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일곱 가지

 

1982. 6. 10. 목새

 

본문:베드로전서 2장 1절~5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5절에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산 돌같이라는 말은  예수님같이라 말입니다. 예수님같이, 예수님같이 되어, ‘산 돌같이’  예수님같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그러면 이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보이지 않는 교회.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성전은 언제 말한 대로 하나님이 거처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이 거처하는 집,  그것은 곧 우리의 인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우리가 제사장 되어져 가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할일입니다.

지난 밤에 보이는 성전과 보이지 않는 성전은 하나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보이는 성전과 보이지 않는 성전,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이것은  하나는 외부 외모요 하나는 내모.

그러기에 잘못하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이렇게 분리시키기 쉽습니다.

물론 분리는 따로 딴것으로 되어 있지마는 실은 그것이 하나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은 첫째가 영감, 영감은 보이지 않는 성전이요, 또 우리가  신구약 성경 도리를 받았는데 이 진리는 보이는 성전입니다. 보이는 성전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한다 할지라도 영감 없으면  소용없다 그거요. 진리 말씀대로 행하는 데에는 그 속에 영감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는 말은 곧 우리가 진리대로 사는 그것만 살고 속에  영감이 없으면 외식입니다. 진리대로 사는데 어찌 영감이 없을 수 있습니까?  없는 것, 진리대로 살아도 영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일을 지키는  그것도 진리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지마는 그 사람 주일 지키는 데에는  성신의 감화는 동행하지 않습니다. 별별 내용을 가지고 주일을 지킬 수 있다  말이오. 주일을 지키는데 안 지키는 사람보다 흉측할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기에 자기가 진리대로 행하는 데에 영감이 역사해야 되고, 또 영감을 받아서  영감대로 하는 영감 그것이 사람 눈에 환하게 보이게 진리대로의 행동이  되어져야 되지 그거 안되면 그것도 하나의 명상에, 하나의 신비주의에 지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성신의 감화 받은 것은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이  진리대로의 껍데기가 되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알맹이 보이지 않는 성전은 영감, 보이는 성전은 66권 도리의  진리.

둘째로는 보이지 않는 성전은 중생된 영, 또 보이는 성전은 믿는 육, 믿는 육.

또 셋째는 보이지 않는 성전은 자기, 보이는 성전은 다른 사람. 자기 위한 것이  다른 사람 위한 것이 되어야 그게 바로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하는  그것이 자기를 위하는 게 되어져야 그게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당신을 깨끗게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넷째로는 보이지 않는 성전은 천국, 보이는 성전은 이 세상. 그러면 천국 복을  받는 것이 세상 복을 받아야 되지 천국 복만 받는다고 세상 복을 받지 않는 것은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예수 믿으면서 세상 복만 받고 천국 복  못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복을 받는 그  알맹이는 천국 복이 되어야 됩니다.

다섯째는 보이지 않는 성전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보이는 성전은 자기의  뜻.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자기 뜻이 되어야 돼. 자기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돼. 이것을 가리켜서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그러면 그 뜻이 다 완성된다 그말이오.

뜻대로 된다 말이오. 그거는 뭐이냐? 내 뜻과 네 뜻이 하나, 일치되는 때가 있다  그말입니다. 일치되는 그것이라야 바로 됩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을 볼 때에 ‘내 생각에는 이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는구나. 그러니까 내 뜻과 주의 뜻이 다른데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지’ 할 때는 믿음입니다. 그거 믿음 생활이오.

보니까 자기 뜻이나 하나님의 뜻이나 일치 생활입니다. 보니까 자기 뜻에도  ‘아, 이래야 되겠는데 또 하나님의 성경 말씀, 또 하나님의 뜻도 그렇게 해야  된다’ 이래 될 때에는 그거는 믿음 생활이 아니라 자유 생활입니다. 자유 생활.

제 생활 제 하는 것이오. 그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면서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그 일이 내 입으로 통해서 나왔다. 내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이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른데 자기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 삼을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자기 뜻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뜻 세우는 것이 자기 뜻이라.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이 일치되어질  때에 그때에 그것이 영생하는 자유의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또 보이지 않는 성전은 영원이 이루어집니다. 지금 현재 생활에서 영원이  이루어져, 영원. 영원이 이루어지는 이 영원이 보이지 않는 성전, 또 현재라는  눈에 보이는, 현재의 볼 수 있는 이것이 보이는 성전.

