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여섯가지 능력

 

1986. 3. 3. 월새벽

 

본문:고린도전서 11장 26절∼32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이것은 주님의 판단 말입니다. 주님의 판단을 받지 안하려니와, 심판인데 요 판단이라는 거와 심판이라는 것이 다릅니다. 심판은 끝이 없는, 다시 희망이 없는 종말 심판이요 판단은 징계에 속한 것인데 고치기 위해서, 건설하기 위해서, 다시 신설하기 위해서 판단하는 것을 판단이라 말한 것입니다.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판단받는 그 증거는 뭐이냐? 주께 징계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여게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 주님의 이 떡과 잔을 살피고 합당하게 먹지 안하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 하신 말씀은 주님의 피와 살은,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이 공로는 그 본질과 본성과 그 역사가 무엇을 하는 피와 살인가? 예수님의 피와 살은 죄를 멸하고 모든 불의를 멸하고 또 원수된 것을 멸하고, 그러면 원수된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원수된 것과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수된 그 모든 것을 멸하는 피와 살입니다. 또 불의를 멸한다 말은 자기 주관대로 또 자기 주관이 아니라도 어떤 사람의 주관대로, 하나님의 주관을 따라서 내가 살지 안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의 그 주관을 따라서 산 그 모든 것이 다 불의인 것입니다. 또 죄는 뭐인가? 죄는 이것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을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멸하시는, 이 세 가지를 멸하시는 피와 살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먹는 것은 이 세 가지를 멸하는, 그와 내가 연결되는 그 연결식입니다.

이것을 멸하는, 세 가지를 멸하는 그 피와 살과 내가 연결돼서, 연결되는 것은 실상으로 물질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공로와 내 피와 살이 연결됩니다.

혹은 생각할 때에 이것을 잘못 해석해 가지고 성찬을 먹을 때의 떡은 실상 예수님의 몸과 살이 되고 또 포도즙을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실상의 피가 된 것으로 이렇게 믿는 교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화육설이라고 합니다. 화육설이라 말은 그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육체로 화해졌다 예수님의 육체가 실상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화육설로 잘못된 깨달음으로 이단으로 정죄를 받습니다.

우리 진영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말을 해도 듣지 아니해서 단둘이 얘기 할 때에 자꾸 세워대고 안 들어서 내가 글로 쓰라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손으로 자기는 이렇게 믿는다고 교리를 써라. 또 나는 이렇게 믿는다고 쓸 터이니까 요것을 가지고 지금 변동 하지 말고 요걸 가지고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좀 물어보고 또 기도도 해 봐라.’ 그래 나중에 그분이 그것을 고쳤습니다.

실상 그 떡이 예수님의 살이 되는 것 아닙니다. 포도즙이 피가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주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그 기념으로 먹으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와 살이 실제로 그 육체로 화해서 그 떡과 포도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이 역사하신 그 공로와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세 가지를 멸하는 피와 살의 그 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 공로는 가졌습니다. 실지로 물질화 되지는 안했지마는서도 공로와는 연결했기 때문에 우리가 성찬을 먹을 때에 떡과 포도즙을 먹는 그 떡과 포도즙은 실지로 예수님의 피와 살이 되는 것은 아니나. 실제로 세 가지 죄 불의 원수되는 것을 멸하는 실제의, 예수님의 공로를 가진 능력은 되는 것입니다. 능력은 됩니다.

예수님의 공로와 연결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찬을 이것을 깨달아, 이 성찬을 깨닫고 예수님이 이 세 가지를 멸하신 그 피와 살, 이 세 가지를 멸하신 피와 살의 그 공로와 내가 지금 연결된다 하는 고것을 믿음으로 먹을 때에 그 공로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해서 세 가지를 멸하는 그 능력이 내게 옵니다.

또 예수님의 피와 살은 세 가지를 멸하고 또 세 가지를 건설한 피와 살입니다.

