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1980. 5. 4. 주후

 

본문: 마태복음 24장 1절-2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육체의 이스라엘의 말년에 성전이 더러워지고 성전답지 못한 이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이스라엘 전부가 절단 났습니다. 이 비밀을 모르는 그들은 번번히  원인을 말을 했습니다. 문화니 국교니 정치니 경제니 자원이니 별별 소리들을  했습니다. 자기네들이 역량이 있는데 까지는 모든 면을 힘써서 구비 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니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개인을 그 가정을 그 사회를 국가를 민족을 멸하신다는 이것을 얼마든지  경험했고 선조 때부터 체험해 나온 일이지만 이 면을 무시하고 힘쓰지 아니  했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신약교회의 종말인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도 교회가  절단나는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어떤 요소 때문이가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성전이 성전 노릇을 하지 못하고 더러워지기 때문에 멸망할 것인 것을 우리에게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라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인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부흥과 평강이 어디서 나왔는가? 성전에서 나왔고 이스라엘의  모든 쇠퇴와 패망도 성전에서 나왔습니다. 성전이 바로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은  흥황을 봤고 성전이 더러워졌을 때에 이스라엘은 모든 방편이 다 자멸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불택자들은 그들이 뭉쳐서 그 단체를 세상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뭉쳐서 하나님의 성전이라 신약교회에서 표준말로  한다면 교회라. 교회란 말이나 성전이란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에덴 동산이 좀 백성들의 영이 장성해 짐에 따라 성막으로 하나님이 나타내셨고  그 다음에는 성전으로 신약시대에 와서 가지고는 교회로 이렇게 표현했는데 역연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이 성전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너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걸  이것을 모른 데에서 다 멸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를  하나님께서 멸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대하든지 나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상살이를 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들도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가정이라고 하면  일반 세상 가정과 달리 주의 대속을 받은 하나님의 성전인 가정이라 우리 가정은  하나님 성전 가정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 성전이라 또 이 사회에 한 단체로  우리 서부교회는 주의 구속으로 이루어진 사회 성전이라.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이 하나님을 모시고  성전이 갖추워 가지고 있는 그 요소들을 갖추워 가지고 또 성전에 각 요소 다시  말하면 각 기관 이런 것들이 다 제 구실을 해서 제 책임을 감당한다고 하면 이는  깨끗한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성전으로 처세해야 되지 성전인 것을  잊어버리고 믿는 사람이 믿는 가정이 믿는 단체가 행동한다면 거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루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대적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일은 멸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빛 앞에는 어두움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처럼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되어 있으면 하나님에게 보호를 입고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믿는 개인이나  믿는 가정이나 믿는 단체가 하나님의 성전인 이 본질과 본성과 행동을 떠나면 빛  앞에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처럼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멸하시는 역사를  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아 성전으로 살아야겠고 성전은 그  구조가 삼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깥 마당, 성소, 지성소 이렇게 삼단으로 되어  있는 것이 성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도 활동도 우리 자체도 우리가 평가  하는 것도 비판하는 것도 서로 관계를 가지는 것도 경영하는 것도 삼단적인 이  구별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세상에 속하여서 어떤 구비하고 존귀한 세상과 합하여 산다  할지라도 세상과 나와에 밀접한 그 결합이나 평가보다는 교회와 자기와의 관계를  가지는 이 관계가 더 커야 되고 위에 있어야 되고 더 밀접해야 되고 더 높이  평가해야 되고 더 권위가 있어야 되고 내가 존대해야 합니다. 이거 안하면  망합니다. 또 내가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나 교회 생활 교회와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 그 관계가 아무리 밀접하고 고귀하고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평가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판과 경영과 밀접과 존대가  이것이 구별되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거꾸로 되어 있는 사람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 나를 지배해도 세상이 나를 지배하는 범위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교회가 나를 지배하는 지배의 범위가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지배해도 하나님의 교회가 나를 지배하는 그 지배와는 따라오지 못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의 나와의 관계, 하나님의 교회가 나를 지배하는 그 지배가  최고의 지배가 아니고 그 위에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시는 지배가 최고의  지배입니다. 이러기에 내게는 세상이 나에게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교회가 내게 권리를 더 크게 가지고 있습니다. 두 권리가 싸울  때에는 나는 부득히 세상 권리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교회 권리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교회 권리가 나를 아무리 지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대립이  될 때에는 나는 교회가 나를 다스리는 그 다스림을 그 지배를 하나님의 지배와  바꿀 수 없어 그 둘이 서로 대립될 때는 교회의 지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배를  우리는 따라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보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 위에 있고 하나님의  교회보다 하나님이 그 위에 모셔 계셔야 되는 이것이 이 삼단이 바로 되어야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성전된 그리스도인의 그 인격으로 그 사상으로 그  정신으로 그 지식으로 그 비판으로 평가로 대우로 행동으로 바로 되는 것이지  이것이 잘못되면 벌써 성전은 더러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게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나 하나님의 도우심은 있을 수 없고 저 혼자  살고 하나님이 거게 계시면 그를 멸해 버립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멸하시지  않으시기 위해서 그 사람을 멀리 피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거꾸로 되는 그 것이 많은것 만치 어떤 교인은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보다는 교회에 사람으로 되어 있는 그 교인들이 교역자나 신앙  지도자나 이런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권위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그  사람에게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 보담은 세상이 그 사람에게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 믿는다 하지만 믿는 사람 아닙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애타 하시면서 참아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삼단 구조로 되어 있는 이것을 우리가 보고 깨달아 우리의  인격은 삼단적인 인격이어야 되고 우리의 사상도 우리의 활동 범위도 삼단적인  범위, 우리의 평가도 대우도 삼단적 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친밀하는 친밀의 그  밀접의 도수도 밀도도 삼단적이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바쳐서 내가 나를  거게다가 바치는 그 헌신적인 것도 삼단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일단이나 이단이나 삼단이 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 삼단적인 구별을 가지지 아니하고 이 면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면 아주 꺼꾸로 되기 쉽습니다. 맨 밑에 단이 제일 위에 단이 되고 가운데  단은 맨 밑에 단 밑에 되고 제일 위에 단 하나님의 위치는 제일 천대를 받는  이런데 있습니다.