또 일곱째는 십자가의 죽음, 십자가의 고난인데 고난 이것이 영생이 됩니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요,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 것이요, 또 욕얻어 먹는 게  칭찬받는 것이요, 빼앗기는 것이 얻는 것이요, 이제 빼앗기는 것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 빼앗기는데 그것이 얻어지는 것, 빼앗기는 것, 빼앗기는 것이 보이는  성전, 얻는 것이 신령한 성전. 욕을 얻어 먹는데 이것은 보이는 성전 실은  그것이 영원한 칭찬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보이는 성전, 십자가로 말미암아 부활의 영생을 얻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 이 양면이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여기서 저것이  되고 저기에서 이것이 되는 이것이 돼야 됩니다. 이 설명은 좀 복잡하겠습니다.

이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안식일을 그렇게 잘 지켰는데, 안식일을 잘  지켰는데, 안식일을 얼마나 잘 지켰소? 안식일을 잘 지켰는데 안식일 지킴으로써  안식일을 범해 버렸습니다. 그들이 안식일로 인해서 주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소.

그러면 그들은 보이는 안식일을 지키는데 신령한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더라  그거요. 그러니까 그들이, 보이는 성전은 진리라고 했지요. 그러면 구약 성경  진리대로 하기는 했는데 그것이 영감에는 반대됐더라 그거요.

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인데 어떤 사람은 보이는 그 안식일을 지키는 이것에서  영감과 연결되다 보니까 이 안식일이 변해서 주일이 되는 것을 그때 느꼈기  때문에 그들은 안식일날 38년된 병자를 고치고 나면서 눈먼 자를 고치고 하는 그  주님을 하나님의 계명인 4계명 범하는 역사로 보지를 아니하고 그것이 참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령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인 것을 깨닫고  그들은 환영했더라 그거요.

이러기에 그 사람이 껍데기 신앙생활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안됩니다. 껍데기 신앙생활 하는 데에 알맹이 신앙생활이 돼야 된다는 것,  껍데기 신앙생활은 자기 마음 자기 생각 가지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는 것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네가 하는 일이 옳다, 참되다’ 해서 동행을 해  주셔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보이는 이 진리대로의 생활을, 보이는 진리대로의 생활을 하는  데에 하나님의 성령이 동행해 주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자기가 진리대로  생활하는 이 생활에 성령이 동행 안해 주면 안된다 말이오. 성령이 ‘아! 너는  됐다. 내가 함께 하겠다’ 하고 동행 안해 주면 안돼요.

그러면 보이는 신앙생활은 무엇으로 합니까? 무엇으로 해요? 몸으로 하지요.

마음과 몸으로 하지요. 마음과 몸으로 하는데 마음과 몸은, 마음은 아무리 여기  하면서도 실은 자기의 본능과 본성은 딴걸 할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면 마음과 몸으로 하는 거기에 참 자기의 인격을 다 기울일 때에 성령은  인정하시고 동행해 주십니다. 몸뚱이로만 암만 해 봐도 마음은 딴데 둘 수 있고,  마음과 몸은 같이 한다 할지라도 동기와 목적과 소망은 다를 수가 있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가지고 마음과 몸으로 할 수 있다 말이오. 자기 중심이 돼 가지고  할 수 있어. 이러니까 그러면 성령이 동행해 주지 않아요. 자기 중심 가지고  해서는 안돼.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청지기 비유에 나는 주의  것이라 하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의 것이므로 주를 위하여 주의 뜻대로 하는 이  구속의, 구속의 토대 위에 바로 서야 성령이 동행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이게  안되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육으로 사는 생활이 중생된 영의 생활이 되어야 된다 그말이오.

