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1984. 7. 8. 주일 오후 

 

본문 : 고린도전서 11장 23절∼26절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선교회  오전에 증거한 말씀을 한번 더 기억하시고 우리 각자들이 거기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서 많이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묵상하면, 우리에게 주님의 대속을 알려  주시려고 책임을 지신 분이 성령이라는 하나님이시요. 또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할 때에 실지에 시공을 한 그 능력이 진리입니다. 성령과 진리가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또 피의 역사가 친히 알려 주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연구해야  하겠고, 또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감상하는 그 묵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에게 차차 인식되고 확신되고 또 우리는 거기에  감화되어서 주님의 대속에 합당한 사람으로 점점 성화돼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연구하려고 하면 성경은 범위 넓게 우리에게  말씀을 해 놨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그만 요령을 잡지 못하고 더듬다가  은혜를 입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강령적으로 몇  가지를 말했는데,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는 서너 가지로 강령을 잡아서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기까지 하신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으니 그 사랑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말씀하신 것은 영생이라  말은 그 현실 생애가 영원히 멸망 받지 않을 산 생애를 하고 있다 그 말입니다.

생명과 영생은 다릅니다. 생명은 영생을 하게 하는 것이 생명이요, 영생은  그것이 영원히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것인데, 생명은 하나님과 나와의 결합이 될  때에 생명이 됩니다. 영생은 주님과 나와의 결합된 이 생명을 가진 내가 모든  사물을 취급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그 모든 것을 취급할 때에 내  생활은 영생이 되었고 거기에 관련된 만물들은 다 영원한 하늘나라에 쌓여지게  되고. 만물이 새로워질 때에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물 회복이요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대속하신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묵상하는 게 좋습니다. 시간을 하루도  모지라고 며칠도 모지라고 그만 기도하다가 몇 날이 갔는지 모르게 벌써 여러  날이 갔고, 그저 몇 십 일인지 모르게 그렇게 식음에 생각이 없이 그렇게 여러  날을 기도하는 그것은 다 그런 기도는 깊은 묵상 가운데에 잠기는 것입니다.

명상 가운데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런 명상을 할 때에. 이 하나님이 나를 대속해 주셨으니 대속의 그 사랑을  생각할 때에 자기는 생각할수록 자기 지식에 따라서 차차 차차 깊어지고  넓어지고, 또 그런 가운데에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서 자기가 평생 지식하지 못한  그 범위를 초월한 깨달음을 자기가 가지게 되고, 이래서 그 명상하는 가운데에서  깨달음 가지는 그 깨달음에 자기는 참. 잠기어져서 며칠이 가는 줄도 모르게  그렇게 거기서 자체도 변화함을 받고, 모든 사상도 지식도 세계도 만물관도 모든  만관도 다 바꾸어져서 변하게 되고 그것이 성화고, 그것이 우리가 차차 하나님의  형상대로 커지고 넓어져서 능히 피 조물을 다 제어할 수가 있고 통치할 수가  있고, 과거에 이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기 전 묵상 가운데에 들어가기 전  골방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시시비비를 하고 이런 요런 모든 욕망했던 것이 다  그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때에 차차 지식도  새로워지고 따라서 비판도 평가도 새로워지고 욕망도 새로워지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두는 것이 다르니까 그의 생애 전심전력 기울이는 것이 세상이 이해 못  할 세상을 초월한 그런 생애, 진실한 생애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진리인데, 이 신구약 성경에는 거기에는 그 의학도  있고, 거기에는 또 문장도 있고, 있으나 그것은 다 진리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서 가장 요령적으로 간편되게 그렇게 기록된 것뿐이지 그것은 거기에 있는  단어는 다 진리가 아니고 그 단어에서 우리에게 나타난 진리가 있고 그 진리는  말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전적하고 있는 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를 읽으면서 어떤 사람은 문두에서 단어를 찾고 신구약  성경에서 문장을 찾고 거기서 무슨 문학적인 가치를 찾고 또 과학적인 무슨 그런  가치를 찾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다 거짓되고 속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순전히  그 문서를 읽으면서 진리를 찾아야 되겠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계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에서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알려 주시는 대로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고, 또 문서가 알려 주는 데에 미비점은 그 안에는 성신의  감화 감동이 우리에게 알려 줄 때에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완전히 될 때에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의 것이 되어서 완전히 역사할  수가 있고 우리는 그 대속의 무한하신 그 은혜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서, 우리의 구원의 도리라 말은 우리가 길을  걸어가는 그 길을 안내해 준다 말입니다. 도리라 말은 길 도(道)자 이치  이(理)자 길을 가르쳐 준다는 말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아 우리에게 도리를  가르쳐 주고, 또 이 자연 만물이 우리에게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사랑을 우리가 궁구한다면 신구약 성경이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하다고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고 또 이 자연 만물에서  우리는 이런 거 저런 거, 사랑에 어떤 사랑이 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하면  그만 당신의 그 부요와 당신의 지극히 높은 그 모든 지위와 당신의 그 모든  생명을 우리를 구원해서 영원히 우리를 복되게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다  투자하신 사랑이라 간편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연구하면 어릴 때는 잘 깨닫게  됩니다.

