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1982. 3. 21. 주후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6절 - 23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선지자선교회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입니다. 영은 죽었고 몸도 죽은 영에게 속해서  정죄와 사망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차차 죽어져 가는 것이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날부터 죽기 시작한 날입니다. 나는 날은 죽기 시작한 날이요.

마지막에 세상을 떠날 때는 다 죽은 그 시간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해서  영육이 죽은 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었던 자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 원죄와 본죄로 인해서 생명 되신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져 있어 죽었던  자라. 이 죽었던 우리의 이 죽음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긴 그 죄와 또 그 후부터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다가 자기 주장으로 사는 이 불의의 삐뚤어진 불의로  인해서 또 죽었던 자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하여 살아야 할 것이 하나님을 배반하고자 혼자 스스로 산 이  삐뚤어진 죄 때문에 죽었던 자입니다. 영원한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여기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살리는 데에는 죄 값인 형벌을 다 받아야 그 죽음에서  놓여나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인데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사망의  원인인 죄의 값을 예수님이 다 받으셨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공심판의 그 죄에  매여서는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의 요구하는 대로 다 이용한 자라야 생명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 행하셔서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습니다. 아무리 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행한 의를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결합이 되지 안 하면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의인으로 세우기 위해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을 시켰고 또 의인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과 화친하는 이 공로를 베풀어 있는  전부를 다 화친에 기울여 다 쏟았습니다. 하나님을 끝끝내 저주하고 정죄 하고  사망케 하셨지마는 주님은 한번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항하는 일 없이 화목을  노력하는 것으로서 다 투자하고 끝났습니다. 이로서 생명이 우리에게 오게  됐습니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세 가지를 인해서  죽으셨는데 세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 죽으셨는데 세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  죽으셨는데 예수님의 그 죽으심은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죽은  셈이요. 내가 죽은 계산이 되고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죽음의 죽음이 내 죽음이기 때문에 나는 죽음 계산이 되고 살아있는 것은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 사신 예수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때문에 죽으심은 나의 세 가지 때문에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내가 죽음이라 살아 있지만 내가 죽은 계산으로  하나님의 공심판에 된 것이니 내가 죽은 계산이라.

그러기에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으로 예수님의  것으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산 자기인 것을 인정할 때에 자기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허물로 첫째로 죽었던 자입니다. 죽었던 자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산 자 됐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산 자가 되는  것은, 자기의 옛사람 자기대로의 살던 사람이 죽는 자기대로의 사는 사람을  죽이는 이 일과 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산 자로 인정을  하는 것이 믿는 믿음이요. 죽이고 살리는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행위입니다.

죽여 죽었을 때에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 된 것이고 또 예수님의 것으로 살  때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이렇게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죽었던 자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이 행위는 예수님의 구원이  실제로 내게 이루어지는 이 행위는 죽는 일과 사는 일 이 두 가지를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죽이고 또 사는 일을 또 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 성찬하는 때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죽일 자를 죽이고 살릴 자가  살아난 그 자가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  이것이 나의 죽음을 올 때까지 기념하라 전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차적으로 죽었던 자가 이차적으로 살아났고 살아난 자가 이제는 또  죽이고 이제 죽인 자가 다시 예수로 사는 것이 이것이 넷째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로 산 이것이 예수로 산 이것이 주님이 삼십 삼 년 사 개월에 공, 사의  생활로 완전히 멸살이 된 그대로 따라서 우리가 죽는 것이 이것이 비로소 우리  생애에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는 그 단계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인정만 인식만 하고 있으면 됩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가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살아난 것도 우리의 할 일은 아닙니다.

이미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지금 할 일은 무슨 일인가? 지금 할 일은 죽는 날까지  매일 할 일이 세 가지입니다. 우리가 남은 때 할 일이 세 가지요. 하나는  무엇인고 하니 죽는 일입니다. 하나는 죽는 일이요, 죽이는 일 죽는 일이라니,  우리는 진리와 영감으로 산 자들이지만 아직도 죄와 허물로 살려고 자기  주관대로 본능대로 습성대로 자기가 주격되어 자기 것으로 자기가 살려고 하는  이놈이 성경이 가르치는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육체로 사는 것이요.

