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

 

1985. 3.  11. 월새

 

본문 : 학2:18-19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이십 사일부터 추억하라 그 말은, 추억하라 말은 과거를 미루어 한번 기억해 보라  그 말입니다. 추억이라 말은, 현재를 추억하라고 하는 그런 말은 안합니다. 앞으로  미래를 추억이라는 말도 쓰지 않습니다. 추억이라 말은 미룰 추(追)자, 기억  억(憶)자, 그러니까, 이십 사일 이전 일을 한번 네가 세밀히, 이십 사일 이전 하루  전의 일, 한달 전의 일, 일 년 전의 일, 십 년 전의 일 어쩌든지 이십 사일 이전  일을 네가 한번 추억을 해 봐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할 때에 그저 아무나따나 할라고만 생각지 말고, 믿는 사람들이  '그만 과거는 과거로 청산해 버리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언제든지 자기는 과거를 추억해 가지고 과거를 현재에서  후회 없이 바로 정리를 해야 됩니다. 과거를 과거로 그대로 내버려두고 보면 과거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우리를 영원히 수치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를 추억이라, 추억하기는 오늘 하는 것입니다, 아무 때라도,  과거를 뭐 할라고 오늘 지금 미루어서 하루 전의 일, 한 달 전의 일, 일 년 전의  일, 십년 전의 일 그렇게 미루어 생각하겠습니까? 과거를 미루어 생각하는 그  추억이 깊으면 깊을수록, 멀면 멀수록 사람이 신앙에 후회 없는 준비를 할  사람입니다.

 다윗 왕은 어디까지 추억했느냐 하면 자꾸, '과거에 내가 양을 먹일 때는  어땠는데, 또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에는 나를 어떻게 형제들 중에도 멸시를  했는데, 내가 또 어머니의 품 속에서 자랄 때도 생각해 보니까 자랄 때에도 역연  죄악 가운데에서 자랐고, 아,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도 죄악 가운데 있었다'  거기까지 추억을 깊이 하고 세밀히 하고 정확히 해서 그것을 다시없는 오늘이라는  오늘에 거기 대해서 하나님 앞에 고해서 사함 받을 것은 사함 받고 또 뉘우쳐  후회하여 오늘에 다시는 그런 일을 고쳐서 하지 안할 일은 하지 안하고 이렇게  추억을 한 그것 때문에 다윗이 성자입니다.

 다윗이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후에도 실수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것을 낱낱이 추억하고 '내가 과거에는 이럴 때는 이렇게 내가 실수를 했다.

저런 환경을 만날 때에는 내가 저렇게 실수를 했다' 과거를 추억할 때에 남이  자기에게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논평을 하는 것보다도 누구보다도 자기가 자기를 잘  알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과거를 알아서 이렇게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죽기  전에 정리하고 정돈을 하고 청산을 할라고 하니까 자기는 과거의 잘못됨의 그런  사람이 자꾸 고쳐지고 과거의 옳았던 그것은 따라서 옳은 사람이 돼지고. 이러니까,  과거를 추억하는 데에서 사람도 고쳐지고 만들어지고 또 겸손도 해지고 또 벌로  날뛰지 않는 조심하는 사람도 돼지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도 그저 멸시하거나  교만하거나 그렇게 벌로 덤비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사람도 많이 죽였고, 왕 되기 전에도,  왕으로 정권을 잡기 전에도 그런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고치니까  하나님께서 '이제는 내게 합당한 사람을 만났으니 곧 다윗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사람이 과거를  생각지 안하고 제 과거를 모르고 날뛰는 그런 사람하고는 하나님도 상대하기가  어렵고 사람도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는 다 잊어 버려 버리고 오늘 당장 제가  행동하는 그 사람뿐인 줄로 알고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 행동이 실수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거를, 이십 사일부터 과거를 추억해 봐라. 그때는 너희 창고에 과목에도 저런  과목에도 과실이 하나도 열지 안하고 다 떨어져 버리고 모든 면이 다 너희들에게는  흉년이 들어서 참 그 생활이 심히 비참하고 곤경하게 된 것을 너희들이 생각해라.