죄를 멸하고 무죄, 죄가 없는 무죄를 건설했습니다. 무죄를 건설했고, 또 불의를 멸할 뿐만 아니라 이제 영영한 의를 예수님이 대신 행하심으로써 의를 건설했습니다. 또 원수를 멸하실 뿐만 아니라 원수를 멸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친을 이루었고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친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건설하는 세 가지 건설을 한 예수님의 피와 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와 살을 우리가 믿으므로 먹을 때에 이 여섯 가지 공로를 베푼, 여섯 가지 역사를 한 이 공로와 내가 연결이 돼서 여섯 가지를 이루신 이 피와 살의 공로와 내가 연결되는 연결식을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여섯 가지의 공로의 능력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실상으로 와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살피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깨닫고, 예수님의 피와 살은 이 세 가지를 멸하고 또 세 가지를 건설한, 세 가지를 조성한 피와 살이라 하는 요것을 깨닫고 자기가 이 떡과 포도즙을 먹을 때에 자기가 자기를 살피라 그말은 이제 이 셋을 멸하고 셋을 건설하는 예수님의 피와 살과 내가 연합을 하는 내니까 내게 이 여섯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 여섯 가지를 가지고 이 여섯 가지와 결합이 돼도 결합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세 가지 멸할 것을 내가 그것을 내가 친하고 내가 그 자로 되어 있었을지라도 성찬을 먹을 때에는 요 세 가지를 멸하는 자기가 돼 가지고, 멸하는 자기가 돼 가지고 멸하는 능력을 영접해야 되지, 멸하지 안하고 그 멸하는 능력을 영접하면 뭐이 되는고 하니 예수님의 피와 살과 대적이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피와 살을 범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와 살을 범하는 일이 된다.

그러면, 피와 살을 범한다 말은 피와 살에 위법한다는 말이요, 위반한다는 말이요, 피와 살을 반대한다는 말이요, 피와 살의 대적이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대적이 되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이 멸해지지는 안하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대적하니까 자기가 멸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죽은 자들이 많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또 이렇게 여섯 가지 이 능력을 자기는 믿음으로 이 여섯 가지 능력을 자기가 영접해서 이 여섯 가지 능력의 것이 됐는데 법적으로 것이 됐고 하나님의 지공법으로 것이 됐고 또 중생될 때 또 것이 됐기 때문에 중생이 된 것인데 제가 실상은 이 여섯 가지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피와 살의 것이 되지 아니하고 이 피와 살에 연합되지 아니하고 자기는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이 여섯 가지의 반대의 사람이 돼 가지고서 행동합니다. 반대의 사람이 돼 가지고 행동하던 것을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이 성찬식에 자기를 살피라 하는 것은 이래 반대의 사람이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이 회개해서 반대의 사람이 일치의 사람이 되고 먹으라 그말입니다. 일치의 사람이 되고 먹어라.

예수님의 피와 살의 본질과 본성과 이미 설정해 놓은 그 공로와 지금도 계속 역사하시는 이 피와 살의 역사해 놓은 이 여섯 가지, 또 지금 계속 역사하고 있는 이 여섯 가지와 대립이 되지 안하고 이 여섯 가지와 일치되는, 이 여섯 가지를 자기가 합해도 대립되지 안하고 여섯 가지와 일치되는, 이제 자기에게 예수님의 피와 살이 변하는 게 아니고 고대로 오는데 내가 과거에 피와 살을 반대되고 대항됐던 이것이 내가 돌이켜 회개함으로써 예수님의 피와 살과 일치돼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영접할 수 있는 자기, 예수님의 피와 살을 대항하지 안하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영접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 먹어라 그말입니다. 영접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 먹어라 영접하는 사람으로 먹어라 그말입니다.

영접하는 사람으로 먹으면 예수님의 피와 살의 본질과 본성과 본분과 의무와 책임과 그 역사의 능력과 내가 하나가 돼서 일치가 되고 이것을 정리하지 안하고 먹으면 이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대적하는 것을 먹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대적하는 게, 예수의 피와 살을 대적하는 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성찬을 먹음으로 예수님의 피와 살과 대적이 되든지 그리 안하면 일치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대적이 되면은 이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범한 죄가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면 자기에게 있는 죄를 멸하는, 죄를 멸하고 불의를 멸하고 불목 원수를 멸하고, 이 세 가지를 멸하는 식이 아니고 정반대로 이 세 가지를 오히려 숭상하는 식이라. 이 세 가지를 조성하는 식이 된다. 이 세 가지를 조성하는 식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 조성하는 식이 된다.