 그것으로서 들어가는 입문이지 다는 아니지만 예수님은 나 위해서 모든 부요를  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다 내어 놔서 가난해지시기까지 예수님이 모든  부요를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어놓으시고 가난해졌다 예수님은 제일 높은 그  지위와 권세를 가지셨는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낮아져서 그 이상 더  낮아질래야 낮아질 수 없는 낮아지심을 날 구원하기 위해서 하신 주님의  사랑이시다. 또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기 때문에 영도 죽지 안하고 육도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도 죽지 아니하고. 물론 신성은 죽지 안하고 예수님의  인성의 영도 육도 죽지 않습니다. 영과 육이 죽는 것은 범죄하기 때문에 죽는  것인데,  예수님의 그 인성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인성인데 예수님의 인성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한번 존재했으니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안 죽는데,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를 이루어 가지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의 모든 고통의 그  벌을 다 감당하신 것이 간단하게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나를  이 당신의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지 안하면 그 모든 높음을  다 희생하지 안하면, 또 사망의 형벌을 받지 안하면 나를 구원 할 수 없는  하나님이 그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 사랑을 베푸시므로 내게 구출된 구출은 어떤  가치 있는 것이기에 주님이 이렇게 큰 자본을 투자했는가? 그 사랑도 우리가  궁구하고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 그 구원의 가치도 넓이도 깊이도 높이도  길이도 우리가 연구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래서, 내 피와 살을 먹는다 그 말은 사람들 알아듣기 좋게 그렇게 말을 해서  그저 알도록 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차차 가르쳐서 장성함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성만찬 그 예식을 하는 것은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려는 것이나 실은  주님이 뭐 때문에 모든 부요를 내어놓으시고 낮아지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의  저주의 사망을 받으셨느냐? 사망 받으신 것은 그것은 벌써 하늘나라에서  가난해지심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마지막 종결 한 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이라고 했기 때문에,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 피와 살로 양식을  삼는다 그말은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그 대속을 우리가 깨닫고 깨닫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거기에 우리에게는 이미 이루어져 놓은 큰 구원이 있고, 또 큰 사랑을  우리가 입었고, 지극히 크신 분이 큰 사랑으로 역사하시고 계시니 거기에서  얻어지는 간절, 얻어지는 담력, 얻어지는 평강, 얻어지는 자기의 얻어진 모든 그  구원 이것으로 인해서 움직이는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 하나도 멸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기에, 피와 살을 먹는다 말은 주님의 피흘리기까지의 모든 과정 전체  주님의 대속을 묵상하고 명상하고 거기서 깨달아서 거기에 합당한 자로 거기서  나오는 힘과 욕망으로 움직이는 그 모든 움직임은 털끝만한 것도 사망에 이르지  않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뭐 떡을 먹고 포도주 먹는  그것은 아주 어린 마음에 알려 주는 하나의 의식이요 거기에서 뭐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의식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묵상 하고 명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연구하고 묵상하는 데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첫째 묵상해 봐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가? 그러면서  우리는 주어 본 사람이라야 자기가 얻은 감사가 나오고, 다른 사람을 섬겨 본  사람이라야 그 섬김을 받는 가치를 알게 되지 제가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에게 대접만 받는 사람은 대접하는 것이 어떻게  힘든다는 것 전연히 모릅니다. 제가 대접을 해야 비로소 대접을 받은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이 우리에게 권고하신 대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사랑하시는 모든 걸 다  희생하신 주덤이 나에게 권면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계명주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인 것을 깨닫고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가 부요를 커든지 작든지 희생해 보는 데에서 주님이 날  사랑한 사랑을 차차 차차 자기는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전 소유를 주님을 사랑하므로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소유를 다 바친 거기서 주님의 사랑의 그 소유의 희생의 가난해지심의 그 사랑을  자기는 체득할 수가 있고 자기는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는 높은 지위  권세에 있으면서 그 형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한 조그만한 권세를 쓰지 못하고  권세 없는 자와같이 그 권세를 모두 다 형제 구원을 위해서 희생을 해 봤을 때에  주님이 나를 위하여 낮아지심을 비로소 체득할 수가 있습니다.