그러나, 성전 지대를, 이십 사일 오늘 성전 지대를 쌓는데 성전 지대를 쌓는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들에게 복을 줄 터이니까 땅에서도 너희들에게 은혜를 입힐  것이요 공중에서도 공기도 분위기도 모든 인간 사회에서도 너에게 전부가 다  협조하고 복을 주는 그런 일이 되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다 복을 받아서  형통해지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네가 과거보다 성전 지대를 쌓을라고 하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성전이 될라고  하니까 말한 마디도 행동 하나도 모두가 다 주의해서 하니까 일이 마음대로 안 되고  또 진행도 잘 안 되고 만고에 안 된거 같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하던  사람이 그런 거 다 체면 차리고 예의 차리고 양심 지키고 정직하게 이렇게  해라하니까 이거는 수족을 동여 놓은 거와 마찬가지로 만 가지가 다 안 될 수밖에  없지만 어쩐지 잘됩니다. 네가 무슨 죄 안 짓고 할라 하니까?, 하는 일은 능률이 안  올라가고 네가 막혀지는 일 그런 일이 많지만 내가 복을 줌으로써 내가 주는 복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을 네가 보리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것을 잘 추억하여 보면 알 겁니다. 내가 성전을 건축할라고  작정을 하니까 벌써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역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학개 선지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하니까 그만 총독도 제사장도 백성들도 모두 다 '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대로 해야 되지, 과연 우리 신세가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이 이런 연고인 것을 학개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니 이대로 하자' 그래 가지고  온 백성들이 다 '그러면, 우리가 전심 전력 기울여 가지고, 과거에는 사교 생활,  인간들을 사귀어 가지고 뭐해 볼라는 사교 생활, 또 이런 수단 저런 방법을 쓰던  그런 생활, 꾀쓰던 생활, 또 공연히 속에는 하나도 없는 것이 많이 있는 척으로  배짱을 내는 그런 불량한 생활, 부정한 생활 이런 생활을 하던 것을 이제 버리고  성전 짓기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자' 하니까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에게, '학개 선지,  내가 너를 보내서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하니까 그들이 이렇게 듣고 두려워하면서  이제부터 성전을 지을라고 시작하니 내 마음이 기쁘다. 내가 이로 인해서 내가  영광을 받겠다.'  영광 받겠다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사람 보기에 놀랄 만침 뛰어나게 모든  것이 돼지니까 '참 하나님 계시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참으로  계시는구나' 해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너희들이 성전을 건축함으로 모든 일이  잘됨을 인해서, 너희 사람도 변해지지, 행위도 변해지지. 또 너희 형편도 변해지지,  경제면으로나 사회면으로나 출세면으로나 모든 면이 변해지니까 '아, 그 사람들이  그렇게 모든 것을 참 사람답게 사는 그것도 놀랠 만하고, 과거에는 그렇게 그게  못되게 꾀쓰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안하고 속이지 안하면 일이 안 될 줄 알고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정직하게 하고 하는 데에도 모든 일이 자꾸 성공이 되고 형통하고  부요하게 돼지니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바르게 옳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요 이렇게 옳게 바르게 살려고 할 때에 그때에  축복을 해 주셔서 모든 일이 잘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이로구나. 이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을 내가 이제 받게 됐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밑에 내려다 보면. 20절에 보면 "그 달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러니까, 그들이 다 불의를 가지고 악의 세력을 가지고 대항하니까 이스라엘도  악의 세력을 가지고 대항할라고 '네가 나 한테 이러니 내가, 악을 가지고 마구  덤비는데 내가 여기서 조심하고 계명 지킨다고 하다가는 전멸이 될 터이니까 그  악한 자를 악으로 가지고 나도 대항을 해야 되겠고' 이라니까 너도 골 빠지고, 암만  그래 봐야 너는 패전만 하고 비참하게 됐는데, 이제는 네가 그렇게 세상이 악한 그  악의 세력을 악으로 대항하지 안하고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옳게  바르게 살라고 이라니까 사람 보기에는 세상에서 생존 경쟁을 못하는 사람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안 될 거 같은데 이제는 내가 들어서 너희의 대적 모든 악의 세력을 다  깨트릴 것이고 엎드러뜨릴 것이요. 나라도 열방도 군대의 세력도 다 엎드러뜨리되  네가 그들을 손을 대 가지고 절단낼 게 아니라, 너는 죄 짓지 안하고 손도 대지  안하고 저거 칼에 저거가 엎드러지고 저거끼리 서로 다 쳐서 없애도록 해서 네  앞에는 네 대적인 악이 세력을 잡지 못하고 악이 다 깨어질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이 참 성전을 건축하는 이 생활만 하면 우리에게는 죄를  지을 필요가 없고 죄를 안 지어도 우리 앞에는 그 죄악이라 하는 것이 다 깨어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이렇게 성전 건축하는 일을 하면 자기에게  악을 가지고 대항하던 그 악은 깨어지고 그 사람까지도 선하게 됩니다. 이래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이 돼지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사람들로서 다 변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 하는 그 말은, 인간의 고기 덩어리의  생명 이까짓 게 무슨 귀합니까?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 그 말은 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 한 사람은 우주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는 몇백 배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는데,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어떤 것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인가? 어제도 말씀해서 들어 깨닫는 사람은 깨닫겠지만 또 그만  깨달아도 집어던져 버리고 깨달아도 집어던져 가지고 자꾸 일들을 낭파를 당합니다.

 성전 짓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입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  이하에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라 과실을 많이 맺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가꾸어 깨끗케 하시느니라' 한 다음에 그 다음에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그랬습니다. 일러 준 말로 깨끗했다  말은 하나님의 계약의 이 말씀을 인하여, 이 계약의 말씀을 너희들이 들었으므로  이미 깨끗하여졌다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법적으로 입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공로를 입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너희들은 중생한 새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새사람으로 살아라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게 성전 건축하는 것이냐? 우리  영은 성전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우리 영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있고 지금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 되도록 하려고 우리가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의 제목에 '기본구원을 벗지 말고 입고 살자' 하는  그것이 성전 건축을 계속 노력하자 하는 그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는  것이, 대속의 공로가 세 가지 아닙니까? 사죄의 공로, 칭의의 공로, 하나님과  화친하는 화친의 공로.