영의 생활은 뭐인데? 바울이 말하기를 ‘겉사람으로는, 겉사람은 죄의 법을  순종하고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한다. 이 둘이 들어서 시비를 해서  괴롭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속사람 참사람, 그러니까 속에서는  ‘아무래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는데’ 이러는데 자기 껍데기에는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고자 하는 그것이 있어서 둘이, 자기  속에 두 싸움이 싸우는 걸 말했다 말이오. 자기 속에서 두 사람이 있어 가지고  속 사람은 이렇게 하자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 하는데 또 껍데기 사람은  이 세상 법칙대로 살자고 이 둘이 시비하는 것을 로마서 7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시비가 있는데 자기가 살려고 하는 이 육의 생각 이것이, 육의  생각 이것은 영의 생각을 맞이해서 영의 생각과 일치가 되어야 되고, 육의  생각은 영의 생각에 도달이 되어야 이것이 비로소 바로 되는 것이고 참 성전이  되는 것이고 또 영의 생각은 이 육의 생각과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이러니까 알맹이와 껍데기가 일치되어야 된다. 보이는 성전과 보이지 않는 성전  둘이 있는데 둘이 일치가 되어야 된다. 보이는 성전에서는 꼭 보이지 않는 성전  역사를 힘써라. 또 보이지 않는 성전 역사에서는 보이는 성전 역사를 힘써라.

네가 영감을 받았느냐? 네가 영감을 받았으면 영감받은 것이 사람들 눈에 환하게  보이게 진리의 법칙대로의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라. 그거 안되면 헛일이다. 또  진리 법칙대로의 행동하는 그 행동이 그것만이라면 외식이다. 그것이 성신의  감화 감동, 성령이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의 생활이 되도록 해라.

다시 말하면 너 혼자 시작한 생활이 주님이 동행하는 생활이 되어야 된다.

주님이 하고자 하시는 그 역사가 너와 동행하는 것이 되어야 된다. ‘문을  두드리노니 열어라 그러면 나는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나는 너를 통해서 성공하고 너는 나를 통해서 성공하자.’  이것이 결합이 되어야 됩니다. 좀 어려운 말이기 때문에 이만치만 알고,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권찰회 있는데 권찰회 안 하겠습니다. 10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중간반 반사들도 봉사하는 일을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다  세수대야든지 뭐이든지 가지고, 봉사하는 것이 오늘 아침에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많지는 않으나 봉사하겠습니다.

저 ○○○집사님 비니루를 저쪽부터 까이소. 저 삼층집 있는데 깔고, 그리고 못  빼는 연장 빠루가 있는 대로 전부 다 내어 놓이소. 못 뺄 걸 내놓고, 그러면  남반들은 못을 빼고, 뺄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여반들은 여기 잔토 그것을 이제  메울 것입니다.

우리 이번 집 짓는데 우물 좋은 것 하나 됐습니다. 여기 있는 우물 같은 아주  그런 좋은 우물이 되어서 암만 퍼 써도 될 수 있는 그런 좋은 우물이 하나  생겨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봉사하는 일을 아직까지 시작을 안해 놓으니까 모두 주저주저 해서  못해. 그러나 어떤 분은 일찍부터 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 하루종일 일해 놓고  난 다음에 남은 시간 하루 두 시간, 어떤 사람은 하루 세 시간, 한 시간, 또 반  시간도 좋습니다. 반 시간도 없는 이는 왔다가 ‘아이구 나는 반 시간도  안되니까’ 뭐 바쁜 일에 뭘 해 놓고 퍼뜩 쫓아와 가지고 나무 한 개 뻐뜩 들어  들여 놓고 가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그저 10분도 좋고 20분도 좋고  하루도 좋고.

우리 ○○○집사님은 시작한 그날부터 이제 성전 이 건축 완료할 때까지 자기는  봉사하기로 작정하고 요새 기쁨으로 와서 하는데 어제는 뭐 몸치가 났다는가  그랬는데 오늘 나았는지 모르겠소. 그만 죽자껏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가서  보면 여러분들 자기가 돈 가지고 암만 치료할려 해도 안되는 병이 치료가 되어서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할 것 얼마 안돼요. 안되어도 우 나서서 한번 시작을 하자  그말이오. 가 가지고 무엇이든지 가져오고, 없는 사람은 그만 옷자락에 이걸  흙을 싸 가지고 붓자 그말이오. 그러면 손으로 움켜다 붓고, 뭐 많은 사람이  움켜다 부어도 됩니다.

10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이제 봉사하러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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