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과 축복

 

1982. 3. 19. 금새

 

본문: 마태복음 25:35절-40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인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 어느 성경이나 읽을 때에 이는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인지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인지 이것을 구별해야 되지 이 구별하지 안하고  마구잡이로 해석하면 자기는 마귀가 됩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성구를 가지고 미혹을 시켰습니다. 또 이것은  신령한 면을 말한 것인지 육체의 면을 말한 것인지 이걸 또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물론 신령한 면의 것이 육체의 면까지 연결해야 되고 육체의 면이 신령한 면까지  연결되어야 그게 바로 되는 것입니다.

천국생활이 세상생활 되고 세상생활이 천국생활이 되어야 그게 바로 되는 것이지  천국생활은 천국생활대로 세상과 관련이 없고 세상생활은 세상생활과 관련을  가진 그 천국생활과 관련이 없으면 그게 신앙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관련은  있지마는 어느 것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말씀하신 것인가를 구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다른 것이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노아 때에 방주를 만들라는 것이 구원과 멸망의 표준 계명이  되었던 거와 같이 신약시대에는 구원과 멸망이 멸망의 표준 계명이 되었던 거와  같이 신약시대에는 구원과 멸망이, 멸망의 표준 계명이 사랑입니다.

물론 많은 계명이 있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빠진 것이 빠진 면이 없이 다  모아놓은 것이 성경이라 이는 전지의 하나님이 모으셨기 때문에 신구약성경에는  우리에게 관한 것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구비해 놓은 것이 성경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행동면이나 사상면이나 인격면이나 속성면이나 그 모든 기타의  모든 면에 빠짐이 없이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이 신구약성경이지만은 그 모든  면에 관심을 가지고 했다 할지라도 이 사랑에 대한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지  안 했다면 그 사람은 다 허공 치는 일했습니다. 말세 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말세는 우리의 구원과 멸망의 표준으로 하는 계명이 사랑입니다. 모든  도리의 강영이 사랑입니다. 모든 법도의 중심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마치 그 물 고가 수만 고가 있다 할지라도 그 고가 그물에는 하나 하나  고를 맺어놓은 그 고가 벼릿줄에 걸려져야 그것이 그물 노릇을 하지 그렇지 안  하면 그물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계명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사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모든 계명이  펴져 나왔는데 그것이 어디서 퍼져 나왔느냐 하나님의 사랑에서 펴져 나오지 안  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표준 계명이 사랑이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은 하니님 대로 따로 사랑하고, 사람은 사람대로 따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느라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사랑이 강령적인  계명이요 표준적 계명이라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계명을 말씀해놓고 결론을 지을  때에 반드시 계명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결론을 그렇게 지웠습니다. 이러니 만치 사랑이 우리의 구원과 멸망과 전부라고  이렇게 우리는 봐야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저 처음부터 조는 사람은 절 뭘 알고 저래 조는고 참 졸다가 제 구미에 맞으면  그때는 눈을 뜹니다. 자기 주관에 맞으면 눈뜹니다. 그 사람은 항상 자기가 도의  주인입니다. 자기 도 자기가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중요한 것 만치  여기에서는 마귀가 전력을 기울여서 노력합니다. 사랑 요것만 삐뚤트렸으면 모든  것 다 삐뚤어진 것이니까 다른 거 뭐 지저분하게 노력할 것 없이 사랑 요것만  삐뚤어지도록 했으면 된다 하는 그것이 마귀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삐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데에는 사랑하지 말라는 그런  말을 암만 해봤자 먹혀들어 오지를 안 합니다. 사랑이 말세의 표준적 계명이라  강령적 계명이라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헛된데다가 자꾸 주력을 하도록  이렇게 지혜면이나 능력면이나 무슨 진실면이나 또 거룩면이 암만 있어도 뭐 또  희생면이나 봉사면이나 그런걸 암만해도 사랑 없이 할 수 있습니다.

"네가 모든 지식을 통달하고" 모든 지식을 통달하고 지식 다 가졌다 그 말이요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네 몸을 다른 사람 위해서 희생해서 불살라  줄지라도" 이렇게 인간 위해서 해도 자기를 위하여 모든 것이 모든 것을  구비시켜도 또 순종이 이렇게 강해도 사랑 없을 수 있다는 걸 거게 말해놨습니다.