 사죄의 공로를 입을 때에 죄의 종된 자가 죄에서 해방되어서 자유 하는  사람됩니다. 칭의의 공로를 입을 때에 무지 무능한 자가 아주 실력 있는 권위 있는  자가 됩니다. 왜? 칭의는 성신의 감화에 피동 되는 것이 칭의니까, 성신의 감화에  피동 되니까 그거는 전지자요 전능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화친의 공로를 입으면  하나님하고 하나가 됐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가 아니고 자기가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이 되는 것은 하나가 되어서 자기 안에 살아 역사 하는 이가 하나님이요  자기는 하나님이 입고 있는 옷과 같아. 자기는 하나님이 입고 있는 옷과 같아.

이러니까, 그 옷을 대통령이 입었으면 옷이 대통령 권세가 있습니다. 또 사장이 그  옷을 입었으면 그 옷이 사장 노릇을 합니다. 그러면, 옷이 사장이 아니지만 그 속에  있는 그 사람이 사장이기 때문에 사장이 그 옷 입고 사장 노릇하니까,  예를 들어서 비유건대 붉은 옷이 있는데 그 붉은 옷을 도적이 입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붉은 옷 입고 가는 저놈 도적놈이다. 저 도둑놈  잡아라.' 붉은 옷을 도적이 입으니까 입고 있으니까 그 사람을 도적이라고 '도적  잡아라. 저 붉은 옷 입고 가는 저게 달아나는 것이 도적이니까 붙들어라' 이러지만  그 옷을 사장이 입고 있으니까 '저기 사장님 오신다. 사장님 오시니까 너희 정신을  차려서 모두 긴장을 해라' 이러지만 내나 그 붉은 옷을 이번에는 대통령이 부산에  순시하는데 대통령 온다. 대통령이 붉은 옷 그걸 입고 오니까 '아, 저거 대통령이  오시는데 모두 차려 해라' 이라니까 길가에 모여 가지고 야단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옷이 대통령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속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니까  대통령이 입으면 대통령이 되고 또 도적이 입으면 도적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옷과 같이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나님의  집과 같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 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살기 때문에,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렇게 말했고,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역사 하시는 그 역사가 나를  통해서 나왔으니 내가 한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이다. 아버지가  말씀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가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 하셨고, 또 사도 바울  안에는 예수님이 그 안에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 안에  하나님이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 하셔서 내 언행 심사를 당신이 맡아 주관하시니까,  내 한 말이 내 말이 아니고 내 말을 당신이 맡아 주관하시니까 내 말은 전능자의  말이요 내 말은 하나님의 말이요 내 말은 창조주의 말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서 사람은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다, 하나님의 모양이 된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던 것처럼 너희들을 부르신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불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형상은 겉으머리 모양 아닙니까? 이러니까, 겉은 내지만 속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내 언행 심사하는 것이 주님의 언행 심사가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은 딴 거 가지고 안  됩니다. 제가 학교 가서 공부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니오. 제가 과학자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이 구원은 아무것으로도 하지 못합니다. 뭐 가지고 합니까? 믿음  하나로만 합니다. 믿음 하나로만.