 여러 해 됐는데, 제가 어떤 집에 가보니까 그 집에 하나님은 입술로나 부르지  하나님은 가끔가다 말로만 하지 하나님을 말하면 그 가족들이나 자녀들이  웃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저거 살리라고 영생줄라고 갔는데 썩지  않을 것 주러 갔는데 참으로 참된 것 주러 갔는데 그 썩은 대우 그거 받으러  가는게 아닌데 하나님의 종들이 가서 생명의 말씀으로 권유하는 것은 그것은 뭐  아주 천하게 대우합니다.

 이러다가 도청에서 '누가 왔다' 하니까 아이들도 보니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족들도 아주 높은 손님이 온 것으로 생각을 가지고 그만 거게 다  정성을 기울이고 거게 평가는 다 가고 자기의 욕망은 거게 다 가고 성의는 거게  다 가고 하나님의 종이야 왔든지 가든지 '아, 손님이 와서 미안합니다. 전 좀 볼  일봐야 되겠습니다.' 가버립니다. 망했습니다. 통통 망했습니다. 제가 얼마후에  선언했습니다. '네가 그 망한다. 네가 지금 망한다 해도 네가 젊고 기력 있는데  하지만 네가 이제 쉰살이 넘으면 내 말 할 거다.' 거의 쉰살이 다 되어 가는데  쉰살이 되기 전에 벌써 절단 났습니다.