이래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네게 아무 유익이 없다 이러기에 다른  면으로 우리를 힘쓰도록 어만 데로 우리의 주력이 욕망이 기울려지도록 이렇게  만드는 것이 마귀가 이 사랑을 삐뚤어지게 하려하는 일차적인 그의 전법이고  최종전법은 사랑의 가짜를 만들라는 것이 최종 전법입니다.

가짜 사랑은 뭐인가? 첫째 아담이 가진 것이 가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둘째  아담이 가진 것이 참사랑입니다. 가짜 사랑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요 참  사랑은 전능자라야 됩니다.

제가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능력이 모자라서 그를 복되게 하지  못하는 유한적 봉사라면 유한적 인도라면 유한적 안보라면 유한적 시험이라면 그  사랑은 다 죽은 사랑이요 죽을 사랑이요 죽은 사랑이요. 최종의 승리를 가지지  못하는 영원성이 없는 사랑이요 불변성이 없는 사랑이요 완전성이 없는 사랑이요  영생성이 없는 사랑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가지신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이 가짜  사랑 인간 사랑으로 대품을 시키려고 날뛰는 것이 악령의 역사인데 요 사이는  아주 마귀라는 놈이 이방을 통해서 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와 손을  잡고 이렇게 서로 화목해야 된다  이래서 미국에서 키신저가 닉슨과 그 두 사람이 정권 잡았을 때에 공산주의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과거에 루스벨트나 그런 모든 유력한 그런 모든 정치가들도 다  이 사랑을 가지고 해야 된다 해서 세계에 뭐 군비축소라든지 또 동맹이라든지  이렇게 모두 다 평화조약이라든지 이런 것을 했는데  이러니까 교회는 의례히 해야 될 것 아닌가 이래 가지고 교회에서 사랑운동  화평운동이 맹렬히 일어납니다. 이 사랑운동에 대해서 반대한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짜 사랑인지 진짜 사랑인지, 첫째 아담이 가진 사랑인지 둘째  아담이 가졌던 사랑인지, 이것이 하나님만이 가진 사랑이 이 땅에 왔으니 그  사랑을 주고받고 전달하는 이 사랑인지, 그 사랑이 아닌 인간 사랑인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말세에 제일 독이 많은 독소가 무엇이냐? 말세에 제일 독이 많은 강한 독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강한 독이 뭐이냐? 말세에 제일 강한 독소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입니다.

이러기에 원수 많지만은 원수 중에 제일 강하고 크고 네 앞에 가까이 붙어 있는  제일 큰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니라 그 말이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를 삼킬  자가 가짜 사랑이니라 그 말입니다. 네 몸 안에 있는 원수는 누구냐? 네 몸 안에  있는 원수는 너를 죽인 너 아닌 너 옛사람 네가 그놈이 네 몸 안에 있는 제일 큰  원수이니라.

그러기에 온 세계에 있는 죄악의 해독보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네 죄가 네게  해독이 크고 너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네 모든 죄보다 너만 알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그 죄의 해독이 크고, 너만 아는 네 죄 그 하나의 네 죄 모든 그  죄보다 너만 알고 있는 네 모든 죄보다, 네가 모르고 있는 네 죄가 해독이 제일  크다. 그 죄는 마음놓고 멸망을 마련합니다. 그것보다 제일 큰 죄는 네가  주인공이 되어 있는 그 죄가 제일 크다. 이것이 원죄란 말입니다. 여기에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