 믿음이라 말이 무슨 말입니까? 믿음이라는 말은 순종이라는 말입니다. 순종이라니?  하나님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사람은 안 죽을 수가 없다. 다 죽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지식은 다 이것이 다 통일되고 있지 않습니까? 통일되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한다' 이 세상 말과 정반대의 말이지만 '아,  하나님이 예수 믿으면 영생한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이 말씀을 믿는다. 나는 예수  믿어서 영생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하는데, 성경에,  죽었다가 부활한다 다 살아난다 이랬기 때문에 살아난다는 이 말씀을 나는 믿는다'  그것이 지식의 순종이라 말이오. 이런데, 또 말씀하시기를 '믿는 사람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고, 안 믿는 자는 심판 받을 부활에서 사망의 부활 받고 믿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 받는다. '예.'  낱낱이 이와 같이 하나님을 따라 믿어서 이렇게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다  하면 '예 그렇습니까?' 그래 딿고, 또 하나님이 이래 하라 하면 또 그래 따라서  하고, 하나님이 네가 혀를 지금은 놀리지 말라 하면 또 입을 딱 다물고 안 놀리고,  하나님이 또 지금은 네가 호령을 쳐라 하면 또 호령을 치고, 또 '네가' 하나님께서  '네가 이런 일을 했으니까 암만 이것은 네가 수치스러운 일이라도 잘못했다고  자복을 해라' 하면 자복하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자기의 감각도 따라 하고  생각도 따라 하고 기억력도 따라 하고 이 모든 것을 깨달은 그런 것도 다시키는  대로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이와 같이 따라 하는 이것이 믿음인데, 하나님을  따라 하는 이 외에는 이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을 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있는 그런 지식을 공부하는  그것만하는 사람은 외식이라 뒈진다, 뒈져.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네가  공부도 하나님을 따라 믿음으로 해라. 믿음으로 하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밥 먹어라 하니까 밥 먹고, 하나님이 또 네가 글을 읽어라 하니까 글을  읽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분의 피동으로 내가 글 읽을 때도 있고 글을 안 읽을  때도 있고, 공부를 할 때도 있고 공부할 때도 있고, 또 말을 할 때도 안할 때도  있고, 순전히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하다가 보니까 시키시는 일 가운데는 공부하는  공부하라고 시키실 때도 있고 공부하지 말라고 시키실 때도 있고 또 과학자가  되라고 시키실 때 있고 과학자를 집어치워라 말할 때도 있고 모든 면에서 이 세상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든 생활을 나는 하되 하나님 시키시는 그 일 하느라고 이런 거  저런 일을 하지, 하나님 시키시는 그 일 아닌 '공부 이거 하면 산다. 이 기술  배우면 산다' 거기다가 내 생사 화복이 있다고 하는 것 아니고, 하나님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기 위해서 내가 이래 하는 것이지 그것이 무엇을 내게 무엇을  준다고 해서 하는 것 아니다.

 하나 예를 들면 공부를 해라할 때에 공부를 내가 하는 그것도 시키시는 대로했기  때문에 유익 될 줄 안다. 하나님이 공부를 하지 말라. 할 때에는 또 안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를 함으로 유익이나 안함으로  유익이나 유익이 꼭 같다, 이렇게 보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피동 되는 이 공부를 해라.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시키시는 대로 그 시키시는 것을 네가 바로 깨닫는 그 연습을 해 가지고 그게  숙달돼서 무엇이든지, 바쁘든지 수월하든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달깍 달깍  시키시는 그것을 바로 딱딱 찾아 잡도록 하는 이 연습을 하고, 또 시키시는 걸 바로  찾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죽을 그런 일이라도 시키시는 대로 딱딱 실행하는 이 일을  연습해라. 이것이 믿음 연습을 하라, 믿음을 만들라 말입니다. 믿음을 만들어라.

믿음 연습을 해라, 믿음을 써먹어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 시키시는 그 명령을 듣는 연습을 해서 숙달해서  정화하게 듣고, 또 정학하게 들어서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실행하고,  그러면, 명령하는 그 명령이 소리로 나옵니까 뭘로 나옵니까? 명령한 것이 두  가지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명령하신 것이 문서로 나왔습니다. 문서로 나온 그것이  뭐이냐 하면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러면, 문서로 나온 이것뿐입니까? 문서로 나온  거 이 외에 하나 나온 거 있는데 그게 뭐인지? 그게 뭐이지? (OOO 집사, OOO 씨,  문서 말고 나온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이지요? 예? 안 돼. OO 씨는 보통 들어서  자꾸 들은 그 지혜 가지고 지금 권찰 일 하고 있는데, 하나님 말씀을 딱딱 들어서  속에 들어가지 안하면 능력이 안 가. 능력이 안 가면 그 하는 일이 모래 위에 집  지은 거 모양으로 마지막에 팍 다 흩어러지고 쓰러져 버리고 말아. 어쩌든지 예배  볼 때에 잘 조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야. 회개해. 그러면 안돼. 졸면 안 돼.)  이렇게, 연습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 무슨 공부하느냐? 하나님의 명령이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문서 계시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나님께서 이 성구를 지켜라 이 성구를 지켜라 어느 성구를 지킬는지 무슨 성구를  지키라고 할는지 그것을 알 수 있지, 만일 성경을 읽지 안하면 하나님께서 무슨  성구를 지켜라 할는지 성구도 모르는 데 제가 어떻게 알 것이오?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삼가 듣는 것은 뭐 때문에 삼가 듣느냐 하면 오늘날 내게 명하는 그거  지금 바로 찾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자꾸 열심히 본다 그 말이오.

 이 성경 말씀에 기록된 것은 눈으로 읽으면 보고 재주 있는 사람은 읽을 수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 안 돼. 이거는 울타리야. 성경 말씀은 울타리라 하는 그 말씀을 내가  벌써 수십 년 전에 내가 많이 했습니다. 울타리라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귀 너머 들으면 모른다 그거요.

