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

 

1985. 3.  16. 토새

 

본문 :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구약 때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루어진 그런 일은 이 신약 교회를 위해서  준비 과정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은 그림자라면 신령한  이스라엘은 그 실상이라 이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때의  교회는 외부적이고 모두 다 유약한 어리고 약한 유약한 시발적이고 신약 교회는  성장되고 온전함에 점점 나아가는 그런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약 때에 된 그 하나님의 계시나 역사를 가지고 신약 때의 교회들이  거울로 삼으면 좋습니다. 그러기에. 신약을 구약으로 해석하지 안하면 신약에 있는  도리를 바로 깨닫기 어렵고, 또 구약을 신약에 있는 이 도리로서 깨닫지 아니하면  또 깊숙이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체의 이스라엘에서 신령한  이스라엘을 우리가 발견하고, 구약에서 신약 도리를 발견하고, 또 신약에서 구약  도리를 깊이 바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께서 물질로 성전을 삼았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이 교회의 제일  시발이요, 에덴 동산이 그 후에 성막으로 나타났고, 성막이 그후 성전으로  나타났고, 성전이 그후 교회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는 성도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교회라,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전 건축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역사해 주실 수가 있고 우리는 또  하나님의 그 역사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할려고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왔다' 하는 말씀은 구약의 모든 계시 말씀과 모든  조직과 제도 이것이 폐지되는 것이 아니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온전치 못한 것은 폐지하게 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짐승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그것은 신약 교회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친히 대속의 제물 되실 것을 그림자 했고 예표 했고 모형 했었는데 그  예수님,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을 모형한 그 모든 구약의 일들은 다 폐지가  됐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에 폐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있는 그  법리나 제도나 진리는 폐지가 되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약 시대에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렇게 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나님의 성전이 되겠는가 하는  그것을 구약의 것을 상고해서 구약 성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을 참고로  하고, 또 신약에 와 가지고 성전 된 것을 우리가 또 연구해서 같이 한테 종합을  해서 첨부해야 바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막 공부라고 공부를 합니다.