그러면, 세 가지는 멸하고 세 가지를 건설하는데, 죄 없는 건설하고 의를 건설하고 화친을 건설하는데 이제 이 세 가지를 멸하는 것은 멸하지 안하고 세 가지를 도로 건설하는 자가 되고 건설하는 것은 멸하는 것이 된다. 의를 멸하고 무죄를 멸하고 화친을 멸하는 자가 되기 때문에 이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30절에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판단을 받지 아니할 터인데, 말하자면 다른 말로 말하면 심판을 받지 안할 터인데, 이 정죄를 받지 안할 터인데, 판단을 받지 아니할 터인데 우리가 살피지 안고 자기가 이 여섯 가지에 대적하는 생활했던 것을, 주님의 피와 살이 이 여섯 가지 일하는데, 여섯 가지 본질과 본성을 가졌고 여섯 가지 역사를 하는데 이 역사를 내가 대적하면서 영접했기 때문에 피를 범했고 죄를 먹고 마시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판단을 받고, 내가 판단해 가지고 이건 틀렸다 이래 가지고 판단해서 고쳐 가지고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대했으면은 상관이 없을 터인데, 능력이 왔을 때에 말하는 능력이 왔고 건설하는 능력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할 터인데 내가 살피지 안하고 이거 떡 먹어 버렸으니까 이 정반대, 여섯 가지의 반대, 멸하는 것은 오히려 세우고 세우는 것은 멸하고 정반대자가 됐기 때문에 주님에게 판단을 받는 것이 된다.

판단 받은 것이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뭘로 볼 수 있느냐?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주님 앞에 징계를 받는 것이니’ 징계 받는 것은 무슨 징계? 약한 징계를 받든지 병든 징계를 받든지 죽은 징계를 받든지 「징계를 받는 것이니」 「받는 것이니 이는」 이렇게 ‘이는’ 이렇게 판단받은 증거가 뭐이냐? 징계받는 그것이 판단받은 증거입니다.

제가 자기를 판단을 해서 다 그것을 벌써 다 정리했기 때문에 수리했기 때문에 판단을 받지 아니하는 그것이 징계받지 안하는 것이요 그에게 죄를 멸하고 불의를 멸하고 불목을 멸하고 무죄를 건설하고 의를 건설하고 화친을 건설하는 그 능력이 자기에게 온 그것이 증거라 말이오. 그러면 바로 됐으면 이 능력이 내게 온 그것이 증거고 또 판단 받지 안했으면, 제가 판단을 받지 안했으면 이 세 가지 능력이 자기에게 와 가지고 있는 것이 증거고 또 이 판단을 받았으면 주님 앞에 이 세 가지 징계를 받은 것이 증거고, 그러면 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외에 딴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그 사람은 자기도 자기를 판단하지 안했고 또 주님도 자기를 판단하지 안합니다. 주님에게도 판단받지 안하고 자기도 판단하지 안했고 또 자기에게 이 세 가지를 멸하는 능력도 오지 안했고 또 세 가지를 건설하는 능력도 오지 안했고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요 좀 복잡하니까 잘못하면 기억하지 못하기 쉽겠는데.

성찬을 먹음으로 주님에게 판단받는 사람 있고, 판단받는 사람 있고, 고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살피지 안하고 먹었기 때문에 판단을 받고 또 이 세 가지를 멸하는 능력과 또 이 세 가지를 건설하는 그 능력을 받아 가지고서 그 성찬을 먹은 후로부터 자신이 자기를 볼 때에도 죄를 멸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강해서 죄를 멸하는 능력이 자기에게 역사하고 불의를 멸하는 능력이 역사하고 또 불목을 멸하는 능력이 자기에게 역사해서, 과거에는 그게 안 됐는데 그 일이 되는 걸 자기가 볼 수가 있고 또 세 가지, 무죄를 건설하고 의를 건설하고 화친을 건설하는 그것이 이 성찬 먹기 전과 후가 달라서 이 능력이 와 가지고서 실지로 나에게, 멸하는 역사도 하고 건설하는 역사도 하는 것이 자기에게 있는 사람 있고.

