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밖마당-세상적 평가


선지자선교회 1983년 8월 22일 월새

 

본문 : 계11:1-2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어제 주일학교 중간반 공과도 이 말씀을 가르쳤고 또 들으니까 오후에 주일학교  예배 드릴 때도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뭐 거게 대해서  지식적으로는 그만치 알면 됐는데 우리가 믿음과 화합이 돼야 실상이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여게 대한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가 인정하지 안하면  소용없습니다. 인정하지 안하면 이 말씀이 자기를 심판이나 하지 자기 구원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과 화합을 해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자기가 알고는 그대로 인정하는 그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알고 인정치 아니하면 하나님을 거짓되다 하는 자이기 때문에 아는 것만치  자기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인정치 아니하면 원수가 되고 또 자기가 인정을 하면서 행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요 인정하고 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자기를 정죄해서 자기를 이 말씀이 심판합니다.

 알고 인정치 안하면 하나님과 대적이 되어지고, 하나님을 거짓되다 하기 때문에  대적이 되어지고 또 인정하면서 행하지 아니하니까 자기가 인정한 대로 이  말씀이 자기를 심판합니다. 너도 이렇게 알지 않느냐 하는 이 말씀이 자기를  심판을 하고, 인정하고 자기가 행할 때에 하나님을 '참되다 인정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요 하나님으로 자기의 모든 유익을 삼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아라. '내게 주어' 하는 것은 사도  요한에게 준 것인데 사도 요한에게 준 것이나 사도 요한에게만 준 것이 아니고  이 성경 기록은 성령이 기록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을 성령 기록이라 그렇게  천하에 있는 성도들이 다 그렇게 믿습니다. 성령님이 사람을 통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원문은 정확무오하고 획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기자들이 말하는 것은 사람이 껍데기는 말했지마는 속은 알맹이  성령이 말하시는 것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님에게 하나님께서 척량하지 말아라 척량해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은 누군고 하니 신약 시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들을  법적으로는 입었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법적으로는 입었지마는  실상으로는 입지 못한 우리들을 실상으로 예수님의 이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구속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입히는 책임을 지신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의 구속의 보증자입니다. 보증. 연대보증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속을 책임진 자이신데 책임진 자에게 '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아라'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만 척량하라' 척량하라 말은  그것을 책임지고 살피라는 말입니다. 살피라, 관리해라. 관리해라, 간섭해라,  그것만 책임을 지고 그것이 가로 세로 재어서 정확하게 재라 하는 그 척량하라  말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을 예 정하신 것이 있는 그 예정대로 되나 안 되나  하는 그걸 세밀히 척량해서 간섭해서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정하신 그 구원대로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그것을 세밀히 간섭해서 네가 완성을 이루도록 해라.

 밖마당은 너에게 책임이 없으니까 그게 어떻게 됐나 하는 그것을 네가 심사하고  관리하고 또 책임지고 조성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을 이루도록 그렇게  책임 안 져도 좋다. 그건 책임지지 말고 그거는 버려 두라. 다만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만 네가 책임지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인지,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각자에게 정하신 모든 면이 다 그대로 되었는지 그것을 척량하라,  척량하라 말은 재라 말이요 심사하라는 말입니다. 심사   이러기에 그 사람이 예수님의 사죄받은 사죄에 대해서는 그게 바로 됐는가  심사해 봐라. 그게 참으로 예수님의 사죄를 입어서 사죄를 입고 벗지 안해서 죄  없는 자인지, 또 하나님으로 피동되는 자인지, 하나님에게 속해서 그분에게  화친해 가지고 그분으로 인해서 사는 자인지 그걸 세밀히 한번 책임지고  조사해서 미비점 미달점이 있으면 그것을 연대보증 선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공로가 책임지고 그것을 완성을 하도록 하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척량하라는 이것은 아주 우리에게는 마지막에 그것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대로 완성됐나 안 됐나 심사해 봐라. 그러면 그 심사하는 것을 그것을  상관없는 자가 심사하면은 정죄적인 심사가 되겠습니다. 심사해 가지고 이거는  틀렸다 심판적인 심사 정죄적인 심사지마는 그것을 책임지신 완전자 전능자가  그것을 심사하는 심사 자가 되니까 그 심사해서 미비점은 책임진 보증인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공로가 그것을 책임지고 완성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그를  척량하라 해서 척량 속에 들어갔으면 그는 하나님의 전능의 성령이 미비점을  책임져야 되고, 진리가 미비점을 책임져야 되고, 주님의 공로가 미비점을  책임져야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징계를 하든지 어떤 현실을  주어 경험하고 체험하고 연단을 하든지 어쨌든지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하나님처럼 완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함을 입는 그런 자가 되도록 네가 책임지고  해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척량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척량하라는 것은 이 성경 기자의, 기자가 내라 이랬어. 성경 기자 '내게  줬다.' 성경 기자에게 주어서 내라 했는데 성경 기자는 사도 요한이 사람  보기에는 사도 요한이지마는 실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님에게  줬다 그말은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보증자인데 이 셋에게 줬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참 하나님의 심판인 심판만이 아니고 심판을 예비하는,  예비하는 책임에서 심판까지를 다 포함한 것이 척량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에 가 가지고 심판받을 걸 책임진 자가 거기 딱 들어맞느냐? 이 많은 게  있지마는 이런 것은 뭐 그만 버려둬라.