성막 공부라 말은 성전 공부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성막 공부들을 많이  시켜서 이렇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데에는 그 순서가 첫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순서를  밟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종이 되고 그러고 나면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나면 하나님의 지체와 몸이 됩니다. 주님은 머리가 되시고,  그런고로, 우리 구원을 다각도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석을 해 주신 것을 우리가  깨닫고 그대로 힘을 써서 이루면 우리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피의 능력은 대속의 능력인데 이 능력은 지극히 큽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을 완성한 그 능력인데 우리를 대속 했기 때문에 우리가  완성자가 되어지는 그런 참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이루어져 가야 됩니다. 성전이 이루어져 가야, 이 학개서는 보면 성전이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할 수가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성전인데,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성전을 우리의 몸과 마음, 영 곧 내라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전으로 하나님이  정하시고 성전을 만들어 가십이다. 우리의 영은 벌써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불변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이것이 우리의 기본구원이고,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이렇게 만드는 것이 건설구원이요 이것이  성화구원입니다. 영이 성전 된 것은 단번에 됐고 우리의 마음과 몸은 수많은 요소의  그 수량으로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여러 수백 차례, 수천 차례, 수만  차례를 이렇게 거쳐서 우리가 하나님과 성전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거기가 하나님의 성전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려고 하면 첫째로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 법규, 지극히 거룩하신 지성법과  지공법의 걸리지 안하는 곳이라야 하나님이 계실 수 있습니다. 지공법과 지성법에  걸리면 거기는 하나님이 계시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지공법과 지성법을 다 완수한 이 지성법과 지공법에 완전한 일치가 되는  그 일치를 만드는 하나를 만들어서 거기 하나도 거리끼지 않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형을 하셔 가지고 사죄를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사죄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이 거기 계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빛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데는 하나님은 가시면 죄가 녹아 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죄 문제가 해결된 그 부분이라야 하나님을 만나지 죄  부분이 그대로 있으면 우리는 그만 변화 받지 못하고 녹아 버리고 소멸하는 불로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시면 우리가 당장 멸망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피하시고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안하고 있는 자에게 오면 즉시 소멸이 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오시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사죄의 공로를 입고 사죄 받은 자로 있을 때에 우리 죄가  주홍 같고 진흥 같이 붉을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대형의 사죄를 받았는고로 이  공로를 입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오실 수 있고 오셔도 우리가 소멸되지  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어떤 역사라도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죄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세 가지 범죄를 대형한 그 대형으로  인해서 사죄함을 받은 것인데 이 사죄는 하나님의 이 선포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  말씀에 관련된 사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법적으로 사죄를 받았으나 우리가  이 사죄를 입지 아니하고 사죄를 벗고 살 때가 많습니다. 사죄를 입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어떤 것이 사죄를 입으려고 애를 쓰는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 말씀을 내가 지킬라고 이 성경 말씀을 내가 지킬라고 이 성경  말씀에 순종할려고 내가 애를 쓰는 것이 그것이 사죄를 입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요,  내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지켜 순종했을 때에 그때에 사죄를 입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와서 계실 수 있도록 내가 성전 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일이 없도록 내가 노력을 하고,  노력을 해서 위반된 일이 없도록 노력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오실 때에  거리낌이 없는 자 됩니다. 그 말씀대로 내가 순종을 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와도 죄 문제에 대해서 문제가 없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전 짓는 게 어떤 게 성전 짓는 것인가? 성전을 짓는 것은  첫째로 외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안할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성전 짓는  노력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복종하는 생활을 하는 그것이 성전 짓는  노력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아는 대로의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범한 일이 없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복종하는 마음이 되고 행동이 돼서 내가 눈이나 귀나 코나  입이나 손이나 발이나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범하지 아니할 때에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내 모든 몸의 온갖 지체가 될 때에, 또 내 마음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안할려고 애를 써 하나님 말씀을 범하지 아니하는 내 마음의 요소, 생각도  범하지 안하고 뜻도 범하지 안하고 욕심도 범하지 안하고 감정도 범하지 안하고  모든 성품도 범하지 안하고 내 지식도 범하지 안하고 이렇게 내 마음의 각양 요소가  하나님 말씀을 범하지 안할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성전 건축이요, 내 마음의 각양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하는 요소가 되어질 때에 그때에 비로소 사죄면의  죄 면의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 없는데 죄 문제가 해결됐으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거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데에 죄 문제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그런 일은 해결이 됐습니다. 그거는  사죄면의 성전이 건축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을 우리가 언제 성전을 준공을 하느냐? 성전 준공은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이 준공 시간인데, 어떤 사람은 성전을 준공했고 성전을 짓다 가고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이 성전이 된 것만침 하나님은 자기에게 와서 계실 수 있고 동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전 짓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떠날 때까지 성전 짓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이 다 지어지면 하나님이 불러서 가야 하는 것이고 성전을  다 지었다고 하면 땅위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 완성이 됐는데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성전을 짓다가 또 잘못돼서 또 그것이 또 고치고 고치고  이래 가지고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성전 짓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성전을 지을라고 성전 지대를 쌓던 그날부터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이랬습니다. 성전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복을 주신다. 그러면  성전을 다. 성전을 완전히 준공해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성전을 짓기  시작할 때에 복을 주신다 그렇게 여기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 지대를 쌓던  그날부터 그전을 추억해 봐라. 그전을 추억해 보면 너희들이 너희 소위가 참  불쌍하고 가련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전 지대를 구월 이십 사일 날, 성전  지대를 쌓는데, 2장 18절에 보면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그날부터 그 이전을 네가 한번 추억해 보라. 또 그후를 네가  보라. 네가 앞으로 그후에는 어떻게 하는가? 그러면 성전 지대를 쌓기 시작한  이전에는 비참하고 쌓기를 시작한 그후는 지극히 영광스러워진다. 그 모든 것이 온  세계를 다 너를 위해서 내가 움직여서 전체가 너를 위하는 것이 되어지도록 하겠다.