또 잘못 먹어서, 판단 하지 않고 잘못 먹으므로써 자기에게 약해지는 거 병드는 거 그 사람이 죽는 거. 그러면 이 죽는 것은 두 가지로 성경에 말했는데 그 사람이 신앙이 완전히 딱 떨어져 버렸어. 신앙이 완전히 그만 바싹 부숴졌어.

그이가 과거에 뭐 형식적으로 믿는 듯 하던 그 믿음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것도 잔다고 하고 또 육체가 죽는 것도 잔다고 하고 그 두 가지를 말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 있고, 그러면 이 두 가지뿐이냐? 이 두 가지 외에, 제가 성찬에 참여해 성찬을 먹지마는서도 예수님의 성찬과 상관 없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이 성찬의 역사가, 예수님의 공로가, 이 실상에 지극히 큰 능력이 자기에게는 가까이 오지 안하고 상관 없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도 이 성찬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있다 그말이오 그 사람은 살피지 안하고 먹었으나 하나님이 판단하지 않습니다.

판단하지 않습니다. 아예 그거는 도외 치지로, 버린 자로 고만 집어 던져 버려서 그거는 상관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판단하지 안해. 판단하지 안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버린 자식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판단하지 안하고, 그러면, 자기가 판단하지 안하고 먹었지마는서도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판단이 오지 않는 그 사람 있고 또 자기는 이 세 가지 멸하는 것과 세 가지 건설하는 그 능력도 자기에게는 오지 안했고 그 능력도 상관 없고, 세 가지 멸하고 세 가지 건설하는 이 여섯 가지 예수님의 능력과도 상관이 없고, 능력과도 상관이 없고 또 그라면 이 여섯 가지 능력이 오든지 징계가 오든지 둘 중의 하나가 와야 될 터인데 능력도 오지 안하고 징계도 오지 안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은 두 가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예 불택자, 그 사람은 아직까지 중생되지 안한 사람, 불택자, 중생되지 안한 사람, 예수님을 믿어도 옆에 끌려서 믿지 그 사람은 아직 중생시킬 시기가 되지 못해서 중생을 시키지 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택한 자가 중생을 해야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택자가 중생되지 안하고 예수 믿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제 속의 주관에서 예수 믿는 게 아니고 객관의 힘을 가지고 끌어다가 붙여서 그것이 예수를 믿어도 항상 반대입니다.

속으로 반대요. 속으로 반대이면서 그 사람이 믿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보면은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뒤에 돌아보면은 그 표가 있는 것은 이 사람은 중생된 사람이나 중생된 사람을 집어 던져 버리고 파 묻어 버리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사람이 주장이 돼 가지고서 이와같이 살고 있는 그런 사람도 있고 이 사람은 억지로 끌렸지 아직까지 중생이 안 된 사람이 있고, 뭐 중생이 됐다고 해 가지고서 무슨 표가 나는 게 아니로되 중생되고 나면은 그걸 알 수가 있다 그말이오.

예수를 잘 믿어도 이 사람은 예수를 잘 믿지마는 아직까지 옛사람이 지금 들어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있다 불교는 어떤 사람이 불교를 잘 믿느냐 하면, 불교는 옛사람이 강하면 그 사람이 불교를 잘 믿습니다. 다른 이종교는 옛사람이 그 사람이 이종교는 믿는 것이로되 기독교는 옛사람이 믿는 게 아니고 이것은 옛사람은 죽어져 버리고 새사람으로 믿기 때문에 이거는 순전히 객관의 힘으로서 믿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택자 미중생자가 있고, 불택자 미중생자가 있고, 택자요 중생은 되기는 됐는데 이것을 멸할라고 하면은 당장 다 멸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이 또 멸해 놓으면은 안 될 조건이 있다 말이오. 이거는 멸해야 되지마는 이걸 멸하면 딴것이 멸해진다 말이오. 딴것이 멸해지니까 이것을 멸할 수가 없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 가지고 광야에서 뭐 때문에 그 광야에 멸할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먹이고 입혀서 사십 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살게 했느냐? 살게 한 이유는 거게서 새끼가 나온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거게서 새끼가 나오기 때문에 이 새끼를 보호해야 되기 때문에 이걸 멸해서는 안 되니까 그것 때문에 이것을 냅뒀다 말이오. 냅뒀는데 그러면 새끼 나온 것은, 거게서 자손이 나온 것은 가나안으로 다 보냈지마는서도 이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광야에서 다 멸해졌습니다. 광야에서 다 멸해졌으니까 이것은 말하자면 뭐이냐? 중생된 자 잘 믿는 자 그이의 떡잎으로, 그이의 떡잎으로 그를, 그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용물로, 이용물로 이렇게 하나님이 둬 두시는 거 있습니다. 이용물로.