말세에는 사랑이 아닌 계명이라면 사랑이 아닌 행동, 행동이라면 사랑이 아닌  경영이라면 사랑의 열매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없느니라 노아 때에 방주 만드는  거 외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온갖 그때 공작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신앙 생활  안한 것 아닙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대로 택하여 아내를 삼았다" 고것을 하나 들어서 말한 것  보면 그때에 하나님의 아들들도 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엉뚱스럽게 방주 만들라는 방주 만들라는 고 계명 지키지 안 하면 다  헛일했어. 방주 만들지 만들라는 요 계명 지키지 안한 자는 헛일했습니다. 다른  것 다 내두고 방주 만들라는 요 계명 하나 지킨 사람만이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때의 표준 계명 말세를 당한 우리들에게 대한 표준 계명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  알고 보면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도 보면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는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그때 ○○○ 목사님이 서부교회 집회하러와서 우리가 ○○○ 목사님에게 배우는  거와 목사님에게 배우는 것 그때 내가 조사님입니다. 조사님에게 배우는 거와  이렇게 같은데 혹 그 의문이 돼서 내가 묻는 것이니까 말씀 해 주십시오 하면서  ○○○ 목사님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성장이 있다, 그 말이 뭐 어찌됩니까 성장이  있다 그 깨달음이 바른 깨달음이다  그러면 그 근거되는 성구가 무엇입니까? 묻기에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이 그  교리에 대한 근거절 입니다. 말을 내가 해줬습니다. 여기에서 집회 와서 지금  아마 한 십 한 오륙 년 됐는지 거게도 사랑이 제일 이니라 말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 없는 마음을 사랑 없는 소원을, 사랑 없는 욕심을, 사랑 없는  계획을, 사랑 없는 방편을, 사랑 없는 주는 것은 사랑 없는 받는 것도, 사랑 없는  가르치는 것도, 사랑 없는 그 배우는 것도 다 허사입니다. 다 허사요 사랑이  아니면 헛일입니다. 이런데 이 사랑이 가짜와 진짜가 있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여기에 인간을 죽이는 첫째 아담이 인간을 죽인 그 사랑이 있어.

인간을 무엇으로 죽였습니까 가짜 사랑으로 죽였습니다. 둘째 아담이 인생을  무엇으로서 구원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인 이일 사랑 참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했습니다.

이러니까 사랑과 사랑의 이 구별이 생사의 구별, 구원과 멸망의 구별 영원한  구별이라는 이 사실을 우리가 느낀다고 해도 빈약합니다. 또 느끼고 또 느끼고,  또 느끼고 자구 새김질해서 느껴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이성비판으로 참  인간을 죽인 것이 사랑이요 앞으로도 죽일 것이 사랑이요 인간을 살린 것이  사랑이요 앞으로 살릴 것이 사랑이라 아무리 이성비판으로 해도 거게는  빈약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이여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능력을 주옵시고 축복을 주옵시고' 이게 능력입니다. 이게 축복입니다.

'주시옵소서 구하라 주시마고 약속을 믿습니다. 주시옵소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자꾸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어제 아침에 어떤 성자가 문둥이를 씻긴 그 사랑을 말하니까 육의 사랑에  감격해서 감화 받은 사람이 전체가 아닐는지, 거기에 그가 사랑할 때에 어떻게  사랑했기에 마지막에 최종적인 반발, 암흑이 왔을 때에 그때에 등불 들고 주를  맞이하니까 주님이 오시니까 해결 다된 그 참사랑으로 그에게 행했던 그  참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지 하나도 없는지 모든 것이 참사랑이  아니면 헛일입니다. 저는 실패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위천 있을 때에 거기에 어떤 정신이상의 거지가 왔습니다. 아주 추울 때인데  너무 불쌍하고 가련하게 돼서 그 데려다가 방에다가 놓고서 음식을 좀 얼마동안  드렸습니다. 이러니까 갑자가 좀 배불리 먹어 그런지 따시게 자서 그런지 왜  한번은 온 전신에 똥을 싸서 전신에다 두루 묻혀서 온 신에 전신에 묻혀놨어.

이것을 '솥에다가 물을 끊여라' 하고서 물을 데워 가지고 밖에 나가 불을 뜨시게  피우고 거게서 지금 위에서 머리서부터 자꾸 물을 끓여다 주면서 부으면서  씻겨서 이래 깨끗하게 씻겨 가지고 방안에 들여놨습니다. 들여놓고 닦아서 옷을  입혀서 방안에 들여다 놓으니까 아! 여간 씻기기는 씻었는데도 냄새는 많이  납니다.

옷을 갈아 입혀서 방에 들여다 놓으니까 나한테 달려들어서 두드리려고 주먹을  가지고 울러 매면서 달려듭니다. 나는 실패한 게 거기에서 실패했습니다.