모든 만국이 다 너를 위하고 만국의 보화가 다 몰려들 것이고 너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내 앞에서 다 깨트려서 파괴시키고 너를 건축하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전을 다 완성할 때에 하나님이 복 주심이 아니고 성전  건축을 힘쓰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전 지대를 쌓던  그날부터 성전 지대를 쌓으니까 성전 준공이야 아직 감감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고 하니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안할려고 애를 쓰는 거기에 내가  복 준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전 복종을 할라고 네가 애를 쓰는 데에 내가  너에게 복을 주는데,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육지를 다 너를 위해서 진동시키겠다.

너를 위해서 전체가 움직이도록 하겠다 이랬습니다.

 이 말씀을, 너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혹 에누리하는 일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영원 전 만들기를 하나님의 성전 짓는 자를 위해서 모든  존재가 있도록 그렇게 예정해 가지고 움직이는 그 전체가 마치 햇빛이 돋는데 내가  햇빛에 나가면 햇빛이 나를 씌울 수 있고 햇빛을 내가 피하면 그 빛을 쬐이지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내가 성전을 짓기 시작하면 모든 존재가 나를 위함이  되어지고 내가 성전 짓는 일을 피하면 모든 존재는 나를 집중적으로 사격해서 나를  망치는 일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다 하셨기 때문에 이거는 필연한 일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성전을 짓는 역사고, 그 다음에는 이제 칭의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로를 베풀어 주셨는데, 칭의는 무엇이 칭의냐? 칭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것이 칭의 입니다. 어떤 거 순종하는 것이? 영감을 소멸하지 마라.