 이것은 어떻게 되든지 이것은 기본구원이나 있지 그 나머지기는 구원 얻지  못하고 기본구원만 얻을 것으로 하지마는 네가 여게 얼마 이 소량인, 적은 양인  이것은 완전이 돼야 된다. 완성이 돼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심판에 하나도 걸릴  것이 없도록 그렇게 네가 완성 완제를 해라 완전히 네가 제작해라. 하는 그런  책임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보다 성전 밖마당이 큽니다.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양보다 성전 밖마당이 큽니다. 성전 밖마당이 크되 구원에 드는  양이 큰 것이 아니고 구원에 들지 못할 양들이 큰 것입니다. 구원에 들 양은  성전 밖마당에게는 건설구원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에 참여할 구원에 합격될  그 양으로 말하면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거게만 구원에 합격될 양이 들었지 그  밖마당은 그렇게 크지마는 거게 합격될 양은 하나도, 먼지만한 것도 들어 있지를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는 그것이 큽니다. '그러나 그것은 건설구원은  얻을 것이 하나도, 전설구원의 양은 하나도 없지마는 기본구원의 양은 있습니다.

건설구원의 양은 하나도 없고 기본구원의 양은 큽니다. 많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단정을 지울 수는 없지마는 하늘나라 가면 건설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간 사람은 소량이고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기본구원만 얻어 가지고  그저 가서 아무 무용지물로 되어 있는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가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주 밖마당이 큽니다. 크나 밖마당 큰 그  양은 멸망할 양으로 큽니까 구원 얻을 양으로 큽니까? 멸망할 양으로 크지 구원  얻을 양은 건설구원적으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지마는 기본구원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구원만 들어 있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는  것이나 사람들 보기에는 그것이 큽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아주 성전 밖마당이  큽니다.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이 건설구원이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건설구원이 사람들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안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일서 3장에, 세상이 모르는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것.

 기본구원은, 그것도 사람이 모르요. 기본구원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안합니다.

안 보입니다. 기본구원이 보입니까? '저 사람이 기본구원 얻었다'하는 그것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마는 그저 짐작을 하는 것은 '저게 믿지는 안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라고 믿기는 하고 믿는 행위는 하나도 안 하지마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는 믿으니까 저게 아마 택한 자는 택한 자인갑다.' 우리가  그래는 짐작을 합니다. 그런 구원을 이루는 것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성전 밖마당이 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만 그 양이 크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참 하나님의 심판에서 불타지 안하고 영원히 있을 건설구원이 되어  있는 것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사람들 눈으로 건설구원이 만일  보인다고 하면 성전 밖마당에 건설 구원이 하나도 없으니까 저거는 건설구원은  뭐 큰 게 아니라 저거는 없는 것, 하나도 없다 이렇게 보이지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 보십니다. 또 성령님도 잘  보십니다.

 또 누가 잘 봅니까? 그걸 누가 잘 봅니까? 하나님이 잘 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잘 보시고 또 그 다음에는 누가 봅니까? 이제 진리는 인격 존재는  아니지마는 진리는 거게 대해서 정확하게 또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 압니까? 그 다음에는 건설구원을 이룬 사람은 그 다음에  이루지 못한 자기보다 후배 된 사람은 잘 압니다. 자기보다 앞선 사람은  모릅니다. 앞선 사람의 구원은 자기 눈에 안 보이요. 자기만치만 보여집니다.

 예를 들면 말이요, 건설구원을 이루는데 요거 이룬 사람은 요것 이룬 것만치는  다른 사람들이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있는 것이 보여 집니다. 그러면  이다음에는 하나도 안 보이요. 요 사람이 힘을 써서 요만치 건설구원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이룬 것만치 보여 집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건설구원을  이걸 다 이루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의 건설구원이 얼마 정도 이루어 있다 이루어져 있지  안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선 사람은 뒤선 사람이 보이지마는 뒤선 사람은 앞선 사람의  것이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허무한 소리만 합니다. 핍박이나 하고 욕이나  하고 그러지마는 앞선 사람은 뒤선 사람이 '저 사람이 어느 정도 건설구원이  이루어져 있다. 저 사람은 아주 믿음이 사람 보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마는  말로 믿는 사람이요 또 그냥 껍데기 외식으로 믿는 사람이지 속에 알맹이 구원은  하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 앞선 사람은 신앙이 뒤선 사람의 그 신앙의 잘못되고  잘되고 어떻게 고쳐야 될 것을 압니다. 그러나 뒤에 있는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  하는 것이 항상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되고 그러기에 반대요. 그러니까  욕이오. 그러니까 이단이라 하요.

 그러기 때문에 이단이 정통을 이단이라고 하지 정통에 대해서 앞선 신앙의  구원을 이룬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욕하는 일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앞선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을 욕하지 안하고 '뒤에 있는 사람이 앞선  사람을 욕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앞선 사람이 뒤선 사람을  멸시하고 욕하고 뒤선 사람은 앞선 사람에게 무조건 맹종하는 것이 그게  세상입니다. 정 법칙이 반대돼 있소.

