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09:26
성전건축
1989. 2. 8. 수새벽
본문: 요한계시록 17장 9절∼18절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뿔은 열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또 네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여게 우리가 조심할 점은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한 뜻을 가지고 하나가 되더라 그들이 모든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모든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러면 이 짐승은 세상을 상징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뭐 일곱 머리로 열 뿔로 이렇게 상징한 것은 뿔은 힘을 가리키는 것이고 또 머리는 사상으로나 또 정치로나 도덕으로나 무슨 과학으로나 예술로나 모든 그런 것들의 머리된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게 머리라고 하는 것은 종교 중에도 종교의 근원 또 철학이면 철학의 근원, 제일 권세를 가진, 절정이 되어 있는 그런 사상 주장 권세 모든 그 영광 그런 것들의 으뜸되는 것을 가리켜서 머리로 이렇게 상징했습니다.
초기에는 그런 것들이 각각 달라 가지고 제대로 세력을 잡고 있었지마는 이제 이런 것들이 전부 다 합해지게 된다. 종교와 정치는 달랐으나 종교와 정치가 같아지고, 또 과학과 철학은 달랐으나 과학과 철학이 같아지고, 또 이런 저런 모든 철학과 예술이 달랐으나 그런 것들이 하나되고, 어쨌든지 여게 일곱 머리라 하는 것은 이 산으로 말하면 쟤일 절정되는 만당과 같은 그런 으뜸되는 그런 것들을 간추려서 이렇게 말을 했고 열 뿔은 힘을 가리켜 말했는데 그 힘도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종류들과 모든 세력을 가진 으뜸된 거 그런 것들이 전부 다 합해 가지고 짐승에게 주더라 그말은 다 세상으로 하나가 되더라. 그러면 세상도 여러 쪼갱이가 돼 가지고 있고 여러 종류 부분이 돼 가지고 있는데 차차 차차 이런 것들이 다 합해 가지고, 합해져 가지고 하나가 되더라. 그러면 얼마나 하나가 되느냐? 어린 양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 이들을 빼놓고 나서는 전부 하나가 되더라. 그러면 하나가 되면은 이종교들도 다 하나가 되겠고 기독교 가운데서도 진실한 자들 빼놓고 나서는 전부 이들과 하나가 되더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하는 그 말은 이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근본 그는 주권자시요 주재자시요 창조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에게 그렇게 뭐 피동되거나 침해를 받거나 아니하지마는 그말은 그 모든 것을 다 그분은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에 예수교의 근본의 그 힘은, 예수교의 근본의 그 능력은 쇠퇴하지 안하고 그 능력은 요동치 안하고 그 능력은 완전 불변으로 이렇게 굳게 서 가지고 있다 하는 그것은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에게 위로해 주시고 또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에게 담대함을 가지고 요동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위로해 주시는 그것을 여게 표시해서 그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기 때문에 그는 이기실 터라. 그러면 우리 기독자들의 근본이시며 또 원천이시며 우리 기독교의 뿌럭지가 되는, 기초가 되는 것은 든든하다 요동치 않는다 그러면 거게 만주의 주라 그말은 그 모든 일곱 머리나 열 뿔이나 또 짐승이나 그것의 소유권자가 누군가? 그것을 가지고 소유하고 있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가? 그게 다 어린 양의 것이라 말입니다. 그게 다 어린 양의 것이요 그것을 가리켜서, 만주의 주시라 하는 건 그 모든 것의 주인이요 또 주격이요 그 모든 것을 다 주장하고 있는 어린 양이요, 또 만왕의 왕이라 하는 것은 그 일곱 머리나 열 뿔이나 짐승이나 그들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그 모든 것이 다 만왕의 왕 그분의 통치에 따라서 피동되고 있는 것이고 그분이 모든 것을 주장하고 계신다 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이기실 터이요 하는 것은 어린 양 기독교의 뿌럭지는 그는 요동치 않고 든든하다. 내나 그분의 작용으로 하고 있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이 짐승 또 일곱 머리 열 뿔 이것은 여러분들이 자꾸 이렇게 생각하고 거게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지고 늘 계속해서 이렇게 뜻을 두고서 그게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차차 차차 알려 줘서 세밀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늘 자기가 거게 대해서 이 도를 무시하지 안하고 '앞으로 이 온 세계가 다 하나된다' 그 하나되는 데 대해서 여러 상징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래서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서 다 왕래가 이렇게 하나되더라, 또 빨리 왕래하더라 하는 그런 것도 이제 그 모든 교통도 또 통신도 모든 전파도 그런 것이 다 빨라서 아주 세계가 조부단한 한 손바닥같이 돼진다 그렇게 여러 모양으로 말했는데, 이렇게 이 세계 우주가 점점 합해져서 하나된다 하는 이것을 자꾸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생각을 가지게 되면은 우리의 눈이 그 면에 대해서 밝아집니다.