 울타리라는 말은, 신구약 성경 말씀 이 범위 안에. 범위를 나가지 안하도록 이  범위 안에 그저 널털하이 울타리를 해 놨는데 그 속에 속에서는, 이 울타리  안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울타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이렇게 해라' 시키시는 것이 있으니까 시키시는 그것이 소리로 나옵니까 뭐로  나옵니까? 환상으로 나옵니까? 꿈꾸듯이 환상으로 나옵니까 소리로 나옵니까?  소리도 없소. 환상도 없소. 다만 양심을 통해서 성령의 감화로 나온다 말이오. 감화  감동으로 나와. 감화 감동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거는 형상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감화 감동으로 나오니 이 감화 감동을 받는 일을 연습을 해야  되지, 이러니까, 한 번 하고 두 번하면 연습이 안 됩니까? 옳은 것도 자꾸 연습을  하면 옳은 것이 자꾸 숙달돼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경건을 연습해라, 경건  연습하면 이거 자꾸 숙달이 돼진다. 그러나, 못 쓸 것도 자꾸 연습하면 그것이  발달이 되고 자꾸 숙달이 됩니다. 이래 가지고 참 종류를 바로 가려서 연습해서  점점 좋아지는 거 있고, 연습함으로써 자기 영과 육이 마구 망쳐지는 그런 연습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연습하는 종류부터 딱 평가해  가지고 '아, 이 종류는 이 연습을 안 할수록 좋다. 이거는 아주 죽여 버리는 게  좋다. 이 연습은 할수록 좋다.' 종류를 그것을 구별해 가지고 나쁜 종류는 연습하지  않기로 못을 딱 박아서 자기가 글로, 글로도 쓰고 써 가지고 또 외우고 또 쓰고 또  글로 쓰고 또 생각하고 자꾸 이래서 못 쓸 연습은 '이것은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안하겠다.' 자꾸 안하기로 하고, 좋은 연습은 할라고 또 애를 써 가지고 이와  같이해야 될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지 말아라. 너희에게 성신의 감화가 올 때에 그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지 말고, 하나 성신의 감화 올 때 그것도 순종하니까,  처음에는 알기 쉽고 깨닫기 쉬운 성신의 감화가 오고 그거 순종하면 차차 차차  어려운 자꾸 깊은 성신의 감화를 주기 때문에 깊은 성신의 감화는 아무도 모른다 그  말이오. 아무도 몰라.

 내가 어제 밤에 어떤 데다가 전화를 했는데, 어떤 목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목사가 하는 일이 정 거꾸로 일을 한다 말이오. 이래서 내가 전화를 해 가지고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내가 물으니까 자기 주장대로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지금 할라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그걸  조금 설명을 해 주니까 '아이고, 그렇습니까? 알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거 다  포기하겠습니다.' 성신의 감화, 쉬운 것을 복종하지 안하면 어려운 것은 복종을  못합니다. 어려운 거는 찾지를 못해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전에 처음에 이거 개교회로 나올 때에 내 동지라고는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내 동지라고는 한 사람밖에 없었는데.그 동지의 교회를 내가  찾아갈라 하니까 그 교회를 몰라요. 몰라서,그때 OOO 집사님이라고 있었는데 그  집사님에게 '그 교회를 아느냐' 이래 물으니까 안다 해요. 그래 가 가지고 그 집을  찾았습니다. 찾아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얘기하는데 건건이, 한 여나무 건을 말을  했는데 그 건건이 그 사람과 나와 정반대라. 그 사람은 깨달은 것이 정반대, 항상  그 깨달은 것이 인간적으로 깨닫고 있지 도무지 영감을 받아서 깨닫는 것이 없소.

이래서, 한참 얘기하다가 내가 그 자리에서 그랬어. '이제 내가 처음에 찾아올 때에  목사님하고 얘기하던 그 목적을 내가 포기했습니다. 목사님하고 하나 돼 가지고  나갈라 하는 그런 것을 내가 이제는 포기를 했습니다. 포기를 하고, 이제는 내가  목사님하고 하나 될라고 애를 쓰지 안할 것이고 이제는 내가 깨달은 대로 그대로  나는 나갈 것입니다. 이러니까 목사님이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오고 따라오기 싫으면  말고 하십시오.'  그때 내가 그 앞에서 그 말하니까 그 목사님도 얘기하다가 깜짝 놀라면서 '이거  무슨 말입니까?' 이래서, 깜짝 놀라기 때문에 그저 '내가 이 시간 깨달았습니다. 이  시간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그때에 영감이 나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그것을 쫙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세상 끝날 까지 내가 할 일을 쭉  말해 버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이제 깨닫게 해  주셔서 이렇게 할 것입니다.' 그때에 내게 깨닫게 해 주셔 가지고 아는 대로 그대로  지금 내가 실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변동하는 게 아니고 그대로 지금 계속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면 하나님이 영감을 주시는데 처음에는 얕은  영감 주시고, 얕은 영감은 영감 순종도 하기 쉽지만 또 얕은 영감에는 수입도  적습니다. 또 얕은 영감에는 변화도 적습니다. 깊은 영감일수록 알기도 어렵고,  실행하기도 어렵고 실행할라 하면 십자가도 많고 십자가가 많은 것만치 기이한  하나님의 능력도 구경도 많이 하고 수입도 많고 성공도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믿음 연습한다 그 말은 문서 영감 계시 순종 연습한다 하는  그것입니다.