 성전 밖마당보다 큰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큰 것은 뭐이요?  세상. 녜.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큰 것은 세상이오. 세상에는, 제일 큰 세상에는  속에 기본구원도 건설구원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이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에게 대하여는 미련한 것이라,  어리석은 것이라. 멸망하는 지혜는 있지마는 구원 얻는 지혜는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세상이, 사람들 보기에는 제일 큰 것이 세상입니다. 그들  보기에는. 세상이 제일 큰 것은 '저렇게 권세가 크다. 저렇게 돈이 많다 저렇게  학교가 많다. 저렇게 병원이 많다.' 그래 제일 큰 것이 성전 밖마당보다 세상이  큽니다. 기독교 가운데에 신신학파 인본주의 세상주의 이런 교회들, 아주 천주교  저런 교회는 그거는 참 세상주의요 인본주의요 하나님의 것은 완전히 뒤바꿔져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게서 개혁하려고, 이 천주교는 그때는 성경 못 보게 했소. 성경  보면 죽였습니다. 성경 보면 죽였어. 성경 보는 자는 죽이기 때문에 성경이  없었고 성경을 숨겨놓고, 숨겨놓고 있다가 나중에 조사해 가지고 들키면 죽기  때문에 다 성경 다 내놓고 성경 안 봤습니다. 예배를 안 봤습니다. 기도는 못  합니다. 다만 거게서 저거 천주교에 유리한 그런 성구 몇 절을 그것을 주문  외우듯이 외웁니다. 자꾸 저거 삐뚤어진 그 교권자, 삐뚤어진 교권자 들에게  맹종하지 안하면 안 되는 그런 성구 몇 가지만 빼 가지고 자꾸 외우고, 그러면  기도하는 일 없소. 그것만 외우면 돼요.

 그것만 외우면 구원이라는 것은 교회서 주고 안 주는 것이지 구원은 다른 데  있지 많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주문만 외워 가지고 그 교회, 천주교라는 그  교회에 인정받으면 바로 그것이 막바로 구원이라 이렇게 된 것이 천주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또 요새는 마귀란 놈이 그 수단 가지고는 안 되니까 확 변해져  가지고 지금 달라지기를 합동 성경을 번역을 가지고 이래 하자. 우리 천주교도  봐라 예배 본다. 우리도 성경 본다. 우리도 기도한다. 이렇게 합니다.

 이단이 정통을 미혹시킬라 할 때에 처음에는 이단하고 정통하고 만나면은 아주  검고 흰거와 같이 정반대 됩니다. 이러니까 이단자가 정통자를 따라 올라고  변해지는 게 아니라 이단자가 정통자를 이단으로 끌어들일라 하니까 '우리는  이런데 너거는 검으니까 아니지 않느냐?'이러니까 '우리도 아니다. 우리도  희다.' 이러면서 이렇게 변질합니다.

 여게 말세 그리스도교라고 그 교는 그거는 아주 이단인데 그 사람들은 우리가  보는 성경을 보지 안하고 몰몬 성경이라는 그 성경을 보는 아주 기독교가 아닌데  그는 기독교라는 꺼풀을 입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삼십 년 전에 제가  서부교회 처음에 오니까 몰몬교가 어떤 미국 사람이 두 사람이 와요. 또 한국  사람이 둘 따르고 네 사람이 와. '저 미국 사람이 어데 저래 오노?' 하고서  설교를 하면서 설교를 다 하니까 거기서 듣고 있어. '저 사람이 은혜 받으러  와서 은혜를 받나?' 하는 그런 생각을 제가 가졌어요. 왜? 미국 선교사들이 오는  걸 내가 다 봤기 때문에 '제가 와서 이 설교를 들으면 좀 변해지고 좀 뒤벼질  거다 하고서 그래 떡 보니까 뭘 진실되게 들어. '저 은혜 받는 가보다' 나는  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설교를 마치고 나오니까 떡 인사를 하고서 그래 몰몬교를 선전을  합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 '몰몬교는 경도 우리와 같이 다른 몰몬경이 따로 있어  가지고 보지 않느냐? 그거 기독교가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기독교에서 다른  교로 개종하지를 안하겠다. 개종하지 못한다.' 이라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성경  봅니다. 보십시오.' 성경을 딱 전부 한 권씩 아듬고 왔다 말이오. 한 권씩 다  손에다 쥐고 왔어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미혹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쥔 것이지  성경 보는 사람은 아니고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성경을 봐도 '요  사람들이 요래 가지고 있으니까 요걸 어째 성경을 요래 가지고 꾀워서 넘겨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성경 보지 그런 거는 아니라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천주교는 그렇게 이 개혁교를, 너무 개혁교는 부홍되고  천주교는 더 늘어나가지 안하고 이 천주교가 자기네들이 이 개혁교에서 그만  성경을 알아서 아니라는 것이 표시가 나니까 그것을 캄프랏치 하기 위해서  예배도 본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성경이 아마 거의 없어졌을 것입니다. 지금 천주교에서 읽던  성경을 가진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을 가서 보면은 그 사람들이 어떤 절수는  외우고 어떤 절수는 다 묵살한 그것이 천주교에서 보는 성경에는 붉은 글로 써  놓은 게 있습니다.가다 보면은 붉은 글로 써놓은 그 절수가 있고 다른 절수는  보통 이래 먹으로 썼는데 붉은 걸로 쓴 것은 그 사람들이 주문으로 읽는  주문으로 주문, 똑 미신자들이 주문 읽듯이 주문으로 읽는 그 성구입니다.

과거에는 그것만 읽었지 성경책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신부들만 성경 봅니다. 신부들만 성경 보고 다른 이는 안 보는데 신부들이 성경  보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천주교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지  성경을 인정하고 성경을 따라오기 위해서 성경 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루터도 신부인데 루터는 성경을 천주교화시킬라고 천주교를 세우기  위해서 이 개혁교 종자 있는 것을 천주교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보지 안하고 그  사람은 냉정스럽게 양심적으로 성경이 뭐라 하는지 성경을 천주교화 시킬 게  아니고 성경이 뭐라 하는고 보자 하고서 성경을 보니까 사죄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사죄가 되어지는 것이지 마리아나 무슨 베드로나 이런 사람 섬긴다고  해 가지고 대속이 되는 것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만  된다는 요 발견 믿음으로만 사죄함을 받고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시대 그것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말이오. 모든 사람들이 다  세상이 이래 돼 가지고 있는데 그걸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발견해 가지고 개혁의 깃발을 든 것이 루터입니다.