그러면, 이용물로 둬 두는 것은 불택자 미중생자들도 있고 또 택자요 중생된 자인데 이거는 이용물이나 될까 아예 이거는 전체가 그 행세하고서 회개치 안하기 때문에 이용물이나 될까 이것에 구원을 줄라고 구원을 착수하는 날이면 구원도 되지 안하고 싹 멸해야 될 터이니까 이거는 부득이 피해야 된다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피해야 된다 그거요. 이래서 우리가 출애굽기 32장과 33장에 거게 있는 것을 공부한 일이 있었는데, 이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는 아예 상관치 안하고 아예 방임했다 말이오.

아예 그를 방임해서 버려 뒀다 말이오. 버려 뒀기 때문에 이 사람이 뭐이냐 하면은 성전 밖마당이라 그말이오. 성전 밖마당은 상관하지를 않습니다.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는 측량하지마는서도 밖마당은 상관하지 안해. 밖마당은 상관하지 안하다 말이오. 그거는 측량하지 안해. 어떤 행위를 하든 괜찮애. 어떤 행위를 해도 냅둬 버려. 냅두나 그는 이제 이 여섯 가지 능력을 받지를 못하고 여섯 가지 능력을 받지 못하는 동시에 그 사람은 징계도 받지 안해.

여섯 가지 능력을 못 받으면 징계를 받든지 그리 아니면 징계를 뭐 안 받으면 여섯 가지 능력을 받든지 이 사람이 있고, 여섯 가지 능력도 받지 안하고 징계도 받지 안하는 택자와 중생자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무엇과 같은 사람입니까 성경에 뭐라고 말했소? 성전? 성전 밖마당.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아라. 측량하지 말아라. 성전 밖마당이 있다 말이오. 성전 밖마당이 있고 또 그 사람은 하나님이 멀리 피해서 상관 없어. 제가 암만 뭐라고 입으로 주여 주여 해 쌓으면서 뭐 금식도 하고 뭐라고 쌓아도 아예 하나님이 그에게 보니까 전체가, 가면 멸할 거뿐이기 때문에, 진정 회개가 없다 말이오.

멸할 거뿐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멀리 방임하고서 피할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서 오만 거 다 제가 뭐 건설해서 도덕도 건설하고 신앙도 건설하고 전도도 하고 뭐 짜다라 하는 척 이래 하지마는서도 나중에 가서 보니까, 심판 앞에 가 보니까 그 사람은 뭘로 지은 집이라 했습니까? 폴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기 때문에 우묵하이 집은 있었지마는 나중에 심판에서 가 보니까 전부 불타 버리고 하나도 남는 공로는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 멸망받습니까 뭣 합니까? 멸망이요? 멸망입니까 구원입니까? 녜, 구원이지마는서도 불 가운데 구원 얻는 거와 같으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영원히, 지금은 가리워서 그 수치가 뭐 가루어져 모르지마는서도 그때는 인제 그 가리워진 것이 다 환하게 다 벗겨지기 때문에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말은 하늘나라에서 견디지 못하는 부끄러움과 고통과 원통 그것을 가지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 얻는 거와 같다’ 고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말한 것을 우리가 고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성찬을 참여 하는 데에 여섯 가지 능력을 받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능력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 능력 받는 데 가깝기는 가까운데, 가까운데 제가 살피지 안하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는 판단을 해 가지고서, 판단한다는 것은 측량하는 것입니다.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는 측량하고, 그것은 길고 짜른 것을 네가 판단하고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아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은 뭐이냐 하면은 여섯 가지 능력받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성찬을 바로 먹은 것이고, 여섯 가지 능력은 받지 못했으나 징계를 받는 자는 이 자는 하나님께서 그래도 측량하고 판단을 하는 자이고, 측량하고 판단을 하는 자이고. 측량과 판단도 없고 여섯 가지 능력도 없는 그자는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지 안하는, 측량하지 안하는, 이거는 버려 둔 자,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서 이거 아예 지금 착수도 할 수가 없어. 전체가 엉망이기 때문에 착수하면은 멸할 것이기 때문에 착수를 못하고 버려두고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있고 또 아주 불택자, 불택자가 있어 가지고 그 사람들은 와 가지고서 ‘내가 이래도 성찬 먹는다’ 이래 가지고 불택자들이 와 가지고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택자들도 이렇게 먹어도 된다 이라면서 먹어도 된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것은 복음 운동이 아니고 복음을 멸하는 운동, 악령의 운동을 하기 위해서 악령이 일군으로 보내 가지고 온 자가 있다 그거요.

