 중에서 죽으면 어찌 됩니까?  그러니까 어쩌든지 그 치리를 정식으로 받아야 되는 것이니까 봐서 신앙이 그저  괜찮다, 뭐, 그렇게 뛰어난 신앙이야 없지마는 이 사람은 아마 결혼해도 자기가  그렇게 신앙 배반하고 남자에게 끌려서 그렇게 가는 그런 짓을 안하겠다 싶은  사람이면 삼십 세 된 사람들은 오늘이라도 저녁에 세례 줄 터인데 그때 오면은  세례 문답을 하고 세례를 같이 베풀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한해서  여러분들이 잘 알터이니까 그렇게 신앙이 있는 처녀로서는 신앙이 이는 있다, 이  결혼에 대해서 끌려서 벌 받을 짓 할 그런 짓은 안하겠다 싶은 그런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처녀들은 삼십 세로부터, 삼십 세 이상이면 세례를  베풀기로 그렇게 작정을 했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삼 십세 미만은  아직까지 세례를 베풀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아니고 이것은 나도  성신의 감화를 받은 사람으로서 생각으로 판정해서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056 성찬/ 고린도전서 11장 23절-32절/ 890307총공회성찬 선지자 2015.11.06
3055 성찬/ 고린도전서 11장 23절-26절/ 890813주전 선지자 2015.11.06
3054 성찬/ 고린도전서11장 23절-26절/ 890813주후 선지자 2015.11.06
3053 성찬/ 고린도전서 11장 23절-27절/ 881206화새 선지자 2015.11.06
3052 성찬/ 고린도전서 11장 23절-32절/ 1982년 13 공과 선지자 2015.11.06
3051 성찬/ 고린도전서 11장 17절-32절/ 890305주전 선지자 2015.11.06
3050 성찬 후/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80306주후 선지자 2015.11.06
3049 성찬 후 설교/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90306월새 선지자 2015.11.06
3048 성찬-여섯가지 능력/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60303월새 선지자 2015.11.06
3047 성찬으로 새로워지자/ 고린도전서 11장 23절-34절/ 840309금새 선지자 2015.11.06
» 성찬준비/ 요한복음 6장 52절-58절/ 840308목새 선지자 2015.11.06
3045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11장 17절-33절/ 810227금야 선지자 2015.11.06
3044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11장 23절-32절/ 890301수야 선지자 2015.11.06
3043 성찬준비/ 빌립보서 2장 5절-11절/ 890228화새 선지자 2015.11.06
3042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890303금새 선지자 2015.11.06
3041 성찬준비/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89030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6
3040 성탄/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791223주전 선지자 2015.11.06
3039 성탄/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791223주후 선지자 2015.11.06
3038 성탄/ 누가복음 2장 11절-14절/ 1979년 52공과 선지자 2015.11.06
3037 성탄 기념/ 이사야 9장 6절-7절/ 851225수새 선지자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