 여러분들이 성전은 삼단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성도를 사랑하는 것과 이방인 사랑하는  것과 원수 사랑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 법대로 다 사랑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므로 몸도 줄 수 있습니다. 생명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바쳐도  성도라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고 존대하고 자기 몸과 생명을 바치는 거와는  크게 차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위해서 생명 바치는 것은 더욱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먼저 하나님에게 바친 생명, 몸과 생명 하나님께 바친 심령이 현실,  교회를 위하여 바치는 심령으로 거게 나머지가 흘러내려 왔고 교회를 위하여  바친 생명이 모든 불신자를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몸과 생명을 바치는 것으로  흘러 내려 있고 그를 위해서 바치는 그 생명이 원수를 위하여 바치는 심령으로  흘러 내려와야 되지 이것이 역류되면 안됩니다. 이것을 단단히 구별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혼탁해서 오히려 거꾸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교회보다는 세상이 높이 평가되어 있고 '하나님이야 보이는가?'  하나님 보다는 보이는 교회가 높이 평가되어 있는 이 사람은 여전히 땅에 속한  사람이요 교회에 나와도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 입어서 교인이 될 때가 있을까  해서 하는 것이지 현재로서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아닌 것입니다.

 이 구조, 삼단 구조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고요히 깊이 새김질하고 자기를  생각하면 알 것입니다. 자기는 일단이 맨 아래 있는가 이단이 그 위에 있는가  삼단이 맨 최고 위에 있는가 자기는 세상이 위에 있고 교회는 세상 밑에 있고  하나님은 보이는 교회 밑에 있지 않는가? 자기는 어떻게 지금 자기라는 인격은  어떻게 구조가 되어 있으며 자기라는 생애는 어떻게 구조가 되어 있으며 자기가  평가함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느냐 요것을 똑똑히 살펴보면 알수 있습니다. 핑계  못합니다. 핑계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자라고 해도 벌써 이 단계가 바로 되지 아니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흉금을  열려놓고 신앙 교제를 할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흥흥 그럴수밖에 없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로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교회의 그 이목을  두려워 하는 사람를 상대하여서는 그 하나님과 관계점을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사귀되 이는 일단으로 사귀는 일단의 사귐이 있고 이단  사귐이 있고 삼단 사귐이 있으니 삼단 사귐은 하나님과만 사귀지 거게는 어떤  성자라도 이런 사귐을 가질수 없는 것이 이게 바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의 구조가 바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의 인격에는 우리의 사상에는  우리의 정신에는 우리의 지식에는 우리의 모든 활동에는 제단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제단이 없으면 성전은 난제 해결이 안됩니다. 제단이  없으면 자기라는 인격에는 난점을 해결 못합니다. 제단이 없으면 자기의 생애의  난점을 해결 못합니다. 제단이 없으면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의 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파괴도 이것을 수선 못하고 건설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이 되어 있는 믿는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이 제단이 있어야 되고  그 인격에도 사상에도 지식에도 말에도 언제든지 제단을 가지고 말해야 되고  삼단을 가지고 말해야 되고 성전으로 말해야 됩니다.

 제단은 크게 말해서 7가지 해결짓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 요제, 전제 드리는 것이 이것이 제단입니다. 소제에서  전제는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라는 것 그것을 표시하는  제사입니다. 또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다시 인식하고  인식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가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것은 자기가  처리할수 있는 이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 세 가지 제사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속에 언제든지 있어야 합니다. '주여, 내 재물 이거 당신의  것입니다. 이 집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 회사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거는 당신의  것입니다. 근본 당신이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피로 값주고 사가지고서 당신  것이 된 이것 가지고 소유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거 당신 것이 아닙니까?' 당신  것인 것을 자꾸 해석합니다. 당신 것을 보관하여 있고 '당신 것을 당신 뜻대로  써야 될텐데 내가 도적질해 쓴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짓는 것이 제단입니다.

 이런 생활이 매일 우리에게 있어야 이것이 소제, 요제, 전제를 드리는 그  심령이요 그 인격입니다. 그 생애입니다. 또 속건제는 자기가 모르고 지은 죄,  안 그리 할려고 했는데 고의적이 아니고 무지무능해서 실수해서 된 것 이런 것은  죄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이 피공로를 의지해서 이것을  주님이 대신하신 것을 자기가 고난으로 대신한 것을 새겨 깨달으면서 이것으로  하나님의 노를 풀고 이것을 다시 같이 용서함을 받는 이것이 속건제요.