밝아져서 이 온 세계가, 온 세세가 두 쪼가리라 하는 것으로 자기가 자꾸 보여지게 됩니다. 온 세계가 두 속이라, 그러면 거게서 우리가 셋 넷이라 이라다 보면은 미혹에 빠져 가지고 넘어집니다. 둘로만 보면 좋습니다. 어린 양편과 이 짐승편 이 두 가지로 보면 '저거는 어린 양에게 속했나 저거는 짐승에게 속했나? '저거는 어린 양에게 속해 가지고 있으나 짐승으로 짐승에게 끌려가기가 쉽겠다.
저거는 짐승에게 속해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 앞으로는 저거는 어린 양을 향해서 가고 있다.' 이래서 이 모든 세계에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모든 사람들의 그 심리적으로나 이 모든 것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은 두 쪼가리다 하는 여게 대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어리기는 어리지마는, 어리기는 어리지마는 그래도 양의 편에 속했다, 저거는 아주 유명해서 아주 장성하기는 장성했지마는 저거는 일곱 머리와 열 뿔과 이제 짐승으로 하나된 짐승에게 속해 있다. 저 설교는 짐승에 속해 있다 저 설교는 어린 양에 속해 있다. 저 지금 운동은 짐승 운동이다 저거는 어린 양 운동이다 하는 이것을 어쨌든지 둘로 판가름을 갈라서 자기가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물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은 자유하는 것 같지마는 차차 차차 그 세력이 좁혀 들게 되면은 나중에 가 보면 그 안에 자기는 싸여 가지고 지금 자유했지마는 그물을 들면은 다 들려 올라가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그것을 우리들이 많이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고대가에 '먼 하늘에 이상한 구름만 떠도 저거 주님이 오실란가' 이래 가지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가 합해질 때에 합해지는 것을 좋다고 해서 자꾸 지금 합하는 운동만 하는 그런 사상과 교훈과 주장들이 있고 또 합하는 운동에 자꾸 거게서 구별해서, 이 좁아지라 하는 것이 내나 좁은 문이라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좁은 문이라 하는 것은 자기에게로 좁아져야 됩니다. 자기 껍데기 말만 하던 것이 행동으로 들어가 좁아지고, 그게 행동뿐인 것이 마음으로 좁아지고 양심으로 좁아지고 영감으로 좁아지고 예수님의 피 속에 들어가야 이제 피난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진리도 이는 성경 진리에 예를 들면은 열 조건을 그것을 자기는 무시하다가 이제는 열 조건 무시한 것이 아홉 조건 한 조건만 무시하고 나중에는 한 조건도 무시가 없이 성경과 일치되는 거, 성경과 일치되는 그것을 좁아짐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또 자기는 소망도 자꾸 좁아져야 쇰니다. 소망도 좁아져야 되고 의지하는 것도 좁아져야 되고 믿는 것도 좁아져야 되고 자꾸 평가도 자꾸 좁아져야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자꾸 이렇게 말한 것인데 거룩이라는 그 단어의 뜻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석하든지 저는 그렇게 늘 해석해 나옵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어떤게 거룩이냐? 거룩이라 하는 것은 참은 하나인데 하나 그게 좁은 문인데, 참은 하나인데 하나를 향하여 찾아가고 있는, 수많은 지저분한 것에서 아주 거짓된 모든 잡된 것이 지저분하게 꽉 찬 거기에 참은 하나만이 들어 있는데 거게서 모든 것을 다 구별하고 구별해서 다 그걸 제거하고 참인 하나에게 도달한, 그러면 모든 추잡한, 추잡, 더럽고 잡된 거 추잡한 거기에서 하나인 참을 향하여 찾아가는 그 과정과 완전히 찾아서 달성한 그것을 다 합해서 그 하는 말이 거룩이라 한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찾아 놓은 것만 말한 것은 그것은 진실이라고 한다 그렇게 저는 단어를, 단어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 모든 것이 합하여지는 것을 보고 자기는 그 합하여지는 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합하여지는 데에서 점점 그 어린 양으로 가까이 향하여 가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합하여지는데 합해지니까 좋다고 합해지는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자꾸 어린 양 따라가는 사람 있고 뭐 사람이 많지마는 약하고 강하고 어리고 장성하던간에 암만 장성해도 '저거는 짐승의 대가리다.