 루터도 그 사람이 그 전에 이 개혁할라고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십만 명이 죽었어, 이 개혁할라 하다가. '네가 이 개혁할라 하는 이거,  천주교에 반대되는 것을 회개 안 하면 죽인다.' 죽으면서 외친 사람들이 뭐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 가지고 이 개혁을 해 나온 건데 오늘은 이  인간들이 천주교하고 개혁교하고 다 이거 합동 번역하고 통합하자 이렇게 말하는  이자들이 다 썩은 것 아닙니까? 완전히 썩었습니다. 완전히 썩고 이 합동  번역할라 하는 이것을 좋아서 용납하는 이것만 해도 썩었소.

 지난번에 여기 강단에 섰던 그 목사님이 좀 미국에 다니고 이래 다니니까 조금  하이칼라 신앙이 되기는 되고 이러나 그 속에 변하지 안하는 정조 있기 때문에  제가 올 때마다 꼭 세웁니다. 흑 거기 무슨 말이 나오는가 해서 세우는데 그분이  이번에도 '이제 합동 번역으르 한 성경이 있거들랑 다 불로 살라버려라. 이거는  천주교 저거에 맞도록 한 번역 할라 하고 개혁교는 개혁교에 맞도록 번역할라  하고 둘이 싸우는데 둘이니까 네 맘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둘이 하기로 결의가  됐으니까 너 반 나 반 그래 하자' 이러기 때문에 개혁 성경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그거요.

주장하는 중에, 성구 다가 아니고 그 성구가 열 성구가 만일 지금 천주교와  개혁교가 다르다고 하면은 열 성구 가운데 그러면 다섯 성구는 천주교 너거  따라가고 다섯 성구는 개혁교 따라가자 이래 가지고 개혁파에서 성경을 우리에게  바로 번역해 준 이 번역에 벌써 천주교 것이 반 틀린 천주교 것이 들어왔다  그거요.

그게 뭣 때문에 됐느냐?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느냐? 그것은 거게서 돈을 많이  주려고 하니까 이 돈 욕심내는 자들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돈 때문에  그렇게 했어.

 우리 한국에도 왜정 말년에는 다 정통 신학자들은 감옥에 갇혔고 또 외국으로  망명을 했고 그때에 송창근 박사라는 사람이 평양신학교를 그 사람은 신신학  대가리요 그 사람은 신사 참배 그런 것 다 하고 그 주장자인데 그 사람이  평양신학교 교장으로 그 사람을 일본 나라에서 앉혔습니다.

 송창근 박사가 앉고 난 그 다음으로는 채필근 박사라고 그분이 앉았는데 채필근  박사가 우리 한국에서 독서한 양은 그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독서를 제일 많이  했어 독서를 많이 했는데 독서가 들어서 저를 죽였어.

 채필근 박사는 제가 여기 신광교회 와서 집회하는 것을 그 사람이 신신학자인  줄 알고 어떻게 하는고 보자 하고 가서 참여해 보니까 생명 있는 말씀은 한  말씀도 없어. 전부 세상 말하고 있어. 기독교를 세상화시키는 운동을 하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왜정이 팔월 십오일날 다 패전하고 절단나고 난 다음에는 그때에  신신학을 다 박멸했습니다. 송창근 채필근 거게 속한 사람들이 전부 신사 참배  다 했는데 신사 참배 한 그것을 죄라고 안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거게서 속한  사람이 신사 참배를 다 했고 신사참배 안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거요.

 그러니까 안 한 사람들한테 머리를 안 숙일 수 없고 자복을 안 할 수 없고,  이러니까 신신학 세력이 꺾어지고 정통신학이 힘을 썼는데 그때 정통신학을  주장한 사람들이 내나 여게 한부선 목사님이 주장을 했고 또 신사 참배 안 한  사람들이 주장을 했고 또 저게 학자로서 박윤선 목사님이 주장을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함정에 빠져서 죽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내가 그 함정에 빠졌던 자이기 때문에 거기에 말목을 박아놓고  아무도 이 함정에 들어가지 마라 들어가면 죽는다 하는 것을 말하지 안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신사 참배라는 그 함정에 빠져서 죽었던 자이기 때문에 이제  내가 죽었으니 죽었다가 겨우 내가 하나님의 사죄로 살아 나오고 회개로 살아  나왔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이 신사 참배에 빠지지 말라고 내가 주장할 수밖에  없다.'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 신사참배에 다 굴했던 사람들이오.

 지금 제가 알기로는 고신에서는 신사 참배에 굴하지 안한 사람이 손명복  목사님이라고 송상석 목사님이 말하는 반소파에 속해 가지고 있다가 요번에  합동해서, 고소파와 반소파가 둘이 합동해서 합해졌습니다. 합해진 거게  들어왔는데 그이 한 분이 남아 있고 그 나머지기는 저거가 전부 신사 참배 다  했고 하라 하는 대로 다 한 사람들입니다. 그분 한 분은 안 한 사람이고, 한명동  목사님도 다 했고, 한상동 목사님이 안 했고, 송상석 목사님 그런 이도 다 했고  거게 뭐, 한상동 목사님이 안 했고 이인재 목사님이 안 했고 또 주남선 목사님이  안 했고 그때 손양원 목사님이 안 했고 그 몇 목사님들이 안 하고 다  했었습니다.