 속죄제는 뚜렷한 죄를 화목죄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어떤 이유로 불목됐든지  불목된 그것을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법에서 용서를 받고 자기가 힘써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목을 다시 일으키도록 화목을 다시 제기하도록 이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 노력.

 번제는 자기 몸과 생명 자체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재인식하고 하나님에게  다 드려 하나님이 내 전부를 자유 자제하실 수 있도록 이 일이 하나님이 내 전신  전체에게 자유하실 수 있도록 나는 거게 자유하는 것을 다 이제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에게 내어 놓았소. 나는 내게 대해서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어  버리고 하나님이 내 자유하도록 이렇게 하는 이 깨달음의 역사. 새김질의 역사.

이 생애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어야 이것이 성전입니다. 이것이  더럽지 아니한 성전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수통이 있습니다.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물통이 있습니다.

이것이야 상징적으로 해놓은 것인데 우리는 항상 자기가 활동한 이 활동. 손으로  활동했든지 발로 활동했든지, 입으로 활동했든지 어떻게 자기는 언행심사의  활동을 했든지 이 활동한 이것을 항상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씻어서 깨끗이  하는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이 하는 이 운동이 언제나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 내가 오늘 누구 누구를 만나 가지고서 서로 교제한 것은 그게 부정이 없나  말의 실수가 없었나, 나 하는 행동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꺼리게 아니했나 혹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안했나 내가 기뻐한 기쁨이 내가 근심한 근심이 내가  웃음이 내가 노함이 이거 잘못됨이 없나?' 그것은 마치 물로 이 더러운 것을  씻는 거와 같이 자기의 신앙 양심으로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깨끗이  양심으로 씻고 말씀으로 씻고 영감으로 씻어서 깨끗이 하려는 이 작용이 우리  인격 속에 우리 사상 속에 우리의 정신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산 성전이요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는 성전인 것입니다.

 다음에는 일곱 등대, 일곱 촛대를 거기 두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어디 가든지  직장에 가든지 가정에서든지 혼자 있든지 둘이 있든지 자기는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이 사람은 돈 중심도 아니고  자기 중심도 아니고, 가정 중심도 아니고, 목숨이 살기 위한 생명 중심도  아니고, 사회 중심도 아니고, 민족 중심도 아니고, 국가 중심도 아니고, 하나님  중심으로 애국도 하고 애민족도 하고, 애가정도 하고, 애자기도 하고 모든 업도  사랑하고 이 사람의 모든 하는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구나 하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것이 빛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선이나 자비나 도덕이라  하는 그런 것이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하나님 중심에서 움직인다는 이  움직임을 세상에게 보여주려는 이 노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고 또 세상에게  보여주는 이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성전입니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기독자인 것입니다.

 다음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거게 진설된 떡은 하나님의 식물입니다. 상징적으로  그렇게 형상을 해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보여주기 위해서 했습니다.

(저 녹음기 이다음에 그렇게 하면 녹음기를 제거 시킵니다. 녹음기 못 쓰게  합니다. 녹음기 떡 갖다놓고 녹음기 있으니까 뒤에 가서 녹음기 틀면 다 들을  터이니까 저는 잡니다. 녹음기에 성령이 들었습니까? 아니오. 녹음기에는 성령이  안 들었소. 저와는 성령이 같이 하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는 어떻든지 말씀을  증거할 때는 성령이 들어 깨닫는 사람에게 같이 가야 되지. 잘 되지는  못할지라도 나만치라도 되지. 그러면 안 됩니다. 성령이 안 가면 안 됩니다. 헛  일입니다.)  거게 진설병의 떡상은 그것은 하나님의 잡수실 음식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잡수시지 아니했소 이것은 참된 성전을 가르치기 위해서 외형으로  구별해서 알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한 것이요 차차 성령의 감동으로 자라가면  구약 성도들도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르는 자는 모르고 외식으로 지나갔고  하나님의 식물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이룰 때에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시작하여  뜻대로 진행하고 뜻대로 완성을 할 때에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양식이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것만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당신의 것이 되지 딴 것은 안됩니다. 또 하나님의 떡이며 제사장들의 떡입니다.