 또,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 하고 그래도 모자라서 죽기까지 하신  그 죽음으로 날 사랑하신 그 사랑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므로 형제를 사랑하여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남모르게 땀을 흘리고 남모르게 수고를 하고 남 모르게  하루나 이틀이나 일 년이나 십 년이나 희생을 하고 마지막에 상대방이 모르는 그  상대방을 구출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걸 희생하고 생명을 희생해 보는 그  순교자가 비로소 주님이 나를 사랑 하시는 그 사랑을 비로소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다 자연계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계시를  자연계시에서 연구해서 알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고 주님이 날 대속하신 대속의 범위를 오전에도 말했거니와 그 범위는  하나님의 지공법에 다 완전 해결을 지운 것입니다. 지공법에 완전 해결이란 말은  지공법은 어떤 법이 지공법인고 하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공평된 그 법이  있고 또 모든 존재의 구더기와 나와에도 공평된 그 법이 있고 하나님과 피조물과  그 전체에게는 각각 그 개성이 있고 독립성이 있고 자주성이 있고 자유성이 있고  거기에는 다 주권 다 자기대로의 생명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도 하후하박이 없어 다 지극히 공평된 그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만물의 자유법이요 이것이 생명법인 것입니다.

 이 지공이라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인데 우리는 그 법이 내게 어떤 법이  관련되어 있으며, 내가 어떤 법을 범하고 있으며, 또 어떤 존재가 나하고 관련이  있는가 모릅니다. 겨우 사람, 또 제가 뭐 접촉하는 모든 사물 그런 것뿐이지 그  이상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의 관련되어 있는 모든 존재가 얼마나 수가  많으며 그와 나와의 얽혀 있는 그 법칙이 얼마나 세밀 하며 내가 그 법칙에 어긴  것이 얼마나 되며 침략이 얼마나 되며 내가 의무와 본분을 행하지 못해서 빚진  것이 얼마나 되나 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을 다 완성 대속한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그는 높고 높고 높다 해도 얼마나 높은지 우리는 모릅니다. 얼마나  높으신지 모르는데, 그분이 지극히 높으심과 우리는 피조물의 한 존재인데,  주님의 지극히 높으심과 우리와의 관계점, 우리가 그 지극히 높으신 그분에게  대해서 어떻게 마음가짐을 대하며 어떻게 태도를 가지며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되며 어떻게 해야 되는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깜깜하게 모릅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봤다 해도 그거는 아주 초보 초보로서 그저 한 외부의  어릴 때에 어린 아이를 가르친 거와같은 가르침의 몽학 선생이요 이제 거기서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들어가고 들어가서, 모세와 같은 그런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할 자가 누가 있느냐 그렇게 말했고, 사도  요한이가 평소에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요 가장 친근해서 언제든지  예수님의 그 품에 안기어서 기대서 눕기도 하고 마음대로 한 그 사도 요한인데,  그가 밧모섬에 가 가지고 주님의 그 높으시고 크시고 그 위대하심을 발견했을  때에 그는 그 앞에서 꺼꾸러져서 죽은 자와 같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만 그가  주님의 크심을 다 봤던가? 다 봤으면 죽습니다.