아무리 억세도 짐승의 대가리다. 저거는 대부흥사라도 짐승의 대가리다. 저거는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대복음 운동의 부흥사로 이렇게 돼 가지고 있어도 그거는 짐승의 머리지 그거는 어린 양은 아니다. 조거는 아무리 약하고 작아도 조거는 어린 양에게 속한 것이라' 이렇게 구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사이도 지금 이상하게도 한국이 이거 뭐 아무것도 아닌 건데도 팔팔 올림픽을 할 때 그때에 이 세계 뭐 올림픽이 많이 지나 갔지마는 이 한국에서 올림픽한 이거와 유가 같지 않습니다. 이것으로서는 세계가 완전히,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계가 달라져서 이 동양이나 서양이나, 뭐 여기 한 것이 뭐 그럴까마는 동서양 온 세계가 사람들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이래서 그 모두가 다 경계선이 없고 전부가 이제 화합입니다. 화합주의로서 이렇게 아주 뜨겁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 한번 뻐뜩 보니까 호주같은 데야 거기야 그렇지만 호주도 과거에 서로 그 경계를 뒀던 그 경계선이 다 풀려졌습니다. 경계선이 풀려지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이도 경계선이 풀려지고 자꾸 이라니까 이렇게 풀려지는데 오늘 기독교는 지금 뭐 이럴 게 있나 이해서 문선명씨가 지금 그가 처음에는 기독교 통일을 말하다가 이제는 종교 통일을 말하다가 종교 통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 그분은 우주의 통일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고 있는데 그분이 자꾸 주름 잡아 가는 것은 이 현재에 어데서든지 정권을 잡아, 정권을 손잡아 필요하면 그거 잡고 그 무슨 사상을 손잡아 필요하면 사상을 잡고 이 통신을 또 잡아저 필요하면 하고 이래 가지고 점점 그 합치 운동이 되는데 그것이 다 이래 가지고 지금은 또 그것은 지금 공산주의와는 반대되고 민주주의는 합해지는 것 같지만 그것이 한 과정에 있어서 한 수단 전술법으로 그래 하는 것이지 내가 그 종자가 내나 짐승 종자요 그것이 일곱 뿔 종자요 열 머리 종자입니다.