영감을 소멸하지 말고 네가 영감에 복종하라 이랬습니다. 이제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문 의지 문서로 확실히 나타내는 성문 계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할려고  이렇게 애를 쓰다가 이 복종이 되면 그 다음 순서로 하나님의 영감 의지에 우리가  복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 계시에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면, 영감 계시에 복종하는 것은 내 마음이 내 마음의 요소가 내 성질이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려고 내 욕심이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려고 내 뜻이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려고 내 그 모든 지식이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려고 내 마음에 각양 요소가  영감을 소멸하게 하지 안할려고 내 감정이 내 정서가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성전을 짓는 노력이요. 또 내 몸이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려고  애를 써. 그러면 내 마음은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는 데 내 손이 영감을 소멸할 수  있고 내 눈이 영감을 소멸할 수 있고 내 귀가 영감을 소멸할 수 있고 내 입술이  영감을 소멸할 수 있고 내게 있는 온갖 신경들이 그 신경들이 영감을 소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내 마음과 몸, 내 손으로도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그  다음에는 내 마음의 요소와 내 몸의 요소가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 뿐 아니라 영감에  순종합니다. 영감에 순종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내가 범하지 안하고 지켜도 율법을  범하지 안하고 지켜도 우리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얼마든지 돌아다닙니다. 우리  마음은 바깥에 얼마든지 돌아다니고, 지금 내 마음으로서는 무슨 일을 하면서도 이  손으로는 지킬 수 있고 또 하나님 성경 말씀대로는 지킬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지금 달리 작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도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도 내 마음의 정성이라든지 내  마음의 진수, 내가 마음의 백분지 일이 지금 성경 말씀을 딱 지키고 내 껍데기 이  몸덩이가 성경 말씀을 지킨다고 해도 내 속에 양심은 안 지킬 수가 있고, 내 속에  그 정신의 요소는 안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쉬운 것이  몸으로 이거 지키고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 입고, 몸과 마음으로 지키는 것보다 좀  더 어려운 것이 양심으로 지키는 것이 더 어렵고, 양심으로 지키는 것보다도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제일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지킬라고 애를 쓰고  그것이 사죄 면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가 성신의 감화를 내  마음과 몸이 소멸하지 안할려고 애를 쓰고 성신의 감화에 내 마음과 몸이 복종하는  이것이 성전을 칭의면의 성전을 지을라고 내가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사죄와 칭의에 대해서는 내가 말씀을 복종할려고 내가 영감에  복종할려고 애롤 쓰는 이 애쓰는 이 단계를 넘어가면 그 다음에 어찌되느냐? 이제는  내가 복종할려고 지킬라고 애를 쓸 때는 내 주관이 남아 있습니다. 주관이 다소  있습니다. 있었는데 이 애쓰는 가운데에서 내가 성화 돼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과  화친의 대속을 입는 것은 뭐이냐?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인데 한 덩어리 되는  것인데, 그러면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셔서 내가 물어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이제 써서 나는 가만히 있으면 당신이 나를 붙들고 마치 도구를 무슨  연장을 이렇게 거머쥐고 이렇게 사용하는 것처럼 당신이 나를 쓰시고 나는 당신에게  쓰여지는 것. 그러면 내 주관의 행위가 전혀 없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말씀을 내가  지킬라고 애를 썼고, 또 내가 영감에 복종할려고 내가 애를 썼는데 그 단계가  지나가고 나니까 내가 애쓸 거 아니라 나는 애쓴다는 게 자꾸 재를 저질렀다  말이오. 내가 말씀에 순종할라 하니 재를 저질렀고 또 영감에 복종하는 재를  저질렀기 때문에 나는 그만 죽은 거와 같이 나는 완전히 참 세례를 받아서 완전히  죽은 자 되고 당신이 내 마음을 당신 마음대로 쓰시고 내 몸을 당신 뜻대로 쓰시고  내 몸과 마음을 당신의 도구처럼 당신의 뜻대로 이래 사용하는, 당신이 나를  주관하셔 가지고 나를 활용하시는 이것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화친의 성전을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는 왜 사죄 문제가 있느냐? 죄인들은 하나님을  모시지를 못합니다. 왜 그 다음에는 칭의 문제가 오느냐? 