 다 본 그것은 성화되고 성화되고 성화돼서 마치 그 시내산에 올라갈 때에 다른  만물은 그 산 멀리 떨어져 있어야 안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발치에 와서 있어야  안 죽고 좀 더 성화된 아론은 중턱까지 와서는 안 죽고 모세는 비로소 상봉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만났으나 주님의 영광이 비추어  나는 그 빛을 만났고 주님이 가장 모세에게 접하기 쉬운 그 모든 물체와 물형을  가지고 이렇게 나타났을 때에 그와 만났지 주를 만났으면 다 녹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극히 크신 이분과 우리와의 관계에 잘못됨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데  지극히 큰 분과 우리와의 그 궁극적으로 지극히 큰 끝까지 끝까지의 관계에  대해서 잘못된 모든 것을 주님이 대속하셔서 완전 화친의 화목을 이루신 주님의  지성의 대속, 지공의 대속을 우리가 다 알 자 없고 날마다 알아 가야 되겠고,  알아 가는 데에서 아는 것만치 자기는 커졌고 아는 것만치 자기는 깨끗해졌고,  아는 것만치 자기는 겸손해졌고, 아는 것만치 자기는 자기가 정상대로의 자기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상의 자기요 자기를 모르는 완전히 미치광이입니다. 미치광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비정상이 아니면. 전부 타락한 후에는 인간은 다 변질되어서  비정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은 다 비정상이라,  다 완전히 변질돼서 미친 자요 죽은 자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그것이 큰 지혜를  하나 얻은 셈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범위, 예수의 대속에 대해서 소망, 그러면 우리가 얻은  우리가 그 소망이 무엇인가? 우리는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얻었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고, 진리의 나라 사랑의 나라 완전의 나라  거룩의 나라에 우리는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대한 시민의  실력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영생권을 가졌고, 제일  크신 자를 영원히 모실 수 있는 소망을 가졌고, 고분을 섬길 수 있는 소망을  가졌고 그 살인강도를, 좋아하고 죄를 좋아하던 우리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영생으로 천국 시민으로 하나님 한 분을 주로 모시고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정하고 그분을 제일 좋아하는 그게  얼마나 행복입니까? 만일 그 사람이 성자를 좋아하고 원한다면 그 사람은 거의  성자가 되어 가는 사람이요, 성녀를 원수로 삼는다면 그 사람은 벌써 보나 안  보나 악인이요, 세상에 마귀를 좋아하려는 거짓부리 마귀만 좋아하던 우리가  참이신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거 하나님의 법칙인 진실만 좋아 해도 정직만  좋아해도 곧은 것만 좋아해도 이게 가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본체를 우리가  좋아하고 그를 섬기고 그를 소망 하고 산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이요  얼마나 존귀한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게 오신 나에게 주신 이 소망이  얼마나 크며 어디까지냐? 나를 대속하신 그 범위가 어디까지냐? 나를 대속하신  그 사랑이 어떠하냐? 이것은 우리가 자연계시에서 알 수 있습니다. 특별계시  성경에서 안 사람은 자연계시에서 자기가 체험하고 경험해야 알지  특별계시에서만 보고는 그 사람은 모릅니다. 안다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자연계시에서 자기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이 모든 법적으로 해방시킨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크다는 그것도  비로소 제가 세상 이런 저런 생사를 책임지고 살 때에 비로소 알게 되고, 이런  저런 소망을 가지고 자기의 조그만한 욕망을 이루려고 해도 이뤄 봤자 그까짓 거  가치도 없는 것도 하나 이루기 위해서 일생을 분투노력해서 빈틈없이 일생을  절제하고 자기를 모두 다 동여서 이렇게 살아서 소망을 이루어 봤자 아주 극히  가치 없는 거 우리가 주님 오시면 똥과 같이 다 발길로 뭉케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가치 없는 그 소망을 이룬다고 이랬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소망은  얼마나 큰지,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아는 가운데서 커지고, 주님을 느껴가는  가운데서 실력과 변화가 되어지고 이래서 주님 알아 주님이 가까워진 것만치  만물에게는 중보자가 될 수 있고, 만물에게는 유일로 소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의 대속을 사랑면으로 우리가 궁구하고, 범위면으로 궁구 하고,  소망면으로 궁구하고, 또 다시 이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역사하는 역사가 셋이 있으니 하나는 성령이요.