겉사람으로 사는 것이니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인해서 나 아닌 것이 생겨져서  나같이 내 마음에게 내 몸에게 주인 노릇을 하는 이놈으로 사는 이 생애를  우리가 죽여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내 욕심으로 사는 그것을 죽여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제 욕심으로 사는 그것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활동 투자 다 해  가지고 제 욕심을 달성했으면 성공자라 실력 있는 존영한 자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세상인데 이와 같이 생각하는 기독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죽여야 될  것이 죽이지 안하고 그자를 북돋아서 살리고 그 자를 북돋아서 강하게 하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출세도 하고 활동도 하고 제 딴에는 죽일 자를 이것을  가꾸어 튼튼케 만들어 그놈이 이제는 내 심신을 꼼짝 못하게 뽀스라기 하나도  놓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완전히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원수 이놈을 길러놓고 제  딴에는 잘났다고 합니다. 성공이라 합니다. 이런 잘난 자가 여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잘난 자가 한국교회 세계교회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이놈을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제 사욕을 달성하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사욕 그놈을 파괴를 시키고 사욕대로 살려고 하는 자기 같은  자기라는 그놈을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이놈을 죽이기 위해서 나 혼자 힘으로 안  죽어지니까 불 위에도 따라다니고 굴에도 가고 밥도 굶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해서 이놈을 똑똑히 원수라는 것을 발견하고 죽이려고 노력해서 단독 힘으로  안되면 다른 사람의 응원을 받아 가지고라도 이것을 죽이려고 운동하는 이것이  죽는 날까지 우리의 생애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심에 연합해서 같이 죽은 자가 돼야 되는데  죽은 자가 논리적으로 됐고 법적으로 됐고 이제는 지식적으로 돼 가지고 있는데,  이 죄짓던 그자가 행동한 것 때문에 영육이 죽었기 때문에 죄 지었던 이자의  지은 죄 값도 형벌 받고 이놈을 죽이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옛사람 자기가 죽어야 되는데 단번에  안되니까 죽은 자 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우리의 남은 생애 중에 하나입니다.

또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다시 인성을 입으시고 살아나신 것은 우리의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 가지고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난 자 되어  이제는 악령을 향하여 자기를 향하여 가던 자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는 이 걸음의 산 자로 이 사는 노력 부분적이기  때문에 살리는 노력 죽은 자를 살리고 산 자를 가꾸어 기르고 하는 이 살리고  사는 노릇을 하는 것이 우리 할 일 세 가지 중에 또 한 가지입니다. 나머지기 한  가지는 진리와 성령으로 살려놓은 자 진리와 성령으로 하나님 향하여 사는 자로  가꾸고 기르고 길러놓은 이 산 자 산 자 이자가 무슨 일 하는 고 하니 산 자  이자가 보내신 아버지의 소원 기쁨을 위하여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맡겨주신 사람  하나도 잊어버리지 안하고 이것을 다 구출하시기 위해서 살아있는 당신의 이  구출하기 위해서 완전히 다 죽어진 죽어지는 완전히 다 쓰여지는 산 자가  하나님의 소원대로의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산 것이 다 죽어지는 이것이 남은  때의 우리의 할 일 중에 또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생에 할 일은 이 세 가지가 우리의 할 일입니다. 두 가지는  우리가 하지 아니하고 할 만한 아무 힘도 없고 소원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 법에 우리는 죄와 허물로 완전히 영원히 죽은 자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대속으로 우리는 사 자 되어 공심판을 다 통과하고  그리스도의 심판, 산 자들의 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은 산 자들의 심판입니다. 산  자들의 심판에 우리는 서게 된 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이 이를 허무하게 보고 저희들이 놓고 떼고 하는 이 과학은 올바른 줄 알고  우주에 우주가 이 집채 무더기만 하다면 이 집채 무더기에 먼지 한 알 만한 이  지구 땅덩어리 이 지구 땅덩어리 한 못되게 이것은 강대국이니 뭐이니 내가  정권을 잡았다 내가 어떤 지위를 잡았다 잡았으면 어쩌란 말이냐, 잡았으면  어쩌란 말이냐, 뭐이냐 말이냐, 이것은 내 눈에 큰 줄 알고 강한 줄 알고 힘있는  줄 알지마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아주 시시하게 보이고 허무하게  보이지마는 죽었다 하신 말씀대로 인생은 다 죄와 허물로 영원히 영원히  죽습니다. 안 죽지 못해. 네가 부인하지마는 내가 먹는 것이 그거라. 네가 원하는  젊음이 점점 없어져 가는 게 그거라. 큰 소리 해도 네가 늙어지고 죽어지는  그것이 그의 시시한 말씀이 권위 있다는 것을 네 자체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두 가지 우리가 똑똑히 기억하면 되고 기억하면 나머지기 세 가지 하기 쉽고  기억 안해도 별 탈은 없고 세 가지 이루는 데에 힘이 없는 것뿐입니다.