 이래서, 이거는 문서 계시로도 모르겠고 영감 계시로도 모르겠고 하나님의 명령이  뭐인지 모르겠다 할 때는 그때는 '좀 두고 봐라. 두고 봐서 하나님의 섭리가 어떤고  봐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내 어떤 사람에게 '네가 여기 부임을 하고 이렇게 해라' 하니까 '내가  그거 안 됩니다.' 정반대야.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그러면, 네가 영감도 받아  가지고 이렇게 이번에 이동을 해야 된다는 이것을 네가 모르고 있으니까 이제 네가  하나님의 섭리를 가 봐라. 네가 이동을 해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를 볼 것은, 네가  그 강단에 설 때에 하나님이 네 심령을 열어 줘서 설교가 환하게 보여지고 증거할  말씀이 환하게 보여지는, 강단에 섰을 때에 성신의 감동이 너에게 감동을 시켜  주느냐 안 주느냐 그것을 네가 보고 감동시켜 주면 하나님이 보냈다는 증거가  아니냐?' 그렇게 약속해 보냈습니다.

 제가 OO OOO교회 있는 OO 목사님을 서울에 잠실동 교회로 보낼라고 그때, 지금은  잠실동 교회를 그 다음에 내가 제게 따른 사람들을 넣었더니만 그 사람들이 제  사욕대로 주장하다가 그 교회를 뺏겼습니다. 참 이거 보면 제가 절 망치는 일들을  하고 있어. 그래 태영 목사 보낼 때에 가라 하니까 거창에서 목회 할 때도 거기서도  거기 순 산골이지만 재미를 봤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거기 떠나기가 싫어서 이래서  가라 하니까 '내가 도시 어때 가겠노?' 안 갈라고 이래 쌓아서 보낼 때 내가 그래  약속했습니다.

 '네가 간다고 가지 말아라. 간다고 가지 말고, 그러면, 네게 이해가 안되니까 가  가지고 네가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에 네가 과거에 다른 데서 깨달은 것보다  깨달음을 더 많이 주시고 그때에 설교할 능력을 줘서 설교를 하고 설교하고 나니까  네가, 산골 순 국민학교 이 학년밖에 안한 네가 가 가지고 설교를 할 때에 그  교인들이 모두 은혜를 받아 가지고 야단을 지기거든 하나님이 보냈다 그렇게  알아라' 그게 뭐이냐 하면 섭리라 말이오. 하나님의 섭리를 봐서 네가 알아라  이랬더만 그래 '그러면 내가 잠깐 갔다 오겠습니다' 그러고 갔다 그 말이오. 가서  설교하니까 첫 시간부터 하나님이 은혜를 줘서 참 은혜 있는 말씀을 증거 하니까  그만 그 교인들이 바짝 녹아 버렸다 말이오. 녹아 가지고 마구 이런 조사가 어디  있느냐고, 이런 교역자가 어디 있냐고 야단을 지기니까 그 뒤에 그래 내가, 전화도  없어요. 그때는 전화 없을 때라서, 갔다 왔어. 와서, '그래. 어때 갈 마음이 있나  없나?' '예, 가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같이하던 것이 보여지더냐?' '네,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이 분명히 보여집디다.' 그래서 옮겼습니다. 그래 가지고 옮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요.

 이러기에, 그게 뭐이냐? 섭리라 말이오. 섭리. '이게 뭐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하시는 그 역사 하시는 거 영감으로도 모르겠고  성경보고도 모르겠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하시는 이 섭리 인도를  보자.'

 그러면, 성경 인도가 있고. 영감 인도가 있고, 하나님의 섭리 인도가 있으니,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공부를 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때깍  때깍 바로 찾고 찾은 대로는 어렵든지 쉽든지 생명이 끊어질 판이라도 딱딱  순종하고 이렇게 하는 이것이 믿음 연습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만드는 것이오.

 그래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라,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너희들을  권면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러고 난 다음에  조금 읽어 가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네가 분별하도록  하라.' '네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하여서 새 마음을 품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게 말씀해 놨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네가 이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대를 따라 하지 말고 변하여 새 마음을  가져야 되고 새 마음을 가지기보다도 먼저 가질 것이 뭐이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주님의 명령이면 죽든지 살든지 내가 명령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이 각오를  가지고 난 다음에는 세상 따라 살 게 아니라 성경 말씀대로의 자기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뜻을 분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서 믿음 연습을 하고 이 공부를 해라. 이러면 모든  것이 능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을 떠난 공부를 하지 말고 네가 믿음을 만들고 믿음  연습을 해라' 이러니까 이거 잘못 깨닫고 와 가지고 그렇게 묻더래요. '아, 공부를  하지 말고 믿음이면 다된다. 믿음 연습이면 다된다. 요셉이가 믿음 연습해 가지고,  믿음 공부해 가지고 믿음으로 통치하니까 전무후무한 그런 통치의 총리 노릇을  했다' 이만하면 등신이라도 깨닫고 벙어리라도 깨달을 수 있는데, 자기를 속에  고치지 안하면 안 깨달아진다 말이오. 안 깨달아지면 멸망이라 말이오. 그 외에는  딴 게 아무것도 없소.