하나는 진리인데 성령과 진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수종들어서 대속의 수종자요  대속의 심부름군이요 대속에게 쓰이는 자요 대속을 위해서 영원히 수종들려고  나타난 것이 하나님이신 성령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심부름해서 예수님의 대속을 위해서 이용되고 그 일을  보조하려고 나타난 그 진리가 얼마나 큰 것을 우리가 또 궁구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조그만한 힘이 나를 도와도 감사하고 우리가 조그만한 힘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라 해도 힘이 들고 돕는 사람이 조그만치만 큰 거 있어도 그  사람을 위대하다 하고 크다 하고 이라는데, 쓰여짐을 받는 것이 크면 쓰는 자는  더 큽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것 저런 것을 모두 다 이것은 저것 협조하고  저거는 협조하고 이 세상에서 이런 것이 저걸 협조하고 서로 협조해 가지고 하고  협조를 받는 거 협조하는 거, 그래 가지고 섬기는 거 섬김 받는 거 이런 것들이  가득찬데, 세상에 이런 것을 한번 죽 망라해서 딱 한번 내려다보고 주님의  대속을 수종드는 이 진리가 어떠함을 볼 때에 대속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  이것을 몰랐다가 섬기는 종을 보고 큰 줄 압니다. 섬기는 종을 보고,  어떤 사람이 보니까, 그 사람이 그 회사 조그만한 것이지만 그 회사가 세계  유명한 회사라, 굉장한 회사인데 그 이름이 아주 굉장한데, 거기에 보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 있는데 보니까 아주 뭐 남루한 그 자의 아주 천한 값싼 옷을 입고  그래 가지고 땀을 쭐쭐 흘리면서 이리 저리 이래하니까 아마 이것은 이 회사의  제일 말단 종업자인 가보다 하고 그저 그 사람을 하도 하도 시뻐서 말도 안하고  '여기 이리 가면 어디로 가냐?' '예, 이리 갑니다.' 또 뭐 좀 목이 마른데 좀 물  좀.' '아, 예예' 또 물도 떠다 주고, 이놈은 종질 중에 종의 제일 하질 종인 줄  알았는데 아, 보니까 거기에 뭐 총무니 부사장이니 하는 사람들이 그만 뭐 다  그런 사람들 아주 굉장히 높은 사람인데, 아, 그 사람이 물 떠 가지고 호통을  치니까 예 예 하던 그 사람 앞에 와 가지고 머리 고패를 숙이고 아주 이래  경례를 하고 이라는 것 보니까 저기 뭐 등신같은 거 저게 하나 있는데 저게  뭐고? 그거 보니까 대가리라. 보기에는 그 사람이 겸손하니까 천하게 봤지만  섬기는 자들이 큰 걸 보고 깜짝 놀랬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십자가의 대속을 봉사하고 있는 이 진리가  봉사한다. 진리는 십자가의 대속의 종입니다. 종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지금  나타내기 위해서 성령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성령이 오리니 그는 내  것을 가지고 증거하리라. 나를 너희들에게 가르쳐주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이 진리가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쳐  주고 또 가르쳐 줄 때에 그 가르쳐 주는 그대로 내가 하나하나 꼬박 꼬박 따라서  실행해 보니까 실행해 보니까 만물이 그 실행에 복종하는 것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그 인도를 따라서 내가 행동할  때에 행동할 때에 제야 알든지 모르든지 모든 피조물이 알고 모르는 전체가 다  내가 주님의 성령의 인도대로 내가 그 순종해서 인도를 따라서 행할 때에 그  모든 존재들이 거기에 다 복종하고 순응 한다는 것을 자기가 경험하고 느껴 볼  때에 비로소 이 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면 풋장거리고 거짓말이라 할 것이오. 믿음을 지킬 때에  믿음을 지킬 때에 모든 존재가 다 뭐 대국이고 소국이고 정치고 믿음을 지키는  자 그 자의 역사를 따라서 움직이고 협조한다는 것을 확실히 여러분들이 믿음을  지키면 몇 번이든지 체험했을 것입니다. 몇 십 번이든지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은 안 해도 말은 안 해도 '그저 아무 것도 없는 자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로다. 모든 자에게 종질하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통치하고 있는 통치하고 있는 왕이로다.' 말하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감이 영감이 주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이 영감도  하나 둘 우리가 영감을 받아서 아는 그것도 말로 해야 안 돼. 이거는 받는자  밖에는 모르기 때문에 받아 봐야 알지 받아 보기 전에는 몰라. 이러니까, 문서  계시가 우리에게 주의 보혈을 증거하고 있으니 알려 주고 있으니 문서 계시의  증거를 받아서 그대로 하나 둘 행해 보면 체험과 경험에서 자기는 아는 지식이  생겨지고, 고 체험과 경험이 생겨지는 거기에서 성신의 감화 감동이 알려 주는  요 길을 알고, 요 증거를 받은 자로 서는 주님을 부인할 자 없는 것입니다. 어떤  데서라도 부인할 자 없습니다. 주님을 부인할 만한 그 사건이 없고, 주님을  부인할 만한 두려움이 없고, 주님을 부인할 만한 위대한 것이 없고, 주님을  부인할 만한 그런 어려움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피를 몰라 그렇지 주님의  공로를 몰라 그렇지.