 그래, 신신학이 들어왔다가 8.15해방 후에 그 신신학이 대가리가 꺾어져 가지고  한국에는 신신학이 다 자복을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때에 마지막에 신신학  신학자의 제일 권위자가 김재준 목사라고 신학자 있는데 김재준 박사일 겁니다.

아마. 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한국에서는 신신학으로서는 제일  대학자입니다. 또 정통에서는 대학 자가 박윤선 목사님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그 대학자로서 둘이 다. '그러면 너거 둘이 한번 한 자리서  한번 설교를 해 봐라' 그래 가지고 그때 그 대중들이 모여 가지고 참석하고  있는데 김재준 목사 설교하는 거는 전부 이단입니다. 이러니까 설교할 때마다  '그거는 이단이요' 또 박윤선 목사 설교할 때는 '그거는 정통이요' 이래 가지고  그때 한번 구별한 일이 있었고, 저도 그때 그 자리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박형룡 박사라고 한국에서는 제일 신학으로는 권위 있는 자요 또 박윤선  목사님보다 앞선 사람인데 그 사람이 신사 참배 안 할라고 견디다 못 해서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저 만주로 망명을 하고서 이래 가지고 만주 가서 망명해  가지고 거기 있었는데 해방 후에 그 사람이 나올 생각을 가지지 안하고 있고  나올 길이 없고 이랬는데,  송상석 목사님이 그 공산주의 속에 들어가 가지고 박형룡 박사님을 모시고  올라고 생명을 내놓고 모시러 들어가 가지고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온 사람이  송상석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공로를 인정을 하고 그분을 다 이렇게  존대하고 참 다 그분들도 진리 위해서 생명 내놓은 사람들이오.

 나중에 그 사람들이 또 변해 가지고 예배당 소송 문제에 소송을 주장하기  때문에 나는 소송을 반대하니까 그 사람하고 나하고 이렇게 대립이 돼서 내게  대해서 욕 많이 했습니다. 많이 하고 마지막에 죽을 때는 나하고 서로  화친하고서 자기가 말하기를 '예배당 소송 이 소송은 내가 자손 대대로 내가  유언을 하고 하지 말라고 내가 하겠 다'고 그런 말을 저한테서 하고 많은 데  다른 데서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예배당 소송한 것이 그것이 절대 죄악이라 하는 것을 자기  입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이번에서도 그 소송을  한파, 한상동 목사님편에 있는 사람들은 소송을 주장했고 그 사람들은 '소송하는  것은 아니다.' 반소파가 됐습니다. 반소파가 됐는데 소송에 제일 주장하는 송  목사님이 반소파가 됐다 해 가지고는 다른 사람이 안 들을 것이기 때문에  반소파가, 주장은 가지고 있지마는 반소파 대가리라 해서 안 되니까 반소파  대가리는 송상석 목사님을 세우지 말고 석원태 목사님을 세우자 이래 가지고  세워 가지고 나가다가 그것도 두 쪼가리 나뉘어졌습니다.

 그 역사를 여러분들이 좀 아는 대로는 알고, 아마 그것이 죽어도 뒤에,  그러니까 고신에서 역사 내놓은 역사를 꾸며 놓은 것은 고신에 유익하도록  역사를 꾸밀 것이고, 총신에서 역사를 꾸며 내놓은 것은 총신에 유익하도록  역사를 꾸미고, 그러기 때문에 역사책에 기록해 있다 하고서 이런데 역사책에  기록해 있는데 이렇지 않느냐 하는 그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오. 다 역사책을  그걸 누가 꾸몄느냐? 자기 아는 것을 표준해 가지고 자기 유리하도록 꾸민 것이  역사요 모든 저서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모두 다  반거짓말이지 진실이 하나도 없다 그거요.

 그랬는데 박형룡 박사가 와 가지고 고려신학교 교장이 되고 박윤선 목사님은 그  다음에 부교장이 되고 이래 됐었는데 와서 보니까 실력 대결을 해 보니까 박윤선  목사님은 회개를 하고 새로운 새 움이 났고 박형룡 박사는 묵은 둥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만 설교를 해도 모든 청중들이 박형룡 박사의 설교보다도 박윤선  목사의 설교를 은혜 있게 들으니까 이 박형룡 박사가 거게서 교장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게 상당히 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거게서 그만 여기 부산에 있는 고려신학교를 두고 서울에 가 가지고  개혁 신학으로 장로교 신학교라 하는 그 이름을 가지고 장로교 신학교를 새로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그거 그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가서 뭐, 신학은 하나뿐이  아니라 몇이 돼도 되지 않느냐?' 했는데, 가서 막상 장로교 신학교를 시작하려고  하니까 자본이 없어. 돈이 없기 때문에 안 된다 말이오.