 '믿음만 지키고 공부는 안해도 된다, 공부도 믿음으로 하라 이렇게 하니, 믿음  가지고 다된다고 하니 이거 참 답답한 일입니다. 그 말은, 예를 들어서 어떤  과학이면, 의학이면 의학을 공부 안해도 의학에 대한 것은 모든 거 안다 말이니까  공부 안 하고 어떻게 압니까? 이거 도무지 물에도 붓지 않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천리 만리 하늘나라에서 거리가 멀다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자기가  자기 속에 왕이 되어 있고 자기가 주장이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놈을 죽여야  되지 이놈을 죽이지 안하면 안 됩니다.

 사울 왕이 그렇게 죽자껏 애를 써서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한 줄 압니까? 생각했소.

마지막에 죽을 때에도 '내가 할례 받지 안한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모욕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할례 받지 안한 자에게 죽는다는 게  얼마나 모욕이냐? 할례 받지 안한 자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내가 자살하는 게  낫다.' 사람은 한 시 간이라도 안 죽고 살라고 하는 것이 그게 인간인데 자기  생명을 자살해서 '나를 너희 칼로 죽이라. 할례 받은 자에게 내가 죽지, 할례 안  받은 자에게 죽는 것보다는 너희에게 죽는 게 나으니까 칼로 가지고 나를 쳐서  죽이라.'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안 죽이니까, 죽여 달라 해도 안 죽이니까 자기  칼로 가지고 자기를 찔러서 자살해 죽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권위를, 얼마나 하나님의 존귀를 위한 사람이었습니까? 얼마나 위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렇게 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이 실패자입니다.

 왜 실패자입니까? 무엇이 들어서 실패했지요? 아는 사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몇 가지가 들어 실패했소? 아는 사람 손가락으로 들어 가리켜 봐. 퍼뜩 들어 가리켜  봐. 저 뒤에도 좀. 저 뒤에는 손가락 하나도 못 드는구먼. 모두 바보라 말이 욕이  아니고 바보인 줄 알아라 말이오. 바보라 바보. 그렇츰 가르쳐 놨는데 못 들어?  얼마나 가르쳐 놨는데.

 이래 셋. 사무엘상 15장에 있지 안해요? 원수 셋. 하나는 뭐입니까? 자기 중심, 또  하나는 뭐입니까? 자기 위주, 또 하나는 뭐입니까? 자기 욕심. 이 세 가지를 두고  하나님 암만 섬기고 위하고 충성해도. 하나님 암만 아끼고 영광을 아끼고 위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자살하는 멸망으로 멸망되고야 만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욕심, 이러니까, 듣는 것도 그래 듣고 말하는 것도 그래  들으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욕심이 주장이 돼 가지고 옛사람 이놈이  설교를 들으니까, 옛사람이 설교 들으면 설교가 망한다는 말로 들리겠소 산다는  말로 들리겠소? 저 O 집사, 망한다는 말로 들리지. 새사람이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산다는 말로 들리겠소 죽는 다는 말로 들리겠소? 예? 새사람이  들으면 산다는 말로 들리지.

 이러니까, 내가 새사람 되는 것부터 고쳐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다 버리고,  자기 중심을 하나님 중심으로, 자기 위주를 하나님 위주로, 자기 욕심을 버려  하나님의 욕심으로 이것부터 바꾸어 놔야 들려지는 것이나 보여지는 것이나  접촉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바로 보여지지, 옛사람이라는 이 색경을 딱 쓰고  보는데 무엇이 바로 보이겠습니까? 옛사람은 거짓말을 딱 거짓말 안경을 쓰고  보니까 모든 것이 다 거짓말로 보여집니다, 하나님 말씀도. 거짓말은 참말로  보여지고.

 그러니까,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믿음으로만 건축한다 말이오. 이 말이 왜  나왔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 구원인데 이  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믿음 외에는 되는 방법이 있을 수가 없소.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거, 하나님 아, 이거는 못 쓰면 못 쓴다 하고.

당신을 따라서 말하니까 그 말이 다 완전한 말이 돼. 당신을 따라서 움직이니까 그  움직임에는, 당신 따라 움직이면 당신이 전능으로 도와줄라 했어. 지극히 큰 능력이  도와줄라 했어. 이러니까, 그 언행 심사가 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 이루는 것은 믿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만침 해 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성전 짓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하겠으니까 이거 단단히 듣고 이래 하면 모두 다 염려 없이 살수 있고, 또  모두가 다 죄 안 짓고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 받아 살 수 있고, 어디까지  궁지에 빠져도, 병자들 가운데 삼십 팔 년된 병자가 제일 중한 환자고 제일 오래 된  환자라.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니까 '내가 이렇게 썩었는데, 이렇게 병이 중한데,  다른 사람이 아무도 안 돕는데, 나를 물에 넣어 줄 자도 없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데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 무슨 말입니까? '모든  사람보다 내가 제일, 제일 희망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자가 없습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서 다 방해를 합니다. 온 세상은 나에게  방해하는 사람이요 다 나 돕는 사람 하나도 없고 나는 모든 사람보다도 깊이 망해서  헤어 날 수가 없는 형편에 이르렀으니 이거 어떻게 됩니까?' 이랬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런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순종만 해라.' 일어서라 일어서니까  일어서지 안했습니까? 이것이오.