나머지기 세 가지는 하나는 죽는 일 죽이는 일 하나는 살리는 일 하나는 살리는  기르는 일 이 두 가지 해 가지고 옛사람으로 살던 것 죽여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새사람으로 살아난 자 돼요.

사람이 자기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빌립보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 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사람의 모양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이와 같이 이제는 죽일 자를 죽이고 살릴  자를 살려놓은 이 자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예수님을 계대해서 나의 죽음을  전하라 주의 남은 고난을 내게 청원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라 말씀하신 이대로 최종의 우리가 결론지을 것은 주를 계대해서  주가 보내신 아버지의 소원을 인하여 그분에게만 전적 피동 되어 그분이  맡겨주신 사람 하나도 잊어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닌 줄 알고 하나도  잊어버리지 안하고 다 구원하기 위해서 다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생활도  공생활도 마지막에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보스라기 하나도 세포 하나도 남기지  안하고 완전히 이 일 위해서 완전히 죽어진 것, 완전히 거지가 되고 완전히  천해지고 모든 것 몸과 생명만이 아니고 소유만이 아니고 모든 것 전부 아버지의  소원대로 맡겨주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완전히 다 바친 이것을 네가  계대해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도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 계명은 내가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  곧 내가 너를 사랑하여서 내가 목숨을 버린 것처럼 나도 내 사랑을 인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한 대로 내가 네게 한 것같이 네가 네 형제를 사랑함으로 이것을  해라. 친구를 위해서 버리면 이에 더 큰사랑이 없느니라" "이러면 비로소 너는  나와 너와의 종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니고 너와 너와는 친구라 너와 나는  동등이라 아버지에게 받은 것 내가 너에게 다 알리고 너에게 다 있도록 하여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같이 너도 이겨 나의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이러기 때문에 이 일 위해서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상을 잃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팔을 떼어 줘서 양식일 때에는 팔을 떼어 주고 벙어리가 되어야 양식이  될 때에는 벙어리가 되고 소경이 되어야 맡은 자들에게 양식이 될 때에는 소경이  되고 똑똑하지마는 창자 없는 등신 같은 쥐어박고 찌르고 멸시 천대 볶아먹을  고기처럼 모아 앉으면 저거끼리 모진 장난 것 오만 것 다 해도 이웃에게 양식  주기 위해서 죽지 않은 자가 죽은 자처럼 오만 것 다 해도 이웃에게 양식 주기  위해서 죽지 않는 자가 죽은 자처럼 오만 억울한 죄를 다 두터 써도 별별 죄인이  되어도 마음대로 날뛰면 도망칠 그것이기 때문에 맡은 자에게 양식 먹여주기  위해서 송장 아닌 송장 노릇 하는 이렇게 말이 죽어 마음이 죽어 욕심이 죽어  생각이 죽어 소원이 죽어 자존심이 죽어 영광이 죽어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다  죽어 소유와 몸과 생명이 나를 구속하신 주님의 소원을 위하여 주님이 부탁하신  내게 맡겨주신 식구, 내 집에 맡겨주신 식구 내게 맡겨주신 사람 이것을 구출하기  위해서 네 소유와 몸과 생명을 나를 계대해서 다 제물로 바쳐 내가 죽은 것을  네가 전달해야 너로 보고 그 다음에 전달되고 전달되어 세상 끝 날까지 내가  죽은 이 죽음이 전달 전달되어서 기념되고 전달되게 하라 하는 것이 이것이  성찬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옛날은 울면서 눈물 흘렸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그럴 때가 아니라  눈물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눈물나올 때가 아니라 이를 갈고 혀를 자물고  '주여!' 다져야 될 때입니다. 언제 그렇게 뭐 낙관시해서 빌빌 울고 예수님이 나  위해 죽으셨다는 그런 슬픔에 있을 때가 아니요. 그것은 초등에서 예수님이 나  위해 죽으신 것 슬픔은 잠깐이요. 기쁨이 그 다음이요. 그 다음에는 두려움이요  그 다음에 두려움 예수님이 이 일을 맡으신 것은 영광입니다. 이 일을 달성한  거는 심히 권위입니다. 이 일을 성공한 것은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고 만물  위에 뛰어나고 만물이 주라 인정하면서 찬양하는 이 역사입니다. 왜 슬픕니까?  예수님이 뭐이 불쌍합니까? 죽어짐이 뭐이 불쌍합니까? 뭐 애처롭습니까? 아니요.