제사장들이 먹기는 제사장들이 먹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잡수시고  제사장들과 그 식구들은 볼수 있게 먹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서 우리에게 분담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는 당신의 도움을  입어서 당신이 나에게 주신 내 사명을 다 삽니다. 이것이 있어야 성전입니다.

이럴 줄만 알고 행동 안하면 그거는 육체 이스라엘의 종말 패망의 원인이 된  성전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권찰회를 할때마다 제가 기도하기를 '우리로 하여금 주의 뜻만을  이루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아마 100번이고 1000번은 몰라도 몇 백번 했을  겁니다. 몇 십년 했으니까 늘 그 기도 하는 것은 게 '무슨 기도 저래 하는가?'  싶지마는 제 소원은 그것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늘 그 기도입니다. 어디가도  그거지.

 하나님의 종들로서는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는데에 주력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는데 능숙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든 교인이 이루는 데에 진정한 협조가 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가든지  '여기에서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것을 찾아 가지고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이 작용이, 이 간절이 우리에게  있어야 그 인격이 산 인격이라 그말이요. 간절이 있어야 그 사상이 산 것입니다.

 이럴때에 나만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주여, 나를 도우시옵소서 주의 뜻을  깨닫는 데도 도와주시고 깨달은 대로 실행하는 데도 도와 주옵소서 당신이 돕지  아니하면 내가 어떻게 이 일을 이룰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다립니다. 당신을 힘 입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내가 내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이 작용 역사가 살아 있는 것이 계속하여 있는  것이 이것이 산 성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얼마든지 역사 할수 있는 하나님이  지켜 보호할수 있는 성전입니다.

 이런 사람에 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 힘 있는 군대가 '들어가라' 불속에  들어가니까 그 사람들은 타 죽지 하니하고 집어 던진 그 역사들은 불이 나와서  다 태워 죽여 버렸습니다. 그것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 던지던 그 힘센  군인들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이 떡상으로 보였는데 성경은 다 그걸 말씀 해  봤지만 우리가 기억하기 어려우니까 '아, 내게는 떡상이 살아있나 떡상이  더러워졌나?'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주여 뜻이  하늘에서 이룸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기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를, 왜? 하나님 뜻 그 속에 오만 좋은 것이 다  들었습니다. 영생도 들었고 존귀도 들었고 성공도 들었고 평강도 들었고 피난도  들었고 복수도 들었고 원수의 승리도 그 안에 다 들었소. 하나님에게 오만 것을  주시게 당신의 뜻을 나에게 알려주셔서 그 뜻대로만 행할 때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와.

 이러기 때문에 이 작용에 간절과 노력과 인내가 있어서 이것이 달성하는 것이  그 인격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 가정속에 있어야 됩니다. 제가 어떤 가정은  보니까 세상 도덕면에는 보니까 좀 허무한 면이 보여지지만 그래도 그 가정에  보니까 어짜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려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벌벌떨고  하나님이면 그 가정에 제일 어른이라. 하나님이 제일 어른이라 뭐 하나님 앞에는  꼼짝을 못해.