 그래서 주님의 피공로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음료라' 이래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그냥은 그냥은 죄를 이길라 하면 안 되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묵상하면서 대속을 인해서 이길라 하니까 푹푹 이기더라  그 말이오. 푹푹 이겨. 이래서 주의 피 능력 있도다. 우리를 그 모든 죄에서  구출하기를 누가 구출합니까? 주의 피로 구출합니다.

 사람이 38년 된 앉은뱅이가 예수님께서 그 자리 와서 서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라니까 옆에 있는 그 방청객들은 생각하기를 '어쩐 미친 자가 와  있다. 병신이 낫고자 하는 마음 없을까니 낫고자 하느냐 그런 소리를 묻나? 참  미친소리한다.' 또 얼마 있다가서 '일어서 봐라' '허, 참 이제까지 삼십팔  년이나 된 그 병신으로 드러 누워있는데 일어서라고 그 소리 누가 못 할까? 그  38년동안 병 있는 것보다 일어서기 싫어서 안 일어서는가 일어서라 하더라.'  조롱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어서라 할 때 벌떡 일어서니 일어서졌어.

이것입니다. 이거.

 주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주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하나님께 피동되는 의를 의의 걸음을 걸어갈 수가 있고 의를 보존할 수가 있고  주님의 피가 보이지도 않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나와 부자간에 이래  친밀한 교제로서 내가 주님에게 말할 때 딱딱 가서 대하고 대답하고 밤으로도  말하면 밤에도 아버지 부르면 부르고, 내 말하면 모든 것 들으시는 이거 이  거짓말 같은데 주님의 피공로를 입어서 과연 아버지를 불러 보니까 됩니다.

복종해 보니까 됩니다. 다른 때는 예수님 아닌 자가 아무리 일어서라 하고  일어서라 말을 들어도 소용이 없고 걸어가라 말해도 소용이 없지만 말씀하신  이가 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하시는 그거는 듣고 복종하니까 다 됐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 피의 공로를 인해서 죄를 멸하려 할 때에 죄는 우리에게 당장  당장 멸해집니다.