예수님은 성공했소. 영광스러운 자요. 존귀한 자요. 가장 행락을 취했어. 가장  높은 고도의 취미를 취했어. 잠깐 예수님 날 같은 자 생각한 그 사랑에 감사해서  잠깐 동안 너무 감사해서 눈물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이렇게 내가 너를  구출했으니 이제 구출한 너에게 내 생명으로 구출한 너에게 이 구출한 너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너에게 준다 이 소망을 받아라. 지극히 큰 소망.

내야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자 되고 "내가 이겨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처럼 너도 이겨 내 보좌에 함께 앉는" 이것을 주지  아니하셨다면 예수님의 사랑의 은혜는 감사하지마는 소망 없는 슬픈 자요 욕망에  차지 않는 자요.

살기는 살았지마는 지옥은 면해. 하늘나라는 가기는 가지마는 모든 생애가  만물들이 찡그리고 비웃고 조롱하고 침 뱉는 이 생애에서 살면은 뭣하며 영생은  뭐 할거냐. 살리기는 지옥보다는 좋기는 좋지마는 한데 예수님이 이렇게  아버지에게 존귀한 직책을 맡겨 주심을 받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떻게 이렇게 나를 이 제물 되는, 버리시며 버려서  나를 존영케 하는 이 직책을 맡겨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십자가상에서 감사를  최종으로 일으켰어.

이와 같이 영광의 직책을 우리에게도 주어서 예수님과 함께 천해지고 예수님과  함께 벙어리 되고 예수님과 함께 멸시 모략 중상 당하고 예수님과 함께 배척  외로움 감사치 못하는 자에게 시은하는 이 역사하다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  어떻게 하든지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 고난에 참여하여 주와 부활의 권능에  동참하는 자 되게 하려 위함이라 하는 것을 바울이 거머쥐고 날뛰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받는 것이요. 이것은 눈물을 가지고 되는  것 아니요. 이를 갈아 붙여야 됩니다. 우리는 뜨거운 각오 가져야 됩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에게 첫 열매되신 예수님께서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예수님이 가신 이 길을 예수님이 지신 이 십자가를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을 우리에게 계대하여 맡기시고 이것이 지극히 큰 소망이고  예수님 안에서 역사 하시던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고 예수님을 붙들고  역사 하시던 성령의 지혜를 우리에게 연결시켰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모자라는 것은 다 대충입니다. 어디든지 모자라는 것은 다 예수님의 피  공로가 가면 해결돼. 안될 게 하나도 없어.