이래서 자꾸 이렇게 합해져 나가니까 이 기독교에서도 지금, '지금은 화평 시대다 지금은 화평시대다 이래 가지고 자꾸 그것을 지금 힘을 써 나가는 사람,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주의냐? 저 사람은 좁은 길 가고 있는 사람이냐 넓은 길 가고 있는 사람이냐? 지금 이거 모두 합해지는 데에 저 사람은 지금 짐승으로 더불어 합하는 데 가까우냐 어린 양으로 더불어 합해지는 데 가까우냐? 어린 양으로 합해지는 데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어린 양이 만나지지 그리 안 하면 못 만나집니다. 이래 가지고 모두 다 이 타협을 서로 '이거 저거 어쨌든지 타협을 하자 뭐 그럴 게 뭐 있나? 어찌 됐든간에 너 양보하고 나 양보해서 타협하자 자꾸 타협해서 화합주의로 이렇게 나가는, 작아도 성질이 그렇고 커도 성질이 그렇고 본질과 본성들이 고렇고 그 방편들이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되는 데에 아주 좋은 세월 났다고 지금 화합 역사에 가담해 가지고 그것을 자기는 바람을 타고 그것을, 배가 물 타 가지고 가고 이건 비행기가 공기 타 가지고 가듯이 그걸 바람을 타 가지고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 지금 동서양에 돌아다니면서 지금 복음 운동하고 지금 역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거게서 자꾸 지금 좁아져 가지고 가는 것 이것을 잘못 해석하면 배타주의라 이렇게 하기 쉽습니다. 배타주의가 아니고 배타주의가, 버리는 배타주의가 아니고 좁은 문으로 가서 하나인 그 어린 양을 자꾸 향해서 찾아가서 어린 양으로 더불어 하나될라고 노력하는 그 노력입니다.
뭘 배타하는 거, 뭐 다른 거, 자기와 다른 건 다 배척하는 게 아니고 그게 자기도 배척하고 모든 거 배척해서 어린 양을 향해서 자꾸 찾아갈라고 지금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래서 앞으로는 온 세계는 둘로 갈라질 터인데, 지금도 갈라져 있습니다. 전부는 세상은 다 하나되었었는데 예수님께서 도전하셔 가지고 차차 차차 이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자꾸 점령해 나와 가지고 지금 점령해서 속으로는, 하나됐던 것이 마귀 것이 자꾸 점령해서 이래 나오고 있는데 외부에는 조금썩 점령해 나오고 속으로는 완전히 예수님이 완전히 점령을 했고 이래서 과거에는 예수님과 이 사탄이 서로 대립적이 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립적이 돼 가지고 있어서 사탄이 성전 꼭대기 가자 하면 꼭대기 따라 가야 퍼고 또 높은 산에 올라가자 하면 높은 살에 올라가야 되고 이렇게 그래서 항상 대립적이었습니다. 그거는 그렇게 따라간 것은 예수님은 지금 첫 아담이 패전한 것을 이제는 승리한 그 사탄에게 도전하는 것이니까 그를 따라가서 도전이 되지 따라가지 안하면 도전 안 되기 때문에 도전하기 위해서 따라가셔 가지고 이렇게 완전히 승리를 하기는 했습니다. 속에 알맹이는 승리를 해서 예수님께서 완전히 점령을 했습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라 그분이 모든 걸 점령해서 사탄도 지금 그분에게 통치를 받고 그분이 사탄도 주장하고 있어서 완전히 이 그리스도로 다 통일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이 돼 가지고 있으나 외부에는 또 이 사탄으로 통일되고 이래 가지고 다만 거게서 작용에 역사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어린 양에게 속한 자, 여게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고, 빼심을 얻는 것은 그것은 부르심은 먼저 말하고 빼심은 뒤에 말했으니까 잘못 오해하기 쉬운데 빼심이라 하는 것은 영원 전 택함을 말하고 부르심은 예수 믿기 시작한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데 여게서 이제 진실한 자들만 이긴다. 진실한 자들만 이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진실은 좀 전에 말한 거와 같이 거룩과 진실은 다릅니다. 거룩이라 하는 것은 지저분한 거와 연결해 가지고 거기서 자꾸 이렇게. 선별해 가지고 진실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거룩이지마는 진실이라 하는 것은 이제 완전히 구별돼 가지고 잡것이 섞이지 않은 그 하나만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 진실입니다. 진실은 뭐이 진실인가? 진실은, 진실의 껍데기는 말씀대로의 지식, 말씀대로의 행위, 말씀대로의 사람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 있는 것이 그것이 진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껍데기는, 성경대로의 지식만 가지고 성경대로의 행위만 인정하고 성경대로의 사람 요것을 자꾸 찾아나가는 요것을 과정을 말하는 것언데 요렇게 돼지면 나중에 그게 뭣 되느냐 하면은 그것이 피조물이면서, 껍데기는 피조물이지마는 속에는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피 하나님을 향한 소망 요것만 가지고, 우리가 중생된 그 사람이,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자기의 이 육으로 돼 있는 심신을 점령하는 것을 가리켜 말하니까 우리가 속에 종자적으로서는 진실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이 진실을 자꾸 화대시키고 진실을 충만시키고 장성시키는, 이래서 그것만이 이긴다. 그러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다 이기는데 어떤 사람이 이기느냐?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이것도 이 세상에서 시험인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영은 다 이깁니다. 영은 다 이기고, 영은 다 이기고 영혼은 많이 이긴 자도 있고 적게 이긴 자도 있고, 이긴 영혼 또 있고 진 영혼도 있고, 또 고기덩어리의 이 모든 고기덩어리도 이긴 것도 있고 진 것도 있고 이래서 그 진 것들은 그러나 형체는, 형체는 다 이긴 것이 됩니다. 형체도 이긴 게 되고 영도 이겼고 그 심신의 형체는 이깁니다. 형체 그것은 주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형체는 이기고 이제 그 형체는 시험이 없어. 형체는 시험 없고 다만 그 형체가 자기 정력을 가지고 역사하는 그 정력 역사 그거는 승패가 생겨집니다.