칭의 문제로 오는 것은  당신의 영감에게 복종하는 영감에게 내가 복종하는 그것이 아니면 깨끗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 오실 수가 없습니다. 죄가 없는 것은 죄가 없는 것뿐이고. 죄  없는 데다가 영감에 복종할 때에 이것이 깨끗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죄 없는 깨끗과  또 영감에 복종하는 깨끗과 또 다릅니다. 또 영감에 복종하는 깨끗과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는 깨끗과 다르다 그거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단계적으로 이렇게 잘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사죄면에는 내가 지킬라고 내가 그 말씀대로 내가 범하지 안할려고  내가 지킬라고 이 말씀대로 내가 순종할려고 애를 쓰니까 순종할려고 하는 내가  지금 내라는 것이 뚜렷이 돼 가지고 내가 지금 순종을 할려고 애를 쓰고 지킬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그 단계가 지나가고 나면 내가 차차 차차  약해지고 주님은 너에게 강해져 가지고 내가 영감을 어기지 안할려고 영감에 복종을  할 때에 벌써 겉사람은 거의 많이 시들어 죽어져 가지고 있데 그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을 복종할 때에 이 생활을 자꾸 이렇게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셔 가지고 당신이 날  주관하시고 나는 그분에게 주관을 당합니다. 주관을 당하니까 이제는 내 주관을  없애 버립니다. 내 주관은 없고 내가 말씀을 지켜야 되겠다, 영감을 지켜야  되겠다가 아니라 그만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 버리기 때문에 이제는 나는 당신에게  내가 피동할려고 애를 쓰는 거 아니라 당신이 능력으로 나를 붙들고 역사 하시고,  내가 당신에게 쓰여지려고 애를 쓰는 데 처음에는 복종할려고 애를 썼고 쓰여지려고  애를 썼고, 이제는 쓰여지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나는 당신에게 바쳤기 때문에  부인하니까 당신이 나를 쓰시니까 어떻게 쓰실 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  주관이 완전히 죽어서 없어졌을 때에 그분에게 쓰여지는 것이라. 그러면, 이것이  성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성전을 우리가 세상 떠나기 전에 어쩌든지 이 성전을 구비해 가지고  모든 면을 당신은 살아 능동적으로 역사하고 나는 아무 능동이 없어. 내게는 능동이  아무 것도 없어. 내게는 아무 힘이 없어. 순전히 당신에게 이용당하는 것으로만  돼지는 당신의 것이 수족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수족이 되고 당신의 몸이 되고  이래 가지고 무궁 세계에서 당신이 역사 하시는 것인데, 이렇게 세상 떠나기 전에  성전 이 준공을 해 가지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을 우리는 하다가 실패하게 됩니다. 실수하면 얼마나  실수하나? 우리가 이 성전을 건축할려고 보면 성전을 건축할려고 애를 쓰다가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아이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나보다 죄 많은 자가  없다. 성전 건축을 할려고 보니까 이것도 또 범했고 저것도 범했고, 자꾸 이거  성전을 건축할려고 보니까 너무 죄가 많고 또 성전을 건축할려고 보니까 너무도  유약합니다. 이래서 만삭되지 못해서 난 자라. 성전을 건축할려고 노력하지 안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의인이 없고 자기보다 강한 자가 없는데 자기보다 변동 안하는  자가 없는데, 성전을 건축할려고 해 보니까 자기 같이 변하는 자가 없고 자기 같이  흔들리는 자가 없고 아무 짝도 못 쓸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할라 하는 가운데에서  자기는 아무 짝도 못 쓸, 자신이라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이 없고 없으니까  이제는 그만 할 수 없어 자신이라는 걸 내가 지켜봐야 되겠다. 복종해 보겠다. 뜻을  이루어 봐야 되겠다, 순종해야 되겠다. 이것이 나중에는 없어. 그만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는 것밖에는 없게 돼.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일하든지 마음대로 써셔도 거기 대해서 쓰여지지 이리저리 아무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완전히 죽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고 역사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일은 점차적으로 우리가 해 나가는데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네가  범했을지라도 용서해 줘라 하는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전 지을라고 하면 성전 짓는 데는 이것 하나 기억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짓다가 또 실수해도 실수해도 '아이고 내가 이렇게  실수한 게 두 번 실수했는데 이게 되면 또 두 번씩 된다, 또 세 번째 무슨 낯가죽  가지고 이래 하겠느냐?' 아니야, 성전 건축할려고 애를 써 본 사람은 그 사람은 '두  번이 뭐꼬? 나는 천 번도 만 번도 억만 번도 더 실수했다. 그래도 나는 또  일어섰다' 이래 가지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말씀했으니까 칠 칠은 사백 구십  번이라 하지만 사백 구십이 아니라 만일 사천 구백 번을 범했는데 어쩌노? 사천  구백 번을 범해도 또 일어서라. 또 성전 건축해라 하는 그것이 주님이십니다.