이렇게 하고 우리를 예수님의 살에 연결되고 예수님의 피와 생명에 연결되어  예수님의 영과 진리에 연결된 우리의 중생 된 영으로 더불어 우리의 남은 심신만  연결되면 됩니다. 우리의 심신만 연결되면 됩니다. 영은 연결됐고 심신의  연결식이 오늘 오전에 떡과 포도주를 먹은 것이 심신의 연결식입니다. 연결  연결식을 베푼 것입니다.

여기서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살아난 자가 실질적으로 건설하기 위해서 죽은  자가 살아났는데 이 죽은 자를 죽이지 못하는 것을 죽이고 살아난 자가  살아나지를 못하는 것을 살리고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죽이고 살린 자가 이제는  주님과 함께 죽는 이 결성식을 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주님의 이 승리에 심신의  연결 의식을 갖추는 것이 성만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주의 피에 연결됐습니다. 주의 살에 연결됐습니다.

주님의 육의 생명이 어떻게 살다 죽은 그 육의 생명에 연결됐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게 됐습니다. 허무한 것 같으나 믿는 자에게는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합니다. 의심치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고 연결된 이  자기로 살 때에 능치 못할 것은 없습니다. 지극히 큰 능력은 함께 합니다. 이것은  다 영생입니다. 만일 시험에 들어서 암흑으로 잠깐 잊어 버렸으면 다시 재연결을  시키십시오. 다시 일어서십시오. 하루 몇 십 번이라도 잊어버렸으면 이 성찬 먹을  때에 그 사람으로 다시 일어서십시오. 일어서면 됩니다. 일어서서 자라 가다가  그대로의 사람으로 성찬을 다시 참여하게 되면은 더 충만하게 더 재견고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데에서는 주일마다 성찬식을 하는 그런 교파도 있습니다.

그는 비성경적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 낡아졌기 때문에 하나의  습관이 될까 해서 드문드문 베푸는 것이나 한 성찬으로 견고해진 것이 견고한  거기서 또 한 성찬으로 더 견고해지고 충만해진다면 주일마다 성찬을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생명에 속한 살아난 것도 인간의 요소가 아니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절대자의 요소로 말미암아 강한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데 다만 내  안에 이루어진 것은 어떤 피조물도 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여기 대해서 나만은 이것을 멸시도 하고 버릴 수도 있는 그것이 우리에게  유한한 자유성으로 젖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만 버리지 안 하면 천하 있는  피조물이 다 달려들어도 해하지 못합니다. 이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이러기에 이렇게 되는 기회가 기회인 것 만치 하나님이 만드신 지극히 큰 것이  이루어지는 이 기회 이 자리 이 환경에서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새로운 각오를 가지지 아니하고 다른 데와 같이  의식하면서 자기를 살피지 아니하고 그저 옛사람 있는 그 생각대로 그대로의  무심히 이 성찬을 먹고 마시면 죄를 먹고 마신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모든 삐뚤어져 죽은 것이 살아나는 기회인데 살아나는 이 살아나는 길은  살리는 걸 먹지 아니하고 살림을 먹지 아니하고 능력을 먹지 아니하고 생명을  먹지 아니하고 죽음 그것을 그대로 먹기 때문에 죽음 그게 뭐인데 그게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자기 죽음 그것을 먹기 때문에 그때에 먹은 자기는 죽은  자기가 가속도로 커집니다.

한 번 성찬에 범죄하고 두 번 범죄하고 할수록 자기는 죄를 이길 수 없는 그자  옛사람이 강해집니다. 강해지기 때문에 그의 생애는 이전에 배나 죄가  장성해집니다. 장성해지니까 병들고 죽습니다. 사업도 병들고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가운데 가장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악한 자가 못쓸  자가 비참한 자가 가련한 자가 있게 되는 것이 이것이 다 이런 데로 기인해  가지고 생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것을 다시 회개해서 이 죄악의 세력이 자기를 억누르는  권세를 잡은 것을 지금이라도 벗어나고 회개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때 할 일은 뭐이냐? 사는 일을 할 일이냐 죽은 일을 할  일이냐? 세상적으로는 죽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죽는 일을 하는  그 일이 속으로는 진리와 영감으로 사는 일을 하는 것인데 세상이 볼 때에는  죽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죽는 일이 완성되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는 일이 완성되는 이것이 둘이 한꺼번에 됩니다.