달려들기 때문에 아마 이것을 이래 두어서는 안되겠고 정신이 조금 이상이 돼  그런 것이니까 '내가 저를 불쌍히 여겨서 사랑함으로 불쌍히 여겨서 이렇게 하는  것이지 저한테 못 이겨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을 가르쳐야  되겠다 해서 달려드는 것을 두 손을 딱 감아지고 볼끈 거머쥐니까  그때는 내가 젊을 때이니까 힘이 세어 볼끈 거머쥐니까 꼼짝 못하고 내가 해석을  해주고 이러니까 '예, 잘못했습니다' 사과를 했어. 그래 손을 놓았어 놓고 대접을  하고 이랬는데 어데 갔다 오니까 어데로 갔는지 가고 없었어, 다시는 만나지를  못하고 찾지를 못했어 그 뒤에 오랜 후에 좀 얼마 후에 소문을 들으니까 그  사람이 어데서 죽었다는 그런 말을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날 시험한 것이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 것이고 또 그 사람으로서는  자기로서는 만족하기 때문에 옛날 어머니에게 어리광하던 거와 같이 자기가  마음대로 혼자 발악할 수 있고 발동할 수 있는 마음대로 기를 펼 수 있는 그런  참 자기 어머니의 품속 같은 그런 자리를 만나서 그 근성으로 한번 활동했을  때에 그때에 내가 두드려 맞았으면 그때에 내가 이 사랑이 모자라서 지금  미워하는 것이니 내가 반성하고 그 성자처럼 눈물 흘리면서 내가 단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두드려 맞았으면 그 사람이 나를 때리고 난 다음에는  만족하니까 가라해도 가지 안 할 것이요 그 자리가 왜 제가 왕 노릇 하는 자리지  제일 좋은 자리지 하니 갈 리가 있겠소? 그러나 마음에 흐뭇해서 속에 있는  마음을 다 기울여서 만족한 지금 자기 왕 노릇 하는 기를 피는 그 일을 하니까  거게서 제재 받는 그 무서움이 있으니까 도망을 쳐버립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진짜 사랑으로 하지를 안하고 껍데기 가짜 사랑으로 그저  사랑한다 하니 육을 사랑하는 것 또 그때는 이렇게 병신을 사랑하는 이것이 자기  주관에 만족을 혹은 그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우선 그 빈민굴에  가 가지고서 자기의 그 기반을 닦는 것처럼 무슨 의로운 사람이라 거룩한  사람이라 그런 것을 마련하기 위한 그거는 착취 중에 착취입니다. 사랑하려는  착취하는 거 착취 중에 착취입니다. 그런 더러운 것들이 섞인 다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지금도 늘 생각하고 '나는 사랑의 가짜 노릇을 한 자이다 가짜다' 그런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 참사랑이 이 사랑에서 나온 이 사랑이 아니면 다  헛일입니다.

저는 여기 부산 와 가지고 그만 영 사람 버렸습니다. 내가 거창 있을 때에는 내가  거기 있어도 문둥이 목사입니다. 우리 집에 자녀들이 '아버지는 이 꼭 문둥  병원에 가신다' 그를 식구들이 다 그렇게 알고있습니다. 또 전국에 문둥이로서는  나 모르는 문둥이가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문둥이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개명 있을 때에는 그 문둥이가 참 그 지방 사람들이 나한테  욕을 할 만치 그렇게 문둥이가 많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알송  알송한 이것이 참 사랑인지 가짜 사랑 허영의 사랑인지 뭐인지를 모르겠어. 지금  생각하면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그 지혜를 하나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말세에 우리에게 제일 영향 많은 하나님의 도리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무서운 제일 독한 독소를 가진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인간이 구원 얻고 사랑으로 인간이 망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역사하고 마귀는 마귀의 가짜 사랑으로 역사해서 인간을 죽이는 말세에 제일 큰  유혹이 가짜 사랑입니다. 이 가짜 사랑은 원죄의 어머니입니다. 이 가짜 사랑은  원죄의 어머니입니다.

왜 해와가 아담을 무엇 때문에 선악과를 권면 했습니까? 아담이 해와가 주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그 선악과를 권할 때에 왜 권함을 받아 가지고 그  선악과를 먹었습니까? 그것이 선악과 먹기 전 가짜 사랑 마귀가 가지고 온 그  사랑을 해와와 아담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원죄의 어머니입니다. 원죄가  거게서 나온 것이요.

이러기에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이것이 중요하지마는 오늘에 이것을 말함은 다  술 취한 사람으로 압니다. 정신병자로 압니다. 내가 라디오 방송에 설교를 종종  듣지만 제일 큰 계명인 사랑에 대해서 하는데 전부 이 죽은 사랑 인간을 죽이는  사랑만 말하지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설교는 내가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말세에 제일 표준 계명이 되는 강령 계명이 되는 노아 방주 때와 같은 이 강령,  표준 계명, 이 강령 계명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나 비슷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외모는 인간의 사랑과 같습니다. 그때 사랑과 다릅니다.