 그것을 자기가 돌아서 가지고 '이러니까 이 범죄 해도 또 이것은 사유함을 받는다.

또 이래도 괜찮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때부터 고범죄가 됩니다. 사죄는 주시지만  고범죄는 사함을 못 받습니다. 고범죄는 제가 알고 스스로 알고 이래 범한 죄는  고범죄기 때문에 고범죄는 사죄를 못 받고 고범죄는 자기가 고쳐야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함 받는 두 종류를 말했습니다. 고하면 사함 받고 또 하나는 고쳐야  사함 받는다. 성경에 이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하는 그 죄는 고쳐야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지 그전에는 예수님의 피 공로가 상관이 없다는 그 가능이 안된다  하는 불가능이라 하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몇 번이든지 넘어지면 또 일어서서 애쓰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서  애쓰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뒤로 물러가면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이거 내가 실수했으니까 이제는 안  됐다 하는 그거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실수했으면 했으니 이제 다시는 내가  이제는 이런 실수하지 않는다. 또 달라 들어 가지고 그것을 이겨서 점차적으로  이렇게 건축해 나가는 젓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기뻐하시는데, 그러면 건축을 어떻게 하느냐? 건축 재료를 어디서 가져오느냐?  여기 말하기를 '너희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이제 자기 몸  안에서 되는 것도 있지만 자기 몸 밖에 산에 가서 가져 오라. 그러면 자기가 사죄의  성전을 지어야 되겠는데 사죄의 성전을 지을 때에 사죄의 재료를 네가 어디서  가져오겠느냐? 사죄의 재료를 자기 직장에서 가져 올 수가 있고, 사죄의 재료를,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않는 자기의  심신을 어디서 가져 올 수 있느냐? 하나님 말씀을 범하지 아니하는 그 심신을 자기  직장에서, 또 자기가 사람들을 대하는 그 대인 관계에서, 대사물 관계에서, 자기  의무와 책임에서 본분에서, 자기 위치에서 다시 말하면 거기가 아니면 자기 생활이  없습니다. 거기 가면 자기 생활이 없소. 자기 생활 활동하는 네가 어디서든지 생활  활동하는 거기서 네가 사죄를 성립시키고 칭의를 성립시키고 화친을 성립시켜라  하는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가 자기 생활이라는 산이 어디인가? 자기가 이 나무 가지고  와서 성전 지을 산이 어딘가? 그것이 곧 자기 직장이요 자기의 처지요 형편이니까  그게 뭐인가? 그게 자기 현실이라. 우리 현실은 여러 가지 닥치지 않습니까? 우리  현실은 사람도 닥치고 물건도 닥치고 일도 닥치고 원수도 닥치고 사랑도 닥치고  마구 정이 기울어져 못 견디는 애정도 닥치고 별별 것이 닥친다 말이오.

 그것이 우리 현실이니까 거기서 내가 천태 만상의 그 현실을 닥치는데 그걸 가지고  성전 지어라. 천태 만상의 현실을 닥치는데 그 현실은 네가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안할려고 하는 그 애쓴 그 현실이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복종 안할려고 하는 그  현실이 되고, 그 영감을 소멸하지 아니한 현실이 되고 영감에게 복종하는 현실이  되고, 그 모든 현실은 네가 사람 만나도 그 사람 만난 그게 사죄의 현실이 되고  칭의의 현실이 되고 또 하나님과 한 덩어리 돼서 하나님께 쓰여지는 그 현실이  되라. 그것을 가리켜서 나무를 베어다가 전을 지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어찌됩니까? 그리하면 그로 인해서 네가 어떤 현실을 당할  때에 여기서 내가 말씀을 어기지 않겠다, 여기서 내가 말씀대로 내가 복종하겠다,  여기서 내가 말씀이 있으면 그 안에 말씀보다 더 강하게 그 속에 영감이 있습니다.

영감을 내가 소멸하지 안하겠다. 영감을 복종하겠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께 붙어서 하나님 내가 뭐하겠습니다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그러고 보니까 부인이 돼. 자꾸 그래 하다 보면 이제는 실행을 많이 할려고  애를 쓴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게 됩니다. 그 누구에게 교만할 수가 없어. 교만한  거.

 아이고 다른 사람이 있다가 '나는' 이렇게 하면 교인들이 와 가지고 '나는 이래  범죄를 했으니' 이래 쌓으면 그래 생각하기를 '아, 너는 깨끗하다. 너는 그것밖에  없으면 참 깨끗하다. 나는 네 억억만 배도 더 범한 자다. 범죄한 자고 억억만도  실수가 더 많다.' 왜? 자기가 성전을 지을라고 해 보니까 그게 나왔지 성전  지을라고 하지 안할 때는 제가 제일 천하의 제일 의인이었는데 지을라고 하다  보니까 그게, 그래 기독교는 의인될라고 하다 보니까 죄인 됐고 하나님께  복종할려고 하다 보니까 말씀 어긴 사람이 됐더라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그렇게  애쓰는 사람이 많이 어겨 그런 게 아니라 복종을 할려고 복종 표준을 삼으니까 자꾸  불복종이 자꾸 나오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지 않고 어길 표준을 삼으면  자기에게는 자꾸 하나님 말씀 하나를 지켰으면 지킨 것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말인데.