 어떤 가정은 하나님카는 거야 그까짓 거 발로 짓밟아도 잘난 사람이 무섭지  하나님이야 그까짓것 하나님 하나님 제 마음대로 얼마든지 멸시 천대하는 그  가정 볼일 다 봤습니다. 돈 많아도 소용없소. 생명없는 장사가 힘세면 뭐하요  덩치가 크면 뭘합니까 뼈대가 잘 생겼으면 어짜요 생명 떠나면 썩지. 이것 떠난  가정은 조만간에 썩습니다. 망합니다. 인격도 그렇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세상에서 그대로 산다 하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하면 요 성전이 벌써 그 속에 없으면 참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못났든지  잘났든지 성전이 그 속에 구비해 가지고서 깨끗한 성전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없어도 있는 것입니다. 언제 그 사람이 어떻게 뛰어날런지 모릅니다. 어떻게  올라 갈런지 모릅니다. 무식이 상관없소 지식을 누가 만들었소 네 총명을 누가  만들었소?  틀림없는 말하고 옳은 것만 기억하고 뭐이든지 바로하고 뭐이든지 취하면 다 할  수 있는 이런 실력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세상에 제일이지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자를 세울려면 어떤 사람 세우겠습니까? 꼭 바로 아는 사람 꼭 바로 알고,  바로 말하고, 바로 주장하고, 바로 경영하고, 바로하고, 바로 판단하고, 바로  처리하고, 바로 파괴하고, 바로 건설하고,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우리가  대통령 안 세우겠소. 세계 대통령을 세울 것입니다. 일자 무식이라도 그것만  하면 그 사람 잘난 사람이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서 작용하여 현실 현실에서  이렇게만 작용한다면 못할 것 뭐이겠소?  이러니까 성전만 구비하여 있으면 그 사람 언제 뭐 될란지 모릅니다. 성경에는  천하에 두어도 다 기록 할려면 둘만한 곳이 없는 그런 많은 것을 간단하게 쓰기  때문에 많이 말 못했지만 애굽의 죄수가 당장 세계 제 1강대국에 총리가 된 것  저거 부모라도 멸시 천대하던 목동 초군이 당장에 역사에 제일 위대한 왕이 된  것 다윗왕이라 하면은 신 불신자간에 그 사람을 뒤에 두지 않습니다. 둘째 두지  않소.

 나폴레옹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봅니다. 옛날에는 영웅으로 봤지만 그  사람 어리석은 사람으로 봐요. 나는 처음에 나폴레옹 말듣고 이 사람은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렇게 봤습니다. 어리석은 용기 있는 사람이요. 기독자가  성전이 구비되어 있으면 그 사람을 미워하면 미워하는 것이 깨졌지 그 사람  상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상하지는 않습니다. 더 영광되지.

 그 다음에는 향로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금향로가 있소.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 하는 것. 모든 사람에게 의논하는 것 보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더 의논하는 것. 모든 사람에게 잘못된 그 무거움보다  하나님께 잘못된,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과의 자기와의 관련이 사물과의 관련보다도 모든 인간과의 관련보다도  교역자와 신자의 관련보다도 모든 정치가와 관민들의 관련보다도 그분과의  관계가 내게는 제일 촛점이 되고 그 관계가 제일 중점이 되어 가지고 항상  그것이 앞서 나가고 그것 중점적으로 활동하고 발라지고 생각해도 그게 제일  먼저 근심해도 먼저 걱정해도 먼저 위로에도 먼저, 소망에도 먼저 '아 이런  소망보다 그 소망이 제일 앞서' 이것이 금향로입니다.

 금향로는 향불을 피워서 올리는 것인데 이것은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의 교제입니다. 신인교제, 신인교제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 잘못 됐다고 하나님과 타협하는 것이 교제요 자기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을 의논하는 것이 교제요 두려운 것이 열이고 백이고 있어서 그 중에  제일 하나님과의 문제가 제일 두려워서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 다음 문제가  뭐 두려운것 있어 그게 해결되면 두려운데 아무것도 안보여 목을 끊는다 해도  보이지 안해 그까짓거는 하나님과의 두려움 이것이 해결이 되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보여지지 이것이 금향로입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련성. 이것이 자극이 제일 크고 충격이 제일 크고 내  마음이나 정성을 제일 크고 이것이 일대 문제로 내게 충격주고 역사하고 있는 이  작용이 있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의 인격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성전으로 되어  있는 인격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 휘장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그  경계선입니다. 우리는 이 휘장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휘장이  열려졌지만 우리의 심신에 대해서는 이 휘장이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우리 마음과 우리 몸은 하나님과와 나와의 이 관계에 잘못됨이 가로막고 있다는  이것을 언제든지 생각하고서 잘못됨이 이 가로막고 있는 이것이 계속 찾아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가로막혀 있는 이것이 없을 때는 벌써 더러워졌습니다. 없을  때는 벌써 죽었습니다. 속화되었습니다. 가리워져 있는 것이 발견되어 이 문제를  주의 구속에서 해결을 짓고 보니 다시 가리워진 것이 새로 나옵니다. 이거 걷고  나니 가리워진 것 또 새로 나옵니다. 이러니까 계속 가리워져 있는 것이 계속  찾아지고 계속 가리워져 있는 이것을 해졀짓고 하는 이 작용이 우리속에  계속하는 이것이 산 성전입니다. 이것이 깨끗한 성전입니다.