 돈이 없으니 돈을 끌어대는 데에는 신신학들하고 손을 잡아야 돈을 대 주겠는데  신신학과 손잡으려고 하면 또 이 정통이 깨지겠고 이래 가지고 문제를 가지고  많이 걱정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우리가 너거를 전적 끌어들일 수는 없다. 그러니까 거게 신신학  교수지마는, 신신학에 속한 신신학 교수지마는 그 중에는 좀 은혜롭다고 하는  그런 교수 한 두 사람만 우리가 채용을 하겠다. 그러니까 이제 돈을 대  주겠느냐?' 그리 됐습니다. '돈을 대 주겠다. 얼마든지 학교를 세울 수 있는  돈을 대 주겠다.'  그럴 때에 그것 때문에 올라가 가지고 한부선 목사님이 반대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이 반대를 해서 '그렇지마는 어떻게 자기가 정통 신학에 신학자가 돼  가지고 돈 없다고 해 가지고 그 신신학자를 청해 들여서 신신학과 정통 신학과  이렇게 혼합을 시키는 이런 큰 죄를 지을라고 하느냐? 그래 해서는 안 된다.'  만류하니까 그이가 말하기를,  '나는 아무래도 돈이 없어 가지고는 지금 신학교를 경영 못 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 좀 그점이 안됐지마는 나도 알고 돈 때문에 이 신신학 신학자를  우리가 여게다가 가담을 안 시킬 수가 없다. 안 시킬라고 하면은 그런 돈을  내놔라. 돈 안 내놓으면 나는 가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그때 한부선 목사님이 그 일에 대해서 아주 참 이 한국 교회가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로 죽었던 것을 그때 남아 있는 그루터기 남아 있는 참  그루터기를 가지고 살려서 한국 교회가 살게 됐는데 다시 이것을 신신학으로  삼킬라 하기 때문에 한부선 목사님이 그때 참 기가 막혀서 애를 썼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은 그 신사참배를 안 한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그래 하다가 하다가  안 돼서 그만 한부선 목사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 그 마음이 상해서 외치고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아에 윗도리 옷을 벗고, 옷을 벗고 그 커다란 양반이 옷을  벗고 시가에 다니면서 '신신학을 용납하면 죽는다. 박형룡 박사가 신신학을 지금  용납하고 이래 있기 때문에 신신학이 들어오면 우리 한국 백성은 죽는다고 옷을  벗고 다니면서 외쳤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누가 옷벗고 다니는 그것을 보지는 안했으나 그때 말 들은  사람 여기 있습니까? 말 들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둘. 그밖에 없습니까?  셋. 이이 이집사님은 못 들었습니까? 귀가 밝은데 못 들었어? 복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것 못 들었어. 여게서 그래 자, 말로도 듣고, 그때 그래서 한부선  목사가 지금 정신 이상이 됐기 때문에 가둬야 된다 해 가지고서 감옥에다 구금을  했습니다. 가뒀습니다. 가뒀는데 갇혀 앉아 가지고 거게서 어떻게 거석하든지  자기가 거게서 대변을 눠 가지고 똥을 싸 가지고 온 전신에 발랐습니다. 전신에  발랐어. 이제 우리 한국 교회는 이와 같이 더러워 진다고 똥을 눠 가지고 전신에  발랐어. 그게 한부선 목사님입니다. 그것도 못 들었어? 들은 사람 없어요? 하나,  둘. 들은 사람 손 들어  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뿐이라. 봐, 이러니까 그만 역사가  지나가고 뒤에 가서 마귀란 놈이 거짓말 하면은 모른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  한부선 목사님이 참 거기 대해서 한국에 대한 참 한국을 사랑하는 분은 누구  누구해도 한부선 목사님이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미국 사람 선교사면서  한국에서 살았고 한국을 대대 손손이 유언을 하고 그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일차적으로 신신학이 돈으로 인해서 들어왔습니다. 내나 지금 합동  번역이 돈 때문에 되는 것처럼, 그러기 때문에 돈이 하나님과 같은 동등 그  주인권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고신은  박형룡 박사는 올라가 버렸고 한부선 목사님은 여기 고려신학교를 거머쥐고 진리  운동을 한다고 이렇게 하면서 박윤선 목사님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뒤에  I.C.C.C라고 하는 I.C.C.C.가 맥킨 타이어씨라고 하는 그 선교사 미국 사람이  I.C.C.C.창설자 인데 I.C.C.C.에서 돈을 주고 또 이랄라 하니까 고신이 어데든지  그때 돈을 줄 데가 있으면 슬그머니 가 가지고 내나 여기도 그짓 했습니다.

 그래 돈 얻을라고, I.C.C.C.에 손을 잡을라고 이러니까 그때 여기서 'I.C.C.C  총회가 있으니까 I.C.C.C 총회에 참석하러 오라.' I.C.C.C 총회에 박윤선  목사님하고 한상동 목사님하고 I.C.C.C. 총회에 참석 하러 갈라고 할 때에  한부선 목사님하고 저하고 반대했습니다. I.C.C.C가 다른 사람은 뭐인지 모르기  때문에.

 반대를 하니까 '가서 뭐 참석하는 거야 무슨 상관 있느냐'고, 그것 때문에 많이  분주했지마는 한부선 목사님이나 그런 사람이 벌써 거게서 권리를 잊어버렸고  나도 그때에 아주 뭐 실무자로 실권은 가지고 있기는 있었지마는 내 말은 본야  그 사람들이 나를 무식하다고 하기 때문에 내 말은 무식한 사람이 저 사람 말  듣는다. 무식하다 이렇게 취급하고 저거대로 둘이 갔습니다.