 이래서, 네 현실에서는 성전 지을라고, 네가 오늘 사람을 만났는데 원수를  만났는데 거기서 성전을 짓는 나무를 베고, 또 네가 오늘은 사랑하는 자를  만났으니까 그만 사랑에 기울어져 가지고 그래 사랑하는 자를 만났는데도 거기서  성전 지을 재료를 마련하고. 또 네가 돈을 만났을 때에도 성전 지을 재료를  마련하고 네가 어떤 권세를 만났을 때에도 성전 지을 재료를 마련하고, 네가 지금  죽음을 만나는 그 죽인다는 것은 살해를 만나, 죽인다는 것은 살해를 만났으니  얼마나 무서운가? 그 죽음을 만났을 때에도 죽음을 내가 두려워해 가지고 그  죽음에서 성전 지을 재료를 만들고 이것입니다.

 그러면, 성전 지을 재료는 세 가지 종류로 세 가지 단계로 재료를 만드는 것이요,  이래서 내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안할란다. 여기서 영감에 내가 복종 할란다. 이  다음에는 '주여 내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마지막에는 '살든지 죽든지 당신의  뜻대로 하십시오' 당신의 계명대로 당신의 소원대로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그저  일편 단심 당신이 나를 마음대로 당신 마음대로 쓰시는 그 쓰여지는 거, 당신의  지체가 돼 가지고 당신에게 완전히 쓰여지는 이것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된다  그거요. 이렇게 하는 이것을 인해서 나무를 베어다가 전을 건축하라.