 이러니까, 주의 피 능력 있도다 하는 것이 말쟁이 말이 아니고 그 체험으로서  주님의 피를 생각하고 피를 힘입어서 죄를 호령치니까 죄가 물러가고, 피를  힘입어서 죄를 호령쳐야 죄가 당장 멸해지고 피를 힘입어서 죄를 보니까 죄가  미워지고 이래서 주님의 피의 역사가 죄에 대한 역사, 의에 대한 역사, 화친에  대한 이 역사가 친히 역사하는 것을 체험한 자는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피의 찬송을 요새 모두 흔하게 불러서 이래 부르는 데,  주의 피 능력 있도다 하니까 뭐 주님의 피를 자꾸 이라니까 그 주의 피 능력  있도다 하는 그 찬송을 지은 사람과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못 따라 가고 못  따라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원수 앞에서 원수 앞에서 하나님에게는 순종하고 원수는 나를  저에게 순종하라고 생명을 노리고 날 오만 것으로 위협을 다하고 다 이와같이  하고 있는데, 강한 온 세계 원수가 다 달라들어 가지고 저한 테 복종하라 하는데  이제 나는 주님에게 복종해야 되겠는데 하고 암만 해 봤자 인간의 각오와 결심과  이성 비판과 평가가 안 됩니다. 주님이 나에게 칭의를 주셔서 나는 주님에게만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라고 칭의의 공로를 베푸셨으니 나는 당신에게만  복종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공로를 생각하고 공로를 입어서  주에게만 복종한다 할 때에 온 천하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 그것이 주의 피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는 체험하지 안 하면 주님의 피는 제가 체험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거요.

 이러므로. 제일 외부적인 증거가 문서 진리가 증거하고 그 다음에 내부적 은  성령이 증거하고 진리와 성령 둘이 누구를 증거하고 있느냐 하면 피를 증거하고  피가 내게 와 가지고 이제 능력있게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도 '우리가 깊이  깊이 느끼고 느끼고 새겨야만 할 것입니다.

 셋째로는 우리는 사죄를 기념해야 되겠고 칭의를 기념해야 되겠고 화친을  우리가 기념해야 되겠습니다. 기념하는 데에는 내가 기념하려 하면 내기에 있는'  소유가 절단 나는 그런 때에 그런 때에 내가 그 소유를 절단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이 세 가지 공로를 벗을 수도 있고, 이 세 가지 공로를 내가 보수하기  위해서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절단 나도 보수되는 거기에서 비로소 주님의  대속을 우리가 알 수 있고 또 대속을 실지로 내가 기념하는 자가 됩니다.

거기에서 실상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을 보수하기 위해서 첫째는 우리의  소유가 절단 날 때에 그때에 절단 나면서 절단 나면서 보수해야 기념이 되고, 또  낮아지면서 보수해야 기념이 되고, 우리는 죽으면서 보수해야 기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명하는 것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함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목숨을 버렸으니  너희들도 형제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지당한 일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주님의 이 대속과 또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그 소망, 이 대속을 증거하는 증거, 이 대속을 우리가 기념하는  기념 그래서 주님의 대속, 또 보증, 기념, 이걸 그저 깊이 깊이 항상 좀  명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뭐이든지 자꾸 뭐 달라 하는 그것도 있지만 그런 어린  신앙에 있지 말고 예수님의 대속을 명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피와 살을 먹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힘이 납니다.

그것이 피와 살을 먹은 힘입니다. 그 힘은 다 영생을 이루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걸 딱 기억하고, 우리가 명상하고 그렇게 묵상해서 주님의 피공로로 우리는  점점 변화함을 입어야 될 것입니다. 피공로로 변화함을 입으려고 할 때에 진리가  와 가지고 우리를 보중해 주고 성령이 와서 우리를 보증해 주고, 그러면 우리가  피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리 세계를 울리는 어떠한 위대한 운동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도리 이외 것이면 영접하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말고 맞이하지도 말아야 됩니다. 세상에는 너무 거짓부리들이  많습니다. 기독교는 대자대비의 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저 사랑의 봉사라는  그런 도만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죄, 칭의, 화친의 도가 기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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