그러면, 믿는 가운데 이 세 가지 종류, 안 믿는 거와, 이 성찬 참여할 때는 네 가지 종류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제까지는 이런 어떤 죄를 지었어도 고 시간에, 고 시간에 완전히 살펴서 이제, 이제까지는 여섯 가지의 반대의 사람이었지마는 이제부터는 여섯 가지를 환영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 여섯 가지와 일치될 수 있는, 살펴 가지고서, 깨닫고 일치가 돼 있는 사람이 돼 가지고 이 성찬을 참여한 사람은 그 사람은 능력을 받습니다. 능력을 받는데 그 사람이 능력 받아 가지고 또 그 뒤에 또 더러워지고 더러워지면은 또 그 다음에 타락할 수 있고 더러워질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찬 먹은 후에는 이 받은 능력을 여러분들이 받은 것을 믿으십시오. 믿고 해 보면 압니다. 믿고 해 보면 그 죄가 이겨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잘 깨닫고 이번에 성찬 먹은, 여섯 가지 능력 받은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그 여섯 가지 능력을 잘 가꾸도록 노력하고 멸하면 안 돼. 가꾸도록 노력하면, ‘그러면 사람이 애써 가지고 되는 거로구먼.’ 아니오. 가꾸어 보면, 가꾸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 될 때에 이거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 것입니다. 과거에는 멸하지 못했던 걸 멸하게 되고 또 과거에는 세 가지 건설 못 하던 것이 건설이 돼지는 것을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거는 내 능력이 아니라 이거는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이 세 가지 건설하는 것이 건설이 되더라 그말이오.

또 과거에는 아무리 뭐 멸할라 해도 안 되는 이 세 가지가, 인간의 힘으로 멸할 수 없는 일들이 멸해지는 것을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이 버려둬도, 이 버려둔다 말은 자기 성화에서 버려두는 것이지 버려둬도 하나님이 일군으로는 씁니다. 일군으로는 쓰나 성화 자체 구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일군으로는 씁니다. 예를 들어 집 지을 때 보면은, 집 지을 때 보면은 누가 제일 일을 많이 하느냐 하면은 포크레인이나 도자나 오면 그런 것이나 흙 많이 파내고 많이 일합니다. 또 거기서 뭐 망치가 일을 많이 하고 또 뭐 이런 연장들이 많이 하지마는서도 연장은 건축하고 난 다음에는 그 연장은 저 곳간에 집어 던져 버리지 방 안에 데리고 가지는 안해, 그거 생명 있는 거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구나 지체로’ 이랄 때에 깨달은 사람들은, 나는 그게 지금 많이 미완성이지마는서도 그전에 혹 그라면은 부흥회에 가면 다른 사람이 있다가 ‘하나님의 종을 도구로 쓰셔 가지고서’ 그래 기도 할 때는 나는 아멘 소리를 한 번도 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지체노릇 못 해도 ‘나는 이제 도구는 되기 싫습니다. 나를 지체로 삼아 가지고서 주님이 역사하시옵소서.’ 자꾸 지체 삼게 해 달라고서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내가 기도하고 아멘 했지 그 기도에는 아멘이라는 동참한다는, 동의한다는 그런 것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지체노릇을 못 하고 대적노릇을 하는 것을 날마다 싸워서 그 자는 죽이고 또 이 자는 기르고, 그래 매일 우리는 죽이는 일과 기르는 일을 우리가 계속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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