그러면 정력 역사가 뭣을 만드느냐? 자기의 심신의 정력, 그 마음의 정신과 힘 또 자기의 몸의 정력, 이 정력 그것이 현실을 통해서는 전투합니다. 그러면 이 현실이라 하는 현실은 전부 전투라 그렇게 우리가 보면 됩니다. 우리 현실이라는 것은 다 전투라. 이 현실은 우리가 전투하는 그것이 전투인데, 싸우는 것이 전투인데 현실은 전투요 또 다른 말로 하면은 현실은 다 시험이요 또 다른 말로 하면은 현실은 다 우리의 양식이라 밥이라 그러면 여게서 먹고 죽는 자도 있고, 죽을 거 먹어서 죽는 자도 있고 사는 자도 있고 여게 승리자도 있고 패전자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정력은 그것이 현실을 통해서 무엇이 되느냐? 그것ㅇ아 썩어진 것이 되든지 썩지 안할 것이 되든지 두 가지로 되어 진다. 그러면 썩어진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진 거 그건 다 썩어진 것이니까 썩어진 것 되는 것도 있고 썩지 안할 것이 되는 것도 있다. 정력은 반드시 그것이 현실을 통해서 기능이 돼져 버린다. 현실을 통해서 기능이 돼진다. 기능이 돼지는데 그 기능은 죽을 기능도 있고 영생하는 기능도 있고 그 두 가지로 되어진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 몸에서 정력이 나갔지마는 그 정력이 나가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하나가 돼 가지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배반했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과는 상관이 없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 산 것이고 나가 가지고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살았으면 그 정력은 예수님의 대속을 버리지 안하고 입고 살았기 때문에 그것은 영생하는 그 기능이 되고 만다.
그래서 동기와 목적과 그 방편이, 동기가 좋아도 방편이 나빠도 안 되고 또 동기와 방편은 좋았는데도 목적인 그 결과가 나빠도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활할 때에는 중생된 영은 뭐 부활할 것 없이 그대로고 또 우리의 이 몸뚱이 이 심신의 형체는 심신의 이 형체, 이 심신의 형체는 죄 지은 도구로 암만 쓰이더란대도 이 심신의 형체는 다 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대속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심신의 이 형체는 대속을 했지마는 죄를 범하는 그 기능은 예수님이 대속하지 안했습니다. 이 손으로 내가 죄를 지었으면 이 손으로 죄 지은 이 손은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했지마는 이 손이 이 손이 죄짓는 기능 죄지어 놓은 거 그것은 대속하지 안했고 죄짓는 기능 그거는 대속하지를 안하고 요 자체만 대속했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자체 이 본체와 기능을 분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 본체와 기능을 분리해서 본체는 대속했지마는 기능은 예수님이 대속 하시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싸움이 있는데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이길 것이고 진실한 자들은 이긴다 하는 이것이 우리가 신앙 생활을 평소에 이렇게 승리해도 그 마지막에 그라면 평소에 이렇게 승리했지마는 최종적으로 패전하면은 어찌 되느냐? 승리한 그거는 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런 것은 이제 우리가 성경에 있는 대로 해석해서 그 사람이 아무리 일차 이차 이렇게 이겼다 할지라도 최종 패전에서만 최종 패전한 것이 된다 또 그렇게도 해석할 수가 있고 또 그 사람이 편씨름 할 때에 저는 졌지마는 머리가 이겼으니까 이기게 된다.