이러니까 껍데기 붙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껍데기 붙어 있는 인간을 접선하기  위해서 그 외각에 가지고 있는 이 껍데기 사랑 이것만 말하고 여기에서 간직하지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증거 한 증거의 결말은 뭐이냐. ○○ 는 성인 중에  성인입니다. 석가모니보다 더 차지한 인간이라 사랑의 인간이라 기독교 박애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인본주의로 화해져서 미국에 있는 도에 그런 사람 아닌  것도 있지마는 전체에 그 나라의 신앙을 말하면 기독교 인본입니다. 기독교  도덕입니다. 기독 교육체적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위선으로, 모든 지성들에게 내 맘 주고 난 다음부터 과학으로  하늘나라 갈 터인데 뭐 예수 믿을 게 뭐 있느냐 그들은 하늘나라를 물질로 되는  물질계 안에 있는가 하늘나라로 보고있습니다. 물질계 외에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 과학 힘이 신령한 힘보다 앞섰어 그 사람의 지식의 주제가 지식의  왕이 하나님의 지식의 왕이 되어있는 것 아니고 인간 지식 과학이 왕이 되어  가지고 있어 그래요.

여러분들 양성원에 공부를 하되 여러분들이 열심히 해서 언제 그것으로서 학자는  못될지라도 남이 말하는 그런 말귀는 알아들을 수 있는 짐작이 될 수 있는 그런  정도로 공부하려고 해도 여러분들이 힘을 기울여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기억할 것 그것을 잘못하면 지식의 주체성으로 지식의 주체로 자기  지식을 왕으로 모시기 쉽습니다. 왕으로 모셨으면 그 왕권을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성령이 와서 바꾸어야 되지 제 힘으로는 못 바꾸는  것입니다. '학벌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 그 말은 그 지식이 다 인간 지식이  주체가 되고 하나님의 지식이 주체가 되지를 못한 주체성을 바꾼 요게서 나온  고장입니다. 그들이 무식한 사람보다 하나님도 더 잘 알고 모든 일도 더 잘  합니다. 열심도 있습니다. 이러나 도마가 문제라 주체성이 문제라 그것 가르치는  분도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가르치는 것이 자기 아는 대로의 내가 이거 뭐 하려고 가르치노?  하나님의 사랑을 이것을 통해서 가르치지 안 하면 나는 사망의 사자다 이걸  가르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 하나님으로 가까워지는 이 결과의 학생이  안되면 나는 사망의 사자입니다. 이걸 명심해야 됩니다.

백지 신학자들이 이거 모르고 이것 생각 안하고 그저 사람들이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인간의 인간 지식 이것만 가르치는 이걸 가지고 자기가 또 그  학보를 맡았으니까 자기가 뭘 열심히 가르치기 위해서 이것을 위주로 하다  보니까 모든 힘을 여기에서다 기울여서 이것을 주체성을 만들려고 하는 이런  미혹에 들어 가지고 다 헛일하고 만다 말이요.