 이거 뭐 때문에 우리에게, 이거 계시로 보여준 게 아니오? 이거 계시입니다.

역사에 그런 일이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 주는 거 계시로 우리에게 보여 줬어.

이러니까, 이거 뭐이냐? 어떻게 다른 사람의 원조가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네  원수가 돼 가지고 널 대적하고 너는 헤어날 수 없는 그런 궁지에 빠졌다 할지라도  주님 명령하는 데 순종만 하면 일어선다. 순종만 하면 회복된다 하는 그 말이오.

순종하니까 나아서 일어서지 안했소? 일어서니까 다른 사람들의 모두 인기  집중이오. 인기 집중.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이 세상 형편 사정 처리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 명령을 바로 듣고 순종하는 이것만하면  돼. 순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애로가 있으니까 애로를 상관하지 말고 개의치 말고  죽어도 순종해.

 베드로가 물 위에 푹 뛰어 내 리니까, 주님 명령에 순종해 걸어오라 하니까 푹  뛰어 내렸는데 푹 뛰어 내리니까 물에 빠졌습니까? 걸어가지 안했소? 걸어가다가 왜  빠졌느냐? 걸어가다가 빠진 거는 주님 명령 순종으로 물에 뛰어 내렸기 때문에 빠진  것 아니오. 그거는 주님의 명령을 잊어 버려 버리고 주님 잊어버리고 물만 봤다 그  말이오. 풍랑, 바람보고 물결보고 그것만 봤지 주님 보지 안했어. 물 소리만  들었어. 막 꽝 와장창 거리니까 여기만 듣고 그만 물소리에 놀랬고 바람 부는데  바람 소리에 놀랬고 물보고 놀랬지, 주님의 말씀 잊어버리고 주님 잊어버리고  주님의 명령 잊어 버렸을 때에 빠져 들어갔지 명령 순종으로 빠져 들어간 거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명령 순종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담대히 나갈 수가  있어. 뭐 때문에 이리 저리 돌아다녀요? 명령 순종만 하면 되는데.

 그래 나와서 명령 순종이 뭐이냐? 꼬박 꼬박 이제 성전 짓는 것만 배워서 그대로만  하면 된다 그 말이오. 뺨을 맞으면서도 하고 발길로 차이면서도 하고 어쩌든지  성전만 지어라. 성전만 지으면 하나님이 역사해서 이루어 주셔. 이게 기독교요.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전부 다 기적의 도입니다. 초자연의 능력의 도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난밤에는 재독하러 온 사람이 이백 이십 칠 명인데, 어쩌든지 재독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말씀을 안 들으면 못 듣습니다. 아무나따나 가도 들을  줄 알아도 아니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내 마음대로  이거 말씀하는 거 아니오. 하나님이 이 말씀 하라 해서 내가 합니다. 나는 이 말씀  할라고 하지 안했어. 어제 다른 말씀 할라고 내나 했는데 하나님이 이 말씀하라  해서 그래 합니다.

 기도록에 등록된 수는 칠천 사백 삼십 일 명입니다. 네, 많은 숫자가 등록을  했는데 이 등록한 사람들이 계속 기도를 해야 될 터인데, 기도하면 기적이 나올  터인데. 산에, 가서 기도하는 거 그저 쉬지 말고 꼭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어제  보니까 장로님들 가운데에서 여러분이 나오지 안했소. 안했는데, 늦게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분교 갔다가 이래 오고 하니까, 장로님들이 모두 분교를 시작하고 난  다음에 좀 힘을 내 가지고 열심히 한다 하는데, 그저 우리의 사는 행복의 샘은 믿음  지키는 거밖에는 없습니다. 거기서 있지, 사람이 재산 자본 가지고 사는 거 아니고  기술 가지고 사는 거 아니고 지능 가지고 사는 거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능을 의지했으면 꼭 지능으로 망합니다. 또 재산을 의지한 사람은 재산으로  망합니다. 그게 소용없어. 주님 외에. 모든 것이 나보다 먼저 오는 건 도적이요  강도라. 주님 외에 이거 가지고 살겠다 하는 그것은 다 도적이요 강도라. 너  죽이려고 있는 것이지 살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고 그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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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0 성전건축-세가지 할 일/ 학개서 2장 9절/ 810926토새 선지자 2015.11.06
3079 성전건축의 결과 / 학개 2장 20절-23절/ 811008목새 선지자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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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7 성전건축-하나님을 모셔라/ 학개서 2장 4절-9절/ 810921월새 선지자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