 갔다 와 가지고 왔는데 보니까 박윤선 목사님하고 한상동 목사님하고  신학박사의 명예박사 학위를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얻어 가지고 왔을 때에 그때  제가 한상동 목사님한테 가 가지고, 박윤선 목사님은 그는 본래 학자니까 뭐  학위 얻는 것이 관계가 없고 이런 분들은 다 신앙의 사람이기 때문에 학위  그까짓 거는 신앙에다 대하면 그거 죽은 거요 신앙은 참 신앙이기 때문에  아까워서 '어떻게 이 하위를 그런 것을 가졌습니까?'하니까, 내 손을 잡으면서  '형님, 나도 어찌됐든지 모르고 안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그만 권해 가지고  어찌 이래 됐는데 행사만 안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때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말합니다. 내 손을 잡고 '형님, 나도 잘못 된 줄 압니다. 내가 그 행사를 안  하면 될 것 아닙니까?' 한상동 목사님이 내게 말했습니다. 이러고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안 하면 되겠지요.' 이랬는데,  그렇게 거게서 나하고 합해지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리고 만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밑엣 것들이 속싹속싹 그래 가지고 '그 교만하다. 그게 들어서 학위를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그따위 소리 한다'고 이래 가지고, '일개 전도사가' 이래  가지고 그때 또 내게 대해서 파란이 왔어.

 그래 그래 대적이 오고 오고 그래 모든 것이 몰려와 가지고 그때 싸우다가  이거는 상회에 복종치 안하는 불복종, 상회불복종 인간이라 하면서 그 죄목으로  제명을 해 끊겨 나온 것이 내입니다. 그때에서 아는 사람은 다 죽었고 나는 그런  말 선전하지 안해. 그런 말 안 하기 때문에 이제 그게 다 바뀌어졌다 말이오.

지금 내가 이 한 것이 녹음이 됐기 때문에, 녹음이 됐으니까 이 녹음이 된  이것이 뒤에 대조하면 다 알 것이라 말이오. 하나도 가감이 없는 정확한 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주교와 개혁교가 합동 번역 하는 것이 돈에 매수당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돈을 권세로 알고, 돈을 교회의 권세로 알고, 세상 지식을 교회의  권세로 알고, 또 이 정치나 이 세상 권세를 권세로 알고 이라면 벌써 그거는  썩은 겁니다.

 이번에 가서도 공부를 했지마는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고 그만치 수준이  자라지 안한 자는 못 듣는다 그말이오. 땅에서 올라온 두 뿔 가진 양새끼 같은  게 나왔는데 그것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뭐라고 말했어? 그것이 속화된 인본의  교회, 성전 밖마당이라 그말이오.

 그랬는데 그들은 무슨 권세 쓴다 했소? 짐승의 권세. 말은 무슨 말한다 했소?  말은 무슨 말 하요? 용의 말 하지 안했소? 그만하면 다 압니다. 말을 해 줘도  모르는데 성경보고 깨달을 수가 어떻게 있겠소? 성경 보고 그걸 바로 깨달은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알려 주신 것이라. 그 시대를  따라서 그 시대에 역사해서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이 와서 알려 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 밖마당은 기본구원은 있지마는 건설구원은 없는 자, 그자들이 세상이 볼  수 있는 그 면에는 그게 큽니다. 또 그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큰 거는 이 세계  아니요? 세계는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크지 않소? 거게는 기본구원도 없고  건설구원은 으례히 없고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가를, 평가를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평가대로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 생명성의 것 이것으로 평가하면은 평가가 하나님 평가와  같지마는 하나님하고 평가가 같지 안하고 마귀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마귀적으로 평가하면 예수님이 권세가 큽니까 빌라도가 권세가 큽니까? 누가  권세가 크요? 마귀적으로 세상적으로 평가하면 예수님이 권세가 크요 빌라도가  권세가 크요? 빌라도가 크지 않소?  정통이 크요 신신학이 크요? 사람 보기에는 정통 운동들의 그 가진 것이  큽니까, 많고 큽니까 신신학의 것들이 가진 것이 크고 많습니까? 신신학의 가진  것들이 크고 많지요. 정통보다 병원도 큰 병원 있고, 돈도 많은 돈이 움직이고,  세상 권세 정권에 판사 검사 사람들도 많이 있고 세상 권세자들도 많이 있고,  세상 권세도 많이 들어 있고, 돈도 많이 들어 있고, 세상 학교도 많이 있고,  세상 지위 운동도 많이 들어 있고.

 그러니까 한국에서 신신학에 되어 있는 것 기독교 장로교, 그것 다 거게서  병원도 더 많고 학교도 더 많고, 돈도 더 많고, 학자도 더 많고 더 많습니다. 그  많으니까 세상을 표준으로 하는 자들은 이 진리는 보니까 '아이구, 여기 진리,  목회자 양성원 해 봐야 이거는 존재 없는 것, 거기는 가면 이런 학자들도 이렇게  대거석도 있고 뭣이 거기 속한 거는 병원도 커단하고 뭣도 커단하고 하니까 크지  않느냐?  이 바보야! 그보다 더 큰 것 있다. 그러면 암만 신신학 속화의 교회보다도 더  큰 게 뭐입니까? 더 큰 게 뭐이요? 세상은 그것 몇십 배 큽니다. 그런 것으로  가치를 삼으면 세상이 더 크지 않느냐? 너거가 눈이 멀어서 멸망할 그것만  보이고 그것으로 가치를 삼아 하기 때문에 세상이 제일 크고 세상 다음으로 큰  것은 신신학 인본주의 세상주의의 교회들이고 제일 작은 것은 성전 제단  경배하는 자들이 제일 작지. 성전보다 작은 것은 제단이 더 작고, 제단보다 작은  것은 경배하는 자지. 경배하는 자가 제일 알맹이라 그말이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 안 차리면 헛일입니다. 깨달을 자는 깨달을 수 있어.