 다음에는 이제는 이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문서계시 성경의 교훈도 있고  예언도 있고 약속도 있고 교훈과 예언과 약속과 책망과 심판으로 되어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그 관계 막혀있는 것을 헐므로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성경으로 교훈한 이것을 이 교훈을 내가 새롭게 해서 이 교훈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성경을 외운다는 말이 아니고 이 교훈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되고 이 책망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이 심판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이 계약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이러므로 이 소망을 가지고 이것이 자기에게 성경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구약은 처음 약속한 것이고 신약은 다음에 약속한 것이  신약입니다. 구약이란 말은 처음 약속이란 말이오. 신약이란 말은 다시 약속한  책이란 말인데 내나 구약에다가 더 똑똑히 신령한 면을 더 높여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 신약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교훈하신 그 교훈이 자기  인격 속에, 자기 사상 속에, 자기 마음 속에 자기 생활 속에, 자기 활동하는데  이 교훈이 활동 속에 작용을 하고 이 책망이 자기 활동 속에 작용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눈을 찌끈 감으려 해도 이 심판이 자기 활동 속에 작용을 하니  심판에 걸려 못할 것 많고 교훈에 걸려 다시 새로워지는 것 많고 그 계약에  걸려서 못하는 것 많고 그 계약을 의지해서 하는 것 많고 그 소망으로 인해서  힘이 나는 것 많고 이런 것이 자기 인격에 자기같이 되어져 가지고 작용하는  이것이 성경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말이오. 내  자체라는 사람이 그 작용하는 그 작용이 있는 사람이라야 된다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속죄소입니다. 속죄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과 한 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결합이 됐습니다. 이렇게 성전이 순서를 밟아서  구비해지면 하나님은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자기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분명히 알 그 때에는 자기가 사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살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으니 자기 생각이 하나님 생각이요 하나님 생각이 자기  생각이요 하나님과 자기와 마찰이 없습니다.

 이럴 때에 설교가 가장 올바른 설교요 이럴 때에 주장이 가장 올바른 주장이요  이럴 때에 사랑이 가장 올바른 사랑이요 이렇게 산 성전되어 속죄소에서  예수님의 공로와 하나님과 자기와의 실지로 정말로 화합이 되어서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걸 자기가 확실히 알 수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거와  하나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알고 인정이 되어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가 되어서 움직여질 그 때에는 모든 견해가 하나라.

 성경보나 안보나 '성경은 뭐라고 말했을까? 분명히 성경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보면 그대로라 이럴 때에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얼마든지 역사할 수가  있고 그는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안에 자기중에 자기가  되고 자기 안에 참 자기가 되고 자기는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이런 작용이 실질적으로 자기 사상에 자기 인격에 자기 정신에 자기 주관에  자기 관념에 자기 본능에 이렇게 되어서 역사하는 것이 이것이 깨끗한  성전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멸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말세 교회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교회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된 그 개인은 온 세상이 그를 위하는 것뿐이요 온 세상은,  공산주의도 오면 그를 위하는 것만 하지 해하는 것은 절대 못합니다. 이렇게 된  가정은 어떤 존재라도 그를 위하는 것만 하지 해하는 것은 못합니다. 칼로  찔러서 죽였다 할지라도 위하기만 했지 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이스라엘 말년에 성전이 더러워져 가지고서 전멸입니다.

전멸의 원인은 성전 더러워진 것입니다. 신약교회 예수님 재림 때도 지상 교회가  도적맞고 망하는 것은 성전이 더러워진 것이 원인입니다. 모든 성공은 이 성전이  바로되어 깨끗해진 거룩해지는 여기에 모든 승리와 모든 성공과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가치는 전부 여기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눈을 떠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모르는 도리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세상과 모든 것은 이 법대로 심판 받고야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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