그런 말로 해석할 수가 있는데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행한 대로 갚는다고 이래 거석하니까 자꾸 우리는 요행심이나 다행을 가지고 널리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성경 가운대에서 가장 정죄찬 그 점으로 가 가지고 자꾸 우리는 거게 준해 가지고 스스로 자기를 심판을 해서 그리스도의 심판에 이르기 전에 이 세상에서 스스로 자신을 심판해 가지고 심판에 걸릴 것이 없도록 그렇게 하는 데까지는 완벽한 준비를 하는 것이 그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이 세상으로 더불어 타협해 가지고 세상과 하나되는 그게 있고, 세상과 자꾸, 세상과 하나돼 나가는 것이 있고 세상과 가까와지는 것이 있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자꾸 가까와지는 이 두 길이 있으니까 세상과 가까와지는 그런 길은 우선은 편하고 좋지마는 그 길을 가지 말고 점점 거게서 점점 어린 양으로 가까와지는, 어린 양으로 가까와지는 것은 성경 말씀 이 진리와 가까와지는 말씀과 가까와지는 것이 어린 양과 가까와지는 것이요 점점 영감과 가까워지는 게 가까워지는 것이요 그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대속을 소개하고 안내자입니다. 그러면 이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 뭐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도해서 대속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입게 하는 것이오.
법적으로는 입고 있지마는 그 실상으로서는 우리가 입느냐 벗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것이 우리의 그 현실입니다. 그래 현실은 전부 시험치르는 거라. 그러면 현실에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느냐 벗었느냐 하는 것이 결정지워지는 것이 현실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이 이렇게 자꾸 움직이고 뭐 살기 좋고 먹기 좋고 이렇게 좋고 또 세상에서 이 모두 다 요새는 아주 출국 또 외국에 왕래하는 게 편리해서 내가 보니까 어떤 사람은 뭐 사십 몇 년 만에 지금 그 이북에 가서 무슨 형제를 만났다 누구를 만났다 거게서 그 뭐 O 뭣인가 그 사람도 거세 가 가지고 열흘 동안에 거기서 같이 살고 지내고 왔다고 이랬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니까 좋은 시대가 왔다 이래 가지고, 그 분들은 다 그뭐 내나 그것이기 때문에 그래 살지마는 우리는 거게서 가장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이 최종 우리의 일생 신앙 생애의 판결이 나는 것이 여게 앞으로 지금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면을 우리는 주시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총공회서도 우리가 교역자회 때에 모여 가지고 말을 발언하는 걸 이런 걸 봐도 '저는 이제 그 짐승을 향하는 게 아닌가? 어린 양을 향하는 건가?' 어린 양을 향하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보다 더 참되고 보다 더 옳고 이제 성경 말씀을 하나만 지키다 아야 둘 지키자. 성경 말씀을 자꾸 많이 지켜 갈수록이 그게 좁아지는 것이오. 하나만 지키는 게 아니라. 그러면 그 하나 빠지고 둘 빠지고 자꾸 그게 넓은 것입니다. 그래서 타협은 넓어지는 것이요 자꾸 거룩은 자꾸 좁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이 세상으로 더불어 가까와지느냐 하나님으로 더불어 가까와지느냐 하는 이것이 절정에 도달하는 이것이 불심판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한, 하나님이 요거 해라 조거 해라 붙이라 하는 그게 전부 홍수를 방어하는 그거 그것 만들었습니다. 요라면 홍수 요 구멍에는 요거 뭐 막아라 조거 막아라 자꾸 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 주신 이 말씀은 예수화되는 것인데 예수 화돼지니까 그 불이 하나님의 말씀의 불이라 이렇게 말씀했어. 말씀의 불로서 이래 오니까 예수님이 지금은 참 자비의 예수님으로 어린 양의 예수님으로 이렇게 왔지마는 앞으로는 그분이 두려운 심판주로 냉정스러운 심판주로 오는데 빛이 오니까 그분과 동질 아닌 것은 다 타 버립니다. 그 불이 내나 진리의 불이오. 그 불이 예수님의 본질 본성의 불이오.