그것을 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 깨닫고 말하는 것이지 인간이 깨닫게 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이번에도 하나님이 역사에 없는 이 폭서에 우리가  가면 떠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 갔던 사람들 다 준비하러 갔던 사람들  모두 다 열사병이 들어 가지고 모두 이러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죽을 것 아닙니까?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날부터 얼마나 서늘한지?  그날부터 비가 와, 그날부터. 비가 또 우리 옷 젖게도 안 왔어. 어쩌든지  시원하게만 왔지. 이래도 모르는 자는 몰라. '뭐 을 때라 왔지.'

 그러므로 성전 밭마당보다 더 큰 것은 성전 밖마당 밖에 세상은 더 큽니다.

이제 어리석게 크고 작은 대소를 가지고서 평가를 하니 성전 밖마당보다는  세상이 더 크지. 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보다 성전 밖마당이 세상이 더  크지. 이러니까 그리 속해 가지고 그걸 제일이라 위주라 하고서 따라간다  그거요. 그러니까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기 그 사람 오라 해도 새벽기도 나오지  안해. 안 오면 저는 죽어. 돈만 가지면 제 뭐할 건데? 며칠 사는 그것이 평생 산  중에는 그게 산 생활이었을 거라. 뭐 이웃 사람이 어떻다고, 뭐 사가간이  어떻다고,  처남이 어떻다고, 친척이 어떻다고. 그 사람 지옥 간다고 제가 지옥 갈 건가?  하나님 보고 믿지. 사람 보고 믿어? 사람 보고 믿는 인간은 그거는 인본주의라.

사람 보고 믿는 인간은 인본주의라. 하나님 보고 믿어야지. 목사님도 인간이라.

목사 보고, 백 목사 보고 믿던 사람은 뒤에 백 목사를 하나님이 어떻게 만들어  가지고 낙심시킬지 몰라. 백 목사 보고 믿지 마. 하나님 보고 믿어야 되지.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는 성전 밖마당과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보다  밖마당이 크니까 껍데기 밖마당 큰 것 이것만 네가 보지 말고 그 속에 하나님이  어느 걸 인정하느냐 그것을 볼 것이고, 성전 밖마당이 크다고 하느냐? 그보다 더  큰 것 아주 멸망으로 되어 있는 이방 세상은 더 크지 않느냐? 그걸 본다면 그  표준을 잡으면 그게 더 크지 않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인정하느냐가 그게  문제지.

 그러므로 우리가 '거기는 뭐' 뭣 보고 그거 크다고 네가 거게 미련을 가지고  그리 끌려갈라 하느냐? 거게는 사람이 많거든. 사람이 많으니? 무대가 넓지.

사람 많다고. 또 그것 뭣 보고 가요? 거게는 모든 시설들이 크거든 또 그것  보고. 거게는 뭐이냐? 거게는 인간이 말하는 학자들이 많고 학이 많기 때문에.

 그러면 그보다 더 큰 것이, 그보다 더 큰 것이, 점점, 이보다. 이보다 요  꺼꾸로 가요. 제일 요게 좋은 거라면 요것보다 더 큰 것 요것, 요 것보다 더 큰  것 요것, 요것보다 더 큰 것 요것, 이래 가지고 마지막엔 세상이 더 커. 그걸  구별할 줄 몰라.

 사람이 아이큐도 말이요, 기억하는 아이큐가 있고, 또 이 판단하는 아이큐가  있고, 이 모든 간격을, 간격을 보는 윤곽을 보는 아이큐도 있습니다. 윤곽을  보는 아이큐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요. 그것 모양으로 이 전체에 이 대윤곽,  모든 것을 대범하는 이것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전연히 못 봅니다. 이러니까  암만 말해도 부인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게 큰데, 그보다 더 큰 게 세상에 있구나.' 그런 면으로 더 크니,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면으로 '어데서 더 똑똑히 지키느냐? 어데서 더 하나님의  진리를 정확하게 바로 말하고 있느냐?' 이거는 안 보는 거라.

 네가 여게 가니까 천국이 가까와지나 거기 가니까 천국이 가까와지나? 여기  가니까 인본에 가까와지나 저기 가니까 인본에 가까와지나? 여기 가니까 네가  하나님 말씀에 정죄를 많이 받겠느냐 저게 가니까 정죄 많이 받겠느냐? 거기  가면 잘믿는다고 자꾸 너무 과히 믿었다 하지 정죄받을 일이 하나도 없어.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인간이 보기에는 그게 크지마는 하나님 보기에는 건설구원은  눈꼽재기만한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건설구원도 기본 구원도 눈꼽재기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 보기에는 제일 크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안약을 발라서 보게 하라 성경 말씀을 믿어야 눈이 밝아지지? 그러므로 내가  뭘로 눈이 멀었나? 눈먼 것을 찾으십시오. 뭘로 눈이 멀었나? 돈 때문에  멀었느냐 지식 때문에 멀었느냐? 돈 때문에 눈먼 사람이 제일 많고, 그 다음에는  세상 이런 형편 저런 형편 세상 영광 때문에 눈먼 사람이 그 다음으로 많고, 그  다음에는 세상 지식으로 인해서 눈먼 사람 많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못된 그런  사욕들 때문에 눈먼 사람 많고, 눈먼 그걸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벗겨버려야  됩니다. 회개해 버려. 회개해 버려야 심령이 밝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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