겉은 죽고 그 속은 사는 이것으로서 우리의 남은 생애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미국도 사랑하시는 모양이요 미국에도 중미 미국에 한가운데 중미에  이제 소련 이 핵무기들을 전부 설치해 미국 사람은 말 못해 꼼짝 못해. 설치하면  위협이야 하지 위협해야 그런 위협은 지나가는 바람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눈도  꼼짝 안 해. 쿠바 놓은 것만 해도 돼 .

이러니까 그 나라에도 지금 아마 백성들이 우리나라야 이게 천국이다 튼튼하다  하는데 야 공산주의가 예수 믿는 자들 전부 모조리 다 학살한다 하는 그 학살에  대한 그런 그 감이 조금씩 생겨지면 그들의 준비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남한에는 지금 이것을 아주 급속도로 지금 재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공산주의자들에게 그 고문과 고행도 닥치기 전에 아주 미리 수십 번  매를 꺾어 봐야 될 것이요. 팔도 틀리고 이러면서 아 이럴 때는 그만 아야 하면  헛일이라 아야 하면 헛일이라.

 제가 언제 여기 개 싸우는데 가 가지고 뭐 배울 게 있는 가 해서 보니까 아,  개싸움을 시키는데 이렇게 큰 개가 있고 이 조그마하게 둘이 싸우는데 보니까 큰  거 이놈이 뭐 어떻게 힘이 센지 작은 거를 물고 흔드는데 나중에 말하는데  보니까 큰 개가 졌다고 이 상급을 작은 개 채워 주고 이게 이기고 많이 물고 내  흔들었는데 왜 졌느냐고 아, 그 '캥' 안 합디까? '깽' 하는데 아프다 소리인데  '깽'했기 때문에 졌습니다. 그때 큰 것 얻었소. '깽'하니까 헛일이라 쥐어 틀 때  '아야' 하면 헛일이라.

주를 찾아 '주여!' 팔을 틀 때 '주여!' 껍데기 뺏길 때 '주여!' 주밖에 안나와. '아야'  하면 헛일이라. '깽'하면 헛일이라 '깽'하면 패전이야. 그래 여러 번 여러 수십 번  연습하고 내가 연습한 것을 십 도나 되도록 연습했는데 저희들이 오 도 주면 오  도 남은 거 있으니까 놀면서 슬슬 웃으면서 해 나갈 것이고 그들이 하는 것보다  도수 낮게 연습해 놓으면 연습해 놨으면 그때 저는 당황하고 놀랠 일이지.

 여러분들 어짜든지 겉은 죽고 속은 사는 것 사는 것이 죽는 것으로 성공합니다.

죽는 꺼풀 속에 진리와 생명으로 영생하는 생명이 삽니다.

이러기에 죽음으로 가득 찬 땅 위에 영생하는 생명이 그 속에 이루어져 가는  것이 세상이 모르는 비밀입니다. 죄악이 관영해 가는 땅 위에 세상이 달려들어도  더러워지지 않는 깨끗한 의가 점점 건설돼 가는 것이 교회요 세상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각오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보기에는 안됐고 나는 늙어서 죽을 날이 내일  모레인데 이거 참 좋은 꼴 못 보고 죽겠다. 이래 죽으면 암만 일하다 죽어도 뭐  늙어 죽지 주를 위해서 죽지는 못하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되나 그렇다고  보내지도 안한 것 이북으로 넘어간다는 것 그것도 또 내가 자살행위 되는 것 또  손양원 목사님 모양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기는 좋은데 또 나대로 원해 가지고  안되겠고 이 주일학생들 보면은 또 그것도 안 되겠고 뭘 해야 좋을는지 여러분들  우리가 세 가지 알 것 이거 단단히 기억합시다. 겉이 죽어야 속이 삽니다. 속에  참 생명은 죽는 걸로 나타납니다. 죽는 걸로 나타나요. 죽음으로 죽음을 완전히  이깁니다. 빼앗김으로 완전히 탈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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