하나님의 본질 본성의 불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니라 하는 거 오늘 그분과 자꾸 동질 동성이 되어지는 그것이 하나 동질 동성이 되어지면은 된 거는 불이 상관 없어. 그거는 동질 동성이 되니까 불이 올수록 좋아. 불이 뭐이요? 불이 어린 양의 외형이 불이요 내용은 어린 양이기 때문에 이제 반갑고 기쁘고 하나기 때문에 좋아하지마는 그와 배치되는 것은 다 그거는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OOO권찰님 구역에 초상이 났는데 아홉시까지 오면은 참석할 수 있습니다. 또 OOO권찰님 구역에 초상이 났는데 여덟시 반까지 오시면, 교회로 오시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자꾸 지금 요새는 뭐 일주간에 둘 혹 하나 이래 자꾸 이래 나는데 결혼보다 초상이 지금 많은 것 같아요. 이래서 우리 김해 묘지에 지금 뭐 그때까지 사용을 할란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거 과수원을 옆에 그거를 팔라 하는데 과수원을 우리가 사 가지고 합할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꾸 이래 떠나는 사람들은 잘 우리가 간호도 하고 깨우쳐 주기도 하고 떠날 때는 자꾸 성경 읽어 줘요. 성경 읽어 주고 찬송해 주면 그 마귀란 놈이 시험할 때에 그때 다문 얼마라도 이 심신 기능이 조그매라도 구원을 얻어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 심신이 기능이 다 패전해 버렸으면 그거는 우리가 안 된다고 암만 자기가 뭐 정절을 지켜도 마지막에 정절 볏겨서 간부하고 음행 범해서 범한 자지 그거 뭐 다른 게 없어. 그거 또 성경에 말하기를 깨끗한 거는 그 하나만 깨끗하지마는 더러운 것은 하나 더러우면 모든 게 더러워진다 이랬지.
또 계명을 지키다가는 한 계명에 거치면 모든 계명을 범한 것이라 이 성구를 자꾸 낙관시해서 좋게만 해석할 게 아니라 완벽하게, 암만 성경에 뭐라 한다 해도 문제 없다 하는 완벽한 그 준비를 우리가 하는 것이 그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을 자꾸 널펑하게 세상하고 타협시키는 것은 나를 죽이는 원수라 하는 그것을 알고 점점, 너 이거 틀렸다 이거 고쳐라 고쳐라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만드는 것이 그것이 어린 양의 인도라는 것을 우리가 느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반사 선생님들이 꼭 주의해서 공과 외울 것과 이번에는 이 공과를 내가 오늘 할란지 모르겠습니다. 그거 그만 요번에 교역자회 때문에 그래 됐습니다.
그라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또 자기에게 소속시켜 준 양떼는 꼭 마음에 품어 가지고 늘 생각으로 길러야 되고 하나님 앞에 그저 늘 무시로 간구하는 그 기도로 기르는 것이 남편되신 주님하고 함께 낳은 그 자녀를 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낳은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낳은 그 자녀를 주님이 택한 자녀 그것을 우리가 지금 우리 마음에다 기르는 것이오. 이래서 교회는 신부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라고 지난 한 주간에는 산기도 간 사람이 구백삼십삼 명 또 한 달 동안에는 천오백사십 명. 어짜든지 우리가 지금은 참 자꾸 세상이 이러니까 좋다고 마음 놓고 이럴 게 아니고 노아 때와 인자의 때가 같다. 그러면 그때도 노아의 홍수로써 멸하는 그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멸망할 걸 깨닫지 못하다가 멸망했다, 그와같다 하기 때문에 우리도 여기 대해서 늘 깨어서 조심해야 하지 낙관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녜,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