 내가 그로 인해서, 그 성전 지을라고 하는 네가 성전 지으려 하는 그걸 인해서  내가 기뻐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기쁨이지 딴것이  기쁨이 아닙니다. 자기가 주님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현실에서 성전 지을 재료를 마련하는 거, 연보를 해도 거기서 그 성전 지을 재료,  원수를 만나도 기쁨을 만나도 자기가 날마다 범하지 안할 수 없는 그런 범죄를  만드실 때에 그때에 거기서 성전 짓는 재료를 네가 마련하면 그게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그거요.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그로 인해서 내 기쁨이 되고 내가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영광 얻는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영광 얻는다 말은 하나님이  그까짓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러면 영웅 될 게 있겠습니까?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죽지 안하고 나왔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들어가도 타지  안하고 나오니까 '아이고 이 하나님 참 계신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이 인간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으로서 '아, 하나님이 이렇게 능력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그렇게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타나서 인간들이 '아이고  아무것이가 섬기는 그 하나님이 두렵다. 그 하나님께 걸려 가지고 하나님께 거리껴  가지고 저렇게 모두 다 당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데 어떤 사람이 그거  방해를 하다가 어떤 사람이 그 어떻게 하다가 그 나라가 깨졌다, 절단 났다.'  이렇게 그 내가 성전 짓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세밀하심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참 그분이 주권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의 주권 하심이 나타나고 그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랠 그 하나님으로서 이렇게 보여준다 말이오. 하나님이 나타나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신다. 그런고로 과연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다. 크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모두 우주를 다 당신이 주관하고 계시는데 당신이 주관하고 계시는데  당신이 주관하고 계시는 걸 뭘 보고 아느냐? 하나님께 성전 짓는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거는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신다는 것을 볼 수 있겠더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광이요 능력이요 축복인 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남으로서 하나님의 목적이 영광을 모든  사람이 돌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서 돌렸고 하나님의 영광만 돌렸으니까  하나님은 영광스러워졌습니까?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인해서 다니엘도 영광스러워졌습니다. 아마 그때는 그 나라에서  다니엘을 제일 영광스럽게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존대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네가 산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지어라.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내  영광을 드러내리라 하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우리가 오늘 아침에는 성전 짓는 것이 뭐인가? 예수님의 세 가지 사죄를  내가 안 벗을라고 안 뺏길라고 입을라고 애를 써서 입어지는 것이 그것이 성전이  지어져 가는 것이요, 세 가지 사죄를 다 입어서 주님이 완전히 나를 주관하시고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주관을 당해서 나는 내 주관이라 하는 거 틀린 거 하나도  없고 당신이 나를 주관하게 되는 그것이 성전 완공입니다. 준공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역사하시니까 그 역사 하심이 내가 말한 이게  내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역사 하셔서 역사 하는 게 내 입으로 통해  나왔다. 그러면 내 입을 당신이 사용했으니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이랬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했소.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다. 내 안에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 일이 내 입으로 나와 가지고 내 입이 움직이는 것은 아버지가 일하시는  아버지가 사용하는 나는 그분에게 사용 당한 것뿐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와 같이 완성하신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러고 떠나기 전에  주님이 내 안에서 완전히 주관하시고 나는 그분에게 완전히 주관을 당해서 나는  내가 주관 당해서 내가 순종해서 뭘 해야 되겠다 그게 아니라, 전지 전능의 당신이  나를 붙들고 역사 하는데, 내라는 주관이 나 이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인데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것이 완전히 없어지니까 둘째 아담이 완전히 주관해 가지고  이것을 자유 자재로 할 수 있는 이것이 성전 준공입니다. 이 일이 우리가 죽기 전에  다하는 거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해 가지고 죽기 전에 이 성전 준공이 완성해 가지고  간다면 이거는 완전 성공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성전 준공을 하면 복 준다는 말을 하지 안했고 기초를 쌓을 때에  네가 기초를 놓을 때에 놓기 전과 놓고 난 후와 보라. 다르다 말이오. 이 성전 짓는  데 애를 쓰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복을 주느냐? 복을 주시기를 말씀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이렇게 성전 지은 자,  하나님의 성전 지은 자 그자를 통해서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성전  지은 자 그 자의 이목 구비 수족, 지정의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한하심이  환하게 다 나타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하나님의 권위가 나타나지,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타나지,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지 이러니까 아이고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로구나 하여서 이 전에 내 영광이 충만케 하겠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는 이 약속이니까 깨닫고 여기 주력할 일이지 여기는  주력하지 안하고 자기가 땅 위에서 이 성전 짓는 일을 함으로서 부자가 되고 성전  짓는 일을 함으로서 정권자가 되고 성전 짓는 일을 함으로서 높아질지라도 그 성전  짓는 일을 하니까 당신이 그래 하신 것이지 내가 성전 짓는 일을 미뤄 두고 세상에  돈이 좋다. 권세가 좋다, 지위가 좋다 이렇게 꿈꾸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잠자는  사람들이요 꿈꾸는 사람들이요 살아 있으나 속에 생명은 있지만 하나님과 연결은  있지만 실은 연결된 활동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잠자는 사람이요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욕심을 가지고 무슨 소욕을 가지고  우리가 노력을 하고 무슨 수입이 우리 수입인가? 성전 건축되는 이것이 우리의  수입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래 엊저녁에 OOO 목사님이 설교할 때에 나는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OOO  목사님이 이번에 OOO 교회 가 가지고 그 은혜를 많이 끼친 것이 분명합니다. 그  받은 사람들이 다 모두 더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이곳에 좋은 샘 있다. 그러면 이  생수에서는 우리가 만족하고 만족하고 영육이 만족하고 오늘도 만족하고 내일도  만족하고 환난 가운데서도 만족하고 죽음 속에서도 만족하고 감옥 속에서도  만족하고 언제든지 만족하고 만족하고 넘치는 그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것은 예수  안에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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