옛날 서기관이 요새 신학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준적으로 인물을 말할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교인이 화 있을진저' 하는 것이 전부 '서기관과 바리새인  교인들 외식 껍데기기 때문에 너희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 교인들의 하는 말을  들어라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하나님이 앉히셨다 그러나 행동은 본받지 말아라'  다 외식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깊이 느껴야 됩니다. 말세에 표준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말을 하든지 여수거래를 하든지 협상을 그 사람  만나서 하든지 만나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사람 만나서 함으로 인해서 그가  주님과 가까워지고 하늘나라에 가까워지고 소원이 더 열중되어지고 열매를 보아  알아 거게 있게 했으면 바로 된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중심의 소근이 그기고  근원이 그기고 자기 사상이 그기고 주위가 그거이기 때문에 맺어지는 열매가 그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정의를 말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갔습니다. 요걸 명심하십시오. 여기에서 대해서는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요.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또 요렇게 대접한다는 것은 신령한 면을 말하는  것이 요 육체의 면을 말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양면이 다 있다 기본  건설구원이라고 기본구원을 근거하지 않는 것 아니다 신령한 면을 말한다고  육체면에 관계없는 그 절단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말세의 표준 계명은 사랑이다. 사랑이 제일 우리에게 요긴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사랑이 중요한 것 만치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될 것이 사랑이다. 이렇게  구원을 내포하고 있는 사랑이 있는 동시에 멸망을 내포하고 있는 사랑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사랑이 있다 이것을 혼돈하면 안 된다. 언제든지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의 꺼풀을 입고 있어서 있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피지면 인간의 꺼풀 사랑은 차차차차 말라져 버리고 없어져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혈육 사랑이 피의 사랑 피의 사랑이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 피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건너갈 수 있는 상대방에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되기  때문에 강에다가 다리를 놓은 것처럼 다리는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건너가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랑이면 충만해지고 그 돌다리 다른  다리 놨던 거는 없어져야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집안  정실, 혈육 정실 자주 만나 사로 되는 동류 정실 이런 정실을 네가 떠나라 이  정실 사랑으로 이것으로써 네가 강령, 사랑 받았지마는 이것을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 되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세에는 눈을 뜰 것은 두 가지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죽이는 사랑,  하나는 살리는 사랑 이것이 어느 사랑 운동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구별하지 안  하면 눈 어두운 사람이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 많이 해야 됩니다. 어제 말 들으니까 미 공보관 여기다가 뭐이라 공보관에다  공보관이라 공보관에 불이 났답니다. 또 왕자극장에 삐라가 많이 뿌렸답니다.

정신을 차려야 돼 무엇 때문에 하나님에게 기도 안 합니까 신호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받아야지 '천인만인이 네 곁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는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 네가 환란 때에 나에게 간구 하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영생함으로 너를 구원하기 때문에 환란으로 인해서 더 네가  존귀해지리라 네가 사랑하고 네가 나를 안즉 너를 궁지에서 구출하고 너를  높이겠다' 기도 많이 해야 됩니다.

기도하고 신랑을 맞이할 사람들이 밤중에 와야 신랑을 맞이하지 밤중 기다리다가  밤중이 안 오니까 그만 꾸벅 꾸벅 졸며 잤어. 같이 졸며 잔 것은 똑같이 기름  예비한 자나 사람은 같은 것인데 미리 예비해 놓은 자 있어. 우리는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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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096 성전건축/ 학개 2장 18절-23절/ 850312화새 선지자 2015.11.06
3095 성전건축/ 학개 2장 18절-19절/ 840905헌당예배 선지자 2015.11.06
3094 성전건축/ 학개 1장 8절-11절/ 850322금야 선지자 2015.11.06
3093 성전건축/ 학개 1장 8절-11절/ 850324주새 선지자 2015.11.06
3092 성전건축/ 학개 2장 4절-9절/ 810930수새 선지자 2015.11.06
3091 성전건축/ 학개 2장 18절-19절/ 810928월새 선지자 2015.11.06
3090 성전건축/ 학개 2장 18절-19절/ 850311월새 선지자 2015.11.06
3089 성전건축/ 학개 2장 4절-9절/ 810929화새 선지자 2015.11.06
3088 성전건축/ 학개 2장 18절-19절/ 890305주후 선지자 2015.11.06
3087 성전건축/ 요한계시록 17장 9절-18절/ 890208수새 선지자 2015.11.06
3086 성전건축 세 가지/ 학개 2장 18절-23절/ 820328주후 선지자 2015.11.06
3085 성전건축 안하는 신자/ 학개 1장 2절-11절/ 1985. 3. 10.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1.06
3084 성전건축(광안동교회에서)/ 학개 2장 15절-23절/ 861130주전 선지자 2015.11.06
3083 성전건축-하나님을 모셔라/ 학개서 2장 1절-9절/ 810920주전 선지자 2015.11.06
» 성전건축과 축복/ 마태복음 25:35절-40절/ 820319금새 선지자 2015.11.06
3081 성전건축과 화와 복/ 학개 2장 20절-23절/ 820606주전 선지자 2015.11.06
3080 성전건축-세가지 할 일/ 학개서 2장 9절/ 810926토새 선지자 2015.11.06
3079 성전건축의 결과 / 학개 2장 20절-23절/ 811008목새 선지자 2015.11.06
3078 성전건축-피난길/ 학개서 2장 7절-9절/ 810925금야 선지자 2015.11.06
3077 성전건축-하나님을 모셔라/ 학개서 2장 4절-9절/ 810921월새 선지자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